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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 궁지에 몰아넣은 워싱턴의 패권정치 [최배근 이게 경제다]

러시아 제압 프로젝트 실패로 인플레이션 장기화
연준은 뒤늦은 대응으로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
연준과 달러 모두 신뢰 추락의 위험한 기로에

 
 
40년 만에 최악의 물가상승률 수치가 발표된 1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인플레이션 대응을 주제로 연설했다. [EPA=연합뉴스]
산업화를 이룬 많은 나라에서, 적어도 2000년대 이후 사라졌던 ‘인플레이션 유령’이 지구촌을 배회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주제는 90년대 이후 경제학에서 관심 밖으로 밀려났을 정도였다.  
 
경제 이론적으로 인플레이션은 수요측 압력이나 공급측 (비용) 충격, 혹은 두 가지 요인의 결합에 의해 발생한다. 공급측 충격은 일반적 현상이 아니기에 많은 사람은 (화폐가치 하락을 의미하는) 인플레를 화폐적 현상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기계적 사고에 익숙한 이들은 팬데믹 상황에서 천문학적으로 풀린 돈을 떠올린다. 이른바 교환방정식(MV=PY)과 관련 지어 단기에 총산출량(Y)은 증가시키기 어렵기에 풀린 돈(M)은 물가(P)로 전이될 수밖에 없다는 사고의 산물이다.  
 
그런데 풀린 돈은 거래 횟수, 이른바 화폐유통속도(V)에도 영향을 받는다. 미국의 경우 화폐유통속도(=명목GDP/총통화량)는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말 1.424에서 팬데믹으로 경제가 큰 폭으로 후퇴했던 2020년 2분기에 1.103으로 하락했다. 2분기 이후 경기가 회복으로 전환하면서 화폐유통속도 역시 1.149로 다소 회복됐지만, 4분기 이후 다시 하락하며 올해 1분기에는 1.122로 후퇴했다.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돈의 유통속도가 21% 이상이나 줄어들었다.  
 
참고로 한국도 0.66에서 0.58로 하락했다. 풀린 돈이 상품가격을 밀어 올리지 못한 이유다. 반면 풀린 돈은 주식·부동산·코인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자산가격 인플레를 유발했다. 상품가격 인플레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오미크론발 공급망 교란 등으로 두드러졌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인플레 잊고 살았던 지구촌 우왕좌왕

인플레를 잊고 살았던 세계는 우왕좌왕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국 저소득층이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식량프로그램(WFP)은 향후 수 개월 내 3억2300만 명이 식량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만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지만, 연준은 점점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5월부터 인플레 목표치를 벗어나기 시작했지만 올해 3월부터나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연준의 대응이 늦었던 것은 인플레가 일시적일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판이 너무 오래 지속되었다는 점이고, 이는 공급망 문제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두 번째는 올해 5월 빅스텝을 밟은 후 파월 의장은 자이언트 스텝을 배제하는 공언을 했지만, 그 공언은 한 달 만에 뒤집혔다. 상황에 밀려 자이언트 스텝을 밟은 연준에 대한 시장과 가계의 반응은 싸늘하게 변했다. 연준이 금리를 빠르게 인상한다고 단기간 내 인플레 통제가 어려울 뿐 아니라, 등 떠밀려 인상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연준이 2% 인플레 목표를 위해 ‘조건 없는 싸움’을 할 것이라 공언했지만 연준 산식에 따르면 금리를 4%~7%까지 끌어올려야만 한다.  
 
연준은 완전고용과 물가 안정이 양대 미션이지만 금융 안정도 고려해야만 한다. 주가가 연일 급락하고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지며 (주가가 팬데믹 이전 수준까지 하락할 경우) 페드풋(Fed Put, 금융 부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경기 침체를 우려하고 있지만 내심은 자신들의 손실 급증에 따른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연준이 뒷북 대응을 하며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다고 월가(Wall Street)를 비난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도 인플레 목표치를 3~4%로 상향해야 한다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인플레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면 금리 인상폭을 낮출 수 있고, 인플레율이 최대 3%까지 내려오면 금융 완화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플레를 목표치로 낮추려면 연준의 노력(?)만으로는 힘들 수 있다는 점이다. 흔히들 현재의 인플레를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비유하지만, 당시의 인플레와 이번의 인플레는 뿌리가 다르다. 당시는 (금본위 정지 선언으로 상징되는)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44개국 연합회의에서 탄생한 국제 통화제도) 붕괴와 그에 따른 달러 가치의 폭락이 유가 상승을 가져왔고,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달러 가치가 안정되면서 유가와 인플레도 잡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가와 달러 가치가 동반 상승을 하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달러 가치가 추가 상승하더라도 전쟁이 종료되지 않는 한 유가가 잡히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주장하는 (급격한) 금리 인상의 필요는 그에 따른 경기 침체를 통해, 석유 수요의 감소를 통해 유가를 잡을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택이 경기 침체는 물론이고 금융 불안정이라는 비용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인플레 궁극적 해결은 워싱턴의 몫 

사실 금융 안정은 미국 달러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 유지와도 관련이 있다. 파월이 연준이 후원한 ‘달러의 국제적 역할’ 컨퍼런스의 환영사(6월 17일)에서 연준의 이중 미션은 금융 안정 유지에 의존하고, 물가 안정은 달러의 기축통화 신뢰 유지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에서 금융 안정은 달러의 기축통화 역할 유지의 전제조건이라 말한 배경이다. 금융 불안정이 달러 신뢰의 위기를 의미한다고 지적한 것은 연준이 과도한 긴축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문제는 과거보다 높은 인플레를 용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연준은 금융 안정과 물가 안정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순간 연준과 달러 신뢰는 추락의 모멘텀이 될 것이다.
 
사실, 연준 어려움의 근원은 정치 실패에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나토)의 러시아 압박의 결과라는 측면, 즉 러시아를 제압해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목표와 관련이 있다. 워싱턴의 러시아 제압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인플레의 장기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워싱턴이 만든 문제를 연준에게 그 책임을 돌린 것이다. 따라서 인플레 문제는 워싱턴이 풀어야만 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나 서방,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를 보장하지 못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피해를 보는 ‘마이너스(-) 섬’ 게임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종전의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종전을 위한 타협만이 인플레에 대한 가장 확실한 해법이기 때문이다. 이는 패권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필자는 건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 전문가다. 현재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경제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유튜브 채널 ‘최배근TV’를 비롯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KBS ‘최경영의 경제쇼’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 중이며, 한겨레21, 경향신문 등에 고정 칼럼을 연재했다. 주요 저서로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대한민국 대전환 100년의 조건]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 [이게 경제다] 등이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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