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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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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에 있는 외딴 섬 ‘학소도’를 아시나요 [E-BOOK]

‘실제로는 광화문에서 자동차로 10분, 지하철로 세 정거장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는데, 마치 어느 깊은 산골 혹은 서울 한복판에 떠 있는 작은 무인도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복잡했던 머리와 마음이 평온을 되찾으면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서울에 있는 나의 섬 학소도 중에서)인왕산 자락에 있는 서울 홍제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있는 놀이터 부근에 조그마한 문이 있다. 한 번이라도 이용한 적이 없다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눈에 띄지 않는 출입구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60여 년이 된 옥상이 있는 1층 집이 하나 나온다.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출입구를 제외하면 1층 집 집 주위는 아파트 단지를 구분하는 외벽이 둘러싸여 있어서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 출입구가 없다면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는 외딴섬 같은 집이다. 그곳이 서울 도심에 있는 집 ‘학소도’다. 뜻을 풀이하면 ‘학의 둥지가 있는 섬’이다. 3개 국어 유창한 자유인…운명처럼 고향 집에 돌아와겨울 철새 학이 겨울에만 머물고 봄이 되면 중국, 일본 등지로 떠나는 것처럼 이 집의 주인 최범석씨 역시 인생의 1/3을 해외에서 보냈다. 나이 서른 초반에 쓰러져 가는 집에 들어가 20여 년 동안 다양한 사람과 자연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그는 한때는 여행가, 한때 스포츠 에이전시 대표, 지금은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자유인’이라고 떠올린다.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까지 마치고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독일로 넘어간 후 미국·프랑스·스위스 등에서 학업을 마치느라 해외에서 15년 정도를 보냈다. 미국 버클리대에서 국제정치학·경제학·독문학을 공부했고, 서울대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대 말 33일간의 대륙횡단 열차 여행의 경험을 기록한 ‘반더루스트, 영원한 자유의 이름’이라는 책은 그의 인생철학을 엿보게 한다. 나이 서른이 되기 전에 이미 70여 개 나라를 배낭 하나 메고 구석 구석 돌았다고 하니 그의 방랑벽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유롭게 살던 그가 아무도 신경 쓰지 못하던 쓰러져 가던 고향 집을 떠올린 것은 운명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생전 직접 지었던 집으로 12살까지 살았지만, 해외에 나가면서 가족 누구도 그 집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어느 겨울 침낭과, 두꺼운 옷 몇 가지, 커피 물과 라면을 끓일 수 있는 냄비와 부스터, 그리고 책 몇 권과 노트북만 챙겨서 학소도로 돌아갔다. 현관문과 창문이 다 깨지고 전등도 나가 있는 폐가였던 학소도로 들어가 30여 년 동안의 변화를 기록한 게 ‘서울에 있는 나의 섬 학소도’다. 서른 초반에 2002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에 합류하고, 월드컵을 계기로 차범근·차두리 부자가 소속되어 있던 스포츠 에이전시 설립을 하면서 한국에 터를 잡은 것도 학소도에 생기를 불러일으킨 계기가 됐다. 학소도는 방이 세 개, 거실, 부엌, 화장실 등의 구조를 가진 30평대의 평범한 단독주택이다. 이 집이 특이한 것은 집터 구조 덕분이다. 100평이 조금 넘는 대지가 절반으로 나뉘어 있는데 앞뜰과 옥상과 같은 높이에 뒤뜰이 마련된 것이다. 텃밭과 유실수가 있는 뒤뜰에 가려면 현관을 나와 계단을 올라가는 구조다. 자유와 집, 왠지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그는 집을 통해서 자유를 다시 한번 이야기한다. 애초에 그의 고향집 방문은 3박4일 정도의 여행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고향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하루 이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손때가 묻기 시작하면서 학소도는 독특한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학소도를 사람들의 온기와 다양한 식물, 그리고 스토리로 채워 나갔다. 인왕산 자락의 ‘살롱’ 역할그가 학소도에 초대한 사람은 지난 23년 동안 2000여 명이 훌쩍 넘는다. 스포츠,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방면의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독특한 공간으로 변했다. 2002 한일월드컵을 보러 온 국제축구연맹(FIFA) 관계자들과 함께 맥주 한잔과 함께 경기를 보는 야외 펍(pub)이 되기도 했고, 성악을 전공한 이의 깜짝 공연이 벌어진 야외 공연장이 되기도 했다. 독특한 이들의 방문이 이어지면서 시시때때로 주변을 둘러싼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 베란다에서 그 집의 독특한 행사를 보는 경우도 있다. 멋진 공연에는 저 멀리 아파트 베란다에 있던 주민들이 박수와 ‘앙코르’로 화답하기도 했다고 한다. 집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 사라져 갈 때 그는 오히려 집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횟수를 늘리고 있다. “인왕산 자락의 ‘살롱’은 파편화되어 가는 기억들을, 잔 조작으로 잠시 존재하다 사라져가는 추억들을, 지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나의 이상이자 작은 소망이다”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그가 학소도에 온기를 넣으면서 그곳은 1년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자연의 공간이 됐다. 3월에는 영춘화·복수초·크로커스·산수유·매화·수선화가 봄의 시작을 알리면서 겨우내 잠들어 있던 뒤뜰은 화려한 꽃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4월에는 목련·개나리·앵두·살구 등이 활짝 꽃을 피우고 살구나무·매화나무·보리수 열매로 술을 담그는 시기다. 한여름 이곳을 절정으로 만드는 것은 수국·산수국·목수국·능소화·무궁화·해바라기 등이다. 휴식기로 접어드는 가을 학소도는 국화 천지다. 앞뜰과 뒤뜰에 달린 감을 학소도를 방문한 사람들과 함께 따고, 그것을 안주 삼아 축배를 드는 시기다. 그리고 학소도는 하얀 눈밭에 포근하게 덮혀 겨울잠을 드는 공간으로 침묵에 들어간다. 사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자연의 공간인 셈이다.그는 그렇게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그 기록의 결과물이 이 책이고, 얼마 전 ‘국제탐정 K 달의 두 얼굴’이라는 장편소설을 내게 한 힘이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고군분투하는 국제탐정 K의 여정을 담은 소설로 그가 국내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흔적이 나온다. 여전히 학소도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많은 이야깃거리가 채워지고 있다. 또한 그의 손길에 따라 다양한 식물과 과수나무가 학소도를 지키고 있다. “대학 강의실에서, 지구촌 여행길에서, 또 내가 이제껏 만난 사람들에게서 배우지 못한 것을 고향은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세계적 대도시 서울 도심에 있는 작은 섬, 학소도를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이곳에서 자연을 소개해 주었고, 나는 자연을 통해 정직한 사랑을 배우고 있다”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는 20여 년 동안 지켜온 학소도를 잠시 떠나는 해외여행을 준비 중이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집이 있기에 그는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다.

