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CONOMIST

11

정원주 중흥 부회장

건설

중흥그룹이 인수한 대우건설의 차기 사장은 대우건설 내부 출신으로 정해질 전망이다. 정원주 중흥그룹 부회장은 9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중흥그룹과 KDB인베스트먼트(KDBI)의 대우건설 지분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식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대우건설 경영진 구성과 관련해선 내부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며 "대우건설 내부 인원 중에서 승진시키는 것을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 김창환‧백정완 전무 차기 사장 유력 후보 정 부회장이 대우건설의 새 사장으로 내부 출신 인력을 선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면서 사장 후보군에 대한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대우건설의 차기 사장 후보로 전‧현직 주택건축사업본부장 임원이 유력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창환 대우건설 신사업본부장(전무)과 백정완 대우건설 주택사업본부장(전무)이다. 김창환 전무는 1961년생으로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대우건설에 공채로 입사한 뒤 지난 2018년 6월 CFO를 역임했다. 2019년 8월부터는 신사업추진본부장을 맡고 있다. 백정완 전무는 1963년생으로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대우건설에 공채 입사했다. 지난 2018년 11월부터 주택사업본부장으로 보임하고 있다. 이 외에 정 부회장은 앞으로 대우건설의 배당 계획도 밝혔다. 부채비율 100% 수준이 되기 전까지 중흥그룹은 배당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대우건설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중흥그룹이 아닌 기존 주주들에게 배당이 돌아갈 수 있도록 법적 검토를 진행 중"이라며 "대우건설의 부채비율이 100% 수준으로 내려오고 나서 중흥그룹이 배당을 받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대우건설 해외 부실, 내년부터 사라진다" 정 부회장은 해외 부실 위험성이 산재했던 대우건설이 내년부터는 안정세를 되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대우건설은 이전까지 해외 부실이 항상 따라다녔는데 내년에는 모두 해결될 것"이라며 "실사를 통해 해외 부실이 내년에 끝난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대우건설 인수를 더욱더 확고히 결정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정 부회장은 대우건설 인수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아버지(정창선 회장)께서 지금까지 생각해오셨던 것을 저는 뒤에서 도운 것이지만 머리가 쭈뼛쭈뼛 설 정도로 흥분이 되는 기쁜 일"이라며 "(정창선)회장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참 좋은 회사(대우건설)를 인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의 최종 인수가격이 2조1000억원에서 400억원가량 더 조정됐는지를 묻는 말에 정 부회장은 "말하기가 조심스럽다"며 "비슷한 수준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박지윤 기자 park.jiyoun@joongang.co.kr

2021.12.09 16:23

2분 소요
대우건설 품는 중흥, 인수대금 또 깎을까

건설

"2000억이나 깎았는데 설마 또 깎을까?" 중흥건설의 대우건설 매각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인수금액 조정 이야기가 업계에 퍼지고 있다. 관련업계 및 정치권에서는 이례적으로 최초 입찰 제시금액을 2000억원이나 조정해 준 만큼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만약 중흥건설이 실사 후 다시 한 번 조정을 요청할 경우 특혜 의혹을 비롯한 각종 구설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중흥그룹은 8월부터 시작한 정밀실사 막바지 단계에 이르고 있어 연내 대우건설 대주주이자 산업은행 자회사인 KDB인베스트먼트(KDBI)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계획이다. 양사 간 양해각서(MOU) 상 실사 결과에 따라 기존에 중흥이 제시한 인수금액에 3% 가격 조정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4~5달 만에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번 매각과정에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KDBI가 입찰 참여사인 중흥건설과 DS네트웍스로부터 무리하게 입찰제안서를 두 차례 받으며 건설 및 IB업계에서도 논란을 낳았다. 당시 KDBI는 “보다 나은 가격과 조건으로 거래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포기하는 것은 ‘업무상 배임’”이라며 중흥이 요구한 입찰가 수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흥건설은 최초 입찰제안서에서 2조3000억원을 써 냈다, 수정제안서에서 이를 2조1000억원으로 낮췄다. 이 때문에 “경쟁사인 호반이 입찰할까봐 입찰가를 높게 써낸 중흥이 항의를 하자 특혜를 줬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DS네트웍스가 중흥보다 낮은 약 2조원을 제시하며 결국 무게추가 중흥으로 기울었다. 이밖에 KDBI는 중흥건설이 DS네트웍스와 달리 실사결과와 상관없이 인수대금을 지불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한 점을 우선협상대상 선정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3% 가격 수정조항이 MOU에 포함돼 인수가격 인하의 여지가 생기며 KDBI 주장의 정당성이 흔들리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분명 KDBI측에서 (중흥이) 실사와 상관없이 인수대금을 지불한다는 비(非)가격조건이 있다고 설명했다”면서 “말을 완전히 바꾼 셈”이라고 밝혔다. 중흥건설은 지난 5일 “심각한 우발채무나 추가 부실 등 특별한 변수가 없을 경우 KDBI와의 SPA도 빠른 시일 내 이뤄질 전망”이라고 발표했으나 다음 주 산업은행 국정감사 이후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건설업계 관계자는 “통상 인수합병 실사에서 문제가 발견될 경우 3~5% 정도 인수 대금을 조정하는 내용이 계약서에 담기는 데, 이번 대우건설 인수 MOU에도 이러한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건설 업종 특성상 실사 과정에서 꼬투리를 잡을만한 문제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어 중흥이 추가 할인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도급순위 5위의 종합건설사인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이 2차례나 매각에 실패한 비운의 기업이기도 하다.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승자의 저주’에 빠져 당시 사옥이던 대우센터빌딩 등 알짜자산을 매각한 바 있다. 2018년에는 해외사업 부실 문제로 호반건설과 협상이 무산되기도 했다. 민보름 기자 min.boreum@joongang.co.kr

2021.10.08 16:43

2분 소요
대우건설 매각, 모두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

건설

“토목·플랜트 부문 직원들이 회사 매각 후 구조조정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2일 열린 ‘대우건설 매각대응 비상대책위원회’ 출정식에서 심상철 대우건설 노조위원장이 이 같이 말했다. 이날 노조는 지난달부터 급물살을 탄 자사 매각입찰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오전부터 행사 장소인 을지트윈타워(대우건설 사옥) 앞에는 취재진이 장사진을 이뤘다. 지난달부터 급물살을 탄 대우건설 매각 이슈는 건설업계에서 ‘초미의 관심사’다. 이는 단지 2조원이 오가는 ‘빅딜’이어서만은 아니다. 이번 매각 입찰은 ‘굴지의’라는 단어를 붙일 만큼 한국건설역사를 써온 대표 종합건설사의 앞날이 판가름 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비대위를 출범한 노조뿐 아니라 업계 일각에서도 현재 진행 중인 대우건설 매각 과정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인수 주체부터 불투명한 매각 프로세스에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 인수기업, 해외사업·플랜트 축소하나 지금의 대우건설을 만든 공신은 국내외 대형 토목공사다. 흔히 대형 건설사를 떠올릴 때 ‘산업 역군’, ‘모래바람’을 떠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76년 해외 건설업 면허를 취득하며 시작된 대우건설의 해외사업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총 500여개에 달한다. 국내에선 8.2㎞구간에 달하는 거가대교 등 랜드마크급 공사를 수주했다. 그러나 대우건설 내부에선 매각 이후 토목·플랜트 부문이 대거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강력한 인수후보인 중흥건설도 주택·건축 분야 외에 업력이 약하다. 게다가 최근 불경기로 인해 토목과 플랜트 업황이 악화되면서 기존 인수후보가 해당 분야 투자를 줄이거나 인력을 감축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이미 대우건설 해외부문 조직은 금호아시아나에 인수됐던 시절 금호건설과도 마찰을 빗었다. 심상철 위원장은 “당장 높은 입찰가를 쓴 인수기업이 당연히 그 자금을 회수하려고 할 텐데 그렇다면 현재 업황이 좋지 않은 토목 플랜트 쪽에서 구조조정을 하게 되지 않겠냐는 내부 의견이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 입찰 기업들이 결국 대우건설 주택사업의 브랜드를 보고 배팅했다고 예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우건설은 자체 이름값이 프리미엄 브랜드 ‘푸르지오 써밋’을 성공시키며 강남권을 비롯한 서울 주요지역 정비사업 시장에서도 수주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평가 받는다. ━ 안전조직 설립 막은 KDB인베스트먼트, 배임 논란 산업은행 자회사이자 대우건설 지분 50.75%를 보유한 KDB인베스트먼트는 예정에 없던 인수가격 조정을 밀어붙일 정도로 이번 매각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코로나19로 불황임에도 올해 1분기 2294억원 영업이익을 달성할 정도로 대우건설 실적이 개선되면서 주가도 급등했다. 이 과정에서 대우건설이 추진했던 안전혁신위원회 설립 내용을 담은 자체 안전혁신안의 예산은 대폭 축소됐다. 대주주인 KDB인베스트먼트가 “매각을 앞두고 돈 들어갈 일을 만들지 말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안전혁신안이 나온 배경은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고용노동부 관리감독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고용부는 지난 10년간 현장에서 연평균 5건 이상 재해가 발생한 대우건설에 4억5360만원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밝혔다. 노조 측에선 KDB인베스트먼트의 방해로 사업본부가 요청한 인력충원이 되지 않으면서 이 같은 안전사고가 증가했다고 보고 있다. 올해 4월 사망자를 낳은 장위10구역 철거현장에도 건축직 기술자가 배치되지 않았다. 결국 매각 이후 ‘인력 가뭄’이 계속된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KDB인베스트먼트는 지난달 본입찰에 참여한 중흥건설과 DS네트웍스 컨소시엄에 인수가격을 다시 받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경쟁사보다 5000억원 높은 2조3000억원을 입찰가로 써낸 중흥건설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심상철 위원장은 “중흥건설 정창선 회장이 격노했고 본인이 직접 매각 작업을 주도하겠다는 말이 나오면서 갑자기 재입찰에 들어갔다고 들었다”면서 “그렇다면 당연히 특정업체에 특혜매각을 하는 것이므로 배임 행위”라고 강조했다. 민보름 기자 min.boreum@joongang.co.kr

