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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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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이번엔 달까지 간다?…“데이터센터 최적의 장소”

산업 일반

네이버가 달로 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부지는 달 표면 북위 20도, 남위 20도에 있는 ‘초록모자의 평원’이다. 데이터센터 이름은 ‘각 문’(Moon)이다. 이와 관련해 네이버는 “새로운 데이터센터를 위한 최적의 장소를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지구의 위성이자, 태양계 가장 안쪽에 있는 위성 ‘달’!”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는 1일 이런 내용을 담은 2분 분량의 만우절 영상을 공개했다. ‘각 문’은 100% 태양광으로 에너지를 조달하고,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은 우주로 방출하는 시스템을 갖췄다.아울러 7세대 이동통신(7G) 우주 특화망 네트워크를 이용해 달을 방문한 사람들이 네이버 생중계로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고, ‘네이버 도착보장’으로 즉석밥도 주문할 수 있다. 네이버 항공권 서비스를 통해 해외여행을 가듯, 화성 등 주변 행성으로 떠나는 우주여행 티켓을 구매할 수도 있다. 네이버는 영상 후반부에서 ‘각 문’ 공개가 만우절 이벤트임을 밝히면서도 “사용자의 추억과 기록이 담긴 데이터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전했다. 초록모자 평원도, 달 표면 위치도 가상의 장소다. 영상에 등장하는 달에 설치되는 데이터센터 현재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네이버는 ‘각 문’에 버금가는 기술력을 갖춘 ‘각 세종’을 곧 선보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가동 시기는 올해 올해 3분기로 예정되면서 지금까지 네이버가 보여온 데이터의 안정적인 운영 능력을 높일 계획이다. 네이버는 2013년 강원도 춘천에 지은 첫 데이터센터이자 국내 인터넷 기업 최초 데이터센터인 '각'을 10년간 무중단·무사고·무재해로 운영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10월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빚어진 전방위 온라인 서비스 먹통 사태에도 ‘각’을 기반으로 자체 서비스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를 바탕으로 ‘각 세종’도 안정적으로 가동한다는 방침이다. 네이버는 실제로 달에 데이터센터를 건축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용자 데이터에 대한 안정성을 고집하는 네이버의 경영 철학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2023.04.01 11:24

