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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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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땐 맥주, 베이징은 와인”…편의점 와인 매출 ‘쑥’

유통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과 함께 편의점 와인 매출이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편의점 이마트24에 따르면 4~6일 판매데이터를 확인한 결과 와인 매출이 2주 전과 비교해 38% 껑충 뛰면서 판매 주류 중 가장 큰 증가율을 기록했다. 데이터 비교는 1주 전이 설 연휴 기간이라 2주 전으로 기준이 설정됐다. 또 와인은 크게 올랐지만 맥주는 5% 소폭 오르고, 소주는 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트24 관계자는 “서울 토요일 기준 평균기온이 영하 6.6℃까지 내려가는 한파로 인해 야외 활동은 줄고, 집에서 시간을 보낸 소비자들이 추운 날씨에 맥주보다 와인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며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주 역시 맥주와 즐기는 마른 안주류보다 치즈, 올리브, 살라미 등 와인과 어울리는 상품 구매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와인 인기 현상은 지난해 여름에 열린 도쿄 올림픽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마트24의 지난해 7월 23~25일 맥주 매출은 직전 주 대비 24%로 크게 올랐고, 와인은 5%대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 때 판매 데이터와는 반대되는 수치다. 이마트24 관계자는 “따뜻한 집에서 즐기는 주류라도, 구매하러 가는 길의 날씨에 따라 최종 구매 상품의 종류가 바뀌거나 추가 구매가 일어나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초반에는 추운 날씨로 인해 와인 매출이 크게 증가했지만, 기온 변화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주류와 안주류를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2022.02.07 16:47

1분 소요
‘위드 코로나’ 한국 초읽기…일·영·싱가포르·북유럽은 어땠나

정책이슈

정부가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에 시동을 걸고 있다. 방역 당국은 1일 현 거리두기 체계를 2주 유지한다고 발표했지만, 결혼식 모임인원은 최대 199명까지 돌잔치 인원은 49명까지 확대하는 완화된 내용의 거리두기 지침을 발표했다. 단계적 일상 회복이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접종을 확대하고 단계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완화하는 정책을 말한다. 확진자 수가 많고 적은 것을 따지기보다 사망자나 위중증자를 관리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춘다. 해외에서는 이를 ‘위드 코로나’(With COVID-19)라고도 표현한다. 해외에서는 접종률이 70%를 넘는 나라를 중심으로 위드 코로나 정책을 시행하고 있어 국내 전문가들도 시행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있다. 예방접종대응추진단(추진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접종자를 살펴보면 9월 30일 0시 기준 1차 누적 접종자가 76.6%, 누적 접종 완료자(50.1%)는 절반을 넘어섰다. 지난달 17일 전 국민 1차 접종률 70% 달성 후 2주 만이다. ━ ‘위드 코로나’ 시작한 일본·북유럽 해외에서는 어떻게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고 있을까. 일본은 1일부터 코로나19와 관련한 긴급사태와 중점조치를 해제했다. 일본은 지난 4월 도쿄도를 비롯해 19개 광역지역에 긴급사태를 발령하고 8개 광역지역에 만연방지 등 중점조치를 실시해왔다. 코로나19 확산과 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방침이었다. 지난 8월까지 하루 신규 확진자가 2만5000명 넘게 나오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대책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1차 접종자 수가 전체 인구의 68%를 웃돌고, 접종 완료자가 절반 이상(57.2%)까지 늘면서 하루 신규 확진자는 약 2000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코로나19 긴급 사태를 해제하고 위드 코로나 단계로 태세를 전환했다. 행사 참석 인원도 ‘정원의 50% 이내 또는 최대 5000명’에서 ‘정원의 50% 이내 및 최대 1만명’으로 상향 조정했다. 그렇다고 모든 방역조치를 해제한 것은 아니다. 긴급사태를 풀더라도 한 달 동안 해당 광역자치단체장 판단으로 방역 대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에 해당하는 도쿄도와 사이타마(埼玉)·지바(千葉)·가나가와(神奈川) 3개 현은 3주간 재확산 방지 조치를 마련했다. 방역 인증을 받은 음식점은 오후 8시까지 술 판매를 할 수 있지만, 인증을 받지 않은 경우엔 술 판매를 자제할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북유럽에서는 일본보다 먼저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국가들이 많다. 전체 인구의 75%가 접종을 마친 덴마크는 나이트클럽에 들어가는 입장객에 대해서도 백신접종 증명서를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선 나이트클럽과 유흥주점 등이 집합금지 시설로 운영에 제한을 받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스웨덴도 집단 면역을 달성했다고 판단하고 대부분의 방역규정을 해제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결혼식 참석자 수 제한을 풀었고 콘서트·스포츠경기 등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행사도 인원을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스웨덴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76% 수준으로 알려졌다. ━ 영국‧싱가포르, 규제 단번에 풀었다가 역효과 하지만 위드 코로나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거리두기 단계를 완화하고 모임 인원제한이 풀어지면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방역 정책을 일시에 완화하자 하루에 확진자 수가 2만~3만명까지 발생하고 사망자가 100명씩 나오고 있다. 싱가포르도 전체 인구의 80%가량이 백신접종을 마쳤지만 신규 환자가 1000명 가까이 나오면서 경계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싱가포르 인구가 약 570만명인데 우리나라 인구수(약 5000만명)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하루 9000명가량의 확진자가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일시적 규제 완화가 아닌 ‘점진적‧단계적 완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해외 상황 참고해 ‘단계적’ 완화 필요” 전문가들은 국민 피로감이나 민생경제 상황을 비춰볼 때 위드 코로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확진자 수가 많으냐 적으냐를 따지는 것보다 위중증 환자나 사망률이 어느 정도 선에서 관리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해외 사례를 참고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국이나 싱가포르처럼 단번에 시행하기보다, 일본이나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서 점진적으로 단계를 완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거리두기 4단계 체계가 국제 기준에 비춰보면 사실상 ‘위드 코로나’상황이라는 평가도 있는 만큼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에선 규제를 완화했어도 음식점 이용 시간이 밤 9시를 넘지 않았고 나이트클럽 등 유흥주점 이용을 제한하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교수(호흡기내과)는 와의 통화에서 “백신 접종률을 높이고 위중증 환자 발생이나 사망률이 높지 않도록 관리하면 정부 계획처럼 11월부터는 단계적 일상 회복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선 충분한 방역과 의료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전격적으로 규제를 완화기보다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시민들이 일상생활에 복귀 할 수 있도록 단계적인 시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2021.10.01 16:15

4분 소요
도쿄올림픽에 ‘진짜 일본은 없었다’ [장근영 팝콘 심리학]

전문가 칼럼

