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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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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와 ‘당신의 일상’ 어떤 관계가 있을까[순화동필]

정책이슈

인도주의. 국경없는의사회(MSF)와 같은 비영리기관을 움직이는 대표적 단어다. 언뜻 보면 구호 단체에만 한정된 단어로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국경없는의사회의 재정 98%가 모두 개인 또는 기업으로부터 왔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인도주의의 개념은 이미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특히 한국은 인도적 지원의 수혜국이라는 예전 지위를 뛰어넘어 긴급 구호 활동의 주요 기여국으로 부상한 전 지구적으로 유례없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를 비롯해 여러 비영리기관이 한국에 설립된 이후, 기부금 증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구호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국민의 수 역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발생 당시 국민들의 자발적인 모금 참여와 숙련된 기술 인력으로 구성된 긴급 구호대 파견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가 대한민국의 도움이 필요할 때 주도성과 영향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도 했다.인도주의 리더십은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위상으로 연결된다. 인도주의적 노력은 국제 관계를 형성하는 초석이자 전 세계에 자비와 연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또한, 거시적 관점에서 이러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명백한 유익은 ‘세계 안정’이다. 출렁이는 세계 정세가 각국의 경제·안보·보건 등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돌고 돌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수입 원자재 폭등으로, 누군가에게는 살벌한 장바구니 물가로 기억된다. 인도주의적 기여는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간의 충돌 대신 평화로운 해결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염병 등 기타 불안정한 요소의 확산을 막아 세계 정세를 안정화하는 가장 적극적인 전략이기도 한 것이다. 인도주의 리더십을 높이는 것은 위기에 처한 이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동시에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방위적 요소를 포함한다. 한국의 인도주의 성적을 높이는 방법한국은 세계 인도주의 지형도를 바꿀 만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숙련된 의료, 물류 및 행정 전문가, 생명과학 기술 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인도적 지원과 직접적으로 연관있는 의료 및 생명공학 분야에서 세계적 선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 등과 같은 국제기구의 선도그룹으로서 다방면에 기여하고 있다. 백신 관련 유일한 국제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IVI)가 한국에 본부를 두고 3000명 이상의 백신 전문가 육성, 40개 이상의 임상 시험 및 2개의 신규 백신 개발 등 엄청난 쾌거를 만들어 냈다. 한국의 재정지원과 기술력이 밑바탕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한하는 장벽 또한 여전히 두껍게 존재한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인도주의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빠르게 발전했지만 여러 가지 인도적 문제를 내 문제로 인식하는 사회적 문화는 아직 무르익지 못했다.또 하나의 커다란 장벽은 한국의 여행 금지 제도다. 잠재력이란 그 능력이 있어야 하는 곳에 가야 발휘되는 법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여행 금지 제도는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려는 구호 단체 및 개인들에게 상당한 장애물이다. 가장 위급한 지역에 한국의 뛰어난 기술과 인력이 닿지 못하는 실정이다. 자국민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한국 정부의 방향성은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갖는 중요성과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국제적 책임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또한 인도주의적 노력은 누군가의 위기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자국에 긍정적 결과물을 남긴다는 사실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직접적 실례를 들어보자. 어려운 환경을 경험한 전문 인력들은 자국의 의료 시스템 발전에 엄청난 전력이 된다. 독특한 의료 사례에 대한 경험은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새로운 시각과 전문성으로 지역 보건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제한된 자원 속에서 보건 문제를 해결해 온 경험은 새로운 전략 및 기술 개발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혁신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의료 시스템을 개혁한다. 또한, 국제 보건 위기를 관리해 본 전문가들은 미래에 직면할 수 있는 전염병·재해 등과 같은 비상사태에서 자국의 위기관리 능력으로 발현된다.한국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국가다. 개인적으로 석·박사 모두 한국과 관련된 전공을 택한 것도,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 총장 직무에 지원했던 것도 한국에 대한 애정을 넘어 한국이 지닌 잠재력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한국의 잠재적 인도주의 역량에 국경없는의사회와 같은 조직이 가진 현장경험과 전문성이 더해진다면 국제 지형도를 바꿀 만큼 폭발적인 영향력으로 나타날 것이다. 인도주의적 대응은 회복의 출발점이다. 고통받는 이들의 회복이자 세계 정세 안정화의 출발점이다. 한국 정부가 목표로 두고 있는 외교 관계 및 경제 성장을 풀어내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세계 무대 속에 더욱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눈앞에 그려본다. 필자는_호주국립대에서 한국 정치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동 대학에서 한국학 연구·강의를 진행하며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전문지식을 쌓았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 부임 전 국경없는의사회 호주사무소 이사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에스와티니·레바논·튀르키예·시에라리온 등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활동 경험을 쌓아온 구호활동가이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2024.04.10 08:00

4분 소요
한미약품, 신임 R&D 센터장에 ‘한미맨’ 최인영 상무 임명

바이오

한미약품은 오는 9월 1일자로 바이오 신약 부문 총괄 책임자인 최인영 상무를 연구개발(R&D) 센터장에 임명한다고 21일 밝혔다.최 상무는 연세대와 동 대학원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생명약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한미약품에는 1998년 연구원으로 입사했고, 이 회사의 핵심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를 적용한 다양한 바이오 신약 개발을 총괄했다.한미약품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세포·유전자 치료제(CGT)와 메신저 리보핵산(mRNA) 등에서 전문성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한미약품 관계자는 “최 센터장은 랩스커버리를 기반으로 바이오 신약과 약물 지속형 기술을 고도화하고, 새로운 치료 접근 방법(모달리티)인 CGT와 mRNA 기반 항암 백신, 표적 단백질 분해(TPD) 약물로 회사의 R&D 역량을 키울 적임자”라고 전했다.또한 “최 센터장은 연구원으로 입사해 25년 동안 한미약품의 R&D 센터에서 근무했고, 연구원들과 소통, 협력하며 조직 내 화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라며 “창립 50주년 이후 새롭게 변화할 한미약품의 R&D 혁신을 이끌 적임자”라고 했다.