2023.10.18 09:13

5분 소요
알카에다 수장 제거로 본 표적 암살 공작의 국제정치학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미국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71)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드론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제거하면서 표적 암살 공작이 국제적으로 새롭게 주목받는다. 적의 우두머리나 주요 인사를 드론을 이용해 대놓고 제거하는 표적 암살 공작이 국제정치의 주요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시각으로 7월 31일 오전 6시 18분(미국 동부 서머타임 기준 30일 오후 9시 48분)에 카불 중심부 셰르푸르 지역의 저택 발코니에 나와 있던 알자와히리를 드론(무인기)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제거했다. 이집트 안과의사 출신인 알자와히리는 2001년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의 오른팔로 테러를 사실상 설계한 인물로 알려졌다. 빈 라덴이 2011년 5월 미군 특수부대 DEVBRU(해군 특수전 개발단)의 공격으로 숨진 뒤 그 뒤를 이어 알카에다의 수장을 맡아왔다. 미국은 빈 라덴의 두뇌 노릇을 한 최측근이자 후계자인 알자와히리를 드론으로 제거하면서 21년 만에 알카에다 최고 지도부에 대한 보복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집트 남성의 2020년 기대여명인 69.88세를 이미 지난 알자와히리를 9·11 21년 만인 이제야 뒤늦게 표적 암살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회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 AP통신·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블룸버그통신·NBC 등 미국 매체와 타임오브이스라엘·독일의소리(DW)·프랑스24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작전은 장기간의 공작으로 이뤄졌다. 알자와히리는 가족과 함께 파키스탄에 은신해 있었는데, 2021년 8월 30일 미군이 카불에서 완전히 철수한 뒤 가족이 먼저 카불로 옮겼다. 이들은 카불로 옮긴 뒤 탈레반 내 강경파 분파인 하카니 네트워크의 지도자인 시라주딘 하카니가 제공한 부촌의 저택에 머물러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한 주 전에 작전을 승인했으며, 2022년 초 알자와히리가 카불로 옮긴 뒤부터 정보당국이 그를 감시해왔다고 말했다. 미국이 알자와히리의 카불 이동을 2022년 초에야 인지했다는 이야기다. 의문은 최초 정보를 누가 제공했느냐로 향한다. 눈여겨볼 점은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공작 기관 모사드의 다비드 바르네아 국장이 지난해 12월 5일 미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예루살렘포스트와 타임오브이스라엘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해 6월 취임한 바르네아가 맡은 가장 큰 임무는 이란핵합의(JCPOA) 복귀를 추진했던 바이든 행정부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알자와히리 가족의 카불 이주를 인지하고 감시를 시작했다는 올해 초가 바르네아가 워싱턴을 방문한 지 한 달쯤 뒤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스라엘로선 미국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카불에서 수집한 초특급 정보를 미국과 공유함으로써 미국의 JCPOA 복귀 포기나 연기를 설득하려고 시도했을 가능성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한 달 정도의 '시차'는 정보 소스를 감추기 위한 연막작전일 수 있고, 미국이 이스라엘이 제공한 정보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일 수도 있다. 바이든이 취임 뒤 처음으로 7월 14~15일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당시 많은 양보와 립서비스를 제공한 점도 이런 추측의 근거로 볼 수 있다.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밀접하지만, 바이든은 이번 방문에서 자신의 공약에서 상당히 후퇴해 이스라엘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목할 점은 바이든이 15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확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가진 모든 국가적 역량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구절을 넣었다는 사실이다. 바이든은 양국 정상회담에선 "외교가 최선의 방안임을 믿는다“고 했지만, 이스라엘 채널12와의 인터뷰에선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기 위해 최후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해 군사적 옵션의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이스라엘의 무력 사용 용인하는 미국의 의도 대선 공약으로 이스라엘이 반대해온 이란핵합의(JCPOA) 복귀를 외쳤던 바이든으로선 의외다. 이스라엘로선 대미 외교의 개가라고 부를 만하다. 바이든의 기존의 입장을 선회해 이스라엘의 무력 사용 가능성에도 고개를 끄덕여준 것은 미국 내 유대인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과 별도로 바이든이 이스라엘에 뭔가 신세를 진 게 있지 않으냐는 짐작을 낳게 한다. 아무튼, 미국 정보 당국은 알자와히리의 집을 6~7개월간 계속 추적한 결과 그가 가족과 함께 그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집은 2021년 8월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면서 빈집으로 있다가 탈레반 정부의 국방부 소유로 넘어갔으며, 최종적으로 하카니가 소유하게 됐다. 탈레반은 2020년 2월 29일 카타르의 도하에서 탈레반 측과 만나 미군을 철수시키는 대신 탈레반이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과 관계를 끊고 자신들의 지배지역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한다는 ‘도하 합의’에 서명했다. 하지만 탈레반 내에서도 극단적인 주장을 펴온 하카니는 이를 무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확인된 자와히리의 위치는 올해 4월 초 바이든의 국가안보 부보좌관인 조내선 파이너와 국토안보 보좌관인 엘리자베스 셔우드랜돌이 상부에 알렸으며, 그 직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바이든에게 이를 보고했다. 미 정보 당국은 알자와히리가 집의 발코니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것을 즐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미국 당국은 집의 모형을 만들어 공격과 함께 다른 거주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강구했다. 바이든은 이 모형을 7월 1일 직접 살펴봤다. 그는 미국 최고정보기관인 국가정보국(DNI)의 에이브릴 헤인즈 국장과 중앙정보국(CIA)의 윌리엄 번스 국장, 국가대테러센터(NCTC)의 크리스틴 아비자이드 등 정보‧공작 최고책임자들과 공격을 논의했다. 바이든은 7월 25일 최종 보고를 받고 작전을 승인했다. 공격에는 드론이 동원됐다. 알자와히리가 아침에 발코니에서 나와 선채로 밖을 내다보자 상공을 은밀하게 선회하던 드론이 AGM-114 헬파이어 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알자와히리는 현장에서 즉사했지만 같은 집에 살던 가족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AGM-114의 변형인 AGM-114 R9X는 미사일에 폭발물 대신 동역학 탄두를 장착했다. 발사 뒤 날카로운 대형 칼날이 여러 개 튀어나와 강력한 힘으로 목표물을 난자한다. 인간 목표물을 대상으로 사용하면서 이른바 ‘부수적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특수 미사일로, ‘닌자 폭탄’ ‘나르는 긴수(미국의 유명 식칼 브랜드)’로 불려왔다. 미국 정보당국은 도·감청과 위성 사진 등으로 알자와히리의 사망이 확인된 뒤인 8월 1일에야 작전을 공개했다. 미국은 9‧11테러의 핵심 인물인 알자와히리를 제거함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을 마무리한 것은 물론 지난해 8월 카불 철수에서 보여준 혼란스럽고 실망스러운 모습에 대한 만회 효과도 어느 정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바이든이 11월 8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가안보 부문에서 어느 정도 점수를 얻었을 수 있다. 미국은 2020년 1월 4일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의 국제공항에서 드론 공격으로 암살했지만, 이라크는 미군과 정보기관이 주둔해 관련 정보 수집과 작전을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적진이나 다름없는 아프가니스탄이 카불에서 공작과 작전을 벌일 수 있는 능력을 보였다는 점에서 차별화한다. 물론 드론은 과거 아프가니스탄의 대테러 목표물 공격을 위해 출격 기지로 사용해온 이웃 파키스탄 서남부의 비행장에서 이륙했을 가능성이 크다. 파키스탄은 중국과 가까운 나라지만 과거 미국과 사이가 좋을 당시 확보하거나 제3국에서 조달한 미국산 F-16 전투기가 127대 이상이 있어 이를 계속 운용하려면 미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친중 국가임에도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에선 드론 이착륙장을 제공하는 등 협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드론 조종은 미 본토의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조정실에서 위성 통신을 이용해 했을 것이다. 조종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무인-원격 공격 시스템이다. 보복 악순환 부르는 표적 암살과 전쟁 기술 눈여겨볼 점은 2020년 솔레이마니 공격 당시 이란은 보복을 외치며 이라크의 미군기지에 미사일 발사했지만 결국 찻잔 속의 태풍으로 마무리됐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정면 대결을 할 수 없었던 이란은 이라크에서 벌어진 자국 주요 인사의 암살에 더는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사실 미국 CIA의 대테러센터(CTC)는 2001년부터 아프가니스탄과 예멘 등에서 무인기를 이용한 표적 암살 작전을 수행해왔다. 미국은 CTC 등 다양한 기관의 대테러 조직을 연결해 국가 대테러센터(NCTC)를 구성했다. 하지만 CTC는 조직의 수장도 ‘로저’라는 암호명으로만 알려졌을 뿐 누구인지 비밀에 부치는 등 철저히 비밀리에 은밀한 작전을 수행해왔다. 이스라엘은 군과 해외 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를 앞세워 무인기를 통한 표적 암살 작전을 수행해왔다. 2004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정치‧군사 조직인 하마스의 창시자 아메드 야신을 가자지구에서 표적 암살했다. 이스라엘군은 무인기로 위치를 확인한 뒤 F-16 전투기를 인근에 보내 굉음으로 주의를 분산한 뒤 아파치 공격용 헬기를 출동시켜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해 야신을 암살했다. 2007년 이후에는 무인기로 가자지구의 로켓 발사대를 수색‧파괴하는 작전도 벌여왔다. 하지만 2021년 5월 6~21일 예루살렘 일부 지역 팔레스타인 주민의 강제 이주와 알아크사 사원에서의 충돌 이후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로 가한 로켓 공격을 막지는 못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로켓의 상당수를 아이언돔으로 불리는 방공 시스템으로 요격했지만, 완전히 봉쇄하진 못했다. 결국 하마스의 로켓 공격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보복 폭격 속에서 256명의 팔레스타인인과 13명의 이스라엘인이 목숨을 잃었다. 표적 암살이 대를 이어가는 적개심을 부추긴 셈이다. 모사드는 최근 들어 이란의 핵 과학자를 상대로 암살 공작을 벌여왔다. 핵 개발을 추구하는 이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핵심 인력을 제거해 개발 속도를 줄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역시 국가 수준에서 벌이는 표적 암살 공작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에는 오토바이 폭탄, 원격 조종 기관총 등 다양한 무기가 동원됐다. 드론을 활용한 표적 암살 공작은 은밀성·기동성·신속성을 확보한 데다 지휘부나 두뇌에 해당하는 뱀무리 제거로 인한 심리적‧정치적 효과가 크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물론 러시아‧중국 등 다양한 나라가 은밀하게 활용해왔다. 드론이라는 가공할 무기를 더하고 여기에 무선통신기술, 원격제어기술 등 기술적 진보가 더해지면서 이는 더욱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적에게 우두머리를 잃는 상실감과 함께 언제, 어디에서 당할지 모른다는 압박감을 줄 수 있어 상대를 효과적으로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 게다가 탄두에 폭발물 대신 칼날을 장착해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AGM-114 R9X의 활용으로 언론과 인권단체의 비난을 잠재울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이 작전의 활용을 부추길 수 있다. 표적 암살은 어둠의 전쟁에서 효과가 큰 작전으로 평가된다. 다만 정확한 정보와 정밀한 작전계획의 확보가 난제다. 아무나 벌일 수 있는 작전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상대가 실력이 있는 경우라면 보복의 악순환도 우려할 수밖에 없다. 그런 우려에도 이젠 표적 암살이 국경을 넘어 글로벌 단위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시대가 됐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주권국가를 대놓고 침략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은 또 하나의 안보 충격이다. 뱀 머리가 아무리 제거돼도 지구촌은 편할 날이 없어 보인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2.08.06 18:00

