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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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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AI 시대, 투자 접근은 어떻게 해야 할까 [스페셜리스트 뷰]

증권 일반

주식시장에서의 ‘인공지능(AI) 관련주’와 실물시장에서의 ‘AI 생산성’은 약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주식시장은 ‘미래 가치’를 ‘현재 가격’으로 할인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 전반부에서는 ‘주식시장에서의 AI’를 다루고, 말미에 가서는 ‘실물시장에서의 AI’에 대해 다뤄보겠다. 현재 주식시장은 ‘버블’이 나타날 환경이 조성돼 있다. 그 이유는 ‘과잉완화’ 때문이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중앙은행의 과잉완화는 거의 항상 금융시장에 ‘버블’을 만들었다. 이게 무슨 얘기인지 살펴보자.중앙은행은 언제 금리 인하를 할까? 당연히 경기사이클이 위축될 때 금리를 인하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 정점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하면,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를 방어하려고 한다. 반대로 경기가 좋을 때는 금리 인상을 통해 경기과열을 막는다. 통화정책에 아주 기본이 되는 사항이다. 과잉완화는 이것을 거스르는 상황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경기가 확장되는데도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하는 것을 과잉완화라고 한다. 얼핏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경기가 좋으면 금리를 인상해야지, 왜 인하를 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실제로 지금 그런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3% 전후를 기록했다. 그런데 연준은 작년 9월 50bp(bp=0.01%포인트) 금리 인하를 시작으로 3차례에 걸쳐 75bp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그리고 추가 금리 인하 여지도 남겨놓은 상황이다. 그런데 과거에도 매우 드물지만 과잉완화가 있었던 적이 있다. 과거 40여년 동안 2번 있었는데, 1998년 하반기와 2021년 초다. 그러면 연준은 왜 과잉완화의 유혹에 빠지는 것일까? 과잉완화가 있었던 시기에는 두 가지 매크로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이 시기엔 모두 물가가 낮거나 낮은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1998년에는 아시아 금융위기와 유럽 경기침체(동유럽 붕괴)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며 물가가 낮았다. 2020년에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발생으로 세상이 격리에 들어갔다. 그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물가가 낮아졌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이 안정되고 있다. 둘째, 실업률이 상승했다. 이 시기엔 GDP 성장률이나 기업이익 증가율이 높았지만, 실업률도 상승하는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1998년과 2024년에 경기가 좋았음에도 실업률이 상승한 원인은 기업 간 거래(B2B) 투자에 있다. 이 시기는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사이클은 매우 부진했던 반면, 대규모 B2B 투자(인터넷 투자·AI 투자)가 경기를 이끌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B2C는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반면, B2B는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작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경기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상승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현상은 연준이 경기를 오판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낮은 물가와 반등하는 실업률은 연준을 과잉완화 유혹에 빠트린다. 이런 과잉완화는 잘못된 통화정책이지만, 어쨌든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몫이다. 그리고 이미 단행된 과잉완화는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잉완화, “금융시장에 버블을 낳다”그렇다면 과잉완화는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이를 알기 위해 1998년 하반기와 2021년 초 과잉완화 이후 주식시장을 살펴보자.1997년 3월 연준은 2년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하지만 이때 ‘인상’은 단발에 그쳤다. 왜냐하면 당시 금리 인상이 ‘달러 초강세’를 불렀고, ‘달러 초강세’는 ‘아시아 외환위기’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경제가 침몰하자,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은 급락했고, 달러 초강세로 미국 수입물가가 하락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대까지 하락했다. 