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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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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영의 부동산 법률토크] 수익률 ○% 나온다했던 상가, 실제론 아니라면?

전문가 칼럼

3년 전, 노후에 안정적인 월수입을 기대하고 상가 분양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런데 완공된 상가 모습이 분양업체가 분양 상담 당시 보여주었던 것과 다릅니다. 이 경우 상가 분양계약을 해제할 수 있을까요? 보통 상가 분양은 상가가 완공되기 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가를 분양받으려는 사람은 카탈로그, 조감도나 설계도면, 그리고 분양업체가 설명하는 내용 등에 의존해서 계약할지 결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몇 년을 기다려 완공된 상가가 분양계약 당시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기술적인 부분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시공 과정에서 설계변경의 필요성이 생기고, 이럴 때 분양업체는 분양받은 사람에게 미리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때문에 완공된 상가의 모습에 최초 조감도나 설계도면과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업체가 당사자에게 아무 설명도 없이 설계를 변경해 결과적으로 상가의 정상적인 운영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분양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분양계약 당시 전혀 들은 바 없는 높은 기둥이 상가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법원은 “분양받은 상가에 존재하는 기둥의 위치와 면적에 비추어 볼 때 기둥이 시야를 차단할 뿐 아니라 고객과 영업주의 동선에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는 경우, 분양자가 이에 관하여 설명 또는 고지하지 아니하여 수분양자(분양받은 사람)들이 당초에 분양계약을 통하여 계획했던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면 이를 이유로 위 상가에 관한 분양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청주지방법원 2010. 5. 26. 선고 2009가합1075 판결). 분양 당시 분양업체가 “월세 ○원으로 ○%의 수익률이 기대된다”고 해서 이를 믿고 분양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임대료만 받게 된다면 상가계약을 취소 또는 해제할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다릅니다. 대법원은 “수익률 등에 관한 투자설명은 전망을 제시한 것으로서 청약의 유인에 불과할 뿐 그것이 계약의 내용이 되었다거나 분양업체에게 수익률 보장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합니다(대법원 2009. 8. 20. 선고 2008다94769 판결). 분양계약 당시 제시한 수익률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분양업체가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하기 어렵고, 이를 이유로 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다는 뜻이죠. 하지만 상가를 분양받는 사람에게 허위·과장 등의 방법으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전하거나 사실을 은폐해서 그가 계약을 통해 기대하는 부분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구체적 사실을 거래상의 신의성실의 의무에 비추어 비난받을 만한 방법으로 허위고지를 한 경우에는 과장, 허위광고의 한계를 넘어 기망행위에 해당합니다(대법원 2004. 10. 15. 선고 2003다69195 판결). 일례로 실제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익을 장담하며 상가를 분양한 사례에서 법원은 “상당한 과장과 허위에 도달한 행위로 상가 분양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인천지방법원 2014. 10. 21. 선고 2014가합3678 판결). 즉, 사안에 따라 기망행위 여부를 판단하여 계약 취소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손해배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꼭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필자 임상영은 법률사무소 서월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건설 재경본부에서 건설·부동산 관련 지식과 경험을 쌓았으며 부산고등법원(창원) 재판연구원,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로 일했다.

2021.05.28 15:27

3분 소요
암치료의 미래 아프리카에 있다

국제 이슈

그동안 유전자 연구는 구미인의 DNA를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검은 대륙은 오랜 인류의 역사 가진 만큼 유전적 다양성도 훨씬 더 풍부해 찰스 로티미는 2005년께 미래의 물결에서 뒤로 밀려나고 있음을 처음 깨달았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최근 인간 DNA의 전체 염기서열 해독을 완료한 참이었다. 그와 같은 돌파구가 마련된 이후 전 세계 6개국의 과학자들은 혈액샘플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불치병을 포함해 각종 질환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찾으면 치료제 개발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그런 수집 노력을 이끌던 로티미는 과거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자신보다 조국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아프리카의 환자들은 과학 실험에서 조사 대상으로 이용되면서도 가난 때문에 최신 의학발전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로티미는 유전학이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의 HIV·결핵·말라리아·암 치료제의 필요성을 외면하면서 현지 주민 10억 명을 착취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유전체 혁명이 아프리카를 건너뛰면서 미래의 의학이 인류 전체에 주효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충분히 근거 있는 우려였다. 지난 수년간 과학자들은 인간 DNA에 관해 무수한 발견을 쏟아냈다. 당뇨·암·정신병과 기타 중증 질환의 새 치료제를 낳을 수 있는 발견이었다. 그러나 그런 발견은 세계의 작은 일부분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뤄졌다. 발표된 연구논문 거의 모두가 유럽 혈통의 모집단을 토대로 했다. 2009년까지 수백 건의 유전체 조사 중 아프리카인이 포함된 비율은 1%에도 못 미쳤다.유전체학 혁명은 곧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각 환자의 정확한 유전적 구성을 알게 되면 개인별 맞춤 치료의 신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그것은 질병 발생이나 약물 반응과 상관관계를 가진 인간 DNA의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느냐에 달렸다. 이 같은 과업에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으로부터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유전체학 연구는 숲 전체로 뻗어나가기는커녕 킬러의 흔적을 찾아 똑같은 나무 몇 그루 주위를 뱅뱅 도는 수색작업과 같아진다.풍부함을 자랑하는 아프리카 유전체는 인류 진화의 산물이다. 현생 인류 호모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 약 10만 년 뒤 (최소 2만 명을 훨씬 넘을 수 있는 모집단 중) 1600여 명의 남녀가 대륙을 떠나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기 시작해 궁극적으로 유럽 가장 최근에는 미대륙에 이르렀다. 워싱턴대학 유전학자 메리-클레어 킹 연구팀은 지난해 논평에서 ‘다시 말해 현생 인류로서 우리 진화의 체험 중 약 99%가 아프리카에서 이뤄졌다’고 썼다.마찬가지로 그 시점까지 아프리카 대륙 전반에 걸쳐 존재했던 유전적 다양성은 무엇이 됐든 그 소그룹이 이주했을 때 거의 고스란히 그 자리에 남았다. 그리고 아직도 각 아프리카인의 유전자 안에 잠복해 있다. 이는 유전체 연구에서 아프리카가 배제된 것에 로티미가 그렇게 실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피부 속은 우리 모두 같은 아프리카인”이라고 말했다.로티미의 견해에 동의하는 과학자가 갈수록 늘어난다. 암과의 싸움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아프리카에 있다는 생각이다. 바로 아프리카인의 DNA다. ━ 아프리카가 10만 년 앞서간다 유전학과 의료격차를 전공하는 나이지리아 태생 과학자인 로티미는 유전체 연구에서 아프리카인을 배제시킨 결과를 몇 년 전 다른 많은 과학자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조치를 취할 만한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나이지리아 4대 도시 베냉 시티에서 태어난 로티미는 미국에 도착했을 때 상당히 큰 의료격차를 목격했다. 그는 미시시피대학(일명 올 미스)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부유층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다. 이곳에서 빅맥을 처음 경험했다. 그는 “그냥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며 “빵·고기·이파리 같은 것을 함께 섞어 먹는 개념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주를 여행하며 맛본 불평등은 더 쓴맛을 남겼다. 그는 “자원이 풍부한 환경 속에서 자기 것은 없는 듯할 때 빈곤의 울림이 아주 크게 들린다”고 말했다.그는 석사학위를 들고 나이지리아로 돌아갔지만 6개월 동안 일자리를 찾아다니고도 연구에 참여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공중보건과 역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기간 동안 유전자가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더 깊이 인식하게 됐다. 나이지리아에서의 성장과정에서 이미 경상적혈구병(sickle cell disease)은 선천적인 것이지 후천적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전 세계 아프리카인 사이의 고혈압에 관한 연구를 통해 라이프스타일과 환경이 건강에 좌우되지만 DNA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로티미 박사가 유전의 위력을 알아가는 동안 과학자들은 최초의 인간 유전체 염기서열 해독에 접근하고 있었다. 모든 인간 세포의 핵 안에 팽팽하게 감긴 유전체는 약 2만 개 유전자로 이뤄진다. 우리 체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다수의 생체 내 작용을 인도하는 단백질을 암호화한다. 나아가 유전자는 DNA로 이뤄진다. DNA는 염기라는 화학물질이 담긴 뉴클레오티드라는 나선형 화합물 가닥이다. 일반적으로 A CT G라는 이니셜로 알려진 이들 4가지 염기는 각 개인 특유의 청사진을 구성하는 유전정보의 언어다. 인간의 유전체 다시 말해 개인 유전자의 전체 세트는 30억 쌍의 염기로 이뤄진다.2003년 종료된 인간게놈프로젝트는 한 개인의 유전체 염기 서열을 대부분 해독했다(당시 로티미 박사는 워싱턴 D.C.의 하워드대학에서 미생물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염기서열 분석 자체보다는 개인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기술이 혁신적인 발전이었다. 연구를 통해 질병이나 약물반응을 결함 유전자와 연결할 수 있다면 각 환자 특유의 유전체를 중심으로 맞춤 치료를 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 이르려면 개인에 따라 유전체가 어떤 식으로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DNA 중 차이가 생기는 그 몇 분의 1%가 다수의 유전 질병과 이상의 원인일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믿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서 하나가 아닌 다수의 유전자를 조사해야 했다.그들이 찾는 변화는 인간 유전체 내 30억 쌍의 염기 중에서 단일 염기의 변화(A에서 C 또는 G에서 T로의 변이)였다. 아기가 생길 때 또는 우리 일생 동안 세포가 분화될 때 DNA 복제 중 그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단일염기다형성(SNP)으로 알려진 이들 변이는 종종 무해하지만 때때로 유전자의 기능에 영향을 미쳐 특정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잘못된 SNP는 대표적으로 알츠하이머, 특정 혈액질환, 남성불임, 암에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일단 유전체의 일부가 되면 다음 세대로 대물림될 수 있다.정밀의학은 문제의 SNP를 찾아내면 그것이 위치한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과학자들은 그런 돌연변이를 찾기 위해 다른 많은 사람의 전체 유전체를 서로 비교하는 연관분석 조사를 실시한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되고 개별 유전체의 염기서열 분석 비용이 낮아진 뒤 이들 유전체 전체의 연관분석 조사에 가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다양성 문제가 있었다. 거의 어떤 조사에도 아프리카인의 유전체가 포함되지 않았다. ━ 배제의 위험 10만년 전 처음 아프리카를 떠난 1600여 명은 SNP를 물려받은 상태로 이동했다. 그러나 실상 알고 보니 훨씬 더 많은 유전적 다양성을 뒤에 남겼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남은 사람이 더 많았으니 세대가 거듭되면서 더 많은 유전체가 더 많은 변이를 만들어낸 셈이다. 아프리카인의 가계도가 유럽인과 미주인보다 훨씬 더 오래 가지를 뻗어왔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변이를 갖고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 주민은 지상 어느 대륙 주민보다 다양한 유전체를 보유한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유전학자 세라 티슈코프는 “유럽과 아시아 주민을 서로 비교했더니 우리가 살펴본 어떤 두 아프리카 인구집단보다 더 가까웠다”고 말했다.문제를 일으키는 SNP의 모색과정에 아프리카를 포함시키는 데는 여러 가지 중대한 이점이 있다. 암 같은 질병과 관련된 SNP는 대체로 희귀하며 암 환자의 유전체에서 발견된 희귀 SNP를 이용해 양자 간의 연관성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유럽인의 유전체에선 특이한 돌연변이처럼 보이더라도 아프리카인을 포함시킬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남아공의 케이프타운대학에서 유전 데이터를 분석하는 니콜라 멀더 연구원은 말한다. 그런 실수로 인해 수년 간의 노력과 많은 돈이 허비될 수 있다.일단의 과학자가 한때 5종의 유전적 변이가 심장을 위험할 정도로 두껍게 만들었다고 가정하고 그런 변이를 가진 사람의 DNA가 심장 이상 위험을 유발한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가정은 틀렸다. 그 5가지 변이는 전혀 희귀하지 않았으며 실제론 아무런 해가 없었다. 연구 대상에 아프리카 주민을 포함 시켰다면 그런 실수가 없었을 것이다.무엇보다도 아프리카인의 유전체는 유럽인과 미주인에 비해 연구용으로 훨씬 더 적합하다. 역시 오랜 혈통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유전 물질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대물림되는 동안 SNP가 덩어리로 뭉치는 경향을 보여 과학자들이 찾아 내기가 더 쉬워진다. 결과적으로 오래된 유전체 다시 말해 아프리카인의 유전체에서 찾아내기가 더 용이하다. 티슈코프 교수는 “그것은 모든 인구집단에 유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이처럼 뭉치는 현상 덕분에 유전학자들이 나쁜 LDL 콜레스테롤 관련 유전자와 염증 관련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아프리카인의 유전체는 다른 어떤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환경위협에 부대껴 왔기 때문에 병에 관한 결정적인 단서가 담긴 몇 가지 놀라운 특성을 나타내게 됐다. 어떤 위험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유전적 돌연변이가 덜 해롭고 새로운 특성을 수반할 수도 있다. 경상적혈구빈혈(sickle cell anemia)을 예로 들어보자. 이 증상과 관련된 유전자는 말라리아를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또 다른 돌연변이는 아프리카 수면병(African sleeping sickness)과 관련된 기생충에 대한 면역력을 부여하지만 또한 신장병 위험을 키우기도 한다.사람들이 일부 위협을 이겨내도록 하면서도 암에 쉬 걸리게 하는 돌연변이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고 티슈코프 교수는 설명한다. 그리고 그런 위협은 가령 동아프리카에서 북미로 이주하면서 사라졌지만 변이는 남았다. 이런 역사적 돌연변이는 암이 어떻게 또는 왜 진화하는지 이해하는 데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로티미 박사는 “아프리카인의 유전체에 존재하는 방대한 유전적 변이를 감안할 때 암에 중요하지만 다른 인구 집단에선 발견되지 않는 유전적 변이를 찾아낼 수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그리고 아프리카 유전체가 인류 전체의 과거를 되찾을 수 있게 할 수 있듯이 위험한 미래로부터 우리를 구제할 수도 있다. 일부 유전적 기형은 우리 몸이 약물에 반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약물유전체학(pharmacogenomics)으로 알려진 분야다. 예컨대 한 가지 변이는 HIV 감염자의 항레트로바이러스 약에 대한 내성을 떨어뜨린다. 이 같은 발견으로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 전체의 치료제 처방이 바뀌고 있다. 또 다른 변이는 유방암 치료제 타목시펜의 작용을 방해한다. 유전체가 다양할수록 치료제의 선택을 좌우할 만한 돌연변이를 발견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티슈코프 교수는 “아프리카에서 유전체 연구의 확대는 아프리카 혈통인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커다란 전술적 오류의 시정 로티미 박사는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끝나기 전부터 아프리카가 배제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품었다. 2002년 그는 하워드대학 국가인간게놈센터에서 역학 연구를 이끌고 있었다. 그해부터 세계 각지에서 유전체를 수집해 인간 유전자 변이의 범위를 기록하는 노력의 아프리카 파트도 이끌었다. 그 초창기부터 프로젝트에서 아프리카 과학자들이 맡는 역할이 제한적인 데 로티미 박사는 낙담했다.2004년 게놈센터를 이끄는 동안 그는 아프리카 인간유전학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그런 우려에 대처하려는 취지로 결성된 단체다. 2006년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학회의 첫 회 안건은 유전체 연구에서 아프리카의 낮은 참여도(DNA와 과학자 모두)로 채워졌다. 1년 뒤 카이로에서 열린 2차 회의에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이끌었고 현재 미국국립보건원(NIH) 원장인 유전학자 프랜시스 콜린스가 참석했다. 그런 우려가 아프리카를 기반으로 하는 게놈 프로젝트 아이디어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자리였다.아프리카 대륙에서의 암 발병률 증가도 긴박감을 더해줬다. 근년 들어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지역 전반적으로 유방암·전립선암·자궁경부암 유병률이 증가했다. 감염병으로 인한 조기사망 탈피와 서구화된 라이프스타일 전환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이제 아프리카의 연간 암 발생률이 2030년에는 127만 건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아프리카계가 아닌 주민을 대상으로 테스트된 약품으로 아프리카인 환자를 치료하는 관행이 설상가상으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유전자 연구에 아프리카 DNA를 포함시키면 그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로티미 박사는 “이런 훌륭한 도구에서 아프리카가 배제되면 열악한 건강 상황이 더 악화되리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답답하다”고 말했다.로티미 박사가 수년 전부터 울려온 경고음은 2009년 유전체 연구에서 아프리카 DNA의 결여를 폭로하는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NIH 산하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는 이런 조사에서 유럽혈통 집단의 지나치게 높은 비중을 모니터하기 시작했다. 에릭 그린 NHGRI 소장은 “우리가 실시한 연구 중 유럽계의 직계 혈통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연구의 비중이 너무 높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편견을 “커다란 전술적 오류”로 일컫는다. 그해 로티미 박사는 그런 오류를 바로잡을 뿐 아니라 과학자들의 대륙 아프리카 개혁 프로젝트를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2010년 아프리카의 유전학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는 로티미 박사의 노력에 NIG가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서방의 연구에 아프리카를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그는 동료들과 함께 직접 연구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로티미 박사는 아프리카 중심의 연구에는 염기서열 수집과 SNP 목록 작성 이상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았다. 그런 연구에 대한 자금지원은 흔치 않았다. 아울러 아프리카 대륙 전반적으로 보건의료 서비스의 개선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 연구의 실제적인 응용이 우선과제였다. 그리고 아프리카인을 대상으로 신약과 기술을 테스트한 과거의 연구가 주민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던 쓰라린 기억도 남아 있었다. 로티미 박사는 “아프리카 주민에게 중요한 문제의 해결에 그 자금이 쓰이도록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고 말했다.훗날 로티미 박사가 ‘아프리카의 인간 유전·건강(Human Heredity and Health in Africa)’ 즉 H3아프리카로 명명한 그 프로젝트는 그가 꿈꾼 대로 아프리카인의 유전체 연구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이룰 것이다. 아프리카의 과학자들이 아프리카의 연구기관 안에서 아프리카 주민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을 주는 대대적인 연구 노력을 벌이게 된다. H3아프리카는 아프리카와 유럽·북미 과학자들을 동등한 위치에 서게 만들 것이다. 나이지리아의 유전학자가 하버드대학의 유전학자와 연구 지원금을 놓고 경쟁을 벌여 돈을 따낼 수 있다. 그런 접근방식은 과거의 실망스러운 패턴을 피하고 대신 아프리카 지역사회에 직접적인 혜택을 주게 된다. 쉽게 말해 H3아프리카의 등장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유전체학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뿐 아니라 초창기처럼 아프리카가 소외당하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영국에 본부를 둔 민간 자선단체 웰컴 트러스트와 NIH는 5년 주기로 2회에 걸쳐 H3아프리카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2012년 1차 펀딩에서 총 760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H3아프리카는 그 돈으로 지금까지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던 수단·시에라리온·가나를 포함해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29개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자궁경부암 프로젝트에선 여러 나라에서 여성 1만 명의 유전체를 수집한다. 그 악성 종양을 유발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의 위험을 키우는 돌연변이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는 취지다. 남아공 비트워터스랜드대학의 유전학자 크리스토퍼 매튜는 아프리카에선 흔하지만 북미에선 드물게 발생해 연구에서 뒷전으로 밀려는 식도암을 연구한다. 그는 “과거에는 우리 지역 통화 가치가 낮아 연구가 대단히 어려웠다”고 말했다. 10년에 걸친 지원금 총액은 1억9000만 달러에 육박한다.그러나 윤리적 딜레마에서 자유로운 유전학 프로젝트의 비전은 그동안 실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비아프리카계 국가들의 자금지원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H3아프리카가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비아프리카계 협력자들의 참가를 허용하는 데 여러 가지 우려가 제기된다. 케이프타운대학의 생명윤리학자 잰티나 드브리스는 “아프리카의 일부 윤리 위원회에선 국제협력이 항상 착취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수십 년 동안 구미의 전문가들이 아프리카를 찾아와 필요한 것만 손에 넣은 뒤 떠나갔다. 이른바 헬리콥터 과학으로 불리는 관행이다.예컨대 약 10년 전 여러 북미 연구기관의 유전학자들이 4개 산족 커뮤니티 원로들의 DNA 샘플을 채취해갔다. 산족은 지구상에 알려진 가장 오랜 혈통을 지닌 아프리카 남부의 수렵·채집 생활자들이다. 드브리스 교수는 “그들은 말 그대로 찾아와서 샘플을 수거한 뒤 떠났다”고 말했다. 산족 지도자들은 허가도 없이 그런 일을 벌인 데 격노했다. 그 유전체 조사를 발표한 학술지 네이처에 보낸 서한에서 무례하고 모욕적인 행동이라고 규탄했다.아프리카의 과학자들은 DNA 샘플이나 기타 생체 자료를 확보하는 데 기여하고도 정작 연구에는 거의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의 환자는 자신들의 혈액·타액·조직을 이용해 개발된 약품을 구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전력으로 인해 많은 과학자와 연구 참가 희망자들이 유전학 연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아프리카 출신 흑인 자궁경부암 환자 헨리에타 랙스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과학자들이 그녀의 세포를 이용하고 의학에 널리 사용됐는데 그녀의 가족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하지만 협력자들은 우월한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항상 그렇게 쉽게 양보하려 하지는 않는다. 수년간 H3아프리카의 윤리 문제 실무그룹을 이끌었던 드브리스 교수가 일부 국제적 과학자들로부터 들은 말이 단적인 증거다. 그들은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은 자체적으로 고도의 유전학 연구를 수행할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겼지만 현재 상황을 유지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 그녀는 “힘센 사람과 기관은 그런 논리가 정설로 받아들여질 때 혜택을 본다”며 “그런 사람들은 아프리카 연구 역량의 실질적인 발전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로티미 박사는 그런 사고를 바꾸려 하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 과학자들에게 자립 능력을 부여하고자 한다. H3아프리카가 추구하는 핵심적 목표는 유럽과 북미의 일류 대학에서 나오는 것만큼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연구를 지원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의 구축이다. 그를 위해 모든 H3아프리카 프로젝트의 연구 책임자는 아프리카인이어야 하며 협력자도 그렇게 되면 이상적이다.그러려면 아프리카 대륙 전반적으로 리서치 역량의 신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단에서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 리서치를 할 만큼 강력한 수단의 컴퓨터, 우간다에서 수면병을 예방하는 SNP에 관한 다량의 데이터를 창출하고 DNA를 저장하는 보관소, 말리에서 유전성 신경질환의 실지조사 기록을 위한 장비, 그와 함께 위험을 키우는 유전적 돌연변이를 규명하는 연구소 그리고 유전학과 질병에 관해 말리 주민에게 교육할 현지 의사 대상 교육훈련 등이다. 보조금 지원이 끝나도 미래의 과학자들이 이용할 설비는 남는다. 그는 “나이지리아에 남기를 원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나 같은 일을 어느 누구도 당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이 같은 혁신적 발전으로 윤리적 딜레마가 모두 개선되지는 않는다. 헬리콥터 과학에 대한 우려는 그리 쉽게 씻겨나가지 않는다. H3아프리카는 아프리카 내 국가간 협력을 장려하지만 리서치 역량이 떨어지는 나라들은 더 앞서가는 나라들을 지원하는 데 소극적이다. 가나의 경우 가난한 연구기관의 일부 과학자는 더 부유한 기관의 과학자들이 공유 샘플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자신들의 공헌을 인정하지 않는 데 불만을 표시한다. 때로는 남아공보다 뉴욕의 과학자들과 공유하는 샘플에 더 많이 기여한다는 과학자들도 있다. 노스캐롤리이나대학의 생명윤리학자 에릭 주엥스트는 “똑같은 문제”라고 말했다. 국제적인 협력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경 너머로 조직 샘플을 보내는 방식이 경제적 경쟁자를 돕는 데 대한 착취 우려와 반감을 초래한다.H3아프리카는 과학자들이 자신의 표본을 더 오래 소유할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그런 우려를 가라앉히려 했다. 유전자 연구의 국제 기준에서는 과학자들이 데이터를 공개하도록 한다. 그러나 H3아프리카는 23개월 동안 독점하면서 경쟁 없이 자신의 데이터에 관한 리서치를 발표할 수 있도록 인정해 주면서 과학자들을 후원한다. 논문을 발표하면 과학자들의 인지도가 높아져 자금후원이 더 많이 몰리고 나아가 국가 수입도 늘어난다. 생체 샘플의 공유 금지 기간은 더 길다. 드브리스 팀은 2015년 그 프로그램의 정책을 설명하는 논문에서 ‘표본은 3년 동안 아프리카의 리서치 역량을 강화하는 연구 목적으로만 사용될 수 있다’고 썼다.하지만 개별적인 과학자를 경쟁으로부터 보호한다고 반드시 환자까지 보호를 받는 건 아니다. 환자는 과거 착취의 최대 피해자들이었다. 자신의 조직을 제공하고 더 나은 치료를 기다리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유전학 연구와 관련된 윤리 지침(나라마다 다르며 H3아프리카 자체적으로 엄격한 규정이 있다)에 따르면 환자들이 연구 목적으로 생체 샘플을 기증할 때는 그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준 뒤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각지에서 사용되는 대다수 언어에는 유전자나 생체검사 같은 전문용어를 가리키는 단어가 없다.그리고 언어장벽을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항상 매끄럽게 이뤄진 건 아니었다. 한 과학자는 좋은 의도에서 눈의 색깔을 예로 들어 유전을 설명하는 교육재료를 개발했지만 갈색 눈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인 아프리카 대륙에선 효과가 없었다. 게다가 정보가 너무 전문적일 경우 환자들은 귀를 닫는다고 나이지리아의 아부자대학에서 H3아프리카 후원 유방암 연구를 실시하는 오게추쿠 이쿠웨메 간호사는 말했다. “유전학에 관해 자세하게 말할 때는 사실상 소 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다.”부족 원로의 허가를 요하는 지역사회의 위계구조와 남녀 역학도 개인의 동의 능력에 제약을 준다. 이런 문제가 각지의 과학 연구에 만연할 뿐 아니라 빈곤, 낮은 교육수준, 열악한 건강의료 서비스, 언어장벽, 문화적 제약 등 아프리카의 전체적 환경이 그런 우려를 증폭시킨다. 로미티 박사는 종종 자신의 조사에 등록하는 여성들에 관한 의문과 씨름한다. “남편이 시켜서 참가하는 건가, 아니면 자발적인 건가?”그 문제의 해결이 아프리카 대륙뿐 아니라 과학 전체를 위해 H3아프리카의 본질적인 존재가치와 직결된다. 드브리스 교수의 시각으로는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과학적 우월성의 땅으로 바꾸는 것은 “과학적 우월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좌우된다.” 아프리카의 연구소에선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을 24시간 만에 이뤄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그러나 우월성이 반드시 기술적 역량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드브리스 교수는 “아프리카의 과학자들은 환자와 지역사회의 요구를 훨씬 더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쿠웨메 간호사가 자신의 유방암 환자들에게서 직접 경험하는 현상이다. 그들은 그녀에게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녀가 자신들에 관심을 갖는지 느끼고자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연구에 마음 편히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아프리카의 전통 지역사회는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한다. 가령 연구에 혈액을 기부할 때 종종 환자 커뮤니티와 상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쿠웨메 간호사는 “이들 환자에게서 정말로 최선을 원한다면 직접 그들과 교류해야 한다”고 말했다.로티미 박사가 추구하는 변화를 실현하는 데 성공할지는 불확실하다. 프로그램은 현재 2차이자 마지막 펀딩 단계에 있다. 과학자들은 외부 세계와 보조금 유치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부족했던 정부의 지원 또한 필요하다. 로티미 박사는 세계은행에 지원을 요청했으며 보조금 지원 신청을 받아 아프리카인 과학자들이 심사하는 과정을 관리하는 새 사무국이 현재 케냐 나이로비에서 운영 중이다.어디서나 과학자들의 운명은 정부의 손에 달렸지만 아프리카의 상황은 특히 더 심각하다. 지금까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대 전역의 국가 정책입안자들은 연구의 가치를 인정해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현재 61세로 H3아프리카를 일생일대의 업적으로 간주하는 로티미 박사는 정치로 인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한다. 그는 “필시 나쁜 정부가 아프리카의 공중보건에 첫 번째 위험 요인”이라고 말했다.그것은 더 큰 위험도 제기한다. 유전체 연구가 2009년 이후 아프리카 DNA에 더 포용적이 됐는지를 검토한 2016년 연구에서 3%의 증가에 그쳤다. 당시 완성된 전 유전체 연관분석 조사 2511건 중 소수인종이 포함된 비율은 19%에 불과했다. 논문 작성자인 워싱턴대학 생명윤리학자 S. 말리아 풀러튼 교수는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역사의 개혁에 의학의 미래가 달렸다.- 제시카 웨프너 뉴스위크 기자