2분 소요
[현명한 부동산 상속·증여 방법은] 자녀에게 공동 명의로 물려주지 말라

재테크

재산 분쟁의 불씨 될 때 많아 … 단독 명의보다 재산세·종부세·양도세 절세 효과 기대 부산에 사는 은퇴자 박진국(가명·63)씨는 요즘 동생들과 다툼이 잦다. 선친이 물려준 60억원대 빌딩 매각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이 빌딩은 맏이인 박씨를 포함한 5명의 형제자매 공동 소유로 돼 있다. 박씨는 건물 관리를 겸해 1층에서 작은 편의점을 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건물을 팔자고 하더니 요즘은 압박의 수위를 더 높이고 있다. 이번 선친 기일에도 빌딩 매각문제로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장남으로서 빌딩에 대해 갖는 애착은 각별하다. 선친이 평생 일궈 물려준 건물인데 세상 떠난 지 5년도 채 되지 않아 덜컥 파는 것은 자식으로서 도리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동생들은 형이 흑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의심하는 눈치다. 건물이 팔리면 일자리가 사라질 까봐 매각을 꺼린다는 것이다. 박씨는 “형제자매가 빌딩을 잘 가꾸면서 사이 좋게 지내라고 물려주신 건데 오히려 다툼의 불씨가 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 쟁족(爭族)을 아십니까 일본에서는 유산을 놓고 자녀들의 분쟁이 늘어나면서 신조어가 생겨났다. 바로 ‘쟁족’이다. 상속 재산을 둘러싸고 싸우는 가족이라는 뜻이다. 주변에서도 보면 부모 재산을 놓고 분쟁을 겪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재산이 많을수록, 자녀수가 많을수록 분쟁의 빈도는 높아진다. 요즘 재산 분쟁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은 왜 처음부터 분할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특히 부동산을 자녀 공동 명의로 나눠주면 생각보다 다툼이 자주 일어난다.말기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김진택(가명·85)씨는 요즘 화병까지 생길 지경이다. 갈수록 기력이 쇠진해지는 것을 느껴 5년 전 서울 강북에 있는 상가건물과 지방 땅을 공동 명의로 아들 4명에게 증여했지만 오히려 가족 간 분쟁의 불씨가 돼서다. 그가 공동 명의로 재산을 증여한 것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식들이 부동산을 함부로 팔지 않고 지킬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의 사업이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둘째 아들은 건물을 팔아서 급전을 조달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다른 자녀들이 매각을 반대하자 형제 간 사이가 소원해지더니 요즘은 둘째 아들은 아예 명절 때도 오지 않는다. 김씨는 “내가 일군 재산을 가지고 아들이 쌈박질하는 것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고 말했다.물론 공동 명의로 부동산을 증여하면 부동산 가액이 분산돼 단독 명의보다 재산세·종부세·양도세 절세 효과도 있다.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 공동 명의 때는 의사결정이 쉽지 않고 다툼 또한 끊이지 않는다. 서울의 한 빌딩중개업체 사장은 “상속·증여 빌딩 가운데 50% 이상이 분쟁을 겪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혈육지간에는 사소한 갈등도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돌이키지 못할 큰 싸움으로 비화되기 쉽다. 자녀들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면 재산 싸움은 더 노골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맏이는 동생, 동생은 맏이에게 서로 양보하고 싶지만 ‘피가 섞이지 않는’ 배우자들이 간섭하면서 싸움의 판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당신이 사업을 해서 오래 전 구입한 빌딩이 있다고 하자. 이제는 내 분신처럼 생각될 정도로 애착이 강한 빌딩이다. 나이가 많이 들어 빌딩을 자식에게 넘기려고 한다. 이럴 때 어떤 생각이 들까. 나의 유전자를 잇는 자식에게 재산을 승계할 수 있으니 뿌듯하고 행복한 감정이 들까. 아니면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물건을 남에게 줬을 때 느끼는 허탈감, 재산을 넘겨줬으니 부모를 홀대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낄까. 80대 전직 사업가는 “증여 계약서를 작성할 때 형언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고 말했다.서울의 A 변호사는 최근 아들에게 부동산 증여를 원하는 자산가의 집을 찾았다. 이 변호사는 “증여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난 뒤 아버지가 슬며시 자신의 방에 가서 울더라”고 했다. 이 바람에 증여 계약서를 작성하던 집안 분위기가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런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권력의 이동으로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들과 아버지는 혈육 관계이지만 한편으로는 권력 관계이다. 재산 증여는 재력으로 생기는 권세인 금권(金權)이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 입장에서 금권의 이동은 재산을 매개로 한 집안 일의 주도권 상실로 이어진다. 옛날 시어머니가 곳간 열쇠를 며느리에게 쉽게 주지 않았던 이유와 비슷하다. 그래서 말인데, 그 자산가는 가족 관계에서 더 이상 갑(甲)이 아니라 자식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지 모른다는 괜한 생각, 지위 박탈감이 섞여 눈물을 흘린 게 아니었을까. ━ 아버지는 재산 증여 후 울적해질까 역사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극단적인 갈등관계를 드러낸 것은 조선시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다. 영조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행위를 어떻게 해석할까. 개인적으로 혈육이 아닌 권력 코드로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혈육으로는 아버지가 아들, 그것도 친아들을 죽일 수 없다. 하지만 권력이 매개될 때 아들을 죽이는 비정한 아버지는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들과 아버지간의 알력은 원초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감정임을 말해준다.영조는 사도세자는 미워했어도 세손(정조)에게는 애틋했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애정의 관계이지 권력의 관계가 될 수 없다. 손자·손녀는 보기만 해도 기쁨과 웃음이 나온다. 늘그막 삶의 보람이다. 70대의 한 지인은 “심지어 손자를 오래 보기 위해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시작한 친구가 있다”고 했다. 요즘 손자·손녀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할아버지들이 많다. 하지만 지갑 속에 아들 사진은 없다. 최근 들어 아예 아들을 거치지 않고 손자·손녀에게 바로 증여(세대 생략 증여)하려는 사람이 많다. 이는 절세 목적 이외에도 아들과 손자를 바라보는 감정 차이도 섞여있기 때문이리라.자식에게 증여를 하더라도 부모, 특히 아버지의 마음을 배려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상속 개시 전 10년 이내에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은 상속재산가액에 합산해 상속세를 부과한다.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자녀에게 증여하는 게 좋지만 아버지의 미묘한 감정은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아! 내가 만일 부자였고, 재산을 거머쥐고 있었고, 그것을 자식에게 주지 않았다면, 딸년은 여기에 와 있을 테지. 그 애들은 키스로 내 뺨을 핥을 거야!”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의 사실주의 소설 에서 주인공은 죽어가면서 두 딸을 원망한다. 고리오 영감은 제분업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이젠 빈털털이다. 마지막 남은 은수저를 내다 팔 정도니 오죽하랴. 그동안 벌어들인 재산은 모두 두 딸의 사치와 허영을 충족시키는 데 들어갔다. 두 딸은 철딱서니가 없다. 아버지의 베품에 고마움을 느끼기는커녕 아버지는 자신들이 상류사회로 진입하는 데 돈을 대 주는 존재일 뿐이다. 무도회에 갈 드레스를 살 때처럼 돈이 필요할 때만 아버지를 찾는다. 아버지가 졸도해서 사경을 헤매는데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심지어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을뿐더러 장례비도 대주지 않는다. 불효도 보통 불효가 아니다. 가시고기처럼 아낌없이 주는 고리오 영감의 부정과 아버지를 비정하게 외면하는 두 딸의 스토리는 좀 극단적이다. 하지만 주변에는 고리오 영감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너무 많다. 어린 자식 양육과 늙은 부모 봉양을 맞교환하던 시대가 지났기 때문일까.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우고 결혼 이후에도, 손주 돌봄 등 각종 애프터서비스를 하지만 자식들은 부모가 더 퍼주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하지만 아낌없이 줬더니 되돌아오는 것은 냉대일 뿐이라는 늙은 부모의 푸념 듣기가 어디 한 두 번이던가. 이제 자식은 노후의 보험은 결코 아니다. 오죽하면 “자식은 재산이 아니라 영구부채”라는 말까지 있을까. 심지어 어느 경로당에서 노인들이 “무찌르자 아들딸”이라는 구호를 외쳤다는 웃지 못할 얘기까지 들린다. ━ 나도 ‘효도계약서’ 써볼까 자식으로부터 박대를 당하지 않기 위해 죽기 직전까지 재산을 움켜쥐려는 사람도 많다. 일본에서 ‘노노(老老)상속’이 많아진 이유다. 노노상속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줘도 자신을 돌보지 않을 것이라고 본 일본 노인들이 죽을 때까지 재산을 넘기지 않아 생겨난 신조어이다. 이러다 보니 100세 부모가 세상을 떠날 무렵 또 다른 노인인 80세 자식에게 재산을 넘겨주는 상황이 생겨난 것이다. 과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절세를 위해 재산을 조기 증여할 것인가, 아니면 재산을 끝까지 쥐고 갈 것인가. 혹시 증여한 재산을 자녀가 함부로 팔아버릴까, 허투루 돈을 써버릴 까 걱정된다면 방법은 있다. 우선 검토해볼 만한 게 ‘효도 계약서’이다. 이른바 조건부 증여 계약서이다. 재산을 증여를 하기는 하는데,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증여 계약은 무효라는 의미의 계약서이다. 가령 부동산을 증여하는 대신 용돈을 매달 부치고, 아플 때 병원 치료비를 대며, 매달 1회 손자를 데리고 방문하라는 조건이다. 해당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때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건을 다는 것은 물론이다. 효도계약서는 재산을 물려받고도 자식의 도리를 하지 않는 ‘먹튀 불효자’를 막기 위한 장치이다. 효도계약서에는 내용을 가급적 구체적으로 적는 게 좋다. 다만 자식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증여 재산을 되돌려 받기는 쉽지 않다. 법적 소송이라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강남의 자산가는 “효도계약서를 쓸까 고민했지만 피붙이인 아들을 대상으로 너무 야박한 게 아닌가 싶어 그만 뒀다”고 말했다. 또 효도계약서가 아니면 금융권의 유언대용신탁(예 KB국민은행 안심상속신탁)이나 증여 때 일부 지분 남겨두기를 생각해볼 만하다. 유언대용신탁은 부모 등 피상속인이 신탁계약을 통해 부동산을 비롯한 상속재산을 자식 등 상속인에게 안정적으로 승계할 수 있는 신탁으로 요즘 관심을 갖는 고령자들이 늘고 있다. 또 ‘지분 남겨 두기’는 아들 100% 단독 명의로 등기하기보다 아들의 지분은 80%로 낮추고 대신 부모의 지분 20%를 남겨두는 것이다. 부모 홀대를 차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함부로 팔 수 없도록 일종의 ‘족쇄’ 기능을 한다.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근저당을 설정할 때 공유 지분자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부모가 사망하더라도 부동산 지분 가액이 많지 않아 자식의 상속세 부담도 덜 수 있어 여러모로 효과적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식이 부모를 대하는 태도다. 겉으로는 지분 20% 때문이라고 말은 하지 않지만 자식이 종종 찾아와 깍듯이 모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17.07.02 17:35

