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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기침’에 벌써 달라진 서비스…순기능 실현 ‘관건’[메타버스 규제 시작되나②]

법적 구속력 없지만, 국내 기업들 ‘안전 강화’
자아 투영 높은 메타버스 아바타, 피해 후유증도↑
“진입장벽 작용은 경계…기울어진 운동장 우려 해소해야”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운영사 네이버제트는 최근 안전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사진 네이버제트]
‘기침과 같은 발표.’ 정부가 주도적으로 마련한 ‘메타버스 윤리원칙’을 두고 업계에선 이 같은 비유가 나온다. 해당 내용이 권고 사항이란 옷을 입고 나왔기 때문이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기업들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여 플랫폼 내 안전 운영을 강조하고 나섰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SK텔레콤 등 국내 메타버스 산업에 진출한 기업들은 최근 자사 플랫폼에 안전·윤리 운영과 관련된 기능을 대거 반영했다. 이들 기업 모두 ‘정부 발표와 무관한 업데이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플랫폼 내 안전 운영 강화는 메타버스 윤리원칙 최종안 발표 시점을 전후해 이뤄졌다. 정부 기조가 반영된 변화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최근 메타버스 내 윤리 운영을 강화한 기업은 정부가 메타버스 윤리원칙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직접 논의에 참여한 곳이 대다수다. 정부가 마련하는 규범 내용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구조였던 셈이다.
 

네이버·SKT, 개념적 윤리원칙 ‘기술’로 구현

가장 극적인 변화가 나타난 곳은 네이버다. 네이버 계열사 네이버제트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운영하고 있다. 제페토는 국내를 비롯해 미국·프랑스·일본 등 세계 약 200개 국가에서 3억4000만명 수준의 이용자를 보유한 국내 대표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네이버제트는 지난 25일 애플리케이션(앱) 내 신고 기능을 업데이트했다. 안전 운영 강화를 목적으로 커뮤니티 가이드라인도 변경했다. 안전 공식 캐릭터 론칭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이용자 보호 정책도 펼친다.
 
특히 안티 그루밍(Grooming) 기술을 도입, 채팅 대화를 스캔하는 기술을 적용했다. 그루밍의 초기 지표의 빠른 탐지가 목적이다. 비대면 채널로 아동·청소년에게 접근, 피해자를 길들여 성적으로 착취하는 행위를 일컫는 ‘온라인 그루밍’을 사전에 방지하겠단 취지다. 회사는 이와 함께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감지하고 제거하기 위한 인력의 배치도 마쳤다.
 
정부가 메타버스 윤리원칙을 발표한 지난 27일에는 안전자문위원회(자문위)를 발족했다. 네이버제트는 독립성을 보장받는 외부 전문가 기구를 통해 제페토 운영방식이 안전한지를 지속해서 검토받는다. 자문위는 운영 정책과 기술 등의 적절성을 전반적으로 살피고, 제페토 내에서 차별 행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조항 강화 마련도 조언한다. 노준영 네이버제트 안전전문팀 리드는 “제페토가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안전자문위원회와 긴밀한 교류로 이용자 보호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메타버스를 통한 글로벌 진출을 추진 중인 SK텔레콤도 마찬가지다. SK텔레콤은 올 3분기 누적 기준 1280만명이 사용한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는 이프랜드 내 성적인 불법 행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최근 감시 기능을 강화했다. 또 아바타가 간 충돌 시 화면상 완전한 접촉이 이뤄지지 않도록 기능을 구현했다. 이는 정부가 메타버스 윤리원칙 내 8대 실천 원칙으로 삼은 ‘사생활 존중’을 기술적으로 실현한 사례로 꼽힌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글로벌 플랫폼 목적으로 이프랜드를 최근 49개국 동시 출시한 만큼 기본적 윤리 운영을 강화하고 있다”며 “정부 기조에 맞춰 메타버스 내 비윤리적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이 운영하고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 이미지. [사진 SK텔레콤]

정부가 주도해 윤리원칙 만든 까닭

메타버스 윤리원칙은 지난 1월 범부처로 발표한 ‘메타버스 신산업 선도전략’에 근거해 제정됐다. 정부는 당시 산업 진흥과 함께 윤리원칙 마련이 생태계 확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실과 가상을 잇는 메타버스 특성상 자아에 몰입하는 정도가 다른 플랫폼 대비 높다고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정부는 규범의 부재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게 나타난다면 되레 산업 확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 같은 접근은 국내뿐 아니라 미국 등 해외에서도 공통되게 나타난다. 미국 온라인 소비자단체 섬오브어스(SumOfUs)는 지난 5월 메타(옛 페이스북)가 운영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호라이즌 월드가 ‘성폭력·자극적인 콘텐츠·혐오 발언의 온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안전망 마련이 시급하단 지적이다. 국내서도 피해사례가 발생한 바 있다. 30대 남성이 약 1년간 제페토에서 만난 11명 아동·청소년에게 신체 부위 촬영을 요구, 성 착취물을 제작해 검찰로 넘겨지기도 했다.
 
메타버스 아바타는 자아 투영의 정도가 높아 캐릭터를 대상으로 발생한 피해의 후유증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구지방검찰청 소속 검사들은 지난 7월 대검찰청 계간 논문집 ‘형사법의 신동향’ 여름호에 ‘메타버스 공간에서의 성폭력 범죄와 형사법적 규제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고 “일상생활 공간을 그대로 구현한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실제 같은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성폭력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 역시 이 같은 사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무소속 민형배 의원·더불어민주당 윤영덕 의원 등이 메타버스 내 성폭력 관련 금지 법률을 발의한 바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메타버스 윤리원칙’ 마련을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논의를 진행한 과정.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이 같은 추세를 반영, 지난 5월부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논의를 진행해 이번 윤리원칙을 마련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중대한 피해가 나타나 윤리 규범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메타버스 윤리원칙은 특별한 계기가 있어 논의가 시작된 사례는 아니다”며 “메타버스 산업과 관련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하면서 산업계 안팎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고, 중구난방 식으로 진행됐던 논의를 정부가 주도적으로 정리해 기준을 마련했다. 피해 발생을 사전에 방지하고 생태계 자정이 이번 제정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는 논의 과정에서 네이버제트·카카오·LG유플러스·버넥트·마이크로소프트 등 메타버스 운영사들의 의견도 청취했다. 당초 윤리원칙에 ‘선택권 보장’이 포함됐으나 최종안에선 삭제된 배경이다. 기업들은 해당 내용이 개발·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윤리원칙의 확산이 기업의 부담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우려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숙제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와 같은 거대 기업은 수많은 개발 인력을 확보하고 있어 윤리원칙에 부합하는 서비스 개발이 가능하지만, 이제 막 메타버스 산업에 진출했거나 진출 예정인 중소기업에선 모든 기준을 충족해 서비스를 개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윤리원칙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제성이 없더라도 국내 기업은 이번 윤리원칙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며 “외산 기업들이 국내 서비스를 진행할 때 윤리원칙을 잘 반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야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메타버스에서도 발생하면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두용 기자 jdy2230@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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