2023.08.21 17:06

1분 소요
‘美편인가 中편일까’ 尹 쿼드 가입 속도전에 反中 우려 시선

정책이슈

쿼드 가입 모색을 공약으로 언급했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 10일도 안 돼 쿼드(Quad) 4개국 정상 모두와 통화를 했다. 이에 차기 윤석열 정부의 쿼드 가입과 이를 둘러싼 파장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계는 우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윤 당선인은 이달 9일 치러진 제20대 대선에서 당선된 뒤 해외 주요국가의 수장과의 통화로 ‘전화외교’에 나서고 있다. 윤 당선인이 해외 정상과 통화한 것은 이달 10일 미국(조 바이든 대통령), 11일 일본(기시다 후미오 총리), 14일 영국(보리스 존슨 총리), 16일 호주(스콧 모리슨 총리)에 이어 17일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까지 다섯 번이다. 이들 5개국 가운데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은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를 구성하고 있다. 쿼드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협의체다. 쿼드 4개국은 지난해 9월 첫 정상회의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비롯한 기후변화 대응, 공급망, 기술 안보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는 등 경제안보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협력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 공약에서 쿼드 가입 추진 의사 밝혔던 尹 외교부는 쿼드 참여 문제에 대해 “이미 쿼드 참여국들과 다양한 협력을 추진해 오고 있다”며 “향후 어떻게 더 협력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앞으로 계속 살펴나갈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쿼드에 대해 외교부는 어떤 참여방식을 검토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개방성, 투명성, 포용성 등의 원칙에 부합하고, 우리 국익과 지역과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어떠한 협의체와도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며 이같이 답했다. 쿼드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2020년 8월 31일 조직은 공식 국제기구로 만들고, 한국·베트남·뉴질랜드 3개국을 더해 ‘쿼드 플러스’로 확대할 의도를 내비치며 주목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도 쿼드 국가들과 사안별 협력은 모색해나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쿼드 산하의 백신, 기후변화, 신기술 워킹그룹에 본격 참여해 기능적 협력을 해나가면서 추후 정식 가입을 모색하는 점진적 접근을 추구할 것”이라며 현 정부보다 쿼드 가입에 적극적인 공약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윤 당선인 측은 최근 쿼드 4개국 정상과의 통화가 축하 인사의 성격이며, 쿼드 가입과 연결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향후 쿼드 가입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전해 가입의 여지를 남겼다. ━ 中 언론인 “윤석열 정권이 중·한 관계를 뒤집는 것은 미친 일” 윤 당선인은 쿼드 외에도 안보 면에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추가 배치를 공약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2017년 밝힌 사드와 관련한 ‘3불’ 정책(사드 추가 배치 없음, 미국 MD·한미일 군사동맹 불참)을 승계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분석이다. 사드는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이다. 2016년 당시 박근혜 정부가 주한미군에 사드를 도입하자 중국은 한국과의 당국 간 대화 채널 축소와 한한령(限韓令·한류제한령),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제한과 같은 고강도 보복을 단행했다. 최근 수년 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양국은 한국을 자국 편으로 끌어드리려 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균형을 모색한 것이 문재인 정부의 외교 기조였다면, 윤석열 정부는 미국 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중 간 전략경쟁이 심화할수록 윤 당선인이 공약했던 한미동맹 강화와 한중관계 발전의 병행은 어려워진다. 윤 당선인이 취임 후 차기 정부에서 쿼드에 가입하고 사드를 추가로 배치하면, 한중관계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윤 당선인 측이 언급했던 한미동맹 강화 조치는 중국 입장에서 한국이 미국의 대(對)중국 압박에 동참하는 행보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윤 당선인의 쿼드·사드 관련 발언에 주목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이달 10일 “미중 간 전략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새 정부의 대중 정책이 주목된다”며 윤 당선인이 쿼드와 더 많이 협력하길 원한다고 발언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윤 당선인이 사드 확대 배치를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던 내용도 보도했다. 또한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은 10일 위챗 계정에 올린 글에서 “한국의 대 중국 수출이 전체 수출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한국 새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경색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인은 이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후 전 편집장은 중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관변 언론인으로 알려졌다. 후 전 편집장은 이어 한국이 사드 추가 배치와 쿼드의 중국 견제 협력에는 매우 신중할 것이라고 내다보며 “윤석열 정부가 스스로 중한 관계를 뒤집는 큰 걸음을 내딛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미친 일이 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분석도 내놨다. 지난해 수출액 기준으로 대중 수출 비중이 25.2%, 미국이 14.8%였다.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또한 국내에서는 최근 5년간 한국의 중국 수입시장 점유율이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중국의 수입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점유율은 2012~2016년 9.8%에서 2017~2021년 8.8%로 1.0%포인트 하락한 반면 같은 기간 아세안 6개국과 대만의 점유율은 각각 2.5%p와 0.8%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련은 한국이 2013~2019년까지 7년 연속 중국 수입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했지만, 중국의 대만산 반도체 수입 증가와 아세안 6개국의 약진, 중국의 부품·소재 자급화 정책 등의 영향으로 2020~2021년에는 점유율이 2위에 머물렀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기술과 장비 수출을 제한한 뒤 대만산 반도체 수입이 증가하며 중국 수입 시장에서 대만의 점유율이 늘어났다. 또한 전경련은 한국의 대중 수출품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할 경우 한국의 중국 수입시장 점유율은 2012∼2016년 8.8%에서 2017∼2021년 6.8%로 2.0%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아세안 6개국의 점유율은 2.8%p 높아졌다. 아울러 중국 정부가 ‘중국제조 2025’을 앞세워 부품·소재 자급화 정책을 추진하며, 최근 5년간 우리나라의 대중 부품·소재 수출 금액도 직전 5년에 비해 6.6%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부품·소재의 중국 수입 시장 점유율 역시 16.9%에서 11.9%로 5.0%p 감소했다. 이 밖에 의약품을 화장품·유아식료품·플라스틱 제품 등 중국의 10대 소비재 수입 시장에서 한국의 시장 점유율은 하락세를 보였다. 이들 시장에서 한국의 시장 점유율은 2012~2016년 5.4%에서 2017~2021년 4.2%로 1.2%p 낮아졌다. 한국은 대중 수입 의존도도 심화하고 있다. 전경련이 한국·미국·일본 3개국의 주요품목 대중국 수입의존도를 비교한 결과, 2020년 기준 부품소재를 포함한 중간재 대중 수입의존도가 한국이 3국 중 가장 높았다. 여기에 2018년 미-중 무역전쟁 발생 후 2020년까지 한국의 대중 수입의존도도 3개 국가 가운데 가장 많이 상승했다. 또한 미국이 공급망 재구축에 나선 4대 품목(반도체·배터리·항생물질·희토류)의 경우에도 2020년 기준 한국의 대중 수입의존도가 4개 품목 모두 3국 중 가장 높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하면 대중 수출이 줄어들어 한국의 전체 수출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면 미국과의 연대 약화가 대미 수출 감소로 이어져 한국의 수출 실적이 악화할 수 있다. 차기 정부의 수장이 될 윤 당선인으로서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셈이다. ━ 쿼드 가입, IPEF 등 미국주도 무역질서 참여에는 기회 이 같은 상황에서 윤 당선인이 공약으로 언급했던 쿼드 가입과 사드 추가 배치를 추진하면, 미국 중심의 무역질서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중갈등이 고조하는 상황에서 해외 주요 국가는 자국의 안보 정책에 따라 무역 질서도 재편하고 있는데, 한국은 쿼드 가입 등으로 전통적 우방국인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앞서 정부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가입으로 국제 사회에서 무역 저변을 확대해왔다. 올해 2월 발효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참여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을 올 상반기를 목표로 준비 중인 것이 대표 사례다. 그러나 RCEP과 CPTPP에는 미국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역내 경제협력 구상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대한 입장을 조만간 미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IPEF는 지난해 10월 바이든 대통령이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처음 언급했으며, 사실상 인도태평양 지역 내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은 IPEF를 통해 ▶무역 촉진 ▶디지털 경제와 기술의 표준 ▶공급망 회복력 ▶탈탄소화와 청정에너지 ▶인프라 ▶노동 표준 등의 분야에서 역내 동맹·파트너 국가와 국제 표준을 도출하고 합의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한국의 IPEF 참여를 요청해온 것으로 전해졌으며, 정부도 참여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달 15일(현지시간) 미국의 대표적 통상전문기관인 국제통상협회(WITA)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0주년을 맞아 개최한 화상 간담회에 참석해 “우리는 IPEF를 매우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여긴다”며 “우리는 미국 리더십이 역내로 복귀한 것을 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IPEF는 아직 참여국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지만, 미국 주도의 무역협정 참여는 미국과 그 동맹국에 대한 무역활성화를 모색할 기회로 풀이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이달 11일 펴낸 ‘한미 FTA 10년 평가와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양국 간 상품무역은 FTA 발효 전인 2011년 1008억 달러(약 122조원)에서 2021년 1691억 달러(약 205조원)로 67.8% 증가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한미 FTA 체결 첫해인 2012년 585억달러에서 959억달러로 61.1% 늘어났고, 수입은 433억달러에서 732억달러로 69.0% 증가했다. 대미 무역수지는 매년 흑자를 유지했으며, 그 규모는 2012년 152억달러에서 지난해 227억달러로 불어났다. 상위 10대 수출 품목 중 무선통신기기를 제외한 모든 품목의 수출이 10년 동안 증가한 가운데 반도체(246.6%), 컴퓨터(259%), 냉장고(130.9%), 합성수지(244.9%), 건전지 및 축전지(634.6%) 등은 증가율이 세자릿수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수출입이 모두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경기 회복세 속에 주력 품목을 중심으로 양국간 교역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지난해 양국간 무역 규모는 1691억 달러로 지난해 1316억달러와 비교해 28.5% 증가했다. 구체적으로 수출은 959억 달러로 전년 대비 29.4% 늘었으며 수입은 732억 달러로 27.3% 증가했다. 수입의 경우 금액과 증가율 모두 FTA 발효 이후 최고치다. 지난해 주요 수출 품목을 보면 자동차(8.9%), 자동차부품(25.8%), 반도체(21.4%), 컴퓨터(25.8%) 등 주력 품목이 성장세를 보였다. 석유제품(104.1%)도 증가세가 컸다. 이에 한국 제품의 미국 수입시장 점유율은 3.4%로 전년 대비 0.1%포인트 상승했다. 수입은 국제 유가 상승에 원유가 55.8% 증가했으며 글로벌 수요 증가에 따른 설비 투자 확대로 반도체제조용장비도 48.4% 늘었다. 국내에서 테슬라 자동차가 인기를 끌며 자동차 수입도 43.7% 증가했다. 수입이 늘었지만 수출 증가폭이 더 커 지난해 무역수지는 227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한미 FTA 특혜관세 품목 수출이 413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43%를 차지해 FTA의 영향이 수출 증가에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한미 FTA 발효 시점인 2012년과 비교해 220.4% 늘어난 규모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2022.03.19 20:00