7분 소요
패션 모델은 왜 웃지 않을까

산업 일반

패션 위크 시즌이 시작됐다. 런던과 뉴욕, 파리에서 각종 행사가 줄줄이 열린다. 그런 패션쇼는 현장에 직접 가보지 않아도 예측할 수 있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모델들이 미소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일각에서는 이제 모델들도 행복한 표정을 지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하지만 무표정한 얼굴은 그 직업에 요구되는 변치 않는 특성이다.패션업계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은 모델의 무표정한 얼굴에 불만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쥬랜더’’(2001) 같은 영화에서는 화난 듯 뿌루퉁하게 입술을 내민 표정을 선호하는 패션업계의 관행을 비난했다. 패션쇼 무대는 미소를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모델들은 쇼가 끝날 무렵 디자이너가 꽃다발 세례를 받으며 무대 위에 등장할 때는 웃을 수 있지만 쇼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웃어선 안 된다. 패션 잡지에서도 미소는 금물이다. 마치 모델의 식탁 위에 스테이크와 감자 칩이 놓이는 일처럼 희귀한 경우라고 할까?미소가 없는 패션쇼 무대가 마음에 안 드는 또 다른 이유는 너무도 뻔하게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다. 버스나 맛있는 커피를 기다릴 때는 예측이 가능한 게 좋다. 하지만 패션의 본질은 미학의 한계에 도전하고 변화를 위한 변화를 꾀하는 것 아닌가?그런데 왜 우리는 매년 매 시즌 모든 패션쇼에서 똑같이 불행한 표정의 모델들을 봐야 할까? 정말 어리석은 일 아닌가?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패션 모델의 무표정한 얼굴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거기서 과거 역사와의 흥미로운 연관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오늘날의 프로필 사진이나 19세기 명함판 사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옛날 왕가의 초상화에서 드러나는 귀족들의 경멸 섞인 표정이 그것이다.패션 사진은 오래 전부터 오만한 표정을 이용해 왔다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활동한 패션 사진가 호스트 P 호스트의 사진을 생각해 보라). 신분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옷을 제대로 입는 것이 신분 상승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암시다. 이 표정은 기본적으로 “난 당신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누군가와 교류하고 싶을 때 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짓는 활짝 웃는 표정과는 딴판이다.이 오만한 표정은 또 유럽 상류층의 자기절제와 의연함, 냉담함을 나타낸다. 과거 근로계층 사람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세련된 특성이다. 감정의 절제는 세속적인 관심사를 뛰어넘어 좀 더 높은 경지의 지식 추구를 의미하며 현대 사회에서는 확고부동한 의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런 표정은 이론가 어빙 고프먼이 말한 ‘운명적인 상황’(자신과 자신의 존엄성이 큰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는 한층 더 인상적이다. ━ 첨단 패션엔 위험 부담 따라 우리가 침착한 표정의 전투기 조종사나 냉혹한 악당에게 끌리는 이유다. 실제로 고프먼은 감정의 자제보다 신체의 통제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신체의 통제를 통한 차분한 움직임과 고요한 분위기는 매력적인 특성으로 여겨진다.패션쇼 무대의 모델들은 ‘운명적인 상황’에 놓인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사실상 유행의 첨단을 걷는 것은 위험 부담이 매우 높은 일이다.어느 날 출근할 때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입기로 마음먹었다고 상상해 보라. 예를 들면 황금색 점프수트(바지와 상의가 하나로 붙어 있는 여성복) 같은 파격적인 의상 말이다. 매우 불안한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유행에 신경 쓴다. 유행은 어떤 옷을 입는 것이 적절한지 아닌지를 말해주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내 새로운 정체성은 이 ‘새로운’ 스타일이 요즘 유행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그 스타일이 당시의 ‘기준’ 범위에서 벗어날수록 1)고상하다 2)개성 있다 3)분별 있다 등의 평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옷 입는 스타일은 존경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조롱을 자아낼 수도 있다. ━ 개인적 성격 드러내선 안돼 패션 모델은 무대에서 입을 옷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덤덤한 표정은 디자이너의 입장을 대변한다. 감정의 동요가 없고 확신이 있어 보여야 하며 몸을 차분하게 움직이고 두 손과 얼굴 근육을 잘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디자이너를 대신해 일종의 사기극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그들은 개인적인 성격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옷 이외의 요소로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 사실상 옷을 통해 디자이너의 성격이 조명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모델’일 뿐이다. 그들은 또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듯 보여서도 안 된다. 디자이너가 ‘바람직하다’고 제시하는 스타일에 확신이 없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모델이 스스로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의상을 입고 패션쇼 무대 위를 걸어야 할 때는 개인의 존엄성이 위험에 처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 심판대에 오르는 건 디자이너다. 기이한 옷을 입은 모델이 미소를 짓는다면 디자이너의 실수에 당황하거나 재미있어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컬렉션이 실패할 경우엔 디자이너와 패션하우스의 체면뿐 아니라 엄청난 돈을 잃게 된다.따라서 모델은 미소를 지어선 안 된다. 머리 속에선 어떤 생각이 오가든 오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유지해야 한다. 무대에서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버네사 브라운[ 필자 버네사 브라운은 영국 노팅햄 트렌트 대학의 디자인, 시각문화학과 부교수다.

2016.02.22 15:56

4분 소요
예술을 맡아보세요!

