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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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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삼양의 '60년 라면전쟁'...K-푸드, '세계의 별'로 만들다 [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유통

6·25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남대문시장 거리. 한 그릇에 5원 하는 미군부대의 음식잔반을 끓여 죽으로 만든 '꿀꿀이죽'을 사 먹기 위해 길게 줄 선 사람들을 바라보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없이 서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대책으로 당시 일본에서 붐을 일으키던 인스턴트라면을 떠올렸다. 1963년, 그렇게 한국 최초의 라면이 세상에 나왔다. 한국인을 기아로부터 해방시켰던 구황식품, 라면이 이제 글로벌 식품 시장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한국 라면업계의 두 거인 농심과 삼양이 있다.이 두 라면 제국의 60년 대결은 단순한 기업 경쟁이 아닌, 한국 식품 산업의 진화와 혁신의 역사다. 각각 40%와 77%의 매출을 해외에서 올리는 이 두 브랜드는 이제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우뚝 섰다. 전쟁 이후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긴급식량에서 시작해, 이제는 한국 식문화의 첨병이 된 두 라면 브랜드의 치열한 경쟁 속에 K푸드의 미래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라면 名가 삼양과 농심의 탄생 한국 최초의 라면을 출시한 것은 삼양식품의 창업자 전중윤 회장이었다. 일본 묘조식품(明星食品)의 회장을 집요하게 설득해 한국시장에 도입된 '삼양라면'은 국물과 면을 좋아하는 한국인이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혁신적인 식품이었다. 무료로 기술을 받고, 로열티도 없었던 파격적 계약 덕에 누구나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인 10원에 출시되었다. 출시 당시 커피 한잔이 35원, 담배한갑이 25원, 자장면이 25원이었던 시절이었다. 삼양라면은 한국인의 허기를 달래주는 '국민 식품'이 되었다.1971년, 롯데공업(후의 농심)이 라면 시장에 뛰어들었다. 롯데의 신격호 회장은 일본에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라면 시장을 노렸다. 롯데공업은 초기에 '롯데라면'을 출시했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삼양라면은 시장점유율 70%를 넘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고, 열세를 면치 못하던 롯데공업은 라면 사업을 삼양에 매각하는 것까지 고려할 정도였다.전세를 뒤집은 건 1982년, 신격호 회장의 동생 신춘호 회장이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고 '안성탕면'과 '너구리'를 선보이면서부터다. 삼양이 닭육수를 고집할 때 농심은 쇠고기 육수로 차별화했다. 1986년 출시된 '신라면'은 게임체인저였다. 적절한 매운맛은 한국인의 혀를 사로잡았고, 시장 점유율은 점점 농심 쪽으로 기울어 갔다. 승승장구하던 농심과 달리, 삼양에겐 재앙이 닥쳤다. 1989년, 인체에 유해한 공업용 소기름(牛脂)을 식용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경쟁사의 고발로 추정되는 이 사건은 삼양을 지옥으로 몰아넣는다. 10년 가까운 법정 싸움 끝에 우지가 건강에 무해하다는 무혐의 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시장점유율은 10%대로 추락했다. '가짜뉴스'의 원조 격인 이 사건으로 한 기업의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졌고, 라면시장에는 이때부터 농심의 독주 체제가 이어진다.파산 위기에 몰린 삼양은 2012년, 승부수를 던진다. 당시 불닭, 매운갈비 등 매운맛 열풍이 만들어진 것에 주목하며 만든 것이 극한의 매운맛을 강조한 '불닭볶음면'이었다. 처음엔 주목받지 못했지만, 해외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2014년부터 해외에서 '불닭 도전' 영상이 SNS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덴마크의 판매 금지 조치(너무 매워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의 정부 리콜 조치)가 역설적으로 '핫 챌린지'라는 전 세계적 현상을 만들어냈다. 금지된 맛에 대한 호기심이 글로벌 마케팅의 엔진이 된 것이다. 삼양은 이때부터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소비자 참여형 마케팅에 심혈을 기울였다.삼양의 글로벌 성공의 또 다른 비결은 국내 생산이지만 현지 니즈를 철저히 반영한 현지화 전략에 있다. 미주는 화이트 소스로, 중동은 할랄 인증으로, 유럽은 저나트륨 제품으로 현지 입맛을 공략했다. 2024년, 해외 매출 비중 77%, 그중 89.7%가 불닭 브랜드에서 발생하며 단일 제품 의존도가 높다는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했다. 급기야 삼양식품의 시가총액이 농심을 제치며, "라면=농심"이라는 공식이 깨지는 순간이 왔다.농심의 글로벌 전략은 1994년 LA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2005년에 이어 2022년 미국현지 공장을 설립하고 현지 생산을 개시하면서 꾸준히 시장을 넓혀갔다. 중국에서도 상하이에 이어 청도, 심양에 현지 공장을 세우고 현지화를 꾸준히 하며 현지 유통장악력을 앞세워 시장을 서서히 안정적으로 확장해 왔다.두 브랜드의 성공 DNA농심과 삼양의 경쟁은 상반된 전략의 성공사례다. 농심은 신라면을 필두로 정통의 맛을 지키며 다양한 브랜드 포트폴리오와 현지생산의 글로벌 인프라로 안정적 성장을 추구했다. 반면 삼양은 불닭이라는 파격적 제품 하나로 카테고리를 창조하고, 국내생산을 통해 K푸드라는 브랜드 정체성, 안정적 품질을 추구하며 소비자 참여형 마케팅으로 빠르게 시장을 침투했다. 농심이 '정통성'과 '안정성'으로 승부했다면, 삼양은 '혁신'과 '소비자 주도형 마케팅'으로 브랜드를 재창조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두 기업 모두 K푸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품질의 일관성을 지켰다는 점이다. 경쟁브랜드인 일본과 인도네시아 제품 대비 고품질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는 이유다.배고픔을 달래던 구황식품에서 시작해 한류의 첨병이 된 라면의 여정은 K푸드 세계화의 교과서다. 농심과 삼양의 60년 경쟁은 단순한 시장점유율 다툼이 아닌, 한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독창적 문화 코드를 창조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불닭볶음면과 신라면이 세계의 식문화를 바꾸고 있다. 맵고 뜨거운 한 그릇의 라면이 세계인의 미각을 사로잡는 이 역설적 성공 스토리 속에서, K푸드의 무한한 가능성을 본다. 허태윤 칼럼니스트(한신대 교수)