마침내 2020 도쿄 올림픽이 마무리됐다. 코로나19 사태에 휩쓸려 전례 없는 1년의 연기 끝에, 이름은 2020이지만 2021년에 개최된 올림픽이었다. 이번 올림픽은 반드시 개최했어야 하는 행사였다. IOC나 주최국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 인류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개최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 역시 여러 건의 아름다운 스포츠맨십 사례들을 보여주며 비대면으로 지켜본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용기, 그리고 희망을 전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올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 구성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서 보여준 도쿄 올림픽 예고편은 21세기에 어울리는, 일본 문화의 저력을 만방에 자랑하는 멋진 쇼였다. 도쿄의 랜드마크인 시부야 역부터 주요 명소들이 일본의 유명 운동선수들의 모습과 함께 짧게 소개되며 그 사이로 ‘캡틴 츠바사’와 ‘팩맨’ ‘도라에몽’ ‘헬로키티’를 거쳐 ‘수퍼마리오’로 변신한 총리가 등장하는 그 짧은 예고편은 지금까지 일본이 전 세계 대중문화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다시 한번 보여줬다. ━ 기대와 다른 객관적 자아 그런데 정작 본 행사의 개막식과 폐막식은 예고편과는 전혀 달랐다. 어디에도 전 세계 대중문화를 장악한 일본 아니메나 게임의 캐릭터는 없었다. 일본 분위기를 잘 담았다 평가되었던 마스코트조차 어디론가 사라졌다. 코로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차분한 기획이라는 설명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마지막의 픽토그램 판토마임은 또 뭐였단 말인가. 물론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그것들은 모두 전통적인 일본 문화의 요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아는 일본과는 달랐다. 최소한 2016년에 아베의 빨간 모자를 보며 기대했던 일본 문화는 아니었다. 이것을 보며 정체성의 두 측면인 객관적 자아와 주관적 자아가 떠오른다. 여기서 주관적 자아는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이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같이 지내고 싶은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같은 것들이 모두 주관적 자아에 해당한다. 자기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에 귀를 기울이며 성장했다면 주관적 자아가 적절히 형성된다. 문제는 객관적 자아다. 원칙적으로 객관적 자아는 ‘남들이 보는 나’다. 객관적 자아는 자의식과도 연결된다. 자의식이란 다른 사람이 보는 나의 모습을 깨달을 때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들의 생각을 내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남의 생각을 추측하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객관적 자아가 형성되려면 우선 남들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남들이 나와 어떻게 다른지, 남들은 나와는 달리 뭘 더 좋아하고 뭘 더 싫어하는지에 대한 관심도 그래서 생겨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지 허버트 미드(G.H.Mead)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는 남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말했다. 내가 아는 걸 남들은 모를 수 있고, 남들이 아는 걸 나는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 시기가 대략 생후 3년 차부터다. 이때부터 우리는 남들이 나와 같은 세상에 살면서 같은 것을 보더라도 나와는 다르게 볼 수 있고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이후부터 우리는 도대체 남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할까? 물론 남의 마음을 알면 그 마음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 혹은 그 마음에 어떻게 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알게 된다. 적절히 거짓말을 하는 법, 남의 마음에 공감하는 법도 여기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가 남의 마음을 알려고 하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내 정체성, 정확히는 객관적 자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알았다고 여기는 남의 마음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는 않는다. 대개의 경우, 우리의 객관적 자아는 실제보다 과대평가돼 있다. 남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평가 역시 내 예상만큼 높지 않은 경향이 있다. 우리는 그 현실과 자의식간의 격차 덕분에 자아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1979년 심리학자 알로이(Alloy)와 아브람슨(Abramson)은 우울증 환자들이 자신의 능력이나 중요성, 타인의 시선 등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반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일종의 자가당착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보여주기도 했다. 다시 말해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을 너무 정확하게 깨닫는 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약간의 자가당착은 내 자부심을 지켜준다. 하지만 이 격차가 지나치게 크면 민폐를 끼치거나 심각한 경우에는 현실감각을 잃고서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 격차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삶을 영위한다. 예를 들어, 소위 ‘꼰대’라 불리는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며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귀하게 새겨들으리라 믿으며 각종 참견과 사생활 침해를 저지른다. 사실 그 남들 대부분은 그를 일종의 자연재해로 여기며, 그저 더 심한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 주변에서 멀어져 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라도. 주관적 자아와 객관적 자아의 격차는 필연적이지만 이를 적절한 범위에서 조절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어떤 조직이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들의 장점과 약점이 고객이나 시장에서 보는 장단점과 어긋난다면, 그 조직의 미래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 ━ 격차는 필연적이지만 조절이 필요한 까닭 주관적 자아와 객관적 자아의 격차가 좀 더 복잡할 수도 있다. 이번 도쿄 올림픽 개막과 폐막 행사를 보며 내가 느꼈던 당혹감도 그런 경우일지 모른다. 요컨대 기획자들이 보여주고 싶었던 일본인으로서의 주관적 자아가 다른 나라에서 생각하는 일본의 모습, 즉 일본의 객관적 자아와 크게 달랐던 셈이다. 이 자체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다. 덕분에 일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기회가 주어졌다고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좀 아쉽기는 하다. 일본이 지난 수십 년간 만화와 게임으로 쌓아 올린 문화적 영향력은 이제는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해졌다. 2019년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는 캐릭터는 디즈니가 아니라 ‘포켓몬’과 ‘헬로키티’였다. 이번에 도쿄올림픽에 거의 유일하게 참석한 국가원수인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정말 만나고 싶어 했던 사람은 만화 작가였다. 유럽에서 온 올림픽 참가 선수들은 숙소에서 ‘나루토’ ‘드래곤볼’ ‘원피스’ 캐릭터 포즈를 취하며 이들 캐릭터의 본고장 방문을 자축했다. 그러니 나는 일본의 주류 혹은 기성세대가 자국의 대중문화에 좀 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2차 세계대전 중 자국의 행적을 정당화하려는 노력보다는 훨씬 더 바람직하고 효과적이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 , 등을 썼고 , , 등을 번역했다. 장근영 박사

2021.08.20 13:29

5분 소요
도쿄올림픽이 반영한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도쿄 2020 올림픽에는 205개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소속팀과 난민대표팀 등 206개 참가국 선수단 및 관계자들이 참가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한 북한만 빠졌다. 도쿄 대회엔 북한을 포함해 207개가 참가한 지난 2016년의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팀이 참가했다. 코로나19라는 희대의 역병에 대응하는 인류의 용기와 의지를 보여주는 대회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도쿄올림픽도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피하진 못했다. 경기 외적인 부분뿐 아니라 경기 자체에서도 국제정치의 차가운 바람을 완전히 막을 순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나라 이름이다. 이번 대회에는 국내에서 부르는 자기 나라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출전한 팀이 둘이나 있다. 대만과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분리한 발칸반도 국가 마케도니아다. 대만은 중국의 압박으로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 대회에 ‘차이니즈 타이페이’라는 이름으로만 참가할 수 있다. 타이페이는 타이베이(臺北)의 광둥(廣東)어 등 남방 계통 발음이다. 영어권에서 베이징을 남방식인 페킹(Peking)으로 표기하던 시절의 유산이다. 대만에서도 표준어를 쓰지만, 과거 남방식으로 쓴 게 영문 표기로 굳어졌다. 중국은 코로나19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위기에 처한 지난해에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도 유엔 회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만의 참가를 막았다. 인류의 생명과 건강 유지라는 보편적 가치보다 정치를 앞세운 셈이다. 타이베이는 대만의 수도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대만이 중화민국이라는 공식 국명은 물론 대만(臺灣)이라는 통칭도 쓰지 못하도록 압박한다. 