산업 일반

첫 후각예술 전시회 여는 챈들러 버, 코를 더 자주 민감하게 사용할 뿐 괴짜는 아니다뉴욕 아트 디자인 박술관(MAD)의 우중충한 회의실. 세계 유일의 후각예술(olfactory art) 큐레이터 챈들러 버가 병을 하나 꺼내와 얇은 종이조각에 액체를 뿌린다. 그러고는 내게 냄새를 맡아보라고 권한다. “어때요?” 그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묻는다. 종이조각에선 향수 같은 냄새가 난다. 10월의 이날 아침에 냄새를 맡아본 다른 모든 종이조각보다 약간 더 코를 쏘는 듯하지만 그래도 향수다. 아니면 화장비누일까(fancy soap).틀렸다. 버는 희미한 장미 냄새뿐 아니라 금속과 피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플로싱을 할 때 때때로 피가 나는데 그 맛이 싫다. 끔찍하다.”그 향은 오 드 프로텍숑(Eau de protection)으로 불린다고 버가 설명했다. “모든 형태의 예술을 통틀어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환상적인 작품 중 하나다.” 작품은 “한 여성의 초상화”로 구상됐다. “너무나 아름다워 피 속에 장미가 흐르는 여자다. 한 남자가 금속칼을 들고 다가와 그녀의 심장 깊숙이 찔러넣는다. 칼날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녀의 피냄새가 퍼져나간다.”그는 또 다른 냄새를 맡아보라고 권한다. 이번에는 장미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하지만 금속 향은 없다. 아니, 쇠의 떫은 향이 살짝 묻어나는 듯도 하다(maybe a touch of steely astringency). 피 냄새는 분명 없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향수다. 여느 향수와는 좀 다르지만 말이다. “희한하죠! 이상하죠!” 버가 단언한다. “이 냄새를 맡을 때 머리 속에 알람 벨이 울리지 않는다면(If an alarm bell does not go off) 신경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아니면 그냥 향기에 문외한일지도 모른다(you’re just an untutored philistine of fragrance). 향수 제조자가 가령 종합적 입체주의와 분석적 입체주의(synthetic and analytic cubism)를 구분하지 못하듯이 향기의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impervious to scent’s subtleties) 사람 말이다.버의 첫 전시회(아니, 첫 ‘후각 감상회’라고 해야 하나?)가 지난 11월 13일 MAD에서 열렸다. 후각예술의 선구자인 그는 전시회를 앞두고 명백한 난제에 맞닥뜨렸다. 후각이 발달하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자신처럼 예민하게 냄새를 포착할 수 있게 만드느냐는 점이다. 아무리 열렬한 탐미주의자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향기 예술(The Art of Scent): 1889-2012’ 전시회에서 버는 관람객들에게 향기 역사의 12가지 하이라이트를 소개한다. 미세한 연무처럼 향수를 뿜어내는 방사 기술을 이용했다(thanks to diffusion technology that releases perfume in minute puffs). 하지만 관람객 중 그 예술형태의 미세한 차이점을 식별할 줄 아는(recognize the art form’s finer points)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불확실하다.할리 하치너 관장이 이끄는 MAD는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예술을 전문으로 한다. 온갖 종류의 공예와 디자인, 미술의 가교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녀조차도 자신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회를 도박으로 여긴다. “아마도 이번 전시회가 가장 파격적인 실험인 듯하다(is probably as far afield as we’ve gone). 사람들이 코를 이용해 작품을 감상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는 한 콧구멍씩 그런 인식을 바꿔나갈 작정이다(is determined to change that nostril by nostril). 사람은 한번에 하나의 콧구멍으로만 냄새를 맡는다고(we only smell through one at a time) 그는 말한다.버는 항상 “그림은 그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그러던 중 우연히 어느 예술감정가(a connoisseur)를 만났다. 그는 감식안이 있으면 반 고흐의 그림 한 점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는지 버에게 보여줬다(showed him how much a trained eye could unpack from a single van Gogh). “그가 그림에서 나보다 100배나 많은 걸 읽어냈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다”고 버가 말했다. “냄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 같은 향수 전문가가 더 뛰어난 코를 갖고 태어난 “생물학적 돌연변이(biological freak)”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미술 평론가라고 해서 원래부터 더 뛰어난 안목을 타고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단지 후각을 더 자주 그리고 더 주의 깊게 사용할 뿐이다.“모든 지식은 비교를 토대로 한다(All knowledge is based on comparison)”고 버가 말했다. 그가 한때 파리에서 배웠던 한 교수의 말이다. 그는 흠잡을 데 없는 프랑스어로 그 경구를 되뇌인다. 전화 통화를 엿들으니 이탈리아어 실력도 그에 못지않다. 스페인어도 유창하게 구사한다(그의 파트너는 히스패닉계다). 일본에서 교사생활을 해서 일본어에도 능하다고 한다. “덧셈은 잘 못해도 3개월 정도면 언어 하나를 마스터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또한 자신이 찾아갔던 각각의 장소를 냄새로 기억한다고 한다.48세의 버는 키가 182cm를 넘는 우람한 체격이다. 숱이 적어진 갈색 머리에 고급 사립학교 출신의 귀공자 같은 옷차림이다(with thinning brown hair and standard preppy clothes). 보트 슈즈와 카키색 바지, 그리고 잘 다려진 격자무늬 셔츠를 입었다. 뉴스 마니아라면 지난해 그가 CNN에 출연했을 때를 기억할지 모른다. 버는 콜롬비아 아동 두 명을 입양했다. 그런데 그가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콜롬비아 정부가 입양을 무효화하려 했던 일이다(법정투쟁에서 승리한 버는 현재 뉴저지에서 아이들과 함께 산다). 버는 명민한 두뇌의 소유자로 어떤 화제가 나오든 빠르고 막힘 없이 길게 이야기한다(has an agile mind and talks long, fast, and well about whatever comes up). 다만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좀처럼 끝낼 줄 모른다는(there’s not much sign of an off switch) 점이 문제다. 어쩌면 그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의 냄새, 아니 그에게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향수를 전혀 뿌리지 않는다”며 일할 때 생기는 향기로도 충분하다고 설명한다.버는 베르트랑 뒤쇼푸르의 작품으로 내 후각 훈련을 시작한다. 뒤쇼푸르는 “사상 최고의 후각 예술가 중 한 명이며 분명 오늘날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바로 ‘시엔 리베르(겨울의 시에나)’라는 작품이다. 버는 말들의 열기와 가죽, 지푸라기, 향긋한 이탈리아 흰송로버섯, 그리고 고대 돌들의 냄새를 식별해 보라고 내게 요구한다. “고대의 차가운 돌들 … 미네랄 냄새뿐 아니라 그 차가운 느낌까지.” 여느때처럼 향수 냄새가 난다. 하지만 다소 차가운 느낌의 향수일지도 모르겠다. “이 냄새에는 햇빛, 봄, 식물, 활짝 핀 꽃들이 없다”고 버가 말한다. 향수 냄새가 미치는 범위 안에 일반적인 꽃 향기가 없는 건 사실이다.버는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받은 인상을 표현한 뒤쇼푸르의 이 작품이 “자신이 맡아 본 향기 중 가장 세련되고 기술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른 사실주의 작품 중 하나(one of the most accomplished, technically virtuosic realist works I’ve ever smelled)”라고 단언한다. 그는 또한 10여년 전 후각예술의 세계에 빠져들기 전이었다면 그것을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버는 시카고 인근에서 태어났지만 워싱턴 DC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부동산업에 종사했다. 그는 일가친지의 향수 가게에 일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버는 그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 분이 완구나 자동차를 취급했다면 나도 그런 품목을 판매했을 것이다.”