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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의 빅스텝, 그리고 이어져야 할 채무 구조조정 [전성인의 퍼스펙티브]

한국 경제 어려움 실세 금리 올려야 할 때
금융권 역할 조정 필요…저축은행 위험 상황 인지해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7월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빅스텝에 나섰다.
 
7월 13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1.75%에서 2.25%로 0.5%포인트 인상했다. 당연한 결정이고 충분히 예상된 것이기도 하다.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일단 안정세를 보였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연말 기준금리가 2.75%~3%까지 갈 것이라는 예상은 합리적”이라고 하여 향후 추가적 금리인상 가능성을 노골화했다.
 
물가상승률이 연간으로 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미국 연준이 계속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남은 문제는 그에 따른 부작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금리 인상 결정에 정부 어깃장 놓지 말아야   

우선 하지 말아야 할 것부터 보자. 가장 피해야 할 ‘노노’는 돈의 가격 즉 금리에 정부가 다시 손찌검을 하는 것이다. 한은이 기껏 금리를 올렸는데 정부가 나서서 다시 금리를 내리려 한다면 이것은 고상한 정책 조합(policy mix)이 아니라 그냥 어깃장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금융감독당국이 은행의 이자 장사를 문제 삼고, 이에 은행이 대출금리 인하로 화답하는 현실은 개탄스럽다.
 
현재의 경제 문제는 실세 금리를 올리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와중에 두둑하게 배를 불린 은행은 ‘다른 곳’에 써먹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은행의 이자장사를 문제 삼는 것은 핀트가 한참 어긋난 정책 대응이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실세 금리를 손댈 것이 아니라 첫째로 ‘자금의 가용성’을 보충해 주고, 둘째로 채무를 집중하고, 셋째로 채무를 재조정해야 한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첫 번째 과제는 자금이 필요한 곳에 자금을 공급하여 최대한 부도를 막는 것이다.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채무자에게 0.5%포인트 높은 금리가 더 부담일지, 아니면 만기 연장을 거부하거나, 대출 잔액의 일부를 변제해야 만기를 연장해 주겠다는 것이 더 부담일지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부도는 고금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기보다 만기연장이 안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높아진 금리라도 일단 이를 부담할 수 있는 채무자에 대해서는 금융회사들이 섣불리 원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회수할 수 없도록 정책적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이자 자체를 갚지 못하는 연체 채무자는 별도로 분리하여 따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두 번째 과제는 금융권의 채무를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다. 분산 투자에 익숙한 일부 독자에게 ‘채무의 집중’은 일견 매우 비합리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물론 위험을 집중한 후 방치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위험을 집중하자는 뜻은 ‘위험을 집중한 후 그 집중된 위험에 정책적 처방을 가하자’는 것이다.
 
그럼 왜 위험을 집중해야 하고 또 집중한다면 어디에 집중해야 할 것인가? 위험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금융기관 중 현재 저축은행의 잠재적 부실 가능성이 유난히 크기 때문이다. 7월 10일, 금융감독원이 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다중채무액은 총 가계부채 규모인 1862조원의 약 1/3에 달하는 603조원인데 이 중 약 3/4인 73.8%가 저축은행에 몰려 있다. 저축은행의 잠재 부실률(총 대출 대비 30일 이상 연체대출의 비율)도 지난 3월말 현재 4.1%로 상승했다. 고정 이하 여신 대비 대손충당금 적립 비율이 100%에 미달하는 저축은행도 전체 79개 저축은행 중 21개에 달하고 있다. 요약하면 저축은행은 어렵고 위험한 상태다.
 
그럼 어찌해야 할까? 물론 저축은행의 증자를 유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주주 여력이나 주식 시장 상황을 볼 때 이것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 대출 관리를 엄하게 하라고 하면 저축은행이 만기 연장을 거부하거나 대출을 회수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채무자의 부도를 야기하여 첫 번째 정책 방향에 반한다. 예금보험을 동원해 증자 지원을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국민의 돈을 넣는 것이라 최후의 수단에 가깝다.
 
그럼 어찌할 것인가? 은행을 동원해야 한다. 필자는 위에서 은행의 이자장사를 호통칠 것이 아니라 은행을 다른 곳에 써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다른 곳이 바로 여기다. 정부는 저축은행권의 부실을 은행권으로 이전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 방식은 은행으로 하여금 대환대출을 해 주도록 할 수도 있고, 은행이 자금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부실채권 펀드를 조성할 수도 있다. 물론 부실채권 펀드를 조성할 경우에는 비단 저축은행 부실채권뿐만 아니라, 다른 금융권의 부실 채권도 포함하도록 할 수 있으나 핵심은 저축은행 부실채권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 진짜 어려운 세 번째 과제가 남아 있다. 그것은 부실채권에 대한 채무 재조정이다. 부실채권을 그냥 한 곳에 몰아놓기만 하면 그 부실채권을 손에 쥔 주체는 채무자의 후생이나 경제적 외부효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죽기살기로 채권회수에 나설 수 있다. 이 경우 금융기관의 부실은 재배분했으나 채무자의 후생이나 경제적 효율성 회복은 기대할 수 없다. 채권추심에 쪼들린 가장이 노숙자로 전락하면 인적 자본이 망실되고, 채무기업이 부도나면 실업이 증가하고 기업이 보유한 기술은 사장된다. 노숙자건 실업자건 이들을 부양하는 것은 사회적 부담으로 귀결된다. 실제로 과거의 구조조정은 바로 이 세 번째 과제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야기했다.
 
그럼 채무 재조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채무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가계의 신용대출인 경우에는 3년 동안 최저생계비 이상을 변제에 충당하고 남은 부분은 모두 면책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한 경우에는 거꾸로 변제 기간을 장기로 늘여야 한다. 예를 들어 20년 또는 심지어 30년으로 늘려서 원리금을 상환하도록 해야 채무자도 거액을 변제할 수 있고, 주택도 경매시장에 덜 나오게 된다.
 
기업 대출의 경우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채무 재조정을 하기 보다는 회생법원의 회생 절차에 맡기는 것이 더 낫다. 혹자는 기촉법 상의 워크아웃 제도에 기대를 걸 수도 있으나 이 경우 대개 금융회사만 웃고 기업과 노동자는 울게 되는 경우가 많다. 채무 재조정에 있어 정부가 유념해야 할 핵심은 채권 회수의 극대화가 아니라 사회 후생의 극대화다. 기업 대출에서 굳이 정부가 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하청기업이 부실화할 경우 원청기업이나 하청 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대기업이 고통을 분담하도록 팔을 비트는 것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이듯이 동반성장은 하청기업이 어려울 때 필요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이제 공은 추경호 부총리에게 넘어 갔다. 과연 추 부총리는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인가? 
 
* 필자는 현재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지내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미국 MIT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에서 강의하다 귀국한 후에는 한국금융소비자학회 회장, 한국금융정보학회 회장, 한국금융학회 회장, 한국금융연구센터 소장 등을 역임해 다양한 외부 활동을 하는 지식인으로 꼽힌다. 저서로는 [화폐와 신용의 경제학] 등이 있다.   

최영진 기자 choiyj73@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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