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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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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협력사에 하도급 업체 기술자료 유출한 삼성SDI

IT 일반

하도급 업체(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중국 협력업체에게 넘긴 삼성SDI에게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기술유용행위, 기술자료 요구서면 사전 미교부 행위를 지적하며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2억7000만원을 부과했다고 18일 밝혔다.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삼성SDI는 2018년 5월 국내 하도급 업체가 보유하고 있던 다른 사업자의 기술자료(운송용 트레이 도면)을 받아 중국 현지 협력사에 제공했다. 이 협력사는 삼성SDI와 중국 업체의 합작 법인이 새로 개발할 예정인 부품을 납품할 예정이었다. 삼성SDI는 “하도급 업체가 작성해 소유한 기술자료를 취득한 경우에만 법 적용 대상이 되므로 이번 건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하도급법의 목적, 법 문언상 의미, 다양한 거래 현실 등을 종합 고려하면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에 하도급 업체가 매매·사용권 허용(공정위는 ‘허여(許與)’로 표현), 계약·사용 허락 등을 통해 보유한 기술자료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또한 “원사업자의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를 막기 위한 법 취지를 고려하면 하도급 업체가 작성·소유한 기술자료로 좁게 볼 필요가 없으며, 이런 행위가 중소기업들의 기술 혁신 의지를 꺾어 산업 경쟁력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므로 하도급 업체가 보유한 기술자료까지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해석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하도급법상 보호 대상을 판단할 때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에 대해 보유와 소유를 구분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공정위의 첫 심결”이라고 자평했다. 삼성SDI는 이밖에도 2015년 8월∼2017년 2월 8개 하도급 업체들에 이차전지 제조 등과 관련한 부품 제조를 위탁하고 납품 받을 때 기술자료 16건을 요구하면서 기술자료 요구 서면을 사전에 교부하지 않은 행위도 적발됐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해당 기술자료를 통해 다른 부품 등과의 물리적·기능적 정합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는 등 자료 요구 자체엔 정당한 사유가 있지만, 법정사항에 대해 사전 협의해 기재한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점에선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공정위는 이번 사안에 대해 삼성SDI 행위의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고의성이 없어 보여 검찰 고발 조처를 내리지는 않았다. 이에 공정위 관계자는 “삼성SDI 중국 협력사가 부품 제작의 편의를 위해 기술자료를 요구한 것”이라며 “영업비밀 유출에 해당돼 국부 유출과 관련된 사안인지에 대한 판단은 공정위가 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2022.04.18 16:54

2분 소요
[CEO DOWN l 구자은 LS그룹 회장] 하도급 기술 탈취, 물적분할 이슈로 홍역

CEO

구자은 회장이 이끄는 LS그룹의 계열사들이 잇단 논란에 휩싸였다. LS엠트론은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탈취해 자사의 특허로 등록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LS일렉트릭은 물적분할 이슈로 홍역을 앓고 있다. LS엠트론은 하도급 업체에서 받은 기술자료를 자신의 특허로 등록한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적발돼 제재를 받게 됐다. 공정위는 하도급 업체의 기술 자료를 유용한 LS엠트론과 쿠퍼스탠다드오토모티브앤인더스트리얼(쿠퍼스탠다드)에 각각 시정명령과 과징금 13억86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이달 3일 밝혔다. 쿠퍼스탠다드는 LS엠트론이 2018년 8월 법 위반과 관련된 사업 부문(자동차용 호스 부품 제조 및 판매사업)을 물적분할해 신설한 회사다. 과징금은 물적분할 전 LS엠트론의 행위에 대해 사업부문을 승계한 쿠퍼스탠다드에 부과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LS엠트론은 하도급 업체(A사)로부터 금형 제조 방법에 관한 기술자료를 받은 후 A사와 협의 없이 단독 명의로 특허를 출원·등록하는 데 사용했다. 현재 해당 특허는 쿠퍼스탠다드로 이전된 상태다. LS엠트론은 해당 특허가 자신들과 기술 이전계약을 체결한 독일 V사로부터 받은 기술이기 때문에 A사의 기술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정위는 “V사가 특허의 금형 제조방법과 동일한 방법으로 금형을 제작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금형 및 설계도면이 단 한 건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V사와 수급사업자가 LS엠트론에 각각 납품한 동일 모델의 금형 실물과 도면 비교 등으로 볼 때, V사가 특허의 제조방법에 따라 금형을 제조하지 않은 게 확인됐다고 공정위는 부연했다. 아울러 LS엠트론은 하도급 업체가 납품한 두 건의 금형에 대한 설계도면을 정당한 사유 없이 요구해 제공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한편 LS일렉트릭은 EV릴레이 사업을 물적 분할하기로 하면서 주주들의 반발을 샀다. EV릴레이란 전기차나 수소차를 구동하는 파워트레인에 배터리의 전기에너지를 공급·차단하는 스위치와 같은 부품이다. LS일렉트릭은 지난달 8일 EV릴레이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LS이모빌리티솔루션(가칭)을 신설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물적분할에 대한 주주들의 반응은 탐탁지 않다. LG화학·LG에너지솔루션처럼 핵심 사업부문의 물적분할 후 만일 ‘재상장’이 이뤄지면, 모회사의 가치가 하락해 기존 주주들이 손해를 보게 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임수빈 기자 im.subin@joongang.co.kr