버는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비즈니스와 과학 분야의 취재 기자로 한동안 일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후각 전문가를 만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향기 전도사가 됐다. 저서로 후각 과학자 뤼카 튀랑에 관한 ‘향기의 황제(The Emperor of Scent)’와 향수 두 종의 제조 및 판매를 다룬 책이 있다. 2006년 버는 최초의 뉴욕타임스 ‘향수평론가’가 됐다. 2010년 말 하치너 MAD 관장이 그의 권유를 받아들여 미술관에 후각관을 설치하자 평론가 일을 그만뒀다.버는 샤넬 넘버5가 뿌려진 지팡이를 내게 건넨다. 1921년에 출시된 향수다. 그는 그것을 가리켜 “향수를 근본적이고 극적으로 바꿔놓은 혁명적인 예술작품”이라고 표현한다. 버는 샤넬 넘버5가 실제로 “향수 같다(perfumy)”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제품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 뒤에 나온 수많은 향수의 모델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샤넬 넘버5는 알데히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향수였다고 그는 설명한다. 알데히드는 자연에는 유사한 냄새가 거의 없는 합성분자다(synthetic molecules that barely have smell-cousins in nature).여기서 버 특유의 이론이 나온다. 인공적인 향을 포함하는 향수만이 가치 있는 예술작품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자연발생적인 성분으로만 이뤄진 초창기 향수를 “공예품(artisanal products)”으로 평가절하한다. 향수가 진가를 인정받은(came into its own) 때는 1884년 이후라고 그는 말한다. 당시 새롭게 합성된 향기분자가 포함된 푸제르 루아얄(“사상 최초의 후각예술 작품”)이라는 신제품이 나왔다.예술로 인정받으려면 “인공적이어야 한다(a thing must be artificial). 완전히 자연으로만 예술을 창작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버는 단언한다. 물감재료를 모두 자연에서 얻은 중세 거장들은 의외로 받아들일 성싶다. 버는 독학으로 예술에서 발견한 기법을 화학자가 생각하는 인공의 개념과 융합해 새로운 미학 이론을 만들어낸 듯하다(seems to have conflated the artifice found in art with a chemist’s idea of the artificial). 그리고 이제 그 융합이론을 세상에 전파할 작정이다.버의 전시회에 푸제르 루아얄은 출품되지 않는다. 더 이상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전시장에선 지키(Jicky)라는 향수가 뿌려진다. 푸제르보다 5년 늦게 출시됐으며 아직도 “후각 낭만주의의 최고 걸작품 중 하나(one of the greatest works of olfactory romanticism)”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들인 외젠 들라크루아와 테오도르 제리코, 그리고 영국 낭만주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 떠오른다. 지키는 말하지 않고 냄새로 존재를 알린다(doesn’t speak, it proclaims).” 지키는 적어도 MAD관장에게는 확실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녀는 그 냄새를 맡자마자 자신의 향수를 지키로 바꿨다.‘향기 예술: 1889-2012’에선 현대의 하이라이트로 ‘자스맹 에 시가레트(Jasmin et Cigarette)’라는 향수가 언급된다. 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21세기의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 사물을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예술 기법)”이다. 어느 정도는 그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싸구려 재스민 향수를 뿌리고 담배를 피우는 프랑스 여성”의 냄새를 맡아 봤다. 앞서 언급했던 칼날에 흐르는 피 냄새 향수와 이 향수의 개발자는 앙트완 리와 앙트완 메종디외다. 그들이 “담뱃재 냄새를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해 냈다(the most f--king lifelike representation of cigarette ashes)”는 버의 말이 맞는 듯하다. 담배연기 자체의 손쉬운 향기가 아니라 재털이 속 꽁초의 떨떠름한 냄새 말이다(the sour smell of butts in an ashtray).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맡은 향기는 여전히 이런 마법을 부리는 ‘향수’로 인식될 수 있다. 변함없이 근사한 향수병에 어울린다는 뜻이다.몇 시간 동안 냄새를 맡고 버로부터 장시간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체험 할 만한 범위가 몇몇 다른 예술형태보다 너무 좁지 않나 싶다. 모든 시각예술은 감정, 그리고 세상에 대한 모호한 시사가 전부인 표현주의적 추상에 국한된 듯하다. 여전히 향수의 미학을 지배하는 구식의 감각적 모델을 따르는 그림들 말이다(paintings that buy into the old-fashioned sensual model that still rules the aesthetics of perfume). 하지만 물론 미술은 콘텐트로 충만할 수 있다. 예술가들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에 관해 직접으로 힘차게 표현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드로잉이나 페인팅 또는 사진촬영 아니면 영화나 동영상, 설치작품 등의 형태로 말이다. 그들은 극도로 추잡하거나 대단히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낼 수도 있다(can go for the wildly scatological or the emphatically political). 본능에 어필하거나 우리의 가장 추상적인 정신능력에 호소하는 체험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can craft experiences that work below the belt or speak to our most abstract mental capacities).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분노와 혐오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반면 대다수 향수 제조자는 적게든 많게든 기본적으로 향수 냄새 풍기는 값비싼 상품을 만들어낸다.후각예술은 “철저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상업적 이해의 노예가 됐다(completely and aggressively and successfully colonized by commercial interests)”고 버는 시인한다. 화장품업계는 근사한 병에 약간의 액체를 담아 유명인의 이름을 붙였다. 그럼으로써 명성을 상품화하는 지름길에 이르렀다고 버는 말한다(공교롭게도 화장품업계는 그의 최대 돈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향수 제조자가 만들어낸 작품은 “지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엄청난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낸다(have a huge intellectual impact and generate an immense emotional reaction)”고 그는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든 영혼의 생각, 욕구, 편견, 어리석음, 꿈, 소망, 탁월함과 소통한다.”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냄새 하나만으로 이 모두를 읽어내기는 더 어렵다는 점 또한 부인하지 못한다. 버에 따르면 냄새는 두뇌의 가장 원시적인 부위에서 처리된다. 더 분명하게 콘텐트로 채워진 예술형태와는 관련 부위가 다르다.버의 첫 전시회 그리고 그의 생각은 흔히 말하는 “좋은 향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그를 잘 구슬리면 다른 종류의 최신 후각문화에 관해서도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향기를 뿜어내는 조각도 있다고 한다. 개념미술에 가까운 향수 제조자의 작품들은 몸에 뿌리기보다 수집품으로 더 어울릴 듯하다. 냄새가 없는 후각예술(nonaromatic nose art)에 관해서도 논한다. 미에 관한 미술적 판단을 거부하는 마르셀 뒤샹의 비시각적 시각미술론(the non-retinal visual art)을 모델로 삼았다. 세탁비누, 베이비 파우더, 신차 등 우리가 매일 생활 속에서 접하는 갖가지 ‘후각적 이정표(olfactory landmarks)’ 이야기도 있다. “모두 예술가들이 합성했다”고 버가 말했다. 다만 그들의 이름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선크림 코퍼톤(Coppertone)의 향은 기막히게 잘 만들어지고 아름답게 합성됐다. 디자인 작품으로 부르든 뭐라 부르든 하나의 작은 예술작품이다(Call it a work of design—call it what you will—it is a minor work of art).”