2025.04.12 10:00

4분 소요
“전 세계가 본다”…‘오징어 게임2’ 특수 노리는 유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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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흑백요리사’가 올 하반기 유통가를 휩쓴 가운데 초대형 기대작인 ‘오징어 게임 시즌2’가 오는 26일 공개를 앞두고 있다. 지난 2021년 공개됐던 시즌1의 인기에 특수를 누렸던 유통업계는 시즌2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 세계적인 팬층을 확보한 오징어 게임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협업 제품을 내놓으며 내수 경기침체 속 글로벌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모습이다. 너도나도 오겜2 손잡았다12일 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 오뚜기, 하이트진로 등 국내 식음료 기업들은 오징어 게임 신작과 협업한 제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비비고’ 브랜드로 글로벌 사업 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CJ제일제당은 국내외 시장을 타깃으로 오징어 게임2와 손잡고 한국·미국·유럽·호주 등·전 세계 14개국에서 글로벌 캠페인을 추진한다. 비비고의 핵심 전략 상품인 K스트리트 푸드와 만두, 김치, 김스낵 등에 오징어 게임2 속 캐릭터를 활용한 한정판 패키지를 선보인다. 특히 냉동 김밥을 미국과 유럽 시장에 처음 내놓는다. 주재료로 오징어를 활용한 신제품도 선보인다. 국내에서는 ‘비비고 통오징어만두’와 ‘버터오징어 김스낵’를, 태국에서는 ‘비비고 무말랭이 오징어 김치’를 각각 출시한다. 오뚜기는 오징어게임 시즌2 협업 상품으로 안주용 스낵 ‘뿌셔뿌셔 버터구이 오징어 맛’과 ‘열 뿌셔뿌셔 화끈한 매운맛’을 출시했다. 신제품 2종 패키지에는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인형의 일러스트를 더했다. 오뚜기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청자를 겨냥한 스낵으로서의 포지셔닝을 강화, 매출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주류업계도 나섰다. 하이트진로는 이달 9일부터 ‘참이슬 오징어 게임 에디션’을 출시했다. 해당 제품은 오징어 게임 캐릭터 영희, 핑크가드, 프론트맨와 참이슬의 이슬방울을 조합해 완성한 라벨을 적용했다. 참이슬 로고의 ‘ㅁ·ㅇ·ㅅ’에만 오징어 게임 대표 색상인 핑크 색상을 입혀 핑크가드의 등급을 상징하는 원형, 삼각형, 사각형을 표현했다. 오징어 게임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 4종도 출시했다. 영희 캐릭터 게임기와 핑크가드 두꺼비 피규어는 송년회 손님들이 많을 식당가에 판촉물로 제공한다. 오징어 게임 참가자 유니폼을 모티브로 만든 앞치마, 컬러 잔도 출시한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 호주, 멕시코 등 3개국에서도 동시 출시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K-뷰티도 오징어 게임2 열풍에 올라탄다. CJ올리브영은 자사 뷰티 브랜드인 ‘브링그린’과 ‘웨이크메이크’를 통해 ‘오징어 게임’ 협업 제품을 출시한다. 브링그린은 영희 캐릭터를 활용해 ‘티트리 시카 트러블 수딩 토너패드’, ‘티트리 시카 포어 클레이 팩’ 등을 선보이며, 달고나 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달고나 립밤’과 황금 저금통 콘셉트의 ‘골드 콜라겐 아이패치’도 함께 출시한다.편의점업계도 오징어 게임2 공개를 전후로 관련 제품 출시를 계획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IP 확보 적극 나서는 이유오징어 게임 시즌1은 지난 2021년 한국 콘텐츠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오늘의 톱10’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94개국에서 넷플릭스 1위를 기록했고, 방영 28일 만에 시청 가구 수 1억1000만명을 돌파했다. 이처럼 확실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오징어 게임 시즌2가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앞서 시즌 1에서도 작품에 등장한 라면, 달고나 등의 상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극 중 편의점 앞에서 일남(오영수)과 기훈(이정재)이 안주로 먹던 삼양라면은 간접광고(PPL) 없이 전 세계적인 홍보 효과를 누렸다.최근엔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와 협업한 편의점도 관련 제품 출시로 매출 증대 효과를 봤다. 업계는 오징어 게임2에서 어떤 먹을거리가 등장해 매출 반등 효과를 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유통업계는 글로벌 콘텐츠 노출 기회를 적극 활용하려는 분위기다. 특히 경기 침체로 내수 시장이 부진한 가운데 국내 유통업계는 해외 시장을 새로운 돌파구로 삼고 있어 오징어 게임과 협업은 글로벌 진출에 도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징어 게임2에 대한 기대가 높은 만큼 콘텐츠 공개 시점에 맞춰 다수 기업이 협업 제품을 출시, 후광 효과를 얻을 것이란 기대가 높다”며 “단순 마케팅을 넘어 K-콘텐츠의 글로벌 성공을 바탕으로 기업과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2024.12.13 06:00

