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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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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경제도 전쟁도, '트럼프 입'에 달렸다

국제 경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제47대 대통령에 재선됨에 따라 전 세계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가져올 국가전략과 대외정책, 그리고 궁극적으로 국제질서의 변화를 우려하고 있다. 이것이 곧 세계 경제의 흐름 자체를 바꿀 수 있어서다. 또한 장기화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중동 지역의 두 전쟁은 여전히 세계 경제에 있어 가장 큰 위험요소로 작용 중이다. 2025년 글로벌 경제를 좌우할 변수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2기 트럼프 '자국 우선주의' 강화, 여파는?트럼프가 돌아왔다. 그는 그동안의 미국 대통령들과는 확연히 색깔이 다른 지도자다. 강력한 관세 정책 및 보호무역주의를 바탕으로 언제나 자국에 최우선한 정책을 강조한다. 그의 이런 기조는 이번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그는 선거 때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는 경제적 내셔널리즘의 특징을 보인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또 어떤 자국 보호주의 제도를 도입할 지 전 세계는 긴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선 미국 내 제조업 육성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전망하는 분위기다. 정구연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제주의 질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라며 "이는 지금의 중국이 국제주의 질서 속에서 강대국으로 부상한 반면,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미국의 제조업이 약화했다는 분석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 캠프는 이번 대선에서 경합주였던 미시간·펜실베이니아·조지아·위스콘신 등의 블루컬러 저소득 계층을 겨냥한 정책들을 구체화했다. 또 우선적으로 그의 정책은 미국의 제조업 기반 확충을 목표로 하며, 미국의 국경보호, 그리고 중동에서의 전쟁 종식을 선거 동안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정 부교수는 "제조업 기반 확충 정책은 미국으로의 온쇼어링, 해외 에너지 의존도 축소, 해외 투자 기업 보조금 철폐, 인공지능 등 신흥기술 관련 탈규제를 통한 미국의 경쟁력 확보 등의 정책으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전쟁 역시 올해 글로벌 경제를 좌우할 핵심 요소 중 하나다. 2022년 2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곧 3년이 된다. 이란은 지난해 10월 1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시설을 공격하며 중동전쟁을 일으켰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제2차 대전 이후 세계경제에 가장 위험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2022년 러·우 전쟁이 발생하자 국제 곡물·에너지 시장이 들썩거리는 등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줬다. 러시아는 서방국들의 대러시아 경제제재에 맞대응하기 위해 유럽에 가스 수출을 중단했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 에너지 공급난이 발생했고 추운 겨울을 보내야만 했다.에너지 수입원을 러시아에서 중동 지역으로 바꾸는 작업도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발생한 러·우 전쟁은 세계 물가를 상승시키는 데 일조했다. 중동전쟁 역시 유가 상승의 기폭제가 됐다.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두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푸틴과의 친분을 과시해 왔다. 그는 당선될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엄태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전략·정보학과 교수는 "트럼프 정부는 바이든 정부와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러시아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종전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크라이나 정부는 세계패권 국가인 미국의 지원 없이 전쟁을 수행하기가 어렵다"며 "푸틴도 트럼프와 대화할 의지를 표명하고 있으므로 향후 러·우 전쟁이 끝날 가능성이 크다. 전쟁이 종료된다면 에너지난, 곡물 가격 인상은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중동전쟁도 화해 국면으로 돌입한 모양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내가 당선되면 대통령 취임 전까지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 달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지난 26일(현지시간) 네타냐후 총리는 영상 연설을 통해 "미국의 제안으로 이란과 휴전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13개월만의 휴전이다. 그는 "우리는 미국의 완전한 이해 속에 레바논에서 완전한 행동의 자유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엄 교수는 "트럼프는 현재 진행되는 두 개의 전쟁을 종식하는 데 여러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전쟁이 끝날 경우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돼 글로벌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AI 시대 전환’ 공식화...어떤 변화 올까2025년 글로벌 경제를 움직일 변수로는 실물 경기, 지정학적 분쟁, 글로벌 공급망 변화, 미국 대선 후 정책, 디지털 기술혁신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AI와 로봇 기술은 꼭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요소다. 2024년 노벨 과학상 주역도 AI였다. 노벨 과학상 3개 분야 중 물리학, 화학 등 2개 분야를 석권했다. 노벨위원회가 AI 연구에 상을 몰아준 것은 ‘AI 시대 전환’의 공식화로 해석될 수 있다. 이와 관련 최연구 부경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겸임교수는 올해 AI·로봇 기술 가속화가 크게 ▲생산성 향상 ▲노동시장 재편과 일자리 지형 변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등장과 산업 구조 변화 ▲소비 패턴과 트렌드 변화 등을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 교수는 "2025년에는 AI·로봇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가시화하면서, 긍정적, 부정적 영향 및 부작용이 점점 더 뚜렷해질 것"이라며 "생산성 향상, 산업 구조 개편은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노동시장 재편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계별 대응책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024.12.02 07:00

4분 소요
'상부상조' 러시아-중국 경제 의존↑…양국 교역액 300조원 첫 돌파

국제 이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가 심화하면서 러시아 시장을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중국 매체 참고소식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중국 해관총서(세관) 통계상 중국과 러시아의 지난해 교역액은 2401억1000만 달러(약 316조원)로, 전전년 동기보다 26.3% 증가했다. 이 교역액은 역대 최대 규모다.양국 교역이 2000억 달러(약 263조원)를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중·러 간 전년 대비 교역액 증가율은 2021년 35.8%, 22년 29.3%에 이어 3년 연속 20% 이상을 기록했다.중·러 교역액은 2021년 1468억8000만 달러(약 193조원)에서 2022년 1900억 달러(약 250조원)로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000억 달러도 돌파했다. 참고소식은 "양국의 공동 노력으로 중·러 교역액 2000억 달러 달성 목표가 예상보다 앞당겨졌다"고 전했다.중국은 자동차와 스마트폰, 공업 장비와 특수 설비, 완구, 에어컨과 컴퓨터 등 전자제품을 주로 수출했고,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 구리, 목재 등 원자재와 해산물 위주로 수입했다.이에 지난해 중국의 대러시아 수출은 전년 대비 46.9% 급증한 1109억7000만 달러(약 146조원)였으며, 수입은 12.7% 증가한 1291억4000만 달러(약 170조원)를 기록했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자동차에서부터 컴퓨터 칩까지 필요한 수입품의 조달처를 서방에서 중국으로 바꾸면서 서방 제재와 현지 진출 서방 기업들의 철수로 생긴 수입 공백을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한편, 지난해 중국의 전체 수출은 3조3800억2000만 달러(약 4444조원)로 전년 대비 4.6% 줄었고 전체 수입은 2조5568억 달러(3362조원)로 전년보다 5.5% 감소했다.중국의 연간 수출이 전년보다 감소한 것은 2016년 이후 처음이다.