이른바 ‘하나의 중국’을 이유로 내세운다. ━ 올림픽 모토에 ‘함께’ 추가 이런 상황에서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유연한 아이디어를 냈다. 도쿄올림픽에선 일본 문자 오십음도를 기준으로 입장 순서를 정했다. 물론 첫 입장은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로, 둘째는 난민선수단이 맡았다. 그다음부터는 일본어 오십음도 순에 따라 ‘아’로 시작하는 아일랜드·아이슬란드·아제르바이잔·아프가니스탄 등이 입장했다. 오십음도 순의 마지막인 ‘레’로 시작하는 레소토·레바논이 개회식장에 행진해 들어왔다. 그 뒤로 차차기인 2028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를 유치한 미국과 2024년 파리 대회를 여는 프랑스 선수단이 각각 입장했다. 이번 대회 개최국인 일본이 관례에 따라 가장 마지막으로 경기장에 들어왔다. 조직위는 공식적으론 ‘차이니즈 타이페이’인 대만을 ‘차’ 항목이 아닌 ‘타’ 항목에 넣는 묘수를 발휘했다. 그래서 103번째로 입장한 ‘대한민국(일본어 발음으로 다이칸민코쿠)’의 다음으로 104번째로 대만이 입장했다. 이를 중계한 NHK 아나운서는 대만을 타이완이라고 발음했다고 DW가 전했다. 대만 뒤를 타지키스탄과 탄자니아가 이었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일본어로 추카진민쿄와코쿠)’이라는 명칭으로 110번째로 입장했다. 북마케도니아는 유고슬라비아 시절 마케도니아란 이름으로 연방 내 공화국 지위를 얻었으며, 유고슬라비아가 무너지면서 1991년 마케도니아란 이름으로 독립했다. 지리적으론 고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 왕국이 위치했던 지역이다. 현재 마케도니아인을 비롯한 남슬라브족은 7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발칸 반도로 이주해 그리스 전역까지 퍼졌다. 하지만 남쪽으로 국경을 맞댄 그리스는 슬라브족이 대다수인 나라가 고대 그리스인의 나라인 마케도니아라는 국명을 쓸 수 없다고 끈질기게 항의했다. 결국 ‘옛 유고연방 마케도니아’란 이름을 거쳐 2019년 나라 이름을 공식적으로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바꿨고, 지난해엔 국가 올림픽 위원회 이름도 이에 맞춰 변경했다. 이에 따라 이번 도쿄올림픽에선 북마케도니아(일본어로 키타 마케도니아)란 이름으로 캄보디아와 기니 사이에 입장했다. 러시아연방이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하는 러시아는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의 이름과 깃발을 앞세우고 대회에 참가했다. 개막식에서도 그렇게 했으며,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메달 집계도 러시아란 이름 대신 ROC로 하고 있다. ROC는 대만이 공식 국호인 중화민국의 약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에선 ‘대만과 친한 일본에서 대회를 치른다고 대만을 그렇게 표시하느냐’ ‘대만이 그렇게 많은 메달을 따고 있느냐’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러시아가 이런 이름으로 참가하는 것은 도핑 의혹 때문이다. 러시아가 참가 자격을 박탈당하고 국가 올림픽 위원회 이름으로 참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선수가 개별적으로만 참가할 수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평가다. ROC 이름으로 메달을 집계하기도 한다. 이런 희비극 속에서도 도쿄올림픽에선 올림픽의 가치를 추구하는 체육인들의 열정을 볼 수 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7월 23일 도쿄 올림픽 개회식에서 다소 긴 연설을 하면서 의미있는 내용을 언급했다. 기존의 올림픽 모토인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라틴어: Citius, Altius, Fortius 영어: Faster, Higher, Stronger)’를 도쿄 2020년 올림픽부터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 그리고 함께(Faster, Higher, Stronger & Together)’로 한 단계 진화시켰다는 사실이다. 바흐 위원장은 지난 3월 10일 열린 제137차 IOC 화상 총회에서 진행한 차기 위원장 선거에 단독 출마해 찬성 93표, 반대 1표, 기권 4표로 연임이 결정되자 올림픽 모토에 ‘함께(Together)’를 추가하겠다고 발표했다. 개회식 연설에서 바흐 위원장은 이를 결의해준 IOC 회원국에 감사를 표시했다. 각 국가나 공동체별 경제·사회·정치의 차이를 넘어 모두 함께한다는 시대정신을 추가한 것이다.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1863~1937년)이 1894년 제안하고 1924년 IOC가 공식화한 올림픽 모토에 한 세기 만에 글로벌 연대를 강조하는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이런 정신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종목이 바로 태권도다. 태권도는 남자가 58㎏급(플라이급), 68㎏급(페더급), 80㎏급(웰터급), 80㎏ 이상급(헤비급), 여자가 49㎏, 57㎏급, 67㎏급, 67㎏급 이상급 등 남녀 각각 4개 체급에서 경기를 치른다. 금메달과 은메달 각각 8개, 동메달 16개 등 모두 32개의 메달이 걸려있다. 7월 24~28일 치른 경기에서 모두 21개국이 메달을 나눠 가졌다. 도쿄올림픽에서 추가된 올림픽 모토인 ‘함께’에 가장 걸맞은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 태권도 21개 메달, 12개국서 고루 나눠 가져 태권도는 32개의 메달을 모두 21개국에서 고루 가져갔다. 가장 많은 메달을 가져간 러시아 올림픽 위원회(ROC)도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 등 모두 4개의 메달을 가져갔을 뿐이다. 금메달을 가져간 나라나 조직은 ROC 외에 크로아티아·세르비아·이탈리아·태국·미국·우즈베키스탄 등 6개국뿐이다. ROC 외에는 모두 금메달을 하나씩만 확보했다. 태권도에선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도 평등한 여러 나라의 하나에 불과했다. 미국이 금메달 1개밖에 얻지 못한 것을 비롯해 중국도 동메달 1개에 그쳤다. 차이니즈 타이페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한 대만도 동메달 하나를 얻었다. 영국이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 등 3개의 메달을 가져갔다. 대한민국은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 등 3개의 메달을 얻었다. 이슬람국가인 우즈베키스탄·요르단·튀니지·이집트·터키도 메달을 따갔다. 뉴욕타임스(NYT)는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된 뒤로 12개국 이상에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고 소개했다. 아프리카 서부의 코트디부아르와 중동의 요르단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참가 이래 첫 올림픽 금메달을 태권도에서 따냈다. 요르단에선 당시 첫 금메달이 태권도에서 나오자 3개월 만에 태권도복이 5만 벌 이상 팔렸다고 NYT는 소개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출전 이래 첫 올림픽 메달인 동메달을 확보한 종목도 태권도였다. NYT는 우즈베키스탄이 대학에 태권도학과를 설치했으며, 요르단·터키·르완다의 난민 캠프에는 태권도 도장이 설치돼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세계태권도연맹에는 난민 대표단을 포함해 도쿄올림픽 참가 국가·단체보다 많은 210개 국가와 단체가 소속돼 있다. 도쿄올림픽에도 모두 61개국에서 128명이 참가했다. 태권도 종목에는 난민 올림픽팀 선수 3명도 동참했다. 난민팀의 참가 선수 29명 중 3명이 태권도 선수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압둘라 세디키는 남자 68㎏급에 출전했지만 16강전에서 중국 선수에게 20대 22로 석패했다. 25세인 세디키는 2017년 살해 위협을 피해 벨기에로 이주해 난민으로 살고 있다. 2019년 스페인 오픈에서 은메달, 2020년 네덜란드 오픈에서 동메달을 딴 경력이 있다. 여자 49㎏급에 출전한 디나푸리우네스(29)는 이란 출신으로 2015년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푸리우네스는 네덜란드의 망명신청자 센터에 살고 있던 그해 9월 폴란드 오픈에 참가했다. 2017년 터키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태권도 선수권 챔피언에 오른 첫 난민 선수가 됐다. 도쿄올림픽에선 16강전에서 탈락했다. 도쿄올림픽 난민팀 태권도 종목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선수는 이란 출신의 키미아알리자데흐(23)다. 알리자데흐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 이란 국가대표로 출전해 57㎏급으로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 이란 여성이 여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딴 메달이다. 하지만 2020년 1월 이란을 떠나 독일로 떠나 운동을 계속했다. 그는 이란을 떠난 이유에 대해 “나는 이란에서 억압받는 수많은 여성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아닌 거주지인 독일 대표로 참가하는 방안도 생각했지만 최종적으로 난민팀에 합류했다. 알리자데흐는 1차전에서 이란의 나히드키아니를, 16강전에서 영국의 제이드 존스를, 4강전에서 중국의 저우리쥔(周俐君)을 각각 눌렀지만 준결승에서 ROC의 타티아나 미미나 선수에게 패배했다. 미미나는 최종적으로 은메달을 땄다. 패자부활전에선 터키의 하티제 큐브라 일균 선수에게 패배했다. 일균 선수는 동메달을 가져갔다. 알리자데흐는 도쿄올림픽에서 메달권에 가장 근접한 난민 선수로 기록됐다. 이란 출신의 유도 선수로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몽골 국가대표로 출전한 사에이드몰라에이(29)는 스포츠 정신 위배에 대한 ‘내부 고발자’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81㎏급에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했다 1차전에서 러시아의 하산 할무르자에브 선수에게 1차전에서 고배를 마신 그로선 짜릿한 스포츠 드라마를 연출한 셈이다. 