3분 소요
“소비자가 판단할 것”…하림 ‘이정재 라면’ 성적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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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산업이 야심 차게 내놓은 프리미엄 브랜드 ‘더(THE)미식’ 라면이 시장에서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출시간담회 때 직접 라면 삶기 시연을 보였을 정도로 라면 사업은 김 회장이 엄청난 애착을 보인 사업이다. 또 배우 이정재를 모델로 쓰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도 진행했다. 하지만 들인 공 대비 성과가 미진하다. 더미식 라면은 판매 초기부터 일반 라면 대비 가격대가 1000원에서 1500원가량 높아 고가 전략이 결국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나왔었다. 또한 업계에서는 하림이 국내 라면시장 공략의 맥을 애초에 잘못 짚었다고 지적한다. 힘 빠진 기세…점유율 1% ‘굴욕’하림산업은 2021년 10월 프리미엄 간편식 브랜드 더미식의 첫 제품 ‘장인라면’을 내놨다. 봉지당 가격은 2200원이다. 신라면 한 봉지 가격이 950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2배 이상 높은 가격이다. 출시 당시 하림 측은 장인라면에 대해 자연재료를 그대로 사용했고 면 반죽 시에도 닭 육수를 넣었다고 했다. 야채 스프도 다른 일반 라면보다 1.5배 더 넣었다고 강조했다. 원가가 높다보니 자연스레 가격도 높게 책정됐다는 얘기다. 초기 소비자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장인라면은 출시 초기 두 달 만에 500만개를 팔아치웠다. 이정재를 앞세운 광고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예능프로 제품간접광고(PPL) 등 출시 초반부터 마케팅에 힘을 주며 초기 반등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갈수록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하림지주의 식품 사업군에서 라면군 매출액은 2022년 134억원, 지난해 208억원을 기록하며 매출이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올 상반기 라면군 매출은 72억원에 그쳤다. 전분기(48억원) 대비 15% 감소한 수치다. 장인라면의 봉지당 가격이 다른 라면의 2배 수준임을 감안하면 실망스러운 매출이다. 이런 기세라면 올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라면사업이 오히려 역성장 중인 셈이다. 라면시장 전체로 봐도 점유율은 1% 수준에 그친다. 지난해 라면시장 총 매출액은 2조3898억원이다. 전문가들은 하림산업이 라면시장 공략법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가격 조정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라면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다른 상품보다 가격 저항이 심한 품목 중 하나다. 농심이 몇년 전 출시한 프리미엄 라면인 ‘신라면 블랙’도 출시 초기 높은 가격대로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만큼 국내 라면시장에서 고가 전략은 구사하기 쉽지 않은 편이다. 국내 라면 판매는 ▲대형마트 ▲기업형슈퍼마켓(SSM) ▲편의점 ▲온라인 쇼핑몰이 주요 경로다. 특히 판매 비중이 높은 대형마트나 SSM에서는 라면을 4~5개씩 묶는 패키지 형태로 판매한다. 장인라면의 4개입 가격은 7000~8000원 수준이다. 일반 라면 5개입 가격이 4000~5000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싸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농심의 신라면 블랙의 4개입 가격도 5000~6000원 수준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를 방문한 소비자들은 카트에 여러 상품을 담다 보니 총비용을 줄이기 위해 습관적으로 가격대가 조금이라도 낮은 저렴한 상품을 바구니에 담는 편”이라며 “라면은 판매대에서 4~5개입 상품의 가격이 모두 보이는 만큼 가격 비교도 쉽다. 다른 라면을 두고 장인라면을 바구니에 담기 위해서는 가격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부분을 소비자들이 찾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라면 상품의 경우 주요 판매처에서 가격 비교가 쉬운 만큼 높은 가격을 책정할수록 판매에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히트작 넘기엔 부족, 가격 조정 나설까하지만 하림이 라면 제품 가격 조정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이미 김홍국 회장은 더미식을 프리미엄 브랜드라고 강조했다. 더미식의 다른 간편식 가격도 다른 제품들보다 높게 형성돼 있다. 김홍국 회장은 2022년 더미식 즉석밥을 출시하면서 “제품 가격은 올라가겠지만 지불 용의는 소비자의 판단 영역”이라며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우수한 품질을 앞세운 프리미엄 상품을 원하는 수요층이 분명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처럼 더미식을 프리미엄 브랜드라고 선언한 만큼 향후 가격대 조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이 매우 보수적이라는 점도 하림의 라면사업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식품산업통계정보(FIS) 소매점 판매 통계에 따르면 최근 4년(2020~2023년)간 판매량 순위인 톱(Top)10 라면은 약간의 순위 변동만 있을 뿐 똑같은 제품들이 차지했다. Top10 라면 중 빨간국물 베이스의 봉지라면은 ▲신라면 ▲진라면 ▲안성탕면 ▲삼양라면 등으로 모두 수십년간 사랑받은 히트작들이다. 장인라면이 이들 라면들을 제치기에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라면업계 한 관계자는 “라면은 국내를 불문하고 전 세계 소비자들의 입맛이 매우 보수적인 편이라 새 제품이 시장에서 자리잡기란 쉽지 않다”며 “하림산업이 라면 제조 설비 등에 많은 비용을 투자한 만큼 당장 가격 조정에 나서기는 쉽지 않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이런 부분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4.11.17 09:01