아시아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홀로 강세를 이어가던 미국증시에 뜻하지 않던 충격이 닥쳤다. 1998년 10월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파산한 것이다. 당시 LTCM 파산은 월가 투자은행(IB)들로 번질 조짐을 보였다. 공포에 질린 연준은 ‘긴급 금리 인하’(FOMC가 열리는 날이 아닌데, 긴급하게 모여서 금리 인하를 결정하는 것)를 단행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과잉완화였다. 당시에는 단순 ‘유동성’ 문제였기 때문에, 금리 인하가 아닌 ‘지급보증’ 정도로 충분했다. 하지만 당시 CPI가 1%대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 과잉완화의 유혹을 불렀다. 결국 이후 3차례 금리 인하(75bp)가 진행됐고, 과잉완화는 주식시장에 버블을 불렀다. 그리고 이는 ‘닷컴버블’의 시작이 됐다. 닷컴버블을 단순히 90년대 후반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1998년 긴급 금리 인하가 있기 전까지는 S&P 500과 나스닥의 상승률에는 큰 차이가 없었으며, 나스닥 주가수익비율(P/E)도 25~30배 수준에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1998년 중반까진 실적장세였지, 버블이 존재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잉완화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스닥 지수가 급등했고(1년 5개월간 약 4배 상승), 나스닥 P/E가 25배에서 75배까지 오버슈팅했다. 다시 말해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확대가 주식시장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닷컴버블이 무서운 기세로 시작된 것이다. 2021년의 과잉완화도 주식시장에 버블을 불러왔다. 2020년 팬데믹 이후 급등하던 주식시장은 2021년 초에 급격히 조정을 받기 시작했다. 조정의 원인은 ‘긴축 우려’였다. 당시 주식시장에는 ‘경기과열과 인플레’ 경고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곧 금리 인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고, 이것이 주가 조정으로 이어졌다.그런데 2분기부터 증시는 되레 반등하기 시작했다. 바로 파월의 연설 때문이었다. 2021년 파월은 IMF 연설에서 시장 우려와는 정반대로 긴축이 아닌 완화를 선언했다. 그 유명한 ‘노숙자 텐트촌’ 발언이었다. 파월이 출근하는 길에 공원이 있었는데, 팬데믹 이후 노숙자들이 급격히 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파월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래서 그는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바로 통화정책 완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경기가 과열로 향하고 있었음에도 통화완화정책을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 증시에서는 ‘하락장 진행’이 멈추고 그해 가을까지 ‘버블장세’(메타버스 랠리)가 펼쳐졌다.경기가 좋은데도 중앙은행이 돈을 퍼부었으니, 주식시장에 버블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버블장세’에서의 주도주우리는 과잉완화는 버블장세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이런 버블장세에서는 어떤 주식들이 시장을 주도할까? 이를 알기 위해 2021년과 1999년 버블장세를 되돌아보자. 2021년 버블장세를 이끈 것은 ‘메타버스 관련주’였다. 그러면 그때 우리는 왜 메타버스 세상을 상상하게 됐을까?메타버스라는 생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2020년에는 ‘언택트 시대’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경험이 확장돼 우리가 ‘메타버스 세상’을 상상하게 만든 것이다. 다만 2020년 주식시장을 이끌었던 ‘언택트 관련주의 랠리’와 2021년에 있었던 ‘메타버스 관련주의 랠리’의 주가 동력은 완전히 다르다. 언택트 시대를 주도한 주식들, 예를 들어 아마존·줌·페이스북 등의 주식은 언택트 시대에 이익이 급증했다. 즉, 이익성장이 주가를 이끈 실적장세였다. 반면 메타버스 랠리는 실제 이익증가는 거의 없었고, 밸류에이션 확장이 이끈 버블장세였다. 물론 ‘내러티브’(이야기 구조)만으로 주가가 그렇게 급등한 것은 아니다. 몇몇 데이터와 새로운 기술이 상상력을 자극했다. 예를 들면 ‘제페토(네이버에서 만든 가상현실 게임) 가입자 증가 추이’ 혹은 ‘로블록스 액티브 유저’ 등 데이터들이 메타버스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 다만 이것들이 실제로 기업들의 실적을 급등시킨 것은 아니다. 실적이 급등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밸류에이션 확장을 가져왔을 뿐이다. 이번에는 1999년을 살펴보자. 1990년대 중후반까지 증시를 이끌었던 주도주는 잘 알려져 있듯 ‘시스코’였다. ‘인터넷 인프라 투자’에 통신장비를 거의 독점적으로 공급하던 기업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지금의 엔비디아가 종종 닷컴버블 당시 시스코와 비교된다. 하지만 1999년에 버블장세가 시작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물론 시스코도 1999년에 100% 가까이 급등했지만, 주도주로 는 어림도 없는 수익률이었다. 당시 주도주는 ‘인터넷 인프라’를 활용한 기업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미 대규모 투자가 단행된 인터넷 인프라가 미래에 ‘어떻게 활용될까’에 관련된 기업들이 주도를 했다는 것이다. 그중 주도주는 ‘퀄컴’이었다. 1999년에 퀄컴 주가는 27배나 급등했다. 