2022.03.10 11:29

2분 소요
서면 없이 하도급 업체에 기술자료 요구한 LG전자, 공정위 제재

산업 일반

LG전자가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 하도급 업체에 기술자료를 요구한 것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재를 결정했다. 공정위는 하도급 업체들에 제품 제작 도면 등 기술자료를 받으면서 요구 서면을 제공하지 않은 LG전자에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4400만원을 부과한다고 7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LG전자는 2015년 6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냉장고·오븐 등 가전제품의 부품 제작을 위탁한 5개 하도급 업체들에 구두 또는 이메일을 통해 기술자료 16건을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요구 목적, 권리귀속 관계, 대가 및 지급 방법 등을 정한 서면을 주지 않았다. 하도급법에는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수급사업자에게 기술자료를 요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정당한 사유가 있어도 수급사업자의 기술 보호를 위해 지켜야 할 핵심 사항을 담은 요구서를 미리 제공해야 한다. 공정위는 “품질 확보와 관련한 자료도 하도급법이 보호하는 기술자료”라며 “하도급 업체가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를 사용해 기술자료를 작성한 경우에는 형식과 상관없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2022.03.07 14:08

1분 소요
중기 기술 훔쳐 특허 낸 LS엠트론…기술유용행위 최대 제재

산업 일반

하도급 업체의 기술을 유용해 특허까지 출원한 LS엠트론과 쿠퍼스탠다드오토모티브앤인더스트리얼(이하 쿠퍼스탠다드)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거액의 과징금 제재를 받았다. 공정위는 하도급 업체의 기술 자료를 유용한 LS엠트론과 쿠퍼스탠다드에 각각 시정명령과 과징금 13억86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3일 밝혔다. 쿠퍼스탠다드는 LS엠트론이 2018년 8월 법 위반과 관련된 사업 부문(자동차용 호스 부품 제조·판매사업)을 물적분할해 신설한 회사다. 공정위는 물적분할 전 LS엠트론의 행위에 대해 사업부문을 승계한 쿠퍼스탠다드에만 과징금을 부과했다. LS엠트론에는 향후 하도급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행위를 하지 말고, 정당한 사유가 있어 요구하더라도 반드시 서면 방식을 취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렸다. LS엠트론은 자동차 엔진 출력을 향상하는 기능의 터보와 인터쿨러, 엔진을 연결하는 터보차저호스를 생산해 GM 등 완성차 업체에 납품했다. 이때 터보차저호스 생산에 필요한 금형은 수급사업자 A사에 제조 위탁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LS엠트론은 수급사업자 A사로부터 금형 제조 방법에 관한 기술 자료를 제공받고, 품질 검증 목적으로 제공받은 A금형 설계도면 중 일부를 수급사업자와 협의 없이 자신 단독 명의로 2012년 특허를 출원·등록하는 데 유용했다. LS엠트론은 해당 특허가 자신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독일 소재 자동차용 고무호스 생산업체 V사의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LS엠트론은 V사가 특허의 금형 제조 방법과 동일한 방법으로 금형을 제작해온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금형 및 설계도면을 단 한 건도 공정위에 제출하지 못했다. 또 V사와 수급사업자가 LS엠트론에 각각 납품한 동일 모델의 금형 실물 및 도면 비교 등으로 볼 때, V사가 특허의 제조 방법에 따라 금형을 제조하지 않은 게 확인됐다. LS엠트론은 하도급업체에 A·B 모델 등 2건의 금형 설계도면을 정당한 사유 없이 요구해 받기도 했다. LS엠트론은 품질 검증 목적으로 A 모델 금형 설계도면을 요구해 제공 받아 정당한 사유라고 주장했지만, 공정위는 품질 문제가 입증되지 않은 데다 해당 금형 설계도면이 특허에 사용된 점 등을 고려하면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B 모델 금형 설계도면 요구에 대해서도 공정위는 제조위탁의 목적과는 무관한 요구 행위로 위법성이 인정됐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이 하도급업체의 기술자료를 받은 후 협의 없이 단독 명의로 특허를 출원·등록하는데 유용한 행위를 공정위가 제재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과징금 또한 기술유용 행위에 대한 과징금 중 역대 최대 규모다. 다만 공정위는 공소시효가 지나 검찰 고발 조치는 하지 않았다. 안남신 공정위 기술유용감시팀장은 “사건 발생 시기가 5년이 넘어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형사처벌은 어려워 고발 조치는 하지 못했다”며 “앞으로도 대기업이 하도급 거래 과정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기업의 기술을 유용하는 행위를 집중 감시 및 제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LS엠트론 측은 “공정위 의결서를 받아본 뒤 향후 입장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2.03.03 14:53