8분 소요
삼바, 'CMO 리더십 어워즈' 6개 부문 전관왕…9년 연속 수상

바이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22 CMO Leadership Awards’에서 6개 평가항목 전 부문을 수상해 세계 최고 의약품 위탁생산(CMO) 기업으로 인정받았다고 8일 밝혔다. 2012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는 CMO 리더십 어워즈는 미국의 생명과학 분야 전문지 ‘라이프 사이언스 리더(Life Science Leader)’와 제약∙바이오산업 연구기관인 ‘인더스트리 스탠더드 리서치(ISR)’가 주관하는 세계적 권위의 CMO 분야 시상식이다. 주최 측은 올해 전 세계 CMO 기업들을 대상으로 23개의 세부 항목을 평가해 역량(Capabilities), 호환성(Compatibility), 전문성(Expertise), 품질(Quality), 안정성(Reliability), 서비스(Service) 등 총 6개 부문에서 수상 기업을 선정했다. 직접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한 고객들이 평가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선정돼 고객과 업계의 목소리를 가장 잘 반영한 상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이번 수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글로벌 최고 수준의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역량을 인정받았다"고 강조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우수한 글로벌 공급망 관리 시스템을 기반으로 아스트라제네카, 일라이 릴리와 GSK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개발한 코로나19 항체치료제를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생산했다. 이와 함께 모더나 백신 완제의약품(DP) 위탁생산을 수행하며, 준비기간을 단축해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공급에 기여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2013년 생산성(Productivity) 부문에서 수상한 이후, 올해로 9년 연속 CMO 리더십 어워즈를 수상해왔다.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은 “CMO 리더십 어워즈 수상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쟁력을 인정해준 많은 고객들 덕분이며, 더욱 우수한 품질과 서비스로 보답할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유전자·세포치료제 및 mRNA 백신 원료의약품(DS) 등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제약바이오 시장의 다양한 요구를 부합하는 CDMO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윤신 기자

2022.02.08 09:46

2분 소요
이재용 부회장, 5년 만에 미국 출장…반도체·바이오 이슈 해결 카드 내놓나

산업 일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 북미 출장을 위해 출국했다. 5년 만의 미국 출장이자, 올해 8월 가석방으로 출소한 이후 첫 해외 방문 일정이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반도체’와 ‘백신’ 등 국가 안보문제로 떠오른 주요 산업 현안을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20조원 규모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투자 부지 선정을 최종 조율하고 빅테크 관련 고객사를 만나 각종 반도체 기술·시장 리더십 강화에도 나설 가능성이 크다. 또한 모더나 본사가 있는 보스턴을 방문하겠다고 직접 언급하며 모더나와의 협력 관계 강화를 암시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서 전세기편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미국 파운드리 투자 결정과 관련해 “여러 미국 파트너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미국 신규 파운드리 투자 결정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또 만나기로 한 미국 반도체 파트너사는 어디인지 등의 추가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한 뒤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170억 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하는 첨단 반도체 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테일러시가 유력한 후보지로 떠오르는 가운데 오스틴시와 애리조나주의 굿이어·퀸크리크, 뉴욕시 제네시 카운티 등도 유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또 코로나19 백신 수급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 모더나사 측과 만나느냐는 질문에 “(모더나 본사 소재) 보스턴에 갈 것 같다”고 말했다. ━ 20조원 파운드리 부지 선정 결정 날 듯 이 부회장이 본격적인 해외 현장경영에 나서자, ‘이재용 역할론’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무부는 지난 8월 이 부회장 가석방을 결정하며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제상황, 글로벌 경제상황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전쟁이 격화되고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앞다퉈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있는 시장 상황을 반영한 결정이었다. 최근에는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에 반도체 공급망 정보를 요구했고 삼성전자는 지난 8일 민감한 정보를 제외한 반도체 공급망 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추가 정보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언급한 만큼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20조원 규모의 반도체 파운드리 투자 부지 선정 역시 미국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 부회장이 직접 현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관련 작업을 마무리해야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또 이번 출장 기간에 반도체·빅테크 기업 최고 경영진을 만나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먹거리로 바이오사업을 점찍은 만큼 이번 출장에서 반도체만큼 중요한 의제는 바이오다. 삼성전자는 CDMO(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투자를 확대해 ‘제2의 반도체 신화’를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의 리보핵산 (mRNA) 기반 코로나 백신 공정을 맡는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 당시에도 이 부회장은 ‘백신 특사’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 이후 모더나 백신 생산 계획을 직접 챙기고 모더나 측 최고 경영진과 화상회의를 통해 백신 생산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도 모더나 본사가 있는 보스턴을 방문해 최고 경영진들과 회동할 것으로 보인다. ━ 해외 현장 경영 시작…‘뉴 삼성’ 속도 붙나 재계에서는 이번 북미 출장으로 ‘뉴 삼성’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18년 사면 이후 ‘뉴 삼성’이라는 새로운 경영 가치를 제시하며 광폭 행보를 보인 바 있다. 2018년 2월 5일 항소심 재판부의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과 기술 초격차 강화에 집중해왔다. 이 부회장은 2018년 출소 이후 한 달 뒤부터 거의 매달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석방 한 달 뒤인 3월 말 유럽과 캐나다 출장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5월 중국, 6월 일본, 7월 인도, 8월 유럽을 둘러봤다. 같은 해 11월 베트남을 방문한 데 이어 12월엔 인도를 재방문했다. 이 부회장이 보유한 글로벌 네트워크 역시 적극 활용했다. 이 부회장은 방문지역에서 AI, 자동차 전장 분야의 비즈니스 파트너와 세계적인 석학 등을 만나 면담을 하고 인재 영입에 나섰다. 2019년에는 메모리반도체뿐 아니라 시스템반도체에서도 세계 1위에 오르겠다며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8월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 이후에는 11일 만에 3년간 24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고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미국 출장에 5년 만에 나선 것은 대내외 경영 환경을 해결하고 투자 우위를 점하려는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라며 “삼성의 총수 부재 리스크가 해결되면서 위기 때마다 압도적인 투자를 통해 경쟁 업체를 따돌려 온 삼성 특유의 초격차 전략에 다시 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im.yeongeun@joongang.co.kr