2018.08.06 14:52

15분 소요
‘진짜’ 완벽한 비밀 보장되는 통신

산업 일반

중국 전역에 양자암호를 전송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 … 각료와 군 간부 600명 이상이 비밀 통신에 양자암화화 링크 사용해 나치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열쇠가 통신 보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밀 통신에 암호를 사용하기 위해 그들이 중시한 기술은 ‘에니그마(Enigma, ‘수수께끼’라는 뜻)’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 전차부대와 대사관, 잠수함이 무선 메시지를 주고받는 데 사용한 암호화 기계를 말한다. 에니그마를 사용한 암호 시스템은 완벽해 그 기계 없이는 누구도 암호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그들은 굳게 믿었다. 그러나 영국의 젊은 수학자 앨런 튜링은 숫자 조합 수천 가지를 체계적으로 시도함으로써 뜻이 통하는 메시지를 찾아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면 그 암호를 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2014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이 그 과정을 그렸다).그 결과가 세계 최초의 컴퓨터 ‘튜링 머신’이었다. 결국 독일의 암호화된 메시지 코드를 해독할 수 있는 영국의 능력이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이제 ‘양자암호화’ 기술 덕분에 ‘진짜’ 완벽한 비밀이 보장되는 통신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온라인 사기와 신원 도용, 해킹 공격, 전자 도청에서 세계를 해방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면 테러리스트와 범죄자도 아무도 모르게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또 불량한 정부도 음모나 비리와 관련된 비밀을 아무도 알아내지 못하도록 숨길 수 있다. 그처럼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화 기술의 세계에선 인간의 모든 전자식 통신이 완전히 비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사이버 보안 측면에선 희소식이기도 하고 아주 골치 아픈 일이기도 하다.지난 9월 29일 그런 세계가 현실에 바짝 다가왔다. 중국 과학원의 암호전문가·물리학자 팀이 양자암호화 기술을 사용해 오스트리아 빈의 상대방과 30분 동안 화상통화를 했다. 통화 내용을 해킹하거나 도청하기가 불가능한 기술이다.영국의 한 고위 정보 관리(민감한 문제라 익명을 요구했다)는 “최근의 모든 기술혁신 중에서 가장 흥분되기도 하고 가장 우려되기도 하는 것이 새로운 암호화 기술”이라고 말했다. “세계를 바꿔놓을 수 있는 기술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으로선 양자기술의 주요 혁신이 미국 뉴욕 주 아몽크 소재 IBM이나 캘리포니아대학(구글이 지원한다), 네덜란드 델프트공과대학(EU가 지원한다) 같은 서방의 대학이나 기업에서 나오고 있지만 그 혁신의 ‘실행’ 측면에선 중국이 서방보다 훨씬 앞서 있다.베이징-빈 화상통화는 스카이프 방식의 인터넷 연결을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혁신적인 것은 중국이 쏘아올린 위성에 탑재된 양자기기에서 생성된 암호키였다. 무엇보다 양자물리학으로 암호키를 생성했다는 사실은 암호를 해독하려는 어떤 시도도 즉시 탐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기존 광통신과 달리 다수의 빛 알갱이가 아닌 단일 광자를 이용하기 때문에 제3자가 중간에서 정보를 가로채려 할 경우 송·수신자가 이를 알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교수로 중국인이 사용한 양자통신 시스템의 기본 모델을 발명한 아터 에커트는 “양자암호는 해킹이 불가능한 암호에 최대한 근접한 형태”라고 설명했다. 에커트 교수의 암호화 방법은 ‘양자 중첩성’(quantum entanglement, ‘양자 얽힘’이라고도 한다)으로 알려진 양자의 특이한 효과를 바탕으로 한다. 서로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존재적으로 연결돼 있어 한 입자의 상태가 확정되는 즉시 다른 입자의 상태도 변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두 입자가 항상 반대 방향으로 돈다고 가정할 때 측정 전까지는 두 입자의 상태를 알 수 없지만 한 입자를 측정하는 순간 그 입자 상태가 결정되면서 마치 그 정보가 순식간에 전달되는 것처럼 다른 입자 상태를 결정하게 된다. 이 현상은 너무나 기이하고 설명이 불가능해 이를 발견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당황했다. 1935년 아인슈타인은 이 효과를 두고 “유령 같은 원격 작용”이라고 묘사했다.그런 작용이 정확히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현상은 1984년 IBM의 찰스 베넷 박사와 캐나다 몬트리올대학의 자일스 브라사드 교수에 의해 실험실에서 시연됐다. 지난 9월 말의 베이징-빈 화상통화 실험에서 놀라운 점은 과학자들이 양자 중첩성을 이용해 일련의 데이터 조각으로 구성된 암호키가 지구상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동시에 나타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다.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양자통신은 빛의 최소 단위인 광자에 정보를 실어 보내는 기술이다. 광자는 기본적으로 전자기파다. 전자기파는 여러 각도로 전달되는데 이 각도들이 양자의 정보가 된다. 광자의 양자 정보를 전송하려면 먼저 그 양자 정보를 다른 광자에 보낸다. 이 정보는 양자역학적으로 ‘중첩(얽힘) 상태’에 있는 또 다른 광자의 상태를 변화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돌다리를 순식간에 건너듯 양자 정보를 안 보고 전송할 수 있다.더구나 판젠웨이 중국 과학기술대 교수가 이끈 중국팀은 완전히 실행 가능한 현실 세계의 양자암호화 통신 시스템을 만들었다. 중국팀은 기지국과 위성, 수천㎞에 이르는 광섬유 케이블을 연결해 중국 전역에서 양자암호키를 전송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 산하 산학연구센터 JQI에서 원거리 양자통신을 가장 먼저 연구한 찰스 클라크 교수는 “그 기술은 새로운 물리학 원칙을 발견하지 않아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상적인 점은 중국팀이 그 시스템이 실행될 수 있도록 만든 규모와 거리다. 클라크 교수는 “아주 멋진 시연이었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는 모든 암호화 기술이 기본적으로 에니그마처럼 적의 기술적 역량을 넘어서는 수학적 수수께끼를 만드는 것을 바탕으로 했다. ‘공개키 기술’로 불리는 지금의 암호화 표준은 에니그마보다 훨씬 복잡하다. 현재 그 기술은 모든 인터넷 인증과 왓츠앱 등 ‘안전하다’고 알려진 통신 응용프로그램의 기본이다.그러나 실제론 에니그마와 똑같은 원칙에 의존하는 기술이다. 두 방식 모두 신호의 암호화와 해독에 필요한 키가 컴퓨터에 의해 생성되며 양측으로 동시에 전달된다. 따라서 컴퓨터 성능만 충분히 좋다고 가정하면 누군가가 그 키를 해킹할 수 있다.그에 비해 양자암호화는 그런 기술 경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바꿔놓는다. 컴퓨터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해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에커트 교수는 “수학적 시스템과 달리 양자암호는 물리학 법칙에 의존하기 때문에 해킹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해독 불가능한 키를 생성하는 장치인 ‘양자암호키 분배기기’는 해킹과 신원 도용을 완전히 없앰으로써 세계의 전자상거래와 데이터 보호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어줄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양자암호화 기술의 최대 투자자는 전 세계의 군대와 정보기관이다. 중국의 인민해방군과 미국 국방부가 대표적이다. 절대 우연이 아니다. 클라크 교수는 “모든 유익하고 아름다운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양자기술도 군과 정보기관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고 말했다. “이 기술을 가장 먼저 정복하는 국가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통신 분야에서 단기적으로 중요한 이점을 갖게 될 것이다.”판젠웨이 교수의 작업이 바로 그런 일이다. 그는 중국 정부를 설득해 양자통신용 위성인 ‘묵자호’(기원전 전국시대의 중국 사상가 이름을 땄다)를 지난해 8월 지구 저궤도에 쏘아 올리고 지상에 거대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수억 달러를 투자하도록 했다(프로젝트에 투입된 정확한 비용은 서방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묵자호에서 매초 800만 쌍의 광자를 생성해 티베트 고원의 1200㎞ 떨어진 2곳의 과학기지에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전송 속도는 지상 광케이블보다 1조 배나 빨랐다). 아울러 지난 9월 베이징에서 산둥성 지난과 안후이성 허페이를 관통해 상하이를 연결하는 2000㎞의 세계 최장 양자통신 네트워크도 개통했다.중국의 암호화 기술 개발에 정통한 고위 보안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의 각료와 군 간부 600명 이상이 모든 비밀 통신에 양자암호화 링크를 사용한다. 민감한 문제라며 익명을 요구한 그는 “중국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추진할 전략적 비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양자암호화가 미래다. 중국군은 이 기술을 정복할 수 있는 자원과 비전을 갖췄다.”묵자호가 지구 저궤도에 띄워졌다는 사실은 중국의 광섬유 케이블 시스템에 연결되지 않은 사용자는 중국 안에서 다른 키 소유자와 통신하는 데 필요한 양자암호키를 수신하기 위해 위성이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판젠웨이 교수는 지난 8월 한 과학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이 앞으로 5년 안에 고도 2만㎞의 궤도에 새로운 양자통신 위성을 띄워 지구 표면의 훨씬 더 넓은 부분을 서비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까지 건설될 중국의 유인 우주정거장은 운영자가 관리하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실험용 양자통신 장치를 갖게 될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지구 전체를 서비스할 수 있는 지구 정지궤도 위성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양자암호화 기술을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나라는 지금까지 중국 외엔 없다. 클라크 교수는 “진입 장벽이 아주 높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서방의 한 사이버보안 전문가(그 역시 정부를 비판하는 민감한 문제라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했다)도 “지구 정지궤도를 따라 양자통신용 위성 네트위크를 구축하는 것은 과거의 달 유인탐사나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규모가 엄청나고 획기적인 사업”이라며 클라크 교수의 지적에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 서방엔 장기적인 과학 프로그램에 그 정도 규모의 투자를 할 만한 비전을 가진 정치인이 없다. 중국이 이 게임에서 선두를 달리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사이버전쟁 무기 개발을 위한 암암리의 치열한 군비경쟁에 돌입했다. 전화와 전기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부터 적의 비밀을 훔치는 구식 스파이 게임까지 경쟁은 다양한 분야에서 펼쳐지고 있다. 단기적으로 볼 때 양자암호화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고 해서 현 세계의 주요 취약점(부적절한 암호화가 아니라 기본적인 인터넷 보안마저 결여된 어처구니없는 상태를 말한다)이 메워지진 않을 것이다. 잘 알려졌듯이 얼마 전까지 만해도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또는 심지어 백악관 같은 아주 민감한 시스템이 엉성한 비밀번호와 허약한 백신 소프트웨어로만 보호됐다. 2015~16년 러시아가 지원한 사이버범죄단이 미국 대선과 관련된 해킹에서 이용한 것으로 알려진 취약점이 바로 그런 예다. ‘미국 정부가 민간인을 전방위적으로 감시한다’는 국가안보국(NSA) 전 계약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가 보여주듯이 현재 서방의 정보 수집 표적은 대부분 이메일이나 전화 통화의 실제 내용 같은 데이터라기보다는 ‘메타데이터’다. 누가 누구에게 언제 메시지를 보냈느냐 등의 정보를 말한다. 양자암호화의 세계에서도 그런 메타데이터는 계속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사용자 양쪽 말단을 암호화해도 여전히 말단은 남아 있다”는 사실이라고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연구원이자 사이버정책 저널의 편집자인 에밀리 테일러가 말했다. “바로 거기에 취약점이 있다.” 다시 말해 양자암호화 시스템이 아무리 완벽해도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의 전자기기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에 암호화 이전이나 해독 후 누군가 엿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그럼에도 양자암호화가 와해성이 대단히 큰 기술이란 점은 분명하다. 글로벌 통신의 기본 구성요소가 완벽하게 안전하다면 “우리가 거의 모든 것을 의존하는 글로벌 정보·통신 인프라의 주요 시스템적 위험은 논외의 사항이 될 것”이라고 캐나다 워털루대학 산하 양자컴퓨팅연구소의 미셸 모스카가 말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온라인에서 완벽하게 안전해지거나 침투 불가능한 온라인 보안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신용카드 거래, 데이터베이스, 모든 형태의 전자통신 등 잠재적인 사이버 취약점의 많은 부분이 양자암호화로 메워질 수 있다.”다른 한편으로 테러리스트와 범죄자도 양자암호화 기술을 이용할 수 있다. 테일러 연구원은 “모두가 비밀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하지만 만약 모두가 해킹 불가능한 암호화 기술을 사용한다면 테러 방지와 정보 수집이 본업인 기관들로선 일이 아주 불편하고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분명한 점은 중국 연구팀이 ‘양자암호키 분배’가 실제로 가능하며 완벽한 통신 보안을 원하는 국가는 그 프로젝트에 거액을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워털루대학의 양자 연구 개척자인 노르베르트 뤼트켄하우스 교수는 “양자통신에 비법은 없다”고 말했다. “서방 국가들도 중국을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정치적 비전만 있다면 말이다.에커트 교수는 “정보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장악한다”고 말했다. 그런 논리에 따르면 미래는 중국의 것인 듯하다.- 오언 매튜스 뉴스위크 기자