2분 소요
중소기업 기술 탈취 막을 상생협력법 18일부터 시행

산업 일반

중소기업이 보유한 기술 탈취를 근절하기 위해 18일부터 비밀유지계약을 의무화한다. 이와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도 처음 시행한다. 18일 정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이 같은 내용 등을 담은 개정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을 이날부터 시행한다. 개정 상생협력법은 수·위탁거래 관계의 기업이 기술자료를 주고받을 때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은 대기업에는 500만원, 중소기업에는 300만원의 과태료를 각각 부과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위탁기업이 자기의 구체적 행위에 대한 증거자료 등을 제시하도록 했다. 수탁기업의 기술 침해 입증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규정이다. 특히 수·위탁 거래 관계에서 발생한 기술탈취 행위에 대해 피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도 신설했다. 이번 개정 상생협력법을 통해 수탁·위탁거래에서 발생한 중소기업의 기술자료 유용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처음으로 시행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간 정부는 중소기업 기술보호를 위해 여러 대책을 마련‧시행했으나 단편적인 법‧제도 개선에 머무르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현장에서도 대기업이 납품업체인 중소기업에게 기술자료를 요구하고 제공받은 기술자료를 이용해 납품업체를 이원화한 후, 기존에 납품하던 중소기업에게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거나 발주 자체를 중단하는 사례가 계속됐다. 이에 중기부는 이번 상생협력법 시행을 계기로 중소기업기술 침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소송절차에서도 중소기업이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2022.02.18 08:00

1분 소요
하도급업체에 기술자료 불법 요구한 아모텍에 과징금 철퇴

산업 일반

안테나 부품 등을 제조·판매하는 삼성전자 1차 협력사 아모텍이 법에 정해진 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 하도급 업체에 도면 등 기술자료를 요구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게 됐다. 8일 공정위는 중소업체에 별도로 요구서를 교부하지 않고 기술자료를 받으며 하도급법을 위반한 아모텍에 시정명령과 1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아모텍은 2016년 1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10개 중소 하도급 업체에 e메일이나 구두로 안테나 부품 관련 도면 등 기술자료 38건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모텍은 기술자료를 요구하기 전 권리 귀속 관계, 비밀유지 사항, 대가 등을 정한 서면을 하도급 업체에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도급법 제12조의3은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수급사업자에게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정당한 사유가 있더라도 기술자료 명칭, 요구 목적 등이 적힌 서면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는 기계업종에 이어 전자업종에 대해서도 수급사업자로부터 제공받는 부품 도면 등이 하도급법이 보호하는 기술자료에 해당되며, 원사업자가 이를 요구하는 경우 기술자료 요구서를 제공해야 함을 명확히 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2022.02.08 15:35

1분 소요
공정위, 하도급법 위반 삼성중공업에 과징금 5200만원 부과

산업 일반

삼성중공업이 하청업체들에게 기술자료를 요구하면서도 관련 서면을 제공하지 않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제재를 받게 됐다. 18일 공정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지난 2016년 1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조선기자재 제조를 위탁하고 납품받는 과정에서 63개 중소업체에게 관련 도면 등 기술자료 396건을 요구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은 권리 귀속 관계, 비밀유지 사항, 대가 등을 정한 서면을 사전에 제공하지 않았다. 이에 공정위는 삼성중공업에게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5200만원을 부과했다. 하도급법상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를 입증했을 때만 하도급업체에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할 수 있다. 단 기술자료 요구에 정당한 사유가 있더라도 양자 간 요구목적, 권리 귀속 관계, 비밀유지에 관한 사항 등을 명확히 해야 하고 사후 분쟁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위해 기술자료 요구서를 제공해야 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이 발주처가 요구하는 사양, 성능, 기준의 충족 여부를 확인하는 목적으로 관련 기술자료를 요구한 것이므로 요구의 정당성은 인정한다"면서도 "사전에 기술자료 요구서를 발급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지윤 기자 park.jiyoun@joongang.co.kr