4분 소요
“라면 역사 새로 썼다”…매출 ‘1조’ 시대 연 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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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명가(名家)’ 삼양식품이 재기했다. 중독적인 매운맛으로 글로벌 히트 상품이 된 ‘불닭볶음면’ 덕분이다. 삼양식품의 2023년 연결기준 매출은 1조1929억원, 영업이익은 1475억원이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31%, 63% 올랐다. 매출의 80% 이상은 불닭볶음면에서 나온다. 삼양식품은 국내 첫 라면 제품인 ‘삼양라면’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이제는 불닭볶음면이 이 회사의 명실공히 대표 제품이다.불닭볶음면은 강한 매운맛을 내는 불닭소스가 첨가된 볶음라면이다. 삼양식품은 2012년 불닭볶음면을 국내 시장에 선보였다. 앞서 삼양식품은 ‘공업용 소기름’을 라면 제조에 사용한다는 루머에 휩싸여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됐다. 삼양식품이 루머에 대응하는 동안 경쟁사인 농심은 라면 시장을 장악했다. 불닭볶음면은 오랜 기간 루머로 고심한 삼양식품이 라면 시장에서 새로운 도약과 반전을 꾀하기 위해 선택한 묘수다.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으로 시장 지위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 첫 라면 제품을 출시했던 과거처럼, 불닭볶음면으로 라면 시장에서 새 역사를 썼다. 해외 시장에서 높은 관심을 얻으며 브랜드 측면에서 ‘글로벌 컴퍼니’로 발돋움해서다. 실제 삼양식품은 매출의 70% 가까이를 해외에서 올린다. 해외 매출 비중은 2019년 일찍이 50%를 넘겼다. 미국과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 삼양식품이 제품을 공급하는 지역도 다양하다. K-콘텐츠 흥행 타고 세계로불닭볶음면이 해외 시장에서 인기를 끈 요인은 소셜미디어(SNS)의 성장과 K-콘텐츠의 확장 덕분이다. 유튜브와 틱톡, 인스타그램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불닭볶음면을 먹는 ‘불닭볶음면 챌린지’를 콘텐츠로 제작하며 제품의 인기가 함께 솟았다.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지민도 여러 라이브 방송에서 불닭볶음면을 먹는 모습을 송출해 흥행 요인이 됐다. 불닭볶음면의 수요가 높아지자, 해외 곳곳에선 품귀현상도 빚어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올해 초 “까르보불닭볶음면을 손에 넣을 수 있길, 행운을 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며 “까르보불닭은 미국 내 한국 식료품점뿐 아니라 아마존, 월마트, 카스세이프웨이 등 소매점에서도 판매한다”면서도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 연예인도 (까르보불닭볶음면을) 구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삼양식품의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기는 불닭볶음면 수출 시기와 맞물린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이 SNS 등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2014~2015년 이후 불닭볶음면의 해외 공급을 확대했다. 삼양식품은 수출을 늘리기 위해 2021년 미국과 중국 등에 현지 판매 법인 ‘삼양아메리카’와 ‘삼양식품상해유한공사’를 설립하기도 했다.삼양식품이 현지 판매 법인을 통해 불닭볶음면의 공급 물량을 확대한 이후 이 회사의 매출은 고공행진했다. 10여 년 전인 2013년, 삼양식품의 한 해 매출은 3027억원에 그쳤다. 하지만 불닭볶음면의 해외 공급을 확대하기 시작하자 실적 규모는 빠르게 커졌다. 삼양식품은 2017년 4584억원, 2019년 5435억원, 2020년 6485억원, 2022년 909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실적을 갈아치웠다. 삼양식품이 현지 판매 법인을 통해 불닭볶음면의 공급 물량을 확대한 이후 이 회사의 매출은 고공행진했다. 10여 년 전인 2013년, 삼양식품의 한 해 매출은 3027억원에 그쳤다. 하지만 불닭볶음면의 해외 공급을 확대하기 시작하자 실적 규모는 빠르게 커졌다. 삼양식품은 2017년 4584억원, 2019년 5435억원, 2020년 6485억원, 2022년 909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실적을 갈아치웠다.제품 출시·공장 증설…확장 나선 삼양식품한편 삼양식품이 불닭볶음면에 치중한 사업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 매출 상당 부분이 불닭 브랜드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다른 브랜드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다만 삼양식품은 당장 다른 브랜드를 키우기보다 불닭볶음면의 수출 규모를 확장해 시장 지위를 다지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실제 북미와 유럽, 아시아 등에서 불닭볶음면 공급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현지 입맛에 맞는 다양한 제품을 출시해 지역별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태국에는 ‘마라불닭볶음면’을, 일본에는 ‘야끼소바불닭볶음면’을, 중국에는 ‘양념치킨불닭볶음면’을 선보였다. 최근 매출이 급증하고 있는 미주 지역에도 ‘김치불닭볶음면’과 ‘하바네로라임불닭볶음면’, ‘똠얌불닭볶음탕면’을 출시했다.삼양식품은 제품 공급 확대와 맞춤 전략으로 현지 법인 매출이 꾸준히 오르는 추세다. 이 회사의 중국과 미국, 일본 법인의 2023년 매출은 각각 12억 위안(약 2291억원), 1억2200만 달러(약 1694억원), 25억 엔(약 214억원)이다. 삼양식품은 수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제품 생산 공장도 증설하고 있다. 밀양에 1공장을 지은 지 2년 만에 불닭볶음면을 한 해 5억6000만개 생산할 수 있는 밀양2공장을 건설 중이다. 불닭볶음면이 인기를 끄는 아시아 지역은 물론, 최근 제품 수요가 급증한 미주 지역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2024.07.15 11:10

3분 소요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라면은 ‘신라면’…과자·맥주·아이스크림은?

산업 일반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라면과 과자는 각각 ‘신라면’과 ‘새우깡’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맥주는 ‘카스’, 소주는 ‘참이슬’이 최다 매출 1위를 차지했다.11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농심 신라면의 소매점 매출은 3836억원으로 라면(봉지·용기) 중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짜파게티(농심·2131억원), 진라면(오뚜기·2092억원), 불닭볶음면(삼양식품·1472억원), 육개장(농심·1259억원), 안성탕면(농심·1183억원), 너구리(농심·1070억원), 왕뚜껑(팔도·725억원), 삼양라면(삼양식품·713억원), 팔도비빔면(팔도·706억원) 등으로 판매액이 높았다.스낵과자는 농심 새우깡이 1359억원으로 1위에 올랐다. 다음으로 포카칩(오리온·1164억원), 프링글스(농심켈로그·985억원), 꼬깔콘(롯데웰푸드·879억원), 오징어땅콩(666억원) 등 순으로 많이 팔렸다. 포카칩은 2022년 921억원에서 지난해 1000억원을 넘어서며 새우깡과 함께 ‘1000억원 클럽’에 가입했다. 또 아이스크림은 롯데웰푸드 월드콘이 710억원으로 최다 판매 제품으로 조사됐다. 다음으로 떡붕어싸만코(빙그레·646억원), 메로나(빙그레·612억원), 투게더(빙그레·528억원), 빵빠레(롯데웰푸드·438억원) 등이 카테고리별 1위로 확인됐다.맥주는 오비맥주의 카스 매출이 1조5172억원을 기록했다. 이어 테라(하이트진로·4697억원), 필라이트(하이트진로·2399억원), 아사히(롯데아사히주류·1977억원), 켈리(1760억원), 클라우드(롯데주류·1674억원) 등 순이었다.소주는 하이트진로 참이슬이 1조1000억원으로 유일하게 1조원을 넘었다. 이어 처음처럼(롯데주류·4000억원), 진로(하이트진로·2651억원), 좋은데이(무학·1640억원), 맛있는참(금복주·773억원) 등으로 소비자 선호도가 높았다.