2021.11.14 13:52

4분 소요
기시다 총리의 '자기 정치' 시동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4) 총리는 조기에 자기 색깔 정치의 시동을 걸 것인가. 기시다는 9월 29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67) 전 총리의 적극적인 지지와 파벌 간의 밀실 합의를 바탕으로 27대 총재로 당선했다. 당시 1차 선거에서 예상을 뒤집고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곧이어 열린 경선 투표에서 고노 다로(河野太郎·58) 전 외상을 257대 170으로 눌렀다. 1차 투표 1위와 결선 투표 압승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아베의 집념이 바탕이 됐다는 게 정설이다. ━ 기시다 총리, 취임 후 중의원 선거도 자민당 압승 이끌어 10월 4일 총리에 취임한 기시다는 총리 선출 뒤 한 달도 되지 않은 10월 31일 열린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압승을 이끌었다. 전체 465석 가운데 과반인 261석(이전 276석)을 단독으로 확보해 1당 독주 체제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자민당이 중의원의 모든 상임위원회에서 위원장 자리를 독식하는 것은 물론 위원의 과반을 장악할 수 있는 ‘절대 안정 다수’ 의석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 자민당의 연립 여당 파트너인 공명당의 32석을 합치면 293석으로 중의원 전체 의석의 63%를 차지한다. 여기에 기존 11석에서 이번 선거에서 40석으로 의석을 늘린 극우 성향의 일본 유신회가 가세하면 개헌 가능성인 3분의 2를 가뿐하게 넘긴다. 이번 총선은 기시다 총리의 정치적인 성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기시다는 임기 종료를 며칠 남긴 중의원을 관례대로 해산하면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번 중의원 해산과 선거의 의미를 ‘미래 선택 해산’ ‘미래 선택 선거’로 이름 붙였다. 해산과 선거에 의미를 붙이는 것은 일본 정치의 전통이다. 그러면서 기시다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과 ‘(경제의) V자 회복’을 위한 해산과 선거라는 설명을 붙였다. 기시다는 중의원 선거의 핵심 공약으로 대책과 격차 해소를 중심으로 한 경제 공약, 그리고 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라는 외교·안보 강화를 내걸었다. 코로나19는 어느 정권이든 앞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외교·안보 강화 공약은 전전임 아베와 전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72) 전 총리의 정책이지만, 경제에선 분배를 강조하며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했다. 성장에 중점을 두면서 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강조했던 아베노믹스와 선을 긋고 차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맞선 제1 야당 입헌민주당은 ‘(자민당) 일강 정치의 종식’을 선거의 목표로 내세웠다. 2012년 12월 아베의 총리 이후 아베가 사실상 총리로 만들다시피 한 스가와기시다에 이르기까지 10년 가까이 계속된 자민당 연속 집권의 폐해를 부각한 것이다. 입헌민주당과 공산당·국민민주당·레이와신센구미·사민당 등 일본의 5개 야당은 선거연합을 이뤄 지역구 289개 가운데 200개 이상에서 후보를 단일화하며 자민당과 공명당으로 이뤄진 집권 연정에 대항하려고 했다. 이들은 선거연합은 이뤘지만 국민민주당이 다른 야당과 달리 평화 헌법 개정과 자위대 합법화 등에서 이견을 보여 정책 연합은 하지 못했다. 국민민주당은 원래 입헌민주당과 한 뿌리였지만, 과거 이 문제로 입헌민주당과 결별한 정당이다. 이렇게 분열을 누출한 야당은 소비세 인하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 이번에 당선한 중의원의 평균 연령이 일본 정당 중 유일하게 60세를 넘는 노쇠하고 반대파가 적지 않은 공산당과 손을 잡으면서 중도 유권자의 이탈을 불렀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국 일본 야권은 입헌민주당 96석, 공산당 10석, 국민민주당 11석, 레이와신센구미 3석, 사민당 1석 등 121석을 얻는 게 그쳤다. 자민당이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단독으로 과반수인 262석을 얻고 집권 연정 파트너인 공민당의 32석을 합하면 294석의 거대 세력을 확보한 것과 대조된다. ━ 아마리 간사장 지역구 낙마…외무상 자리에 하야시 임명 총선 승리로 기염을 토한 기시다 총리는 파벌의 전열을 정비하면서 일본 정계의 킹메이커로 자리 잡아온 아베 총리에 사실상 도전장을 던졌다. 그동안 자민당 간사장으로 당내 2인자였던 아마리 아키라(甘利明·72)가 지역구에서 야당 신인에게 밀려 패배하고 비례대표로 구제되면서 간사장 자리를 내놓은 게 기시다에겐 절호의 기회가 됐다. 집권당 간사장이 지역구에서 낙선한 첫 사례다. 아마리는 아베 전 총리와 아소 다로(麻生太郞·81) 전 총리와 함께 ‘3A’로 불리며 자민당의 실세로 군림해왔다. 지역구 낙선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은 아미리가 물러나면서 기시다는 아베를 필두로 한 3A의 정치적 압박에서 조기에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66) 외무상이 후임 간사장을 맡으면서 외무상 자리가 비었다. 기시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기시다는 후임으로 자신의 파벌 소속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60) 전 문부과학상을 임명했다. 하야시 신임 외무상은 기시다가 총리를 맡으면서 물러난 자민당 파벌인 고치카이(宏池會)의 좌장이다. 일본 자민당의 파벌은 좌장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게 관례인 만큼 기시다파는 하야시파가 됐다. 이번 총선 전까지 기시다파는 소속 국회의원(중의원+참의원) 숫자에서 자민당 내 5위 파벌이었지만, 이번 총선으로 3위로 올라섰다. 총선 전에는 아베 전 총리가 속한 호소다파(細田派·중의원 61명+참의원 35명=96명), 아소파(麻生派·42+13=55), 다케시타파(竹下派·32+20=52), 니카이파(二階派·37+10=47), 기시다파(岸田派·34+12=46), 이시바파(石派派·15+1=16), 이시하라파(石原派·중의원만 10) 등의 분포였다. 이번 총선으로 기시다파는 50명(중의원 38+참의원 12)을 확보해 호소다파(55+34=89)와 아소파(38+13=51)에 이어 자민당에서 3위의 파벌이 됐다. 기시다는 자신의 파벌을 물려받은 야심만만한 정치인 하야시를 외무상에 임명해 내각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더욱 굳혔다. 기시다가 아마리 간사장의 낙마와 모테기의 승계로 외무상 자리가 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자신의 후계 파벌 수장인 하야시를 임명한 것은 정치적으로 도전이다. 