2017.12.04 08:52

8분 소요
“점점 줄어든다” 위기의 남자 그리고 ‘정자’

산업 일반

비만·운동부족·흡연뿐 아니라 일부 환경독소에의 노출로 그 농도가 59.3% 감소 하가이 레빈은 쉽게 놀라지 않는다. 히브리대학 공중위생 연구원인 그는 이스라엘 방위군 역학팀장 출신이다. 대다수 학자 출신 동료들과는 달리 위험한 상황에 익숙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그가 인류의 미래에 의구심을 드러낸다면 귀 기울여 듣는 편이 좋다. 마운트 시나이의 아이칸 의과대학 환경의학·공중보건학 섀나 스완 교수와 함께 지난 수십 년에 걸쳐 남성의 정자 수치를 추적한 대규모 분석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레빈 교수는 “어떤 동물종에게든 생식이 가장 중요한 기능에 속하는데 남자에게 뭔가 큰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지금껏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을지 모른다. 새 생명체를 잉태하는 데는 남자와 여자(또는 적어도 정자와 난자)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수정과 잉태의 의학적·심리적 부담을 떠안는 쪽은 여자다. 라이프스타일 선택이 수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끝없이 해부당하는 쪽도, 생체시계의 불길한 째각거림을 듣는 쪽도 여자다. 여자는 수많은 임신촉진 음식, 특별 요가 동작, 스마트폰에 내려받을 수 있는 온갖 불임치료 앱의 세례를 받는다.2020년에는 세계적으로 210억 달러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불임치료 시장의 표적이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까지도 여자들에게 초점을 맞춰 이른바 불임으로 알려진 여성 수를 집계하는 방법으로 미국 내 불임을 추적한다. 사회학자이자 ‘남성불임·의학·정체성(Conceiving Masculinity: Male Infertility, Medicine, and Identity)’의 저자인 리버티 반스는 “의료 분야 전체가 여성의 불임과 몸에 맞춰 형성된 듯하다”며 “남자를 대상으로 한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임신의 성패가 전적으로 여자 책임이라면 그런 불균형도 이해할 만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 생식의학회(American Society for Reproductive Medicine)에 따르면 불임 사례의 약 40%에서 남성 파트너에게 전적으로 또는 일부 원인이 있었다. 과거의 감염, 내과 질환, 호르몬 불균형 외에도 많은 요인이 모두 이른바 남성 불임 원인이 될 수 있다. 남자는 심지어 나름의 생체시계도 갖고 있다. 남자의 생식력은 30대 중반부터 점차 퇴화한다. 대다수 남자가 죽는 날까지 정자를 생산하지만 40세 이후에 아빠가 되는 남성은 자폐증을 포함해 유전적 이상을 자녀에게 물려줄 위험이 더 커진다. 미국 불임협회(Resolve: the National Infertility Association)의 바버라 콜루라 대표는 “남자가 이 같은 문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남성불임이 보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는 아주 놀라운 증거가 새로 나왔다. 레빈과 스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을 포함해 세계의 많은 지역 전반에 걸쳐 정자 수(남성 생식력의 가장 중요한 지표)가 감소하고 있다. 지난 7월 말 발표된 보고서는 수천 건의 논문을 리뷰한 뒤 1973~2011년 서방 국가 남성의 정자 농도가 59.3% 감소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40년 전 평균적인 서방 남성의 정자 농도는 ㎖ 당 9900만 마리였다. 2011년에는 그 숫자가 4710만 마리로 떨어졌다. ㎖ 당 정자 농도가 4000만 마리 미만이면 정상 이하로 간주돼 생식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정자 수 급감은 심각한 문제다(연구에선 비서방 국가의 남성에게선 큰 폭의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일정 부분 양질의 데이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조사에선 중국과 일본 같은 나라에서 큰 폭의 감소가 있었다). 그리고 근년 들어 감소세가 가팔라졌다. 상황이 악화된다는 의미다. 오랫동안 생식건강을 연구해온 스완 교수는 “상당히 무서운 일”이라며 “이 같은 추세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전에도 정자수 감소에 관한 보고가 있었지만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정자 수에 관한 리서치의 방법론이 제각각인데다 상이한 그룹을 대상으로 드문드문 발표됐기 때문이다. 일부 과학자가 관측한 정자수 감소가 계산착오가 아니라 사실인지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또한 이번 분석 보고서가 많은 논문의 리뷰라는 점에서 그 근거가 되는 조사자료들보다 더 나을 수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리고 그 종합비교 분석의 결론이 정확하다 하더라도 그 평균 정자수는 대다수 남자의 생식력이 여전히 정상인 쪽에 속한다는 의미다. 비록 턱걸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자수가 감소한 나라에선 출산율(fertility rates, 여성 당 출생아 수)도 대폭 감소했다. 올해 출산율 최저를 기록하고 여성 임신 건수가 더는 기존 인구를 대체하지 못하게 된 미국도 거기에 포함된다. 출산만을 통해 한 나라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여성이 평균적으로 대략 2.1명의 자녀를 낳아야 한다(자신과 배우자를 대체하고 덤으로 생식연령까지 살아남지 못하는 자녀들을 감안한 숫자다). 미국의 현재 출산율은 1.8명이며 계속 유입되는 이민에 의존해 인구증가세를 유지한다. 미국 가구 규모는 사회·경제적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다.인구 대체 수준을 웃돌던 출산율은 2007년 대불황 이후 급감했다. 그리고 수년에 걸친 경기회복과 저실업에도 불구하고 감소세는 여전하다. 임신을 원하는 미국 내 커플 6쌍 중 1쌍 가까이가 1년에 걸친 성관계에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불임의 의학적 정의) 조사결과도 있었다. 그런 통계를 감안할 때 경제 불안정 외에 미국인이 원하는 만큼 많이 아기를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인이 있음이 분명해진다. 뉴욕 소재 웨일 코넬 의과대학 비뇨기과 해리 피시 박사는 “출산율 감소를 보면 생식을 담당하는 의사로서 남자의 정자수 감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남성 생식력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기 위해 의료계가 전력투구해야 할 순간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성 생식학자들은 부실한 데이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자수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확정적으로 말해줄 만한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추적 조사가 실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의료계가 여성의 건강의료 수요를 외면해 왔다는 비난을 오랫동안 받아 왔지만(충분히 그럴 만했다) 생식 문제에선 남성의 문제에 관한 연구가 빈약하고 종종 오해를 유발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남성 생식에 대한 위협을 외면하려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남성성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연결될 수 있다는 의구심을 품는 전문가도 있다. 스탠퍼드대학 비뇨기과 마이클 아이센버그 부교수는 이번 정자수 조사를 가리켜 “생식 기능이 떨어진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있다”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정자수 감소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생식뿐 아니라 남성의 전반적인 건강상태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다. 젊은 남자들은 자신이 무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남성 생식계는 의외로 예측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비만·운동부족·흡연 등 현대의 건강하지 못한 기본적 생활양식뿐 아니라 일부 환경독소에의 노출로도 정자수가 대폭 감소할 수 있다. 적은 정자수는 인생의 전성기에서 다른 신체 장기는 모두 건강해 보이는 남자에게도 조기사망의 예고지표일 수 있다. 레빈 교수는 “정자 수 감소는 ‘탄광 내 카나리아(갱내의 유독 가스를 감지해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려준다)”라며 “환경이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말했다. 이는 남자들에게 뭔가 크게 잘못됐을지 모른다는 의미도 된다. 정자 연구는 원래부터 모호했다. 1677년 네덜란드 포목상이자 아마추어 과학자인 안토니 반 레벤후크가 부인과 관계를 가진 후 즉시 정액을 수거해 자신이 직접 만든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더니 수백만 마리의 작은 ‘미소동물들(animalcules)’이 정액 속에서 꿈틀거리며 헤엄치고 있었다. 그 네덜란드인이 인간 정자 세포를 최초로 관측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자 혼자서 배아를 형성하고 난자와 난소는 단지 배양하는 역할만 한다고 주장했다. 반 레벤후크는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사상가의 논리를 따랐다. 여성 파트너는 그저 남자가 제공한 씨앗이 성장하고 아이로 꽃피울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제공할 뿐이라고 믿었다. 19세기에 들어서야 마침내 정자와 난자의 진정한 역할이 밝혀졌다. 생식력 있는 남자의 정자 표본을 확대하면 반 레벤후크가 본 그 모든 꿈틀거리며 ‘헤엄치는 물체들’을 볼 수 있다. 정자 세포의 기능은 단 한 가지, 움직임이다. 어뢰 같은 머리는 남성 파트너가 미래의 자녀에게 물려주는 23개 염색체가 담긴 DNA 조각이다. 거기에 연결된 긴 꼬리 즉 편모의 추진력으로 난자를 향해 나아간다. 모두 정액 안에 있는 세포의 로켓 연료 격인 과당의 힘으로 움직인다.대다수 정자는 난자 근처에 이르지 못한다. 생식력 있는 남성은 정액 ㎖ 당 2000만~3억 마리의 정자를 사정하지만 수십 마리만 목적지에 도달한다. 그리고 단 한 마리만 난자의 세포막을 뚫고 들어가 수정에 성공한다. 질 내의 화학적 환경은 정자를 적극적으로 공격하도록 구성됐다. 정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정액에 담긴 알칼리성 물질이 산성 환경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자수의 역설이다. 한 마리의 건강한 정자로도 아기를 만들기에 충분하지만 그런 역경을 극복하는 데 수천만 마리의 정자가 필요하다. 이는 정자수의 대폭적인 감소가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남성 생식력의 약화를 초래한다는 의미다. 스완 교수는 “평균 정자수의 비교적 작은 변화도 불임 또는 준불임(subfertile)으로 분류되는 남성의 비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남성 불임에 관한 우려는 무미건조한 과학의 영역을 넘어선다. 메릴랜드 주의 불임 치료사 섀런 코빙턴은 “그것은 정력과 생식력의 딜레마”라며 “남자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그리고 세상이 그를 남자로서 어떻게 보는지는 종종 여성을 임신시키는 능력과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자수가 얼마나 감소하는지(그리고 그것이 감소하는지)에 관한 논란이 정중한 과학적 토론보다는 20여 년 이상 계속돼온 치열한 투쟁에 더 가까웠다는 사실도 어쩌면 그리 놀랍지 않다.이 같은 전쟁은 소아 내분비학자 닐스 스카케벡이 남성의 생식건강을 조사하기 시작한 1990년 덴마크에서 시작됐다. 그는 여러 해 동안 고환암 환자뿐 아니라 고환이 기형인 소년의 증가 원인에 관해 고민해 왔다. 그는 정자의 질과 양을 조사하면 환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단서를 얻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1992년 스카케벡 연구팀은 정자수에 관해 발표된 전 세계의 모든 논문을 리뷰했다. 그들의 계산에선 1940년 평균 정자수가 정액 ㎖ 당 약 1억1300만 마리였다. 그리고 1990년에는 그 숫자가 6600만 마리로 감소했다. 아울러 정자수가 2000만 마리 미만인 남자 수가 3배 증가했다. 2000만 마리는 불임이 심각한 위험이 되는 경계선이다. 스카케벡 박사의 1992년 논문은 인류가 계속 번식해 나가는 능력에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회의론자들은 분석의 토대를 이룬 원래 정자연구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그 연구 대상이 된 남성 그룹의 연령과 생식력이 천차만별이었다(정자수는 나이가 들면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불임 클리닉을 찾아가 정자 샘플을 제공한 사람은 가령 정자은행 기증자로 선택받은 건강한 남성보다 정자수가 적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일부 과학자는 옛날 정자수 측정 기법의 정확성이 떨어져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의 정자수가 인위적으로 부풀려졌을 수 있다고 본다. 그에 따라 현재의 정자수 감소 폭이 실제보다 더 커 보인다는 주장이다.그런 이유에서 이번 종합비교분석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스완·레빈 교수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연구팀은 학계 전문가 고증을 거친 7500건 이상의 논문을 꼼꼼하게 검토해 전 세계 4만3000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한 논문 185건으로 범위를 좁혔다. 1973년 이전의 논문을 배제함으로써 신뢰성 떨어지는 옛날 측정치 일부를 제외했다. 그리고 알려진 생식 관련 이상이 있는 남성이나 흡연자 대상의 조사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흡연이 정자수를 줄이기 때문이다. 종합비교분석이 늘 그렇듯 완벽하지는 않지만 현재까지 발표된 최선의 증거이며 그 결론은 충격적이다. 아이센버그 부교수는 “이번 결과를 학계에서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정자수 감소에 관해 일부 설득력 있는 반론이 제기됐지만 이번 논문은 사실상 그런 주장을 상당부분 잠재운다”고 말했다.정자수 감소를 입증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 원인을 알아내기는 더 힘들다. 정자수가 감소하는 동안 서방 국가에서 크게 늘어난 비만이 운동부족과 함께 정액의 질 저하 원인으로 지목된다. 2013년 미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 주에 15시간 이상 운동한 남성의 정자수는 주당 5시간 미만 운동한 남성보다 73% 많았다. 그리고 주당 20시간 이상 TV를 시청한 남성은 TV를 거의 또는 전혀 안 본 사람보다 정자수가 훨씬 적었다.스트레스, 미국에서 증가세에 있는 음주, 그리고 아편 제제 유행 덕분에 늘어나는 마약 복용도 위험 요인이다. 일부 과학자는 스마트폰 같은 기기의 전자파도 정액의 질을 떨어뜨려 정자가 약해지고 움직임이 둔화될 수 있다는 이론을 제기했다. 열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온에서 정자가 죽을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알려졌다. 고환이 몸밖에 위치해 온도를 3℃ 더 낮게 유지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폭염 후 9개월 뒤 출산율이 감소하는 것은 과학자들 사이에 알려진 사실이다. 그에 따라 일부 불임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사실상 정자수 감소의 한 요인일 수 있다고 믿는다.나이도 중요하다. 최근 조사에서 보스턴 소재 베스 이스라엘 디코니스 메디컬 센터의 로라 닷지 박사는 보스턴 지역에서 실시된 수천 건의 체외수정(IVF)을 조사해 남녀의 연령이 성공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려 했다. 여성의 나이가 여전히 지배적인 변수였지만 남성의 나이도 영향을 미쳤다. 여성이 30세 이하인 조건에서 남성 파트너가 40~42세일 때는 30~35세인 경우보다 아기 출생률이 크게 떨어졌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정자의 돌연변이가 많아져 아기가 자폐증과 조현병 같은 질환을 갖고 태어날 가능성이 약간 커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다른 조사와도 맞아떨어진다. 불임이 고령 산모 탓일 수도 있지만 최근 조사에서 미국의 신생아 아빠 나이가 1972년보다 평균 4년 가까이 높았다. 한편 미국의 새 아빠 중 40세 이상이 9%에 육박해 45년 전의 2배에 달했다. 피시 박사는 “우리는 남자의 나이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지금은 생체시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자수 감소의 원인이 단순히 현대의 라이프스타일(비만·운동부족·스트레스·휴대전화·고령출산)일까? 답변의 출발점은 되지만 전부는 아니다. 흡연이 분명 정자수를 줄이지만 미국의 흡연율은 크게 감소했다. 환경 독소의 영향을 의심하는 과학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한 가지 이유다. 특히 비스페놀 A(BPA)와 프탈레이트 같은 화합물에서 검출되는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이 대표적이다.그 이론은 간단명료하다. 이들 화학물질이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의 작용을 모방해 테스토스테론 같은 남성 호르몬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환경 전반의 많은 플라스틱에서 검출되는 이들 화학물질이 민감한 남성 생식계의 회로를 바꿔 정자의 질과 양을 떨어뜨리고 오래 전 스카케벡 박사가 처음 발견한 고환이상을 유발한다. 정자의 생산은 체내 호르몬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따라서 그런 호르몬이 방해를 받으면(가령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에의 노출을 통해) 가장 먼저 정자의 양이나 질의 악화를 통해 그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 미국 아동건강·인간발달연구소의 저메인 루이스 소장 겸 선임 연구원은 “그래도 정자는 생산되지만 숫자가 아버지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고 말했다.이들 화학물질이 정자에 영향을 미치는 증거는 대부분 동물 연구에서 나온다. 2011년 조사에서 매일 BPA 주사를 맞은 쥐는 식염수 주사를 맞은 쥐보다 정자수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았다. 지난해 미국 북동부 야생생물 보호구역 내 어류 대상의 조사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전체 조사대상 작은입배스 수컷 중 60~100%가 고환에서 알을 품고 있었다. 놀랍게도 암컷으로 변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수중 내분비 교란물질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다른 조사에선 프탈레이트가 어린 실험쥐의 웅성화(masculinization, 수컷 성징의 정상적인 발달)를 방해하는 듯했다. 동물 모델은 완벽하지 않지만 텍사스대학 독물학자 안드레아 고어는 이렇게 설명했다. “생식작용은 어느 포유류에서나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 모두 척추동물이며 생식기관과 과정이 같고 똑같은 호르몬으로 비슷하게 발달한다.”실험실 환경에서 인간을 내분비 교란물질에 노출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의 일부 조사에서 환경 속 BPA와 프탈레이트에의 노출 그리고 정자수 감소와 성인 남성 불임 간의 연관성이 밝혀졌다. 미국 의료보험업체 카이저 퍼머넌트의 이대근 박사가 2010년 중국의 공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소변 내 BPA 농도 증가와 정자 수·질 감소 간의 밀접한 연관성이 밝혀졌다. 미국의 일반적인 남성과 BPA 농도가 비슷한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의 또 다른 연구에선 임신을 원하는 약 500쌍의 부부를 추적했다. 남성의 프탈레이트 노출이 생식력 감소와 연관성을 보였다. 이 같은 결과는 모두 연관성(associations)을 나타낸다. 내분비 교란물질에 노출된 남성에서 생식력 저하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지만 그런 화학물질 자체가 명백한 원인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나 그런 연구가 계속 누적되고 있다. 프탈레이트 실험을 실시한 루이스 소장은 “프탈레이트 같은 일부 내분비 교란물질의 경우 생식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뚜렷하다”고 말했다.내분비 교란물질로 자궁이 입는 손상은 더 걱정스럽지만 입증하기는 어렵다. 태아는 산모의 자궁에서 자라나는 과정에서 호르몬과 기타 화학물질 세례를 받으며 사람 꼴을 갖춰간다. 남성 생식계도 예외가 아니다. 고환은 자궁에서 형성되며 정자 수치가 성인기에 바뀔 수는 있지만 대체로 태어나기 전에 정해지는 듯하다. 이는 앞으로 오랫동안 정자수가 계속 감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출생 전 내분비 교란물질에 노출된 남아가 생식연령에 도달해 자신의 자녀를 갖는 과정에서 문제에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내분비 교란물질의 영향을 연구해온 스완 교수는 “이런 트렌드는 역전되지 않았으며 저절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이것이 위기라면 갖가지 연구를 토대로 정자수를 대략적으로 추정하는 통계적 방식의 정확성을 두고 왜 아직도 의료계에서 논쟁을 벌이는 걸까? 정자수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파악하는 조사는 HIV(에이즈 바이러스) 백신 개발 노력과는 다르다. 대표성을 갖는 남성 그룹을 성인기 초반부터 생식연령 내내 추적하면서 동일한 환경에서 정기적으로 정액 표본을 채취하고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에의 노출을 포함한 환경 요인들을 조사하는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그런 장기 조사는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지만 어쨌든 심혈관계 질환과 암 같은 특정 질병의 경우엔 성과가 있었다. 인류의 미래가 어떨지(그런 미래가 있을지)는 깊이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주제인 듯하다. 영국 셰필드대학 남성 생식 전문가 앨런 페이시 교수는 “왜 이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는가”라며 “그냥 답을 찾는 데 집중하자”고 말했다.그러나 정액의 질에 관한 대규모의 종합적인 연구는 자금지원을 받지 못해 왔다. 의사들이 남성에게 정액 샘플 요구하기를 주저하며 대다수 남성도 제공하기를 꺼리는 듯하다. 아이젠버그 부교수가 냉소적으로 말하듯 “피를 뽑는 것보다 훨씬 더 유쾌한 일”인데도 말이다. 스코틀랜드 던디대학 생식의학과 크리스토퍼 배럿 교수는 “남성 불임은 30년 동안 외면당해 왔다”며 “우리가 이해하는 지식은 우표 한 장에 모두 적을 수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평균적인 남성의 지식은 그보다 훨씬 적다. 남성 생식 건강을 다루는 의료전문분야 이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비뇨기과다). 비뇨기과를 방문해 진찰을 받은 사람은 더 적다. 미국 내 비뇨기과 의사는 1만2000명 미만으로 산부인과 의사 수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소수 온라인 포럼 말고는 불임 문제를 가진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실질적인 지원 시스템이 없다. 불임 위험요인에 관한 기본 지식조차 없는 남성이 많다. 지난해 캐나다의 조사에서 남성들은 정자 생산의 잠재적인 위험요소 중 절반 정도만 알아 맞췄다. 비만과 빈번한 자전거 타기 같은 알려진 위협을 대체로 간과했다. 캐나다 몬트리올 소재 주이시 종합병원의 연구팀장이자 논문 대표작성자인 필리스 젤코위츠 박사는 “대다수 남성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남성 불임에 대한 무지는 나름 또 다른 형태의 남성 특권이다. 임신이 거의 전적으로 여성 책임인 양 하는 분위기에서 뭔가 잘못 될 때 모든 부담과 책임을 여성이 덮어쓰게 된다는 의미다. 반면 건강한 임신에 똑같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남성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이 생식력이나 미래의 자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거의 걱정하지 않는다. 불임협회의 콜루라 대표는 “정자 검사는 하지도 않고 여성에게 침습적이고 고가의 불임치료를 받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그에 따라 여성 파트너는 고통스럽고 비싼 불임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동안 남자는 그와 무관한 구경꾼으로 남는다. 하지만 과연 그게 맞는 걸까. 정자 세포는 끊임없이 새로 생산된다. 따라서 정액이 독소와 질병에 극히 민감해진다. 생식력의 시그널을 뛰어넘어 루이스 소장의 말마따나 “혈압처럼” 남성 건강을 나타내는 이상적인 척도가 된다.정자수 감소와 불임은 남성건강이 악화된다는 뚜렷한 신호다. 2015년의 조사에서 불임 진단을 받은 남성은 심장병·당뇨병·알코올남용 같은 건강 이상이 생길 위험이 더 높았다. 또 다른 연구에선 불임과 암의 연관성이 드러났다. 루이스 소장은 “정액의 질은 단순히 부부의 임신에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전체 인구 차원에서 정액의 질이 떨어진 남성은 일찍 죽고 만성질환에 더 많이 걸린다는 증거가 늘어난다. 이는 어떤 질병 못지않게 건강에 중요한 문제다.”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남성 생식건강이 대체로 간과된다는 사실은 신시아 대니얼스가 말하는 이른바 ‘남성 특권의 역설’을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다. 뉴저지 주러트거스대학 정치학자인 대니얼스 교수는 ‘남성 생식의 과학과 정치학(Exposing Men: The Science and Politics of Male Reproduction)’의 저자다. 여자보다 남자를 중시하는 사회에선 필시 정자수와 생식건강에 정확히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지의 규명에 돈과 자원을 쏟아부을 것이다.그러나 그럴 경우 불멸의 존재라는 자부심을 갖도록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남성이 실제론 약한 존재라는, 그리고 남성성에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가 취약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위험이 따른다. 가족 부양 능력 같은 남성성의 다른 부적이 공격 받는 상황에서 생식 문제를 인정하는 것은 남자들에게 더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대니얼스 교수는 “남성 생식건강 문제를 인정하면 남자가 어떤 존재이고 그들이 남성성을 어떻게 얻는지에 관한 사고방식이 드러난다”며 “남성의 진정한 건강 문제에 대처하는 것보다 남성성과 전통적 양성 관계에 관한 사회 규범의 보호가 더 중요한 듯하다”고 말했다.그런 목표를 달성하는 한 가지 방법은 남자들이 자신의 생식 건강에 책임을 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샌드스톤 다이어그노스틱스의 최고연구책임자 그레그 솜머가 트랙을 개발한 것도 바로 그런 목적에서다. 트랙은 남성 스스로 정자수를 측정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다. 남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고 직접 생식력을 측정할 수 있게 하는 여러 가지 유사 DIY 정자 검사 서비스 중 하나다. 이 같은 접근법은 단순히 편리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남자가 병원을 찾아갈 확률이 여자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다른 신체 장기는 모두 건강하게 여겨지는 생식 적령기의 남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남성 불임 위기에 대처하려면 의료계와 자금지원에서 실질적이고 대폭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스완과 레빈 교수의 종합비교 분석 발표 이후 회의론자들의 반박대로 정자수 감소가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는 수준이 되려면 아직 멀었을 수도 있다. 체외수정 같은 인위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늘고는 있지만 수백만 명의 남녀가 매일 아기를 갖는다. 하지만 인구를 대체할 만한 수준의 출산율에 미달하는 나라가 갈수록 증가한다. 세계가 이미 “출산 피크(peak child)”에 도달했다고 한 저명한 인구학자가 경고할 정도다.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증과 걱정을 갖지 않고 살기는 어렵다. 스카케벡 박사는 “거북한 메시지이지만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경종이 돼야 한다”며 “한 세대 안에 변화가 생기지 않으면 우리 손자와 그 자녀들의 사회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물론 우리 손자 세대가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전제 아래서 말이다.- 브라이언 월시 뉴스위크 기자