2021.10.18 14:21

1분 소요
중소기업 “내 아이디어 이젠 안전할까”

산업 일반

“대기업이 납품 조건으로 기술 자료를 요청해 어쩔 수 없이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대기업은 그 자료를 경쟁업체에게 제공해 가격경쟁을 시킨 후 우리에 납품가격 인하를 요구했습니다.” 특허청이 밝힌 한 사례로 A사 대표가 기술 탈취 피해를 호소한 내용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0월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현대중공업에 시정 명령과 과징금 2억4600만원을 부과했다. 현대중공업은 특정 납품업체를 지정한 선주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기존 선박 조명기구 납품업체의 기술 자료를 선주가 지정한 업체에게 전달했다. 또한 지정 업체가 선박 조명기구를 납품할 수 있도록 돕는 등 기존 수급 사업자의 기술 자료를 유용했다. 입찰 과정에서 하도급 업체의 기술 자료를 제3의 업체에게 제공해 납품 가능성을 타진하고 납품 견적을 받는 데 사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존 업체들은 단가 인하 압박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알면서도 당한다'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편취는 산업계의 해묵은 문제다. 피해를 당한 일부 중소기업들은 문제를 제기하며 목소리를 높여보기도 한다. 하지만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계 구도를 의식해 결국 기업 생존을 위해 목소리를 거둬들인다. 중소기업중앙회는 3월 8일 성명을 통해 “지난 5년간 기술 탈취 피해 기업은 246개에 이르며 피해금액이 5400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보호하기 위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 2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은 거래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사용해 아이디어 제공자에게 손해를 입히면 손해액의 최대 3배되는 배상액을 물리도록 했다. 특허청은 이번 개정의 취지에 대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정당한 대가 없이 사용하는 기술 탈취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특허청은 이와 함께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있는 엘타워에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 기본계획 수립 추진단’ 출범식을 열었다. 추진단은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라 올해 처음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기본계획은 기술·영업비밀 유출 차단, 데이터 무단사용 금지 등 새로운 유형의 부정경쟁행위를 근절하고 지식재산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국가차원의 종합계획이다. 추진단은 산업계·학계·법조계 등 30여명의 민간위원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위원들은 앞으로 기술보호, 부정경쟁방지, 디지털·국제협력 등 3개 분과에서 활동하게 된다. 신수민 인턴기자 shin.sumin@joongang.co.kr