거기에는 내각에서의 기시다파 세력 확대, 하야시라는 인물의 전면 부상, 그리고 아베가 추구해온 외교 정책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야시의 외무상 기용으로 기시다 내각의 구성은 기시다파 4명(총리 자신 제외), 호소다파 4명, 다케시다파 3명, 아소파 2명, 이나이파 2명, 무파벌 2명, 연립 파트너인 공명당 1명의 비율이 됐다. 기시다파의 각료가 최대 파벌이자 킹 메이커인 아베가 소속한 호소다파와 같아진 것이다, 기시다파는 외무상과 총무상, 농림수산상, 그리고 올림픽·백신담당상 등 실질적인 힘을 가진 자리를 차지했다. ━ 하야시 외무상, 중의원 당선…총리로 가는 첫 관문 통과 게다가 하야시는 평화와 동북아시아 선린을 추구하는 기시다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한·일 관계나 일·중 관계 개선을 주장해온 인물이다. 아베와 아소가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하는 평화헌법 개정이나 재해석을 통한 전쟁할 수 있는 일본, 자위대의 정식 군대화 등에는 별 관심이 적은 인물이다. 아베의 길과 기시다의 길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다. 하야시는 정치적인 야심이 큰 인물이다. 5선 경력의 참의원인 그는 총리가 되겠다는 정치적 야심을 숨기지 않아왔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진로를 확실히 잡았다. 지난 8월 내년 7월까지 임기가 남은 참의원을 사퇴하고, 10월 31일의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당당히 지역구(일본 용어 소선거구)에 출마해 당선하면서 중의원으로 말을 갈아탔다. 하야시는 2008년 후쿠다(福田) 내각에서 방위상을, 2009년 아소(麻生) 내각에선 경제재생정책상을, 2012년 제2차 아베 내각에선 농림수산상과 문부과학상을 각각 지내면서 각료로서 풍부한 국정 경력을 쌓았다. 일본에서 총리가 되려면 현실적으로 중의원이 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 첫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하야시는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그 뒤 미쓰이(三井)물산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다 1995년 참의원으로 첫 당선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중의원으로 11선을 한 하야시 요시로(林義郞·1927~2017)가 부친인 세습 정치인이다. 하야시 요시로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 내각에서 후생상으로 입각했다. 그런 하야시를 기시다가 외무상으로 중용하면서 아베 총리와는 관계가 냉랭해졌다. 우선 기시다는 하야시를 야마구치(山口) 3구에 공천했다. 원래 그 지역구를 맡았던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78) 전 관방장관은 은퇴했다. 주목할 점은 야마구치가 아베의 정치적 고향이라는 사실이다. 아베는 야마구치 4구, 아베의 친동생인 기시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은 야마구치 2구다. 그런데 야마구치는 인구가 줄면서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4개의 지역구를 3개로 줄이기로 확정됐다. 아베의 지역구인 4구와 하야시의 지역구인 3구가 통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두 사람은 차기 선거에서 지역구 공천을 놓고 불편한 관계에 처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야마구치에서 아베의 부친과 하야시의 부친은 서로 경쟁하던 관계였다. 아베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1924~1991)과 하야시 외무상의 부친인 하야시 요시로(林義郞·1927~ 2017)는 과거 중선거구제 시절 야마구치 1구에 나란히 출마해 득표율 1위를 놓고 경쟁한 적이 있다. 그 뒤 일본 선거 제도가 소선거구제가 되면서 하야시의 요시로가 아베 신타로에게 지역구를 넘기고 비례 대표 의원이 됐다. 11월 10일 외무상에 취임한 이날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며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야시는 “북한에 대한 대응을 비롯해 일·한, 일·미·한의 협력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서 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기반해 한국의 대응을 요구하겠다”며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징용문제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도 “국가간 약속을 지키는 것은 국가간 관계의 기본”이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면서도 “일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한국에 요구하겠다”고 말해 적극적으로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기시다는 외무상 시절 한·일 위안부 합의를 성사시켰다. 그런 기시다의 의지가 실린 하야시 외무상이 앞으로 한‧일 관계에서 어떤 돌파구를 마련할지 주목된다. 한·일 관계와 중일 관계를 개선할 경우 기시다 내각은 아베의 입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추구할 수 있다. 분배를 강조한 경제정책과 함께 이웃나라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외교까지 이룬다면 기시다는 아베의 입김에서 확실히 벗어나 자기 색깔의 정치를 본격화할 수 있다. 이는 강경 일변도의 아베 측 입김에서 벗어나 평화와 이웃나라들과의 선린을 중시한 기시다파의 전통을 잇는 길이기도 하다.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외무상이 이를 이룰 수 있으면 기시다의 장기 집권과 하야시가 총리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 한편, 2020년 9월 총리에서 물러나 막후 실력자로서 스가나 기시다 등을 총리로 올리는 데 일조한 아베 전 총리는 11일 자민당 최대 파벌인 호소다(細田)파의 회장에 취임했다. 이로써 호소다파는 아베파로 불리게 됐다. 호소다파의 좌장이던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파벌 회장이 10일 중의원 의장에 취임하면서 파벌을 떠나게 되자 아베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건강 문제를 이유로 총리에서 물러난 뒤 1년 2개월 동안 막후 정치만 하던 아베는 이로써 자민당의 공식 실력자의 한 명으로 등장하게 됐다. 아베가 향후 정국 운영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신호탄이다. 이로써 앞으로 일본에선 기시다 총리와 아베 전 총리 간의 치열한 정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 정계와 자민당의 리더십과 영향력을 둘러싼 기사다-아베 대전이 한일 관계와 일본 정국에 상당한 회오리바람을 몰고 올 전망이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1.11.13 18:00