2017.10.05 20:05

15분 소요
‘의식’ 있는 인공지능이 탄생한다면…

헬스케어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간 진화가 극점에 달하면 그 뒤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릴까? 지난주에 이어 그 해답을 찾아본다. 영국의 튜링 봄베 머신(British Turing Bombe machine, 에니그마 암호 해독을 위해 개발한 기계)은 수학 천재 앨런 튜링과 고든 웰치먼의 발명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블레츨리 파크의 암호 해독자들은 튜링 봄베 머신을 이용해 독일군 에니그마 머신이 만들어낸 암호를 풀어 하루 3000건이 넘는 적의 메시지를 가로챌 수 있었다.우리 개개인이 소수 인터넷 대기업들에 날마다 건네주는 정보(우리의 삶, 사랑, 은행잔고, 필요와 욕구, 습관, 여행 계획)는 다이아몬드 광산과 같다. 구글·페이스북·아마존·트위터는 매 초마다 업로드되는 셀 수 없이 많은 사고와 욕구를 수집해서 원하는 대로 요리할 수 있다.지금은 정보당국이 추적하지 않는 한 저장된 개인 정보를 열람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범죄 용의자로 찍힐 경우 에드워드 스노든이 지적했듯이 키보드를 몇 번만 두드리면 그의 모든 삶이 스크린에 뜬다. 그리고 정부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넘긴 정보를 공짜로 입수했다. 우리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추적장치, 음향 도청장치, 감시 카메라를 자비로 마련했고 또 업그레이드도 받았다. 그 대가로 우리 자신에 관해 돌려받을 수 없는 정보를 건네줬다.2014년 여름, 데이터 보호를 둘러싼 구글과의 투쟁에서 드러났듯이 일단 정부 손에 들어가면 영원히 돌려받을 길이 없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는 한때 정보공유가 새로운 표준이라고 확신했지만 지금은 한발 물러 문은 트위터 메시지 중 80%가 이용자 개인의 경험이었다고 지적한다. 조사 중 연구팀은 피험자에게 자신, 유명인, 또는 일반 주제 중에서 선택하도록 했다.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떠벌릴 기회를 잡으려고 보수(대부분의 경우 1달러 이하)를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분명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몇 센트의 가치를 뛰어넘는 수준의 도파민이 생성되는 듯하다. 소셜뉴스 사이트, 그리고 정신권(의식적 사고의 영역)에는 반가운 소식이다.하지만 IT 전문가들은 모든 사고가 데이터 클라우드로 수렴되는 미래를 예측하고 통계학자들은 인간의 원자화를 목격하고 있다. 우리가 주방과 사무실에 앉아 있는 동안 육체적으로는 존재할지 모르지만 정서적으로는 인스타그램(사진 공유 소셜네트워크)화한다는 의미다. 미국의 13세 소년들은 주당 최대 43시간을 비디오게임으로 보내고 영국의 16~24세는 거의 페이스북이나 기타 소셜네트워킹 사이트에 매달려 있다. 그렇다면 식사 시간과 학교 시간 말고는 다른 일을 할 시간이 별로 없다.하지만 몇 가지 장애물이 있다. 인공지능(AI)과 테크노크라시(기술의 지배)는 모두 선진국의 문제라는 점이다. 다행히 세상에는 다른 세계가 많다. 2013년 말 기준으로 세계 인구 중 5분의 1이 노트북을 보유했다. 20%는 상당히 큰 비중이다. 그리고 PC와 모바일의 사용이 급증하지만 아직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고, 정신권으로 나아가기를 서두르지 않고, 인간 의식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다.1943년 4월 19일 월요일 오후, 스위스 화학자인 알버트 호프만 박사는 에르고타민(ergotomine) 분자를 합성해 만든 새로운 약제 화합물 2억5000만분의 1g을 물에 녹여 마셨다. 1시간여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후 5시 그는 실험실 조수에게 의사를 불러달라고 청한 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호프만이 귀가한 직후 도착한 의사는 환자의 몸은 멀쩡했지만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고 기록했다. 실제로 정신이 천장 어딘가를 떠다니며 자신의 시체라고 생각하는 육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호프만 박사는 약효를 없애기 위해 이웃에게 우유 한 잔을 부탁했다. 이웃은 호프만 박사가 악녀처럼 변하는 모습을 봤다.다음날 아침에도 호프만 박사의 세계는 정상적이지 않았다. 감각들이 다시 태어난 듯하고 앞마당이 평소보다 1000배는 더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듯했다. 자신의 경험을 상사 아르투르 스톨에게 보고한 뒤 두 사람은 동물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다. 엇갈린 결과가 나왔다. 코끼리에게 0.297g을 투여했더니 몇 분만에 죽고 말았다. 고양이들은 개가 아닌 쥐를 더 무서워했다. 침팬지는 침팬지다운 행동을 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호프만 박사는 무리 이탈보다 질서 전복에 대한 침팬지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침팬지 한 마리가 이상하게 행동하자 나머지가 길길이 날뛰었다. 호프만 박사는 우리 안에 ‘큰 혼란’이 일어났다고 묘사했다. 환각 상태에 빠진 거미들은 안절부절못하고 파리 잡는 데 도움 되지 않는 3차원 거미줄을 만들었다.10년 뒤 또 다른 호기심 많은 미래학자 올더스 헉슬리(당시 59세)는 미국 할리우드 힐즈의 자택에서 녹음기, 메스칼린 10분의 4g을 준비해 놓고 부인과 마주 앉았다. 소비의 유혹에 넘어가 국가의 마약에 취하게 된 사람들을 그린 그의 소설 ‘멋진 신세계’는 고전으로 평가 받고 있었다. 헉슬리는 호프만 박사의 LSD-25 실험에 관해 읽은 뒤 그의 주장들이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지 궁금했다.훗날 헉슬리는 ‘인식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에 자신의 경험을 기술하면서 “계속적으로 변하는 종말적 재앙으로 이뤄진 항구적인 현재”를 인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꽃병이 숨을 쉬고 테이블과 의자 다리로 변하는 모습을 한동안 목격했다. 부인이 시간에 관해 묻자 그는 “시간이 많은 듯하다”고만 대답했다.헉슬리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요약했다. “사고력은 여전하고 지각은 크게 향상되지만 의지는 안 좋은 쪽으로 큰 변화를 겪는다. 메스칼린을 복용하면 특정 행동을 하지 않게 되고 평소엔 힘들어도 기꺼이 하던 일에 거의 흥미를 잃었다. 몰아의 마지막 단계에선 전체 속에 모두가 있고 전체가 사실상 각자라는 막연한 인식이 있다.” 헉슬리는 자신이 단순히 환각상태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 4월의 오후는 현실에서의 출발이 아니라 진실에의 도착이었다. “메스칼린이 인도한 세상은 환상이 아니라 저 어딘가에 존재하는 세계였다. 두 눈을 크게 뜨고 그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인식의 문이 드러난다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무한한 실재 모습일 것이다.”“예술과 종교, 카니발과 잔치, 춤과 웅변, 이 모두는 H G 웰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벽에 달린 문’ 역할을 했다”고 헉슬리는 썼다. “식물 진정제, 마취약, 나무에서 자라는 온갖 도취제, 열매에서 익거나 뿌리에서 짜낼 수 있는 환각제는 먼 옛날부터 인간에게 체계적으로 사용돼 왔다. 사람은 자아와 환경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다.” 그는 올바른 정신에 적당량의 환각제를 복용하면 더 깊은 자아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임종을 맞았을 때 편안하게 운명하도록 “LSD, 100마이크로그램, 근육주사”를 아내에게 요청했다.헉슬리가 LSD에서 집단 의식확장의 잠재력을 깨닫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완전히 다른 이유에서 그것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무의식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고급 도구로 간주했다. 1950년대 중반~1960년대 초반 CIA는 심문에 사용하는 무기로 그 용도(마리화나, 코카인, 각성제 스피드, 헤로인, 웃음가스, 버섯, 바비튜레이트와 함께)를 조사했다.마틴 리와 브루스 슐레인의 저서 ‘애시드 드림스(Acid Dreams)’에서 묘사한 바에 따르면 1953년 CIA는 용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에 크게 고무돼 과학자들 스스로 실험할 정도였다. 그해 12월에는 유럽 산도스 연구소에서 10억 명이 복용하기에 충분한 양인 10㎏을 주문했다. 회사 송년 파티에서 음료에 타서 먹는 방법도 고려했다. 하지만 얼마 뒤 한 생물학전 전문가가 환각상태에 빠져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면서 자가실험은 중단됐다.직접 LSD를 실험하기가 두려워진 CIA의 간부들은 대신 매춘부, 죄수, 정신병원 환자 등에게 투약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나 이집트의 압델 나세르에게 투여하면 어떨지 궁금해 했다. 한 동안 미군 시설에 대한 ‘위협상황에서’ 강제 투여해 진실을 말하는 약으로 LSD의 용도를 실험했다. 또한 적국 요원들을 전향시키거나 자국 요원들에게 사용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현장에서 선발된 요원들은 LSD 한 정만 삼키면 곧바로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는 멍청이로 변했다.실제로 그들은 아군에게 LSD(‘EA-1729’) 투약을 시도했다. 미군 병력 1500명에게 그 약을 투여했더니 ‘완전 무력감부터 숙련도의 현저한 감소까지’ 다양한 결과가 나왔다. CIA는 훨씬 더 강력한 환각제를 발견한 뒤에야 실험을 중단했다. BZ(quinuclidinyl benzilate)는 LSD를 뛰어넘어 더 큰 효과를 나타냈다. 이 약을 에어로졸 형태로 한번 뿌리면 피험자가 최대 3일 동안 흥분상태 또는 정신착란 상태에 빠지곤 했다. 그리고 솜씨 있게 투여하면 피험자를 완전히 무력화했다. BZ의 실험대상이 된 한 공수대원은 환각상태에서 회복되지 못했다. 한 동료는 “마지막으로 목격했을 때 그는 군복을 입은 채 샤워하면서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고 전했다.더 강력한 환각제의 도입으로 CIA가 마침내 LSD를 용도 폐기해도 좋은 상황이 됐다. LSD의 효과는 너무 편차가 컸다. 민간인 피험자 중 LSD를 투여 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시설에 수용된 피험자를 대상으로 약을 투여하면서 CIA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요제프 멩겔레가 다하우 집단수용소에서 집시와 유대인을 상대로 한 실험과 똑같은 영역으로 빠져들고 있었다.CIA가 사용을 중단한 뒤 LSD는 히피들 손으로 넘어갔다. LSD가 예술가 집단으로 넘어가면 대중화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지만 웃음거리로 만들기도 쉬웠다. 게다가 1960년대 후반에는 약물남용으로 새로운 그룹이 탄생했다. 약물에 빠져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LSD 희생자들이었다. 록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시드 배럿이 대표적이다.그러나 과학자들의 관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한 가지 문제는 LSD와 다른 사일로사이빈(버섯 추출물)이 정확히 어떻게 작용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가장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는 그것이 두뇌 부위에 간섭한다는 것이다. 전두엽에는 두뇌와 신체가 매초마다 수십억 GB의 데이터를 처리하며 사실상 필터 역할을 하는 부위가 있다. LSD가 이 필터를 조작한다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통과하지 못하는 데이터가 갑자기 대형 스크린에 표시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LSD가 뭔가를 추가하는 게 아니라 없애는 역할을 한다.60년 전의 헉슬리와 마찬가지로 여러 과학자들도 생과 사를 매끄럽게 통과할 수 있는 LSD의 효능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2014년 초 말기병 환자 12명을 대상으로 심리요법과 병행해 사용되는 LSD의 효과를 조사한 연구가 40년 만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앞두고 있었다. 소량을 투여한 사람들은 불안 수준이 높아졌지만 더 많은 양을 투여하면 불안 수준이 낮아지고 마음에 더 큰 평온을 얻었다. 환각여행이 즐거웠든 불쾌했든 간에 말이다. ‘사람들은 약물 복용보다 죽음을 더 두려워한다’고 연구의 주요 후원자 중 한 명이 지적했다.현재 중독 치료법을 찾는 사람들은 LSD의 효능(소량으로 강력한 효과, 비습관성 약물)을 조사한다. 지난 10년 간의 조사에서 알코올 중독에는 표준적인 약리적 치료법보다 LSD가 더 효과적이었다. 2012년 5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선 LSD 복용 후 59%가 알코올 남용 감소와 ‘상당히 유익한 효과’를 나타냈다. 생물학자들은 환각제를 복용한 동안 두뇌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두뇌의 일부 부위는 성탄절처럼 환하게 불이 들어온 반면 다른 부위는 기이하게 어두워졌다. LSD·엑스터시·메스암페타민(MDMA)의 특성을 이루는 환상과 환각을 감안할 때 희한하게도 시각피질이 평소보다 더 활발해지지 않았다. 분위기 조절과 관련된 두뇌 부위에선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스트레스가 줄고 기분이 좋아졌다는 피험자들의 답변과 함께 이는 환각제 중 일부가 우울증·불안·정신분열증에 영향을 미친다는 ORG사실을 뒷받침한다.맨 처음 호프만 박사로부터 출발해 CIA, 예술가와 히피들, 그리고 과학자들이 다시 사용하게 된 이 모든 과정의 최종 목표는 똑같았다. 선의든 악의든, 정당한 수단이든 반칙을 쓰든, 모두가 같은 보물을 찾고 있었다. LSD를 비롯한 환각제는 인식을 여는 도구이고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하는 듯했다. 의식장애(altered consciousness)에 이르는 또 다른 효과적인 방법, 바로 죽음처럼 말이다.오랫동안 사망선고를 받았다가 부활한 환자들의 생생한 경험담은 오랫동안 환각으로 무시됐다. 오래 전에 절단된 팔다리의 통증을 호소하는 환상지증상(phantom limb syndrome)처럼 임사체험(NDE) 주장도 다수가 묵살되거나 인정받지 못했다. 이론상 심장 박동이 멈추고 약 30초 뒤 뇌 기능이 정지된다. 그리고 현재의 정의에선 뇌에서 10분 정도 이렇다 할 활동이 없고 맥박과 호흡이 없으면 사망으로 판정한다. 법적·도덕적·의학적·생리적으로 완전히 저 세상 사람이 되는 것이다.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사후에도 의식이 남아 있는 듯한 사람이 있을 뿐 아니라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이른바 ‘경계 상태(liminal states)’도 있다. 샘 파니아 박사 같은 과학자들의 연구와 신경과학 연구가 맞물리면서 이를 뒷받침해준다. 파니아 박사가 2013년 저서 ‘라자루스 효과(Lazarus Effect)’에서 설명했듯이 “죽음은 심장박동이 멈추고, 호흡이 끊기고, 뇌 기능이 정지될 때처럼 시간대상 어느 특정한 한순간이 아니다. 말하자면 통념과는 반대로 죽음은 순간이 아니다. 시작된 지 한참 뒤에도 중단될 수 있는 하나의 과정이다.”그는 심장마비를 일으키고도 살아남은 환자 33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의학적으로 사망한 지 오랜 후에도 일종의 의식이 있었다는 답변이 39%, 눈에 띄는 모든 두뇌 기능이 멈춘 뒤 사고과정과 기억 등 지각을 분명하고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람이 10~20%였다. 자기 몸을 빠져나오는 상황을 설명하거나 신비로운 경험과 밝은 빛을 묘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환자는 자신의 심장박동이 정지되고 한참 뒤 자신이 누워 있던 병실과 자신을 살리려던 시도를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이들의 경험담 중 다수는 1970년대 레이먼드 무디가 연구를 바탕으로 한 1975년의 저서 ‘다시 산다는 것(Life After Life)’에서 설명한 결과를 뒷받침한다. 책에 소개되는 대다수 방법론과 거의 모든 과학이론은 그 뒤 초자연적 현상(paranormal)에 잘 속아 넘어가는 신봉자가 만들어낸 소설로 평가절하됐다. 하지만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나 사람들이 중간지대에서 한동안 정지된 채 존재할 수 있다는 기본 요점을 받아 들인다면 삶과 죽음을 재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않는 일종의 생리적 연옥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을 떠나 자의식이 어디서 끝나고 더 광의의 의식이 시작될까? 의학에선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로부터 수면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성 단계를 항상 인정해 왔다. ‘글래스고 혼수 척도(GCS)’는 신체적 의식의 평가에 가장 근접한 등급이다. 각종 자극에 대한 환자의 반응에 기초해 각 단계에 15점 만점으로 등급을 부여한다. 환자가 고통으로 몸을 움츠리고, 구두 명령에 반응하고, 주변 환경을 인식하면 높은 점수를 받는다. 3점 이하는 없다. 3점을 받으면 다음 단계는 사망이다.GCS 척도는 모든 게 그렇듯 오류가 없지는 않지만 거의 보편적으로 사용될 만큼 유용성이 입증됐다. 외상성 뇌손상 환자의 절반 가까이는 술 아니면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마취과 의사나 외과 의사의 작업이 복잡해진다. 설상가상으로 고통에 대한 신체적 반응이 없다고 해서 반드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수면 중 뇌가 신체 기능을 정지시키는 시기가 있듯이 마취과 의사가 신체 반응을 정지시키면서도 정신적 과정이나 감각은 멀쩡하게 남겨둘 수 있다.따라서 의식을 일련의 속성이나 능력이 아닌 면들이 상하로 겹쳐지는 형태로 보는 편이 더 쉬울 수도 있다. 아주 광범위하게 말해 대양 해류는 지구를 벨트 형태로 순환한다. 극빙은 차가운 물을 덮고 있는 따뜻한 물 위에 깔린다. 마치 바다가 이음매 없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강물이 모두 서로 미끄러지며 뒤섞이듯이 말이다. 누구나 한번은 발은 따뜻하고, 무릎은 미지근하고, 가슴은 차가운, 온도가 제각각인 물 속을 헤쳐 나간 느낌이 있다.어쩌면 의식도 그와 같을지 모른다. 어쩌면 겹겹이 쌓인 자아의 바다 속을 우리 모두가 헤엄쳐 나가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수면 위에서 일광욕을 하고, 때로는 수면 또는 혼수 상태에서 침묵 속으로 깊숙이 잠수하는 식이다. 비유에 지나지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의식 상태를 묘사할 때 바다가 항상 끼어드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잠에 빠져들다(falling to sleep)’ ‘깊은 혼수상태(deep trance)’ ‘무의식으로의 침잠(descents into oblivion)’ 등. 어쨌든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혼수상태와 인공호흡기 착용 상태 중 두뇌의 작동방식에 대해 비슷한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경세포의 행동양식을 수중 음파탐지기와 비슷하다고 묘사한다. 의식이 완전히 깨어 있을 땐 음파탐지기가 켜진다. 신호가 뚜렷해 모두에게 들린다. 무의식 상태일 때는 음파탐지기가 켜져 있고 신호를 보내긴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도 나가지 않는다. 두뇌의 심해에서 반짝이는 작은 불빛과 에너지로 제자리에 머물며 어둠 속에서 홀로 불꽃을 피운다. 그리고 혼수상태에서도 음파탐지기가 여전히 켜져 있지만 신호는 고장난 상태다.뇌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항상 외경심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신경과학자들은 정확히 무엇이 또는 누가 뇌를 움직이는지에 관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의견이 분분하다. 신경과학자 수전 그린필드는 학창시절 인간의 뇌를 처음 들여다봤을 때를 이렇게 묘사한다. “무엇보다도 포르말린 냄새가 난다. 정말 끔찍한 냄새다. 코를 찌를 정도로 고약하지만 그것은 절개할 때 뇌를 단단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플라스틱 밀폐용기에 고무장갑을 보관해 둬야 한다. 그것을 손에 들고 ‘맙소사, 이것은 사람이었어’라고 생각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절개 준비가 됐을 경우엔 한 손으로 들 수 있다. 갈색 비슷하며 마른 혈관들이 보인다. 호두 같은 모양새다. 주먹 쥔 양손 같은 2개의 반구로 이뤄졌다.”의식은 “육체로부터 분리돼 제멋대로 떠돌아다니는 요소는 아니다”고 그녀는 믿는다. “나는 범심론(panpsychism)을 믿지 않는다. 범심론은 의식이 우주로 환원하려는 특성을 지니며 우리의 뇌는 그것을 포착하는 위성 접시 같다는 이론이다. 그것을 반박할 수는 없지만 의식은 두뇌와 육체의 산물이라고 가정할 경우 두뇌가 변하면 의식의 변화도 불가피하다.”마찬가지로 그녀의 친구이자 옛 동료인 신경과학자 헨리 마시도 2014년 회고록 ‘해치지 말라(Do No Harm)’에서 무엇이 정신에 속하고 무엇이 뇌에 속하는지를 둘러싼 논란을 가리켜 “헷갈리는 문제이며 궁극적으로 시간낭비”라고 평한다. “내게는 의식이 문제로 보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경외, 경탄, 커다란 놀람의 원천일 뿐이다. 내 의식, 자의식, 공기처럼 자유롭게 느껴지는 자아, 책을 읽으려 애쓰는 대신 높은 창문 밖의 구름을 바라보는 자아, 지금 이 같은 글을 쓰고 있는 자아가 실제론 1000억 개 신경세포의 전기화학적 재잘거림이라는 점에서 말이다.”일부 신경수술은 국부마취 상태에서 하는 편이 낫다. 환자의 의식이 깨어 있어 수술하는 내내 질문에 답변한다는 의미다. 뼈로 이뤄진 케이스 안의 두뇌를 내려다보면서 그 주인과 대화하는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야릇하고 기적 같겠는가? 테야르 드 샤르댕은 고생물학자의 사고방식과 광범위한 주제를 넘나드는 감각을 지녔다는 점에서 필시 신경수술을 좋아했을 성싶다. 그러나 뇌를 절개하면 의식의 본질에 정말로 더 가까워질까? 두뇌가 자아의 요람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알츠하이머 같은 뇌질환이 자아의 구성요소를 좀먹는 이유일까?던컨 맥두걸 박사는 의식과 영혼이 서로를 맞바꿀 수 있을 뿐 아니라 둘 다 무게를 잴 수 있다고 믿었다. 1901년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의사로 일하며 결핵 말기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환자들의 임종 과정을 거의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중증 환자 6명의 침대를 천칭 위에 올려 놓는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테스트했다. 환자들이 사망하는 순간 그들의 몸이 가벼워졌다고 그는 주장했다. 또는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생명이 멈추는 순간 반대쪽 저울판이 갑자기 떨어져 우리를 놀라게 했다. 마치 몸으로부터 뭔가를 갑자기 들어올린 듯했다. 곧바로 다른 요소 들을 하나하나 제하면서 체중이 얼마나 줄었는지 계산했다. 딱 28g의 체중이 감소한 것으로 밝혀졌다.이것이 영혼에 질량이 있다는 증거라고 맥두걸 박사는 말했다. “본질적인 문제는 계속적으로 개성과 의식의 토대를 이루는 물질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공간을 차지하는 물질이 없다면 육체적 사망 이후 개성 또는 지속적 의식을 가진 자아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맥두걸 박사는 개 15마리와 생쥐 여러 마리를 대상으로 똑같은 가설을 검증했다. 모두 체중 변화가 없었다. 그는 이것이 사람에게만 영혼이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맥두걸 박사의 표본이 적어(처음 6명의 환자 중 2명이 제외됐고, 2명은 사망 후 체중이 더 줄었고, 한 명은 더 늘었다. 따라서 그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1명만 남았다) 실험은 곧 신뢰성을 잃었다. 불운한 15마리의 개는 원치 않는 약물로 죽었다.맥두걸 박사의 실험은 대부분 비이성적이거나 잔인했다. 그 전후의 수많은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두 가지 문제에서 제 발에 걸려 넘어졌다. 첫째는 질량이 없는 건 존재할 수 없고, 둘째는 영혼이 의식과 같으리라는 점이다. 바로 이 문제에서 모든 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파우스트의 영혼을 팔고 성찰하는 이야기들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수량화할 수 없는 존재가 사실적인 형태로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하는 데 있다. 하지만 스토리조차 도달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따라서 오메가 포인트에 관한 샤르댕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고 틀렸을 수도 있다. 그의 이론은 내용보다는 과학, AI, 신성을 합성했기 때문에 주목 받는다. 그의 이점은 그가 여러 학문을 아우르는 통섭주의자이자 더 나은 천국을 바라는 오랜 희망에 구호를 제공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의 정신세계는 더 많은 의문을 풀기 위한 출발점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수렴의 포인트를 계시의 순간, 신을 향한 최후의 통합적인 비상으로 상상했다. 그러나 그의 말이 옳다고 해도 우리 모두 자유 의지를 갖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우주를 향한 전환점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전환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벨라 배서스트 뉴스위크 기자