2021.07.02 16:55

3분 소요
‘2조 3000억원’ 너무 비쌌나…대우건설 매각 재입찰 돌입

산업 일반

산업은행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가 대우건설 매각 재입찰에 나서면서 실제 인수가격이 본입찰 당시 최고가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KDB인베스트먼트는 오는 2일 자사가 보유한 대우건설 지분(50.75%)에 대한 재입찰을 진행한다. 지난달 본입찰에 참여한 중흥건설과 DS네트웍스 컨소시엄(DS네트웍스·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IPM)이 대상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선 양사의 입찰가 조정을 위해 재입찰이 결정됐다고 보고 있다. 중흥과 DS네트웍스 간 제시 가격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 본입찰에서 중흥건설은 2조 3000억원, DS네트웍스는1조 8000억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재입찰을 통해 중흥건설은 가격 조정의 기회를, DS네트웍스는 실질적인 재도전의 기회를 잡게 된다. 그러나 KDB인베스트먼트가 기존에 재입찰 계획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졸속 일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일각에선 ‘호반건설 입찰설’에 따라 경쟁적으로 입찰가를 높게 책정했던 중흥건설이 인수가격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종의 특혜를 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지적이 사실이라면 인수기업은 이미 중흥으로 내정된 셈이며 대우건설 인수가격 역시 중흥이 본입찰 당시 내세운 기존 가격보다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번 매각과정이 ‘깜깜이 입찰’이라며 비판해온 대우건설 노조는 같은 날 을지트윈타워 사옥 앞에서 자사 매각 반대를 주장하는 시위를 열 계획이다. 민보름 기자 min.boreum@joongang.co.kr

2021.07.01 15:42

1분 소요
움츠러든 한국 기업 | 한국은 세계 M&A 시장의 변방?

산업 일반

국내외 경기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매력적인 기업이 시장에 매물로 종종 나온다. 주요 글로벌 기업은 이를 놓치지 않고 사업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동종업계 경쟁사에 대한 적대적 인수를 시도하거나 선두권 기업끼리 합병을 하는 등 덩치 키우기에 한창이다. 구글을 필두로 주요 IT기업은 돈이 될 만한 기술을 가진 기업을 쓸어 담고 있다.국내 기업은 정반대의 분위기다. ‘빅딜’을 찾아보기 어렵고 조직 단순화를 위한 계열사간 합병, 혹은 구조조정을 위한 계열사 매각만 줄을 잇는다. 기업 안팎에 돈이 넘치는 데 왜 지갑을 꽁꽁 닫아두고 있을까? M&A를 꺼리는 기업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또 해외 기업의 M&A 동향과 일본 기업의 실패 사례도 분석했다.“오너는 결정을 못 내리고, 임원들은 혹시 자기 책임이 될까 눈치만 보며 전전긍긍하고.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한 대형 식품기업의 인수합병(M&A) 자문을 맡았던 한 회계법인 관계자의 말이다. 회사가 원료 조달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해외농장 인수를 검토하던 때의 일이다. 경영진과 오너는 몇 달을 고심하며 차일피일 인수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임원들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 아니냐’며 불편한 기색이었다.회계법인 관계자는 “쓸 수 있는 현금도 넉넉하고 재무구조도 견실한 기업인데 이 정도의 리스크도 감수할 생각이 없다니, 솔직히 그 회사를 다시 봤다”며 “결국 그 회사는 농장을 사지 않았고 얼마 후 해외 기업에 우리 예상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한 대기업의 CEO는 기업 오너 입장에서 말을 전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물건이 너무 비싸다 싶으면 지갑을 열지 않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 요즘 기업이 (인수합병) 매물을 보며 비싸다고 느끼는 건 대상의 가치가 낮아서가 아니라 비관적인 시장 분위기 탓이 크다. 기껏 인수해도 수익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업이 몸을 사리는 것이다.”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 M&A에도 적극 나섰던 국내 대기업이 요즘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3년 기업결합 신고 및 심사동향’을 보면 지난해 대규모 기업집단(대기업) 소속 회사의 기업결합 건수는 총 144건, 금액은 6조1000억원이었다. 2012년의 197건, 7조8000억원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 그나마도 대기업이 조직개편을 위해 그룹 내 계열사끼리 합병한 경우가 많았다.오히려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을 탐내는 분위기다. BOA메릴린치 서울지점이 최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주요 기업 최고재무 책임자(CFO)에게 M&A 의향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지역의 기업인지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세계 주요 경제권 13곳 중 한국에 대한 관심도는 2012년 8위에서 2013년 4위로 올랐다. 실제로 지난해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을 인수한 사례는 41건으로 2012년 28건보다 크게 늘었다.성장전략 부재 … 자신감 없으니 ‘일단 보류’동북아 국가의 기업 분위기와 비교해보면 온도 차이는 더 뚜렷해진다. 중국 기업은 자금력과 국가의 지원을 바탕으로 기업 인수에 무서운 식욕을 드러내고 있다. M&A 규모에서 이미 일본을 제쳤다.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실적을 올린 일본 기업도 해외 M&A에 잰걸음을 이어 간다. 포화 상태에 이른 내수시장에서 벗어나 새 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다.이에 비해 국내 기업은 최근 몇 년간 M&A를 통한 확장보다는 내실을 다지기 위한 구조조정이나 조직 단순화 등 축소 지향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1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이 124조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이를 투자하기보다는 쌓아만 두는 실정이다. M&A 업계 관계자들은 “기업이 자신감을 잃고 위축됐다”고 분위기를 전한다.그럴 만한 게 M&A로 사세를 확장하고 새로운 산업 분야에 진출한 기업이 최근 줄줄이 경영 악화로 위기에 처하는 등 ‘승자의 저주’를 자주 목격한 탓이 크다. STX그룹은 과도한 빚으로 사세를 확장하다가 주력 사업 실적이 악화되며 그룹이 와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웅진그룹은 극동건설을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지나치게 비싸게 인수했다는 평을 들었는데 건설 경기가 악화되면서 결국 그룹이 법정관리에 이르렀다.대우건설 인수 이후 재정난에 시달리다 3년 만에 재매각을 결정한 금호아시아나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어려움에 빠진 그룹이 일부 계열사를 내놓으며 구조조정에 나서도 잠재적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공기업 성격이 남은 민간기업도 움츠러들긴 마찬가지다.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시중은행이나 포스코, KT등 정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는 기업은 경영자가 사퇴하는 과정에서 M&A를 비롯해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이 많았다”며 “후임 경영자는 아무래도 M&A에 관해 보수적으로 접근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제환경의 불확실성 역시 걸림돌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후 벌어진 일부 그룹의 부실화와 와해,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목격하면서 대외 환경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영향, 중국 경제의 연착륙 여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등을 꼽을 수 있다. 한 외국계 증권사의 기업금융 부문 대표는 “불확실성이 가득한 경제 환경에서 어느 기업이 투자를 하겠느냐”며 “좋은 매물이 많은데 비해 적극적인 매수자가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인수 후 통합 과정의 경험도 부족해국내 대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오너의 의지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문화가 오히려 M&A에는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국내 경제가 성장 일로를 달리던 1970~80년대는 대기업 오너의 주관에 따라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M&A를 감행하며 사세를 키워나갔다. 그러나 저성장시대, 세계 경제가 촘촘하게 연결되어 예측가능성이 작아진 요즘에는 오너의 직관에만 의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요즘은 오너들도 M&A 실패로 기업이 큰 타격을 입는 것을 목격한 터라 ‘일단 보류’하는 분위기다. 안진딜로이트 홍순재 이사는 “객관적이고 계량적인 분석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예측해서 인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 시스템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인물이 결정하고 책임지는 문화는 기업인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현실에 안주하게끔 만들고 도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한다. 법무법인 세종의 장재영 변호사는 “대기업 계열사는 해당 기업 임원과 CEO 보고는 물론 그룹 지주사를 거쳐 오너까지 복잡한 보고 체계를 거쳐야 하는데 좋은 매물을 빨리 선점해야 하는 M&A 시장에서 대응이 느려 놓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2008년 이전까지 주로 해외 자본·기업이 국내 기업을 사들였다면 금융위기 이후에는 국내에서 해외 기업을 사들이는 경우가 늘었다. 특히 IT·제조 등 국내 기업이 원천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분야는 해외 기술 기업을 인수해 핵심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문제는 어떤 기업이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그중 어떤 기업이 매물로 나왔는지 M&A 관련 정보 자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알짜 기업은 해외 현지 기업이 대부분 소화해버린다. 발품을 팔며 해외 사정을 파악하고 다니기에는 대기업 내부 역량이 부족하고 언어적 장벽으로 정보 접근이 쉽지 않다. ‘한국은 사실상 세계 M&A 시장에서 변방국가’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이유다.M&A에 대한 사회적 반감도 악영향국내에서 동종업계 회사를 인수하려 해도 벽이 존재한다. 최근 한 식품 대기업은 소규모 동종업체를 하나 인수하려다 불발에 그쳤다. 해당 회사의 생산 품목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인수합병 하면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기업의 시장 독점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시장에서 확장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분위기다. 대기업 관계자는 “가뜩이나 M&A에 반감이 큰 사회인데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겠다”고 말한다. 장재영 변호사는 “국내 기업이 눈치 보느라 인수 못한 회사를 외국 기업이나 자본이 가져간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국내 대기업이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가장 큰 원인은 역시 ‘M&A 실패 사례로 인한 자신감 상실’이다. 특히 해외 기업인수에 뼈저린 실패를 많이 겪었다. 왜 해외 M&A는 성공하기 힘들까? 흔히 시장가치보다 너무 높게 책정된 인수가격, 과도한 차입금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런 난관을 잘 헤치고 나갔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투자은행과 자문사 등 업계 관계자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실 대기업 관계자들이 M&A에 관련해 가장 골머리를 썩는 이슈는 인수합병 후 통합과정(PMI:Post Merger Intergration)”이라고 말한다. 두 회사를 하나로 합치면서 겪는 진통이 예상보다 크다는 것이다.대기업이 그룹 차원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획일적 조직문화를 강조하는 반면 인수된 해외 기업은 보다 독립적인 경영을 원해 합병 초반 불협화음을 겪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시너지 효과를 내기는커녕 조직 통합에 실패해 컨트롤이 어려워지는 상황까지도 발생한다. 보수적이고 경직된 기업문화가 새로운 조직과 융화하는 과정이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다.대내외적 악조건과 숱한 실패 사례에도 기업이 좋은 매물을 노려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수 시장에서의 한계에 봉착한 기업이 해외 시장을 노리거나 성장동력이 될 새로운 분야로 진출해야 하는데, 성공적인 인수합병이 왕도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시너지 효과를 내거나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큰 좋은 매물을 얻기 위해서는 ‘물건값’만 가지고는 어림없다. 좋은 기업을 발굴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인수하기 위한 ‘기타 투자비용’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해외 시장을 꾸준히 조사하고, 관련 지식과 노하우가 풍부한 인재를 육성하거나 스카우트하는 등의 투자가 이뤄져야 내부 역량도 기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은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는커녕, 인수합병 과정에서 당연히 드는 자문료 등의 비용마저도 아끼는 행태를 보인다.법무법인과 투자은행, 회계법인 등에 지불하는 수수료에 대해 할인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세계 M&A 시장에서 유명하다. 한 투자은행 관계자는 “일하는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지불하는 고객사에 더 많은 신경을 쓰지 않겠느냐”며 “큰 규모의 인수합병은 기업의 명운이 달렸는데 비용을 아끼려다 소‘ 탐대실(小貪大失)’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4.06.30 11:39