2024.01.13 16:22

2분 소요
미국, 러시아 군산복합체 거래하는 ‘제3국 금융기관’도 제재

국제 이슈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 러시아의 제재 회피를 차단하기 위해 러시아 군산복합체와 거래하는 제3국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세컨더리 제재(제3자 제재)를 처음으로 시행한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밝혔다. 세컨더리 제재는 제재 대상 국가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제3국 기업을 제재하는 방식이다.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침공한 뒤 러시아 경제 폭탄을 쏟아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져도 러시아가 경제적으로도 버티고 있어 이번에 경제 제재를 더 강화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에 미국이 세컨더리 제재를 도입하려는 것은 제3국 금융기관을 활용해 러시아 군산 복합체가 제재를 우회해 우크라이나 전쟁 물품을 조달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NSC 고위 당국자는 전화 브리핑에서 “새 행정명령은 러시아 군산복합체에 물품을 공급하는 것을 중단하거나 러시아와의 거래를 중단하지 않는 금융기관을 추적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게 된다”라고 말했다.미국은 현재 러시아가 소규모 기업들을 통해 물품을 러시아로 반입할 수 있도록 조력자(facilitator)를 구축했다고 보고 있다. 이번에 세컨더리 제재를 하게 되면 이런 기업들에 연결된 금융 시스템을 차단하는 효과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제재는 중국, 인도 등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제재에 적극적이지 않은 국가들에 더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유럽연합(EU)과 한국, 일본 등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국제사회 제재에 동참하면서 이들 국가의 기업과 러시아 기업간 사업이 중단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다.

2023.12.22 20:23

2분 소요
또 내려간 기름값…휘발유 6.6원·경유 5.9원 ↓

산업 일반

이번 주에도 국내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판매 가격이 동반 하락했다.2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에 오피넷에 따르면 6월 셋째 주(18~22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전주보다 6.6원 하락한 L(리터)당 1575.8원을 기록했다.휘발유 가격은 주간 단위로 8주 연속 하락했다. 국내 최고가 지역인 서울의 이번 주 휘발유 평균 가격은 전주보다 7.7원 하락한 1천644.1원, 최저가 지역인 대구는 5.9원 하락한 1539.4원이었다.상표별로는 GS칼텍스 주유소가 1584.1원으로 가장 비쌌고, 알뜰주유소가 1548.7원으로 가장 저렴했다.경유 가격은 9주 연속 내림세다. 경유 판매 가격은 전주보다 8.7원 내린 1387.6원으로 집계됐다.이번 주 국제유가는 미국의 주간 상업원유재고 감소, 유럽연합(EU)의 제11차 대러시아 제재안 합의 등의 요인으로 상승했다. 수입 원유 가격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의 이번 주 평균 가격은 전주보다 3.5달러 오른 배럴당 77.0달러를 기록했다.국제 휘발유 평균 가격은 1.4달러 오른 89.0달러, 국제 자동차용 경유 가격은 3.5달러 오른 95.0달러로 집계됐다. 국제 유가 등락은 보통 2주 정도 시차를 두고 국내 제품 가격에 반영된다.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다음 주에도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은 하향 안정세를 보이겠지만, 그다음 주부터는 특히 경유 가격이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2023.06.24 14:57

1분 소요
G7, 우크라 지원 공동성명…“재정적·군사적 지원 약속, 러시아 제재 수위 높일 것”

국제 이슈

일본 히로시마에서 19일 개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이 공동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결속을 다지고 대러시아 제재 수위를 높이겠다고 경고했다.G7 정상은 이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침략전쟁에 대해 (우리는) 결속할 것을 재확인한다”며 “러시아의 명백한 유엔 헌장 위반과 전쟁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강력한 언어로 비난한다”고 밝혔다.이어 “러시아의 불법적인 침략을 확실히 좌절시키고 우크라이나 국민을 지원하기 위해 새로운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러시아를 향해 즉시 우크라이나 침략을 중단하고 부대와 군사 장비를 조건 없이 완전히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재정적, 인도적,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약속도 재확인한단 입장도 밝혔다.아울러 이들은 러시아의 핵 위협이 위험하다고 지적한 뒤 지난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공동선언을 환기하면서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우크라이나 지원을 약속하면서 동시에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할 조치에 대해서도 언급한 것을 전해졌다. G7은 성명에서 “러시아가 군사 기구를 재건하기 위해 이용하는 기술의 (러시아 상대) 수출과 러시아의 침략에 중요한 모든 품목의 수출을 제한하도록 행동을 확대할 것”이라며 “제조, 건설, 수송 등 주요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업 서비스가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또 중국과 이란 등을 염두에 두고 “제3국은 러시아의 침략을 물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며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는 제3국을 저지하기 위해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이어 “러시아가 국제 금융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을 제한하고자 노력하겠다”며 “우리는 러시아의 전쟁 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자에 대해 조치를 강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G7은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 제품의 가격상한제 등을 통해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췄다고 평가하고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하지 못하도록 이러한 방침을 지속하겠다고 결의했다.이와 함께 러시아가 다이아몬드로부터 얻는 수익을 줄이고자 러시아산 다이아몬드의 거래와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다이아몬드 교역 규모는 연간 40억~50억 달러(약 5조3000억~6조5000억원)로 알려졌다.G7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전쟁과 러시아의 식량 무기화로 경제 위기에 빠진 국가들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G7은 공동성명에서 “우리들은 평화의 상징인 히로시마에서 G7 회원국이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되도록 빨리 우크라이나에 포괄적이고 영속적인 평화가 찾아오도록 모든 노력을 하겠다고 서약한다”고 밝혔다.