8분 소요
민주당 텃밭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패배…위기의 바이든 [채인택 글로벌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조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늦가을을 상큼하게 출발했지만, 그에게 이 계절은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1월 10일 취임한 뒤 처음으로 대규모 다자간 정상회의에 참석해 전 세계 정상들을 줄줄이 만나고 글로벌 사회의 최대 문제인 기후변화 등을 협의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10월 30~31일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영국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개막한 제26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함께했다. 글로벌 지도자로서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과 장악력을 전 세계에 보여줄 기회였다.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독실한 가톨릭 신앙인인 그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는 기쁨도 누렸다. 그런 뒤 워싱턴 근방의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거쳐 11월 3일 오전 전용 헬기인 마리1을 타고 백악관에 도착한 바이든 대통령의 표정은 어두웠다. 오랜 비행과 해외 출장에 따른 피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령에 따른 기력부족도 아니었다. 3일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악몽의 날이었다고 CNN은 지적했다. ━ 美 민주당, 텃밭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서 공화당에 패배 민주당 텃밭인 버지니아주의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에 패배하면서 국정운영에 적신호가 왔기 때문이다. 전날인 11월 2일 치른 선거에서 50.7%를 득표한 공화당의 글렌 영킨 후보가 48.6%를 얻은 민주당의 테리 매콜리프 후보를 누르고 당선했다. 이번 선거는 바이든이 취임한 뒤 처음 치르는 선거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는데 텃밭에서 패배한 것이다. 버지니아주는 민주당의 오랜 정치적 텃밭이었다. 1873년 주자지 선거 이후 1969년 선거까지 100년 가까이 민주당 주지사만 뽑았다. 1969년 당선한 린우드 홀튼이 버지니아주의 20세기 첫 공화당 주지사의 기록을 세웠을 정도다. 공화당은 1970~82년과 1994~2002년, 그리고 2010~2014년에만 버지니아주 주지사를 차지했을 뿐이다. 21세기 들어 지난번까지 치러진 다섯 차례의 주지사 선거에서도 단 한 차례만 공화당에 자리를 넘겨줬을 뿐이다. 대통령 선거도 2018년과 2012년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를 지지했으며,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했던 2016년에도 힐러리 클린턴을 밀었다. 지난해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조 바이든에게 아낌없이 표를 몰아줬다. 바이든은 버지니아에서 54.1%를 득표해 44.0%를 얻은 트럼프에 8%P 이상의 차이로 느긋한 승리를 거뒀다.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이 그런 버지니아주의 주지사 선거에서 패배한 것이다. 민주당의 대선 득표율과 주지사 득표율을 비교하면 5.5%가 떨어진 셈이다. 같은 날 치른 뉴저지주 선거도 민주당엔 마찬가지로 충격적이다. 뉴저지주는 원래 민주-공화가 번갈아가며 주지사를 맡아온 지역으로 21세기에 들어와서도 2001년과 2005년 선거에선 민주당이, 2009년과 2013년 선거에선 공화당이 각각 주지사를 차지했다. 그러다 2017년 민주당의 필 머피가 주지사직을 찾아왔으며 이번에 재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박빙이었다. 현역 주지사인 민주당 필 머피 후보가 공화당의 잭 시아타렐리 후보를 박빙의 승부 끝에 간신히 승리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민주당의 머피 지사는 50.1%를 득표해 49.1%를 확보한 시아타렐리 후보에게 신승을 거뒀다. 뉴저지는 대선에선 확실하게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왔다. 1992년 이후 지난 대선까지 한 차례도 빠짐없이 민주당 후보를 밀어줬다. 지난해 대선에선 뉴저지에서 바이든이 57.3%, 트럼프가 41.4%의 지지를 각각 얻었다. 바이든은 뉴저지에서 15%P가 넘는 큰 표차로 낙승을 거둔 셈이다. 게다가 이번 주지사 선거 여론조사에서도 머피 후보는 10% 안팎의 우세로 손쉬운 승리가 예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민주당은 피를 말리는 박빙의 승부로 가까스로 승리했다. 이에 따라 개표와 승리 선언과 연설도 늦어졌다. 더욱 문제는 이번 버지니아주 주지사 선거 패배와 뉴저지주 박빙 승부가 바이든의 인기 하락과 궤를 함께했다는 점이다. 바이든 지지율은 취임 이래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취임 당시 지지율 55%, 반대 32%였지만 8월 19일엔 지지 46%, 반대 49%로 뒤집어지더니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를 코앞에 둔 10월 28일에는 지지 44%, 반대 51%로 취임 뒤 가장 낮은 지지율과 가장 높은 반대율을 보인 것이다. 바이든은 올해 들어 아프가니스탄 철수 혼란, 대규모 경기부양 예산안 통과에서 보여준 정치력의 부족, 연방정부 셧다운 위기, 멕시코 국경에서 아이티 이민자를 말과 채찍으로 내쫓고 강제 추방한 사건 등으로 반대파는 물론 지지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이를 통해 상원 외교 위원장이라는 관록으로 오바마가 부통령으로 모셨던 ‘외교 전문가’라는 명성이 바랬다. 정치력, 협상력, 리더십, 무엇보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돌아왔음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 국제무대서 뚜렷한 존재감 없어 바이든은 국제적으로도 소리만 요란할 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했을 때 미국이 카불 공항에서 보여준 혼란, 동맹과의 소통 부재와 일방적인 철군 시한 결정,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IS-K(이슬람국가 호라산)의 카불 공항 테러에 대한 대비 실패 등으로 바이든은 큰 타격을 받았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점령과 유지에 필요한 파병과 경제적 지원을 했던 유럽 국가 등 동맹국들은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에 실망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국민은 이런 바이든에게 국가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고 실망을 표시했다. 민주당 행정부에 우호적이었던 미국 언론은 물론 중간층 유권자와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바이든에 대해선 실망을 표시하는 경우가 늘었다. 그 뒤 남은 미국의 국력을 중국 견제에 쓴다고 했지만, 정작 중국이 대만을 위협하고 나서자 말싸움 외에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유가가 폭등하고 물가가 오르고 있는데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백신 접종률도 목표인 70%에 이르지 못한 가운데 국민에게 접종을 제대로 설득하지도 못하고 있다. 팬데믹이 끝나가고 ‘위드 코로나’ 정책을 펴면서 경제가 기지개를 켜려고 하는 상황에서 항구가 제대로 가동하지 않아 대규모 물류 대란을 막지 못했다. 급기야 일부 지역에선 화장지까지 부족한 상황을 맞고 있다. 미국은 바이든의 민주당 정권 아래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동시에 잃어가고 있다는 불만이 고조됐다. 그런 상황에서 유럽에서 열린 G20과 COP26에서도 바이든은 환경 아젠다를 주도하거나 에너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탄소를 줄일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원전이 꼽히지만,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로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해 기술과 시공 능력, 그리고 관련 산업에 대한 업데이트가 오랫동안 이뤄지지 못한 상황이다. 미국은 원전을 개발하고 전 세계에 확대한 원조 국가지만 오랜 산업 마비 상태에 계속 길을 잃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기본적으로 에너지 수출을 거의 하지 않아서 글로벌 변화를 견인할 당근이 부족한 상황이다. 원자로인 APR-1400을 개발하고 미국 원자력위원회의 안전 인증까지 마친 한국과 손잡고 전 세계를 상대로 원전 건설을 이끄는 정도의 국가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통해 미국과 서방이 탄소 배출 감소와 궁극적인 탈탄소 시대 개막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그럴 경우 탈탄소 시기를 미국과 서방이 제시한 2050년이 아닌 2060년으로 잡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2070년으로 잡은 인도와 협력해 시기를 앞당기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G20과 COP26에서 바이든은 원론적인 입장 제시에 그쳤다. G20의 올해 의장국인 이탈리아나 COP26의 주최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처럼 인류를 위한 경고를 하지도 못했다. 바이든은 회의장에서 조는 모습을 보여 ‘슬리피 조’라는 대선 당시 트럼프가 했던 비아냥거림을 다시 들어야 했다. 지난해 당선 뒤 1년간, 취임 뒤 10개월간 바이든은 그야말로 고난의 세월을 보내며 유약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 왔다. 물론 바이든은 이번 주지사 선거는 자신과는 관련이 적은 개별 주의 선거일뿐이라고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이번 주지사 선거는 그런 바이든에 대한 정치적인 평가로 볼 수밖에 없다. 바이든이 선을 그은 것 자체가 이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사전이 우려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민주당 버지니아주 주지사 후보로 출마한 테리 매콜리프 후보가 선거전 초반에는 지지율이 두 자릿수로 앞서다 바이든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동반하락 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의 버지니아주 주지사 패배의 주요 요인이 바이든의 실정과 인기 하락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뉴저지에서도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이 얻은 75.3%와 이번 주지사 선거에서 얻은 50.1%를 비교하면 15.4%나 득표율이 떨어진 셈이다. 뉴저지에서 민주당 소속 주지사가 연임한 것은 1977년 이후 44년 만에 처음이지만, 이를 축하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다. 물론 득표율에는 정당 선호와 함께 후보 개인의 인기 등이 다양한 요소가 작동하지만,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건 분명해 보인다. 민주당으로선 당장 상원의원의 3분의 1과 임기 년의 하원의원 전원을 새로 뽑는 내년 중간 선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의회에서 민주당의 우위가 간당간당하기 때문이다. 100명 정원에 부통령이 당연직으로 의장을 맡는 연방상원에선 민주당 소속 의원 48명과 친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의원 두 명을 합쳐야 겨우 절반을 차지한다. 거기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야 50석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에 맞설 수 있다. 435명 정원의 연방 하원에서 민주당은 221명을 차지해 213명의 공화당과 불과 8석 차이다. 과반수인 218석보다 불과 3석이 많다. 의회에서 이런 상황도 내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에 밀리면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 만일 내년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하원을 공화당이 장악하면 바이든 행정부는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의회의 견제와 비협조 속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바이든은 재선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재선에 실패하고 물러난 트럼프처럼 바이든도 정치적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나이도 부담이지만 더욱 현실적인 문제는 지지도의 하락이다. 그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계속 파상 공세다. 지난 1월 의회 난입 선동과 대선 불복 시도 등으로 트럼프는 공화당에서도 사실상 기피 인물로 통한다. 하지만 바이든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고 실망이 커지면서 공화당 일부가 트럼프를 소환하고 있다. 각종 정치 행사에 트럼프가 나타나면 인파가 몰린다. 물론 트럼프 지지세력이 요란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과대 평가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공화당에서 바이든에 맞서는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내에서 버지니아주 주지사 선거 패배와 뉴저지주 주지사 선거 신승으로 바이든의 정치력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개혁 요구하는 민주당 좌파와 부활하는 트럼프를 앞세운 공화당 우파 사이에서 국정 샌드위치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내년 중간선거는 물론 차기 대선 재선 가도도 흔들리는 상황이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국내외에서 지치고 유약한 모습을 더는 보이지 않게 이미지 관리부터 해야 한다. 78세의 고령이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때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1.11.06 19:00