7분 소요
K-9부터 천궁-Ⅱ까지, 한국 무기체계 수출의 국제정치학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한국이 개발하고 생산하는 고가 무기체계의 수출 계약이 연일 성사되고 있다. 한국 방산업계가 바야흐로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 13일에는 호주에서 K-9 자주포 구매를 발표했다. 새해 들어 1월 17일에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천궁-2 지대공 요격미사일, 2월 1일에는 이집트에서 K-9 자주포의 도입을 각각 발표했다. ━ K-9 자주포 이어 K-2 전차, T-50 훈련기도 수출 기회 K-9 자주포는 장거리 화력 지원과 실시간 집중 화력 제공 능력이 뛰어난 무기체계로 호평을 받아왔다. 다양한 작전 환경에서 운용이 가능하며 사격 시 반동이 경쟁 자주포보다 적어 호평을 받아왔다. 2000년 전력화가 이뤄졌으며, 최대 사거리 40㎞에 분당 최대 6발을 발사할 수 있다. 급속 사격 시에는 15초 이내 3발 사격도 가능하다. 지속 사격 시에는 1시간 동안 분당 2~3발을 쏠 수 있다. 48발의 포탄을 적재할 수 있으며, 최대 시속 67㎞의 속도로 이동이 가능하다. 특히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한화디펜스가 개발한 K-9 자주포는 한국산 무기체계 수출의 선봉장을 맡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7개국이 1700여 문을 운용 중이며, 호주와 이집트를 합하면 모두 9개국이 운용하게 된다. 터키에 350문(약 10억 달러), 폴란드에 120문(약 3억 2000만 달러), 핀란드에 48문(약 1억6000만 달러), 에스토니아에 12문(가격 미정), 인도에 100문(3억8000만 달러), 노르웨이에 24문(약 2억3000만 달러), 호주에 30문과 K-10 탄약운반장갑차 15대(합계 최대 1조900억원), 이집트에 200문과 K-10 탄약운반장갑차(17억 달러) 등을 수출해 실적이 화려하다. K-9 자주포의 호주 수출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한화디펜스는 “K-9 자주포를 ‘파이브 아이즈’ 국가에 처음으로 수출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파이브 아이즈’는 미국·캐나다·뉴질랜드·호주·영국으로 이뤄졌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기밀정보 공유 동맹이다. 한국을 포함할 가능성도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K-9 자주포의 호주 수출은 주요 무기체계를 아시아권에 처음으로 수출하는 사례다. 한화디펜스는 호주 동남부 빅토리아주의 질롱에 생산시설을 세워 현지에서 K-9 생산과 납품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지 생산인 셈이다. 2월 1일 발표된 K-9 자주포의 이집트 수출은 아시아·유럽·대양주에 이어 중동·아프리카 지역 첫 진출이라는 의미가 있다.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복잡한 환경의 중동 지역에 한국산 중화기인 자주포가 처음 수출된다는 것은 한국이 이런 환경 속에서 다양한 외교와 비즈니스를 펼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 630여 문을 공급한 K-9은 현재 영국 수출도 추진 중이다. 한국 방위산업(K방산)은 지난해 70억 달러(약 8조3496억원)를 수출해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앞으로 유럽·호주로 시장을 확대한다면 5년 안에 100억 달러(약 12조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현재 세계 9위 수준인 한국의 방산 수출 규모는 조만간 5위권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화디펜스의 보병전투차량(IFV) AS-21 레드백은 180억~270억 호주달러(약 16조~24조원) 규모인 호주 육군의 LAND 400 사업에 뛰어들었다. 독일 라인메탈 디펜스의 링스 KF41과 경쟁 중이다. 현대 로템의 K2 전차는 노르웨이에서 성능 테스트를 받고 있는데 추운 지역의 적응력이 높아 호평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KMW의 레오파르트2 개량형인 레오파르트2A7가 경쟁자로 등장하고 있다. 폴란드도 차기 전차로 K2에 관심이 높다. 항공 분야에서도 서광이 비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고등 훈련기 T-50이 UAE에서 새 시장을 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무기 기술·생산 원하는 UAE에 현지 테스트로 천궁-Ⅱ 수출 1월 17일에는 초대형 낭보가 전해졌다. ‘한국형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탄도탄 요격미사일 체계인 ‘천궁-Ⅱ'(M-SAM2·중거리 지대공미사일)의 아랍에미리트(UAE) 수출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첨단 하이테크 무기체계인 미사일, 그것도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탄도탄 요격 미사일이 처음 수출되는 것은 한국 방산 수출에서 역사적인 사건이다. UAE를 방문 중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인 16일 UAE의 두바이에서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UAE 총리 겸 두바이 에미르(이슬람 군주)와 만나 천궁-Ⅱ의 수출을 확정 짓고 사업계약서를 교환했다는 게 당시 청와대 발표다. 천궁-Ⅱ는 국방과학연구소(ADD) 주도로 LIG넥스원·한화시스템·한화디펜스 등이 참여해 개발했다. 2012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ADD) 주도로 개발하고, LIG넥스원이 생산을 밭았다. 천궁-Ⅱ는 최대 사거리가 40㎞로, 항공기와 탄도미사일을 모두 요격할 수 있다.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의 핵심이다. 5년간 개발해 2018년 양산에 들어갔으며, 2021년 11월 군에 인도됐다. 사격통제소, 다기능레이더, 3대의 발사대 차량 등으로 1개 포대를 구성된다. 발사대 하나당 8발의 요격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다. 명중률도 뛰어나 국방기술품질원이 2021년 7월과 8월 ADD 안흥시험장에서 각각 탄도미사일과 항공기에 대한 요격 시험을 한 결과 표적에 모두 명중했다. 이번 계약 규모는 무려 35억 달러(약 4조1000억원)로 한국의 무기체계 단일계약으로는 가장 크다. 그날 문 대통령이 공동 연구개발, UAE 내 생산, 제3국 공동 진출을 언급했는데 이는 UAE의 숙원이었다. 중동 국가들은 무기 구매에 많은 예산을 지출해왔지만, 자체 기술력, 생산력이 부족해 일방적인 구매에 만족해왔다. 이에 따라 기술력과 생산능력 확보와 축적이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한국 정부가 UAE 정부와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포함한 첨단무기체계 분야에서 방산 협력 강화를 추진한 것은 2017년이었다. 당시 한국은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의 일환으로 개발 중인 ‘미사일 요격 시스템’의 UAE 현지 테스트를 포함한 양국 국방 협력 논의를 진행했다. 당시 한국군은 북한 미사일 도발 위협과 관련해 ▶발사 전에는 킬체인(한국형 공격형 방위 체계) ▶발사 이후에는 KAMD를 통한 요격 ▶미사일 타격 피해 이후에는 KMPR(대량응징보복) 등 3축 체계의 조기 구축을 추진해왔다. 3축 체계 중 KAMD는 저층에서 요격하는 미국산 패트리엇 시스템(PAC-2·PAC-3 등)과 국산 지대공(地對空)미사일(M-SAM, 천궁 개량형), 중·고도에서 저지하는 장거리 지대공미사일(L-SAM)로 이뤄진다. 이 가운데 KAMD와 관련해 고도 20~40㎞에서 적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지대공 미사일(M-SAM)이 한·UAE 간 협력 분야로 꼽혔다. KAMD의 핵심 무기 체계이기 때문이다. 고도 60㎞까지 방어하는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은 2022년을 목표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당시 한국이 추진하는 KAMD의 핵심인 요격 미사일의 현지 테스트를 UAE에서 하는 논의를 진행했으며 이는 양국 간 방산 협력, 특히 그렇게 개발된 천궁-2의 수출로 이어졌다. 국내 미사일 시험장은 UAE의 넓은 사막지대보다 좁아 인근 주민들의 소음 피해가 우려되지만, UAE는 입지가 좋고 미국산 요격 미사일인 패트리엇의 실제 운용 경험도 풍부해 한국 측이 시험장으로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국·유럽과 소원해진 사우디·터키 문 두드리는 K-방산 천궁-Ⅱ의 UAE 수출은 사우디아라비아 수출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2019년 6월 방한 당시 대전의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방문해 “우리도 이렇게 무기체계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연구소를 세우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에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021년 2월 인도주의적 재앙이 벌어지는 예멘 내전 참전을 이유로 미국산 무기 수입이 금지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과 접경한 예멘에 시아파를 따르는 후티족 반군이 내전을 벌어지자 2014년 UAE 등과 수니파 연합군을 결성해 참전해 왔다. 그러자 예멘의 후티 반군은 이란에서 확보한 것으로 보이는 탄도미사일을 수시로 사우디아라비아 영내로 발사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산 패트리엇 미사일만으론 물량이 부족했던지 미사일 요격용 미사일 물량을 확보하려고 러시아 등 다양한 나라의 문을 두드려왔다. 그 전에도 미국산 무기를 사려면 미 의회의 까다로운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물량 확보에 항상 초조한 터였다. 실제로 예멘에서 후티 반군이 발사한 탄도 미사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나 항구도시인 제다 등으로 수시로 날아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이 무함마드 왕세자를 데리고 모스크바까지 날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 미사일 요격 미사일인 S-400을 구매하려고 시도했을 정도였다. 한국산 고가 무기체계의 수출에는 국제정세와 지역의 지정학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한국산 무기체계 수출과 기술 협력의 대표적인 파트너인 터키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지만 인권문제 등으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과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 특히 2019년 터키가 국경을 맞댄 시리아 동북부의 쿠르드족을 잇달아 공격하자 독일과 노르웨이 등 유럽 주요 나토 회원국이 터키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했다. 당시 터키는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YPG)를 자국 내에서 독립을 주장해온 쿠르드노동자당(PKK)의 분파 또는 동조세력으로 간주해 공격해왔으며 당시 7만여 명의 민간인이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했다고 세계식량계획(WFP)이 발표했다. 독일은 분쟁 지역에 자국산 무기 수출을 금지한 법을 근거로 나토 동맹국인 터키에 대한 무기 수출을 중단했다. 독일에는 초청노동자(가스트아르바이터)로 이주한 터키인과 그 친지와 후손이 300만~700만 명이 거주하며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런데도 독일은 인권이라는 원칙에서 양보하지 않았다. 독일은 2018년 전체 무기 수출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억4300만 유로의 무기를 터키에 수출했다. 2018년 2900만 유로의 무기를 터키에 수출했던 네덜란드도 대터키 무기수출 금지에 동참했다. 전차와 장갑차 등에 장착하는 원격 조작 화기체계(RWS)로 유명한 콩스베르그 등 고도 방산업체를 보유한 노르웨이도 터키에 대한 수출을 중단했다. 스웨덴은 이미 2018년부터 터키에 대한 공격용 무기의 수출을 불허했다. ━ 지정학 연구와 현지 외교 중요한 무기체계 수출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는 나토의 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어 지정학적으로 중요하다. 러시아의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 러시아와 국가연합을 이루고 있는 벨라루스, 그리고 러시아의 위협을 받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같은 나토 회원국인 독일·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리투아니아와 접경한다. 유사시 러시아의 지상 공격을 가장 먼저 받을 수 있는 지역으로 유럽 방어에서 핵심적인 지역이다. 이에 따라 유럽의 나토 회원국 가운데 가장 강한 지상 전력을 운용한다. 각각 200여대의 전차를 보유한 나토 핵심국가 영국·프랑스·독일의 전차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800대가 넘는 전차를 운용한다. 한국산 K-2 전차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K-9에 관심을 보일 수도 있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국가로 나토 회원국은 아니다. 냉전 당시 경제와 정치체제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추구했지만, 무기는 소련산을 쓰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 겨울전쟁을 치르면서 준비가 안 된 러시아군에 궤멸적 타격을 안겨줬던 핀란드는 나중에는 나치 독일과 손잡기도 하면서 우왕좌왕했다. 당시 타격에 놀란 소련은 핀란드의 자주성을 인정했지만, 국방에서 국경을 맞댄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는 것은 견제해왔다. 냉전 뒤 핀란드는 서구 무기체계로 갈아탔으며 네덜란드가 쓰던 중고 레오파르트-2 전차를 대거 샀으며, K-9 자주포도 구매해 화력을 강화했다. 핀란드는 나토에 가입하고 싶어 하지만 러시아와 사이에서 고민이 많다. 결국 일단은 자주국방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발트국가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제국 영토였다가 러시아혁명 뒤 독립을 이뤘지만 1940년 소련에 점령된 발트삼국의 하나다. 핀란드 남쪽에 위치한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국가라 안보에 고민이 많으며 나토에 합류해 공동안보에 운명을 맡기고 있다. 한국산 등 무기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 노르웨이는 2차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된 쓰라린 경험으로 유럽연합(EU)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나토에는 창설 당시부터 회원국이다. 콩스베르그 등에서 정밀 무기체계를 생산하지만, 강력한 화력의 K-9이 필요한 나라다. 유럽에 대한 한국산 무기 수출은 결국 러시아에 대한 견제와 연결된다. 무기체계 수출은 곧 외교와 직결된다. 호주는 중국에 대한 견제 등을 위해 K-9 자주포를 대거 구매했다. 히말라야 산맥을 경계로 중국과 국경 분쟁을 벌여온 인도는 중국에 대한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동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런 호주와 인도에 한국산 무기체계를 파는 것은 결국 중국에 대한 견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선거로 집권한 민간 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린 이집트에 무기체계를 수출하는 것 또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 측면에서는 많은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무기체계 교역은 국제정치의 또 다른 얼굴이다. 무기체계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지정학 연구와 현지 외교를 강화할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2.02.05 20:00