2023.05.19 20:05

2분 소요
중동순방 다녀온 바이든 앞에 쌓인 위기들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국제 이슈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좌불안석일 것이다. 우선 지지율이 최악이다. 로이터-입소스의 7월 20일 조사 결과 바이든 지지율은 36%에 지나지 않고, 부(不)지지율은 59%에 이르렀다. 충격적으로 낮은 지지율이다. CNN이 조사업체 SSSR과 함께 실시해 7월 19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바이든의 문제를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바이든의 지지율은 38%, 부(不)지지율은 62%로 나타났다. 분야별 만족도는 경제가 30%, 인플레 관리가 25%로 바닥이었다. 75%는 인플레이션과 생활비 상승을 가족이 맞이한 가장 중요한 경제 문제로 지목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이는 43%였다. 결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이 주도한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제재에 따른 에너지와 식량 가격 상승 등이 바이든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가장 큰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응답자들은 미국의 상태를 2009년 이후 최악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응답자 10명 중 7명이 바이든 대통령이 국가가 처한 어려운 상황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여긴다는 사실이다. 바이든이 국민의 걱정을 풀어주기 위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본 셈이다. 바이든이 12일 밤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 올라 13~15일 이스라엘과 요르단 강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찾은 뒤 15~16일 중동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항구도시 제다를 방문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바이든이 중동으로 떠나기 전 열린 회견에서 ‘사우디에 석유 증산을 요구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세계 경제를 보호하고 주유소에서 미국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세계 시장에 적절한 (석유) 공급이 필요하다고 믿는, 우리의 일반적인 견해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렵고 복잡하게 말했지만 결국은 사우디에 석유 증산을 요청하러 간다는 말을 에둘러 한 것이다. 바이든의 중동 순방이 치솟는 기름값에 불만이 커진 미국 유권자들을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진정시키기 위한 목적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 정도로 바이든은 절박했다. 15~16일 사우디에 머문 바이든은 첫날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과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를 만났다. 다음날에는 걸프협력이사회(GCC) 회원국에 중동 주요 3개국을 더한 GCC+3 정상회의를 열었다.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쿠웨이트‧바레인‧오만이 GCC 회원국이고, 별도로 초청받은 세 나라는 이집트‧요르단‧이라크다. 모든 GCC 회원국과 이라크는 주요 산유국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발행하는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세계 10대 석유 수출국은 사우디(하루 665만 배럴)‧러시아(465만 배럴)‧이라크(342만 배럴)‧캐나다(303만 배럴)‧이란(270만 배럴)‧아랍에미리트(UAE‧하루 241만 배럴)‧나이지리아(187만 배럴)‧쿠웨이트(182만 배럴)‧노르웨이(150만 배럴)‧카자흐스탄(141만 배럴)으로 이 가운데 사우디‧이라크‧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 등 4개국 정상이 이번에 바이든과 만났다. 중동 산유국을 설득해 증산에 협력을 얻을 경우 국제유가를 일정 부분 낮추고 인플레를 어느 정도 진정시켜 미국 유권자들의 성난 심리를 달랠 수 있었던 순방 일정이다. ━ 중동 방문 목적은 석유 증산 협조와 외교적 영향력 확대 바이든이 취임 뒤 1년 6개월이 넘은 시점에 처음으로 중동으로 달려간 것은 단순히 석유 증산 협조에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외교적 협력 지평의 확대를 노린 것일 수 있다. 사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서방 동맹국에만 국한되고, 중동‧아프리카‧중앙아시아‧라틴아메리카‧동남아시아 등에서는 말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공백 상황을 맞고 있다. 이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 동참이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외교적‧경제적‧인도적 지원의 정도를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나 탄약, 군수물자 등을 제공하는 등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나라는 북미와 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국에 국한된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선 한 나라도 없다. 중동에선 이스라엘이 유일하다. 그것도 제한적이다. 사실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러시아에 대한 적극적인 비난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본격적인 군사지원은 하지 않고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기로 양해를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시리아와 관련해 러시아가 제공하는 군사 정보가 이스라엘의 안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는 이스라엘이 지역에서 가장 숙적으로 여기는 이란의 혁명수비대 소속 해외작전 부대인 쿠드스군이 활동하면서 이스라엘을 노리고 있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원해 내전을 사실상 마무리 단계로 이끈 동맹국이지만, 수많은 러시아계 유대인이 귀환하고 군사적‧경제적으로 많은 이익이 걸린 이스라엘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옛 소련에서 독립하고 지금도 러시아의 영향력이 국가별로 정도는 다르지만 일부 남아있는 중앙아시아도 마찬가지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인 콜롬비아가 유일하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대국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은 손사래를 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인도주의적 지원을 포함한 물자 지원을 한 나라는 이보다는 많다. 미국과 캐나다는 물론 유럽에서도 나토 회원국은 물론 세르비아 같은 비(非)나토 회원국도 지원에 동참했다. 중국과 인도 같은 강대국도 나섰다. 인도와 숙적이면서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파키스탄도 동참했다. 옛 소련권에서도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과 캅카스의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가 우크라이나 지원에 함께했다. 다만 러시아와 가까운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과 캅카스의 아르메니아는 우크라이나를 돕지 않았다. 중동에선 이스라엘과 함께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카타르‧바레인 등이 인도주의적 지원에 나섰다. 동남아시아에선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가 동참했지만, 필리핀은 빠졌다.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는 군사용품과 인도주의‧물품 지원에 모두 참여했다. 대만은 물품 지원에 나섰다. 라틴아메리카에선 콜롬비아와 브라질‧아르헨티나‧칠레 등만 동참했을 뿐이다. 아프리카는 미국의 입김이 전혀 먹히지 않는 무풍지대다. 누구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 않았다. 경제적 여력도 문제겠지만, 국제사회에서 미국 편을 들고 러시아와 척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게 더 큰 이유일 것이다. 결국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지원은 미국과의 친소 관계를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동맹 수준의 국가는 군사와 경제 지원을 모두 한 셈이고, 미국과 동맹은 아닌 중견 국가들은 국제사회에서의 체면을 생각해 인도주의‧경제 지원에만 나선 셈이다. 중동‧아프리카‧중앙아시아‧라틴아메리카‧동남아시아는 러시아의 눈치를 보고 미국의 손을 들어주지 않거나 중립을 유지했다. 결국 미국은 나토 회원국과 AP4(아시아 태평양 4개국)로 불리는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정도와 손잡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항하는 국제 지원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이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고립의 심연으로 빠지는 게 아닌지 우려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나선 바이든의 중동 순방은 계속 삐걱거렸다. 사우디가 날 선 태도로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 사우디와 미국은 오랜 동반자 관계를 자랑한다. 사우디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국영 석유‧가스 회사인 아람코가 1933년 5월 미국과 합작으로 설립한 아라비안-아메리카 오일사에서 출발했을 정도다. 사우디 정부는 1950년 11월 아람코와 50대 50의 이익분배협정을 맺었으며,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을 거치면서 아람코 소유 지분을 차츰 확대하다 1980년 국유화를 이뤘다. 현재 아람코는 2700억 배럴의 원유와 288조 평방피트(SCF)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진 세계 최대의 에너지 기업이다. 