2016.03.27 08:59

14분 소요
FEATURES ORGANIZED CRIME - 마피아 피자 드릴까요?

산업 일반

이탈리아 범죄조직이 로마의 음식점들을 접수한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 한복판에 있는 그림같은 레스토랑 피자 치로. 전성기 때 유명했던 화려한 타일과 고대 나폴리 풍경화 모방 작품들이 아직도 걸려 있다. 스페인 계단(스페인 광장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트레비 분수 사이에 자리잡은 이 피자 가게는 굶주린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맛집이었다.하지만 이젠 옛 추억일 뿐이다. 최근의 어느 평일 점심시간, 손님이라곤 일본인 관광객 4명뿐이었다. 나폴리의 포크음악에 이끌려 들어온 듯했다. 일본 여성들은 텅 빈 홀 안의 작동하지 않는 대형 평면 스크린 TV 바로 아래 앉아, 피자를 먹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면 아마 이들의 얼굴 표정이 금방 굳어버릴 듯하다.10년 넘게 영업을 하던 그 피자 가게가 지난 1월 이탈리아 당국에 압류됐다. 로마 중심부의 다른 26개 음식점 및 카페도 함께 걸렸다. 경찰이 대대적인 마피아 일제단속을 벌였다. 90명을 체포하고 3억5000만 유로 상당의 자산을 압류했다. 범죄조직 소유로 알려진 피자 가게들도 포함됐다. 그들은 마약밀매·갈취·고리대금업으로 얻은 불법 자금을 피자점에서 세탁했다.하지만 치로를 포함한 자산뿐 아니라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까지 다시 범죄조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자산들은 현재로선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동결된 상태다. 일본여성 4명이 낸 피자 값이 언젠가 카모라 조직 범죄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카모라는 무자비한 나폴리판 마피아다.시칠리아의 원조 마피아, 은드란게타와 함께 이탈리아의 3대 범죄조직으로 손꼽힌다. 은드란게타는 이탈리아 서남단에 근거를 둔 칼라브리아 범죄 조직이다. 이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긁어 모은다. 그중 많은 돈이 로마의 합법적인 사업체에서 세탁된다고 검사들은 말한다. 사업체 중 일부는 의회와 정부 청사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미켈레 프레스티피노는 마피아 잡는 베테랑 검사다. 2006년 시칠리아 마피아의 보스 중 보스인 베르나르도 프로벤자노의 체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월의 일제 단속은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본지에 말했다. 카모라의 새 사업방식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카모라 조직은 이제껏 유령 회사와 바지사장을 내세웠다. 마피아의 고전적인 수법이다. 그러나 요즘엔 건전하고 흑자를 내며 합법적인 사업체와 은밀하게 제휴를 맺는다. 이들 합법적인 사업체들이 마피아의 대규모 금융거래를 정당화할 수 있다.문어발 사업“로마에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한 사업주 가족과 나폴리의 가장 막강한 카모라 가문 하나 간의 상징적인 연합이 이번 피자 가게 일제단속에서 드러났다.” 이번 수사를 지휘하는 로마 검찰청의 프레스티피노 차장검사가 인터뷰에서 말했다. 프레스티피노에 따르면 로마에 뿌리내린 마피아의 규모는 추산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 로마에는 범죄조직들과 간접적으로 연계된 자산이 상당히 많다”고 그가 말했다.사브리나 알폰시 로마 중앙구청장은 이렇게 말했다. “로마 상가지구에 있는 음식점과 술집의 70% 가까이를 조직범죄가 장악했다고 여겨진다.” 마피아 조직들이 로마 사업체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수입이 연간 10억 유로 즉 1조4600억 원을 넘는다. 로마에 있는 LUISS 대학의 통계다.마르코 제노베세는 반마피아 비정부단체 리베라의 지역 대표다. 경찰의 이번 일제단속으로 로마가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현실에 눈을 뜨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로마의 마피아 관련 자산 압류에서 가장 큰 성과는 그 문제를 세상에 알렸다는 점이다. 그러나 할 일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고 그가 말했다.사람들은 마피아에게 피자를 주문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가능성이 있다. 마피아의 광범위한 영향력은 그들을 가리켜 부르는 이탈리아인들의 완곡표현이 단적으로 말해준다. 라 피오브라, 넓게 멀리까지 발을 뻗는 대형 문어다.피자 치로는 메르세데 거리의 정부 청사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 있다. 그 앞을 끈질기게 배회하는 기자를 본 웨이터가 입구 쪽으로 다가왔다.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그가 걱정스러운 투로 그리고 다소 사과조로 정중하게 말했다. 치로는 로마에 세 곳, 나폴리에 한 곳을 포함해 총 4개 지점이 있다. 모든 웨이터와 요리사가 조직범죄와 관련이 있는지 검사의 조사를 받는 중이다.웨이터들을 비롯한 직원들의 움직임은 직업적이고 분주했다. 하지만 과거 피자 치로에서 식사했던 사람들이 묘사한 분위기는 달랐다. “거기서 점심식사를 하곤 했는데 직원들의 행동이 직업적이 아니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웨이터들이 허둥지둥 서빙을 하는 모습이 전혀 웨이터로 보이지 않았다.” 인근에서 근무하는 한 기자가 말했다(안전상의 이유로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웨이터와 범죄자피자 치로의 이야기는 지난 1월 압류된 다른 피자 가게들과 비슷하다. 푸마롤라 드링크, 수고, 자마 자 등 이들의 나폴리 방언 이름은 원래 그 도시의 피자 요리 전통을 떠올리게 하려는 취지다. 대신 최근 수십 년 사이 마약시장을 확고히 장악하면서 부상한 범죄 가문들의 세력 확장을 연상케 한다. 이들 피자점들은 이탈리아 남부의 마피아 조직들이 어떻게 전통적인 근거지를 벗어났는지 보여준다. 그들은 이탈리아 각지로 촉수를 뻗어 로마의 소매 상거래 중 상당한 몫을 집어삼켰다.“로마의 방대한 사업활동 덕분에 마피아 단체들의 존재를 위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 로마에는 대규모의 현금 흐름을 합법화할 수 있는 사업이 많다”고 프레스티피노가 말했다. 이들 기업은 대단히 효율적으로 손쉽게 돈 세탁하는 방법을 범죄자들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누가 악당인지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착한 기업들이 있으며, 완전히 마피아 그룹의 수중에 들어간 나쁜 기업들이 있는가 하면, 그 중간쯤에 위치한 기업도 있다”고 프레스티피노가 덧붙였다.마피아 담당 검사들은 도시의 상당수 상점과 상업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급속도로 주인이 바뀐 곳들이다. 새 주인은 주로 이탈리아 남부 출신이다. 다수가 곧바로 직원과 납품업자들을 자기 지역 출신들로 교체한다. 그뒤 친척들 또는 범죄가문 측근들을 고용한다. 종종 그들을 합법적인 사업주인 양 내세우기도 한다.치로를 통해 돈세탁한 혐의를 받은 사람들의 행동 패턴은 달랐다. “나폴리의 대단히 막강한 카모라 그룹이 로마의 어느 사업가 가문과 오랜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 허수아비가 아니라 로마 식품시장에 확고한 기반을 구축한 진짜 사업가들”이라고 프레스티피노가 말했다.이들 리기스 가문은 오랫동안 로마의 수익성 높은 식품산업 분야에서 전문으로 활동해 왔다. 이들이 콘티니 카모라 가문의 실질적인 파트너가 됐다고 알려졌다. 식품산업은 매년 로마를 방문하는 수백 만 명을 대상으로 호황을 구가하는 사업이다. 그 시장에 관한 지식과 투자 기회를 카모라 가문에 제공했다. 그 대가로 리기스 가문은 보호, 무노조 인력, 그리고 종종 불법적인 식자재 조달의 혜택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예를 들면 카모라가 장악한 나폴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 등이다. 상류층 마피아들의 해외 진출마피아들이 이탈리아 남부에선 난폭한 폭력범죄를 자행하지만 로마에선 그와 정반대로 소란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자세를 낮춘다. 당국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서다. 일부 범죄조직은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조약을 맺었다고 전해진다. 역시 눈길을 끌어 득 될 게 없다는 계산에서다.그들은 전통적인 돈세탁 전략에서 탈피했다. 더는 교외의 담배 연기 자욱한 술집, 싸구려 호텔, 또는 퇴락한 스트립 클럽에 투자하지 않는다. 이런 사업체는 돈을 벌기보다는 비축해두기에 좋았다. 요즘 마피아들은 갈수록 돈벌이가 예상되는 고급 요지와 근사한 음식점들을 선택하는 추세다.검찰 조사 결과 콘티니 가문이 간접 소유한 피자점들이 상원 바로 코 앞에 있었다. 심지어 전국 마피아 단속 검찰 본부 가까운 곳에 마치 놀리듯이 자리잡은 매장도 있었다. 이들의 배후에 정말 누가 있는지 몰랐다고 탓할 수는 없다.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피자 치로의 입구에 아직도 사진이 걸려 있는 부자와 유명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몰랐다. 그 중에는 여배우, 축구선수, 심지어 마리오 몬티 전 총리, 마피아 검거로 유명한 안토니오 인그로이아 검사도 있었다.2010년 당국이 카페 드 파리를 압류했다. 한때 화려한 번화가 베네토 거리에서 돌체 비타(달콤한 인생)를 상징했으며 프랭크 시나트라와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단골로 드나들던 곳이었다. 당시 검찰 조사 결과 이곳을 25만 유로에 새로 인수한 사람이 칼라브리아 출신 헤어드레서였다. 알바로-팔라마라 은드란게타 가문의 일원으로 의심됐다. 지금은 말레이시아 억만장자 로버트 궉의 소유로 넘어갔으며 살아남으려 발버둥치고 있다. 마피아 스캔들 때문에 고객들이 아직도 기피하기 때문이다.2년 뒤엔 경찰이 ‘안티코 카페 치기’를 압류했다. 로마 한복판 이탈리아 정부 건물 바로 앞에 있는 주점이다. 정치인·경찰관·기자, 치안 당국자들이 정기적으로 어울렸던 곳이다. 하지만 은드란게타와 관련된 사람들 소유로 밝혀지면서 운이 다했다. 카페 드 파리나 피자 치로와는 달리 스캔들과 부실경영으로 문을 닫았다. 간판이 내려지고 지금은 먼지, 종이조각, 쓰레기만 나뒹구는 버려진 공간이다.그러나 저도 모르게 마피아의 돈 세탁을 돕게 되는 일이 반드시 이탈리아에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마피아 조직은 가장 힘세고 세계적으로 다른 유사 조직들과 가장 많이 연계된 편에 속한다. 이탈리아 소매업계 로비단체 콘페세르센티가 2012년 보고서를 발표했다. 주요 마피아 단체들의 연간 매출액이 1400억 유로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탈리아 경제 전체 규모 중 10분의 1에 가깝다. 현금 보유액은 650억 유로에 달하며 세계 각지에 자산을 보유한다.공급이 수요를 만나다이탈리아 부채 위기와 2년간의 불황은 사업체들을 파탄지경으로 몰아넣었다. 그로인해 조직범죄의 침투가 더 쉬워졌다고 당국자들은 말한다. 콘페세르센티에 따르면 2013년 1~9월 417개 주점과 음식점이 문을 닫았다.도산 직전의 사업체들은 때로는 이미 고리대금업의 피해자이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자릿세를 내야 했다. 카모라나 은드란게타의 수중에 쉽게 넘어갔다. 두 조직뿐 아니라 더 유명한 시칠리아 마피아 그리고 로마 토박이 범죄조직 반다 데야 마글리아나는 세탁해야 할 현금을 잔뜩 쌓아두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만난 셈이다. 결과적으로 경제 위기 중 마피아들은 호황을 만났다.이탈리아의 마피아범죄수사국은 마피아 조직과 싸우는 주요 기구다. 1992년 창설 이후 140억 유로 이상의 자산을 압류했다고 밝혔다. 압류 자산 중에는 상업용 부동산, 호텔, 은행계좌, 고급맨션, 심지어 성도 있다. 같은 기간 동안 5000개 이상의 사업체를 모니터했으며 어림잡아 9000명에 대해 검거명령을 내렸다.하지만 일단 압류된 자산이라도 매각되는 시점에 다시 마피아의 수중에 들어갈 수 있다. 범죄자들이 대리 입찰자를 내세우는 수법을 쓰는 식이다. 그와 같은 악순환이 처음부터 다시 반복된다.압류자산을 관리하는 정부기관에 “개혁이 필요하다.” 의회의 마피아 척결 위원회 의장인 이탈리아 정치인 로시 빈디가 최근 말했다. 그녀는 관료주의적인 지연과 신뢰할 만한 데이터베이스의 부재를 지적했다. 그 기관을 이끄는 책임자 주세페 카루소는 일부 당국자가 압류자산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고 “천문학적인 수수료”를 챙겼다고 시인했다. 압류된 업체의 이사 자리에 앉아 “감독과 피감독 기관” 행세를 했다.그러나 로마의 마피아 관련 음식점을 찾는 관광객들은 이런 배경을 전혀 모른다. 마르게리타 파이 위에 얹힌 치즈가 카모라 소유의 낙농장에서 공급됐을 가능성이나, 또는 서빙을 하는 청년이 실제론 웨이터로 부업을 하는 범죄조직 가문의 행동대원일 가능성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한다.피자 치로의 스피커에선 나폴리 포크송이 울려 퍼진다. 그 가사는 많은 이탈리아인들의 완벽하고 애처롭게 아이로니컬한 자화상을 묘사하는 듯이 들린다. 범죄조직이 자신들의 나라를 사들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직면하려 하지 않는 이탈리아인들의 모습이다. “과거는 잊자! 우리는 나폴리 출신!”