2021.04.26 09:42

2분 소요
[현대중공업의 공허한 ‘동반성장’ 구호] ‘조선업계 최초’ 홍보에 ‘액션일 뿐’ 의심도

산업 일반

구조조정 칼자루 인물이 초대 동반성장실장... ‘하도급법 위반 논란’ 해결 의지 보여야 지난 3월 18일 현대중공업은 “대표이사 직속 ‘동반성장실’을 신설하고, 협력사와의 새로운 상생모델 구축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어려운 조선업황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협력사를 돕겠다는 내용으로, 특히 현대중 측은 “대표이사 직속은 조선업계 최초”라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은 동반성장실을 통해 협력사의 인력수급과 기술지원 등을 지원해 협력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그러나 현대중공업의 ‘동반성장 구호’에 대한 재계 안팎의 반응엔 온도차가 드러난다. 협력사와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를 나타낸 것은 박수 받을 일이지만, 현시점에서 동반성장을 내세운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하도급법 위반으로 소송에 얽혀 있는데, 이런 이슈를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신임 동반성장실장에 대해서도 ‘동반성장’의 진정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 '동반성장실’ 이면엔 하도급 기술유용·갑질 논란 산적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이 갑작스레 동반성장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조선업이 바닥을 찍은 후 조금씩 살아나는데, 함께 성장해야 할 협력사들은 여전히 어려움이 크다”며 “이를 개선하고자 기존 조선사업본부 내에 있던 조직을 격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와 달리 노조와 일부 협력사들은 현대중공업이 ‘협력사 기술탈취 의혹’ 등과 관련한 이슈를 무마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조치가 아니냐고 의심한다. 현대중공업노조 관계자는 “동반성장실이 현대중공업의 불공정 하도급거래 관행을 개선하려고 만들어 진 것이라면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구체적인 추진 내용을 보면 인력양성, 기술지원 등만 언급하고 있다”며 “사실상 하도급 불공정거래 이슈를 덮으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실제 현대중공업은 다양한 하도급 불공정 거래로 행정처분을 받았으며, 재판에도 연루돼 있다. 현대중공업과 소송전을 진행 중인 업체들은 앞서 이뤄진 기술탈취와 하도급법 위반 등에 대한 반성과 개선은 없이 ‘동반성장’을 강조하는 현대중공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현대중공업으로부터 기술탈취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삼영기계가 대표적이다. 삼영기계는 현대중공업이 자사 기술을 탈취해 제 3업체에 양산하게 하고 삼영기계에는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며 거래를 끊었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대전지검 특허범죄조사부는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법인과 임직원 3명을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했다. 법인에는 벌금 1억원을, 임직원 3명에게는 벌금 300만~1000만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현대중공업이 2015~2016년 선박 엔진에 들어가는 필수 부품인 피스톤·실린더 관련 기술자료를 하도급업체인 삼영기계에 9차례에 걸쳐 부당하게 요구했고, 그 결과 넘겨받은 기술자료를 다른 하도급업체에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대전지검은 같은 사건의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을 내렸는데, 이에 대해 삼영기계는 재정신청을 한 상태다. 한국현 삼영기계 대표는 “검찰은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삼영기계의 기술인 것을 모른 채 기술을 유출했기 때문에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는데, 이를 이해할 수 없어 재정신청을 했다”고 설명했다.한 대표는 “중소 협력사들이 무슨 기술력이 있다고 기술 탈취를 주장하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현대중공업이 엔진 개발에 나서기 훨씬 전부터 핵심부품인 피스톤 헤드라이너를 국내 유일하게 개발해 글로벌 업체에 납품한 회사”라며 “현대중공업에서 선박엔진 국산화 개발을 요청했고 이에 응해 개발을 해줬는데 기술까지 탈취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삼영기계는 선박용 엔진 글로벌 1위 업체인 독일 만(MAN)사의 협력업체로, 글로벌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지난해 말엔 중소기업벤처부가 선정하는 ‘강소기업100’에 선정되기도 했다.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2월 불공정하도급거래와 조사방해 행위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공정위는 현대중공업이 하도급업체들에게 선박·해양플랜트·엔진 제조를 위탁하면서 사전에 계약서를 발급하지 않고 하도급 대금을 부당하게 결정한 행위에 대해 20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한 공정위의 현장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혐의로 한국조선해양법인과 임직원 2명에 각각 과징금 1억원, 2500만원을 부과했다.이 같은 문제는 3월 24일, 25일 각각 열린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지주 주주총회에서도 언급됐다.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인 가삼현 사장을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것과 관련해 노조와 정치권 일각에서 제동을 걸고 나선 것. 김종훈 국회의원(민중당)과 노조는 “가삼현 사장은 현대중공업대표이사로서 하도급업체 기술자료 유용 사건에 관련됐고 공정위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해 추가로 1억원의 과태료를 받고 고발조치 된 인물”이라며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이사 선임건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나도 물러나겠단 약속에 희망퇴직 했는데…” 현대중공업의 동반성장실에 대한 의구심은 초대 실장으로 임명된 김숙현 부사장의 자격논란으로도 이어진다. 그는 2018년 현대중공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칼자루를 쥐었던 인물이다. 