8분 소요
최태원 회장, 한‧미‧일 '안보‧경제 리스크 해법' 찾는다

CEO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최종현학술원이 미국 현지서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이하 TPD)’ 포럼을 열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북한 핵무기, 글로벌 공급망 위기 등 지정학적 리스크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30일 재계 등에 따르면 최종현학술원은 내달 6일부터 8일까지 미국워싱턴 D.C. 교외 샐러맨더에서 제1회 TPD 포럼을 연다. 이 포럼에는 한국과 미국, 일본의 전현직 고위 관료를 포함해 학계‧재계 인사 등이 대거 참여한다. 이번에 출범하는 TPD는 ▶미중 전략 경쟁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미일 협력 ▶북한 핵 문제와 한미 동맹 ▶첨단 과학 기술 혁신이 지정학에 미치는 영향 ▶반도체‧배터리‧백신 분야 글로벌 공급망의 미래 등 5개 세션으로 구성된다. 한국에서는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이홍구 전 국무총리, 정재호 서울대 교수,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 박철희 서울대 교수, 김병연 서울대 교수, 박인국 최종현학술원 원장, 안호영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 김성한 고려대 교수, 이근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손지애 이화여자대 교수가 참석한다. 글로벌 공급망과 관련해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과 강기석 서울대 교수 등도 참여한다. 미국 측 참석 인사는 척 헤이글 전 국방장관,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장관, 웬디 커틀러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석대표, 댄 포노만 전 에너지부장관,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 등 미국의 전직 고위 관료들이다. 또한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석좌교수, 스탠리 휘팅엄 뉴욕주립대 석좌교수(2019년 노벨화학상), 수재 킹 류 UC버클리 공대학장, 에드윈 퓰너 해리티지 재단 회장, 새프라 캐츠 오라클 최고경영자(CEO) 등 학계와 재계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한다. 일본에서는 나가시마 아키히사 전 방위상, 후지사키 이치로 나카소네 평화 연구소 이사장, 마츠카와 루이 자민당 참의원 등 정관계 인사들은 물론 일본을 대표하는 국제정치학자인 후지와라 키이치 도쿄대 교수, 타카하라 아키오 도쿄대 교수 등이 참여한다. 최종현학술원 측은 “TPD는 범태평양 지역 민간 외교와 정책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최태원 회장이 지난 수년간 구상해 만든 지정학 위기 해법과 경제 외교 대안 제시를 위한 새로운 플랫폼”이라며 “최근 경제 현안으로 떠오른 글로벌 공급망 문제는 물론 미중 패권 경쟁과 북 핵 등 안보 이슈, 첨단 기술을 둘러싼 무한 경쟁 등 범태평양 국가나 기업들이 마주한 도전 과제에 대한 해법을 찾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이번에 처음 열리는 TPD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올해 초부터 의제 선정 과정을 일일이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인사들에게는 여러 차례 연락해 참석 수락을 이끌어내는 등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2021.11.30 11:38