세계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내는 기업이기도 하다. 사우디는 2016년 4월 MBS 왕세자가 주도해 에너지 중심의 경제구조를 개혁해 보건의료‧교육‧인프라‧레크리에이션‧관광과 신도시 개발 등으로 다변화하는 비전 2040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비(非)에너지 부분을 확대해 정부 예산의 75%를 에너지 수출이 차지할 정도로 과도한 에너지 의존 경제를 전환하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아람코의 주식 5%를 상장해 자금을 확보할 계획도 세웠으나 계속 미뤄졌다.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늘릴 계획도 추진했지만, 사우디가 2014년 예멘 내전에 참전하면서 국제 여론이 악화하면서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미국은 심지어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시아파 후투족 반군이 수시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사우디를 공격하는 상황도 사실상 방치해 사우디 왕실의 분노를 샀다. 사우디에 수시로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패트리엇 미사일을 비롯한 첨단무기의 판매를 미 의회 등에서 승인을 미루면서 억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로서는 미국의 간섭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대치가 계속됐다. 결국 2017년 10월 MBS 왕세자는 부왕인 살만 국왕과 함께 모스크바를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러시아의 미사일 요격 무기체계인 S-400을 사고 러시아와 경제적인 협력을 강화할 목적이었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서 각각 수니파 중심의 반군과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를 추종하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을 각각 지원해 사실상 적과 적으로 맞붙었다. 하지만 살만 국왕과 MBS 왕세자를 비롯한 사우디 왕실은 수도 리야드 등으로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을 방어할 요격 무기를 구하기 위해 어제의 적이랄 수 있는 러시아와도 손을 잡으려고 시도한 것이다. 사우디의 절박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MBS 왕세자는 30억 달러 이상의 러시아 물품 구매계약을 맺었지만, 정치적으로 예민한 첨단무기인 S-400은 사지 못했다. 게다가 2018년 사우디 출신의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자말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암살당하면서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결정적으로 악화했다. 미국이 그 배후로 MBS 왕세자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특히 바이든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인권외교‧가치외교를 내세우며 사우디를 압박했다. 특히 MBS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겠다고 공언했을 정도다. ━ 인권‧가치 내세우며 사우디 압박한 바이든 순방 삐걱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뒤에도 1년 반이 지나도록 사우디와 정상급 교류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바이든이 집권하면서 미국은 사우디에 대한 첨단 무기 제공을 사실상 중단했다. 행동을 고치라는 바이든의 압력이었다. 사우디 왕실로선 미국이 인권이나 가치를 내세워 오랜 동맹을 압박하는 상황이 못내 서운했을 것이다. 중동 지역에선 강한 적 앞에 자립 능력이나 힘을 보여주지 않으면 주변이 모두 괄시하는 ‘유목민 사회’의 특성이 있다. 사우디는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부작용을 직격탄으로 맞은 것은 미국이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맞아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미국 지지나 우크라이나 지원이 미미한 것은 오일달러와 이슬람이라는 종교‧문화적 영향력이 강한 사우디와 미국의 관계가 소원한 것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우디 왕실은 사실 오랫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자금으로 이슬람권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해왔기에 영향력이 상당하다. 게다가 이런 MBS를 만나러 가는 바이든은 미국에서 온갖 비난을 받았다. 인권외교, 가치외교를 포기한 게 아니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가치외교를 지지해온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이든에 등을 돌릴 우려마저 나올 정도였다.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지목된 MBS 왕세자를 만난 바이든은 오히려 미국의 인권문제로 반격을 당했다는 게 CNN의 보도다. 15일 바이든은 회견에서 “MBS를 만난 자리에서 가장 먼저 카슈끄지 문제를 제기했다”며 MBS가 “개인적으로 책임이 없으며, 책임 있는 이들에겐 조처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MBS는 외려 미국이 연관된 인권 문제를 역으로 지적하고 나왔다. CNN에 따르면 그는 2004년 미군이 저지른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수감자 나체 집단 학대와, 지난 5월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계 미국 언론인 시린 아부 아클레 기자의 피격을 거론했다. 그는 “이런 문제는 미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실수”라며 “미국이 책임자를 처벌하고 잘못을 해결하기 위한 조처를 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했다”고 주장했다. 바이든과 MBS의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아델 알 주베이르 사우디 외무부 장관은 회담 뒤 기자들에게 “바이든 대통령이 (인권문제로) 빈 살만 왕세자를 비난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바이든이 중동의 외무부 장관과 진실 게임을 벌이게 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도 “바이든이 사우디 인권 문제를 어느 정도나 거론됐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은 과거 연방상원의원 시절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신유고연방 대통령을 만났을 때와 부통령 시절 푸틴 대통령을 만났을 때 본인은 했다고 한 발언이 상대방에게 ‘들은 적이 없다’고 부인당한 적이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사우디나 GCC 회원국 등으로부터 증산에 대한 아무런 약속을 받지 못한 것이다. 바이든은 16일 GCC+3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국제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충분한 석유 공급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고 두루뭉수리로 회담 결과를 밝혔다. 누가 봐도 아무런 의미 있는 성과를 얻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외교적 수사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석유 증산 못 끌어낸 바이든에 비난 여론 빗발쳐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중동 산유국의 증산 여부는 이들 국가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으며 8월 3일 러시아 등을 포함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결정된다. OPEC 회원국에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캅카스 국가를 포함한 산유국들의 카르텔에서 증산 여부를 결정한다는 이야기다. 미국이 끼어들 틈이 없다. 주요 산유국은 이를 통해 상당 기간 러시아와 협력해왔다. 국제사회가 미국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고, 특히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의 공급에서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일 것이다. 게다가 사우디의 MBS 왕세자는 증산과 관련해 “우리는 이미 최대 생산 능력치인 하루 1300만 배럴까지 증산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를 초과하는 추가 생산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바이든이 도대체 왜 중동을 방문했는지 비난이 빗발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8월의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스러운 철군이 비견될 정도의 국정 실패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 인권과 가치 외교를 접어두고 사우디를 찾았지만, 의도한 증산 약속은커녕 외교적인 수모만 당하고 귀국한 바이든의 이제 자신의 정치적인 앞날이 고민할 처지가 됐다. 11월 8일 중간선거까지 넉 달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바이든의 중동 순방을 보고 미‧중 경쟁 중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를 느끼고 있지 않을까. 민주주의 강대국의 지도자가 권위주의 군주국의 세습 군주 상속 예정자에게 이런 수모를 당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국력이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에 머지않은 장래에 사우디에 대한 압박을 계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경우 바이든은 중국과 러시아에 이어 전선을 지나치게 확대한다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국내 정치에 몰두하는 길 외에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엄중한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2.07.23 15:00