2012.11.29 16:04

9분 소요
신4당 출범으로 진보-보수 격돌 예고

산업 일반

한국의 정치권은 이념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정당간 이념 격차는 뚜렷해지고 스스로 보수로 규정하는 국민이 많아지고 있다. 참여정부 등장 이후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이념 지형의 변화다. 열린우리당의 출범으로 정치권에 신 4당체제가 형성된 이후 정당간 이념 성향은 지난해에 비해 훨씬 더 큰 편차를 보여주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선명한 진보적 색채를 보여주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온건진보, 한나라당은 온건보수, 자민련은 보수적 색채를 띠는 것으로 확연히 나뉘고 있다. 지난해 진보적 성향을 띠었던 민주당은 소속 의원들이 대거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함으로써 자동적으로 보수색이 강화됐다. 이같은 결과는 최근 뉴스위크 한국판이 실시한 ‘2003년 의원·국민 정책이념 좌표조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조사는 2002년 1월 중앙일보가 실시한 이념 조사를 바탕으로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의 이념 지형 변화를 알아보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됐다. 조사는 10월 24일부터 11월 5일까지 2주간에 걸쳐 진행됐다. 조사는 0을 가장 진보, 5를 중도, 10을 가장 보수로 두고 정치·경제·사회 등 주요 이슈 15개에 대한 응답자의 태도를 측정해 정치이념지수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비교 조사를 위해 2002년 중앙일보 조사 당시 사용한 문항 11개를 그대로 재조사 문항으로 채택했다. 당시 문항은 정치분야(외교안보·국가보안법·대북지원), 경제분야(재벌규제·집단소송제), 사회분야(복지정책·환경정책·고교평준화·호주제 등) 10개 현안으로 구성돼 있었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이번 조사에서 중앙일보에서 만든 기존 설문 이외에 현안인 이라크 파병, 노조의 경영참여 문제를 비롯해 이중국적, 기업과 은행의 해외 매각 등 네개의 문항을 더 추가했다. 이중 이중국적과 기업 해외 매각문제는 이념과는 또 다른 척도인 ‘세계화’에 대한 입장을 측정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의원 대상 조사와 일반 국민 대상 조사는 같은 문항을 가지고 동시에 실시됐다. 의원과 국민간의 입장차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조사에 참여한 의원은 전체 의원 2백72명 중 2백8명으로 전체 의원의 76%가 응답했다. 의원 조사는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들의 1 대 1 면접 조사로 실시됐고, 국민 조사는 여론 조사 전문기관인 중앙일보 MMR가 국민 2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의원 조사 결과 한나라당은 5.2로 중도에 가까웠고, 민주당은 4.2로 중도진보적 성향이 강했다. 열린우리당은 3.2로 강한 진보 성향을 보였고 자민련은 6.1로 보수색채가 강했다. 조사에 참여한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열린우리당의 등장으로 4당간 이념 차이가 분명해지고, 정치분야만이 아니라 다른 주요 정책분야에서 정당간 격차가 확인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정치권의 이념적 재편 못지 않게 관심을 끄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 등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대한 태도다. 세계화에 대한 각 당의 입장은 조사 결과 한나라당이 가장 폐쇄적인 입장을 보여준 반면 열린우리당이 가장 개방적 태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의원들에 비해 국민은 세계화에 대해 훨씬 더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국민의 평균적인 이념 성향은 지난해 4.5에서 올해 4.7로 다소 보수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국민 스스로 자신이 보수화됐다는 답변은 더 많았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조사기획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들은 “북핵 위기가 계속되는 데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노조파업, 송두율 교수 사건 등이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분석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것도 국민의식의 변화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이념적 재편과 함께 한국 사회는 보수색채가 표면화되고 있음이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2003.11.13 16:51