7분 소요
Management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생텍쥐베리作 『어린왕자』의 ‘보아뱀 전략’

전문가 칼럼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는 세계 160여개 언어로 번역이 됐고 1억 부 이상 팔린 최고의 베스트셀러다. ‘나’는 6년 전 사하라 사막에 비행기를 타고 가다 불시착했다. 단 일주일분의 물만 갖고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 거기서 어린왕자를 만났다.우리는 친구가 됐다. 알고 보니 어린왕자는 B-612라는 소혹성에서 왔다. 사흘째 되는 날, 바오밥 나무에 대해 얘기했다. 나흘째는 하루에 마흔 네 번이나 석양을 본 어린왕자의 소혹성 얘기를 했다. 다섯 째날 대화의 주제는 어린왕자 소혹성에 사는 한송이의 장미다.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는 거만한 장미다.여우는 지혜를 주는 존재어린왕자는 인근 소혹성으로 여행을 떠났다. 첫 번째 여행지는 임금 홀로 다스리는 소혹성. 백성은 없다. 두 번째 별은 허영쟁이. 자신을 모든 사람들이 찬양한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별은 술주정꾼. 술을 마시는 자신이 부끄럽다는 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있다.네 번째 별은 기업가가 산다. 자신이 센 5억 개의 별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한다. 다섯 번째 별은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 있다. 1분에 한번씩 점등을 하는 과로한 업무를 하면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여섯 번째 별은 지리학자가 산다. 현장에는 나가지 않는 탁상공론자다. 그가 어린왕자에게 제안한다. “지구라는 별에 가보라”고.지구는 어린왕자의 일곱 번째 방문지다. 아프리카 사막에서 뱀을 만나고, 세 장의 꽃잎을 가진 볼품없는 꽃을 만난다. 5000송이가 핀 정원을 들른다. 자신이 가졌던 장미 한 송이가 그저 평범한 꽃 한 송이에 불과했다고 느끼는 순간, 어린왕자는 절망을 느낀다. 풀숲에 쓰려져 울다가 여우를 만난다.나와 어린왕자가 인연을 맺는 가장 큰 매개는 ‘나’가 그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이다. 여기서 나온 경제학 용어가 있다. ‘보아뱀 전략’이다. 자신보다 규모가 큰 기업을 인수·합병(M&A)해 기업을 성장시키는 전략을 말한다. 자신보다 규모가 큰 기업을 삼키다 보니 기업의 형태가 달라진다. 주력 산업이 바뀌기 때문이다. 길고 가는 보아뱀이 모자 형태로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다.성공적인 사례로 인도의 타타그룹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9년 보고서를 냈다. ‘글로벌 M&A시장의 보아뱀, 타타그룹’이라는 제목이었다. 보고서를 보면 타타스틸은 연간 500만t 생산규모를 가진 세계 56위의 철강회사다. 2007년 이들은 연간 1900만t(세계 9위)의 조강생산 능력를 가진 영국의 코러스를 121억 달러에 인수해 세계 5위의 철강회사로 도약했다. 타타모터스는 2008년 영국의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23억 달러에 인수했다. 타타모터스는 ‘나노’ 등 저가 소형차를 생산하는 소규모 자동차 회사였다. 타타그룹의 성장사는 세계 주요 경영자들의 관심사가 됐다.국내에서도 작은 회사가 큰 회사를 인수하려는 시도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효성그룹의 하이닉스 인수 추진이다. 효성그룹은 자산 6조원, 하이닉스는 13조원이었다. 하나은행이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사들인 것도 일종의 보아뱀 전략으로 분류할 만하다. 인수 당시 하나은행 총자산은 150조원으로 외환은행(100조원)을 외형에서는 앞섰지만 순이자수익 등 내실 면이나 해외 네트워크에서는 외환은행이 더 탄탄했다.외환은행 일부에서 “하나은행에게 먹힐 수 없다”며 자존심 상해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NH농협금융이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한 것도 증권 업계에서는 ‘보아뱀 전략’으로 볼만하다. 우리투자증권은 자산 29조원으로 업계 2위, NH농협증권은 자산 6조원으로 14위다.M&A시장에서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막대한 인수자금이 필요해 리스크가 커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인수자금을 끌어 모으다 보면 현금흐름이 압박 받게 되고 유동성이 위축되면 기업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 자금 부담으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진 사례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추진이 있다. 경쟁 끝에 대우건설을 인수하고도 막대한 자금을 마하지 못해 산업은행 등에 다시 토해냈고, 그룹은 그 여파로 휘청거렸다.합병을 하더라도 인력풀이 약해 단기간에 인수기업을 장악하기 힘들고, 피인수 기업의 거대조직들과 충돌하다 통합에 진통을 겪는다는 것도 문제다.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는 NH농협증권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실제 외환은행을 인수한 하나은행은 외환은행 노조와 갈등을 겪고 있다.재밌는 것은 2000년대 후반 보아뱀 전략을 쓴 기업들은 정치권과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효성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사돈관계였고, 하나금융지주는 김승유 회장이 이 대통령과 지인이었다.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고 정확한 정보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뒤를 봐줄 정치적 힘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오는 이유다.작은 기업이 큰 기업을 인수해 제대로 운영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어린왕자’에도 나온다. 나는 ‘어릴 때 본 책에 씌어 있는 얘기’라면서 말한다. ‘보아 구렁이는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킨다. 그리고는 꼼짝하지 않고 소화시키기 위해 여섯 달 동안 잠을 잔다.’ 제대로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인데 기업 M&A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만하다.자금 조달에 실패하거나 조직 융합에 실패하면 ‘승자의 저주’를 불러올 수 있다. M&A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과도한 비용을 쓰거나 조직 융합을 실패해 인수기업이 위기로 떨어지는 현상이다. 미국 석유회사인 애틀랜틱 리치필드사에서 근무한 카펜·클랩·캠벨 등 세 명의 기술자들이 1971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언급됐다.1950년대에 미국 석유기업들은 멕시코만의 석유시추권 공개입찰에 참여했다. 과도한 경쟁이 벌어졌다. 한 기업은 2000만 달러를 써내 입찰 받았다. 문제는 석유매장량. 나중에 측정해 보니 석유매장량 가치는 1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1992년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는 『승자의 저주』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 이 용어가 널리 알려졌다.M&A 후 소화 과정이 더욱 중요인수한 기업의 가치가 인수가격에 미치지 못하거나, 인수에 성공한 기업의 재무부담이 너무 크다고 판단되면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한다. 주식을 팔아 자금을 마련할 요량이었던 기업이라면 곧바로 인수자금 부족 사태에 빠지고, 추가 자금을 은행에서 대출 받으면서 부채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지혜를 주는 존재다. 여우는 말한다. 아무리 많은 꽃이 있더라도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물을 주고, 유리덮개를 씌우고,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그녀(꽃) 말에 귀를 기울여주면서 그 장미꽃은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라는 것을 어린왕자는 비로소 깨닫는다.8일째 물이 떨어졌다. 나와 어린왕자는 샘을 찾아 떠난다. 어린왕자는 말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우물이 숨어있어서 그렇다”고. 9일째 샘을 찾았다. 10일째 어린왕자는 자기별로 떠난다. 지구에 내려온 지 1년째 되는 날이었다. 이미 두 사람은 길들여져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 여우의 말이 떠올랐다. “자기가 길들여지도록 맡긴 사람은 눈물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고.” 이별은 아픈 거다.