2분 소요
[전선 넓어지는 미·중 무역전쟁] 中 정부, 미국 가는 관광객·유학생도 통제

정책이슈

지난해 중국 관광객 미국서 364억 달러 써… 미·중의 지리한 대치 이어질 듯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갈수록 험악하게 확전하는 양상이다. 중국은 6월 초 자국민에 대해 미국 여행 자제령과 유학 경계령까지 내렸다. 표면적 이유는 자국 관광객과 유학생의 안전이다. 중국의 관광을 담당하는 문화여유부는 미국 여행 자제령을 내린 이유로 미국에서 총격 강도와 절도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안전상의 이유를 들었다. 유학 경계령을 내린 이유로는 미국이 중국 유학생들의 비자 신청을 비정상적으로 거절한다는 점을 들었다. 논리와 거리가 있는 설명이다. 미국은 총격 사고가 잦지만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을 노린 혐오 범죄는 보고된 적이 없다. 미국에 유학가려는 중국 학생에게 중국이 비자 거절이 잦다고 유학을 경계하라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이야기다. 중국의 관영신문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미국 여행과 유학시장 채널을 직접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해 이번 조치에 대한 중국의 속내를 드러냈다. 범죄는 핑계이고 관광객과 유학생 ‘송출’이 무역분쟁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압박 카드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은 셈이다.물론 중국인이 미국 관광과 유학에 쓰는 돈의 규모가 상당한 것은 사실이다.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은 300만 명 수준으로, 이들이 쓴 돈만 364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CNBC 방송은 “미국에서 공부하는 중국인 유학생은 36만 명에 이르며 이들이 쓰는 학비와 생활비는 연 140억 달러 규모”라고 보도했다. ━ 미국의 중국인 유학생 학비·생활비 연 140억 달러 하지만 미국을 향하는 중국인 관광객·유학생과 이들이 쓰는 돈은 중국이 미국에 베푸는 일방적인 시혜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중국인의 미국 관광은 세계 최강국 미국을 직접 방문해 국제 견문을 넓히는 효과가 있다. 유학생 파견은 중국의 미래를 위한 학문을 흡수하기 위한 목적이다. 중국 국가유학기금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국비로 미국에 보낸 유학생 비자 신청자만 1만 명 수준이다. 국비로 유학을 보내는 이유는 중국의 미래를 구상하는 공산당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는 오히려 중국 공산당의 세계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과 트럼프를 오판한 중국의 자충수로 판단할 수 있다.중국은 미국 기업도 압박하기 시작했다. 미국 자동차 회사인 포드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충칭(重慶) 지역 매출의 4%인 약 277억원의 벌금을 매겼다. 중국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국가시장관리총국은 포드가 2013년부터 충칭 지역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판매상들에게 최저 가격을 요구한 것이 중국 반독점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미국 기업에 대한 보복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는 사안이다. 중국 행정당국이 인허가권이나 행정감독권 등을 동원한 누르기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지난해 6월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기 시작하자 그해 7월 7일 미국산 수입품 547개 품목에 대해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여기에는 콩·돼지고기·쌀·면화·사탕수수·포도주 등 미국의 주요 수출 농산물을 포함시켰다. 농산물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의 하나인 중서부 ‘팜벨트(농업지대)’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품목이다. 이번에 중국이 유독 포드차를 대상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도 트럼프의 지지 기반인 제조업 분야에 속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전략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아픈 부분만 공격하려는 속셈이다. 하지만 중국은 수입 옥수수의 95%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를 사료로 돼지 사육 등 축산업을 영위한다. 따라서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가는 오히려 중국에 자충수가 될 수 있다. ━ 중국,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포드 압박 미국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는 중국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수 있지만, 중국의 미국 수출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는 이보다 효과가 적을 수밖에 없다. 2018년 중국의 대미 수출액은 5395억 달러에 이르지만, 미국의 대중 수출액은 1203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양국 간 고액 관세 부과와 보복관세 부과의 타격 정도는 4.5대 1이라는 수출액 비율에 비례할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이 훨씬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이야기다.더구나 미국이 중국 IT업체를 규제하고 고급 기술에 대한 중국 기업과 학자, 그리고 유학생에 대한 접근을 지속적으로 막을 경우 중국의 미래 대계에 상당한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중국은 한국 등에서 공급받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부품을 자국산으로 대체하는 ‘홍색공급망’ 구축을 추구해왔는데 미국의 조치 때문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올해 들어서는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내다팔고 희토류 수출 금지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여기에 이번에 미국 관광과 유학 자제령까지 내면서 미국을 압박할 동원 가능한 카드를 줄줄이 꺼내고 있다. 9월부터 내년에 있을 재선에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할 트럼프가 미·중 무역분쟁 수습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셈이다. 중국의 이런 압박 조치를 통해 트럼프에 불리한 여론이 미국에서 조성되도록 해서 양보를 이끌어내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의 조치는 미국의 감정만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그동안 미국은 중국에 대해 기술 도용이나 무단 이전, 지적재산권 불인정, 환율 조작 등을 지적하며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의 바로 그 사안을 대응 무기로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포드에 대한 대응은 미국이 그동안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으로 지적해온 ‘비관세 장벽’을 중국이 동원한 것에 해당하기 때문에 미국이 무역전쟁에 나선 명분을 오히려 강화해주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미중 무역분쟁에 대해 일부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거론하며 중국이 신흥대국으로 성장하자 패권국인 미국이 힘으로 무리하게 누르려 한다는 시각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에서 신흥강국으로 올라선 그리스가 당시 패권국가인 스파르타에 도전하면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합종연횡을 동원한 대규모 전쟁을 벌였으며 그 결과 그리스 전체가 쇠망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미중 갈등이 지속되면 결국 양국 모두가 쇠락하게 된다는 지적이다.미국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의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2017년 출간한 저서 과 최근 포린폴리시 기고문을 통해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앨리슨 교수에 따르면 과거 유럽 역사의 향방을 결정했던 30년전쟁,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7년전쟁 등이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이는 1914~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신흥강국 독일에 대한 패권국가 영국의 길들이기 의도 때문에 촉발됐다는 주장과도 연관이 크다. 어머니가 독일인이어서 어려서 독일에서도 살아 독일을 잘 알았던 영국 외교관 아이어 크로(1864~1925)가 1907년 외교부에 제출했던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과의 현재 관계에 대한 비망록’이 그 근거다. ‘크로 비망록’으로 불리는 이 비망록은 “독일이 우선 유럽 패권(hegemony)을 추구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세계 패권을 노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독일은 과거 스페인의 펠리페 2세, 부르봉 왕가, 나폴레옹처럼 유럽의 세력균형을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1871년 통일을 이룬 독일은 당시 철강 생산능력이 세계 수준에 이르는 등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영국 시장을 위협하고 있었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이 미국의 헤게모니를 위협하는 현재의 상황과 겹치는 대목이다. 크로는 이를 근거로 독일에 양보를 통한 유화정책보다 가진 힘을 활용한 단호한 정책을 펼칠 것을 제안했다. 크로 비망록은 영국 외교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미중 무역전쟁은 이런 역사적 교훈이나 국제정치학 이론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뿌리와 색다른 상황이 맞물려 있다. 