10분 소요
글로벌 기업 철수에 타격 입은 러시아 경제…원유·가스가 ‘생명줄’

국제 이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제재와 글로벌 기업의 철수로 경제적 타격을 입고 있다. 그러나 원유와 천연가스가 여전히 러시아의 중요한 자금줄 노릇을 하며 서방의 제재도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제프리 소넨펠드 교수팀에 따르면 이달 16일 기준 약 1000개의 글로벌 기업이 러시아 내 사업을 축소·중단·철수했거나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1990년 1월 모스크바 시내 푸시킨 광장에 1호점을 연 이후 러시아의 개방과 시장경제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점 맥도날드가 16일(현지시간) 러시아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맥도날드는 이날 보도문을 통해 “러시아에서 30년 이상 영업한 뒤 현지 시장에서 철수할 것임을 밝힌다”며 “러시아 사업 매각 절차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사업 철수 배경에 대해 맥도날드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예측 불가능성 증대로 러시아 내 사업의 지속적 유지가 바람직하지 않으며, 맥도날드의 가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맥도날드 외에도 여러 기업이 러시아에서 손을 떼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는 러시아 서비스를 중단했다. 현대차는 러시아 공장 가동을 멈췄으며, 다국적 호텔기업 힐튼은 러시아 신규 투자를 보류한 상황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러시아 내 신규 판매를 중단했다. 러시아의 우방국인 중국도 러시아에 대한 전자제품 수출을 줄였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은 17일(현지시간) 중국 측 무역 통계를 인용해 올해 3월 중국의 대러시아 노트북 수출이 2월 대비 40% 감소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스마트폰 수출은 3분의 1로 줄었고, 통신네트워크 장비 수출은 98% 급감했다. 이에 대해 러몬도 장관은 중국이 제재 위반에 대해 주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 역성장과 인플레이션에 경기 침체 위기 맞은 러시아 이처럼 러시아는 다른 국가와의 정상적인 경제 활동에 제동이 걸리며 경기 침체를 맞을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4.7% 성장한 러시아 경제가 올해는 -8.5% 역성장을 할 것으로 지난달 내다봤다. 올해 1월 예상치인 2.8%와 비교하면 경제성장률이 11.3%포인트 추락한 것이다. IMF는 내년 러시아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2.1%에서 -2.3%로 낮췄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IMF보다 더 비관적이다. EBRD가 내놓은 올해 러시아 성장률 전망치는 -10%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는 올해 4월 말 내놓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경제 제재: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서방의 경제 제재 가운데 단기적으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러시아를 퇴출하고, 수출 규제를 가한 것이 가장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봤다. 보고서에서 코트라는 경제 제재가 지속하면 러시아의 정보기술(IT) 등 혁신 산업 부문의 훼손, 외부와의 협력 단절, IT 엔지니어 등 인력 유출 가속으로 저성장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러시아는 루블화 가치 폭락에 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자국 인플레이션이 18~23%까지 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로이터 통신은 이달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연방 통계청을 인용해 올해 4월 러시아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전년 대비 17.83%로 2002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물가상승률은 3월에도 전년 대비 16.7%를 기록했다. 다만 전월 대비 4월 물가 상승률은 1.56%로, 2월 대비 3월(7.61%)보다 다소 둔화했다. ━ 화석연료로 무장한 러시아, 세수 증가에 경상수지 흑자 기대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러시아는 원유·가스 등 화석연료를 자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삼고 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세계 1위, 원유는 2위 수출국이다.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을 금지했지만 유럽연합(EU)은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산 가스와 원유에 대한 EU의 수입 의존도는 30~40%에 달한다. EU 각국은 이를 단기간에 탈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U는 향후 6개월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내년 1월까지 석유제품까지 수입을 끊는 6차 제재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등의 반대로 실현이 불투명하다.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가스 수입량의 3분의 2를 줄이고 2030년까지 완전히 끊는 구상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미국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역내 업체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위반하지 않고 러시아 가스 구매 대금을 어떻게 지불할 수 있는지에 대한 최신 지침을 내놓기도 했다. EU 집행위는 이달 13일 회원국들과 공유한 최신 지침에서 업체는 기존 계약서에서 합의된 통화로 러시아 가스 구매 대금을 지불하고 해당 통화로 거래가 완료됐다고 신고하는 한 러시아에 가스 대금을 지불할 수 있다고 확인했다. 원유와 가스는 러시아 경제를 지킬 주요 무기가 된 상황이다. 유럽 각국이 러시아산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지 못하는 사이 인도와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리고 있고, 러시아는 이들 국가에 할인가를 적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에너지 연구·컨설팅업체인 리스타드에너지는 러시아가 원유 생산이 급감해도 원유 가격 급등에 올해 세수가 지난해보다 45% 많은 1800억달러(약 229조원)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유가 상승과 제재로 인한 내수 감소에 힘입어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일종의 불황형 흑자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달 3일 러시아의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2000억~2400억 달러(약 242조1800억~290조6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역대 최대 흑자였던 지난해 1200억 달러(약 145조3100억원)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2022.05.21 16:00