3분 소요
4당4색 경제 · 사회 분야에서도 뚜렷

산업 일반

뉴스위크 한국판이 11월 국회의원 2백8명을 상대로 한 실명 설문조사결과 한국의 주요 정당들이 전반적인 이념적 분화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됐다. 이는 한국 사회 비주류 진영의 지원을 받아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출범과 진보적 개혁노선을 표방하는 열린우리당의 탄생이 보수 성향 일색이던 제도 정치권을 뒤흔든 결과로 해석된다. 2003년도 설문조사에서 주요 정당의 이념적 정체성 평균치는 1~10 척도(0:가장 진보, 5:중도, 10:가장 보수)를 기준으로 열린우리당이 3.2, 민주당이 4.2, 한나라당이 5.2, 자민련이 6.1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4당의 이념적 차이가 뚜렷해진 것이다. 지난해 중앙일보가 국회의원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열린우리당과 분리되기 전의 민주당이 3.7, 한나라당이 5.3, 자민련이 5.9를 나타냈다. 이때도 3당의 노선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의원 성향의 변천을 정밀하게 비교하기 위해 10개 정책 이슈에 대해 지난해와 동일한 설문내용을 의원들에게 제시했으며, 그 결과 정당의 이념적 분화가 가시화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의 헤쳐모여로 인해 각 정당이 자기 색채를 더욱 뚜렷이하면서 이념적 좌표상에서 각기 고유한 영역을 차지하게 됐음을 알 수 있다. 또 지난해에 이어 열린우리당에서 자민련으로 갈수록 진보성은 옅어지고 보수성이 짙어지는 ‘4당 4색’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연 경남대 교수는 이같은 정당의 분화 추세에 대해 “이념의 다극화는 사회민주화의 징표”라면서 “지역주의가 약화되면 정책적으로 차별성을 갖는 정당의 출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각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평가하는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에서도 이같은 경향은 두드러진다. 자신의 이념적 성향이 0(가장 진보)에서 10(가장 보수)중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묻는 설문에 열린우리당 의원의 21%만이 자신을 중도 내지 보수 성향이라고 규정했을 뿐 나머지 79%는 진보 성향의 소유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자민련의 경우 응답자 전원이 중도(66.7%) 또는 보수 성향(33.3%)으로 답해 열린우리당과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한나라당 역시 중도(37%) 내지는 보수 성향(40.3%) 의원들이 다수를 점했으나 민주당은 보수 성향의원(11.6%)보다는 진보 성향의 의원이(55.8%) 더 많았다. 지난해와 동일하게 제시된 10개 항목의 설문에서 밝혀진 전체 의원의 정책 이념 성향 평균은 4.6을 기록, 지난해 4.7과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10개 정책 이슈 중에서는 환경분야에서만 의원들의 이념 성향 평균이 지난해 3.9에서 올해 4.7로 급격하게 보수화하는 경향을 보였을 뿐 나머지 9개 정책 이슈에서는 현상을 유지하거나 미세하나마 조금씩 진보적 성향을 강화했다. 외교안보(5.5→5.3), 국가보안법(4.6→4.4), 대북지원(4.4→4.0), 재벌규제(5.8→5.7), 고교평준화(5.1→4.9) 등이 그 예다. ■정치분야 4당의 이념적 편차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외교안보·국가보안법·대북지원 등의 정치분야다. 이들 3개 항목을 묶어 정당별 성향을 분류했을 때 전체 의원들의 이념 평점은 4.6이었으나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이념 평점은 각각 2.8, 3.5로 다른 정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다. 반면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정치분야 이념 평점은 각각 5.5, 5.7에 달해 대미외교·국가안보·대북관계에 보수적인 자세임을 알 수 있다. 정당간 입장이 가장 극명하게 대립하는 항목은 대북지원분야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공히 전체 10개 항목 중 가장 진보적 평점인 1.5와 1.9를 대북지원분야에 주면서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데 반해 한나라당은 이 항목에서 자신들의 정치분야 평균인 5.5보다 높은 5.6을 기록했다. 게다가 설문에 응한 한나라당 의원 3명 중 2명꼴로 “현재보다 규모를 줄여 인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대북지원 축소를 희망했다. 이는 앞으로도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보수진영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나라당의 지속적인 견제에 직면할 것임을 시사하는 결과다. 국민여론조사에서도 “현재보다 규모를 줄여 인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44.2%)는 응답이 “현 수준에서 지속”(24.6%), “더욱 확대”(13.9%) 응답보다 많은 것으로 나와 대북지원에 대한 사회 전반의 여론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안보정책과 관련해서는 참여정부와 사실상의 여당인 열린우리당 사이에 미묘한 입장차가 노출됐다. 참여정부는 미국과의 동맹관계 유지·발전에 적극적인데 반해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76.3%는 “미국 중심의 외교안보정책을 탈피해 다변화된 외교”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한나라당 의원 10명 중 6명이 “전통적인 한·미동맹 관계 복원”을 선호해 대미정책과 관련해서는 여야가 뒤바뀐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대미외교와 관련해서는 “다른 국제 문제에까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 유지에 더욱 협력해야 한다”는 응답도 33.3%(자민련), 8.4%(한나라당), 2.3%(민주당)가량 나왔으나 열린우리당에서는 단 한명도 이를 택하지 않았다. 이와는 별개로 국민들은 “전통적인 한·미동맹 관계 복원”(29.3%)보다는 “미국 중심의 외교안보정책에서 탈피해 다변화된 외교”(42.5%)에 긍정적인 것으로 조사돼 눈길을 모았다. 뉴스위크 한국판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기획위원들은 국가보안법 개폐에 대한 국내 여론이 최근 한국 사회에 ‘경계인’ 논쟁을 불러온 송두율 교수의 귀국 및 구속으로 인해 보수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설문조사 결과 의원들과 국민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의원들이 국보법 문제에 진보적으로 반응한데 반해 설문조사에 응한 국민들은 국보법에 관한 한 확연한 보수로 돌아서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지난해 국보법에 대한 의원들의 이념 평점이 4.6이었던 비해 올해는 4.4로 진보색이 강해졌다. 한나라당의 경우 “현행 유지”와 “법개정” 비율이 52.1% 대 44.5%로 호각세에 근접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지난해 설문조사에 응한 국민들의 국보법 이념 평점은 5.1이었으나 올해는 5.7로 보수주의적 성향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경제분야 정국이 신 4당체제로 전환하면서 각 정당은 경제분야에서도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종전까지는 정당간 이념 편차가 주로 정치·사회 쟁점에 대한 태도에서 확인되곤 했으나 지금은 경제분야에서도 그러한 차이를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게 됐다. 재벌규제만 해도 지난해 조사에서는 자민련이 6.7, 한나라당이 6.4, 민주당이 5.1의 평점으로 대체적으로 보수적인 편이었으나 올해 조사에서는 자민련 7.2, 한나라당 6.1, 민주당 5.4, 열린우리당 4.4를 나타내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한나라당의 73.9%, 자민련의 83.3%가 “상호지급보증과 불공정거래에 대한 규제를 제외한 나머지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에 맞서 열린우리당의 52.6%와 민주당의 44.2%는 “현행 규제의 골격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밝혀 재벌 규제에 대한 지지여론도 만만치 않음을 과시했다. 특히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아예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35.6%)가 “상호지급보증과 불공정거래에 대한 규제를 제외한 나머지 규제를 풀어야 한다”(31.2%)와 “현행 유지”(12.3%)를 앞질렀다. 재벌정책을 놓고서는 정치권이 국민여론에 뒤처져 있는 셈이다. 집단소송제 도입은 한나라당 4.5, 민주당 3.8, 열린우리당 3.0, 자민련 6.1로 나타났다. 자민련을 제외하고는 진보적 입장인 셈이다. 한나라당의 이념 평점 4.5는 10개 항목에 대한 한나라당 평점 중 사형제 항목 다음으로 진보적인 수치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의 61.3%, 민주당의 79.1%, 열린우리당의 78.9%가 ‘적용 대상과 범위에 신중을 기한다’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집단소송제 도입에 찬성하고 나섰다. 증권시장이 질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시장의 공정성이 관건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로 분석된다. 자민련만이 “집단소송제가 아닌 사외이사 등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83.3%)고 반대 입장을 개진했다. 국민여론은 3.5로 진보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새로운 항목으로 포함된 노조의 경영참여문제에 대해서는 한나라당(7.1)과 자민련(8.3)은 전체 설문항목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면모를 나타냈다. 한나라당 34.5%와 자민련 66.7%의 의원들이 “노조의 경영참여를 허용할 수 없다”고 못을 박은데 이어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 등 대부분의 기업에는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각각 42%(한나라당), 16.7%(자민련)에 달하는 등 극히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각기 51.2%와 65.8%의 의원들이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을 증진시키는 부분에 한해 허용해야 한다”며 국민여론(이념 평점 4.8)에 눈높이를 맞췄다. 이에 대해 심지연 경남대 교수는 “한나라당은 국민 정서와 괴리가 커서 재벌당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사회분야 사회분야에 대한 문항은 복지정책·환경정책·고교평준화·호주제·사형제 등 5개 문항으로 구성됐다. 이 분야의 의원 전체 평점은 4.6이었으나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각각 4.9, 6.2로 다른 정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고 민주당은 4.6, 열린우리당은 3.3으로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다. 정당간 격차는 최근 들어 논란이 커지고 있는 고교평준화와 관련된 설문이었다.