2014.04.21 16:45

5분 소요
독점 인터뷰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산업 일반

正道 경영철학 확고… 세계적 석유화학 전문기업으로 키우는 게 꿈 금호그룹은 형제 간 경영권을 승계해 왔다. 박인천 창업회장의 유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룹 분리 과정에 있다. 무리한 인수합병 이후 그룹이 위기에 빠지면서 금호타이어, 금호석유화학 부문으로 실질적인 경영이 나뉘고 있는 것. 그 중심에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있다.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를 어렵게 만났다.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박삼구 회장이 금호타이어 등을 맡고, 박찬구 회장 부자와 고(故) 박정구 회장의 아들인 박철완 부장이 금호석유화학을 공동 경영하고 있다. 무리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는 그룹 전체를 위기에 빠뜨렸다. 이에 따라 지난해 2월 채권단이 제시한 ‘분리 경영안’에 합의하면서 계열분리가 본격화됐다. 양 측은 이후 각 계열사 이사진을 교체하는 등 후속 조치를 취했다. 그동안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에 대한 박삼구 회장의 입장은 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그룹 분리 반대와 경영권 유지에 대한 의지가 핵심이다. 반면 그룹 경영의 또 다른 축인 박찬구 회장의 생각은 그다지 노출되지 않았다.주변에서는 박 회장이 형제 간 갈등이 외부에 알려지는 걸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박찬구 회장은 평소 나서지 않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대기업 회장이면서도 언론에 노출된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박 회장과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게다가 형제 간 갈등이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어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 “우리 독자는 당신과 당신의 기업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는 말로 수차례 설득한 후에야 그는 힘들게 인터뷰를 수락했다. 인터뷰는 두 번에 걸쳐 이뤄졌다. 먼저 8월 11일 서울 신문로 금호석유화학 본사에서 만났다. 17일엔 울산 고무공장에서 얘기를 나눴다. 박 회장은 자신이 살아온 과정, 아버지에 대한 소회, 최근의 형제 갈등, 분리경영 이후의 비전 등에 관해 소상히 밝혔다.박찬구 회장은 1948년 광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76년 금호석유화학 구매부 과장으로 입사했다. 해외 원자재 수입 업무를 시작으로 회계부 등을 거치며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았다.외모와 성격, 선친과 가장 닮아1996년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금호실업과 금호건설에 재직한 6년을 빼면 올해로 30년째 금호석유화학에서 일한 셈이다. 그는 ‘한 우물’을 판 전문 경영인으로,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수준 높은 전문가로 통한다. 오늘날 금호석유화학을 전 세계 합성고무 생산능력 넘버원 회사로 만든 주역으로서 금호석유화학에 대한 애정과 비전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그동안 박찬구 회장은 형님들에 비해 별로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었다. 박 회장은 이를 ‘일종의 역할 분담’이라고 표현했다. 형님들이 대외활동에 주력했기 때문에 스스로 묵묵히 내부를 챙길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박찬구 회장은 선친인 박인천 창업회장과 외모나 성격이 가장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조곤조곤한 말투, 차분하고 나서지 않는 스타일이 그렇다. 오버하지 않고 좀처럼 격앙되지도 않는 성격이라는 평이다. 박 회장은 “고집 센 것도 아버지를 꼭 닮았다”며 “외모나 성격이 아버지와 가장 닮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항상 그런 부분에 대해 말씀하시곤 했다”며 웃었다. “아버지는 여러모로 당신을 닮은 나를 좋아하셨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검소한 생활습관도 선친과 비슷하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박 회장은 칫솔 하나도 허투루 버리는 일이 없을 정도다. “책장 모서리가 깨져 바꾸려 하자 ‘책장에 책을 꽂을 수 있으면 된다’며 만류하셨다”는 게 비서실 직원의 말이다. 이런 검소함은 자녀들에게도 이어져 아들인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해외영업팀 부장 또한 ‘재벌 회장 아들’이라는 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회사 내 평가다. 4년 전 푸르덴셜증권 대표로 재직하던 당시 리더십 스터디그룹에서 박 회장을 만나 교류를 시작했다는 정진호 푸르덴셜사회공헌재단 이사장은 “잘 나서지 않는 스타일이라 활동성이 약할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는데 겪어 보니 외유내강형 CEO”라고 말했다.그는 박 회장이 ‘말수는 적지만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통계학을 전공해 그런지 몇 천억 숫자도 끝자리까지 다 기억하더라’ ‘윤리경영, 가치경영을 추구한다’고 했다. 정 이사장은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돈을 버는 기업주는 사회의 소외된 이들과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며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이 안정되면 사회에서 존경 받는 기업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아버지 어깨 너머로 배웠다”는 박 회장의 바둑 실력은 1급 수준이다. 그는 “바둑에서 경영을 배우고 있다”며 “대마를 지키려고 매달리면 이것저것 다 죽는다. 대마를 지키지 못할 땐 포기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입장에선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포기해야 할 대마였던 셈이다.“비 내리는 송추CC에서 그의 승부욕을 봤다”박 회장의 지인들은 그에 대해 “조용해 보이지만 승부사 기질이 있다”고 평가한다. 고등학교 동기로 40여 년 동안 박 회장을 곁에서 지켜봤다는 이동우 굿모닝신한증권 상무는 “박 회장은 조용하지만 추진력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일단 결정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는 것. 그는 “박 회장은 결정하기까지는 신중하지만 일단 결단하면 행동은 상당히 빠르다”며 “선친으로부터 기회를 얻었지만 금호석유화학이 성장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전문경영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정진호 이사장은 “지난해 여름 경기도 송추CC에서 그의 승부욕을 봤다”고 전했다. 당시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모두 게스트하우스에서 비를 피하는데도 박 회장은 “처음에 약속한 대로 18홀 다 돕시다”라며 라운딩을 강행했다는 것. 당시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고 있어 더욱 강한 승부욕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나인 홀을 돌 무렵 캐디가 힘들어하자 박 회장은 그제야 ‘허허’ 웃으며 라운딩을 접었다. 정 이사장은 “비즈니스맨으로서 승부욕이 강하고 애초 하자는 것은 반드시 지키려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핸디는 84~86타 정도.정 이사장은 “위기에 처한 모기업을 위해 계열사의 돈을 끌어들이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라며 “금호석유화학의 자산 담보에 대해 결연하게 거부한 것은 기업의 정직성, 도덕성 차원에서 용감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동우 상무 역시 “박 회장의 최근 경영활동을 보면 선한 인상 뒤에 확고한 신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최근 몇 년간 일련의 과정 속에서 박 회장은 체중이 7㎏이나 줄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형님과 불화가 일고 게다가 이것이 경영권 분쟁으로까지 가면서 창피하고 억울하고 또 안타까웠다”는 그는 “지난해부터 사실상 분리경영을 하면서 오로지 금호석유화학 경영에만 전념하다 보니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고 말했다.금호석유화학은 최근 영업이익률 15% 내외라는 엄청난 성과를 보이고 있다. 회사 측은 “직원들이 흥에 겨워 일해야 회사 이윤도 극대화된다는 생각으로 직원 복지에 힘쓴 결과”라고 말했다. 현재 금호석유화학 직원은 1300명 정도. 금호석유화학은 1988년 이후 노사 협의가 원만해 20여 년 동안 무분규·무쟁의 사업장을 기록하고 있다. 박 회장은 공장에 올 때마다 노조위원장들과 허심탄회한 만남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협력사 직원은 약 900명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협력업체 직원들의 임금을 16% 높이도록 용역비를 조정했고, 협력업체 직원 자녀들에 대해 대학등록금을 연간 300만원까지 지원토록 했다. 