이번 무역전쟁이 단순한 무역적자의 문제가 아닌 시진핑이 주도하는 중국의 글로벌 패권국가 부상 전략에 대해 트럼프가 날리는 회심의 일격인 것은 사실이다. 이는 무역전쟁의 일반적인 배경에 해당한다. ━ 자국 시장 빗장 건 중국 국가자본주의 여기에 더해 특수한 배경이 있다. 바로 중국의 자국 시장 봉쇄와 미국 기술 무단 이용이다. 미국은 시 주석의 중국이 거대한 자국 시장을 틀어막고 진입 대가로 기술과 지적저작권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패권국가로 부상하려는 시도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중국은 그동안 자국 시장의 문을 상당히 닫아놓고 국가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 전략을 펼쳐왔으며,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인공지능(AI) 등 미래 기술의 선점을 노린 그랜드 플랜을 추구해왔다.시진핑의 국가자본주의는 중앙과 지방 정부, 국유기업 등에서 갹출한 자금으로 산업투자기금을 조성한 후 이를 국유기업과 일부 민간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하이테크 산업을 진흥하고 고용 유지 등 지방사회의 안정화를 꾀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세계무역기구(WTO)가 권고하는 보조금 규칙을 위반할 가능성이 크다. 하이테크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중국제조 2025’를 추진하기 위해 중국의 산업투자기금은 급증하고 있다. 자유무역 질서에 졍면 도전하는 중국의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트럼프의 미국은 민주주의·인권·민간교류 등에 바탕을 둔 서구식 국제질서에 중국식 방법으로 도전한 것도 문제삼아 왔다. 중국식 방법은 지적재산권 도용, 표절, 뇌물, 스파이, 매수 등 삼국지적인 방식이다.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양국간 충돌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이유다.사례를 보자. 그동안 미국은 중국이 자국 시장을 외국 기업에 내주지 않고 폐쇄적인 자국 기업 보호 정책을 편다고 지적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BAT, 즉 검색엔진을 중심으로 하는 바이두,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기업인 텐센트를 중심으로 자국의 IT 기업을 육성해왔다. 미국의 IT 기업과 비교하자면 바이두는 구글, 알리바바는 아마존, 그리고 텐센트는 페이스북에 해당한다. 하지만 중국은 구글과 아마존, 그리고 페이스북을 중국에서 쓰지 못하게 막고 있다. 이를 이용해 바이두, 알리바바. 그리고 텐센트는 초고속성장을 해왔다. 이들 기업을 이를 통해 축적한 자본과 시장, 그리고 기술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보안장치 등 중국 공안정치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미래에 열릴 인공지능 시대에 중국이 유리하게 진압할 수 있도록 길을 열고 있다.이 과정에서 이들은 미국의 작은 기업에 중국 시장 진출 기회를 열어주는 대신 지적재산권을 포기하고 기술을 무료로 이전할 것을 압박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기존의 과학기술과 지적재산권 보호, 무역관행 등 국제경제 규범을 정면으로 위배하면서 미국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도전하는 나라에 다름 아니다. 중국이 정상적인 경쟁이 아닌 ‘삼국지’적인 온갖 간계로 패권에 도전한다는 시각이 강하다. ━ 근본적인 규범·규칙과 관련한 충돌 이에 따라 이번 미중 무역전쟁은 ‘전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스테이투스 쿠오 안테 벨룸(status quo ante ballum)’이 어려워 보인다. 미국과 트럼프가 단순히 양국간 무역수지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거래 협상으로 끝나지 않고 중국 국가전략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을 요구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인권 존중과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까지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선 이제 통상의 기술과 관련한 협상과 타협이 아닌 근본적인 규범과 규칙을 바꾸는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중국의 공산당 일당독재에 바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어 수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전쟁이 어렵고 지리한 대치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적극적으로 이에 대비할 때다.

2019.06.09 08:18

8분 소요
[‘각학각색(各學各色)’ | 핵 있는 평화, 핵 없는 평화 - 국제정치학] ‘핵 있는 평화’ 시나리오 설득력 떨어져

정책이슈

북한 국가성 변화, 국제사회의 구속력,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의 의지 작용 현재 한반도 운명은 기로에 서 있다. 비핵화와 평화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다 함께 전진하느냐 아니면 다시 위기와 불신이 반복되는 과거로 돌아가느냐, 이렇게 두 갈래 길만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 외교에서 마지막 숙제로 남아 있던 섬과 같은 곳이다. 40여 년 전 닉슨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커다란 데탕트를 추진했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을 상대로 작지만 실속 있는 데탕트를 시도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따지고 보면 20세기 이후 미국 외교의 큰 성과는 대체로 공화당 정부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지금 이 순간에도 6·12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여전히 비핵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최근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을 만나 북한 문제의 평화로운 해결을 다시 한 번 약속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차츰 동력을 상실하는 것처럼 보였던 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불씨가 다시금 살아나고 있다. 결국 북미 양국 정상은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해 이미 빼기 어려울 만큼 깊숙이 발을 담군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그러나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현재와 같은 북미 간 신경전이 자칫 길어지다 보면 우리의 의도와는 달리 혹시라도 ‘핵 있는 평화’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 수준에서 북한의 핵능력이 동결되고,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하지는 않지만 경계심이 다소 느슨해지며, 북한과 중국 그리고 북한과 러시아 간 무역이 조금씩 활성화되는 그런 시나리오를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11월의 미국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꼼꼼하게 북한 문제를 들여다 볼 것이고, 지난 12월 1일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만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전례가 없는 목소리로 북한 문제 해결에서 공조를 강조한 바 있다. 이번에야 말로 비핵화를 결단할 수 있을지 걱정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우리 국민 대다수도 핵문제 해결 없이는 북한과 덥석 손을 잡는 일을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그럼에도 여전히 상당수 우리 국민은 북한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과연 북한이 지난 70년 간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 완전한 비핵화를 실천할 수 있을까? 과거에도 북한과 수없이 많은 합의를 해봤지만 모두가 실패하지 않았던가? 이런 질문이 지극히 상식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건강하고 합리적인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의심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합리적 의심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첫째, 북한의 국가성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500개에 달하는 장마당, 500만 명을 넘어선 휴대전화 소유자, 유럽 유학을 다녀온 젊은 지도자 등은 북한의 국가성이 바뀌기에 충분한 조건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북한 문제의 국제성이 부각될수록 약속을 파기할 수 없는 구속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올해에만 북중 정상회담이 세 차례나 열렸고, 북러 정상회담이 예고돼 있으며, 은둔의 나라 지도자치고는 너무도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등장했다. 북한 문제의 국제적 성격이 강화될수록 북한은 이 외길에서 뛰쳐나가지 어려울 것이다. 셋째, 담판을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어떤 미국 행정부도 풀지 못했던 북한 문제를 자신만이 해결했다는 평가를 고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과거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의 대북정책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문재인 정부는 평화국면 조성을 위해 지혜를 짜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에서 문재인-트럼프 조합일 때 어떻게든 체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박인휘 교수는...청와대 국가안보실 자문위원, 외교부·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 민화협 정책위원 등을 역임했다.