당시 일감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던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사업부는 구조조정을 실시해, 2018년 2분기 말 기준 3296명에 달했던 정규직 직원은 같은 해 연말 2585명으로 줄었다. 당시 해양플랜드사업부 대표를 맡았던 김 부사장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진행되던 나스르(NASR) 프로젝트를 끝내는 대로 회사를 떠나겠다고 밝히며 희망퇴직 실시의 명분을 내세웠다. 그는 2018년 8월 발표한 담화문에서 “일이 없는 만큼 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인력감축을 위한 희망퇴직을 실시하겠다. 저 역시 현재 진행 중인 나스르 공사의 아부다비 해상작업과 과다 공사비 문제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 책임지고 물러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이후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사업부에선 많은 감원이 이뤄졌고, 김 부사장은 그해 연말 인사에서 나스르 프로젝트 대표로 발령났다. ‘나스르 공사를 마무리하고 물러나겠다’던 약속이 지켜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1년 반여가 지나 김 부사장은 컴백했다. 그것도 협력사와 동반성장을 책임지는 ‘동반성장실’ 수장 자리를 맡았다.이를 두고 일선현장에선 비난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대중공업노조 관계자는 “회사를 생존시켜 미래 세대에게 일자리를 남겨주자는 김 부사장의 말에 희망퇴직을 한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정작 당사자는 아무 일 없었던 듯 회사로 돌아와 ‘동반성장’을 말하는 게 이치에 맞느냐”며 “게다가 김 부사장은 해양 플랜트 부문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쌓았는데, 조선 분야가 다수인 협력사를 지원하는 조직을 맡는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이같은 지적에 현대중공업 측은 “김 부사장의 동반성장실장 임명은 회사의 인사 프로세스에 따른 것으로, 김 부사장의 성과 등을 공정히 평가해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동반성장실은 조선분야 협력사 뿐 아니라 해양플랜트 분야의 협력사 지원도 모두 총괄하는 부서”라고 설명했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2020.04.0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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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 압박하는 원가공개 규제] 공정경제 앞세워 툭하면 “원가 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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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프랜차이즈·통신 업계 등 압박… 전문가들 “시장경제 포기하겠다는 발상” 비판 “원가 공개가 개혁적인가? 장사하는 것인데, 10배 남는 장사도 있고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고, 결국 벌고 못벌고 하는 것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경제계의 압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6월 아파트 분양가 원가 공개를 반대하면서 발언한 내용이다. 그가 말한 소신은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시장의 자율성을 대변한 발언이었다. 그런데 14년 여가 흐른 지금, 노무현의 후계자라 불리는 문재인 정부에서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최근 정부가 연이어 원가 공개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올해부터 공공택지에서 분양하는 아파트의 분양원가 공개 항목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선 가맹사업자의 제품 원가 공개가 올 초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지난해 이동통신요금 원가 공개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또 택배 업체가 택배요금 원가를 국토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 개정안이 입법예고됐다가 업계의 반발에 무산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원가 공개 규제에 대해 실효성이 떨어지고, 시장의 자율조절 기능만 마비시킨다고 우려한다.정부발(發) 원가 공개 ‘폭풍’에 휩싸인 대표적인 영역은 부동산 시장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1월 15일 공공택지 내 공공·민간아파트의 분양가 공시 항목을 현행 12개에서 62개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주택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난 1월부터 개정안이 시행돼 토목비와 건축비 항목에 포괄적으로 들어 있던 조경 공사, 정화조 공사, 타일 및 도배 공사, 흙막이 공사 등 62가지가 세부 내역으로 표시된다. 땅값은 물론 건축비의 상세 내역을 공개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서울시 산하 SH와 경기도 산하 경기도시공사도 비슷한 수준으로 분양 아파트 원가를 공개하기로 했다. ━ 프랜차이즈 차액가맹금 정보 공개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차액가맹금 공개가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4월 공정위는 가맹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가맹본부가 공정위에 제출하는 정보공개서에 차액가맹금 정보를 함께 공개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부터 가맹본부는 구입 요구 품목별 차액가맹금 수취 여부, 가맹점 1곳당 전년도에 가맹본부에게 지급한 차액가맹금의 평균 액수, 가맹점 1곳당 전년도 매출액 대비 차액가맹금의 평균 비율, 주요 품목별 전년도 공급 가격의 상·하한 등을 공개해야 한다. 정부는 당초 가맹점주가 본부로부터 반드시 사야 하는 ‘필수품목’ 가격을 전부 공개하려 했다. 하지만 반대가 거세지자 지금은 매출액 기준 상위 50% 상품으로 한정했다.