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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조직에서 ‘유레카’가 외쳐지게 하려면 [유웅환 반도체 열전]

글로벌 기업 ‘워크 스마트' 관심 높아…빠르면서 오래가는 자기 관리 일환
구글 ‘20% 시간’ 활용, 구글 나우·지메일 광고 등 다양한 서비스 론칭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 본사 전. 구글은 20% 시간을 활용해 전체 업무 중 20%를 여가 시간에 활용하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많은 기업이 목표로 삼고 있는 ‘워크 스마트’는 육상 경기에 비유할 수 있다. 일단 빨라야 한다. 하지만 속도뿐만 아니라 페이스를 조절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단거리 경기의 승패가 스타트에 달렸다면, 장거리 경기에서는 꾸준히 자기 본연의 페이스를 선두권에서 유지하다가 마지막 구간에서 남은 힘을 쏟아내야 하듯 말이다. 이처럼 사내에서의 워크 스마트란 빠르면서도 지치지 않고 오래가는 자기 관리의 일환이다.

 

유레카를 위한 20% 문화 자랑하는 실리콘밸리

워크 스마트는 눈치 보기에 바쁜 수직적인 조직 문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드라마 〈미생〉의 신입사원은 선배와 상사들의 기에 눌려 산다. 유형도 각양각색이다. 그들은 각각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학벌이 좋다는 이유로, 현장 출신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선배들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그들은 한동안 업무와는 상관없는 커피 심부름, 담배 심부름, 복사, 전화 받기와 같은 허드렛일을 도맡아서 한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자랑하는 인재들이 선배들 눈칫밥 먹으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반면 실리콘밸리에서는 눈치 보기보다는 눈높이에 맞는 업무 설정을 통해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역랑을 발휘할 기회를 준다. 보통 엔지니어들의 직급은 연구원(junior engineer), 선임 연구원(engineer), 책임 연구원(senior engineer), 수석 연구원(sr. staff engineer), 연구위원/마스터(principal[distinguished] engineer) 급으로 나뉘며 직급별로 레벨 세팅을 통해 전문 지식과 그것을 활용하는 정도를 구분해서 적용하고 동일한 기준에 따라서 업무 능력을 평가한다. 수석 연구원 이상은 리더로서 직원들과 지속적으로 협의해나가는 과정에서 레벨 세팅을 해주고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끔 유도한다. 〈미생〉에서처럼 고급 인력을 뽑고서도 비상식적으로 단순한 업무를 시키거나, 채용 즉시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멀티플레이어형 인재를 기대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모든 직원이 자기 몸에 꼭 맞는 일을 할 수 있어야 좋은 회사라고 생각한다.
 
같은 조건에서 같은 업무를 수행할 때 시간을 단축시킬수록 능력있는 사람으로 평가 받지만, 무작정 빠르기만 하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주어진 업무에 따라서 시간 관념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첫째, 개인적인 시간 관념이 필요하다. 특히 선임연구원은 의존적으로 명령과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과제를 마쳐야 하는 시간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개별적인 목표 관리(MBO, management by objectives)를 통해 아이템, 과제 수행 방식, 최종 달성 기간 등을 능동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좋다. 둘째, 회사가 요구하는 시간 관념을 파악해야 한다. 이는 팀 단위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회사 전체에서 사활을 걸고 출시하는 프로그램이나 상품이 있을 때 해당하는 말이다. 셋째, 자신의 회사가 어떠한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지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시장 진입 시기(time to market)를 놓고 봤을 때 모바일 제품은 6개월을 주기로 반복되는 단기 주기를 갖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PC는 2년이라는 장기 주기를 갖고 있다.
 
기원전 200년경 시칠리아의 히에론 왕은 아르키메데스를 불러 요상한 임무를 맡긴다. 자신의 왕관이 순금인지 합금인지 알아보되, 왕관을 망가뜨리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일렀다. 아르키메데스는 고민에 빠져 목욕을 하다가 우연히 자신이 들어간 욕조의 물이 넘치는 걸 보고서는 동일한 왕관을 물속에 넣으면 황금의 밀도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흥분했던 그는 목욕하다 말고 거리로 뛰쳐나가 “유레카”를 외쳤다.

 
이처럼 기발한 생각은 책상 앞에서 나오지 않는다. 실리콘밸리에는 ‘유레카를 위한 20퍼센트’의 문화라는 것이 있다. 구글은 ‘20% 시간’ 활용해 전체 업무 중 20%를 여가 시간에 활용하는 대표적인 회사다. 이는 단순히 주5일 중 하루를 휴가처럼 보내거나, 회사에서 게으름을 피우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업무 과중에 따른 피로로부터 벗어나, 기분 전환 삼아 직원들이 평소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일에 몰두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함이다.
 
그 효과는? 회사에 120%로 돌아오고 있다. 구글은 20% 프로젝트로 구글 자동완성(suggest), 구글 나우, 구글 뉴스, 지메일 광고, 안드로이드용 스카이맵 등을 출시한 바 있다. 시스코는 ‘창의적 아이디어 시스템’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이 전체 업무의 20〜50% 가량을 아이디어 개발에 투자하게끔 장려하고 있다. 1년 단위로 개개인이 하고 싶은 아이디어를 제출하면 해당 프로젝트는 리더가 관리하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다. 신입사원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회사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면 자연스럽게 동료들 간의 협력이 이루어지면서 모두가 동반 성장할 수 있다.
 

승진 거절하는 엔지니어? 

실리콘밸리는 직원들에게 어느 정도로 자율성을 보장해주는가? 필자가 인텔에서 리더로 근무할 당시 한 엔지니어의 승진을 결정할 시기가 있었다. 그 직원은 자신의 레벨에서 좋은 성과를 냈으며 다음 레벨로 승진해도 무리가 없었다. 그에게 곧 승진할 거라고 소식을 알려주자 뜻밖에도 싫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태도는 확고했고 이유 또한 명확했다. 회사의 기대치와 회사가 요구하는 임무보다는 현재 자신의 직급에서 하고 있는 일이 더 좋으며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단번에 이해하긴 힘들겠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승진의 결정권마저도, 회사보다는 개인이 어떤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창의력은 직원의 잠재력을 믿고 기다리는 개방된 문화속에서 나온다. 회사가 이윤 창출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면 20% 문화는 무용지물이다. 회사가 직원을 아는 것보다 직원이 스스로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의 잠재력이 더 높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들이 본연의 가치를 발견하고 또 그럼으로써 스스로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게끔 협력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또 누가 “유레카”를 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20%를 투자하라, 새로운 발견에.
 
※ 필자는 27년 경력의 반도체 열사(烈士)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후 인텔에서 수석매니저를 지냈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스카웃돼 최연소 상무로 재직했다. 현대자동차 연구소 이사, SKT 부사장(ESG그룹장) 등을 거쳐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며 반도체 정책 보고서 등을 작성했다. 반도체 분야 90여 편의 국제 논문과 Prentice Hall과 고속반도체 설계에 관한 저서를 출간했다.
 
 
  

유웅환 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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