2024.02.11 11:37

2분 소요
[얼마예요] 라면 팔아 1조 매출…‘집안 살린 며느리’ 김정수 삼양 부회장의 ‘명품 경영룩’

유통

재벌가의 오너2세보다 더 주목받는 며느리. ‘한국의 라면원조’라 불리는 삼양라운드스퀘어(구 삼양식품그룹)의 김정수 부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김 부회장은 라면업계에서 내리막길을 걷던 삼양식품을 ‘불닭볶음면’으로 일으킨 주역이다. 최근 그녀의 성공 스토리와 함께 올드머니룩을 연상케 하는 패션 스타일도 화제다. 김 부회장은 50대 여성 CEO를 대표하는 경영인으로, 평소 절제된 색상과 고급스러운 소재로 세련된 CEO룩을 선보이고 있다. 66조 시장 뒤흔든 그녀…매출 1조원 시대 열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월 초 김 부회장의 불닭볶음면 성공 스토리를 주요하게 다뤘다. WSJ는 김 부회장의 스토리를 상세히 조명한 기사에서 그녀를 두고 “드라마 한 페이지를 찢고 나온 듯 하다. 전업주부였던 대기업 며느리가 망할 뻔한 회사를 살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500억달러(약 66조원)의 인스턴트 라면 시장을 뒤흔든 여성이라고 덧붙였다. 2012년 김 부회장이 불닭볶음면을 시장에 처음 내놓을 때만 해도 업계 관계자들은 반짝 인기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호기심에 한 번은 사먹겠지만 평소에 자주 먹긴 어려워 재구매율이 낮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러나 현재 불닭볶음면은 국내를 넘어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으며 효자 상품으로 등극했다. 지난 2016년 3590억원에 머물던 삼양식품 매출은 불닭볶음면의 인기와 함께 날로 성장해 지난해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1조1929억원, 영업이익은 1468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다. 자연스레 그녀의 공식 행보도 많아지고 있다. 김 부회장의 경영능력과 더불어 주목해 봐야할 것은 그녀의 스타일링이다. ‘옷차림도 전략이다’라는 한 의류 브랜드의 슬로건처럼 그녀는 기업 이미지에 걸맞은 옷차림을 추구하며 패션을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9월 ‘삼양라면 60주년’을 맞아 열린 비전선포식에서 그녀는 베이지 와이드 팬츠에 블루 스트라이프 셔츠를 매치해 캐주얼하면서도 감각적인 룩을 연출했다. 전형적인 CEO룩인 블랙계열의 포멀한 정장룩을 탈피하면서 새로운 사명을 알리고 ‘새출발’, ‘미래지향적’, ‘세계화’라는 메시지를 더욱 강력하게 전달했다는 평가다. 품격·신뢰 패션 키워드…구두보다 스니커즈 즐겨 신어 김 부회장의 평소 패션 키워드는 품격, 신뢰, 안정감이 꼽힌다. 블랙과 화이트 다크 그린 등 튀지 않고 안정적인 컬러감을 선호하는 편이다. 대외용 사진에서 그녀는 블랙 팬츠에 셀린느 트위드 재킷을 매치했다. 해당 재킷은 현재 품절 상태로 약 390만원대의 가격에 판매됐다.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9회 무역의 날’ 기념식과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전쟁 지진 피해 지역에 전달하는 라면 기부식에서는 같은 옷을 착용했는데 바로 디올의 하운드 크롭 재킷으로, 이 제품의 매장가는 약 570만원이다. 평소 현장경영을 지향하는 김 부회장은 굽이 있는 구두 보다는 스니커즈나 운동화를 더 많이 신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가 과거 캐주얼한 복장으로 지방 영업점과 물류센터를 방문했을 때 신은 신발은 구찌의 와펜 슬립온으로 2015년 SS제품이다. 지난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K-Food 페스티벌’에서는 핑크색 수트에 샤넬 로퍼를 매치해 깔끔하면서도 럭셔리한 룩을 완성했다. 패션업계에서도 김 부회장의 감각이 패션과 경영에 두루 잘 활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그녀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뒤 고 전중윤 전 명예회장의 장남인 전인장 전 회장과 결혼해 전업주부의 삶을 살아 왔다. 살림만 하던 그녀의 탁월한 감각을 알아본 건 전 전 명예회장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자 김 부회장은 시아버지 권유로 이듬해 삼양식품에 입사해 남편을 도왔다. 스스로 경영과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지만 김 부회장은 시아버지와 사업 문제를 두고 자주 대화를 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라면의 필수 재료인 대파와 팜유를 저렴하게 납품받기 위해 직접 중국과 말레이시아 등지를 찾았을 정도로 열정이 남달랐다고 한다. 재계에서는 그녀의 남다른 감각과 열정이 별다른 신제품 없이 경쟁사에 밀려 추락하던 삼양家를 일으켜 세웠다고 보고 있다. 기업가치도 크게 상승했다. 지난해 코스피가 19% 상승하는 동안 삼양식품 주가는 70% 뛰었다. 불닭볶음면 히트와 함께 제2 삼양신화를 쓰고 있는 K-며느리, 그녀의 행보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2024.02.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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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삼양라면이 ‘문화 만들기’ 나선 이유 [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전문가 칼럼

