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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과 회사가 함께 박수치는 동료가 최고 인재다 [유웅환 반도체 열전]

수직적 평가와 수평적 평가 조화 통해
동료가 인정하고 상부가 꼽는 직원이
인재로 뽑혀야 회사 경쟁력으로 발전

 
 
7월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 경기에서 선수들이 은퇴하는 선수를 헹가래 치고 있다. [연합뉴스]
누구나 살다보면 두 가지 유형의 시험대 앞에 서게 된다. 우선 점수나 등급을 매기는 평가 유형이 있다. 이는 개인의 능력을 객관화해 바라볼 수 있다는 취지는 좋을지 모르나, 한 인간의 개성을 박탈하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타인으로부터의 신뢰와 믿음에 기반한 평판이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친 인간관계 내에서 형성되어 집단적인 인정을 낳는다. 평판은 개인 간의 단결과 협력을 장려하고 궁극적으로는 공동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이점이 있다.
 

실리콘밸리에선 인재를 중심에 두고 판단해

얼핏 보면 실리콘밸리의 평가는 냉정해 보인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전 과정이 평가의 대상이고 그 결과가 곧바로 봉급, 보너스, 승진 등의 보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인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이 성과를 앞세우는 것 이면에 놓인 실상을 보면, 인재를 중심에 두는 철학을 가지고 한 사람에 대한 가치 평가를 우선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평가 시스템은 업무 수행 과정 전반을 대상으로 한다. 업무 수행 평가는 상시적이다. 매니저가 직원 개개인에게 레벨 세팅, 멘토링, 모니터링, 피드백을 해주는 전 과정도 평가의 일환이다. 최종 평가가 이루어지기 전의 모든 과정은 직원의 능력 향상 및 문제점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평가 과정은 직원 개개인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는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평가의 취지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직원의 성장에 중심을 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물이 창출하는 이익에 중심을 두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직원과 회사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오랜 시간 노력해왔다.
 
평가의 중심은 단연 직원이다. 우선 직원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리더의 멘토링, 모니터링, 피드백을 통해서 직원들은 현재 나의 자질, 역량, 업무 진행 정도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점검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타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들여다봄으로써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다음으로 평가는 직원들이 자신의 미래가 어떨지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의 기능을 한다. 평가를 통해 나의 위치를 점검함으로써 스스로가 꿈꾸던 위치까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에 평가가 곧 개인 역량 개발을 위한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끝으로 평가는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의미한다. 모든 인간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피평가자는 타인으로부터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음으로써 칭찬, 격려, 응원, 지지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평가는 잘하는 사람에게 칭찬과 박수를 보내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피어 리뷰’에서 ‘360도 피드백’까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잘 반영한 평가 시스템의 대표적인 경우는 ‘동료 평가’로 번역할 수 있는 피어 리뷰(peer review)이다. 이는 학계에서 활용하는 방식으로 연구자가 논문을 투고하면 같은 분야에 속해 있는 익명의 연구자들이 심사를 일임하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이러한 평가 방식은 피평가자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줄 수 있어 연구의 개선 및 발전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는다.  
 
실리콘밸리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내 동료들 간에 서로의 관심사, 연구 분야, 업무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부서 간 이기주의가 심한 회사들은 동료 평가를 통해서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을 극복할 수도 있다. 또한 피어 리뷰는 회사 전체의 입장에서도 이득을 준다. 
 
예를 들어 한 엔지니어가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중 자신도 모르던 에러가 피어 리뷰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만약 그 에러를 아무도 모른 채 제품이 출시되었다면 회사는 시장에서 막대한 불이익을 받았을 수도 있다.  
 
미국 프로야구 경기 중 포수와 투수가 경기 성공을 축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피어 리뷰가 프로젝트에 국한돼 있는 것이라면, 인사 문제에 있어서는 피어인 동료들의 피드백(peer feedback)은 물론이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아래로부터 위로의 피드백 역시 중요하다. 이를 이미지화 하면 ‘360도 피드백’이 된다. 한국의 인사고과와 성과급제도의 맹점은 그것이 주로 상부의 평가에 근거한다는 점에 있다. 
 
만약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평가가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평가와 상충된다면 그 직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동료들이 최고로 꼽는 인재와 회사가 최고로 꼽는 인재가 다르다면 그 회사는 경직된 문화를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360도 피드백’이 중요해진다.
 
인텔에서 일할 때 부서원 중에 빌이라는 아주 똑똑한 연구원이 있었다. 그의 업무 능력은 뛰어났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는 시간을 잘 준수하지 않고 회사의 기본적인 규칙들을 잘 따르지 않는 직원이었다. 업무 시간에 나한테 보고도 없이 사라지고 특별한 사유 없이 자주 집에서 일하곤 했다. 
 
이로 인해 함께 일하던 주변의 동료들이 상당히 일하기 힘든 상대라고 평가를 했다. 업무능력은 뛰어났지만 규칙을 따르지 않아 함께 일하기 힘든 상대라는 동료 평가를 반영해 ‘기대이하’(below expectation) 고과를 주었다. 빌은 처음에는 납득할 수 없다며 평가에 반발했지만, 그동안 기록해 두었던 위반 사례들을 제시하며 하위고과를 받은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동료들의 솔직한 피드백도 전달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오랜 시간의 면담으로 그동안 회사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를 필자는 알아낼 수 있었다. 본인의 능력 대비 주어진 일이 너무 도전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후 필자는 연구원이던 그에게 리더급 업무를 부여했고 빌은 그 과제를 상당히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성과를 인정해 그 다음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최우수’(outstanding)를 주었고 과장으로 승진을 했다. 지금도 그가 아주 잘하고 있고 차장으로 승진했다는 등의 소식을 가끔씩 듣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은 직원들이 박수칠 때 회사도 함께 박수칠 수 있는 곳이다. 그들은 수직적인 평가와 수평적인 평가의 장점만을 취해 동료가 인정하는 사람과 상부에서 인정하는 사람이 동일하게 나올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러한 촘촘한 그물망과 같은 평가 시스템은 최고의 인재를 성장시켜 최고의 전문가로 만들겠다는 회사 전체의 운영 철학에도 상응하는 것이다. 결국 어느 회사에서든 인재가 그 중심에 있다.
 
※ 필자는 27년 경력의 반도체 열사(烈士)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후 인텔에서 수석매니저를 지냈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스카웃돼 최연소 상무로 재직했다. 현대자동차 연구소 이사, SKT 부사장(ESG그룹장) 등을 거쳐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며 반도체 정책 보고서 등을 작성했다. 반도체 분야 90여 편의 국제 논문과 Prentice Hall과 고속반도체 설계에 관한 저서를 출간했다.
 

유웅환 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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