할무르자에브는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으니 몰라에이는 대진운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절치부심해 2017년 부다페스트 대회에선 은메달을, 2018년 바쿠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대망의 금메달을 각각 땄다. 문제는 그 뒤에 발생했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 등에 따르면 2019년 도쿄 유도선수권 대회에서 이란 당국은 그에게 준결승전에서 일부러 패배하도록 강요했다. 결승전에서 이스라엘의 사기 무키 선수를 만나서 시합하면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국제경기대회에서 이스라엘 선수와 맞붙는 걸을 비공식적으로 회피해왔다고 한다. 일부 종목에서 이런 식으로 미리 경기를 포기해 이스라엘 선수와 부딪히는 걸 원천적으로 막아온 것이다. 공식적으로 기권하면 이란에 비난이 쏟아지고 국제스포츠 단체의 조사와 제재를 받을 수 있으니 ‘승부조작’으로 이스라엘 선수와의 대결을 피해온 셈이다. 몰라에이는 지시를 어기고 압박감 속에서 경기에 임했지만 패배해 이스라엘 선수와 겨루지는 못했다. 무키 선수는 2019년 도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몰리에이는 자국 유도협회 등의 조치에 실망해 대회가 끝난 뒤 2년 비자를 받고 독일로 향했다. 그는 2019년 몽골 국적을 얻어 대표선수로 도쿄올림픽에 참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스라엘 선수와 경기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일은 도쿄올림픽에서 이미 두 건이 발생했다. 독일 국제방송인 DW에 따르면 유도에서 알제리의 페티 누린 선수에 이어 수단의 무함마드 압달라술 선수가 줄줄이 이스라엘 선수인 토하르부트불 선수와의 시합을 피하기 위해 기권했다. 부트불 선수는 “스포츠 정신에 위배된다”며 반발했지만 누린 선수는 “나는 기권함으로써 알제리를 대표한다”고 말하며 시합을 포기했다. 알제리는 이스라엘과 국교가 없지만, 수단은 지난해 이른바 아브라함 협약에 따라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한 국가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준다. 정부는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했지만, 무슬림이 상당수인 국민은 여기에 거부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이스라엘이나 미국 선수·지도자와 악수를 하거나 서로 인사하는 이란 스포츠 인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그치지 않는 이유가 그 나라의 체제나 이념, 국민 인식이 글로벌 스탠다드인 스포츠 정신과는 동떨어진 정치 지향적이거나 민족주의적, 또는 증오를 당연시하는 사회 풍조 때문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선 더 많은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도 올림픽은 계속 열리고 있다는 데서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1.07.31 18:55

8분 소요
2020 도쿄올림픽 바이러스와 전쟁 시작…위기는 여전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연기됐던 ‘2020년 도쿄(東京)올림픽·패럴림픽’이 1년 연기 끝에 7월 23일 개막했다. 지난해 그리스에서 채화해 1년간 보관됐다가 올해 일본 47개 현을 돌았던 올림픽 성화가 도쿄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불을 밝혔다. 8월 8일까지 열전이 이어질 이번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악재, 일본의 아날로그 방역과 더딘 백신 접종, 준비 부족, 열기 저하 등 숱한 논란 끝에 개막했다는 점에서 어느 올림픽보다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대회는 난민 대표팀을 포함해 전 세계 206개 국가·조직이 동참하고 1만10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해 33개 종목에서 339개의 경기를 펼치게 된다. 도핑에서 문제가 지적됐던 러시아는 국가 이름으로의 참가가 금지돼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이름으로 개별 선수가 출전한다. 북한은 지난 4월 6일 코로나19를 이유로 불참을 발표해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에 나오지 않으며, 도쿄2020올림픽에 불참하는 유일한 국가올림픽위원회(NOC)로 기록됐다. 올림픽이 통째로 연기돼 개최되는 것은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래 125년 만에 처음이다. 도쿄 2020패럴림픽은 8월 24일 개막해 9월 5일까지 열린다. 올림픽 1년 연기의 결정적인 이유였던 코로나19의 충격은 올림픽 행사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개막식·폐막식의 네 행사는 ‘전진(MovingForward)’이라는 공통 주제를 담았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회(TOCOG·이하 조직위)는 “우리가 지금까지 직면했던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장애물인 코로나바이러스 범유행 속에서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지금까지의 대회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라며 “스포츠가 가진 힘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통해 전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는 개막식과 폐막식을 만들고자 한다”고 의의를 밝혔다. ━ 코로나19 범유행, 1년 연기 끝에 개막 7월 23일의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 주제는 ‘감동으로 하나가 된다(United byEmotion)’였다. 조직위는 “개막식을 통해 우리는 스포츠의 역할과 올림픽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가 모두 함께 해 온 노력에 대한 감사와 찬사를 전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가져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주제의 의미를 설명했다. 조직위는 그 배경으로 “전 세계 사람들은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지난 1년을 살아왔고, 2020 도쿄올림픽은 전례 없는 범유행의 한가운데에서 열리게 된다”는 사실을 지목했다. 8월 8일 치러질 2020 도쿄올림픽 폐막식 주제는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Worlds we share)’로 잡았다. 조직위는 “폐막식 주제는 우리가 모두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그 세계를 공유한다는 생각을 표현한다”며 “우리는 폐막식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이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렇게 2020 도쿄올림픽은 인류가 바이러스와 벌이는 싸움을 상징하는 대회가 됐다. 대회 자체가 1년 연기된 것부터, 올림픽 선수단·관계자를 거품 안에 넣는 것처럼 외부와 접촉할 수 없게 분리한다는 ‘버블 방역’ 등 초유의 일이 줄을 잇고 있다. 인류는 이런 상황에서도 올림픽을 결국 개최한 데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깔끔하지 못한 방역과 골판지 침대 등 부족한 대회 준비 등으로 지적이 끊임없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도쿄올림픽은 도전과 시행착오, 그리고 극복의 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이러스 말고도 올림픽을 위협하는 요인은 적지 않다. 국제 분쟁과 갈등이 그것이다. 올림픽 헌장에는 “올림픽 이념의 목표는 인간의 존엄성 보존을 추구하는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도모하기 위해 스포츠를 통해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상일뿐 현실은 올림픽이 열린다고 분쟁과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분쟁 감시·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비정부기구(NGO)인 국제위기감시기구(ICR)의 로버트 맬리 전 회장은 ICR 웹사이트에서 기고한 글에서 세계 10대 분쟁·위기·긴장 지역을 제시했다. 아프가니스탄·예멘·에티오피아·부르키나파소·리비아·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한반도·카슈미르·베네수엘라·우크라이나 등이다. 이미 수시로 국제뉴스에 등장해온 지역들이다. 미국외교협회(CFR)는 현재 글로벌 분쟁·갈등·위기 상황을 더욱 자세하게 소개했다. CRR은 전 세계 갈등 지역을 ‘위기 상황’ ‘중대 상황’ ‘제한적 상황’으로 세분했다. 국제적 분쟁이나 내전, 갈등의 고조, 위기나 불안의 지역 또는 글로벌 확대 등 다양한 상황을 고루 반영했다. 미국 국익에 주는 영향을 기준으로 분류하긴 했지만, 상황의 심각도를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 올림픽 시작됐지만, 글로벌 분쟁·갈등·위기는 심화 CFR은 위기 상황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남중국해 영토 분쟁, 동중국해 긴장, 북한 위기, 미국과 이란의 대치의 다섯 가지를 꼽았다. 글로벌 5대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남중국해와 동중국해가 중국과 관련이 있다. 남중국해 분쟁은 중국이 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벌이는 섬과 바다의 영유권 다툼이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2016년 7월 중국이 이 해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인공섬을 건설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지만, 중국은 마이동풍이다.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앞세워 여기에 개입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견제 차원이기도 하다. 이 바다는 한국과 일본에도 중요한 에너지 수송로이기도 하다. 