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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생텍쥐베리作 『어린왕자』의 ‘보아뱀 전략’

Management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생텍쥐베리作 『어린왕자』의 ‘보아뱀 전략’

세계적인 철강 자동차 회사 인수로 성장을 이룬 인도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는 세계 160여개 언어로 번역이 됐고 1억 부 이상 팔린 최고의 베스트셀러다. ‘나’는 6년 전 사하라 사막에 비행기를 타고 가다 불시착했다. 단 일주일분의 물만 갖고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 거기서 어린왕자를 만났다.

우리는 친구가 됐다. 알고 보니 어린왕자는 B-612라는 소혹성에서 왔다. 사흘째 되는 날, 바오밥 나무에 대해 얘기했다. 나흘째는 하루에 마흔 네 번이나 석양을 본 어린왕자의 소혹성 얘기를 했다. 다섯 째날 대화의 주제는 어린왕자 소혹성에 사는 한송이의 장미다.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는 거만한 장미다.



여우는 지혜를 주는 존재어린왕자는 인근 소혹성으로 여행을 떠났다. 첫 번째 여행지는 임금 홀로 다스리는 소혹성. 백성은 없다. 두 번째 별은 허영쟁이. 자신을 모든 사람들이 찬양한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별은 술주정꾼. 술을 마시는 자신이 부끄럽다는 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있다.

네 번째 별은 기업가가 산다. 자신이 센 5억 개의 별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한다. 다섯 번째 별은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 있다. 1분에 한번씩 점등을 하는 과로한 업무를 하면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여섯 번째 별은 지리학자가 산다. 현장에는 나가지 않는 탁상공론자다. 그가 어린왕자에게 제안한다. “지구라는 별에 가보라”고.

지구는 어린왕자의 일곱 번째 방문지다. 아프리카 사막에서 뱀을 만나고, 세 장의 꽃잎을 가진 볼품없는 꽃을 만난다. 5000송이가 핀 정원을 들른다. 자신이 가졌던 장미 한 송이가 그저 평범한 꽃 한 송이에 불과했다고 느끼는 순간, 어린왕자는 절망을 느낀다. 풀숲에 쓰려져 울다가 여우를 만난다.

나와 어린왕자가 인연을 맺는 가장 큰 매개는 ‘나’가 그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이다. 여기서 나온 경제학 용어가 있다. ‘보아뱀 전략’이다. 자신보다 규모가 큰 기업을 인수·합병(M&A)해 기업을 성장시키는 전략을 말한다. 자신보다 규모가 큰 기업을 삼키다 보니 기업의 형태가 달라진다. 주력 산업이 바뀌기 때문이다. 길고 가는 보아뱀이 모자 형태로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성공적인 사례로 인도의 타타그룹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9년 보고서를 냈다. ‘글로벌 M&A시장의 보아뱀, 타타그룹’이라는 제목이었다. 보고서를 보면 타타스틸은 연간 500만t 생산규모를 가진 세계 56위의 철강회사다. 2007년 이들은 연간 1900만t(세계 9위)의 조강생산 능력를 가진 영국의 코러스를 121억 달러에 인수해 세계 5위의 철강회사로 도약했다. 타타모터스는 2008년 영국의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23억 달러에 인수했다. 타타모터스는 ‘나노’ 등 저가 소형차를 생산하는 소규모 자동차 회사였다. 타타그룹의 성장사는 세계 주요 경영자들의 관심사가 됐다.

국내에서도 작은 회사가 큰 회사를 인수하려는 시도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효성그룹의 하이닉스 인수 추진이다. 효성그룹은 자산 6조원, 하이닉스는 13조원이었다. 하나은행이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사들인 것도 일종의 보아뱀 전략으로 분류할 만하다. 인수 당시 하나은행 총자산은 150조원으로 외환은행(100조원)을 외형에서는 앞섰지만 순이자수익 등 내실 면이나 해외 네트워크에서는 외환은행이 더 탄탄했다.

외환은행 일부에서 “하나은행에게 먹힐 수 없다”며 자존심 상해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NH농협금융이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한 것도 증권 업계에서는 ‘보아뱀 전략’으로 볼만하다. 우리투자증권은 자산 29조원으로 업계 2위, NH농협증권은 자산 6조원으로 14위다.

M&A시장에서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막대한 인수자금이 필요해 리스크가 커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인수자금을 끌어 모으다 보면 현금흐름이 압박 받게 되고 유동성이 위축되면 기업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 자금 부담으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진 사례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추진이 있다. 경쟁 끝에 대우건설을 인수하고도 막대한 자금을 마하지 못해 산업은행 등에 다시 토해냈고, 그룹은 그 여파로 휘청거렸다.

합병을 하더라도 인력풀이 약해 단기간에 인수기업을 장악하기 힘들고, 피인수 기업의 거대조직들과 충돌하다 통합에 진통을 겪는다는 것도 문제다.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는 NH농협증권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실제 외환은행을 인수한 하나은행은 외환은행 노조와 갈등을 겪고 있다.

재밌는 것은 2000년대 후반 보아뱀 전략을 쓴 기업들은 정치권과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효성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사돈관계였고, 하나금융지주는 김승유 회장이 이 대통령과 지인이었다.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고 정확한 정보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뒤를 봐줄 정치적 힘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오는 이유다.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을 인수해 제대로 운영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어린왕자’에도 나온다. 나는 ‘어릴 때 본 책에 씌어 있는 얘기’라면서 말한다. ‘보아 구렁이는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킨다. 그리고는 꼼짝하지 않고 소화시키기 위해 여섯 달 동안 잠을 잔다.’ 제대로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인데 기업 M&A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만하다.

자금 조달에 실패하거나 조직 융합에 실패하면 ‘승자의 저주’를 불러올 수 있다. M&A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과도한 비용을 쓰거나 조직 융합을 실패해 인수기업이 위기로 떨어지는 현상이다. 미국 석유회사인 애틀랜틱 리치필드사에서 근무한 카펜·클랩·캠벨 등 세 명의 기술자들이 1971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언급됐다.

1950년대에 미국 석유기업들은 멕시코만의 석유시추권 공개입찰에 참여했다. 과도한 경쟁이 벌어졌다. 한 기업은 2000만 달러를 써내 입찰 받았다. 문제는 석유매장량. 나중에 측정해 보니 석유매장량 가치는 1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1992년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는 『승자의 저주』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 이 용어가 널리 알려졌다.



M&A 후 소화 과정이 더욱 중요인수한 기업의 가치가 인수가격에 미치지 못하거나, 인수에 성공한 기업의 재무부담이 너무 크다고 판단되면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한다. 주식을 팔아 자금을 마련할 요량이었던 기업이라면 곧바로 인수자금 부족 사태에 빠지고, 추가 자금을 은행에서 대출 받으면서 부채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지혜를 주는 존재다. 여우는 말한다. 아무리 많은 꽃이 있더라도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물을 주고, 유리덮개를 씌우고,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그녀(꽃) 말에 귀를 기울여주면서 그 장미꽃은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라는 것을 어린왕자는 비로소 깨닫는다.

8일째 물이 떨어졌다. 나와 어린왕자는 샘을 찾아 떠난다. 어린왕자는 말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우물이 숨어있어서 그렇다”고. 9일째 샘을 찾았다. 10일째 어린왕자는 자기별로 떠난다. 지구에 내려온 지 1년째 되는 날이었다. 이미 두 사람은 길들여져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 여우의 말이 떠올랐다. “자기가 길들여지도록 맡긴 사람은 눈물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고.” 이별은 아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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