4분 소요
러시아가 쏜 포탄, 세계 경제를 수렁에 빠트렸다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여파는 깊고도 넓다. 각국의 경제성장률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물가와 에너지와 식량 확보, 기후변화 대응 연기, 기아와 기상재해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의 고통 등으로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성장률 수정치 발표는 신호탄일 뿐이다. IMF는 4월 19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경제성장 전망치를 지난 1월 25일 발표 때보다 크게 낮췄다. 세계 전체의 성장률의 경우 지난 1월 4.4%로 전망됐으나 4월엔 3.6%로 0.8%포인트 떨어뜨렸다. 6개월 전인 2021년 10월에 올해 성장률을 4.9%로 예측한 것과 비교하면 1.3%포인트나 떨어졌다. 선진국은 3.9%에서 3.3%로, 신흥국은 4.8%에서 3.8%로 각각 낮췄다. 미국은 4.0%에서 3.7%로 0.3%포인트 낮췄지만, 유로존은 3.9%에서 2.8%로 1.1%포인트나 떨어뜨렸다. 아시아 국가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인데 한국은 3.0%에서 2.5%로, 일본은 3.3%에서 2.4%로, 중국은 4.8%에서 4.4%로 각각 낮췄다. 내년 전망치도 마찬가지로 낮췄다. 세계 전체의 성장률은 3.8%에서 3.6%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선진국은 2.6%에서 2.4%로, 신흥국이 4.7%에서 4.4%로 각각 낮췄다. 미국은 2.6%에서 2.3%로 0.3%포인트가, 유로존은 2.5%에서 2.3%로 0.2%포인트가 각각 하향 조정했다. 아시아권의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9%로 그대로 유지됐다. 일본은 1.8%에서 2.3%로 상향 조정됐지만, 중국은 5.2%에서 5.1%로 낮췄다. IMF는 2023년 이후 세계 전체의 성장률이 중기적으로 약 3.3%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1월 추산보다 소폭 오른 6.1%로 수정해 추산곡했다. 지난해 성장률은 올랐지만,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모두 떨어졌다. IMF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제시했던 것보다 큰 폭으로 내린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여파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세계 경제가 코로나19로 인한 악재에서 서서히 벗어나 회복세로 접어들었지만, 올해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목을 잡은 셈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 하락이 이번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IMF는 이번 예측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우크라이나에 국한된다’는 전제를 적용하고, 지난 3월까지 발표된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의 영향만 반영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아울러 코로나19 팬데믹의 보건‧경제적 영향이 올해에는 줄어들 것을 전제로 예측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크라이나 넘어 확전하거나 다른 분쟁이 추가되거나, 서방이 러시아에 추가 제재를 가할 경우, 새로운 변이의 발생과 확산으로 코로나19의 영향이 확대되거나 지속할 경우에는 전망치는 더욱 하향 조정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 대러시아 제재 확대될수록 유로존 경제성장에도 악영향 IMF의 경제성장 전망치 조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유로존이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3.9%에서 2.8%로 1.1%포인트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유로존은 내년 성장률도 2.3%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서유럽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게다가 서유럽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확전하거나, 대러시아 제재가 확대될 경우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서유럽은 지리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와 가까운 데다 그동안 러시아 가스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의존해왔다는 점에서 전쟁과 대러시아 제재의 여파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AP통신은 “유럽은 러시아에 에너지를 크게 의존해 이번 전쟁의 여파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올해 –8.5%, 침략을 당한 우크라이나는 –35%의 마이너스 성장을 각각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IMF의 수정 전망치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이 주도하고 있는 대러시아 제재의 효과를 보여준다. 러시아의 성장 전망치는 지난 1월과 비교해 올해는 11.3%포인트, 내년은 4.4%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제시됐다. 러시아는 지난해 4.7%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IMF가 수정 제시한 소비자 물가상승률 전망도 충격적이다. 선진국의 물가상승률은 지난 1월 전망보다 1.8%포인트 오른 5.7%로 제시됐다. 신흥국은 2.8%포인트 올려 8.7%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은 0.9%포인트 올려 4%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가 성장이 둔화하는데도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올해 2%대 저성장에 4%대 물가인상률을 겪을 전망이다. 경기 부양책을 쓰면서도 물가 상승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살얼음판 상황을 맞게 될 전망이다. 전쟁은 당장 곡물 글로벌 공급망에 타격을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밀‧보리‧콩‧옥수수 등 전 세계 곡물 수출의 7~10%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값싸고 품질 좋은 우크라이나산 곡물은 한국의 마트에도 들어와 있다. 우크라이나는 한반도의 약 세 배 정도인 60만3628㎢에 이르는 국토의 약 70%인 42만2000㎢가 경작 가능한 지역이다. 토지의 대부분이 암모니아와 인산‧인이 결합해 형성된 검은 부식토인 초르노젬(흑토)으로 이뤄져 농업 생산성이 좋다. 미국과 캐나다에 펼쳐진 대평원(그레이트플레인즈)과 우크라이나‧러시아‧발칸 지역에 걸친 유라시아 스텝 지역이 초르노젬으로 덮인 농업 지역이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는 올해 밀 2530t을 포함해 6500만t의 곡물을 수출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전쟁으로 자국민이 먹을 곡물이라도 수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봄철에 전쟁이 진행돼 곡물 파종면적이 평소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전망이다. 상당수 국토가 전쟁터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농지의 최대 30%가 전쟁터가 될 수 있다는 게 유엔의 추정이다.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에너지 공급 차질 가격 급등 농사지을 사람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60세 이하의 성인 남성은 현역이나 예비군으로 징집되고, 노인과 여성은 해외로 피란길에 오르거나 국내 실향민이 되고 있어 농사를 지을 인력이 태부족하다. 농기계를 움직일 연료도 전쟁 물자로 징발될 수밖에 없다. 물류도 문제다. 우크라이나가 수출하는 밀의 60%가 오데사 등 흑해 연안 항구를 통해 운반됐는데, 흑해는 사실상 러시아 해군에 의해 봉쇄된 상태다. 오데사는 여전히 우크라이나가 장악하고 있지만, 곡물을 운반하는 화물선이 우크라이나에서 출발해 흑해를 안전하게 지날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는 국경을 맞댄 이웃 폴란드‧슬로바키아‧헝가리‧루마니아‧몰도바 등과 도로와 철도로 연결되지만, 현재는 피란민을 실어나르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결국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발 곡물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산 곡물 공급이 중단되거나 줄어들어도 전 세계가 식량난에 시달릴지는 의문이지만, 물류와 가격에 영향을 줄 수는 있다. 곡물값이 뛰면 식료품은 물론 전체 물가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로 가스 수출이 제한을 받으면서 전체 에너지 가격도 뛰고 있다. 상품 거래 정보 사이트인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천연가스는 4월 21일 1MMBtu(백만BTU 에너지 단위)에 6.8050달러로 지난 한 달 새 31.52%가 올랐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48.15%의 상승 폭이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의 경우 4월 21일 103.63달러에 거래돼 1년 전과 비교해 67.69%가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날인 2월 23일 배럴당 92.10달러에 거래됐지만, 개전 1주일 뒤 100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 가솔린 가격은 4월 21일 갤런당 3.3164달러로 1년 새 67.41%가 뛰었다. 심지어 석탄도 1t당 326.35달러로 1년 전과 비교해 248.11%가 인상됐다. 지난해 10월 31일~11월 23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6)에 모인 각국 대표들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석탄 사용 제한을 결의한 게 무색할 정도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파동은 ‘탄소 제로’라는 환경 목표의 달성 시기를 상당히 뒤로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당장 에너지와 식량 등을 확보하는 것이 환경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를 점할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환경 문제 해결에 앞장서온 유럽으로선 뼈아픈 상황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러시아 국가 재정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국영 에너지 회사의 가스 수출을 제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유럽이 추진해온 신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에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조량이나 바람 등 기상 조건에 생산량이 영향 받는 신재생 에너지 체제를 유지하려면 같은 용량의 백업 발전소를 오염이 적은 가스를 이용해 가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 러시아 침공, 세계경제·환경문제 악화 빈국 고통으로 이어져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은 경제 성장률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글로벌 환경 정책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제27차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7)를 새롭게 열어서 환경 목표를 재설정할 필요성도 대두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가 쏘아 올린 침략의 포탄이 글로벌 경제와 환경 문제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오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재해로 피해를 보면서 식량 생산에 영향을 받아온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 등이 식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선 다시 국제 인도주의기구에 대한 각국의 지원도 늘려야 한다. 기아는 분쟁과 상호 작용하며 서로 증폭된다. 기아의 60%가 분쟁지역에서 발생한다는 유엔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기아를 전쟁 무기화하는 지역도 많다. 특히 사하라 사막의 바로 남쪽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소·차드·말리·니제르 등 사헬 지역의 정쟁이 불안하다. 사헬 지역은 기후변화에 따른 사막화와 자연재해가 빈발해 경제와 사회가 불안정해 기후 난민이 다량으로 발생해왔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사헬 지역에서만 식량과 생계 지원이 필요한 인구가 700만 명을 넘는다. 특히 사하라 사막 남쪽인 사헬 지역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소에선 알카에다와 연계된 무장조직의 폭력에 가뭄과 굶주림이 겹쳐 국내 이주민이 다수 발생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대부분은 국제 인도주의 단체의 구호로 연명한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기아 인구가 3.5% 이상인 나라는 11개국이다. 아프리카에선 민주콩고공화국(1인당 GDP 588달러)‧콩고(2505달러)‧중앙아프리카공화국(552달러)‧르완다(821달러)‧소말리아(347달러)‧마다가스카르(521달러)‧라이베리아(700달러) 등이다. 중동의 예멘(764달러)‧이라크(5730달러)와 동아시아의 북한(소득 통계 없음)도 있다. 기아 인구가 2.5% 이상~3.5% 미만인 나라로 차드(741달러)‧시에라리온(542달러)‧탄자니아(1104)‧모잠비크(425달러)‧보츠와나(7817)‧아프가니스탄(592달러)‧베네수엘라(1542달러) 등 7개국이 있다. 문제는 기후변화와 흉작, 기아를 겪는 가난한 국가는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하고 분쟁과 갈등도 많다는 사실이다. 2010년 이후 전 세계에서 벌어진 쿠데타와 쿠데타 기도는 기후변화와 흉작‧기아를 겪는 나라에서 더 자주 발생했다. 2010년 이후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차드·차드·말리·마다가스카르‧기니비사우‧수단‧민주콩고공화국‧감비아‧부룬디 등이 쿠데타나 쿠데타 기도를 겪었는데 모두 기후변화와 기아를 겪는 가난한 나라다. 세계은행(WB)은 기후변화를 해결하지 못하면 2050년까지 기후난민이 최대 1억4000만 명까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8240만 명의 난민과 국내 이주민이 존재한다. WB의 경고는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과 기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그 1.7배에 이르는 난민과 국내 이주민이 추가로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국제사회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수준이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고 서로 영향을 주는 글로벌 시대에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이 전 세계 곳곳에 이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은 이 전쟁을 조기에 끝낼 방법도 현재로썬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전 세계는 러시아가 행여나 핵을 사용하지 않을까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협상이 제대로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는 물론 전 세계를 상대로 자존심을 살리는 것이 전쟁의 숨은 목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은 이래저래 전 세계가 고통스러운 한 해가 될 전망이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2.04.23 21:00

