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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중심에서 혁신 중심으로의 전환 [최배근 이게 경제다]

자산가치가 소득보다 높은 한국 사회
부동산 등 일하지 않아도 돈 버는 구조 고착화
인플레이션 장기화로 부동산자산 가치 조정 불가피

 
 
 
7월 18일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주택 단지 등 부동산의 모습. [연합뉴스]
언제부턴가 우리 청년들은 금수저와 흙수저로 상징되는 ‘수저계급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 개인의 인생에서 성공은 전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그저 그런 대학을 나와 취업도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부모가 수십억 빌딩을 가진 청년과 서울대를 나와 대기업의 정규직 일자리를 가졌으나 평생 전세살이를 전전한 부모를 가진 청년 중 결혼 시장에서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큰 대상은 전자라는 웃픈 얘기는 더는 새삼스럽지 않다. 오죽하면 한때 10대의 장래 희망 중 하나가 건물주나 임대업자였을까? 대기업에 재직하는 많은 젊은 사원들이 개인의 삶을 포기하며 직장에 충성하다가 기껏해야 국민주택 규모의 주택 한 채 갖고 50 전후에 부장에서 명퇴하는 인생보다는, 회사 생활 중 진급을 못해도 자산 축적을 위한 준비를 하며 30대가 끝나기 전에 퇴사하고 40대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자산을 모으는 새로운 삶을 선택하겠다는 얘기에도 많은 직장인이 공감한다. 이러한 얘기들에는 부끄럽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이 정확히 투영되어 있다.  
 
몇 해 전 한 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이 상위 10%에 속할 때 그 자녀가 상위 10%로 살아갈 확률이 90%에 가까웠고, 반대로 부모의 소득이 하위 10%에 속할 때 그 자녀가 하위 10%로 살아갈 확률도 90%에 가까웠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교육 수준을, 그리고 교육 수준이 경제적 기회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질 뿐 아니라 공적 자원에 접근할 기회도 증대시킴으로써 자녀의 경제력을 결정한다. 경제력이 정치력을 증대시킬 가능성도 높이고, 심지어 정치력이 경제력 확대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20여 년간 돈의 배분과 이동은 앞에 소개한 얘기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발표된 OECD의 조세정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00m2의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우리나라 가계는 가처분소득을 한 푼 사용하지 않고 16.6년을 모아야 가능하고, OECD 31개 회원국 중 18.7년 소요되는 뉴질랜드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았다. 소득 대비 주택가격이 높다는 사실은 (자산이 부동산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의 경우 자산가치가 소득보다 높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속성상 자산이 보다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자산가치를 소득으로 나눈 값을 불평등지수로 제안한 것이 이른바 ‘피커티 지수’이다. 한 나라의 전체 자산가치를 그 나라 국민이 벌어들인 소득으로 나눈 값이 높을수록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자산가치가 줄어든다. 쉽게 말해 일해서 버는 것보다 금융자본·부동산 등 일하지 않아도 돈을 버는 구조가 고착화되는 셈이다.  
 

2년간 국내 순자산 증가분 3239조원 중 부동산자산 증가분 2825조원

 
자산은 스톡(stock) 개념이기에 부의 세습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돈이 많이 풀렸던 팬데믹 직후 2년간, 즉 2019년 말 대비 2021년 말에 우리나라의 국민순소득(NNI≡국민총소득-감가상각)은 약 103조원이 증가한 반면 국내순자산은 국민순소득의 31배 규모인 약 3239조원이 증가했다. 한국의 피커티 지수(국내순자산/국민순소득)는 지난해 11.9배로 주요국 중 가장 높다. 물가를 반영한 구매력 평가 기준 (순자산/순소득) 배율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더라도 2020년 기준 한국은 8.4배로 미국 5.3배, 영국 5.7배, 독일 5.1배, 프랑스 7.6배, 일본 6.2배, 캐나다 5.7배, 싱가포르 5.8배를 크게 앞서고 있다. 가계만을 보더라도 같은 기간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은 96조원이 증가한 반면 가계순자산은 소득의 24배 규모인 2291조원이 증가했다. 가계의 피커티 지수(순자산/처분가능소득)도 지난해 10배가 넘었다.
 
그리고 2년간 국내 순자산 증가분 3239조원 중 부동산자산 증가분은 2825조원, 즉 87%가 넘을 정도로 부동산자산 중심으로 자산 축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가계의 경우에도 순자산 증가분 2291조원 중 부동산자산 증가분은 1699조원, 즉 74%가 넘을 정도이다. 부동산자산 증가분 중 토지자산 증가분(국내 제한)이 국가 전체는 68%, 가계는 79%를 차지하고 있다. 자산 축적이 부동산자산 중에서도 토지자산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020년 기준으로 개인은 상위 1%가 토지의 22.3%를 소유하고, 법인은 1%가 75.1%를 소유할 정도로 토지자산 중심의 자산축적은 토지소유 불평등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자산 불평등이 최근의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10년 전(2010~11년)에 가계 가처분소득과 순자산의 증가분은 각각 40조원과 249조원으로 자산이 소득 증가보다 6.2배나 높았다. 그리고 최근(2020~21년)에는 가처분소득과 순자산 증가분이 각각 57조원과 1133조원으로 자산이 소득 증가보다 20배나 높았다. 원인은 무엇일까? 자산 축적 추구 행위가 땀 흘려 소득을 만들거나 혁신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행위보다 유리하게 제도가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년 전(2010~11년)에는 통화량 증가분 91조원 중 실물경제로 73%가 흘러들어간 반면, 최근 2년간은 통화량 증가분은 700조원이 넘었지만 이중 21%만이 실물경제로 유입되었다. 아무리 돈을 풀어도 대부분 돈은 투자와 일자리 창출보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가고 있는 현실이다. 대한민국이 갈수록 자산 중심으로 경제력이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전체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325만원이었고, 비정규직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187만9000원, 일일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156만6000원, 단시간 임금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96만2000원이었다. 평균 근로자가 땀 흘려 일을 해서 자기 집을 장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의 장기화, 즉 이지 머니(easy money) 시대의 종언으로 자산, 특히 부동산자산 가치의 조정이 불가피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다른 국가들과 달리 (유동성이 낮은) 부동산자산 중심의 자산구조를 가진 한국 사회의 충격이 가장 클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사회는 대붕괴(a big collapse)와 (자산 중심에서 혁신 중심으로 사회를 재구성하는) 거대한 리셋(the great reset) 중 선택의 기로에 있다.
 
*필자는 건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 전문가다. 현재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경제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유튜브 채널 ‘최배근TV’를 비롯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KBS ‘최경영의 경제쇼’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 중이며, 한겨레21, 경향신문 등에 고정 칼럼을 연재했다. 주요 저서로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대한민국 대전환 100년의 조건]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 [이게 경제다] 등이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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