같은 울타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수준의 대우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반성장, 상생경영은 울산화학단지 내에서 큰 화제가 됐다.설비증설에도 열심이다. 2009년 대규모 증설 이후 올해도 여수공장 증설 등 설비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 시설 선진화와 확장을 통해 라이벌 기업보다 경쟁력을 키우면서 시장지배력을 높이겠다는 포부다. 재계에서는 금호석유화학의 빠른 결정과 집행력을 높이 평가한다. 박 회장은 “연말이면 4000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게 된다”며 “금융권 차입금이 아닌 보유 자금으로 시설투자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선친께서 지금 박 회장을 보시면 무슨 말씀을 하실 것 같으냐”는 물음에 그는 “아버지가 평소 강조하신 ‘정도(正道)경영’이 바로 이것”이라며 “잘했다. 금호석유화학을 살린 것은 잘한 일이라고 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M&A 후폭풍 보며 “금호석유화학을 지키자” 결심금호 일가를 둘러싼 잡음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부각됐다. 박 회장은 “당시 그룹은 이미 금호건설을 계열사로 가지고 있었고 또 건설경기가 호황도 아니었다. 내 판단으로는 대우건설이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며 “건설업종 자체가 경기를 타기 때문에 무리한 베팅은 그룹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박찬구 회장의 의견은 묵살됐다. 대한통운 인수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무리한 베팅은 결국 그룹을 위기로 몬 ‘치명적 독배’가 되었다. 대우건설 인수가격 6조4000억원 가운데 자기 자본은 2조9000억원 수준이었다. 나머지 3조5000억원을 차입으로 조달했다. 재무적투자자(FI)에게 3년 뒤인 2009년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1500원이 안 되면 차액을 보전해 주겠다는 풋백 옵션을 맺고 돈을 빌린 것이다. 당시 M&A시장이 평가했던 대우건설의 적정가치는 3조~4조원대였지만 두 배 가까운 베팅을 한 것이다.2008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한진·현대중공업·STX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4조1000억원에 인수한 대한통운 역시 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시장가치는 2조원 수준이었지만 또다시 재무적투자자들과 풋백옵션을 맺으며 자금을 조달했다. 자산 12조원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년간 총 10조원을 쏟아부으며 연거푸 대형 M&A를 성사시켰다. 하지만 인수기업 재매각과 모기업 워크아웃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대우건설 인수 당시 반대 의견을 표명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통운 인수는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다”는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이 그룹에 캐시카우 역할을 하다 보니 그룹에선 자꾸 인수합병에 대한 투자를 요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주를 우선해야 한다. 주주들이 허락하겠는가? 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은 희생할 생각을 않고 금호석유화학만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금호석유화학에 입사해 줄곧 일해 온, 그리고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백화점식 경영이 아닌 한 종목에서라도 세계 1위에 올라야 한다’는 박찬구 회장의 경영철학에서 보자면 그룹의 공격적 확장은 위험해 보였다. 그는 “나는 사업을 확장하더라도 회사 내 자금 흐름과 재무 구조의 안전성을 확인한 후 신중히 결정한다. 빚을 가져다 사업을 넓히는 것은 무리가 온다. 현금 흐름, 자기자본비율은 기업을 경영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 등 방만한 그룹 경영에 대해 수차례 경고했다. 그리고 그룹에 유동성 위기가 닥치자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의 재매각만이 그룹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길이라고 누차 말했지만 그룹 측에선 경청하지 않았다. 결국 그룹 분할에 대한 시그널도 보냈다”는 박 회장은 “나로서는 내가 책임지고 경영하고 있는 금호석유화학을 보호해야만 했다”고 말했다.박찬구 회장은 2009년 6월 15일 실제 행동에 옮겼다. 6월 15일은 아버지 박인천 창업회장의 기일이었고, 이날 박 회장의 행보는 그룹 분리에 대한 그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박찬구 회장은 ‘분리경영’을 염두에 두고 이날부터 주식을 정리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양대 지주회사 중 하나인 금호산업 주식을 전량 매각하고 자신이 경영을 맡고 있는 금호석유화학 주식 매입에 나선 것. 당시 재계에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분할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왔다.하지만 2009년 7월 금호석유화학 이사회에서 박찬구 회장은 대표이사직에서 해임됐다. 박 회장은 이사회 직전까지도 해임 안건 상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이 정도까지 나를 몰아세울지는 몰랐다”는 게 그의 말이다. 2010년 1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해 워크아웃이 발표됐고,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석유화학은 자율협약 대상이 됐다. 사실상 박삼구, 박찬구 두 회장의 독자 경영이 시작된 셈이다.주주와 직원들 마음고생 정도경영으로 갚을 것 ‘분리경영’에 대한 박찬구 회장의 신념은 확고하다. “경영철학이 다른데 어떻게 한 배를 탈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형님도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에서 기업을 잘 꾸려 좋은 기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나도 책임지고 있는 기업을 잘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삼구 회장은 채권단과의 MOU를 잘 이행해 아들인 박세창 전무와 함께 금호타이어 등을 다시 살려내고, 자신은 조카인 박철완 부장, 아들 박준경 부장과 함께 자율협약 상태인 금호석유화학을 정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는 “이것이 현재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정답”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제외시켜 달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청서를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정위가 불가 판정을 냈지만 행정법원에서 다시 심사를 받을 계획이다.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 간 지분 관계가 거의 해소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금호석유화학이 계열제외 신청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박찬구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 악화, 워크아웃으로 금호석유화학 역시 금융권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신규대출은 물론이고 대출 연장도 힘들며 적용 금리도 높다. 부실한 그룹 산하에 있다는 게 그 이유”라고 말했다.박찬구 회장은 주주와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토로했다. 그는 “경영권 분쟁으로 모두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라며 “선친의 유지인 정도경영으로 주주와 직원들의 사기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재계에서는 금호 일가의 형제 경영권 승계 전통은 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이나 현대, 두산그룹 등에서 보듯 3세 경영 시대가 오면 그룹 분할로 들어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창업주와 그의 자녀들은 동업자 개념이 강해 경영권 분쟁이 크지 않지만 3세로 내려가면서 이런 정신은 희석된다. 1인자 자리를 여럿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그룹을 분할하는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정설이다.박찬구 회장은 시험대에 서 있다. 본격적인 독립경영을 위해서는 정리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채권단과 맺은 자율협약을 졸업해야 한다. 해외 현지법인 출장 등 밀린 숙제도 많다. 박 회장은 “당당하게 시험을 통과해 졸업할 것”이라며 “금호석유화학을 세계적인 석유화학 전문기업으로 키워내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2011.08.25 09:49