2014.03.18 13:25

7분 소요
CRYPTOCURRENCY - 비트코인이 미래?

가상화폐

뉴욕에 신설된 비트코인 센터 NYC에 트레이더와 투자자, 또는 비트코인을 이용한 돈벌이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에드윈 쿠에바스 3세가 사무실 뒤쪽의 접이식 테이블 앞에 조용히 서 있다.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웅성거리며 왠지 들뜬 분위기다. 영사기가 비트코인과 기타 대안 디지털 통화의 실시간 시세를 벽면에 투사한다. 검정색 바탕 위에 녹색 숫자들이 명멸한다. PC 초창기의 고든 게코(영화 ‘월스트리트’에 등장하는 기업사냥꾼) 같은 거물 트레이더들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기묘하게 연상시킨다.스크린이 깜빡거리며 라이트코인 시세가 분 단위로 오른다. 쿠에바스 옆 사람이 쾌재를 부르며 아이폰을 신나게 두드려댄다. 한편 거구의 남자가 군중을 향해 다음 경매 품목을 설명한다. 그의 쾌활한 외침 소리에 쿠에바스가 귀를 쫑긋 세운다. “버터플라이 랩스의 기계입니다.” 비트코인센터 NYC의 공동창업자 닉 스패노스가 그 장비 제조사를 소개했다. “여러분도 일류가 될 수 있어요.”쿠에바스(25)는 브롱크스의 호스토스 커뮤니티 칼리지(지역 단기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다. 자신이 태어나 성장한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스패노스가 경매에 오른 품목의 장점에 관해 열변을 토한다. 거기에 귀 기울이는 쿠에바스의 표정이 미묘하다. 뭔가를 열심히 계산하는 듯하다.“30 기가해시(컴퓨터의 속도를 나타내는 단위)입니다. 하루에 10달러를 벌 수 있어요.” 스패노스가 군중을 향해 외친다. 류크 우는 경매에 오른 버터플라이 랩스 ASIC 비트코인 채굴기의 주인이다. 스패노스 옆에 서서 그 기기에 관한 정보를 귀띔해 준다. 채굴기는 일반적인 빵 덩어리 크기의 작은 블랙 박스다. 볼품은 없지만 쿠에바스는 그 가능성을 내다본다. 달러 사인, 아니 비트코인 사인을 본다.그 기기는 주문형 반도체(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 즉 ASIC 비트코인 채굴 컴퓨터로 알려졌다. 오로지 디지털 통화의 표준인 비트코인 생성 목적으로 맞춤 설계됐다. 비트코인과 라이트코인같은 암호통화의 이론은 1998년 웨이 다이가 처음 정립했다.암호화를 통해 생성되는 분권화된 통화형태로서 그것을 구상했다. 암호화는 직불카드, 전자상거래, 온라인뱅킹 시스템의 바탕을 이룬다. 스패노스는 군중을 향해 소리치면서 경매에 오른 ASIC 기기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진다. 그 기기에 쿠에바스의 미래가 걸려 있다. 그는 일반적인 비트코인 이용자로 만족하지 않고 그 기기로 직접 비트코인을 만들 수도 있다.쿠에바스는 처음에는 입찰가를 낮게 부른다. “10달러.” 그가 소리쳤다. 스패노스는 입찰을 받아 밀리비트(millibits) 단위로 바꿔 말한다. 현재 사용되는 비트코인의 최소 단위다. 어쨌든 이곳은 비트코인 센터 NYC이니까. “10밀리비트.” 스패노스가 군중을 향해 말한다.비트코인 센터 NYC의 오스틴 알렉산더 부소장이 뛰어든다. “50달러.” “50 밀리비트.” 스패노스가 다시 단위를 정정하며 호가를 60으로 올려 부를 사람을 찾는다. 스패노스가 입찰가를 외치고 확인하고 호가를 올리도록 독려하면서 경매는 계속된다. 쿠에바스와 알렉산더 두 사람 간에 호가 경쟁이 시작된다. 각자 잇따라 상대보다 높은 입찰가를 제시하는 동안 가격이 450밀리비트까지 오른다.“450밀리비트, 한번.” 스패노스가 실내를 돌아보며 외친다. 그뒤 쿠에바스를 바라보며 말한다. “두 번. 낙찰!” 스패노스가 버터플라이 랩스 컴퓨터를 들고 다가오자 쿠에바스가 싱긋이 미소 짓는다. 쿠에바스가 자신의 첫 ASIC 비트코인 채굴기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3개월 동안 쉴 새 없이 채굴하면” 본전을 뽑는다고 쿠에바스는 예상한다.이 컴퓨터가 특별히 시중에서 가장 빠르거나 가장 성능 좋은 기기는 아니다. 최근 600기가해시 ASIC 비트코인 채굴기가 버터플라이 랩스에서 출시됐다. 따라서 쿠에바스가 방금 낙찰 받은 기기는 구형으로 밀려났다. 전 주인 우가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면서 경매로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쿠에바스가 보기에는 아쉬울 게 전혀 없다. 어쨌든 그것으로 돈을 벌 테니까.쿠에바스는 2013년 미국 정부의 셧다운(부분 업무정지) 중 비트코인 게임에 처음 뛰어들었다. “당시 10월엔 우리 동네의 많은 사람이 실업뿐 아니라 가진 돈을 날리거나 결제에 사용할 만한 유가 재화가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쿠에바스가 돌이켰다. 그때 처음 비트코인을 구입했다.비트코인 가격은 단위 당 872달러로 당시 사상 최고가였다. 그는 2개를 구입했다. 그뒤 비트코인은 두 달에 걸쳐 1245달러까지 오르면서 신고가를 경신했다. 하지만 12월 5일 중국이 금융기관의 암호통화 사용을 사실상 금지한 뒤 하락세로 돌아섰다.쿠에바스는 그때의 시세하락으로 돈을 잃었지만 그것을 기회로 여겼다. “당시 나는 기말 리포트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속절없는 하락세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고 쿠에바스는 회상했다. “그것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냥 두고 볼까? 매수할까? 어떻게 하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그는 베팅을 했다. 그것도 크게. “432달러에 코인을 7개 매입했다. 나로선 최대치였다”고 쿠에바스가 말했다. 지난 한 달간 비트코인 가격은 800~900달러 사이를 오르내렸다.“비트코인 기술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상 지상에 아무도 없다.” 오스틴 알렉산더가 바짝 마른 입술을 축이면서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 채굴기 경매에 입찰하는 틈틈이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이 날 예상보다 많은 군중이 몰렸다. 그는 네트워킹에 바빠 물 마시러 갈 시간조차 없었다.이 날은 비트코인 센터 NYC의 통상적인 월요일 밤과 다르다. 하지만 센터가 문을 연 지 불과 3주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어느 수준이 통상적인지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비트코인 센터 NYC는 12월 31일 문을 열었다. 대대적인 새해맞이 파티를 주최했다. “2014년은 비트코인의 해가 될 것”이라고 파티 초청장은 호언했다. 파티장은 금융시장 트레이더와 정통한 비트코인 창업가들로 만원을 이뤘다. 그러나 그들이 비트코인 센터의 표적 고객층은 아니었다.“누구나 쉽게 비트코인을 이용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금융 분야에선 비트코인이 시장 판도를 바꿔놓을 잠재력을 지닌다. 따라서 이곳이 아주 좋은 자리”라고 알렉산더가 말했다. 비트코인 센터 NYC는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30m 거리에 위치한다. 뉴욕 증권거래소는 역사적으로 뉴욕의 금융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건물이다.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의 주요 관계자들 또한 이곳에 와서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공부할 수 있다”고 알렉산더가 말했다.알렉산더는 비트코인 센터 NYC에 합류하기 전까지 정치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처럼 정장을 입은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 탓에 눈에 확 띈다. 참석자들의 연령과 경력은 천차만별이지만 마음만은 모두 비슷하다. 그들 모두 비트코인을 자신의 미래로 여긴다.알렉산더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히 말한다. 단어 하나 하나를 신중히 고른다. “센터는 현재 교육시설 역할을 한다.” 알렉산더가 센터의 설립취지를 열거하며 말했다. “우리는 기존의 금융업계뿐 아니라 찾아오는 모든 방문자에게 관련 지식을 전달하기 희망한다.”이날 밤의 참석자는 대부분 사토시 스퀘어라는 단체 소속이다. 이들 비트코인 트레이더와 투자자들은 함께 모여 그 암호통화를 주제로 토론하고 거래하고 인맥을 형성한다. 단체 이름은 사토시 나카모토에서 따왔다. 비트코인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제론 사람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2009년 비트코인을 처음 출범시킨 일단의 개발자 그룹을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주장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사토시(일본어로 ‘현자’ 또는 ‘명확한 사상가’를 의미)라는 인물은 2010년 중반 무대를 내려가 사라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누가 실제로 비트코인을 출범시켰는지에 대한 관심은 희미해졌다. 비트코인의 앞날에 관한 추측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우리가 뉴욕 증권거래소로부터 30m 떨어진 곳에서 비트코인을 논하게 되리라고는 사토시 자신도 상상할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사토시 스퀘어 회원이자 비트코인 매거진 기고가인 줄리안 로드리 게스가 말했다. 로드리게스는 매주 월요일 새로 발행된 잡지 몇 부를 비트코인 센터 NYC에 보낸다. 암호통화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유일한 활자 정기간행물이다. “우리 모두 컴퓨터 과학자들”이라고 로드리 게스가 말했다. “우리는 암호화의 유사 기술이나 수학 기반 암호화 제품을 다룬다. 비트코인도 그중 하나다.”쿠에바스가 경매에서 구입한 유의 채굴 컴퓨터는 블럭(blocks)이라는 암호 퍼즐의 해독에 사용된다. 퍼즐을 풀 때마다 비트코인을 상금으로 얻는다. 그리고 퍼즐의 난이도가 두 배씩 높아진다. 비트코인 초창기엔 일반 데스크톱 컴퓨터와 노트북으로도 퍼즐이 쉽게 풀렸다.하지만 퍼즐이 갈수록 어려워짐에 따라 지금은 그 블럭을 풀려면 ASIC 채굴기와 고성능 그래픽 프로세서가 필요하다. “암호화는 수천 년 전부터 사용돼 왔다”고 로드리게스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이른바 ‘암호화 수학(cryptography mathematics)’ 컴퓨터학이 지난 50~60년 사이 그것을 통합해 왔다.”로드리게스는 비트코인 개념을 단순화 한다. “일종의 e메일처럼 생각하면 된다. 미국인들은 우체국이 모든 기록을 보관하고 모든 우편물을 때맞춰 우송한다고 믿었다. 요즘은 G메일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사이트에 로그인해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배포한다. 이제 우리는 유가물을 그런 식으로 배포한다. 그것이 바로 비트코인의 속성이다.” 센터의 모든 사람이 컴퓨터 과학자는 아니다. 에릭 브레이키는 메인주 상원의원에 출마 중이다. 주에서 선거운동 후원금을 비트코인으로 받는 최초의 후보라고 자부한다.“후원자 중 비트코인 업계 종사자들은 그런 식으로 선거자금을 기부하고자 했다”고 브레이키가 말했다. 이날 밤 실제로 닉 스패노스는 브레이키의 선거운동에 후원금을 기부하라고 참석자들에게 촉구했다. “정치인들이 이들 디지털 통화를 받기 시작하기를 원합니까? 그들이 디지털 통화를 사용하기 어렵게 하는 멍청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기 바랍니까? 그렇다면 비트코인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하기 시작하면 그들이 정말 빠른 시간 내에 암호통화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브레이키가 군중에게 호언했다.그러나 자신은 그 문제에 관해 가장 정통한 사람은 아니라고 몸을 낮춘다. “그 문제에 관해서라면 친구와 후원자들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다”고 브레이키가 말했다. “1년여 전 한 행사에 참가했을 때 누군가 아마도 5센트 어치의 비트코인을 내게 줬다. 1년이 지난 뒤 시세가 10달러로 올랐다. 이런, 기회가 있었을 때 좀 사둘 걸 하고 후회했다.”브레이키는 비트코인에 대한 연방정부의 어중간한 입장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 국세청은 비트코인에 과세해야 할지,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현재 브레이키는 비트코인 후원금을 물품으로 본다. “메인주에선 현물 기부로 간주되면 어떤 유가품이든 선거운동 기증품으로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방식으로 처리한다”고 그가 말했다.그러나 비트코인 센터 NYC의 입장은 다르다. 그들은 어떤 관련법이라도 철저히 따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주 당국에서 암호통화 관련 사업 방향에 관해 명확한 지침을 내릴 때까지 몸을 사린다. “우리는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 이르면 2월 중에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알렉산더가 말했다. “현재로선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 분명 우리는 모든 면에서 주 당국의 방침을 따를 작정이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오리무중이다.” (뉴욕주 금융서비스국은 1월 28일과 29일 가상통화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비트코인 센터 NYC에는 한 가지 지상목표가 있다고 알렉산더는 재차 강조한다. “101% 법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비트코인 경제로의 진입을 막는 장벽을 허물고 도입을 촉진하기 위해 가능한 일은 무엇이든 할 계획이다.”비트코인 센터 NYC를 찾은 사람은 대부분 트레이더와 투자자, 또는 에드윈 쿠에바스처럼 비트코인을 이용한 돈벌이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렉산더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나는 정말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캐서린이라고만 밝힌 한 여성이 말했다. 뉴욕 토박이인 그녀는 2013년 2월 뉴햄프셔에서 열린 리버티 포럼에 참석했다가 비트코인을 알게 됐다고 한다.“자동판매기 옆에 작은 비트코인 교환기가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다.” 30달러 선일 때 비트코인을 매입했다. 리버티 포럼은 주로 큰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웹사이트에 따르면 과거 그 단체 포럼의 연사 중에는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론 폴 같은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도 있었다.암호통화의 분권적인 성격에 이끌려 아주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몰려든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정부가 이미 지나치게 비대해졌다고 보며 비트코인이 그들로부터 중앙 권력을 빼앗는다는 점을 높이 산다. 비트코인의 익명성이 비밀스런 행동의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는 시각도 있다. 범법적인 요소는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언급을 피하려는 불리한 진실이다.“컴퓨터 과학자, 자유지상주의자, 무정부의자의 관점에서 많은 사람이 열광한다”고 줄리안 로드리게스가 말했다. “비트코인은 모든 사람에게 색다른 무엇을 의미한다.”캐서린은 비트코인이 금융 측면의 탈출구를 제공한다고 본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무에서 돈을 창출한다. 그런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언젠가는 붕괴하고 만다. 현재도 무너져가는 중이며 그들은 그것을 떠받치려 애쓸 뿐이라고 본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한다. “구명보트에 올라타야 한다. 내가 볼 때 타이타닉은 이미 가라앉았다.”오스틴 알렉산더와 닉 스패노스 모두 비트코인 센터 NYC와 통화 자체가 커다란 잠재력을 지닌다고 본다. “틈새는 없다”고 알렉산더가 비트코인을 두고 말했다. “창문 밖으로 눈을 돌려 경제지형을 살펴보면 틈새 대신 협곡들이 있다.” 스패노스는 비트코인 현상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 “통화의 2.0 혁명이 현재 진행중이다.”