8분 소요
연준의 본격 금리 인상 움직임, 뉴욕증시 하락…나스닥 2.26%↓

산업 일반

5일(현지시간) 뉴욕증시가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긴축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전날보다 328.39포인트(2.26%) 하락한 1만4204.17로 거래를 마쳤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280.70포인트(0.80%) 내린 3만4641.18,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57.52포인트(1.26%) 떨어진 4525.12를 기록했다. 업종별로 임의소비재, 기술 관련주가 2% 이상 하락했다. 에너지, 산업 관련주도 약세를 보였다. 유틸리티, 헬스, 필수소비재 관련주는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지정학적 긴장과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 등으로 투자 환경이 좋지 않다고 분석했다. 케스트라 홀딩스의 카라 머피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연준이 금리를 올리고, 성장은 둔화하고 있다"라며 "험난한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는 이날 연설에서 "인플레이션 압력 완화가 연준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며 금리를 연속으로 올려 통화정책 긴축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17년부터 2년간 진행된 대차대조표 축소 때와 비교해 연준의 포트폴리오를 훨씬 더 빠르게 줄여나갈 것이라고 했다. 월 상한선은 더 커지고 시기는 더 짧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르면 5월에 대차대조표를 축소하는 양적긴축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대차대조표 축소란 연준이 보유한 자산을 매각해 시중에 유통되는 자금을 흡수하는 것을 말한다.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돈을 푸는 양적완화와는 반대되는 정책이다. 우크라이나를 무력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서방의 제재가 강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투자심리 위축에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도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방법으로 러시아 석탄 수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로 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2022.04.06 07:22