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한 호주제 폐지법안에 대해서도 정당간 격차가 커 향후 이 법안의 국회 처리를 두고 정당간 논란이 확산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환경정책에 대해서는 정당간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아 환경 이슈가 다른 이슈에 비해 탈정치적인 쟁점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고교평준화에 대해 조사에 참여한 의원들 중 51.4%가 “능력별 수업 실시 등 평준화문제 보완”에 답했고, 33.2%가 “자립형 사립고가 별도로 학생 선발” 항목을 택했다. 이런 의원 전체 성향과 달리 한나라당 의원들 중 51.3%, 자민련은 조사 참여의원 모두가 “평준화 전면 철폐” 혹은 “자립형 사립고로 학생 선발”을 택해 다른 정당보다 보수적 견해를 보여줬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에서는 평준화의 문제점을 보완하자는 의견이 많았고, 열린우리당의 경우 10.5%의 의원들이 “현행 평준화 유지”에 응답해 다른 정당에 비해 진보적 답변이 많았다. 고교평준화에 대한 의원 평균은 4.94로 다소 진보(평준화 유지)에 기울었다. 호주제 역시 정당간 견해차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항목이었다. 하지만 개정을 포함한 폐지쪽에 조사에 참여한 의원의 53.4%가 동의하고 있어 향후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민법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원 전체 평균이 5.1로 나타났으나 한나라당은 5.6으로 열린우리당의 3.1에 비해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소속 의원의 평균 연령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민련은 6.6으로 예상대로 호주제문제에서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한나라당은 전체적으로는 다소 보수적인 견해를 보였으나 “재혼시 자녀가 새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에 45.4%가 답해 온건진보적인 견해도 적지 않았다. 민주당은 온건진보적인 견해와 “남편 사망시 부인이 1순위로 호주를 승계해야 한다”는 온건보수적인 답변이 모두 34.9%로 견해가 팽팽히 맞섰다. 열린우리당은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는 답변에 28.9%가 답해 다른 정당에 비해 진보적 견해가 많았다. 의원 전체적으로는 “재혼시 자녀가 새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는 진보적 의견이 43.8%로 가장 높았고, “완전 폐지” 의견도 9.6%나 나왔다. 복지정책에 대해 자민련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현행 복지 수준이 미흡하므로 다른 분야의 예산을 줄이더라도 복지예산을 어느 정도 증액해야 한다”는 답변에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의원 전체 평균은 4.4로 다소 진보 성향을 띠었으나 한나라당은 4.8로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고 열린우리당은 3.4로 강한 진보 성향을 보여줬다. 지난해에 민주당 4.3, 한나라당 5.0, 자민련 5.2 등으로 정당별로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변화다. 가장 진보 성향을 띠고 있는 열린우리당이 다른 정당보다 사회민주주의적인 정책에 근접해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사형제는 사회분야의 평가항목 중 가장 진보적인 성향이 나타난 항목이다. 이 항목에서 정당 전체의 평균은 3.7로, 조사 참여의원의 50%가 “반인륜적 범죄를 제외하고 폐지해야 한다”고 진보적 입장을 취했다. 자민련만이 5.5로 보수 성향에 기울었다. 정당간 격차도 두드러져 ‘인권’에 대한 시각이 정당별로 다르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2.1로 진보적인 성향을 나타내 47.4%가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여줬다. 환경문제에서는 자민련을 제외한 나머지 3당간 격차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한나라·민주·열린우리당 모두 “경제성장과 환경보호 충돌시 환경보호에 우선해야 한다”는 답변에 가장 높은 응답률을 나타냈다. ■세계화-민족주의 한국의 정당은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을까. 뉴스위크 한국판은 이번 조사에서 이념과는 또 다른 균열축인 ‘세계화와 민족주의’에 대한 입장을 확인해보기 위해 두가지 설문을 새롭게 추가해 조사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세계화가 증대되고 정보화사회가 도래하면서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라는 기존의 이분법으로는 현실의 이념 지형을 담아낼 수 없다”고 말했다. 기존의 진보-보수라는 축 외에 세계화-민족주의라는 분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이중국적 허용 여부’, ‘기업과 은행의 해외 매각’두가지 문항으로 조사가 실시됐다(74쪽 설문문항 참조). 이중국적에 관한 항목의 경우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답변을 세계화의 흐름에 가장 부정적인 답변으로, “전면 허용해야 한다”는 답변을 가장 개방적인 것으로 제시했다. 경제적 세계화에 대한 입장을 묻기 위한 ‘기업과 은행의 해외 매각문제’에 대해서는 “국내 자본을 위해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답변을 가장 폐쇄적인 입장으로, “경제적 세계화에 발맞춰 허용해야 한다”는 답변을 가장 개방적 입장으로 제시했다. 조사에 참여한 의원들은 이중국적 허용 여부에 대해 “개인의 상황에 따라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답변에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여 비교적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자민련을 제외한 3당 가운데 한나라당이 4.6으로 가장 폐쇄적 입장을 보인 반면 열린우리당은 3.5로 가장 개방적 태도를 보여줬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중간에 위치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한나라당 입장이 각 스펙트럼상에 고르게 퍼져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다른 정당보다 많은 13.4%의 의원들이 가장 폐쇄적인 항목을 택했지만, 적지 않은 의원들이 가장 개방적인 입장을 택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기업과 은행의 해외 매각에 대한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응답했다. 한나라당은 이 항목에서도 평점 3.6으로 똑같이 3.0을 받은 민주당·열린우리당보다는 폐쇄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경제상황을 고려해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69.7%로 가장 높았으나 “경제상황을 고려해 당분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15.1%), “경제의 세계화에 발맞춰 허용해야 한다”(10.1%)는 의견도 많아 다른 당에 비해 의원들의 성향이 비교적 다양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압도적인 다수 의원들이 기업과 은행의 해외 매각에 대해 ‘제한적 허용’과 ‘전면 허용’에 답했다. 구여당인 민주당과 사실상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경제적 세계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김호기 교수는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이 경제적 세계화를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었고, 노무현 정부 역시 DJ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고 있다는 평가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라크 파병문제에 관한 정당간 견해도 크게 엇갈렸다. 조사에 참여한 의원들의 48.1%가 ‘비전투병 파병’에 응답했지만, 한나라당은 “제한된 규모의 전투병을 보내야 한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최근 ‘비전투병 파병’을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는 열린우리당의 경우 소속 의원들 71.1%가 당론과 같은 의사를 나타냈다. 이같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선택은 최근 ‘비전투병 파병’으로 기울고 있는 정부 내의 기류 변화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사에 참여한 의원의 5.8%가 “미국이 원하는 규모의 전투병을 보내야 한다”고 답변했고, 30.8%의 의원들이 “제한된 규모의 전투병을 보내야 한다”고 응답했다. “한국군을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답변은 6.3%에 불과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기획위원들은 한국 정당이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 분화가 진행되면서 민족주의와 세계화라는 또 다른 축을 중심으로 한 분화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진보-보수와 세계화-민족주의라는 두 축을 통해 각 정당 소속 의원들의 분포(표 참조)를 살펴보면 이런 현상을 쉽게 알 수 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진보-민족주의 성향에 집중돼 있는 반면 민주당은 보수-민족주의 축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한나라당은 보수축으로 기운 가운데 민족주의와 세계화 양축으로 고르게 퍼져 있다. 이를 중심으로 본다면 열린우리당은 진보-민족주의에 가깝고, 민주당은 보수-민족주의 성향, 한나라당은 보수-민족주의와 보수-세계화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기획위원들은 보수-민족주의가 박정희 대통령식 민족주의 모델에 가깝고, 보수-세계화 성향이 신자유주의적 성향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의원들의 분포도 주목할 만하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분포 범위가 비교적 다른 정당 의원들에 비해 좁은 편이고, 민주당 의원들이 조금 더 넓게 퍼져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가장 폭넓은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 간의 시각차가 그만큼 크고 다양한 성향의 의원들이 집결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조정무(1.7)·서상섭(2.0)·전재희(2.9)·장광근(3.0) 의원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평균(3.2)보다 더 진보적이지만 같은 당 이해구(7.0)·김용갑(7.3)·신현태(7.6) 의원은 가장 보수적 정당인 자민련의 평균(6.1)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다. 최병렬 대표체제 출범 이후 한나라당에서 불협화음이 자주 발생하는 것도 이같은 상반된 성향의 의원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신 4당체제에서 정당간 이념 격차는 더욱 뚜렷해졌다. 총선을 불과 5개월여 앞두고 있는 지금 이같은 정당간 이념 격차가 실제 선거에서 어떻게 반영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03.11.1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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