동중국해 분쟁은 일본이 실효 지배하는 센카쿠 열도(尖閣列島·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와 관련한 갈등을 가리킨다. 2020 올림픽이 열리는 도쿄에서 멀지 않은 바다는 이처럼 긴장 상황이다. CFR은 중대 상황으로는 12가지를 추렸다. 시리아 내전, 이라크와 레바논의 정치적 불안정, 이집트의 불안정, 터키와 쿠르드 무장조직의 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절반이 중동에 집중됐다. 지리적으로 중동은 아니지만, 문화적으로 이슬람권인 파키스탄은 이슬람 무장조직의 활동과 인도와의 분쟁 등 2가지 문제를 동시에 안았다. 남미는 멕시코에서 벌어지는 범죄와의 전쟁, 베네수엘라의 불안정 등 2가지가 제시됐다. 유럽에선 러시아가 개입한 우크라이나 분쟁이, 아프리카에는 나이지리아에서 학생들을 납치하고 인신매매하며 주민들을 학살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보코하람의 폭력이 각각 꼽혔다. 미국의 국익에 대한 영향을 제한적이지만 현지 주민의 고통은 상당한 분쟁·갈등도 10가지가 거론됐다. 중동에선 리비아 내전과 예멘 내전(국제전으로 비화)이 꼽혔다. 유럽에선 카프카스 지역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벌이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이 들어갔다. 아시아에선 미얀마의 로힝야 위기가 제시됐다. 아프리카에선 말리 지역의 불안정,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민주콩고공화국(DRC)의 폭력, 소말리아 극단주의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인 알샤바브의 발호, 에티오피아 분쟁, 남수단 내전이 6가지가 포함됐다. 대부분 지금도 여전히 분쟁이 벌어지거나 무장단체 조직원이 주민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지역이다. 일시 총성이 멎었어도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팽배한 곳도 있다. 올림픽이 열리는 상황에도 세계 곳곳에 위기가 상존하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 살상이 벌어지지 모르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분쟁이나 갈등과 관련한 이런 지적들은 올림픽이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올림픽 헌장은 인류의 이상을 보여주는 문구일 뿐이며, 현실에선 여전히 갈등과 싸움이 그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고대 올림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적 사실을 되새김질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고대 올림픽은 형식적으로는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행사였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력과 국력이 좌우하는 근육질 행사였다. 당연히 이상은 훌륭했다. 기원전 776년에 시작돼 기원후 394년까지 1000년 이상 계속됐던 고대 올림픽의 주관도시인 엘리스는 개막 전 그리스의 각 도시 국가에 3명의 사자를 보냈다. 올림픽 기간 중 전쟁을 중지하고 재판은 연기하며 사형은 미루도록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부정을 타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고대 올림픽은 스포츠 행사라기보다 신을 모시는 종교 제전에 가까웠다. 선수들은 도시국가 엘리스의 성소인 올림피아에 모여 경기를 치렀다. 엘리스에는 높이 12m의 위압적인 제우스신 석상이 올림픽 경기장을 내려다봤다. ━ 국내와 국제 정치 대결장이었던 올림픽 하지만 고대 그리스 세계도 현실은 종교나 도덕이 아닌 힘이 지배하는 무정부 상태였다. 고대 군사 강국인 스파르타가 전쟁 금지 관례를 어겨 벌금과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벌금을 내지 않고 넘어갔다. 창과 방패를 들고 가공할 전투력을 지닌 스파르타의 경보병을 두려워한 다른 도시 국가들은 누구도 이를 문제 삼으려고 하지 않았다. 무장한 스파르타 전사들을 야단치고 벌금을 받아내기란 어지간한 배짱으론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이상보다 힘이 좌우하는 국제정치의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국제정치는 인간 본성의 하나인 지배욕을 반영한다는 주장도 있다. 고대올림픽 기간 중 전쟁은 중지해도 정쟁을 자제했다는 기록이 없다. 올림픽은 국내와 국제 정치의 대결장이 됐다. 선수들의 성적에 따라 관련한 정치인의 위상과 인기가 단박에 오르내리는 것은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로 맞붙었다가 진 도시는 이긴 도시에 한참 동안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패배한 도시는 우울증을 겪어야 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올림픽에서도 문제가 되는 아마추어리즘이 고대 올림픽에서도 역시 문제가 됐다. 근대 올림픽을 제안한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고대 올림픽이 아마추어리즘의 제전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고대 올림픽에서 우승한 선수는 두둑한 상금과 격려금으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는 근대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올림픽 우승자는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연애와 결혼은 물론 경제활동과 심지어 정치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처음엔 엄격한 아마추어리즘을 내걸었던 근대 올림픽이 현실을 고려해 축구나 야구, 골프 등 여러 종목에서 프로 선수의 참가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마추어 선수라고 돈과 거리가 먼 가난한 스포츠 수도승은 아니다. 그래도 종교행사였으니 고대 올림픽에선 경기를 정정당당하게 했을 것으로 여긴다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올림포스에 반칙 선수들의 벌금을 모아두는 자네스라는 상자를 만들어 둔 것을 보면 반칙이 수시로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심판이나 선수를 매수해 승부를 조작하는 것도 수시로 벌어졌다. 근대 올림픽에선 국적을 바꿔 뛰는 경우가 왕왕 있어 세부 규정까지 마련됐다. 하지만 이런 일은 사실 고대 올림픽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소타데스라는 장거리 경주 선수는 출신 도시인 크레타 소속으로 출전해 우승했으나 다음 경기에선 다른 도시국가 에페스로 국적을 바꿔 출전했다. 두둑한 사례를 받고 움직였을 것이다. 스포츠와 돈의 관계는 역사적인 뿌리가 깊다. 고대 올림픽도 근대 올림픽도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인 문제다. 올림픽이 더욱 성숙해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고대 올림픽이 사라진 것은 이러한 부정이나 돈 때문이 아니다. 고대 올림픽은 종교로 시작해 종교로 막을 내렸다. 그리스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1세(347~395년, 재위 379~395년)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 국교로 삼은 게 계기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니 이교도 행사인 그리스의 올림픽은 폐지됐다. 이집트에선 신전이 폐쇄되고 사제들이 쫓겨나면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맥이 끊어지면서 하나의 문화가 단절됐다. 이런 고대 이집트의 비극과 비교하면 고대 그리스 세계의 고대 올림픽 폐지는 그나마 평화로운 편이었다. 도쿄올림픽도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라는 어려운 상황, 이런 형편에도 IOC가 중계료 수입 때문에 대회를 강행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 개인의 안전과 명예 사이에서 고민하는 프로 선수들의 참가와 불참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도전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 것인지 세계가 도쿄를 주시하고 있다. 7월 23일 개막해 8월 8일까지 17일동안 열전이 벌어질 도쿄 2020 올림픽은 인류가 얼마나 더 성숙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축제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1.07.24 18:55

8분 소요
[증시 이슈] 도쿄 올림픽 증시 분위기 예년과 완전 딴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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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이 23일 밤 8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다음달 8일까지 2주간 열린다. 올림픽 관련 수혜 종목들에 눈길이 쏠리고 있는데 이번엔 여느 올림픽 때와는 분위기가 딴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파장이 큰 탓이다. 올림픽 역사상 첫 무관중 경기가 펼쳐지면서 예년과 같은 기업들이 수혜를 보기보단 온라인 중계권 관련 종목이 수혜를 볼 전망이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도쿄 올림픽 수혜주로 가장 기대를 모았던 일본계 면세점 JTC의 성적은 부진한 모습이다. JTC 주가는 이달 들어 전일 기준 6% 하락했다. 지난달 10일 6800원선을 돌파했던 주가는 최근 5000원선으로 내려앉았다. 도쿄 올림픽 개최로 방일 여행객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무관중 개최 소식에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것으로 분석된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때는 국내 관광 수요의 증가로 여행업종과 면세업종이 주목 받았다. 하지만 이들 업종은 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올림픽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하나투어·모두투어 등 여행주들은 6월초 코로나19가 진정세를 보이자 주가가 올랐다. 