2018.12.22 17:13

3분 소요
[본지·한국사회과학협의회·안민정책포럼 공동기획 | ‘각학각색(各學各色)’] 핵 있는 평화, 핵 없는 평화

정책이슈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일 때가 많다. 한정된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시각과 자세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세상은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며 융합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의사와 공학자가 만나 인공안구를 만드는 시대다. 본지는 사회과학협의회(회장 박찬욱)·안민정책포럼(이사장 백용호)·SSK네트워크 지원사업단(한국연구재단후원)과 공동으로 복잡다단한 시대의 화두와 이슈를 다양한 시각에서 짚어보고 조망하는 취지의 기획 연재를 시작한다. 열두 번째 주제는 국제정치학·경영학·체육학·정치학·정치경제학 등 4개 분야의 전문가들이 급진전을 이뤘다가 소강상태에 빠진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배경과 전망, 대책 등을 진단·조언했다. 분야별 시각 차이를 흥미롭게 살펴보다 보면 자연히 융합의 눈을 뜨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 한국사회과학협의회는 학제 간 협력을 위해 1976년 설립된 15개 사회과학 분야 학회의 연합체다. 안민정책포럼은 좌우통합을 위해 고 박세일 서울대 교수가 1996년 만든 지식인 네트워크다.

2018.12.22 17:05

1분 소요
[‘각학각색(各學各色)’ | 집은 소유자산인가 주거공간인가 - 정치학] 사회적 약자의 주택 주거권 중시 흐름

부동산 일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 비교정치의 핵심 의제 어디 사세요? 처음 누군가를 만나는 경우 서로를 알기 위해 하는 질문의 하나다. 때론 상투적으로 하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거주하는 주택의 소재지가 서울인지, 수도권인지, 지방인지에 따라 그 사람의 활동반경과 직업과의 연관성이 드러난다. 서울에 산다고 하는 경우 어느 구, 어느 지역에 사느냐는 질문이 이어지고 그 사람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자가 소유인지, 임대 주택인지도 이어지는 주요한 질문이다. 임대 방식도 더욱 다양해지면서 주택에 대한 인식과 삶의 방식은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위에 언급된 질문에 대한 답은 한 사회 내 그 사람의 위상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어디 거주하느냐와 소유 여부는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대변하는 것이다. 아울러 한 사회 내 소속 계층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다.이데올로기적으로 정리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택은 상대적으로 소유물인 측면이 강하지만, 사회주의 사회에서 주택은 주거지인 측면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에서 주택은 부의 축적 수단이 될 수 있고 후자에서 주택은 그렇지 않았다.우리 사회 내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정치 엘리트의 거주지와 주택 소유 여부를 다룬 통계를 보면 정치이념과는 달리 유사한 양상을 보여왔다. 상당수의 정치 엘리트가 서울 강남 특정 지역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부정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으나 그러한 해석이 나오는 것은 우리 사회 내 잔존하는 부의 축적 과정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가진 자에 대한 존경이 없는 자본주의 사회를 가리켜 천민자본주의 사회라고 일컫는다. 부패와 정치권력이 어우러져 특정 계층이 성장의 열매를 독식하고 빈부격차가 심화 되는 정치·경제적 구조를 고착화하는 사회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존경을 못 받은 가진 자는 사회에 베푸는 데 인색해지고 결국 사회는 반목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만다. 이를 선순환하려면 부의 축적 과정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가 전제돼야 한다.비교정치의 핵심 의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다. 정치는 평등, 형평성, 분배의 논리와 통하며 경제는 자유, 효율성, 성장의 정신과 부합한다. 양자가 균형을 이뤄가면서 상승효과를 거둔다면 그 국가는 사회적 합의를 달성하며 발전을 경험하게 된다.‘주택은 소유물이다’라는 주장은 경제의 논리에 중점을 둔 사고라고 할 수 있고, ‘주택은 주거지이다’라는 주장은 정치의 논리를 강조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부의 축적 수단으로서 주택의 역할을 인정해 개인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려는 동기부여를 거기서 찾고자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이를 부인해 더불어 사는 공동체 속에서 삶의 안정감을 느끼자는 것이다.이 두 가지 논리 다 일리가 있다. 한편 유사한 논쟁으로 뉴라이트와 뉴레프트 논쟁이 있다. 뉴라이트와 뉴레프트 논쟁은 성장을 통한 분배인지, 분배를 통한 성장인지를 가늠한다. 뉴라이트 사고는 파이를 키운 후에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것이 그 사회에 최적의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이고, 뉴레프트 사고는 분배를 통한 사회적 합의의 달성이 성장동력이 되어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결국 정치의 장에서 사회 통합을 지향한다면 주택이 소유물인 시대에서 주거지인 시대로 옮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시장 논리를 부정하고 통제만을 생각한다면 이는 사회 내 성장동력을 훼손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럼에도 주택에서 파생된 재산권과 주거권이 동일한 사람에게 귀속되지 않는 경우 사회적 약자의 주거권이 주택 소유자의 재산권에 우선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대세임을 포스트모던 현실 정치는 보여주고 있다.-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상환 교수는…현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이다. 한국정치학회 부회장과 교육부 대학평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8.12.16 14:31