9분 소요
현대건설 승자, ‘저주’ 안 걸리려면

산업 일반

M&A(인수합병)는 결과가 아닌 수단이다. 향후 얼마만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M&A를 결과로 오판해 이기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했을 때 뒤따르는 게 ‘승자의 저주’다.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반면교사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현대건설이라는 알짜배기 기업이 매물로 나왔다. 인수를 놓고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첨예하게 맞붙었다. 명분 싸움도, 시장 논리도 다 좋다. 그러나 현대건설의 인수로 또 다른 승자의 저주가 나와서는 안 된다. 현대건설이 ‘누구’에게 가는가보다 합병 후 ‘어떻게’ 시너지를 낼 것이냐에 집중해야 한다.◇‘승자의 저주’ 왜 반복되나=1999년 8월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건설부문이 대우건설로 분할됐다. 2006년 11월 금호그룹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한다. 대우건설 지분 72.1%를 2006년 6월 6일 최종인수후보자 선정 시 주가인 1만8000원보다 비싼 주당 2만6262원에 사들인다. 경영권 인수 프리미엄치고는 혹독했다. 총 인수금액은 6조4000억원. 금호 계열사가 2조9000억원을 자체 조달했고 나머지 지분 39.6%는 재무적투자자가 모여 매입했다.과도한 자금조달은 위험 2008년 3월 금호그룹은 대한통운 지분 50%+1주를 4조1040억원에 인수했다. 매각 당시 대한통운의 자산가치는 약 1조5000억원. 이 두 번의 대형 M&A로 금호그룹은 몸집을 불렸지만 영업이익은 급감했다. 2006년 6288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09년 2195억원, 2010년 1분기 583억원으로 떨어졌다.2009년 미국발 신용위기 여파로 대우건설 주가는 1만3000원대로 주저앉는다. 금호는 매입 당시 주가(3만2510원)와의 차이인 4조원가량을 물어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인수 후 3년이 지나 주가가 떨어지면 매입 당시 주가로 금호그룹이 이를 되사겠다는 풋백옵션을 걸고 재무적투자자를 구했기 때문이다. 2009년 6월 금호는 대우건설을 다시 매물로 내놓게 되고, 그룹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과도한 차입으로 M&A를 추진해 실패한 대표적 사례다.한화그룹은 2008년 10월 대우조선해양(구 대우중공업) 인수전에서 포스코, GS 등 경쟁자를 따돌리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다. 한화는 당시 6조원에 달하는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대한생명 주식, 인천 부동산, 장교동 사옥 빌딩, 갤러리아백화점, 한화리조트 등 알짜배기 자산을 매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금이 부족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주 채권자인 산업은행에 인수대금 분할납입 안을 제시했지만 거절 당했다. 인수 협상은 결렬된다. 한화는 3150억원의 이행보증금을 놓고 소송 중이다.두산그룹이 미국의 밥캣을 인수하면서 알짜배기 회사를 팔아야 했던 아픈 기억도 있다. 두산은 유리병 제조업체인 두산테크팩을 팔고, 소주 ‘처음처럼’을 생산하는 두산주류BG도 롯데그룹에 팔았다.2004년 쌍용자동차 채권단은 지분 48.9%를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5억 달러. 상하이자동차의 인수 목적이 기술이전이라는 시장의 지적에도 주당 매각가격을 높게 써낸 곳에 쌍용자동차를 넘겨줬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상하이자동차는 투자 문제가 거론되면 국내 금융회사의 돈을 빌려 투자금으로 전환하는 행태를 보이고 기술유출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자동차가 유동성 문제에 휩싸이자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발을 뺐다.승자가 저주받은 사례들이다. 현대건설 인수전도 자칫 이런 전례를 따르지는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채권단이 재무적 건전성, 역량 등 기타 요소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가격 중심으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면 제2의 대우건설, 쌍용차가 나오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채권단은 가격뿐 아니라 비계량 지표도 심도 있게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M&A는 기업 규모를 키우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명확한 비전이나 전략적 시너지 효과를 제시하지 못한 채 과도한 자금조달만을 통한 무분별한 M&A는 승자의 저주로 돌아올 수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이기고 보자는 식의 ‘베팅’이 아니라 시너지 효과를 입증할 만한 전략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현대차그룹 vs 현대그룹=현대건설은 워크아웃 기업에서 국내 1위 건설기업으로 회생한 기업이다. 해외시장 인지도나 원자력발전소 시공능력 등 기술력도 세계적 수준이다. 그런 만큼 이번 인수전의 핵심은 현대건설의 발전 가능성이 돼야 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현대그룹은 약점으로 지적돼온 자금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10월 28일 이사회를 열고 3967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기로 했다. 발행주식은 보통주 1020만 주로 전체의 7%를 넘는다. 이런 대규모 유상증자는 4년 만이다. 또 계열사인 현대부산신항만 주식도 절반을 처분키로 했다. 다음달 18일까지 이를 유동화 전문회사에 2000억원가량에 매각할 계획이다. 또 현대상선 자사주 신탁계약을 4건 해지해 3788억원의 현금도 조달할 예정이다.총 9755억원가량의 추가 유동성 확보는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실탄 확보를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증권도 지난 2월 3년 만기 공모사채를 발행해 2000억원을 마련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7월 12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 데 이어 다음달 1000억원을 추가 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현대그룹이 확보한 현금성 자산은 약 2조5000억원 규모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의 유상증자와 부산신항만 터미널 지분 매각은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현대그룹은 현재 3조5000억~4조원이 될 것으로 보이는 현대건설 인수자금의 부족분을 외국계 전략적투자자를 유치해 해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대그룹의 전략적투자자인 독일 M+W그룹의 역할이 어느 정도가 될지에 따라 베팅 금액이 달라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현대차그룹은 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 주요 계열사의 현금성 자산이 12조원에 달한다. 유동성이 풍부해 신규 회사채 발행도 하지 않는다. 현대차 한 관계자는 “현재 내부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만 기업 가치에 상응하는 수준의 인수가격이 돼야 (인수)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가격 외적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현대차그룹은 최근 “현대건설을 2020년 수주 120조원, 매출 55조원대 종합엔지니어링 업체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수출기업인 현대차그룹의 특성인 글로벌에 방점을 찍은 이 청사진에는 현대건설 사업부문을 장기적으로 4개 분야로 분류해 그룹 내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를 높이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현대차그룹은 자동차와 철강, 건설로 이어지는 미래 3대 성장축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전기차 같은 친환경차, 밀폐형 원료처리 시스템 등 친환경 제철, 친환경빌딩과 원전 등 그린시티를 주도하는 건설로 에코 밸류 체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악순환의 사슬 끊으려면=현대건설 채권단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번에도 인수가격이 가장 높은 곳의 손을 들어줘서는 치열한 인수전→높은 인수가격→핵심 자산 매각→기업 가치 하락이라는 승자의 저주 악순환을 끊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M&A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수가격이다. 그러나 인수업체의 자금조달 능력과 인수 후 경영 비전을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단순히 이기기 위해 여력이 되지 않거나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데도 무분별한 가격 경쟁을 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건설 채권단도 비가격적 요소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지만 자금 회수 등 문제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른바 현대건설의 적정 인수가격은 4조원 안팎이라지만 일부에선 그 이상을 언급하기도 한다”며 “치킨게임식 인수가격 부풀리기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이와 함께 재무적·전략적투자자와 같은 네트워크가 제대로 기능할지도 따져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금호그룹이 재무적투자자에 풋백옵션을 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그룹이 위기에 처했던 상황에서 교훈을 얻자는 주장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대우건설 재입찰 당시 참여했던 한 해외기업 컨소시엄을 두고 유령 회사가 아니냐는 말까지 있었다”며 “재무적투자자나 전략적투자자가 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채권단이 보유한 현대건설 주식은 3887만9000주로 전체 지분의 34.88%다. 여기에 경영권 인수 프리미엄을 더한다 해도 매각가격은 3조5000억~4조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 인수가격이 이 선에서 과연 얼마나 더 뛸지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다. 다만 과도한 베팅 경쟁으로 가격이 높아지면 질수록 인수에 성공한 뒤 후폭풍도 크다는 점은 분명하다. 불과 2~3년 사이에도 크고 작은 승자의 저주 예를 얼마든지 들 수 있다. 한 증권사 사장은 “현대건설이 이 저주의 사슬을 끊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한정연 기자 jayhan@joongang.co.kr