퀄컴의 이런 주가랠리를 이끈 것은 주당순이익(EPS)이 아닌 밸류에이션이었다. 1999년은 휴대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퀄컴의 실적이 좋았을 리 없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대규모로 투자된 인터넷 인프라가 어떻게 쓰일지 상상했다. 결국 투자자들은 인터넷 투자가 곧 ‘무선통신 시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꿈을 꾸게 됐고, 이것이 시장의 버블을 만들었다. 물론 투자자들의 꿈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이 꿈은 그로부터 수년 뒤에 현실이 됐지만, 1999년 주가랠리는 분명 실적 급증을 동반하지 않았던 버블장세였다. 당시 퀄컴 주가가 27배 올랐는데, 이것을 현재 시점에서 계산하면 이미 1999년에 퀄컴의 20년치 이익을 당시 주가에 반영한 것이었다. 실제로 퀄컴 주가는 2000년 고점을 2021년에서야 다시 넘게 된다. 이런 사실들을 기반으로 본다면, 버블장세에서의 주도주 특징을 몇 가지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이익증가보다는 밸류에이션 확대를 기반으로 주도주가 형성될 것이란 점이다. 둘째, 밸류에이션 확대는 기존에 있었던 현상이 확대되며 적용될 것이란 점이다. 예를 들면 언택트 시대가 메타버스 세상을 상상하게 했고, 인터넷 인프라 투자가 인터넷 활용을 상상하게 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하드’에서 ‘소프트’로 넘어간다고 이름 붙일 것이다. 예를 들어 초기에 실적 급증을 기반으로 주가가 랠리 하는 주식은 ‘하드 인터넷·하드 AI’, 후기에 밸류에이션 확장을 기반으로 가는 주식은 ‘소프트 인터넷·소프트 AI’로 부른다. ‘소프트 AI’, 선택은 국가마다 다르다결국 버블장세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소프트 AI’ 주식들이다. 다만 국가와 증시 특성에 따라 어떤 소프트 AI를 사야 하는지는 좀 달라진다.미국의 경우 소프트웨어 등 선진화된 첨단 AI 기술을 비롯한 대부분의 AI 기술에 강점이 있다. 따라서 ‘AI 소프트웨어’ 등 첨단 AI 산업에 투자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된다. 하지만 한국기업이 AI 산업의 핵심을 이끌 가능성은 별로 없다. 예를 들어 인터넷 시대에 한국에서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기업을 만들어 낼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제조업이 강했다. 따라서 인터넷 시대에 휴대폰·반도체·부품소재 등 제조업과 관련된 것을 담당했다. AI 시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프트 AI 중에서 제조업과 관련된 산업이 좀 더 한국증시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우주·방산·로봇·원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소프트웨어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상대적으로 후순위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중국증시 등에서도 어떤 기업을 선택해야 하는지 대략적인 그림이 나온다. 중국의 경우 정보통신기술(IT) 플랫폼과 전기차 등에 강점이 있다. 따라서 소프트 AI 관련 투자도 IT 플랫폼과 전기차 관련 주식들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실제로 최근 중국증시 급등에서 주도주를 보면, 전기차와 IT 플랫폼 기업들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소프트 AI 중에서 투자할 주식을 고를 때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이익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이익이 적게 날수록 더 큰 상승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예를 들어 테슬라를 생각해 보자. 테슬라는 소프트 AI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소프트 AI 주식 중에서는 후순위에 둔 바 있다. 그 이유는 이익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이다. 만약 자동차 판매가 예상치를 하회하면 자율주행에 대한 추정치도 하향 조정될 수밖에 없다. 이는 투자자들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요인이 된다. 어차피 버블장세에서는 멀티플(주가수익배율) 확대가 주가를 이끌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상상력의 천장이 없는 주식들이 더 긍정적이다. 또한 본업에 대한 실적이 주가를 가르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새로운 AI 비즈니스가 미치는 영향이 반감될 수 있다.따라서 한국증시에서 소프트 AI 우선순위를 본다면, 제조업을 베이스로 하면서, 멀티플의 무한 확장성을 가진 방산·로봇 등이 가장 선호될 수 있다. 방산에서도 우주가 조선보다는 더 확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은 상상을 하다가도 그만큼 생산능력(도크)이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들면 현실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전 등은 그다음으로 주목해 볼 수 있는 업종이며, 그 다음은 AI 소프트웨어가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버블장세에서 주의해야할 것들 하지만 버블장세에서는 주의해야 할 것들도 있다. 첫째, 버블장세에서는 ‘단기 급락’이 자주 나타난다. 