2014.02.10 14:13

8분 소요
CLIMATE CHANGE - 인간은 만물 중 미물이로소이다

산업 일반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는 ‘거대객체’를 다룬 신저 나와 지구온난화와 암 등 우리의 지력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요인들에 외경심 가져야 뉴스위크를 읽을 만한 여가가 있는 사람이라면 필시 대체로 관리 가능한 수준의 걱정거리들을 안고 살아갈 듯하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건 알지만 인생의 무상함에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세사에 묻혀 살아가다보니 그런 일에 신경 쓸 틈이 없다.직장의 어떤 친구가 크래커를 얼마나 소리 내며 먹는지, 대학 친구가 툭하면 전화를 걸어 얼마나 우는 소리를 하는지, 다음 휴가는 어디로 떠날지 등등. 때로는 멀리 사색적인 영역까지 생각이 흘러가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40세에 하려던 일인가? 기부를 더 많이 해야 할까? 재활용하는 목적이 뭐지? 하지만 이들은 그리 흔치 않은 해찰이다.그러나 시간이 남아돈다 해도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죽음의 피할 수 없는 무한함은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 무한하다고 할 수 없는 44억6800만 년은 인간의 두뇌로는 거의 분명 가늠하기가 불가능하다. 우라늄-238(방사성 핵종)의 반감기다.또는 2억1000만 갤런의 석유도 마찬가지다. 2010년 시추시설 디프워터 호라이즌의 석유유출 사고로 멕시코만에 유입된 양이다. 매년 무려 10만 종의 생물이 지구에서 사라질지 모른다고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은 말한다. 그 숫자는 충격적이지만 너무 커서 대경실색했다가도 금방 납득하기 어려운, 그리고 다음에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로 퇴색돼 간다.2013년 암 환자로 추산되는 미국인 통계 166만290명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은 아마 그들 중 166만289명은 알지 못하거나 아무 관심도 없을 듯하다. 어쨌든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를 걱정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티머시 모턴의 ‘거대객체: 세계 종말 후의 철학과 생태학(Hyperobjects: Philosophy and Ecology after the End of the World)’은 준 대중적 철학서다(적어도 하이데거와 칸트 정도는 훑어본 사람에게 적합하다). 인간의 실존을 지배하게 된 아주 거창한 주제들을 다룬다.암, 지구온난화, 방사성 핵종(radionuclides), 석유화학 제품 등이다. 모턴은 라이스 대학 영어학과장이며 OOO라는 별명을 가진 객체지향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 분야의 태두다. 이 비교적 최근의 철학 운동에선 인류가 많은 사물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공언한다. OOO의 진정한 신봉자들에게 인간의 의식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인간이 서사적인 시를 쓰고, 바흐 협주곡을 연주하고, 뛰어난 픽앤롤(농구에서 두 선수가 스크린을 이용해 득점 기회를 만드는 플레이)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중요하지 않다.‘거대객체’는 거대함을 다룬 책 치고는 200쪽으로 꽤 얄팍하다. 그러나 밀도 높은 사고가 단어 수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모턴은 비틀즈의 노래 ‘ A Day in the Life’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 음악가의 아들이다. 낭만주의 시와 음식에 관한 책을 썼다.‘낭만주의 문학에서 향신료의 시학(The Poetics of Spice: Romantic Consumerism and the Exotic)’ 외에도 ‘식사와 음주의 문화와 정치학, 1790-1820(Radical Food:The Culture and Politics of Eating and Drinking)’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영국인 치고는 빌 클린턴 흉내를 제법 잘 낸다. 다시 말해 그 자신이 거대객체일 공산이 크다. 그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부터 록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 원폭이 투하된 나가사키, 공화당의 과격부정론까지 두루 살핀다.그뿐 아니라 이들 이질적인 비유들을 아울러 하나의 강력한 이론을 빚어낸다. 그 아이디어는 직관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인상을 준다. 세상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알려졌다. 이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다고 모턴은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우리가 지난 200여년 동안 프로메테우스(하늘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줬다) 노릇을 한 탓에 그렇게 됐다. 우리 스스로 자신들이 딛고선 땅을 멀리 했다.그렇다면 거대객체란 정확하게 무엇인가? 좋은 질문이다. 모턴이 그 개념을 만들어냈으니 그에게서 직접 답을 듣는 편이 낫겠다. 그는 거대객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내가 말하는 이른바 세상의 종말을 초래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다(directly responsible for what I call the end of the world)/ 누군가 그에 관해 생각하든 않든 실재한다(real whether or not someone is thinking of them)/ 뿌리는 세상에서 거둬들였지만 실재하는 개체들(real entities whose primordial reality is withdrawn from the world)/ 하이데거가 말하는 이른바 ‘마지막 신’의 유력한 후보(a good candidate for what Heidegger calls “the last god”)진정한 ‘포스트 모던’ 시대의 전조(harbingers of a truly “post-modern” age)/ 대단히 불가사의하다(very uncanny)/ 생생하고 종종 고통스럽다(vivid and often painful)/ 끈적거린다(viscous)/ 불쾌할 정도로 흐늘거리며 연체동물 같다(disturbingly squishy and mollusk-like)/ 제대로 다루기가 불가능하다(impossible to handle just right)아마도 위에서 잘 드러나듯이 거대객체는 가끔씩 황당무계하지만 기발한 때가 훨씬 더 많다. 나도 모두를 이해한 척할 수 없다. 그리고 학계 말고는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 싶다. 그렇다고 호기심을 누를 필요는 없다. 거대객체의 개념은 고맙게도 이해의 많은 단계를 포용할 만큼 광범위하다.모턴이 분명 모든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어하리라 여겨지는 한 가지 개념은 세계에서 우리 인간의 위상에 관해 겸손하라는 점이다. 튀는 경구를 곧잘 애용하는 그는 이렇게 썼다. “(진정한) 세계적인 인식은 ‘우리가 곧 세계’가 아니라는 기분 나쁜 인식이다.”모턴의 개념은 커져가는 집단적 불안감을 파고든다. 휴대전화 전자파가 눈에 보일 경우 미국 도시가 어떤 모습일지를 보여주는 이미지들이 최근 잇따라 퍼져나간다. 아티스트 니콜라이 램이 작성한 그 컴퓨터 이미지에선 전자파의 현란한 색깔이 흘러 넘치며 낯익은 도시풍경을 완전히 집어삼킨다.그가 그린 시카고는 우리가 아는 시카고와는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물리학의 관점에서 그 도시의 더 타당한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미시건대로를 따라 걸어갈 때 눈에 들어오는 모습보다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보는 이미지는 구시대의 개념이다. 그의 이미지가 거대객체의 도시다.모턴이 가장 우려하는 거대객체는 지구 온난화다. 그는 그것을 이빨 빠진 표현인 ‘기후변화’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모턴이 갑작스럽게 주제를 바꾸는 데 어리둥절해 하는 독자의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그는 존재론의 고상한 추상으로부터 현실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로 방향을 전환한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요점이다.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창조하고 상아탑 환경에서 탐구된 세상에서 살 만큼 호사스러운 운명을 타고나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이산화탄소가 가진 전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이산화탄소가 우리 모두의 거시기를 단단히 틀어쥐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요즘 사방에 자전거 도로가 그렇게 많이 깔렸는데도 말이다. 오존층이 갈수록 엷어지듯 핵폐기물은 갈수록 쌓여간다. 이들은 현실 세계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 우리는 한때 익숙했던 주변 환경 속에서 낯선 이방인이 되고 말았다.우리의 상식적인 주일학교 우주론을 거부하는 요인들의 영향이다. “지구온난화와 핵 방사선 같은 거대객체가 우리를 에워싼다. 자연이나 환경 또는 세상 같은 추상적인 개체가 아니다. 우리 현실은 더 생생하고 강렬하다는 점에서 더 실재적이 됐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더 알 수 없게 됐다”고 모턴은 썼다. 또는 2003년작 영화 ‘나쁜 녀석들 2’에서 마틴 로렌스가 더 간결하게 표현했듯이 “염병할 게 더 현실이 됐다.”모턴이 말하는 세상의 종말은 ‘우리 모두 죽고 만다!’는 할리우드 류의 대재앙 비전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리스 철학의 도래 이후 서방 사상을 지배했던 안이한 인간중심적 세계관의 종말을 가리킨다. 칸트의 인식론이나 헤겔의 목적론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철학의 “특혜를 누리는 초월적 차원”은 자외선이나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모턴은 주장한다.“패트 로버트슨과 리처드 도킨스조차 오존층 고갈의 영향을 피하려면 자외선차단제를 발라야 한다.” 한 사람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광신자이며 또 한 사람은 독선적인 무신론자다. 그들의 세계는 더 없이 다르다. 하지만 그것은 흑색종을 막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앙이나 세계관이나 견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기도나 식견으로도 이 악성종양의 전이를 막지 못한다.모턴의 역사관에선 1784년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세상의 종말이 시작됐다. 그로 인해 인간이 석유화학 제품에 중독되기 시작됐다. 그뒤 150년 동안 인류세(Anthropocene age, 인류가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진 현재의 지질학적 시기)가 도래했다. “인간의 산업이 배출한 탄소층이 지구의 지표층을 뒤덮은 시기”다. 그뒤 1945년 여름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 두 개를 투하했다.인류는 모턴이 말하는 이른바 가속화 시대(Age of Acceleration)에 들어섰다. “인간에 의한 지구의 지질학적 변형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시기였다.” 원자력(실제론 무기)의 등장과 함께 인간이 세상을 철저하게 지배하면서 세상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우리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방사능은 완벽한 거대객체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보이지 않고 파멸적이며 통제하기 어렵다.뇌종양을 유발하는지 안 하는지 불확실한 휴대전화 전자파(non-ionizing radiation, 물질을 이온화시키지 않는 방사선)와 체르노빌의 코끼리발(Elephant’s Foot of Chernobyl)이 있다. 원전 폭발사고 후에 남은 안전하지 않은 방사성 융해물 덩어리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 요소다. 원자 안에 웅크린 극히 작은 괴물이다.책의 부제에 있는 ‘생태학’이란 말 때문에 모턴이 환경보호주의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전혀 그런 부류가 아니다. 모턴은 녹색운동을 가리켜 자연에 대한 경박한 페티시즘이라며 비웃는다. 어쨌든 천연이네 아니네 판정하려면 어느 정도의 오만이 필요하다. 따라서 환경보호주의는 어쩔 도리 없이 인간중심적 관점에 속한다.그리고 모턴은 포스트휴먼(posthuman, 유전공학의 발달로 변화한 인간형) 세계에선 인간중심적 관점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 커피 컵은 폴리스티렌 소재다. 폴리스티렌은 탄화수소로 만든다. 탄화수소는 썩은 공룡에서 나온다. 무엇이 그보다 더 천연일 수 있겠는가? 모턴의 트위터 약력이 그것을 집약적으로 말해준다.“근대사회가 인간의 사고를 망쳤다. 불행히도 그로 인해 엉망이 된 개념 중 하나가 자연관이다.” 모턴에게 생태학은 그리스어어원 그대로다. okios(집)와 logia(연구)가 결합된 단어다. 우리들의 집에는 후쿠시마의 융해된 원자로가 있고, 호주의 대보초가 있으며, 브루클린의 우리 집 근처 3개 대로가 교차하는 더러운 작은 잔디밭(‘녹지공간’)이 있다. 우리로선 이들을 모두 돌보는 수밖에 다른 선택권이 없다.모턴은 인간의 지식에 의해 거의 파괴된 세상을 인간의 지식이 회복시킬 수 있으리라 낙관하지도 않는다. 그는 빅데이터와 그 실리콘밸리 사도들의 부상에 특히 회의적이다. 그들은 정보가 지닌 구원의 힘을 설파한다. 모턴은 “생명체에 관한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그 실체를 알아내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썼다.인간 유전체 염기서열을 밝혀냈고, 개·돼지 나아가 아이벡스(야생 염소)까지 복제했다. 그러나 생명의 기초원리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으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듯하다. 쓰나미가 몰려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다. 책상머리에 앉아 지내는 생활방식은 흡연만큼이나 건강을 해친다고 사람들은 외친다. 형이상학 시인 앤드류 마벨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간의 날개 달린 마차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나는 책을 읽는 동안 종종 시, 특히 모턴이 좋아하는 낭만주의 시를 생각했다. 블레이크와 워즈워스 같은 시인들은 산업혁명 당시 쓴 시에서 마찬가지로 앞으로 닥칠 불길한 변화를 인식했다. 그가 고른 거대객체 관련 경구는 영국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 셸리의 시 한 귀절이다. “보이지 않는 힘의 무시무시한 그림자.” 그리고 OOO의 온갖 복잡한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모턴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가 겸손하게 살아가기를, 우리보다 훨씬 더 큰 세상에 대한 외경심을 되찾기 바란다는 점이다.나는 이 글을 쓰는 내내 모턴의 개념을 왜곡하고 단순화했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하고 그만 두겠다. 그의 거대객체 개념은 낭만주의의 숭고함(the sublime)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숭고한 객체가 놀라움을 불러일으킨다고 믿었다. “일정 수준의 공포로 모든 사고가 중단된다. 정신이 그 객체로 가득 채워져 다른 객체를 품을 수도, 그것을 채우는 객체에 관해 추론할 수도 없다.”우리는 한 해에 1조 개의 비닐 백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하나 하나가 부패하는 데 1000년이 걸린다. 가장 최근 쇼핑한 식품의 포장용기가 수많은 세대의 인류보다 더 오래 남는다는 뜻이다. 정말 대단한 일 아닌가? 인간은 소행성이나 전염병으로 모두 몰살할 수 있다.하지만 그 황량한 폐허의 상공에 월드봄 슈퍼마켓 로고가 새겨진 얇은 석유화학 비닐 제품이 먼지바람을 타고 떠다닐 것이다. 결코 우리 소유가 아니었던 지구에 우리가 잠시 머물렀다는 마지막 증거다. 그렇다고 모닝 커피 마실 기분까지 잡치지 않았기를 바란다.

2014.01.1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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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 & leadership] MYSTERIOUS MERKEL

산업 일반

유럽을 위기에서 구할 인물로 주목받는 앙켈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속내는?한때 ‘유럽의 여왕’으로 불리던 앙겔라 메르켈(57) 독일 총리는 수염을 말끔하게 깎은 깔끔한 차림의 보좌관과 측근들을 거느리고 다니길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 대다수가 금발이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가 아니라 ‘숙녀는 금발을 좋아해’라고 해야 할까? 매끈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그녀의 유능한 대변인 울리히 빌헬름과 그녀가 독일 대통령으로 선택한 등이 꼿꼿한 크리스티안 불프가 대표적인 예다.The Lady prefers blonds. Angela Merkel, 57, once dubbed the Queen of Europe, likes to surround herself with smooth-shaven, uncrumpled, and, yes, often blond courtiers and allies. Just look at her most successful spin doctor, the velvety Ulrich Wilhelm. Or the man she chose for Germany’s president, the straight-backed Christian Wulff.그녀가 분데스방크(독일 중앙은행) 총재로 지명한 경제 고문 옌스 바이드만도 이들과 유사한 유전자를 타고난 듯하다. 하지만 메르켈이 중요하게 여기는 건 그들이 지닌 게르만 민족다운 특성이나 차림새가 아니라 세계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이성적인 태도다. ‘확신이 안 서면 규칙을 따르라(If in doubt, stick to the rules)’는 것이다.몇 년 전 기자는 메르켈 총리와 인터뷰를 한 후 총리실과 입씨름(run-in)을 벌인 적이 있다. 총리실에서는 내가 공개해서는 안 될 정보를 공개했다고 말했다. 빌헬름 대변인이 전화에 대고 “총리께서는 이 일을 용납할 수 없는 행동으로 생각하신다(The chancellor believes this to be unacceptable behavior)!”고 소리쳤다. ‘질서의 여왕(the Mistress of Order)’ 메르켈 총리는 당시 “영국은 페어 플레이의 본고장이 아니었던가(We thought Britain was the home of fair play)!”라고 유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채권시장이 유로존 각국의 경제에 개입하기 시작한 최근 상황(the bond markets’ sudden whistle-blowing power over individual euro-zone economies)에 당황한 메르켈과 총리실은 이 보잘것없는 기자에게 그랬듯이 유럽 대륙 전체에 독일식 질서를 강요하려 든다.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독일인들에게 페어 플레이는 운동 경기보다 유럽의 강국으로서 자국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a sense of entitlement)와 상관 있다. 이런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독일인들의 불만이 확실한 국가적 이슈(a harder-edged national agenda)로 굳어질 가능성이 어느 정도냐가 문제다. 이는 앙겔라 메르켈을 둘러싼 수수께끼의 핵심이기도 하다(it goes to the core of the enigma of Angela Merkel). 독일은 유럽 대륙 최대의 경제국으로서, 또 경제위기에 따른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that will therefore have to foot most of the bills) 나라로서, 부실 국가들에 조건과 기준을 제시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독일은 과거에 유럽 중앙은행(ECB)이 분데스방크의 정치적 독립성과 반(反)인플레 원칙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독일인들이 사랑하는 마르크화를 포기하는 절대적인 조건(absolute condition for abandoning its beloved Deutsche mark)이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독일은 그리스를 비롯한 부실 국가들(the stragglers)을 구제해 주는 대신 독일식 재정원칙을 언제, 어디서나 적용하기를 원한다.지금까지 유럽의 5개국이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극심한 재정난에 처했다. 메르켈의 측근들은 현재 이들 국가(PIIGS: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가 나라 살림을 잘못한 탓에 벌을 받고 있다(are now being punished for their sloppy housekeeping)고 말했다. 이탈리아에 새로 들어선 기술관료 정부(technocratic government)의 마리오 몬티 총리는 “매우 독일적(very German)”이라고 일컬어진다. 유럽 중앙은행의 신임 총재 마리오 드라기도 마찬가지다. 독일 기민당의 한 원로의원은 “어떤 나라도 돈을 쓸데없이 낭비하기를 바라진 않는다(No nation wants to have its money thrown out of the window)”고 말했다. “우리는 부실 국가들이 반드시 제재를 받도록 서면 약속 등을 통해 못박아 두길 원한다(We want cast-iron guarantees, promises in writing, reassurance that miscreants will be punished).”독일 유권자들은 독일 정부의 유로위기 처리 과정에서 소외되다시피 했다(are almost marginal). 모든 결정은 메르켈 총리와 바이드만 총재를 중심으로 한 소수의 지도자들이 내렸다. 궁극적으로 유럽연합(EU) 결속 유지의 책임은 메르켈이라는 한 여성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the responsibility for holding the European Union together has fallen on the shoulders of a woman). 메르켈은 동독에서 성장했고, 공산 제국이 붕괴될 당시에 정치적 성숙기를 맞았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그녀는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러 달려가지 않았다(she didn’t rush off to watch history in the making). 그대신 매주 하던 대로 사우나에 갔다(she went for her weekly sauna session).오래 전 시작된 경제위기에 대한 메르켈의 늑장 대응(her delayed response)에 실망한 사람들은 농담삼아 “그녀가 또 다시 사우나에 들어앉아 있는 듯하다(she seems to have retreated to the sauna again)”고 말한다. 이번엔 2년이란 긴 시간 동안 말이다. 독일 야당 지도자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는 ‘메르켈의 법칙(a Merkel Law)’이 있다고 말했다. “메르켈이 어떤 정책을 강력하게 배제하면 할수록 그녀가 결국 그 정책을 채택할 확률이 높아진다(The more fiercely Merkel rules something out, the more certain it is that she will eventually adopt that policy).” 유로위기 대처 방안이나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후에 내놓았던 핵에너지 관련 약속 등에서 갑자기 방향을 튼 것이 그 예다.그렇다면 메르켈이 위기 관리에 이렇게 굼뜬 이유가 뭘까? 전기작가 마르고트 헤켈은 세계 지도자 중 사생활이 가장 잘 안 알려진 메르켈의 성격을 엿보게 해줄 한가지 일화를 파헤쳐 냈다(truffled out an anecdote). 메르켈은 학창 시절 수영을 배울 때 다이빙을 몹시 두려워했다(had an in­ordinate fear of diving). 어느날 그녀는 수영장에서 제일 높은 다이빙대에 올라가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자기 자신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듯했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던 바로 그 순간(at the precise moment when the school bell rang) 그녀는 수심이 깊은 쪽으로 뛰어내렸다(she dived into the pool’s deep end). 그리고 살아남았다. 난 이 일화가 어떤 교훈을 주는지는 잘 모르겠다(I cannot pin down the moral of this story). 하지만 그녀가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용기를 내서 행동을 취하는 성격이라는 사실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또 정신과 의사가 아니더라도 그녀가 왜 그렇게 시간을 끌다가 뛰어내렸는지 몇 가지 다른 이유들을 추측해 볼 수 있다.우선 단순히 운동신경이 둔하기(uncoordinated)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그녀는 발육이 더딘 편이었다(a slow developer). 다섯 살 때 혼자서 한발짝씩 계단을 오르내리는 연습을 했다. 지금도 신체활동을 하려면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는 걸 두려워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정해진 수업 시간이 끝나기 전 마지막 순간에(exactly within the allocated time of the lesson) 뛰어내렸을까? 수업 종료 종이 울린 뒤 3분쯤 지난 다음이라면 수영장이 텅 비었을 텐데 말이다. 그녀는 학창 시절에도 규칙을 엄격하게 준수했기 때문일까? 메르켈은 규칙이 허용하는 한도까지(until she had stretched the rules to the very limit) 다이빙대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 규칙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she remained within them) 시간 안에 뛰어내렸다. 어쩌면 이 순간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a Rosebud moment)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독일의 규칙에 따라 유로존의 신뢰를 회복시키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른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르켈의 일화는 1981년 그녀가 첫째 남편 울리히 메르켈을 떠날 때의 이야기다. 그들은 라이프치히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두 사람은 동베를린으로 이사했고, 앙겔라가 박사과정을 이수하던 3년 동안 울리히 혼자 아파트를 꾸몄다. 아파트가 산뜻하게 단장됐을 무렵(when the place was spick-and-span) 그녀는 남편을 떠났다. 울리히는 “어느날 갑자기 그녀가 짐을 꾸리더니 집을 나갔다(One day, she just packed her things and moved out)”고 말했다. 한마디 설명도 없었다. 그녀는 살림살이 중 딱 한 가지, 냉장고만 가져갔다. 그것도 울리히가 집을 비운 사이에 말이다. 앙겔라 메르켈은 그런 사람이다. ‘냉장고를 들고 도망친 여자(a woman who runs away with a refrigerator)’다.메르켈과 진정으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Nobody really gets close to the chancellor). 지금의 남편 요아힘 사우어는 양자화학(quantum chemistry) 분야의 유명한 석학으로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로 자주 거론된다. 하지만 바그너를 좋아하고(독일 언론은 그에게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등산을 즐긴다는 점 외엔 그에 대해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이들 부부의 대화를 엿들은 사람들(those who have eavesdropped on the couple’s conversations)은 격식을 차린 말투에(by their formality) 놀란다. 저녁 식탁에서도 이들은 주로 과학(메르켈도 박사과정 때 양자화학을 연구했다)과 음악, 그리고 사우어의 장성한 두 자녀 이야기를 한다고 알려졌다. 메르켈은 정치와 사생활을 엄격하게 구분한다(There’s little intermingling of her political and private life). 한때 그녀의 멘토였던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현재 81세로 휠체어에 의지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의 성격과 매우 대조적이다. 콜은 자신이 생각하는 유럽의 비전을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했다.메르켈과 콜의 관계를 되짚어 보면 유럽 문제를 대하는 메르켈의 방식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둘의 관계는 나이든 이상가(visionary)와 젊고 자기불신에 찬 실용주의자(self-doubting pragmatist)의 갈등으로 요약된다. 또 콜의 과장되고, 때로는 건방진(his effusive, often arrogant) 스타일은 늘 결과를 먼저 생각하고 변화의 속도를 늦추려는(to calculate outcomes and slow down the pace of change) 메르켈의 조심스러운 스타일과 대조적이었다. 전쟁세대였던 콜(그는 피난 갔다가 공습으로 불탄 고향 루트비크스하펜으로 돌아가는 길에 배고픔의 고통을 처음 알게 됐다고 말하곤 했다)은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같은 인물들과 유대감을 느꼈다(found a common language). 미테랑이 전쟁 당시의 경험을 회상하는 연설을 듣고 콜은 눈물을 흘렸다. 사실 콜은 자주 울었다. 하지만 메르켈은 울지 않는다. 적어도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그렇다.콜은 프랑스와 결속을 다지고 또 다른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도 뜻을 같이 했다. 그리고 유럽 전역에 걸쳐 그런 관계를 확장했다. 그는 스페인의 사회주의 지도자였던 펠레페 곤잘레스 전 총리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다. 그래서 유럽 북부의 부국들과 남부의 빈국들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creating a bridge between the prosperous Northern elites and the hard-pressed South). 반면 메르켈은 이와 대조적으로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을 믿지 못한다. 그리고 언론에서 이 둘의 공생관계(symbiotic partnership)를 빗대 붙여준 ‘메르코지(Merkozy)’라는 별명(epithet)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알려졌다. 이들의 우정은 꾸며낸 것이다(It’s a largely simulated friendship). 서로의 깊은 의견차이가 조금이라도 알려지면 제멋대로 날뛸(run wild) 시장을 진정시킬 목적으로 상연되는 일종의 공연(a performance put on to calm the markets)이다. 한 프랑스 외교관은 “독일이 (EU와 보조를 맞추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할까봐 정말 걱정(We are really worried that Germany is coming adrift)”이라고 말했다. EU 지도자들은 리비아의 비행금지 구역 설정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표결에 독일이 기권한 일을 두고 여전히 눈쌀을 찌푸린다(their brows remain furrowed).독일이 통일됐을 때 콜은 구 동독 처리 문제로 당황했다. 그는 메르켈을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당시 그가 메르켈에 관해 알았던 건 세 가지뿐이었다. 그녀가 동독 기민당에 기여했고, 기독교적인 배경을 지녔으며(그녀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공산당을 지지하는 자유독일청년단에서 활동했지만 비밀경찰(Stasi)과는 연관이 없었던 듯하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비밀경찰이 협조를 요청하면 “난 너무 수다스러워서 경찰의 끄나풀 노릇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too much of a blabbermouth to be a snitch)”는 믿기 어려운 주장을 내세우며 거절했다. 어쨌든 그 당시 동독에선 자유독일청년단에 가입하지 않으면 출세가 불가능했다. 콜은 그녀를 다른 동독인들처럼 대했다. 친절하지만 약간 얕보는 듯한 태도였다(with benign condescension). 그는 당시 36세였던 메르켈을 “꼬마 아가씨(The Girl)”라고 불렀다.다른 많은 독일 정치인처럼 콜도 메르켈을 과소평가했다. 하지만 몇 년 뒤 그 ‘꼬마 아가씨’가 실력을 보여줬다(made her move). 메르켈은 기민당에 옛 지도자들의 제거(to dump their old leaders)를 촉구하는 글을 신문에 실었다. 냉장고를 몰래 빼내 전 남편을 떠나던 때처럼 이기적인 행동(an act of sheer self-interest)이었다. 기민당의 지역 대표들(모두 젊은 남성이었고 그 중 다수가 금발이었다)은 그녀가 자신들이 하기 싫은 일을 대신 해주리라(she would do their dirty work) 생각하면서 지켜봤다. 콜의 퇴진을 앞당기고 권력 승계의 길을 여는 일(accelerating Kohl’s departure and opening the way for succession)이었다. 하지만 메르켈은 자신이 직접 콜의 자리를 차지해(she took his role for herself) 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녀는 기민당과 사민당의 연정을 이끄는 총리가 됐다. 이 연립정부를 시작으로 유럽 곳곳에 기술관료 정부가 생겨났다. 메르켈은 여론을 의식해 어려운 결정을 회피해 왔다(she simply excluded it from tricky decisions).하지만 이제 이런 전략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 어디서도 통하지 않는다. 콜은 대중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in mobilizing public support) 열정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았다. 그는 독일 국민에게 “유로는 전쟁과 평화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the euro is a matter of war and peace)”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인들이 심각한 인플레보다 또 다른 유럽 전쟁을 더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독일인들은 불평을 하면서도 그의 계획을 받아들였다(Germans grumbled, but they bought into his program). 하지만 메르켈은 국민들에게 유럽 결속 유지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그들을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현재 독일 유권자들은 콜 시대와 비교해 더 정보가 많고 EU 지도부에 더 회의적인데도 말이다. 메르켈은 혼란과 무질서를 싫어하는 독일인의 특성이 그들로 하여금 유럽 단일화를 계속 지지하도록 도와주리라(the Germans’ dislike of chaos and disorder will keep them loyal to Europe) 기대하는 듯하다. 그녀는 의회에서 “유로가 실패하면 유럽도 망한다(If the euro fails, then so does Europe)”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게 믿지 않는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다.메르켈의 측근들은 사석에선 유로존(그리스가 탈퇴하고 폴란드가 새로 가입하는 등 개편이 예상된다)과 EU를 확실히 구분지어 말한다(draws a clear distinction between the euro zone and the EU). 메르켈은 측근들에게 “EU는 좀 더 효율적이고 능률적인 조직으로(as a more efficient and tightly run ship) 변화할 필요는 있지만 끝까지 살아남을 것(is destined to survive)”이라고 말한다. 메르켈이 유럽 단일 시장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독일의 국익이다. 현재 유럽 대다수 국가가 독일 정부의 장단에 춤을 춰야 할(have to dance to tunes written in Berlin) 형편이지만 그 장단이 독일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럽에 대한 애정(sentimental attachment to the idea of Europe)에서 비롯된 것 또한 아니다.채권시장의 압박과 독일 유권자들이 등을 돌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EU 회원국들과 미국 정부의 압력에 밀린 메르켈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에 의지하려 든다. 바로 규칙이다. 유로존 각국의 재무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다는 그녀의 계획은 빠른 시일 내에 많은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어야 시행이 가능하다(will need to win over a great many players). 하지만 유럽개혁센터의 카팅카 바리슈는 그 계획이 상황 개선에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동안 독일 타블로이드 언론은 그리스에 아크로폴리스 등 문화재를 매각해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좀 누그러졌다(have given way to a calmer attitude). 바리슈의 말을 들어보자. “최근 독일 정부가 새로운 조약과 기관의 설립을 거론 하면서 일을 제대로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it looks more in charge). 정치적으로 이 전략은 효과가 있다. 현재 메르켈의 유로위기 관리 방식을 지지하는 독일인이 전체의 약 3분의2(지난 10월엔 전체의 45%에 불과했다)에 이른다.”그렇다 해도 유럽을 위기에서 구할 인물로 주목 받는 메르켈에겐 결코 쉬운 시간이 아니다. 그녀의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유로화 신뢰도 하락의 확산을 막는(to halt the spreading decay of confidence in the euro) 등의 단기적인 목표와 유럽을 재편하는(reshaping Europe) 장기적인 목표의 결합이 쉽지 않다. 메르켈은 요즘 잠을 잘 못 자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끊임없이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지도자라는 자리가 얼마나 고독한지를 드러내주는 증거다.