2010.11.01 10:11

6분 소요
대우건설 무리한 M&A가 부메랑으로

산업 일반

▎2009년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린 금호아시아나 그룹 경영정상화 관련 기자회견에서 김영기 산업은행 수석부행장과 오남수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전략본부 사장, 채권단 관계자들이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06년 6월 9일 오전 8시. 서울 신문로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 18층의 박삼구 당시 회장 집무실에 오남수 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 등 그룹 수뇌부가 모였다. 대우건설 입찰마감을 앞두고 최종 인수가격을 결정하는 마지막 회의였다. 박 회장이 직접 쓴 가격은 1주당 2만7270원.당시 대우건설 주가가 1만4000원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2배 가까운 가격이다. 게다가 자산관리공사가 보유한 대우건설 지분 72.1%를 모두 인수하겠다고 제안해 총 인수대금은 6조6700억원에 달했다.이 중 3조5000억원은 재무적 투자자(FI)를 끌어들여 해결했다. 3년 후 대우건설 주가가 3만1500원을 넘지 못할 경우 FI가 보유한 대우건설 지분 39.6%를 이 가격에 되사주겠다는 풋백옵션을 내건 것이다.이렇게 대우건설을 품게 된 금호는 재계서열 11위에서 8위로 뛰어올랐고 이듬해 대우건설을 앞세워 대한통운마저 인수하면서 박 회장은 M&A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금호가 두 회사를 너무 비싸게 샀다”며 “언젠가 금호에 부메랑으로 날아올 수 있다”고 우려했고, 3년 뒤 이는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1. 그룹 축소 불가피 -대우건설·금호생명 産銀에, 금호산업·타이어도 대주주 변경대우건설을 인수한 지 3년6개월 뒤인 2009년 12월 30일. 4조원에 달하는 대우건설 풋백옵션 부담을 해결하지 못한 금호는 채권단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금호는 주력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해 워크아웃(기업구조 개선작업)을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두 회사에 대해서는 채무재조정과 함께 출자전환이 이뤄지면서 대주주가 채권단으로 바뀔 전망이다.금호의 금융권 부채는 약 16조원으로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등에 대해 출자전환을 진행할 경우 그 규모는 2조~3조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건설과 금호생명도 산업은행에 되팔기로 결정하면서 그룹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대우건설은 산업은행 사모펀드(PEF)가 50%+ 1주를, 금호생명은 산업은행과 칸서스자산운용이 경영권을 공동으로 인수하기로 했다. 산은은 대우건설을 주당 1만8000원에 매입키로 하고 금호와 내년 1월 중 본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박삼구 명예회장을 비롯한 대주주 보유 주식과 자산 등 약 3000억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 경영부실에 따른 책임을 지기로 했다. 다만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은 자구노력을 전제로 채권단 협의를 통해 자율협약을 추진키로 했다. 최장 5년간 채무상환을 유예 받고 자체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정상화를 추진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2. 화학·항공 체제로 외형 유지-향후 5년 내에 경영 정상화 숙제금호는 채권단과의 극적 합의를 통해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지만 앞날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일단 유동성 위기란 급한 불은 껐지만 그룹 외형의 축소는 불가피하다.우선 금호산업과 타이어에 대한 출자전환으로 소유권은 채권단 손에 넘어가고 채권단이 파견하는 자금관리인의 통제를 받는다. 다만 채권단은 이 두 회사에 대한 지배구조가 바뀌지만 실제 경영은 향후 3년간 금호에 위임할 것이라고 밝혀 경영시스템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대우건설과 금호생명도 산은이 인수하면서 그룹에서 완전히 분리된다. 금호렌터카도 KT-MBK파트너스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자체 정상화를 추진키로 한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도 일단 3년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됐고, 추가로 2년간의 말미를 얻었지만 이 기간에 정상화에 실패하면 경영권을 내놔야 한다.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을 내놓는 것은 총수 일가가 경영권을 모두 잃게 된다는 의미다. ▎2009년 7월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이 그룹 본사에서 경영 퇴진을 밝히는 긴급기자회견을 마친 후 나오는 모습. 3. 주력계열사 수익창출 능력 건재-재기 가능성 여전, 문제는 전략적 선택다행스러운 점은 금호의 주력 계열사들이 대우건설 인수로 인한 과다 부채로 일시적 위기에 빠졌을 뿐 기본적인 수익창출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해당 업종에서 국내 1, 2위를 차지하는 기업이 많고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해 자구노력 정도에 따라 조기 정상화도 가능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지난해 시공능력 13위였던 금호산업은 건설·고속부문에서 양호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호타이어도 해외법인의 정상화와 함께 수익 창출력이 회복되고 있다. 최근 미국계의 한 사모펀드(PEF)는 금호타이어에 대한 지분 투자도 검토했을 정도다. 다만 노사안정이 변수로 남아 있다.아시아나항공은 2008년 4분기부터 1년간 적자를 냈지만 2009년 4분기엔 150억원 이상의 흑자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산업, 금호타이어에 대한 지분법 평가손실이 짐으로 남지만 금호폴리켐, 금호P&B 등 자회사들의 수익성이 높아 실적 개선의 여지가 충분한 상태다.대한통운도 국내 물류업계 1위 업체로서의 경쟁력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금호 관계자는 “워크아웃 신청에도 불구하고 회사 가치와 경영시스템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협약 체결로 한숨을 돌린 금호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당장 금호석유화학 5750억원, 아시아나항공 5850억원, 대한통운 2080억원 등 올해 1분기 상환이 돌아오는 단기차입금부터 해결해야 한다. 석유화학은 자회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자본잠식에 따른 지분법 평가손실이 예상돼 재무구조가 극도로 악화될 수 있다.최근 주요 계열사의 장·단기 신용등급이 하락한 상태에서 보유자산의 매각과 인력감축은 물론 추가적인 계열사 매각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비록 채무상환을 유예 받더라도 자력으로 수익을 창출해 생존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4. 강도 높은 구조조정 예고-박 회장 “겸허한 자세로 위기 극복”금호가 성공적인 자구계획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금호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 박 회장은 워크아웃 신청 후 임원회의에서 “겸허한 자세로 위기를 극복하자”고 임직원들을 독려했다.그는 “내부적으로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외부적으로는 획기적인 수익을 창출해 그룹의 경영 정상화를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다른 금호 고위 관계자도 “그룹이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호 안팎에서는 올해 조직의 대대적인 축소와 비용 절감, 업무 프로세스 개선 등을 통한 생산성 향상 등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재계에서는 1970년대 오일쇼크와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했던 금호가 이번 벼랑 끝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 다시 한번 회생 신화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채권단도 회사 경영이 정상화될 경우 박 회장 등 오너 일가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이나 바이백(buy-back) 옵션 등을 통해 경영권을 되돌려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금호가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는 마지막으로 주어진 이번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2010.01.04 14:22

5분 소요
“로또복권  공익 사업으로 할 것”