오뚜기는 바르고 정직한 브랜드 이미지로 별명이 ‘갓뚜기’다. 이 회사는 브랜드로 만드는 콘텐츠, 이른바 ‘브랜디드 콘텐츠’를 제작하면서도 같은 방식을 적용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호평받았다. 오뚜기가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유통한 ‘국물의 나라’ 이야기다.오뚜기의 무모하지만 참신한 시도국물의 나라는 넷플릭스를 통해 160여 개 국가에 15개 언어로 제작 배포됐다. 브랜디드 콘텐츠이지만 콘텐츠를 선정하는 기준이 높다고 알려진 넷플릭스의 선택을 받았다. 배포 이후 성적도 좋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10주 연속 ‘인기 콘텐츠’와 ‘지금 뜨는 콘텐츠’ 순위에 올랐다. 푸드 다큐멘터리 부문에서는 역대 최다 조회수를 기록했다.K-푸드를 향한 관심이 높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더 성과가 좋다. 이 지역 내 푸드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역대 조회수 3위에 오르면서다. 오뚜기는 이런 결과를 발판 삼아 후속편인 ‘김치의 나라’와 ‘반찬의 나라’도 제작해 넷플릭스를 통해 배포했다. 국물의 나라는 한국인의 밥상에 빠질 수 없는 한 그릇의 국물 요리를 찾아 전국을 여행하는 로드 트립 형태의 푸드 다큐멘터리다. 미식가로 알려진 만화가 허영만, 요리 솜씨가 뛰어난 배우 류수영, 뮤지컬 배우이자 유튜버인 함연지가 참여한다. 이들은 전국 10개 도시에서 40여 개의 국물 요리를 찾아 50회에 걸친 촬영을 통해 담아냈다.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오뚜기가 브랜디드 콘텐츠로 제작했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뚜기가 식품 기업으로서 브랜드 인식을 제고하면서도 K-푸드의 우수함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국물의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 프로그램에는 오뚜기의 브랜드가 직접적으로 노출되거나 콘텐츠에 삽입되는 간접광고(PPL)도 없다.이런 시도는 브랜드 강화나 마케팅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무모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의 지역별 국물 요리에 얽힌 역사와 재료를 알게 된다. 국물 요리의 ‘독창성’(originality)을 경험하기도 한다. 또 일부 소비자들은 오뚜기에 대한 브랜드 호감도와 충성도가 높아졌을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브랜드, ‘문화’ 만들어야광고의 독창성을 통해 소비자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은 다른 기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광고회사 아이디엇은 삼양라면의 라면 광고를 만드는 과정에서 라면 냄비를 닦는 초고압 냄비 세척기를 만들어 브랜딩에 성공했다. 광고회사가 광고 대신 제품을 발명해 브랜딩에 활용한 것이다. 이 냄비 세척기는 고압 컵 세척기를 개량한 것으로, 세계 최초의 라면 냄비 전용 세척기이기도 하다.삼양라면은 소비자들의 행동을 연구한 결과, 라면을 끓이는 것보다 식사 후 설거지의 번거로움이 라면을 먹지 않게 되는 요인이라는 점을 파악했다. 라면 소비가 억제되는 문화와 환경에 주목해 만들어진 브랜딩 사례다.실제 아이디엇은 삼양라면 홍보 동영상을 만들거나 광고 캠페인을 구상하지 않았다. 냄비 세척기라는 아이디어를 제품화했고, 제품을 만들면서도 물이 닿지 않는 영역을 줄이거나 수압을 높이는 노즐을 적용하는 디테일도 살렸다. 아이디엇이 내놓은 라면 냄비 고압 세척기는 지난해 11월 750여 명의 소비자에게 전해지기도 했다. 모든 과정은 “귀찮음 한 그릇 덜어드립니다”라는 주제의 캠페인으로 제작됐다.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캠페인을 시작한 지 5일 만에 사연 5000여건이 접수됐다. 소셜미디어(SNS)를 비롯한 여러 커뮤니티에도 이 캠페인이 확산했다.소비자는 제품을 사용하는 순간뿐 아니라 생활 곳곳에서 브랜드를 만난다. SNS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 이런 변화는 광고회사의 고민이 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아이디엇은 이렇게 말한다. “요즘 시대의 광고는 무엇일까 계속해서 고민합니다. 한 편의 영상을 통해 브랜드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정답일까? 어쩌면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지 않을까? 사람들의 일상 접점으로 다가가 그들이 마주한 고충을 직접 해결할 수 있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광고의 소재이자 브랜드의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삼양라면 초고압 세척기’도 이런 철학에 바탕을 두고 탄생한 제품입니다. 앞으로도 시대에 발맞춰 사람들의 일상 접점에서 내면 깊이 원했던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요.”오뚜기와 삼양라면은 ‘디지털 시대의 광고는 무엇일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소비자의 브랜드 경험은 제품 구매 과정에서 나오지 않는다. 소비자를 둘러싼 삶의 모든 접점에서 이뤄진다. 그래서 브랜드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오뚜기는 식품을 향한 바르고 정직한 문화를 소비자에게 전달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배포한 푸드 다큐멘터리도 이런 문화의 연장선에 있다. 삼양라면의 초고압 냄비 세척기도 소비자가 라면을 어떻게 소비하는지에 주목한 결과다. 공감(sympathy)이라는 브랜드 문화를 소비자와의 모든 삶의 접점에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라는 뜻이다.좋은 라면은 너무 많다. 소비자들의 경험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 그리고 브랜드 경험을 어떻게 다르게 만들 것인지가 핵심이다. 삼양라면은 새로운 음식 문화를 만들었다. 컨설팅업체인 PwC에 따르면 소비자는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최대 16%까지 추가 비용을 기꺼이 지출할 의향이 있다. 이런 선호가 높은 브랜드에는 더 높은 충성도도 보였다.디지털 시대에는 브랜드의 성패가 제품 판매가 아닌 브랜드가 제공하는 고객 경험에 달려 있다. 브랜드는 물건을 팔기보다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2024.01.20 08:00

4분 소요
IBK투자증권, 삼양라운드스퀘어와 ‘맞손’...“신사업 발굴”

증권 일반

IBK투자증권이 신사업 기회를 발굴하기 위해 삼양라운드스퀘어와 맞손을 잡았다.IBK투자증권과 삼양라운드스퀘어는 사업 확대 및 신사업 기회 발굴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고 9일 밝혔다.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식품그룹)는 불닭볶음면·삼양라면 등 대표 제품을 통해 국내외에서 K푸드를 대표하는 식품그룹이다. IBK투자증권은 국내 대표 중소기업특화 증권사인 만큼, 각 사가 보유한 노하우와 네트워크의 공유를 통해 제조업과 금융업 간의 호혜적인 시너지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된다.이번 업무협약으로 삼양라운드스퀘어와 IBK투자증권은 기업금융, 자금운용, 리테일·리서치, 환경·사회·지배구조(ESG)·사회공헌 등 다양한 부문에서 시너지를 발휘하고, 향후 진행 상황에 따라 협력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특히 사회공헌 활동을 확대하고, 친환경·신재생에너지 등 ESG 관련 상품 개발에 공동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ESG 실천 방안을 함께 논의하면서 실질적인 ESG 경영 강화와 지속가능한 미래가치 창출에 힘쓰겠다는 계획이다.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 부회장은 “각자의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역량을 지닌 두 회사가 업무협약을 맺게 돼 기대가 크다”며 “IBK투자증권과 전략적 파트너로서 다양한 분야의 협업을 통해 비즈니스 경쟁력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서정학 IBK투자증권 대표는 “삼양라운드스퀘어와의 새해 첫 업무협약은 변동성이 큰 시장 환경에서 제조업과 금융업의 협력을 통한 상생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미래 먹거리 발굴은 물론, ESG 경영 확대를 위해 상호 협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한편, IBK투자증권은 지난해 3월 서정학 대표이사 취임 이후 무궁화금융그룹·웰컴저축은행·오케이캐피탈·무신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앞으로도 IBK금융그룹 내에서의 시너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부 기업과의 시너지를 강화해 수익성을 제고해 나갈 계획이다.