이동통신 업계에는 이미 정부의 원가 공개 후폭풍이 불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2세대(2G)·3세대(3G) 통신비 원가 자료를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결 후 자진해서 LTE 원가 자료까지 공개하기로 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지난해 8월 정부로부터 받은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이동통신 3사의 2G, 3G, LTE 원가 관련 회계자료와 인가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SK텔레콤 등 이통사가 막대한 초과이익을 거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통 업계는 모호한 기준에 따른 주장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회에는 통신비 변경 때 소비자 및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심의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도 발의됐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스마트폰 출고가 인하를 위해 제조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은행 가산금리 원가내역도 뜨거운 감자다. 지난해 금감원 조사에서 일부 은행들이 가산금리 인하 요인이 발생했음에도 인하하지 않고 수년 간 고정값을 적용하거나, 산출 근거 없이 불합리하게 가산금리를 부과한 사례 등이 적발되면서 금융당국이 대출금리 산정내역 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7월 ‘은행권 대출금리 중에서 가산금리(원가 내역)도 공개해야 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느 정도 들여다보는 것이 맞다”고 답했다. 그는 “은행들의 영업 노하우나 기밀사항을 건드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점은 유념하겠다”고 단서를 달긴 했지만 ‘대출금리 모범규준’을 개정하겠다고 언급하는 등 가산금리 체계를 손댈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밝혔다.윤 원장은 보험상품의 사업비(수수료)와 사업비를 감안한 실질수익률 공개도 공론화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소비자가 보험상품을 제대로 비교해 선택하기 어려운 것도 불완전판매가 많은 이유 중 하나”라며 “소비자들이 보험료의 어느 정도가 보험사의 사업비로 쓰이는지 알고 보험상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비 공개가 보험상품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사업비가 공개되는 보험상품은 저축성보험과 자동차보험뿐이다. 저축성보험은 전체 납입보험료의 약 8~15%, 자동차보험은 18% 전후가 사업비로 나간다. 종신보험·암보험·어린이보험 등의 보장성보험은 사업비가 공개되지 않는다.물류·운송 업계에서는 택배요금을 두고 정부가 나서서 무리하게 원가 공개를 요구했다가 민간의 반발에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국토부는 화물을 집화·분류·배송하는 운송사업자(택배 업체)에도 신고요금제를 도입하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을 추진했다. 택배요금을 택배 업체가 국토부 장관에게 신고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통해 단가(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해 택배 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입법예고 후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법제처 등 관계기관 협의에서 택배요금 신고제는 없던 일이 됐다.최근 정부의 강제 원가 공개는 산업을 막론하고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원가 공개 카드를 꺼내면서 내세우는 이유는 비슷하다. 원가를 공개해 소비자가격을 내리겠다는 것. 다른 제품과 비교하거나 공개 내역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쉬워져 결과적으로 제품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이른바 ‘갑을’ 관계를 이용해 이득을 내는 관행을 없애겠다는 목적도 있다. 프랜차이즈 차액가맹금 공개에 대해 정부는 “그간 본부-점주 간 물품 공급 계약에서 마진과 관련된 정보가 없었다”며 “정보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을(乙)’인 점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시장 가격 낮추고 갑을 관행 해소하겠다지만… 그러나 규제 대상이 되는 사업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분야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이 항변하는 근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반시장적 규제라는 측면이다. 원가에는 비용 절감을 위한 기업의 경영전략이 녹아 있는데, 이를 밝히라는 것은 기업의 핵심 비밀을 공개하라는 뜻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인과 국가에 사생활과 국가 기밀을 보장하는 것처럼, 기업에게도 최소한으로 보장돼야 할 영업비밀이 있다”며 “이 영역을 침해하는 건 시장경제를 포기하겠다는 것이고, 경제를 망가뜨리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이어 “가령 통신요금의 경우 마케팅 비용처럼 일정 수준의 정보는 공개할 수 있겠지만, 원가 같은 경우는 도를 넘어선 영역”이라고 말했다.이윤 낼 여지를 주지 않으면 기업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문철우 성균관대 경영학부 교수는 “원가를 절감해 경쟁력을 높인 업체에 정부가 나서서 페널티를 주는 격이고 이윤을 죄악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원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기업에 도리어 불이익이 돌아온다면 기업들의 일자리·투자 창출 의지가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가격을 낮춰 소비자후생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경쟁을 저해하는 요소가 돼 기업들의 고용·투자를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원가 공개가 가격 하락이라는 결과물을 내지 못할 수 있다. 원가 절감을 하려는 기업의 혁신 동기를 제거해 원가 자체가 오르면, 정책 의도와 달리 상품·서비스 가격이 오히려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원가 공개가 품질이나 소비자 편익 저하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가령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의 경우, 신규 주택 공급이 줄고, 값싼 자재를 사용해 아파트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해당 업계의 출혈경쟁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특히 원가와 함께 마진률이 공개되면, 이미 경쟁이 치열한 업종에서 제품·서비스 혁신이나 경쟁력 제고보다는 '제 살 깎아먹기'식 단가 후려치기만 늘면서 업계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 “해서는 안 되고, 할 수도 없어” 산업계에서는 정부의 원가 공개 규제를 두고 “정부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규제 행위”라고 비난한다. 