산업 일반

▶ 1955년생, 74년 중동고 졸, 84년 연세대 중어중문과 졸, 85년 유진종합개발 대표, 97년 유진기업 대표·드림씨티방송 회장, 2004년 유진그룹 회장, 2005년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종횡무진. 올 들어 유진그룹이 보여준 사업확장 행보에 이보다 더 잘 맞는 표현은 없을 것이다. 서울증권과 로젠택배 인수로 금융과 물류사업에 신규 진출한 데 이어 최근에는 로또복권 사업까지 따냈다. 유진은 이런 광속 질주로 단박에 신흥 재벌로 부상할 태세다. 재계는 유진의 M&A 행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과연 유진의 ‘몸집 키우기’는 어디까지 계속될까. 그 전략은 무엇일까. 유경선 회장과의 단독인터뷰와 함께 유진의 오늘과 내일을 짚어봤다. ▶ 보험, 증권사 추가 인수할 것 ▶ 늘 인수금액 다 까먹는 최악 상황 가정 ▶ 대한통운 인수 가격 비싸 고민 중 ▶ 문어발 사업 확장 비판은 ‘모르는 소리’ ▶ 금융, 건설, 물류를 핵심으로 키울 것 크고 단단해 보이는 체격에 두툼한 손,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말투와 웃음. 노타이 차림에 앉자마자 “더우니 웃옷을 벗으시라”고 한다. 함께한 직원들과도 자유롭게 말한다. 최소한 격식을 따지는 기업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권위가 느껴지고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철인3종 경기’ 매니어다운 강인함도 엿보인다. 지난 7월 20일 청진동 사옥에서 만난 유경선(52) 유진그룹 회장의 첫 인상은 이랬다. 최근 기업 인수합병(M&A)에 로또복권 사업 진출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정작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워낙 언론을 타지 않아 항간에는 ‘은둔의 경영자’니 ‘그림자 경영인’이니 하는 말까지 떠돈다. “요즘 인터뷰 요청이 많지 않으냐”고 묻자 “그렇다”고 하면서도 정작 인터뷰에 응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바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별로 내세울 게 없어서”라는 게 그의 짤막한 답변이다. “기자를 정식으로 만난 게 족히 1년은 된 것 같다”고 말문을 연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로또복권 사업으로 시작됐다. 지난 7월 13일 유진 중심의 컨소시엄은 제2기 로또복권 우선사업 대상자로 선정됐다. “선정을 축하드린다”는 말에 유 회장은 “앞으로 로또복권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며 복권사업과 관련된 계획을 내놓았다. “내년부터 로또는 ‘대박’이나 ‘인생역전’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겁니다. 철저하게 공익사업으로 운영할 계획이에요. 수수료율을 낮춰 수익금 자체도 적지만 그나마 상당액을 학술재단이나 사회복지, 환경보호에 쓸 생각입니다. 로또복권 구입자는 ‘대박을 바라는 사람’이 아닌 ‘사회에 기부를 원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업계는 유진이 로또복권 사업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것 자체를 의외로 보는 분위기다. 지난해 매출액 2조4700억원에 수수료 수익이 777억원에 이르는 ‘대박 비즈니스’여서 쟁쟁한 대기업들이 적극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조차 아직은 ‘중견’에 불과한 유진이 힘에 부칠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유 회장의 얘기는 다르다. “자신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보인 자신감의 배후에는 ‘복권사업의 공익화’란 계획이 있었다. “정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공익사업을 강조하는 유 회장은 결국 “돈을 벌기 위해 복권사업에 뛰어든 게 아니다”고 말하는 것이다. 따져보면 그런 계산이 나온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수료율. 복권위원회가 원했던 수수료율은 2.5% 전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유 회장은 “복권위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낮췄다”고 말했다. 경쟁자 입장에서는 허를 찔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유 회장은 “수수료율에서 점수를 많이 얻었다”고 설명했다. 유경선 회장의 M&A 철칙 유경선 회장은 증권가에서는 ‘승부사’로 알려져 있다. 비록 대우건설이나 극동건설 등 굵직굵직한 판에서는 고배를 마셨어도 서울증권과 로젠택배 인수에 로또사업까지 거머쥐어 승부사의 면모를 과시했다. 특히 수수료율을 낮춰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로또복권 사업을 따낸 것은 그의 승부사 기질을 잘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승부사 유 회장으로부터 M&A에서 성공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칙과 전략을 들었다.   기본원칙 ▶ 경제성을 따져라 가치보다 값이 싸야 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나 사업이라도 실제 가치보다 비싸면 절대 안 한다. ▶ 시너지 효과가 빨라야 기존 기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빨리 낼 수 있어야 한다. 이 가능성이 낮아도 사지 않는다. ▶ 실패를 가정하라 인수 뒤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 재무·인력 측면에서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실전전략 ▶ 사전정보에 민감하라. M&A는 정보 싸움이다. ▶ 준비는 철저하게, 의사결정은 신속하게 하라. ▶ 추진 팀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라. ▶ 추진 팀장을 인수 기업에 파견해 접점을 삼는다. 이 정도 수수료율로는 기업 입장에서는 계산이 잘 안 나온다. 연간 수수료 수익은 대략 500억~600억원 수준. 운영비를 빼고 나머지를 컨소시엄 참여업체들이 가져가는 방식이어서 유진이 가져가는 돈은 연간 30억~40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중 상당액을 공공재원으로 쓰겠다고 약속했다. 이윤을 목숨처럼 여기는 기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유 회장은 “그래도 얻는 게 많다”고 말한다. “일단 그룹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이미지가 좋아질 것으로 봅니다. 적자만 안 보면 됩니다. 게다가 향후 수익성을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국내 복권사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죠. 대부분 나라에서 정부는 복권의 사행성보다 공익성을 추구하려 합니다. 본격적인 공익성을 갖고 성공한 사례를 보여주면 외국 정부도 큰 관심을 보일 것입니다.” 그래도 의문이 든다. 공공성을 위해 복권사업에 참여한다는 계획서를 정부가 곧이곧대로 믿어줬겠느냐는 것이다. 유 회장은 “그래서 이번 선정 과정에서 재무구조가 매우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기업 속성상 재무 상태가 나빠지면 아무래도 수익을 우선시하지 않겠느냐”며 “유진그룹의 모기업인 유진기업의 부채비율은 103%이며 서울증권은 부채가 아예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업자로 선정된 이유는 이 같은 탄탄한 재무구조가 한몫을 했다는 얘기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사업자 선정 직후 계열사 주가가 폭등했다. 특히 또 다른 증권사에 보험사까지 인수한다는 설이 돌고 있는데다, 모기업이 복권사업자로 선정된 서울증권의 경우 대세 상승기에 맞춰 주가가 크게 올랐다. 유진이 복권사업자로 선정되기 직전까지 2000원대였던 주가는 열흘 사이 3400원을 넘기도 했다. 이 사이 수차례 상한가를 쳤다. 투자자들이야 더 할 나위 없이 좋을 일이다. 하지만 정작 최대주주인 유 회장은 적잖이 부담을 느낀다. “책임을 크게 느낍니다.‘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언제가 산 정상일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주가가 안정되면 좋겠습니다.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는 것은 물론 저희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회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인터뷰 1주일 뒤 있었던 주가 하락을 그는 다행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내친 김에 예민한 문제도 짚었다. “또 다른 증권사나 보험사 인수를 추진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유 회장은 “불가피한 일”이라며 또 다른 증권사나 보험사 인수 계획을 밝혔다. “곧 자본시장통합법이 발효될 것입니다. 그때를 대비해 몸집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버티기 어려울 것입니다. 몇몇 금융사 인수를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증권사나 보험사가 모두 포함되지요.” 증권가에서는 유진그룹이 대한통운도 인수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 얘기도 물었다. “물류도 더 키울 생각입니다. 대한통운은 확실히 매력적인 인수 대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값이 문제 아닐까요? 지금으로서는 인수가격이 너무 높을 것 같아 고민스럽습니다.” 유진그룹은 1969년 건빵회사로 출발했다. 1984년 레미콘 전문 유진기업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챙기기 시작한 유 회장은 유진기업을 레미콘 1위 업체로 키우고, 2004년에는 고려시멘트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M&A시장에 들어섰다. 유진이 주목을 끈 것은 지난해 대우건설 인수에 참여하면서부터. 당시 종합건설업을 주창하며 인수에 나섰다가 결국 금호에 고배를 마시고 말았지만 유진의 대우건설 인수 참여는 또 하나의 ‘고래 먹는 새우’로 거론되면서 화제를 뿌렸다. 유 회장은 대우건설 인수 실패를 아직도 안타까워한다. “정말 아쉽습니다. 종합건설업의 꿈을 크게 꾸었는데요. 그게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자다가 벌떡 일어납니다.” 유 회장은 “이후 다른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종합건설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사업다각화’로 방향을 튼 것이다. 건설과 금융, 물류를 아우르는 기업군으로 성장하겠다는 전략이다. 자금은 충분했다.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잘나가던 케이블 방송 ‘드림씨티’ 등을 매각한 자금만 4000억원에 달했다. 유 회장은 준비된 ‘실탄’ 규모를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감을 드러냈다. “큰 덩치였던 대우건설 인수를 준비했기 때문에 자금에는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계산이 나온다. 대우건설 이후 지금까지 기업 인수에 들어간 자금은 로젠택배 300억원에 서울증권 1700억원으로 대략 2000억원 정도다. 대충 계산해도 아직 수천억원의 여유자금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전략이 오해와 비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아닌게 아니라 이미 유진그룹은 ‘먹성 좋은 기업’ ‘문어발식 확장’ 등의 얘기를 듣고 있다.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유 회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모르는 소리”라는 것이다. “금융 진출은 모든 제조업의 꿈입니다. 이제 제조업만으로는 경쟁이 어렵습니다. 보다 선진화된 경영전략이 필요합니다. 금융은 그 핵심입니다. 서울증권 인수를 너무 원했고 이제 인수했으니 최강으로 키울 생각입니다.” 금융산업 진출은 그렇다 쳐도 물류업 진출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유 회장은 유진이 물류산업에 진출하는 당위성과 경쟁력을 강조했다. “일단 레미콘 전문기업 유진이 갖고 있는 트럭이 4000대입니다. 물류비가 연간 수천억원 들어가지요. 게다가 레미콘은 매우 예민한 제품입니다. 조금만 잘못되면 굳고 맙니다. 이 정도면 유진은 이미 규모나 능력 면에서 물류 전문업체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쟁력을 바탕으로 물류기업에서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지요.” 그는 유진의 물류기업 진출은 미래를 내다본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지역적으로 동아시아의 ‘모퉁이 땅’입니다. 모퉁이 땅은 장사도 잘되는 금싸라기입니다. 통일까지 내다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물류 중심지가 되지요.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때를 대비해 물류산업에 진출한 것입니다.” 유 회장은 기업 인수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봤다. 금융이나 물류, 건설 쪽에서 몇몇 기업을 후보로 삼고 있다. “올해 예상 매출이 1조2000억원 규모입니다. 2009년 매출 목표 5조원을 달성하려면 기업 인수가 꼭 필요합니다. 일단은 금융과 건설, 물류 쪽을 키울 생각이지만 꼭 거기에 한정시킬 생각은 아닙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우려한다. 갑자기 큰 기업이 갑자기 망가진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유 회장도 이를 잘 안다. 그래서 늘 ‘최악’을 가정한다고 말한다. “최악이란 인수에 들어간 돈을 다 까먹는 것”이라고 설명한 유 회장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모기업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에서 유진의 M&A 행진이 어디까지 갈지 답을 낼 수 있다. ‘자금 여력이 없어질 때까지’다. “절대 무리하지 않겠다”는 유 회장의 말에서도 답을 알 수 있다. 유경선 회장의 경영 철학 “스포츠와 경영은 같다” “여기가 한계인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가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는 것이지요. 한계를 탓하며 포기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좀 더 갈 수 있는데 말이지요.” 유경선 회장과 대화를 하다 보면 경영 얘기인지 스포츠 얘기인지 헷갈린다. 확인을 위해 물어보면 늘 같은 답이 나온다. “둘 다 같다”는 것이다. 그는 “스포츠와 경영 모두 한계에 도전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M&A 시장의 강자’로 알려지기 전까지 유 회장은 ‘철인(鐵人)경영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50이 다 된 나이에도 철인 3종 경기로 불리는 트라이애슬론에 출전해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올림픽 정식 종목이기도 한 트라이애슬론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의 전형이다. 1.5km를 수영으로, 40km를 자전거로, 10km를 마라톤으로 달려야 한다. 유 회장이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한 것은 10년쯤 전이다. 97년 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엄청난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극단적인 스포츠를 찾게 된 것이다. 유 회장은 거의 매일 달리기와 수영으로 체력을 보강하면서 정식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그의 최고 기록은 2005년 49세에 세운 2시간 58분. 2000년부터는 대한트라이애슬론협회를 맡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트라이애슬론 종목이 정식 채택된 아시안 게임에서는 “동메달만 따도 아파트를 주겠다”고 선언해 ‘역시 통 큰 철인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07.07.30 14:47

8분 소요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MAGAZINE

MAGAZINE

1781호 (2025.4.7~13)

이코노북 커버 이미지

1781호

Klout

Kl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