하지만 확산세에 다시 접어들자 최근 한달여 동안 10% 안팎의 하락폭을 기록 중이다. 하나투어는 최근 8만원 선이 무너졌으며, 모두투어도 같은 기간 13% 내려앉았다. 면세점을 운영중인 호텔신라와 신세계도 올림픽과 상관없는 흐름이다. 호텔신라는 지난 5월 10만원을 돌파했지만 최근 9만원 중반 선도 무너졌으며, 신세계도 이달 들어 주가가 전날 기준 2% 가량 빠졌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도쿄올림픽이 무관중 형태로 개최해 올림픽 특수를 기대하기 어렵고 최근 일본 경제성장에 대한 우려까지 겹쳐 일본 증시도 부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닛케이 지수는 지난 2월 3만을 돌파한 후 5개월 넘게 횡보하고 있다. 반면 ‘집콕’ 올림픽 응원전에 네이버·SK텔레콤·아프리카TV·SBS 등 방송 중계권을 확보한 일부 미디어와 교촌에프엔비·하림 등 치킨 관련 종목들이 수혜주로 주목된다. 최근 한달 간 네이버와 아프리카TV 주가는 각각 14%, 23% 올랐다. 김동희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도쿄 올림픽 같은 스포츠 이벤트는 아프리카TV BJ들의 스포츠 중계방송으로도 이어져 3분기 월간 순이용자(MUV) 증가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BS 주가는 지난달에 비해 소폭 상승해 4만8000원선까지 올랐다. 이기훈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SBS는 3분기 시차 없는 올림픽 개최에 따른 광고 호조 등으로 영업이익이 600억원에 근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치킨 프랜차이즈 최초 상장사인 교촌에프앤비 주가는 이달 들어 8% 올랐고, 이날까지 이틀 연속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광복절부터 대체공휴일 전면 시행으로 연휴 증가와 함께 일본 올림픽 개최 등으로 인한 제품 수요가 증가는 실적 성장까지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한 투자 조언으로 박주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올림픽은 외국인 관광객이 없고, 경기가 진행되는 시간에 외부가 아닌 자택에서 머물며 중계를 시청하는 비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비록 외국인 관광객 소비와는 관련도가 낮지만, 내국인들의 소비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대상으로는 광고, 편의점, 전자제품 소매 판매점, 스포츠 용품 관련 기업들이 있다”고 말했다.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2021.07.2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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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일본의 올림픽 경제·정치학] ‘사면초가’ 도쿄 올림픽 강행하는 속내
금전 손실 줄이고 스가 정권 지지 높이기… 전범국 흑역사 가릴 수 있을까 오는 7월 23일부터 8월 8일까지로 예정된 도쿄 올림픽은 어떤 대회로 기록될까.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조직위)는 3월 25일 후쿠시마(福島)현 나라하마치의 축구시설인 J빌리지에서 성화 봉송을 시작했다. 올림픽·패럴림픽은 통상 성화 봉송을 계기로 준비 속도가 빨라지고 대회 분위기가 확산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우려 등으로 분위기가 쉽게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조직위는 이날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회장과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 지사 등 160명이 참석한 가운데 출발 기념행사를 열었지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출발 행사를 간소화하고 무관중으로 열었다지만, 2021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은 총리의 참석도 없는 서막을 올린 셈이다.성화 봉송 행사는 도쿄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7월 23일까지 121일 동안 일본 전역에서 진행된다. 약 1만 명의 봉송 주자가 일본 전국의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를 모두 달리게 된다. 문제는 코로나다. 일본 정부와 조직위는 성화 봉송 행사가 코로나19 확산의 계기가 되지 않도록 길거리 밀집 응원이나 거주지를 벗어난 원정 응원 등을 자제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심지어 성화 통과를 보려고 인파가 몰리면 해당 장소를 통과하지 않고 다음 장소로 넘어가는 고육책까지 동원했다. 조직위는 성화 봉송을 직접 보는 대신 인터넷 생중계로 볼 것을 권고할 정도다. 성화 봉송 경비를 위해 출동한 일본 경찰들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방역 협조 표지판을 목에 걸고 나왔다. 일본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성화 봉송 장소부터 일본이 도쿄 올림픽을 치르는 이유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성화 봉송 출발지인 J빌리지는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쓰나미로 전력시설이 물에 잠기면서 발생했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초기에 수습 작업을 지휘했던 거점이었다. 도쿄 올림픽은 일본에선 인류의 대제전의 의미보다 2011년 3월 발생했던 동일본대지진의 아픔을 털어내고 새출발하는 ‘부흥 올림픽’의 의미가 커 보인다. 성화 봉송 장소부터 이를 부각하기 위해 정한 셈이다. 도쿄 올림픽의 정치학이다. ━ 올림픽 코앞인데 확진자 증가세, 백신 접종 지지부진 성화의 첫 봉송 주자 선정도 마찬가지다.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던 2011년 축구 여자 월드컵 독일대회에서 우승한 일본 대표팀 ‘나데시코 재팬’의 전 멤버들이 맡았다. 당시 ‘나데시코 재팬’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실의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은 것으로 평가된다. 동일본대지진이라는 비극의 현장에서, ‘나데시코 재팬’의 전 멤버들이 성화 봉송을 시작한 것은 도쿄 올림픽을 보는 일본인과 정부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게다가 성화 봉송은 개인이 아니라, 이와시미즈 아즈사(岩淸水梓) 등 16명의 선수가 함께 달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개인보다 집단을 강조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묻어난다.도쿄 올림픽 성화는 이 대회의 기구한 운명을 상징한다. 이 성화는 지난해 3월 12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돼 특별수송기 편으로 일본에 도착했다. 지난해 3월 26일부터 성화 봉송 행사를 치를 예정이었지만 이틀 전에 올림픽 연기가 결정되면서 1년간 대기해야 했다. 결국 성화는 일본에 도착한 지 1년 만에 봉송에 들어가는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일본 정부는 성화 봉송 사흘 전인 3월 22일 코로나19로 인한 수도권의 긴급 사태를 해제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코로나19 하루 확진자는 긴급사태 해제 당일 816명이었으나 다음날 1503명, 하루가 지나자 1918명으로 뛰었다. 코로나19가 재확산 조짐을 보인 셈이다. 올해 대회가 코로나19를 이기는 올림픽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참고로 글로벌 통계사이트인 월도미터에 따르면 일본의 하루 코로나19 확진자 숫자는 3월 21일 1480명, 22일 1143명, 23일 978명, 24일 1289명이다. 일본은 백신 접종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아 대회 이전에 집단 면역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블룸버그 백신 트랙커에 따르면 일본은 3월 25일까지 77만5122 회분이 접종됐으며 이는 전체 인구 1억2650만 명의 0.3%에 해당하는 횟수다. 전체 인구에서 1회 이상 접종자의 비율은 0.6%, 2회 접종을 완료한 사람의 비율은 0.1% 미만이다. 하루 접종 횟수는 38만60회에 불과하다.영국이 지금까지 3176만 회분을 접종해 전체 인구의 43.4%가 1회 이상, 4.2%가 2회 완전 접종을 마친 것과 비교된다. 영국은 하루 59만3000 회분을 접종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억3330만 회분을 접종하고 전체 인구의 26.3%가 1회 이상, 14.3%가 2회 완전 접종을 마쳤다. 미국은 하루 250만 회분 이상을 접종 중이다. 전체 인구의 9.6%가 1회 이상, 4.2%가 2회 완전 접종을 완료한 유럽연합(EU)과 비교해도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EU는 하루 128만 회분 이상을 접종하고 있다. 일본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접종을 계속한다면 백신으로 안심 올림픽을 치르기가 힘들다. ━ 해외 무관중 경기로 진행…경제 손실 갈수록 눈덩이 이에 앞서 성화 봉송 닷새 전인 3월 20일 일본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발표했다. 일본 정부와 도쿄도, 대회 조직위원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3월 20일 5자 화상회의를 열고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에 해외 관중을 받지 않는다는 방침을 최종 확정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대회 취소를 피하기 위한 차선책이자 또 하나의 고육지책이다.일본 관객의 제한 여부는 4월 말까지로 결정을 미뤘다. 해외 관중은 포기하더라도 일본에서의 올림픽 열기는 유지하고 싶은 생각이 드러난다. 일본 언론들은 당국이 ‘일본 내국인은 관객 수 제한 없이 수용’ ‘입장 관중 50% 제한’ ‘무관중 경기’의 세 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며 지금으로선 50% 제한 방안의 채택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도했다.