7분 소요
삼성바이오로직스, 모더나 백신 첫 출하...이재용 리더십 빛났다

IT 일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위탁생산한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초도물량이 28일 국내에 처음 출하된다. 이번 백신 확보를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나선 것으로 전해지면서 그의 ‘물밑경영’ 리더십도 주목 받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날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 앞에서 '모더나 백신 출하식'을 열고 모더나 백신의 국내 공급을 시작했다. 이 백신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위탁생산한 첫 물량으로 국내 공급분인 243만5000회분 중 일부로 알려졌다. 4분기 신규 접종과 2차 접종, 고위험군 대상 추가접종(부스터 샷) 등에 폭넓게 쓰일 계획이다. 출하된 백신은 모더나 백신의 국내 유통을 맡은 GC녹십자의 충북 오창 물류센터로 옮겨진 뒤, 전국 각지로 배송될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세계 백신 수급난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프로세스 혁신과 계열사의 지원을 바탕으로 생산 소요 기간을 단축하는데 최선을 다했다”며 “mRNA 백신의 완제뿐만 아니라 원료의약품 생산라인도 내년 상반기까지 구축 할 예정이며, 다양한 방식의 백신 및 차세대 치료제 공급에도 투자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5월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모더나의 메신저 리보핵산 (mRNA) 기반 코로나 백신의 완제의약품 공정을 맡는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국내 코로나19 백신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모더나 백신 생산물량이 국내에도 공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풀어야 할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이 출소한 8월 중순은 코로나 4차 유행이 본격화되면서 단기적 공급부족 사태가 빚어져 백신 수급의 불확실성이 커지던 상황이었다. 당시 청와대도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의 역할을 기대하며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도 많다”고 가석방 사유로 백신 문제를 언급하는 등 이 부회장의 ‘백신 역할론’이 부각됐다. 그러면서 정재계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백신 특사’로서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 이 부회장은 가석방 이후 가장 먼저 모더나 백신 생산 계획을 직접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자신의 네트워크를 통해 스테판 방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 등을 소개받았다. 8월에는 모더나 측 최고경영진과 화상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생산 및 인허가 일정을 앞당기기 위한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8월부터 모더나의 코로나 백신 시제품 생산에 들어갔다. 시생산 이후 본 생산까지 진행하면서 초기 출하에 충분한 물량을 확보했다. 초도물량을 국내에 공급하기 위해 꾸준한 물밑 작업이 진행되면서 결국 백신 출하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백신 생산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기존 백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산되는 mRNA 백신 생산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백신 생산을 위한 설비, 품질 평가 및 관리 등 기본적인 틀은 갖췄지만 백신 인허가 및 안정적인 생산 체계 구축 등 여러 난관을 넘어야 했다. 이를 위해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최고경영진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직접 구성해 그룹 역량을 집중시켰다. 삼성 전 계열사의 관련 기술 및 경험을 집중해 빠르게 안정적인 대량 생산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 부회장과 TF 구성원들은 주말이나 추석 연휴에도 수시로 콘퍼런스콜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TF는 삼성 특유의 '스피드 경영'의 힘을 바이오 분에서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삼성전자 스마트공장팀은 생산 초기 낮았던 수율(전체 생산품 중 합격 비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았고, 삼성전자 반도체 및 관계사는 까다로운 이물질 검사 과정에 대한 노하우를 전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을 가진 삼성전자와의 협업을 통해 생산 속도가 빨라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경영진은 정부와 협업해 인허가와 관련된 절차를 단축했다. 이에 따라 당초 연말로 예상됐던 모더나 백신의 국내 공급 일정이 두 달가량 앞당겨질 수 있었다. 이 부회장의 코로나19 백신 확보 노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이 부회장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의 조기 확보에도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12월 오랜 기간 교류해온 화이자의 사외이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우리 정부 관계자와 화이자 고위임원을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화상회의가 열렸고 이를 계기로 백신 확보 논의가 급진전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코로나19 이후의 미래준비를 통해 바이오 사업을 '제2의 반도체 신화' 창출로 이어가겠다는 비전을 밝히면서 바이오 경영진과 임직원에게 책임감과 자신감을 불어넣었다”고 전했다. 이승훈 기자 lee.seunghoon@joongang.co.kr

2021.10.28 16:28

3분 소요
삼성·SK·현대차…코로나19 백신 리더십, 메르스 때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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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총수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리더십이 부각되고 있다. 과거 사스(2002년), 메르스(2015년)와는 비교가 안 되는 비상 경제시국에 총수들이 적극 나서고 있다. 우선 ‘코로나19 백신 특사’로 관심이 집중 되는 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지난 8월 13일 가석방 이후 줄곧 역할론이 부각된 가운데, 해외 출장을 통해 현장 경영을 공식 재개할 것이라는 소식에 기대감이 고조됐다. 미국 뉴욕 모더나 본사 등을 방문해 코로나19 백신 공급 확대 방안을 논의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모더나 최고경영진과 이 부회장이 화상회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의 미국행에 대한 관측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의 코로나 백신을 위탁생산(CMO)을 맡기로 한 것과 연관이 깊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3분기부터 미국 이외의 시장으로 백신 수억 회 분량의 바이알(유리병) 무균충전·라벨링·포장 등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 백신 중 일부 물량을 국내로 돌리거나 공급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 등이 논의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기대감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시민단체 등이 이 부회장의 ‘취업제한 중 경영활동’에 반대하는 상황을 두고 부담을 느낀 터라 미국행이 사실상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백신 관련 공식 일정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부회장이 앞서 2018년 출소 이후에도 거의 매달 해외 출장길에 오른 만큼 이번에도 출국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으나 아직 삼성 측은 구체적인 공식입장을 내고 있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진들 일정은 사실상 기업의 보안 사항”이라며 “각 회사 간의 거래 계약 관계도 있어서 한쪽에서 미리 말할 수 없는 부분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 최태원 회장, 정부 백신 외교에 적극 참여 눈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백신 외교 행보도 눈길을 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지원하기 위해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방미 길에 올랐다. 최 회장은 이번 한미 간 배터리, 반도체 협력뿐만 아니라 백신 외교에도 적극 나섰다. 최 회장의 백신 외교는 SK바이오사이언스와 관련 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보건복지부-SK바이오사이언스-노바백스 간에 코로나19 백신을 비롯한 백신의 개발 및 생산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최 회장은 “양사는 현재 협력 관계를 넘어 코로나 변이주 백신 확보, 독감과 코로나 콤보 백신 등을 개발해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협력을 추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SK바이오사이언스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의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소와 공장을 방문했을 때 동석해 백신 개발 진행 상항을 함께 점검했다. 또 지난 4월 화상회의를 통해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 개발 담당자들을 직접 격려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아스트라제네카와 CMO 및 노바백스와 위탁개발생산(CDMO)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에는 백신 CMO를 넘어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한층 다가서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GBP510이 국내 업체 최초로 임상 3상에 진입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 현대차그룹 백신 개발 기부 ‘쾌척’ 감염병 백신 개발에 새롭게 관심을 내비친 총수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다. 최근 정몽구 명예회장은 글로벌 감염병 백신 개발을 위해 고려대에 사재 100억원을 기부했다. 기부금은 '정몽구 백신혁신센터'를 운영할 고려대의료원에 전달돼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감염병 예방과 치료를 위한 국산 백신 개발과 연구 인프라 확충 등에 사용된다. 이는 정 명예회장이 평소 강조해 온 사회공헌 철학의 일환이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성원해준 국민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국산 백신 개발에 기여할 백신혁신센터에 기부하게 됐다"며 "감염병을 극복해 건강과 행복을 되찾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탁 취지를 밝혔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재계 총수가 백신에 대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그동안 투자했던 바이오사업이 오랜 시간 끝에 결실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직전 전염병 사태인 메르스 때에도 재계는 내수 침체 극복 등을 위해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직접적인 치료제나 백신을 해법으로 내세우지는 않았다. 오랜 기간 투자와 연구개발(R&D)이 있었기에 현재가 가능한 것이다. 현대그룹도 최근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 관심을 보이지만 삼성이나 SK 같은 경우 오래전부터 관심을 보여 온 제약·바이오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삼성의 바이오 사업은 2010년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5대 신수종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이 부회장이 이어 온 것이다. 이 부회장 역시 바이오를 4대 미래 성장 사업으로 낙점하고 2018년 8월 2020년까지 추가로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의 바이오 사업은 10년 전 뿌린 씨앗이 결실을 보고 있다. 그 결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생산설비 기준 세계 1위의 바이오 CMO 기업으로 우뚝 섰다. 현재 mRNA 원료의약품(DS) 생산을 위해 준비 중이며, 세포·유전자치료제 CDMO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5~6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SK그룹의 바이오 사업도 경영진의 오랜 뚝심 덕분에 가능했다. “30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하라”는 최종현 SK 선대회장은 1993년 신약연구개발 프로젝트팀을 꾸렸다. 선대 회장의 뜻을 이어 최 회장이 1998년부터 제약·바이오 사업을 키워왔다. SK의 백신 사업은 지난 2001년 SK케미칼이 동신제약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최 회장은 2002년 "2030년 이후에는 바이오 사업을 그룹의 중심축 중 하나로 세운다"며 투자를 이어왔다. 이후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2018년 7월 SK케미칼 백신 사업부문의 분할로 탄생했다. 팬데믹 이전까지 SK바이오사이언스는 국내 백신업계 2인자였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CMO 등에 힘입어 2분기 매출액 1446억원, 영업이익 662억원으로 출범 후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재계 총수들의 코로나19 백신 리더십이나 역할론에 대해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재계 관계자는 “백신은 국가 대 국가도 걸려 있고 여러 가지 변수들이 많기 때문에 잘 될 수도 있지만 잘못될 수도 있다”며 “너무 총수 한 사람의 리더십이나 역할론이 부각되다 보면 나중에 잘못되거나 했을 때 그 책임이 쏠리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seunghoon@joongang.co.kr