2분 소요
우크라이나 전쟁과 부도 위기…러시아 경제 어디로 갈까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미국 경제잡지 포춘은 16일 2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가 이웃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러시아에서 철수한 글로벌 기업의 명단을 정리해 보도했다. 148개 업체가 러시아에서 기업활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BP(영국국영석유회사, The British Petroleum)나 엑손, 쉘 같은 거대 다국적 에너지 기업이 여기에 속한다. ━ 맥도널드·펩시·코카콜라·스타벅스…러시아 떠나는 기업들 174개 업체는 복귀 옵션을 남겨둔 채 러시아에서의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72개 업체는 부분적으로 활동을 중단하거나 투자를 연기했다. 32개 기업은 떠나거나 활동을 줄이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아서 계속 활동하기로 한 것이다. 당장은 활동을 중단하지만, 기회가 되면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서방의 청바지 브랜드인 리바이스, 식품 업체인 맥도널드, 펩시, 코카콜라, 스타벅스 등이 해당한다. 이는 탈냉전과 자유화의 상징이기도 했으며, 러시아 경제가 서방 경제가 서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 심볼이었다. 한마디로 과거 소련이 무너지고 들어선 러시아가 시장경제화를 추구할 때 러시아가 추구했던 새로운 글로벌화의 상징으로 간주했던 브랜드의 기업들이다, 이들 브랜드의 철수는 러시아가 서방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을 추구하는 시대가 비록 일시적이라고 해도 저물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이번에 러시아에 있던 847개의 맥도널드 매장이 문을 닫은 것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맥도널드 매장이 있는 나라끼리는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신화’도, 시장경제의 확장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믿음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맥도널드가 러시아에서 마지막으로 영업한 3월 8일 모스크바를 비롯한 각지의 매장에는 고객들이 몰려들었다. 드라이브 스루 매장에도 차들이 몰려 길게 줄을 섰다. 유로뉴스의 코멘트 요청에 응한 모스크바의 고객은 “슬프다”라는 말을 연발했다. 맥도날드는 옛 소련이 무너지기 직전이던 1990년 1월 모스크바 중심지에 있는 푸시킨 광장에 1호점이 개장했다. 당시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주도해 소련이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즉 개혁·개방을 한참 추구하던 시절이었다. 개업 첫날 약 450m 정도의 긴 줄이 늘어섰을 정도였다. 크리스 켐프친스키 맥도날드 최고경영자(CEO)는 영업 중단 전날인 7일 이를 공개하고 “러시아 매장을 언제 다시 열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부분적으로 활동을 중단하거나 투자를 연기한 기업들은 그야말로 철수 시늉만 한 것으로 보인다. 철수한다고 연막만 피우거나 눈속임을 한 셈이다. 미래 이익은 포기할 수 없지만 당장 날아오는 총탄은 피해야 하니까 일단 엎드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애벗이나 클락소스미스클라인, 존슨앤존슨, 머크, 화이자 같은 제약회사들이 대부분 여기에 들어간다. 생명과 건강을 위해 필수적인 의약품과 생산품을 러시아에 계속 공급하는 것은 비즈니스적인 목적에서는 물론이고 인도주의적인 이유에서도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화학·생물학 연구소가 푸틴 정권을 위한 생물학적 무기 생산 등에 쓰일 가능성도 있어 계속 논란이 될 수 있다. 소비자 제품을 생산하는 칼스버그, 다논, 제네랄 밀스, 켈로그, 크래프트-하인츠, 마르스, 네슬레 등도 이유식이나 기저귀, 초콜릿 등 유아용 제품은 그대로 생산하고 유통할 예정이다. 하지만 오레오 쿠키나 배드버리 초컬릿, 다논의 치크케익 요거트 등은 가정에서 흔한 제품이지만 생활필수품인지는 논쟁이 따를 전망이다. 던킨 도너츠나 파파존스 피자, 얌!브랜즈 등 식품 프랜차이즈는 서방의 본사가 지원을 중단했음에도 러시아의 프랜차이즈 기업이 전체 매장의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847개 매장의 85%를 미국 본사가 직영해온 맥도널드와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의 거대 농업·식료품 기업인 번지나 카길, 상품과 에너지 무역업체인 트라피구라는 러시아에서의 영업 중단이 글로벌 공급망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활동을 계속하기로 했다. 이들이 취급하는 밀, 옥수수, 니켈 같은 1차 상품은 러시아와 서방 모두에 필요하며, 공급망이 흔들릴 경우 러시아를 압박하는 효과와 서방이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 6400억 달러 들고도 서방 제재에 채무 상환 발 묶여 루블화 가치도 추락하고 있다. 한국 원화와 비교하면 루블화는 지난 1년간 1원에 0.60~0.66루블을 오가다가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3월 9일 1원에 0.087루블까지 떨어졌다가 17일 0.08루블로 약간 회복됐다. 이를 알아보기 쉽게 한화 기준의 루블화 가치로 살펴보면 지난 1년간 1루블 값은 15~16원을 오갔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급격히 하락했다. 3월 7일 1루블은 8.87원까지 떨어졌다가 17일 12.3루블로 약간 회복됐다. 달러화와 비교한 루블화 가치는 지난 1년간 1달러에 73~79달러를 오갔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급격히 떨어져 3월 9일 1달러에 138.75루블까지 하락했다. 17일 달러당 98.50루블로 약간 회복됐다. 달러화 대비 루블화 가치는 지난달 40% 하락했다. 다급해진 러시아 중앙은행은 러시아 내에서도 루블화와 다른 외화 간 환전을 일시 중단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보유 외환도 동결해 환율을 방어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 배경에는 푸틴도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실책이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름반도 합병 이후 서방의 제재가 강화되자 그때부터 금융 부문에서 단단히 준비를 해왔다. 특히 에너지를 판 돈으로 보유 외환을 6400억 달러까지 높여왔다. 주요국의 보유 외환을 보면 지난해 가을 기준으로 중국이 3조2176억 달러, 일본이 1조4045억 달러, 스위스가 1조862억 달러에 이른다. 러시아는 6242억 달러로 6404억 달러의 인도와 5, 6위를 다툰다. 대만이 5467억 달러, 홍콩이 4980억 달러, 한국이 4600억 달러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마이클 번스탬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원은 러시아의 전체 보유 외환의 절반 이상인 4000억 달러가 뉴욕·런던·베를린·파리·도쿄 등 외국의 중앙은행이나 상업 은행에 예치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당당 쓸 수 있는 외화는 제한돼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은 러시아의 대형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했다. 러시아 금융업체나 기업이 자금을 해외에서 가져오거나 내보낼 수 없게 한 것이다. 러시아가 발권하는 루블화는 이제 국경 밖에선 사실상 가치 없는 종이로 변하고 있다. 러시아 금융 당국은 서방 제재에 대응해 비우호국 채권자에 부채와 이자를 루블화로 상환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국제 금융 계약상 루블화로 채무를 상환할 수는 없다. 러시아가 계약에 표시된 달러화 등 외화로 이를 갚을 수 없게 되면 ‘디폴트(채무상환 불능상태)’에 빠진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 러시아 경제 후퇴 우려…경제 제재 가한 EU에 수출 의지해 이에 따라 러시아 경제가 서방의 대대적인 경제 제재로 개혁·개방을 시작하기 전인 약 30년 전 옛 소련 수준으로 뒷걸음질 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CNBC 방송은 3월 14일 미국 싱크탱크인 외교정책연구소(FPRI)의 중앙아시아 담당 막시밀리안 헤스의 말을 인용해 “앞으로 5년간 러시아인들은 1990년대나 그보다 더 열악한 수준의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서방 제재로 글로벌 기업이 앞 다퉈 떠나고, 루블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는 상황이 러시아 경제에 일시적인 타격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상당 기간 내상을 입힐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사실 러시아에 더욱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것이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을 중단하기로 한 미국의 결정이다. 원유와 수출은 러시아 수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경제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잠시 러시아의 경제 현황을 살펴보다. 냉전 시절 미국과 대결했던 패권 분할국이던 러시아는 현재 경제적으로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2021년 국제금융기구(IMF) 예상치 명목 금액 기준 국내 총생산(GDP)가 1조7107억 달러로 세계 11위다. 1조8067억 달러로 10위를 한 한국보다 한 단계 뒤진다. 1조6175억 달러의 호주와 1조4917억 달러의 브라질, 1조 4615억 달러의 스페인이 뒤를 잇는다. 러시아의 1인당 GDP는 더욱 초라하다. 2021년 IMF 전망치 명목 금액 기준으로 1만1654달러로 세계 64위다. 중국(1만1819달러·61위), 코스타리카(1만1806달러·62위), 몰디브(1만1654달러·63위)보다 조금 적고 말레이시아(1만1604달러·65위), 불가리아(1만1321달러·66위), 나우루(1만125달러·67위), 카자흐스탄(9828달러·68위)보다 약간 많다. 산업 구조는 열악하다. 러시아는 3530억 달러(2017년 추정치)를 수출하지만, 상당 부분이 석유와 천연가스, 금속과 광물, 그리고 목재와 목재 가공품이다. 우주항공과 원전·에너지·바이오 분야에서 세계적인 과학기술 수준을 자랑한다. 하지만 러시아산 자동차나 휴대전화, 반도체나 선박의 수출은 기대하기 어렵다. 의약품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이 발달해 우주로켓을 쏘아 올리고 대륙간탄도탄(ICBM)을 발사하는 나라지만, 이를 제품화해 수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1차 산업인 에너지 수출에 국가 경제가 지나치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게다가 수출의 45.8%가 경제 제재 주체인 EU에서 나오기 때문에 서방의 경제제재는 러시아에 상당한 상처를 줄 수 있다. 러시아의 주요 수출 상대를 보면 EU가 1위이고 뒤를 이어 중국(9.3%), 벨라루스(4.9%), 터키(4.8%), 한국(3.5%), 인도(2.1%) 등이 차지한다. 주요 수입 상대도 EU(38.2%)가 1위이며, 중국(20.9%), 미국(6.1%), 벨라루스(5.2%), 일본(3.7%)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수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에너지의 해외 판매를 차단하면 한마디로 러시아 경제의 숨통을 틀어막는 것이나 진배없다. 다만 한계는 있다. 가스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서유럽 국가들이 어디까지 견딜지가 관건이다. 이는 서유럽과 러시아가 기차 레일 위에서 벌이는 치킨 게임과 비슷한 상황이다. 다만 미국은 에너지를 자급하고 있는 데다 국제 유가가 올라가면 셰일 가스 채굴을 재개할 수 있어 사정이 다르다. 러시아로선 엄청난 압박이지만, 여기에는 미국과 서유럽이 서로 동상이몽을 꿀 수도 있는 지점이다. 첨단기술 제품과 사치재의 대러시아 수출을 막은 것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러시아는 사실 미사일이나 항공기, 전자장비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을 수입에 의존해왔다. 러시아 산업은 물론 방위산업에도 문제가 번질 수 있는 부분이다. ━ 러시아 부유층엔 치명적인 사치재의 대러시아 수출 제한 사치재의 대러시아 수출 제한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러시아의 민심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러시아의 부유층에게 사치재는 이미 생활필수재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여론이나 투표로 흘러가는 국가가 아니지만, 중산층이 푸틴에게 등을 돌릴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에 따른 서방의 대러시아 대응은 경제 제재가 한 국가와 사회에, 그리고 지도자에게 얼마나 큰 압박을 가할 수 있느냐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경제 제재를 해야 푸틴이 마음을 바꾸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러시아에서 푸틴은 누구도 직언할 수 없는, 권위주의 체제의 유일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직된 정치 체제가 결국 지도자의 오판과 전쟁이라는 불행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 러시아 경제가 고통을 받는다고 푸틴 체제가 바뀔 수 있다고 판단하는 서방 지도자는 많지 않다.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러시아에서 대중 봉기가 일어나거나, 궁정 쿠데타가 벌어져 푸틴을 대체하는 지도자나 체제가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는 서방의 꿈일 뿐, 현실적인 상당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러시아 부유층은 대부분 푸틴의 경제 공동체이거나, 공모자이거나, 충성파이거나, 낙수 효과를 본 계층이기 때문이다. 서방의 경제제재로 고통받는 건 결국 러시아의 기층 민중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아울러 경제제재는 국제경제 네트워크에 어느 정도 편입이 된 나라에만 적용 가능하다는 것이 한계일 것이다. 경제제재가 북한에 도저히 먹히지 않는 이유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2.03.1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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