이번 ‘해외 무관중 경기’ 결정에 따라 해외에 판매한 올림픽·패럴림픽 입장권 63만 장은 환불할 예정이다. 입장권과 함께 판매된 항공권이나 숙박요금 등을 포함하면 손실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이번 결정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도쿄 올림픽은 치르겠다는 선언이다.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의 관중 제한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따져보자. 요미우리 신문 등에 따르면 해외 관중을 아예 포기하고, 가장 유력한 예상대로 일본 국내 관중은 50%로 줄인다는 것을 상정했을 때 경제적 손실은 약 1조6258억 엔(약 16조 9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일본 경제에 대한 마이너스 영향은 약 2000억 엔(약 2조790억원)으로 계산됐다. 일본 스포츠 경제 분야의 권위자인 미야모토 가쓰히로(宮本勝浩) 간사이(關西)대 명예교수(이론경제학)의 추산이다. ━ 스가 지지율 추락, 손해 증가 우려해 행사 추진 강행 원래 2020년 개최 예정이던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이 코로나19로 1년간 연기되면서 드는 비용도 상당하다. 대회가 1년 연기되면서 조직위원회를 1년간 더 운영해야 하며 이에 따른 인건비와 활동비, 그리고 경기장 대여에 따른 비용이 추가된다. 여기에 숙고 위약금도 필요하다. 니케이 등에 따르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비용 추가분을 계산한 결과 최대 3000억 엔(약 3조1185억원)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코로나19 대책 비용도 추가될 수 있다.도쿄도와 올림픽 조직위원회사 2019년 12월 발표했던 예산안 제4판에 따르면 2020년 대회가 열렸을 경우 전체 경비는 1조3500억 엔(약 14조3000억원)으로 예상됐다. 여기에 3000억 엔이 추가되면 2021년 도쿄 올림픽은 전체적으로 1조6500억 엔(약 17조1500억원)의 비용이 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무관중에 일본 관객 50%로 대회를 치를 경우 경제적으로는 일본에 상당한 부담을 안길 수밖에 없다.물론 이는 올림픽을 취소하면서 생길 손실보다는 적다. 미야모토 교수가 지난해 3월에 내놓은 추산에 의하면 도쿄올림픽을 취소하면 4조5151억 엔(약 48조10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올림픽을 취소하면 48조원, 해외 무관중으로 치르면 16조원의 손실이 예상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해외 무관중 대회에 따른 손실도 상당하지만 대회 취소보다는 손실이 적다는 계산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그렇다면 정치적으로는 어떤 이득이 있을까? 일부에선 스가 총리가 올림픽 강행으로 지지율 반등을 노린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을 치른다고 일본의 부흥에 도움이 되고 스가의 리더십을 인정해 지지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하지만 올림픽을 포기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일본’이라는 브랜드가 입을 타격은 상당하다. 물론 코로나19라는 이유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행정부의 능력이나 통찰력, 그리고 의지가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코로나19를 이길 백신 접종에서 경이적인 속도를 낸 이스라엘이라면 비교적 문제없이 대회를 치렀을 수 있다. ━ 중일전쟁 벌이느라 1940년 올림픽 스스로 반납하기도 일본이 이번 도쿄 올림픽을 취소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이미 오래 전 침략의 역사 속에서 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도쿄 여름 올림픽은 1964년 이후 56년 만에 도쿄에서 다시 열리는 역사적인 대회다. 그런데 사실 이번 행사는 도쿄가 역대 2번째가 아니라 3번째로 유치한 대회다. 도쿄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이어 1940년 올림픽 개최권을 확보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여름 올림픽으로 기대를 모았다.하지만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1937년 7월 7일~1945년 9월 2일)을 일으키면서 각의에서 올림픽 개최권 반납을 결정했다. 침략 전쟁을 일삼던 당시 군국주의 일본에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은 어울리지 않았던 셈이다. 자국이 일으킨 침략 전쟁을 핑계로 올림픽을 포기, 반납한 사례는 도쿄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일본으로선 부끄러운 일이다.일본이 올림픽을 포기하고 벌인 중일전쟁은 끔찍한 살육극으로 점철됐다. 종전 뒤인 1947년 중화민국 행정원 배상위원회는 일본과의 전쟁으로 군인 365만405명, 민간인 913만4569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1995년 중국 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 산하 군역사연구부에서 출간한 『중국항일전쟁사』는 항일전쟁 기간 중 3500만 명의 중국인이 죽거나 다쳤다고 기록했다. 일본은 중일전쟁에서 44만6500명의 군인이 사망했다. 종전 뒤엔 소련군에 의해 60만 명의 일본군 포로가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로 잡혀가 노역에 종사했으며 이 가운에 6만 명이 숨졌다.일본이 반납한 1940년 여름 올림픽 개최권은 핀란드의 헬싱키로 넘어갔다. 하지만 소련이 1939년 핀란드를 침공해 겨울전쟁(1939년 11월 30일~1940년 3월 13일)을 벌이면서 이 올림픽은 아예 취소됐다. 인류의 제전인 올림픽이 전쟁으로 중지된 두 번째 사례다.1916년 베를린 여름 올림픽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된 것이 첫 사례다. 전쟁이 끝난 1936년 베를린에서 여름 올림픽이 열렸지만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이를 게르만족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선전장으로 참여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의 아프리카계 선수인 제시 오언스(1913~1980년)가 100m, 200m, 400, 계주, 멀리뛰기에서 금메달을 따서 4관왕에 오르면서 인종주의에 일침을 가했다.1944년 예정됐던 런던 올림픽도 나치·파시스트·군국주의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아 끝내 열리지 못했다. 하지만 런던은 종전 뒤 처음 열린 1948년 여름 올림픽을 개최해 평화와 화합의 제전으로 이끌었다. 그 뒤 인류는 올림픽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1940년 도쿄 올림픽 개최권 반납은 일본 제국주의가 인류 비극의 원인을 제공하느라 인류의 제전인 올림픽을 포기한 흑역사다. 일본이 이번 도쿄 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하거나 대회를 포기하면 이런 흑역사가 다시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일본으로선 올해 도쿄 올림픽 포기가 쉽지 않은 또 다른 이유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2021.03.2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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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64 도쿄 올림픽

국제 이슈

모든 준비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2020 도쿄 올림픽은 대회 시작 전부터 경이로움을 선사할 것이다. 올림픽 참가자와 관광객은 자율주행 택시를 타고 시내를 오가고, 올림픽 주경기장 용도로 새로 지은 국립스타디움 입구에서 출입증만 살짝 대고 입장한 뒤 얼굴인식 소프트웨어로 신원이 확인되면 10개 언어 중 하나로 안내 받아 좌석을 찾아갈 수 있다. 또 도쿄 어디서든 밤하늘을 쳐다보면 80㎞ 상공에서 펼쳐지는 인공 별똥별 쇼를 구경할 수 있다.일본은 지금 이런 혁신 기술의 실현을 목표로 모든 역량을 동원한다. 1964 도쿄 올림픽에서 보여준 기술적 쾌거와 국가적 이미지 쇄신의 유산을 2020 올림픽에서 되살리려는 의도다. 올림픽 폐막 후에도 오랫동안 일본 사회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도쿄 올림픽 조직위 관계자와 혁신가, 기업가, 학자들이 야심적인 프로젝트에 힘을 모은다.도쿄 올림픽 조직위의 무토 도시로 사무총장은 “올림픽은 스포츠 축제지만 과학기술 혁신을 과시할 기회로도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조직위는 각국 대표 선수단의 경기장 이동에 수소연료 차량을 사용하고 첨단 스마트폰 툴로 관광객을 돕는 등 여러 가지 첨단기술을 선보일 계획이다. 무토 사무총장은 “세계가 경탄할 멋진 올림픽을 보여주겠다”며 의욕을 보였다.세계의 각 도시는 얼마 전까지만해도 올림픽 유치를 두고 경쟁이 치열했지만 갈수록 올림픽 개최를 꺼린다. 막대한 비용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2 런던 올림픽은 126억4000만 달러,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은 510억 달러가 들었다. 정부는 주로 관광 수입과 관련 상품 판매로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며 거액의 비용 지출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실제로 올림픽 개최 도시가 적자에 허덕인 경우가 숱했다.물론 올림픽 개최로 멋지게 성공한 도시도 있었다. 1984 LA 올림픽은 보기 드문 흑자(2억3250만 달러) 대회였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그 도시의 부두를 부흥시켰고, 런던 올림픽은 최고의 디지털 대회로 IT 인프라를 구축했다.일본은 2020 도쿄 올림픽 예산을 원래 30억 달러로 책정했지만 현재 조직위는 준비 비용을 재검토 중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체 비용이 그 6배에 이를 수 있다. 