정부가 지난해 5월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낮추기 위해 하청 업체에 회계 등 각종 경영정보를 요구하는 관행을 불법으로 다루고 제재하기로 한 것을 두고 나오는 얘기다. 당시 홍종학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은 “기술자료를 요구하거나 납품단가를 깎기 위해 각종 경영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범죄행위”라며 “이런 관행으로 중소기업 경쟁력이 약해졌고 결국 대기업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주어만 바뀌었을 뿐인데 기업이 하면 범죄행위인 것이 정부가 하면 상생조치로 바뀐다”고 하소연했다.규제의 정당성과 함께 비현실성도 자주 거론되는 문제다. 일단 원가 산정이 어렵다는 점이다. 업종별로, 또 동종 업계 안에서도 업체에 따라 가격 산정 방식이나 사업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인 기준으로 원가를 공개하면 왜곡된 정보가 제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관련 부처 협의 과정에서 무산된 택배요금 원가 공개도 이런 점이 걸림돌이 됐다. 갈수록 다양한 형태의 택배 물량이 쏟아져 일괄적인 기준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시민단체에서 공개한 통신료를 두고 이통사들이 반발하는 점도 이 부분이다.경제학계에서는 근본적으로 무엇을 원가로 볼 것인지도 모호하다고 말한다. 특히 원가에 반영되는 디자인, 브랜드, 위험 부담, 혁신성 등 무형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문제다. 가령 제약사가 개발하는 신약의 경우 원가에는 그간 들인 연구·개발 비용과 함께 시간, 실패 위험에 대한 부담, 초기 개발자로서의 보상이 반영된다. 그런데 단순한 원가 공개 방식으로는 제품 생산에 들어간 화학제품과 인건비, 공장 가동비용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가격에는 시장의 크기와 특성, 해당 제품의 희소성 등도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산 중턱이나 정상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스크림과 막걸리 한 잔의 가격이 마트와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가격과 다른 원리다.적정 이윤의 수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이 제품으로 얼마를 남겨야 적당한가’를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 ‘통큰치킨’으로 촉발된 치킨 가격 공방이다. 롯데마트가 프랜차이즈 대비 절반 수준의 치킨을 내놓으면서 ‘그동안 치킨집이 얼마나 남겨 먹은 것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자 치킨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스스로 원가를 공개하며 “대형마트는 치킨을 ‘미끼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역마진으로도 팔 수 있는 것인데, 단순히 가격만 비교해 치킨집이 폭리를 취한다고 모는 건 부당하다”면 반발했다. 당시 인터넷 게시판에서 한 자영업자는 “정성껏 만들어 3000원 남기면 부당한거고, 대충 만들어도 1000원 남기면 미덕이 되는 건가”라며 일괄적인 원가와 이윤 수준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전문가들은 “적정 가격을 찾으려는 의도가 있더라도, 그 방법은 인위적인 가격통제가 아니라 독과점 구조의 해소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정 업계에서 업체가 폭리를 취할 수 있는 건 독과점 구조에서 경쟁의 압력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산업에선 자유로운 진입과 탈퇴만으로도 최적의 가격이 산출될 수 있는데, 일부 산업에서 정부가 진입을 막고 수량을 통제하면서 가격을 두고 불만이 나오니까 억지로 가격까지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가공개를 두고 크게 논란이 되지 않는 분야도 있다. 공공요금이다. 영국·동유럽 등 일부 국가의 경우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이 공급하는 전력·가스 등의 제조원가는 공개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가격이 책정된다. 국내에서도 2011년부터 전기, 열차, 도시가스 도매, 광역상수도 도매요금 등 6개 주요 공공요금 원가를 공개한다. 그러나 이 역시도 독과점 여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 결과다. 공기업 한 곳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시장 경쟁 요금이 얼마인지 알 수 없으므로 부득이하게 요금을 원가에 연동시킬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하나의 공기업을 통해 이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통신 요금 원가 공개에 대한 법원 판결의 주요 논거 역시 이동통신 서비스가 전파 및 주파수라는 공공재가 한정적인 사업자에게 제공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 가격 통제보다 독과점 구조 개선이 중요 과거에도 원가 공개는 정당성과 실효성 문제 때문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때 ‘분양가 원가 공개’로 아파트 가격을 낮추겠다고 공약하며 군불을 지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부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그러자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원내대표가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권 내부의 반발에 밀려 노 전 대통령은 소신을 접고 한발 물러섰다. 그래서 나온 게 일종의 우회적인 원가 공개 방식인 ‘분양가 상한제’다. 하지만 이후 건설사들이 주택 공급을 줄이면서 전세대란이 일어나는 등 부작용이 커지자 제도는 결국 껍데기만 남았다.이명박 정권 때도 ‘원가 공개’ 카드로 기업을 압박했다. 2011년 이른바 ‘기름값 소동’이 그 예다. 당시 국제유가가 내린 만큼 국내 휘발유 가격이 떨어지지 않자 이 전 대통령은 “기름값이 묘하다”는 화두를 던졌다. 윤증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유소들은 가격이 공개돼 투명한 경쟁을 하지만 정유사들은 그러지 않는다”며 거들었고,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은 “회계사 출신인 내가 직접 기름값 원가를 계산해 보겠다”며 총대를 멨다. 몇달 간 정유사들을 압박하고 조사에 나섰지만 성과는 없었다. 정유 업체를 닦달해 3개월 시한으로 L 당 100원씩 강제로 기름값을 내려 체면치레한 게 전부다. 되레 ‘기름값의 절반 이상인 세금이 주범’이라며 유류세를 인하하라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

2019.02.1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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