2021.09.0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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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240조 투자·4만명 고용' 역대급 발표...이재용 출소 11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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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향후 3년간 240조원 투자와 4만명 고용 계획을 24일 발표했다. 이는 삼성이 발표한 투자 계획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 2018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복귀 이후 발표했던 ‘3년간 180조 원 투자’ 계획보다 60조원 증가했다. 삼성은 2023년까지 반도체, 바이오, 차세대 통신, 신성장 IT 등 전략 사업에 투자를 확대해 전략사업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과감한 인수합병(M&A)를 통해 기술·시장 리더십 강화에도 나설 방침이다. 삼성은 3년간 투자 계획 발표 이유에 대해 “향후 3년간은 새로운 미래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다가올 3년의 변화에 대한 한국 경제와 우리 사회가 당면할 과제들에 대한 삼성의 역할을 제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재계에서 거론되고 있는 ‘이재용 역할론’에 대한 화답이기도 하다. 삼성 측은 “투자와 고용, 상생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와 사회 전반에 활력을 높여 삼성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와 바람에 부응하겠다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 이재용, 출소 11일만에 240조 투자 보따리 풀어 이번 대규모 투자 계획은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13일 가석방 된 이후 11일 만에 내린 결단이다. 삼성의 총수부재 리스크가 해결되면서 위기 때마다 압도적인 투자로 경쟁 업체를 따돌려온 삼성의 ‘초격차’ 전략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더라도 삼성이 미뤄왔던 중요 의사결정과 대규모 투자계획이 가시화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현실이 된 셈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출소 직후 바로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이동해 고위 임직원들에게 산업별 현안을 보고 받았다. 이번 삼성 발표안은 계열사 이사회 보고를 거쳐 발표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임직원 및 이사회와 간담회를 가지면서 주요 투자 결정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꾸준히 ‘3년 내 M&A'를 예고한 만큼 사령탑의 복귀 이후 글로벌 M&A에도 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삼성 측은 M&A를 검토 중인 사업 영역이 인공지능(AI), 5G, 전장사업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분야라고 밝혔다. 실탄도 충분하다. 삼성전자의 현금성자산은 2분기 말 기준 111조1022억원에 달한다. 이 부회장은 2018년 사면 이후에도 ‘뉴 삼성’이라는 새로운 경영 가치를 제시하며 광폭행보를 보인 바 있다. 당시 3년간 180조원 투자 계획(국내 투자 130조원)을 내놨던 삼성은 지난해까지 국내 투자만 137조원을 달성하며 투자를 완료했다. ━ 반도체는 '절대우위' 공고화…바이오는 백신 생산 나선다 삼성은 240조원 투자에 대한 산업별 계획도 내놨다. 반도체는 ‘메모리 절대우위’를 유지하고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에서 기술은 물론 원가 경쟁력 격차를 다시 확대하고 차세대 제품 솔루션 개발에 투자해 ‘메모리 절대 강자’ 지위를 공고히 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14나노 이하 D램, 200단 이상 낸드플래시 개발 및 양산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2030년까지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선 3나노 공정에 적용하는 GAA(게이트 올 라운드) 기술 개발에 자금을 투입하고 AI, 데이터센터 등 신규 응용처를 확대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는 단기 시장 변화보다는 중장기 수요 대응에 초점을 맞춰 R&D·인프라 투자를 지속하고, 시스템 반도체는 기존의 투자 계획을 적극적으로 조기 집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이 반도체에 투자를 확대하기로 한 것은 글로벌 반도체 패권전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대들보’이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 산업이다. 한번 경쟁력을 잃으면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삼성의 공격적 투자는 사실상 ‘생존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으로 미국 인텔과 대만 TSMC 등 경쟁사들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를 대폭 확대하기로 하면서 시스템 반도체 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 역시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17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차세대 먹거리인 바이오 산업은 CDMO(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투자를 확대해 ‘제2의 반도체 신화’를 만들 계획이다. 삼성은 바이오 사업 시작 9년 만에 CDMO 공장 3개를 완공했다. 현재 건설 중인 4공장이 완공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생산 능력은 62만 리터로 CDMO 분야의 압도적인 세계 1위에 올라선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향후에도 공격적인 투자 기조를 지속해 CDMO 5공장과 6공장 건설에 나선다. 특히 바이오 의약품 외에 백신 및 세포, 유전자치료제 등 차세대 치료제 CDMO에도 신규 진출할 계획이다. 국내 바이오 생산시설을 통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바이오 주권’ 시대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투자 뿐 아니라 고용 창출에도 팔을 걷고 나섰다. 삼성은 인재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향후 3년 간 4만명을 직접 채용할 계획이다. 통상 3년간 3만명 규모의 채용을 했지만, 첨단 산업 분야 고용을 보다 늘리기로 했다. 국내 대규모 투자, 생산에 따른 고용유발효과를 고려하면 56만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는 게 삼성 측의 설명이다. 특히 삼성은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공채 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현대차, SK, LG 등 다른 대기업들은 공채를 폐지하고 수시 채용으로 방향을 틀었다. 삼성은 채용준비생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고려해 공채 제도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김영은 기자 kim.yeongeun@joongang.co.kr

2021.08.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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