2024.01.09 10:38

2분 소요
신상열 vs 전병우, 라면 3세 전면에…라면명가 미래는?

산업 일반

농심과 삼양라운드스퀘어(前 삼양식품·이하 삼양)가 라면명가 ‘1위’ 자리를 놓고 3차전에 돌입했다. 최근 계열사 대표나 임원으로 승진하며 1990년대생 ‘오너 3세’들이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다. 신동원 농심 회장의 장남 신상열 상무와 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 부회장의 장남 전병우 전략기획본부장(CSO) 모두 경영 수업을 받으며 식품업계 미래를 이끌어나갈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기존 오너 2들이 국내 라면 중심 사업을 전개해 나갔다면 3세들은 글로벌과 신사업을 키워드로 새로운 먹거리를 모색해 나가고 있다. 농심은국내외 안팎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를 추진하고 있고, 삼양도 불닭볶음면을 벗어나 메타버스 등 콘텐츠 신사업에 뛰어들고 있다.최연소 임원 신상열, ‘글로벌과 대체육·비건’ 낙점업계에 따르면 신상열 상무가 주도하게 될 미래 농심의 방점은 글로벌과 대체육·비건(채식) 부문에 찍힌다. 1993년생인 신 상무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2019년 농심 오너 일가 전통에 따라 경영기획팀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평사원 입사지만 승진 과정은 남달랐다. 신 상무는 지난해 대리에 이어 경영기획팀 부장을 거쳐 구매 담당 임원을 맡게 됐다. 당시 나이 28세로 최연소 임원이자 농심 역사상 20대 임원은 최초다.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농심그룹에서 3세 경영 체제를 주도할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차기 리더로서 신 상무가 받고 있는 기대는 그가 맡고 있는 역할에서도 드러난다. 구매 부문은 식품 제조 회사에서 수익성을 결정짓는다. 라면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농심은 매출원가율이 약 70%에 달하며 소맥분, 팜유 등의 원자재 관리에 따라 실적이 좌우된다. 라면의 매출 비중이 약 80%를 차지하는 농심은 최근 몇 년간 글로벌 공급 환경, 환율 등으로 원자재 가격 변동이 심해지면서 직격타를 맞았다. 2020년 농심의 영업이익률은 6.07%였지만 2021년 3.99%, 2022년 3.58%로 감소하고 있다. 또 국내 라면 시장의 수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상황이다. 이르면 오는 2025년 미국 3공장을 착공할 예정이다. 미국을 포함해 중국·캐나다·일본·오세아니아 지역을 전략 거점으로 설정하며 신규 지역을 개척하는 등 사업 전반을 살펴야 하는 오너가 경영인으로 글로벌 확장 전략 수립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이 외에도 대체육과 비건(채식)을 신사업으로 낙점했다. 신 상무는 상무 취임 후 지난해 10월에 파리 국제식품박람회를 찾아 대체육을 비롯한 비건 식품을 유심히 살피며 글로벌 식품 트렌드를 파악한 바 있다. 농심은 라면에 편중된 매출 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해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체육 브랜드 ‘베지가든’을 론칭하고 비건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을 운영하고 있다. 또 2020년에는 건강기능식품 ‘라이필 더미 콜라겐’과 ‘라이필 바이탈 락토’ 등을 출시하며 건강기능식품(건기식)도 선보이고 있다. 인수·합병(M&A)도 추진 중이다. 지난해 천호엔케어 딜이 무산됐으나 지속해서 매물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병우, 계열 전반 넘나들며 ‘전략·기획’ 주도전병우 본부장도 불닭 신화를 삼양 전반으로 확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신 상무와 달리 계열 전반에서 ‘전략·기획’ 부문을 주도 있다. 전략·기획 부문에서 주로 경력을 쌓는 것도 산 상무와 대비된다. 전 본부장은 1994년생으로 삼양 창업주인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전인장 회장·김정수 부회장 부부의 1남 1녀 중 장남이다. 2019년 6월 삼양 해외전략 부문 부장으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듬해 6월 경영관리부문 이사로 승진했고 경영전략부문을 거쳐 현재 전략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다. 전략기획본부는 전략기획팀, 신사업기획팀, 라면 TFT(데스크포스팅) 등을 거느리고 있다. 라면 TFT는 삼양라면, 불닭볶음면 이외 라면 신제품을 기획한다. 삼양은 올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중 라면 비중이 95% 이상으로 사업 확장, 해외시장 개척, 설비 투자 등 신성장 동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복합문화공간 누디트 익선에서 진행된 ‘삼양라면 출시 60주년 기념 새 CI 및 비전 선포식’에서 공식 석상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삼양은 앞으로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이라는 두 개의 축을 끊임없이 융합시키면서 사업을 영위하겠다”며 “식품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 소비자의 삶을 더 건강하고 더 즐겁게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식품업계에서는 본격 승계에 앞서 존재감을 키우기 위한 행보라고 입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식품업계에서 오너 3세가 삼양처럼 전면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참신한 결과물을 내놔 경쟁사들도 자극받는 분위기”라고 말했다.그는 구체적인 미래 전략으로 과학기술 기반의 ‘푸드케어’(Food Care)와 문화예술 기반의 ‘이터테인먼트’(EATertainment)를 제시했다. ‘푸드케어’ 부문에서 전 본부장은 삼양라운드힐(옛 삼양목장)을 예방의학 연구의 중심이자 새로운 웰니스(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접근은 식품의 역할과 소비자의 기대가 변화하고 있음에 기인한다.또 ‘이터테인먼트’로서의 식품 역할을 강화할 예정이다. ‘먹다’(eat)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합친 이 말은 콘텐츠를 통해 정서적·문화적 차원에서 보다 더 즐거운 식문화를 전파해 음식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인식을 확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그는 ‘불닭회사’에서 종합식품 기업을 꿈꾸며 메타버스 등 콘텐츠 신사업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룹 내 캐릭터 및 이커머스 계열사 삼양애니 공동대표를 맡고 IP(지식재산권) 사업을 이끌어 온 만큼 향후 신사업을 통해 과학과 음식을 연결하는 구상을 구현시킬 것으로 관측된다.삼양애니는 한국 음식의 매력을 디지털 콘텐츠와 이커머스 영향력을 통해 확산시켜 글로벌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와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앞서 삼양애니는 글로벌 메타버스 게이밍 플랫폼 ‘더 샌드박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삼양 랜드를 메타버스에서 선보인 바 있다. 삼양애니는 브랜드와 콘텐츠 IP를 활용한 대체불가토큰(NFT) 상품을 기획, 제작할 방침이다.업계 관계자는 “3세들이 이제 막 경영 일선에 나선 만큼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면서 “신사업은 후계자들의 경영능력 입증에 있어 훌륭한 발판이 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이들의 성과가 회사의 미래를 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3.10.22 13:00