3분 소요
터키는 글로벌 경제 위기 예고하는 카나리아

산업 일반

리라화 위기는 글로벌한 문제의 지역적인 표출이며 떠오르는 문제의 전조이기도 하다 최근 재선에 성공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터키 리라화의 급락을 국제사회의 음모라고 비난하면서 “경제 전쟁” “통화 음모” 같은 다양한 명목으로 규탄한다. 일견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제재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관세 부과도 표면상으론 테러 혐의로 억류 중인 미국인 목사 앤드류 브런슨을 석방하도록 터키에 압력을 가하려는 의도로 비친다.그러나 미국 복음주의 목사의 석방 거부가 터키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잠재하던 위기에 미국의 최근 제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을 뿐이다. 터키의 위기는 거의 대부분 국내에서 비롯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글로벌 정치경제에 뿌리를 뻗고 있다. 전염될 위험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은 터키 정치경제의 구조적 결함에 손가락질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터키는 속담에서 흔히 말하는 바로 그 탄광 속 카나리아다(유독 가스를 감지하면 크게 울어 미리 경고한다). 이는 글로벌한 문제의 지역적인 표출이며 떠오르는 문제의 전조이기도 하다.터키는 수년 전부터 국제 투자자들의 총아였다. 한때 ‘유럽의 중국’으로 불리던 터키는 오랫동안 글로벌 시장으로부터 상당한 자본을 끌어모았다. 2001~2002년 세계은행 중역을 지낸 케말 더비스가 이끈 탄탄한 금융 구조조정 덕분에 외부 투자자들은 규제가 잘 이뤄지는 터키 금융 부문에의 융자를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터키의 만성적인 구조적 문제 중 다수가 알려졌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에 빠졌을 때도 경계해야 할 만한 위험으로 간주되지 않았다.그러나 외환시장의 투기성이 강하지만 터키 경제성장의 자금줄이던 글로벌 잉여 자본이 고갈됐다. 자본 유동성이 약화됐을 뿐 아니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상으로 신흥시장에 대한 융자가 그만큼 매력을 잃게 됐다. 이 문제는 개인 권력을 강화하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조치로 더욱 악화됐다. 권위주의로 시장이 영향을 받는 일은 드물지만 독재자가 문제 있는 결정을 내릴 때는 시장이 움츠러든다. 따라서 존경 받는 경제학자 메흐멧 심섹 재무장관을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신의 사위로 교체하기로 하면서 우려가 확산됐다. 터키를 시장의 기대에 맞춰 이끌어온 안전판이 사실상 제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시장과 자본의 문제를 뛰어넘는다. 이번 위기는 보기보다 지정학에 더 깊게 뿌리내려 있다.터키의 문제 중 다수는 대미 관계와 연관됐다. 그것은 결코 브런슨 목사의 운명에 국한되지 않는다.두 오랜 우방 간의 관계는 터키가 중동에서 지도적 지위를 추구하기 시작한 2011년 아랍의 봉기 이후 악화돼 왔다. 7년 뒤 시리아 내전에서 양국의 이해가 충돌했다. 그 전선에서 미국은 쿠르드족 파벌이 이끄는 시리아민주군(SDF)을 후원했다. 터키가 호전적인 쿠르드노동자당(PKK) 운동의 분파로 간주하는 세력이다. 그 문제로 양국의 사이가 틀어졌다.터키는 그에 맞서 시리아 북서부 몇몇 지역의 영토를 장악했다. 먼저 알-밥과 자라블루스시 주변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북서부 아프린주에서 쿠르드족 세력을 몰아냈다. 러시아는 에너지와 무기 거래를 통해 터키와의 관계를 증진하는 한편 터키-미국 이해의 이 같은 뚜렷한 분열을 주도면밀하게 유지하면서 이용했다.결과적으로 터키는 이제 이웃 시리아의 미래를 논하는 협상 테이블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충분히 유리한 결과지만 그 정도로는 터키의 시리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이제 새로운 시련에 직면했다. 이들리브·아프린·알-밥으로부터 터키 철수의 조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시리아 정부군이 북서부 터키 보호령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터키 내 350만 시리아 난민 인구의 미래가 결정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리라화 위기가 발생했다. 시리아 북서부 상당수 지역이 터키의 직접적인 지원에 의존한다. 리라화 사태가 시리아 내전에 더 광범위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이런 지정학적 위험에의 노출은 리라화 시세에 어느 정도 ‘반영’됐지만 시리아 내전에 대한 터키 개입의 실질적인 영향은 간접적이고 완화하기 어렵다. 그로 인해 터키와 미국 간의 갖가지 이견을 해소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에르도안을 ‘신 다극화 세계’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이는 적어도 포부만 놓고 볼 때 여러모로 맞는 말이다. 터키는 오래 전부터 국제개발청(TKIA)을 통하는 등의 방법으로 주변 지역을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힘써왔다. 터키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해외원조 비율 면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트럼프 정부는 지금껏 맡아오던 역할 중 다수에서 손을 떼며 거기에 일조했다. 중동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군사 개입에서 물러나고, 곳곳에서 무역전쟁을 벌이고, 파리기후협약과 이란핵협정 같은 국제협약에서 이탈하며 변덕스럽고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했다. 미국의 태도는 다른 강대국, 무엇보다도 중국이 실력행사에 나설 기회를 열어줬다.터키는 오래 전부터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유라시아·아시아 강국들의 전략적 그룹인 상하이협력기구(SCO) 가입을 열망해 왔다. 그리고 최근 주요 신흥경제 그룹인 BRICS에 공식 편입되려 로비를 벌여 왔다. 러시아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확보하고 중국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터키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서 완전히 탈퇴하려는 유혹을 받을 만하다. 터키는 이란 제재와 관련해 미국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한편 달러 표시 무역거래를 줄여나가면서 다른 나라들도 그런 방향으로 유도했다. 달러의 국제 기축통화 역할에 대한 보기 드문 도전이다.이 정도라면 미국이 터키를 상대로 일방적인 경제전쟁을 일으킬 만할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현재의 위중한 상황은 모든 강대국 무엇보다도 미국이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새로운 다극화 세계질서를 향한 위험천만한 전환과정의 일부다.리라 위기는 터키가 이런 변화의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터키는 다양한 갈등과 경쟁의 교차점에 자리 잡아 가장 큰 타격을 받아 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리더십을 약화시키려 적극적으로 힘쓴다. 외부 세계에 터키가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번에 온전히 드러났다. 리라화 급락 뉴스가 전해지자 위안화는 상승하고 유로화는 하락했다. 이번 통화위기가 누구의 잘못이든 세계가 외면할 수 없게 됐다.- 클레멘스 호프먼, 캔 셈길※

2018.09.03 12:45

4분 소요
[‘각학각색(各學各色)’ | 뜨거운 난민 논란 어디로? - 정치외교학] 다름과 공존하는 성숙한 사회 기대

정책이슈

난민 문제 정치화는 본질 흐려… 법과 절차에 따라 수용해야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 신청자에 대한 여론은 ‘내전을 피해 한국에 온 만큼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과 ‘범죄 증가와 문화적 차이에 따른 갈등 발생 우려 때문에 이들의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2017년 난민 신청자가 이미 9942명에 이르고 있음에도 멘 난민 신청자들이 왜 유독 지역적·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가? 500여 명의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대부분 건장한 20~30대 남성이고 이들이 성범죄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수용할 수 없다는 반대 의견은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도 잘 나타났다. 제주 예멘 난민 사태는 국제사회의 난민 위기를 바라보는 갈등적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첫째 ‘난민의 문제’와 난민의 유입으로 발생하는 ‘난민 문제’가 개념적으로 구분되지 않고 사용되고 있다. 난민의 문제는 난민 신청자를 비롯한 난민들의 인권의 문제다. 난민 문제는 단순히 난민을 수용하거나 배척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문화와 건강성과도 관련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혹은 ‘우리’와 먼 곳에서 벌어지는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규범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하고 ‘나’ 혹은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발생하면 함께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 되어 버린다.둘째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난민을 수용하거나 입국을 제한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질문을 가질 수 있다. 청와대에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 허가 폐지/개헌 청원’을 지지한 국민들이 71만4875명으로 어떤 청원보다 많은 국민이 참여했다고 해서 정부가 난민의 입국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없다.셋째 난민 문제를 정치화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에서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입장은 범죄, 일자리 경쟁, 과다한 복지지출 등에 대한 우려부터 아이들의 교육과 안전에 대한 우려까지 다양한 의제를 생산해냈다. 그런데 사태 초기에는 6·13 지방선거 때문에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진 측면이 있다. 선거 이후 국회에서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가 급조됐지만 일부 토론회의 내용은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고, 원칙도 없었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채 난민 문제를 정치화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넷째, 난민법을 개정하고 무사증 제도를 폐지하는 것으로 난민 문제에 대한 사회적 불안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 예멘 난민 신청자들은 현재 시민단체의 지원 시설에서 체류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회적 우려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다. 새로운 삶을 위해 온 한국에서 자신들의 인권이 제한되고 있는 것도 알지만, 자신의 난민심사와 체류자격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주변에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태가 장기화될 때 사회적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회, 지방정부와 시민단체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제주 예멘 난민 사태는 한국 사회에 ‘다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소중함을 일깨울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은 예멘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불안,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 등으로 이들을 배척하고자 하는 여론이 주목을 받는다. 그런데 다름을 대한 구성원들의 태도는 문화적 성숙의 토대가 된다. 따라서 예멘 난민을 정해진 법과 절차에 따라 수용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은 곧 문명의 수준을 의미하게 된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제기하는 ‘국민이 먼저다’라는 주장을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단일민족 정서에 기반을 둔 국민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주의 배경을 가진 국민도 있다.※ 송영훈 교수는…한국국제정치학회 연구이사, 한국국제개발협력학회 연구이사, 한국인권학회 난민·이주·다문화 분과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2018.08.0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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