예산이 얼마로 늘어나든 일본은 이번 대회의 유산이 이전 도쿄 올림픽의 화려한 영광에 뒤져선 안 된다는 막중한 부담을 갖는다. 일본은 1964년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세계은행의 차관을 받아 공공 지출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자동차 대중화 시대가 열려 차량 소유와 인프라가 크게 성장하면서 일본 경제는 급상승했다. 당시 일본은 세계적인 컬러 TV 사용 증가와 미국 항공우주국(NASA) 도움으로 첫 국제 위성방송으로 모든 행사와 경기 장면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20년만에 일본의 세계적 지위는 높이 치솟았다.독일 뒤셀도르프 소재 하인리히하이네대학의 일본 현대사 전문가 크리스티안 타그솔드 교수는 “1964 도쿄 올림픽으로 세계는 일본의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1964 도쿄 올림픽이 개막되기 열흘 전 일본은 고속철도 신칸센을 개통했다. 정시 발착으로 명성이 높은 신칸센은 그 이래 수십 년에 걸쳐 노선을 계속 확장하면서 사고 한번 없이 승객 100억 명 이상을 실어 날라 세계적인 모범을 세웠다. 미국 뉴욕 소재 맨해튼대학의 일본 현대사 교수 폴 드루비는 “신칸센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차로 기술 대국으로서 일본의 재부상을 상징했다”고 설명했다.일본은 2020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또다시 당시의 성공을 재현하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과거와 많이 다르다. 일본 경제가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선진국 중 부채 부담이 가장 크며 인구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빨라 노동력이 크게 부족하다. 분석가들은 한때 드높았던 일본 정부의 야심이 작아졌다고 지적한다. 드루비 교수는 “1964년과 달리 이번엔 원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러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지난해 10월 열린 연례 ‘과학기술과 인류의 미래에 관한 국제 포럼’에서 혁신이 끊이지 않는 일본의 비전을 제시했다.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자율주행차를 실용화해 도쿄의 거리가 운전자 없는 차로 가득할 것이라는 대담한 예측을 내놨다. 아베 총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불상사를 피하려면 로봇택시에 기댈 수밖에 없다. 모바일·온라인 서비스업체 DeNA와 로봇 전문업체 ZMP가 합작한 운송회사 로봇택시는 기존 택시를 자율주행차로 개조하는 중이다(새 차를 만들기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로봇택시는 우선 도요타 미니밴 에스티마를 개조하는데 초점을 맞추지만 회사 대변인에 따르면 그 기법은 다른 모델이나 자동차회사에도 적용될 수 있다. 곧 도쿄 부근의 가나가와현에서 12일 동안 주민이 참여하는 시험운행을 실시할 계획이다.DeNA의 자동차사업 본부장 나카지마 히로시는 일본 정부가 내년까지 자율주행 택시 관련 법을 통과시킬 계획이라며 로봇택시가 2020년 올림픽에 맞춰 자율주행차 수천 대를 운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종 운행 대수는 자율주행차 운행이 허용되는 도로 등 규제의 엄격함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도요타와 닛산 같은 일본 자동차회사들도 2020년까지 일부 자율주행이 가능한 차량을 시판할 계획이다. 그러나 나카지마 본부장은 로봇택시의 차량이 완전한 자율주행과 맞춤형 서비스로 선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로봇택시는 2020 도쿄 올림픽이 이상적인 도약의 발판이라고 본다. 관리가 잘 되고 활동 범위가 지리적으로 넓으며 관광객에게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봇택시의 서비스는 앞으로 물류부터 의료까지 다양한 산업에 적용될 수 있다. 또 자율주행 택시가 허용되는 지역이 확대되면서 늘어가는 농촌 격리화와 고령자 연령층(대부분 자율주행차를 구입할 여력이 없다)의 높은 교통사고율 등 일본의 고질적인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로봇택시 프로젝트는 일본이 2020 도쿄 올림픽 개최에 맞춰 선보일 계획인 수많은 혁신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고베 과학박물관 관장인 와다 도모아키는 “여러 대기업이 2020 올림픽을 첨단 연구개발 제품의 이상적인 출시 시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파나소닉은 공식 올림픽 스폰서로서 자동통역기부터 전기자전거 공유와 미세분무냉각 설비까지 다양한 제품을 개발 중이다.파나소닉 전시실에서 방영되는 홍보 동영상의 로봇 목소리는 “도착부터 출발까지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런 혁신이 2020년 올림픽 때 일본을 찾는 외국인 방문객만이 아니라 일본인에게도 중요한 유산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다.파나소닉은 또 ‘완벽한 보안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올림픽 선수촌과 경기장의 안전을 위해 수십만 대의 고정·이동식 감시 카메라와 제한구역의 센서를 단일 네트워크로 통합하는 시스템이다. 그 카메라에 부착된 9메가픽셀(900만 화소) 360도 어안 렌즈는 영상처리 소프트웨어, 특정 구역의 음성·소음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지향성 마이크와 연결된다.파나소닉의 대변인 미하라 마코토는 이 네트워크가 테러공격의 탐지와 예방에 효과적이며 사생활 보호에 관한 모든 법과 규정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이 시스템이 여러 분야에서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고나 재난이 발생할 때 군중 속에서 쓰러진 사람을 찾고 특정 목소리를 인식할 수 있다. 일본어를 모르는 외국인이라도 우리는 그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또 파나소닉은 도쿄 올림픽 조직위와 손잡고 ‘원더 재팬 패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홍보 자료에 따르면 방문객의 경험을 ‘더 스마트하고 심플하게’ 만들어주는 신용카드식 기기다. 출입과 요금 지불에선 사용자를 확인하고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얼굴인식 기술을 이용한다. 다른 주요 기업들과 정부가 합류한다면 그 시스템은 신분증과 경기장·호텔방 출입증만이 아니라 택시 이용부터 쇼핑까지 모든 서비스의 요금을 지불하는 신용카드로도 사용할 수 있는 ‘올인원’ 기기가 될 수 있다.현대 올림픽은 스포츠 못지않게 화려함을 중시한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선 위성을 통해 아테네에서 캐나다로 송신된 무선 신호로 작동하는 레이저빔으로 성화가 점화됐다. 1984년 LA 올림픽 개막식에선 제트팩을 등에 맨 남자가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경기장으로 날아들어 성화에 불을 붙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장애인 양궁선수가 불화살을 쏴 성화대를 밝혔다.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선 한 신생업체가 과학 혁신의 장기적 유산을 남기는 동시에 지금까지의 모든 성화 점화 방식을 능가할 계획이다. 자칭 ‘외계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ALE는 인공 유성우를 개발 중이다. 개발자들은 이 기술이 대규모 엔터테인먼트로서 불꽃놀이를 완전히 대체하는 동시에 유성과 상층대기 연구, 위성을 다시 지구에 착륙시키는 우주기술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ALE 개발팀에 따르면 80㎞ 상공에 나노위성을 쏘아 올려 화학물질로 만든 작은 알갱이를 방출하면 그것이 대기권으로 내려가 공기와 마찰하면서 불이 붙어 밝게 빛난다. 천문학 박사로 골드먼삭스 임원을 지낸 레나 오카지마 CEO는 직경 320㎞ 범위에서 약 3000만 명이 그 인공 별똥별 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ALE는 니혼대학 항공우주공학부의 아베 신스케 교수를 포함해 여러 일본 학자들과 협력한다. 아베 교수는 알갱이의 크기와 모양, 구조를 변경해 인공 별똥별을 더 밝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자연 유성의 이동 속도는 초속 80㎞에 이르지만 인공 별똥별의 재진입 조건은 초속 약 8㎞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베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는 같은 공기역학 조건에서 자연 유성보다 약 70배 밝게 빛나는 특수 알갱이 제작에 성공했다”고 말했다.그들은 이 사업이 과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믿는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항공우주 엔지니어 사하라 히로노리는 “우리의 인공 별똥별은 엔터테인먼트만이 아니라 상층대기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중요한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베 교수에 따르면 그들의 연구는 자연 유성의 물리·화학, 궤도 패턴과 대기권 재진입에 관한 핵심 정보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ALE는 2018년 도쿄에서 인공 별똥별 쇼를 연출할 나노위성을 쏘아올릴 계획으로 부유한 우주 애호가와 대기업 중에서 후원자를 찾고 있다. 오카지마 CEO는 1회 발사에 약 900만 달러가 들 것으로 추정한다. 위성을 쏘아올릴 로켓에 비용이 가장 많이 든다. ALE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오츠키 노부히코는 지금으로선 비용이 너무 비싸 어렵지만 미래엔 나노위성 시스템이 기존의 불꽃놀이를 대체하면서 하늘을 형형색색으로 수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늘이 캔버스가 될 수 있다. 100년 안에 사람들은 인공 별똥별에 열광할 것이다.”- 조 잭슨 뉴스위크 기자

2016.03.2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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