5분 소요
환갑 맞은 K-라면, 공업용 소기름 ‘우지 파동’에 갈린 라면史

산업 일반

라면은 상징적인 식품산업 중 하나다. 지난해 기준 한국인 1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은 77개다. 2021년 집계에서는 73개로 이는 세계 2위에 해당하는 소비량이다. 이처럼 라면 소비 대국에서 농심과 삼양라운드스퀘어(前 삼양식품·이하 삼양)는 국내 라면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다. 각각 라면 1위와 원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삼양은 국내 최초로 라면을 선보인 선발주자이고 농심은 오랜 기간 라면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업체다. 라면 원조 vs 부동의 1위…엇갈린 운명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라면 시장 규모는 약 2조6469억원. 지난 10년간 2조원대 규모에서 횡보하고 있지만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만큼 수요는 꾸준하다. 인스턴트 라면의 원조는 삼양이다. 농심이 라면업계에 뛰어든 1965년에는 삼양라면이 업계 강자였다. 무려 8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며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 시장에는 삼양라면을 비롯해 롯데라면(농심), 풍년라면(풍년식품), 닭표라면(신한제분), 해표라면(동방유량), 아리랑라면(풍국제면) 등의 제품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1969년 들어 삼양과 농심만이 살아남았지만 지배적 위치를 유지하던 삼양에 비해 농심은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1969년 들어 삼양과 농심만이 살아남았고 1980년대부터 농심은 라면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라면명가’(名家)의 격차가 더 벌어진 건 30여 년 전이다. ‘우지(소기름·牛脂) 라면’ 파동이 일어나면서부터다. 1989년 11월 3일 서울지방검찰청으로 익명의 투서가 날아들었다. 투서에는 몇몇 기업이 비식용 우지로 라면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검찰은 즉각 수사에 나섰고 미국에서 비식용 우지를 수입한 삼양·오뚜기식품·서울하인즈·삼립유지·부산유지 등 5개 업체를 적발하고 대표 및 실무 책임자 등 10명에 대해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 입건했다.검찰의 조사가 시작되면서 팜유를 사용하던 농심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라면 제조업체의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그러면서 이들이 “비누나 윤활유 원료로 사용하는 공업용 수입 쇠기름을 사용해 라면 등을 만들어 시판했다”라고 발표했다. 우지 파동 여파로 3개월간 공장 가동을 멈췄고, 시장 유통 중인 제품 전량을 회수하면서 당시 피해금액만 무려 4000억원에 달했다. 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면서 1000여 명의 직원은 회사를 떠나 실직자로 전락했다. 공업용 소기름 누명 ‘삼양’, 혐의 벗는 데 8년 당시 업계는 반발했다. 소기름을 공업용으로 분류한 건 미국 기준에 따른 것이었다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내장과 사골을 먹지 않기 때문에 이를 식용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상황을 가정해 설명하자면 미국에서 김을 공업용으로 분류했다는 이유로 한국 국수에 들어간 김을 문제 삼는 것과 똑같은 케이스였다. 또 이미 20년간 우지를 통해 라면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에게 동물성 지방을 공급한다는 취지에서 사용을 권장했다는 것이다.검찰은 라면에 활용된 우지가 1989년 개정된 식품공전 중 원료조항에 위배된다고 맞섰다. 검찰은 사건 첫날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공업용 우지가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는 규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건은 노태우 당시 대통령까지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소비자 단체들도 분노에 차 성명 발표 및 불매운동으로 라면 업계를 압박했다. TV 토론에서도 학자·당국·소비자 등이 나서 갑론을박을 벌였다. 삼양이 대법원 판결로 혐의를 완전히 벗는 데는 8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사건 발생 13일 만인 11월 16일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이 라면 무해 판정을 내리면서 불을 껐지만 삼양라면은 이미 부도덕 기업으로 낙인찍힌 뒤였다. 소비자들의 항의와 환불 요구가 빗발쳤고 불매운동도 이어졌다. 정부가 인체에 무해한 기름이라고 발표하며 사태를 진화하려 했지만 불안에 떠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이후에도 논란이 잦아들지 않자 정부가 보건사회부·검찰·학계·소비자단체 대표 등 8명으로 구성된 식품위생검사 소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착수했다. 사건 발생 13일 만에 내려진 소위원회의 결론은 ‘이상 없음’이었다. 결국 법원은 구속된 5개의 업체 대표와 실무자 등 10명에 대해 보석 결정을 내렸다. 검찰이 항소했지만, 1997년까지 이른 법정 다툼 결과 최종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우지 파동으로 라면업체들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국내 라면 시장의 70% 정도를 석권한 삼양라면은 우지 파동 이후 추락을 거듭했다. 사건 발생 10년이 넘어 창업주인 전중윤 전 삼양 명예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지 파동으로 직원 1000여 명이 회사를 떠났고 서울 도봉동 공장은 3개월 동안 문을 닫는 등 수천억원대 손해(3000억원 추정)를 가져왔다”며 “이로 인해 60%에 달했던 시장점유율은 10%대로 곤두박질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업계 한 관계자는 “삼양이 빼앗긴 시장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우지 파동으로 당시 최고의 자리에 있던 삼양라면은 순식간에 벼랑 끝으로 추락했다”며 “불량식품으로 낙인 찍히면서 소비자들은 철저하게 등을 돌렸다”고 전했다. 이어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아 오명은 벗었으나 최종심까지는 너무 긴 시간이 소요됐다”며 “그 사이 한번 바뀐 소비자 입맛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삼양라면은 상당 기간 암흑기를 보냈다”라고 덧붙였다.

2023.10.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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