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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의 취약성·위험전이에 주의하라 [조원경 글로벌 인사이드]

금리 급등 국채 폭락, 인플레이션 억제 난맥
미국·유럽 경기 침체 우려, 복합 위기 확산

 
 
미국 달러 지폐(왼쪽)와 영국 파운드 지폐.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금융시장은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성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금리인상, 금융취약성, 금융 시장 전이가능성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이 되어 있다. 불이 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은 많은 소방관들이 휴가를 떠나서는 안 되는 시기인 것 같다. 연준에게 불안을 야기한 국가는 영국이다.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 불어온 금융 불안이 30년 고정 모기지 평균 금리를 15년만에 최고치로 쏟게 했다. 영국은 과거 준기축 통화국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나라이다. 1970년대 영국은 폭넓은 사회복지제도와 산업 국유화에 따른 공공부문의 비효율성, 취약한 국제수지 구조, 높은 물가 상승률로 어려움을 겪었다.  
 
1976년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하고 외환시장은 영국 경제정책을 불신한 가운데 외환보유액이 바닥이 났다. 결국 IMF 차관을 제공받은 후 약 6개월이 지나서야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이 안정되었다. 최근 달러 가치가 고공 행진하는 ‘킹달러’ 상황에서 영국 파운드화가 가장 먼저 통화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어른거렸다. 실제로 9월 26일 외환 시장에서 미 달러 대비 영국 파운드화 환율은 한때 1파운드에 1.0327달러까지 급락했다.  
 
1985년 2월26일의 1.05달러를 깬 것으로 1971년 이후 최저치였다. 헤지펀드 중 일부가 영국의 감세안 발표 직전에 영국 국채인 길트채의 약세와 파운드화 약세 등에 베팅해 대박이 났다. 위기를 기회로 보며 위기를 부채질하는 시장의 야수들이 미워진다.  
 
리즈 트러스 총리 내각 출범 이후 파운드화 가치가 지속 하락한 가운데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로 대표되는 대규모 감세 조치(2027년까지 450억 파운드, 약 68조8600억원)가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 불을 지폈다. 대규모 감세로 영국 정부의 부채 규모는 1900억 파운드(약 294조원) 규모로 확대(2차 세계 대전 이후 3번째) 될 것으로 예상 되었다. 
 
런던에 있는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 은행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채권 시장은 안정될 것인가

정부 재정지출 확대가 물가를 자극해 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시킬 거란 우려가 확산됐다. 시장은 영국의 부채 수준이 높아져 재정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 우려하며 과거의 금융위기를 떠올렸다. 이런 상황에서 비관론자의 대표주자인 누리엘 루비니 전 뉴욕대 교수는 말했다.  
 
“영국 파운드화가 37년래 최저를 기록하는 등 영국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 영국이 결국은 IMF 신세를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 S&P는 영국정부의 재정 부양책 영향으로 `25년까지 GDP 대비 재정적자가 평균 2.6%p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경기악화와 국채금리의 추가 상승이 동반될 경우 위험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영국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조정 했다.  
 
영국은 1976년에도 앤서니 바버 당시 총리가 감세 정책을 실시해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 경기가 침체하는 가운데 경기를 살리고 싶은 욕망은 이해하나 시기가 적절치 않았다. 시장과 IMF는 영국의 감세정책을 잘못된 정책이라며 비난했다. 일본 중앙은행이 24년 만에 외환 시장에 개입한 가운데 영란은행(BOE)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10월 14일까지 장기 국채를 사들이겠다고 밝혔다. 하루에 50억 파운드씩 총 650억 파운드로 국채 가격 폭락을 막겠다는 건데 언 발에 오줌누기라는 평이다.  
 
국채매입으로 국채 가격과 파운드가 안정되는가 싶더니 총리가 감세정책을 옹호하는 발언 후에 국채 10년 물 금리도 상승했고 파운드화도 상승의 일정부분 되돌림 현상이 발생했다. 결국 영국 정부는 10월 3일 66만 명의 고소득자에게 연간 평균 10,000파운드의 혜택을 주는 부자감세(소득세 45%를 40%로 내리는 조치)를 철회했다. 그 덕에 파운드화는 강세를 시현하게 되었으나 숲에 갇힌 영국이 아직 험로를 벗어난 것은 아니란 평이다.      
 
영란은행이 급히 국채를 매입하며 유동성 공급에 나선 것은 왜일까? 영국 연기금들의 지급 불능 위기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대세다. 연기금이 보유하던 채권 중 일부가 며칠 만에 약 절반의 가치를 잃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믿을 것 같은 연기금이 마진콜(증거금 부족에 따른 증거금 납부 요구)을 당하게 생겼었다.  
 
영국의 금융 중심지 런던 도심 전경. [EPA=연합뉴스]

영국 연기금 부채연계투자금 10년 전 4배 급증

영국 연기금의 위기에는 '부채연계투자(LDI·liability driven investment)'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LDI는 부채에 레버리지 투자를 할 수 있는 파생상품의 일종인데, 요즘처럼 채권 금리가 급등하면 손실이 커진다. 영국 연기금은 관행적으로 파생시장에 참여해 왔다. 장기 채권 수익률만으로 사실상 수익률을 맞추기 어려워서 현실적인 전략이 필요했다.  
 
매월 일정액의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연금펀드가 지급 의무를 다하기 위해 동원한 투자 전략이 LDI로 영국 연기금은 LDI를 통해 1파운드만으로 4파운드에 달하는 국채를 사들이는 레버리지 투자를 해왔다. 장기채가 안전하다는 생각에 레버리지 투자를 했는데 인플레이션으로 금리가 급등했다. 안전자산이라 믿었던 국채 가격이 폭락하고 레버리지 투자의 기반이 무너지게 되었다. 장기채는 일정한 박스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이를 벗어났다.  
 
결국 블랙스완의 영역으로 가게 되었다. 레버리지는 연금펀드의 부족분을 당장 메우지 않아도 문제가 없도록 해주지만 채권시장이 혼란에 빠지면 부메랑이 된다. LDI로 문제가 발생하면 영국이 진앙지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비중이 큰 미국 채권시장도 불안하다. 2021년 말 영국 연기금의 LDI 투자 규모는 총 1조6000억 파운드로 10년 전의 4배로 급증했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은 달러 대비 자국 통화 가치 절하를 막기 위해 연준 따라 하기를 하며 금리를 올려 채권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글로벌 채권시장의 변동성은 연준이 기본적으로 금리 인상을 중단할 때까지 계속되고 주식시장의 안정도 찾기 어려워 싸다고 사는 영역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소식을 들으며 위기를 압도하는 더 큰 국제공조의 정책을 생각해 본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전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시장의 기능이 고장 날 것 같다. 향후 인플레이션이 아닌 금융안정성을 걱정할 시기가 올지 모른다. 급격한 금리 인상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지켜보아야 한다.”  
 
미 주식시장만큼 거품이 오래 끼었던 채권시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운 요즈음이다. 
 
※ 필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이자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이다. 국제경제 전문가로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제금융심의관, 울산 경제부시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앞으로 10년 빅테크 수업]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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