2011.12.13 17:26

12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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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이 최근 국내 바이오 의약업체에 후한 점수를 줬다. ‘세계 바이오 시장의 차기 리더감’이라고 평가했다. JP모건이 찍은 업체는 코스닥 시가총액 1위 셀트리온이다. 셀트리온은 2006년까지만 해도 매출이 0원이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돈키호테 CEO’라고 불렸다. 셀트리온의 고속성장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이코노미스트가 4월 8일 인천 송도 셀트리온 본사에서 서 회장을 만나 비밀의 단추를 풀었다.1983년 대학(산업공학과)을 수석 졸업했다. 그해 그 어렵다는 삼성전기에 단번에 들어갔다. 삼성그룹 연수원 성적은 1등이었다. 대학 동기들이 대리를 달 무렵인 1992년 그는 대우자동차 상임경영고문(전무이사 대우)에 올랐다. 삼성전기에서 나와 한국생산성본부 전문위원(1991년)으로 활동할 때 그의 기획력을 높게 평가한 김태구 대우차 사장(당시)이 직접 영입했다. 그의 나이 33세 때 일이다. 이 대단한 경력의 소유자는 셀트리온 서정진(54) 회장이다.젊은 시절 서 회장은 두려울 게 없었다. “내 사전에 실패라는 단어가 없었던 시절”이라고 그는 회상했다.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게 인생이다. 서 회장의 성공 드라마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실업자로 전락했다.생애 첫 고배. 서 회장은 술독에 빠졌다. 그는 “술이라도 마셔야 잘 수 있었다”며 아픈 기억을 꺼냈다. 술독에 빠진 그를 일으켜세운 건 대우차 기획실 동료 8명이었다. 이들은 서 회장을 찾아와 “가시밭길이라도 함께 가자”고 청했다. 서 회장은 이들과 함께 ‘다음 해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2000년 자본금 1억원을 들여 벤처기업을 차렸다. 사명은 넥솔(넥스트 솔루션)이었다. 문제는 아이템이었다. 그는 “국내 IT(정보기술)·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산업의 틈새를 살펴봤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미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넓은 시장에서 새 아이템을 발굴하기 위해서였다.고행(苦行)이었다. 하루 70달러짜리 모텔에 묵었다. 던킨 도너츠로 점심을 때운 날도 많았다. 그러던 중 서 회장의 머리에 스친 아이템이 있었다. 바이오의약품이었다. 바이오의약품은 세포와 DNA를 이용해 만든다. 가격은 비싸지만 암·유전병 등 희귀질환 치료에 유용하게 쓰인다.“샌프란시스코 사람은 건강에 신경을 많이 썼다. 처음엔 ‘국민소득이 높은 국가의 사람들은 무언가 다르구나’ 싶었다. 그런데 문득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한국도 그렇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샌프란시스코의 헬스케어 산업을 먼저 확인했고, 그 중심에 바이오의약품이 있다는 걸 알았다. 유레카였다.”서 회장의 흥미를 자극한 건 또 있었다. 바이오의약품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각국 식약청 사이트에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그는 “경쟁사의 정보를 캐기 위해 며칠을 고생하는 자동차업계와는 크게 달랐다”고 털어놨다. “신기한 경험이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아니던가.”그는 아이템 고민을 끝냈다. 대규모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장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변 사람들은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기 전 공장부터 건설하면 어떡하느냐’며 핀잔을 줬다. 몽상가라는 소리도 들었다. 서 회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을 갖추면 기회가 반드시 온다.” 누구 말이 맞았을까. 성공비결은 ‘역발상’서 회장이 새 출발한 지 올해로 11년. 셀트리온의 현재 직원은 521명, 계열사는 12곳에 달한다. 시가총액은 4조3264억원(4월 22일 기준)으로 코스닥시장 1위다. 지난해 매출은 1891억원에 달했다. 셀트리온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설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5년 준공한 셀트리온 제1공장의 용량은 5만L(배양기 용량 기준)다. 현재 시험가동 중인 제2공장은 9만L급 설비를 갖췄다. 1, 2공장의 설비용량을 합치면 14만L, 세계 2위다.스위스 제약업체 론자(13만4000L)는 이미 따돌렸고, 독일 베링거인겔하임(18만L)을 뒤쫓고 있다. 서 회장은 “9만L급 3공장이 완공되는 2015년 이후엔 세계 1위에 올라설 것”이라고 자신했다.국내외 증권업계도 셀트리온의 성장세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신영증권은 셀트리온의 매출액이 2012년 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4월 19일 “셀트리온은 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업체로 성장할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리서치 관심종목으로 편입했다. 서 회장은 “이만하면 괜찮은 성적표가 아닌가”라며 “나를 과대망상증 환자로 깎아내렸던 사람들에게 알찬 성과를 보여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커다란 몸이 살짝 떨렸다. 침묵이 10여 초 이어졌다. 마음을 추슬렀는지 그는 말을 계속했다. “2000년대 초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장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내 별명이 뭐였는지 아는가. 사기꾼이다. 나처럼 욕을 많이 먹은 CEO도 없을 거다.”시계를 거꾸로 돌려 다시 2000년께. 바이오의약품 시장에 주목한 서 회장은 생명공학계 대부 톰 메리건(미 스탠퍼드대 에이즈연구소장·당시) 박사를 무작정 찾아갔다.그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하듯 바이오의약품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그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자문해야 했다”고 회상했다.메리건 박사는 학식만큼이나 깐깐하기로 유명한 인물. 일면식도 없고, 바이오 전문가도 아닌 서 회장을 만나줄 리 만무했다. 어렵게 가진 첫 대면에서 서 회장은 바이오의약품 사업계획을 설명했지만 메리건 박사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서 회장은 보름 동안 매일 찾아갔다. 잠깐 만날 때마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그의 청사진은 이랬다. “다른 생명공학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신약 개발→생산→판매다. 하지만 나는 다른 길을 갈 것이다.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려면 수천억원 이상 든다. 승인 과정이 까다로워 개발기간도 길다. 일단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장을 만들어 CMO(의약품 대행생산·용어설명 참조)를 하겠다. 이를 통해 자금이 모이면 바이오시밀러(복제약품), 바이오 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바이오시밀러는 신약을 복제한 약이다. 신약 특허기간이 완료되면 만들 수 있다. 미국·유럽·일본의 바이오 신약 특허는 대부분 2012~2015년 완료된다. 서 회장은 이미 10년 후를 보고 있었다.서 회장의 독특한 계획을 들은 메리건 박사는 마음의 문을 열었다. 곧장 미 바이오 벤처기업 백스젠의 수석자문위원(당시) 신승일 박사에게 서 회장을 추천했다. 메리건 박사의 당시 추천사다. “바이오 전문가는 아닌데 시각이 날카롭다. 그의 이야기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서 회장을 만난 신 박사는 “글로벌 제약사 제넨텍(2009년 로슈에 인수)이 에이즈 백신 제조시설을 갖춘 바이오의약품 생산단지 후보지를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백스젠은 제넨텍의 계열사였다.서 회장은 천운의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무조건 올인 방침을 세우고 넥솔 직원에게 “한국에 바이오의약품 시대를 열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제넨텍 경영진을 찾아가 설득을 거듭했다. “투자비를 줄이려면 미국·유럽보다 땅값이 싼 아시아, 그중에서도 인재가 많은 한국이 적격”이라고 강조했다. 싱가포르까지 뛰어든 치열한 유치전에서 서 회장은 전고를 울렸다. 제넨텍이 계열사 백스젠을 통해 한국 투자를 결정한 것이었다.2012년 바이오시밀러 시대 열려그로선 축제를 즐길 겨를이 없었다. 풀어야 할 과제가 많았다. 무엇보다 12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장의 입지를 정해야 했다. 그는 외자유치에 적극적인 인천시를 설득했다. 그 결과 땅값 50% 할인, 분양대금 10년 분할상환조건으로 100만㎡에 달하는 송도 부지를 매입했다. 셀트리온은 송도 입주 1호 기업이다. 다음은 투자자 모집이었다. 수많은 대기업을 찾아가 투자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 당했다. 국내 5대 제약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여기서도 서 회장은 사기꾼 소리를 들어야 했다. 억울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2001년 당시 넥솔은 실적이 전혀 없는 유령기업이나 다름없었다. 서 회장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KT & G 곽주영 사장(당시)을 찾아가 열변을 토했다. “내 인생을 걸고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내가 먼저 입금할 테니 우리만큼만 투자해 달라. 단 1원이라도 (우리가) 유리한 권리를 갖지 않겠다.”곽 사장은 투자를 결심했다. 그는 후일 서 회장의 열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고 한다. “열정과 진심이 가득한 그의 말은 어떤 투자보고서보다 매력적이었다. 성공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셀트리온은 이렇게 탄생했다. 2002년 2월의 일이다. 백스젠(48.98%)·KT & G(17.14%)·넥솔계열(17.59%)이 주주였다우여곡절 끝에 2002년 착공된 셀트리온 공장은 2005년 완공됐다. 서 회장은 곧바로 CMO 사업에 착수했다. CMO는 의약품 대행생산을 뜻한다. 다른 제약업체의 의약품을 대신 생산하는 것이다. 제조업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과 유사하다. 셀트리온에 CMO의 성패는 중요했다. CMO 계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매출을 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서 회장은 “남들은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았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며 “세계적 수준의 공장을 건설하면 의약품 생산을 의뢰하는 제약업체가 많을 것으로 확신했다”고 말했다.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2005년 다국적 제약업체 BMS(브시스톨마이어스퀴브)와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 원액 생산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20억 달러(약 2조원), 납품 시작일은 2007년이었다. 셀트리온의 첫 매출이 2007년 나온 이유는 여기에 있다. 2008년 9월에는 프랑스 제약업체 사노피-아벤티스와 항체 의약품 생산제휴를 했다.서 회장의 CMO 전략은 통했고, 셀트리온의 실적은 눈부시게 향상됐다. 매출은 2007년 635억원에서 2009년 1456억원으로 129% 늘었다(계열사 제외).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5.1배(2007년 140억원→2010년 718억원)가 됐다. 셀트리온의 매출이 2006년까지 0원이었다는 점에 비춰 보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CMO 사업에 성공한 서 회장은 이제 둘째 목표를 향해 뛰고 있다. 이번엔 바이오시밀러다. 서 회장이 10년 전 예상했듯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글로벌 바이오 컨설팅업체 이밸류에이트파마와 HMC투자증권의 자료를 보면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2006년 3억 달러에서 2010년 222억 달러로 70배가 됐다. 2020년엔 905억 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 서 회장은 “바이오시밀러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셀트리온이 역점을 두고 개발하는 바이오시밀러는 두 개다.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의 바이오시밀러(CT-P6)와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CT-P13)다. 허셉틴과 레미케이드의 특허는 내년 완료된다. 시장규모는 각각 50억 달러(약 6조원), 60억 달러(약 7조원)다. 누가 먼저 이 시장을 잡느냐에 따라 업계 판도가 바뀔 수 있다.셀트리온 바이오시밀러 출시 임박 ‘독주 예상’셀트리온의 허셉틴·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개발 속도는 빠르다. 허셉틴 바이오시밀러는 2009년 하반기부터 라트비아·필리핀·싱가포르·인도 등에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임상이 완료되고, 하반기엔 제품 출시가 가능할 전망이다.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는 이탈리아·영국·콜롬비아·포르투칼·오스트리아 등에서 임상이 진행 중이다. 내년 말 제품 출시가 유력하다는 평가다.바이오시밀러의 임상시험은 1상·2상·3상을 거쳐야 한다. 셀트리온의 허셉틴·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는 대부분 3상을 진행하고 있다. 다른 경쟁업체는 이제야 1상 단계다.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1상에서 3상으로 가는 데 통상 3~4년이 걸린다. 셀트리온의 경쟁업체가 허셉틴·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를 시장에 출시하려면 적어도 2013년이 돼야 한다.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가 예정대로 내년 출시되면 이 회사는 2~3년 동안 수십조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 JP모건이 셀트리온을 ‘바이오의약품 업계에서 떠오르는 글로벌 강자’라고 표현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시장 반응도 다르지 않다. 셀트리온 김용중(기획조정실) 과장은 “전 세계 의약품 판매업체 중 상당수는 셀트리온의 허셉틴·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를 사전 주문했다”며 “2010년 1800억원, 내년엔 2900억원어치의 주문을 받았다”고 말했다.셀트리온이 개발하는 바이오시밀러는 더 있다. 항암제 리툭산(CT-P10)·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 엔브렐(CT-P5) 등 7종의 바이오시밀러를 개발 중이다. 신약 개발도 한창이다. 김용중 과장은 “종합 독감 치료제, 광견병 치료용 약품, 암세포 성장을 차단하는 항체를 개발하고 있다”며 출시 예정 시기는 2012년 이후라고 말했다. 서 회장은 “남들은 우리를 보고 고속성장 중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페이스 조절을 하고 있다”며 “올해부턴 셀트리온의 진짜 저력을 보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서 회장은 지금껏 반전 드라마를 써왔다. ‘열에 아홉이 안 된다’는 사업에 진출해 보란 듯이 성공했다. 역경도 많았다. 매출이 나오지 않을 땐 자살까지 시도했다. 2006년 영업손실이 187억원에 달하자 ‘사기행각’이라는 말을 귀따갑게 들었다. 서 회장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강한 의지와 미래를 위한 투자로 위기를 이겨냈다. 셀트리온은 2002년 이후 생산설비에 6400억원, 제품개발에 1598억원을 투자했다. 매출 대비 R & D(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50%가 넘는다. 직원 중 연구원 비율은 14%다. 서 회장을 ‘벤처기업 CEO의 롤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이런 찬사에도 서 회장은 덤덤하다. “힘든 일은 있었어도 대단한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가슴 한켠에 풀리지 않는 한이 남아 있는 듯했다. “남들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투덜댈 필요 없다. 모든 걸 잠재우는 방법은 쉽다. 실적으로 보여주면 된다. 나중에 ‘당신 말이 옳았어’라는 얘기를 들으면 순간 희열이 몰려온다.” 서 회장이 숱한 역경을 뚫으며 터득한 경영의 지혜다. 그의 반전 드라마는 오늘도 계속된다. ■ 후배 벤처 CEO를 향한 서정진의 훈수“이미지가 아니라 실적으로 말하라”▶ 주가는 중요하지 않다“우리 회사는 목표주가가 없다. 손익보다 주가가 두 발자국 뒤에 따라왔으면 한다. 주가는 손익이 이끌어야 한다. 이벤트가 이끄는 주가는 실속이 없다.”▶ 벤처기업의 주(主)는 직원, 객(客)은 CEO“직원이 없으면 CEO도 없다. 직원 아이디어로 엉킨 실타래가 풀릴 때도 있다. CEO가 직원을 먹여 살리는 게 아니라 직원이 CEO를 먹여 살린다. 이게 올바른 주객(主客) 개념이다.(셀트리온은 직원 복지가 가장 좋은 기업 중 한 곳이다. 연봉은 대기업 수준이다. 식사는 공짜로 제공되고, 호텔 수준의 피트니스센터 회원권도 준다. 셀트리온은 송도 제2공장 옆에 3층 규모의 복지관을 짓고 있다. 어린이집·피트니스센터 등 각종 복지시설이 갖춰질 전망이다.)▶ 창업가와 CEO는 다르다“벤처기업은 젊어야 한다. CEO가 늙으면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직원들에게 60세가 되는 2017년엔 CEO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말했다. 창업자가 CEO에 집착하면 벤처기업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사업은 타이밍이다“모든 비즈니스에서 품질·가격경쟁력보다 우위에 있는 게 타이밍이다. 시장을 선점하고, 그에 걸맞은 기술력을 갖추면 어떤 기업과 승부해도 무섭지 않다.”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2011.04.2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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