왜냐하면 버블은 실적보단 ‘밸류에이션 확대’(미래 기대수익을 현재 가격에 반영)를 중심으로 주가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미래에 대한 낙관이 ‘위험선호도’를 극단으로 끌어올리며 버블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작은 리스크에도 쉽게 주가가 급락한다.1999년 버블장세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991~1998년에 나스닥은 450% 급등했지만, 단기급락(약 10% 이상 급락)은 1년에 0.8회로 매우 드물게 나타났다. 하지만 1999년 버블장세 땐 1년 3개월 동안 무려 8회나 단기급락이 발생했다. 거의 2달에 한 번 꼴이다. 하락의 주된 요인은 위험 선호도를 후퇴시키는 리스크 요인들이나 연준의 긴축 우려다.둘째, 버블은 반드시 붕괴한다. 과잉완화는 주식시장에 상승을 가져오지만, 버블에 올라타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왜냐하면 버블은 결국엔 붕괴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증시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버블이 주는 열매는 매우 달콤하지만, 음악이 멈추기 전에 먼저 뛰어내리지 못한다면 결국 쓰디쓴 잔을 마셔야 한다. 버블이 끝나는 시기를 정확히 전망할 ‘비밀의 법칙’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몇 가지 추론을 통해 우리는 그 끝을 알 수 있는 시그널들을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버블 붕괴의 시그널은 무엇일까?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연준의 긴축’이다. 연준의 긴축이 하락장의 시그널이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첫째, ‘고물가 시대’에는 금리 인상이 하락장의 트리거다. 작년 여름, 연준의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 하락장이 올 거란 주장이 많았다. 하지만 이는 논리적으로 어색하다. ‘돈을 푸니까 하락장이 온다’는 것은 이상한 논리다. 물론 ‘저물가 시대’에는 금리 인하가 하락장의 트리거가 맞다. 다만 이는 금리를 인하했기 때문이 아니라, 경기가 꺾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금리는 경기가 꺾였기 때문에 인하한 것이지, 금리를 인하했기 때문에 증시에 하락장이 시작된 것이 아니다. 선후 관계가 잘못된 것인데, 어쨌든 저물가 시대에는 금리 인하 시기에 하락장이 펼쳐지는 것이 맞다.하지만 고물가 시대에는 반대다. 금리 인하가 아니라, 금리 인상이 하락장의 시그널이 된다. 저물가 시대와 완전히 반대가 되는 것이다. 1965~1985년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시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고물가 시대였던 당시에는 금리 인상이 하락장을 불러왔음이 명확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인데, 2022년 하락장도 금리 인상이 트리거가 됐으며, 물가가 꺾인 후 2022년 4분기에 증시 바닥이 나왔다. 분명 고물가 시대의 반응이다.그렇다면 우린 아직 고물가 시대에 살고 있는가? 그렇다. 고물가 시대의 구분에는 ‘CPI가 얼마인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이 중요하다. 즉, 사람들이 여전히 인플레에 집중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를 알기 위해 구글 트렌드를 참고할 수 있다. 검색량을 보면 2020년대 이전까지 사람들은 물가(inflation)에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최근 CPI 안정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에 대한 관심은 과거보다 훨씬 높다. 우리가 아직 고물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증거다.둘째, 밸류에이션 버블을 붕괴시키는 극약은 바로 긴축이다. 과잉완화가 버블장세를 만든다면, 버블붕괴는 과잉긴축이 만든다.과잉긴축이란 과잉완화의 반대 현상이다. 과잉완화는 경기가 확장되는데 금리를 인하하는 것이라면, 과잉긴축은 경기가 꺾이는데도 금리를 계속 인상하는 것을 말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추세적 긴축’에 대한 시장의 ‘전망’(expectation)이 형성될 때 버블이 붕괴한다. ‘이제 모두 틀렸어. 앞으로는 계속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어’라는 절망이 생기면 버블은 붕괴한다. ‘희망’이 버블을 만든다면 ‘절망’이 버블을 붕괴시킨다. 그런데 왜 경기가 꺾였는데도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하하지 않고 오히려 금리 인상을 선택하게 되는 것일까? 이런 경우의 수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하면, 경기가 꺾여도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하할 수 없다. 결국 인플레이션이 다시 살아날 것이냐가 투자자들이 지켜봐야 할 매우 중요한 포인트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다만 아직 너무 빨리 버블붕괴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당분간은 인플레이션이 급등하기는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트럼프의 관세와 감세 정책은 모두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쪽으로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은택 연구원은_ KB증권 리서치본부 주식전략가 (Strategist)이다. 연세대학원 경제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삼성 반도체사업부를 거쳐 2008년부터 DB투자증권에서 애널리스트를 시작했다. 2020년부터 현재까지 매경, 한경, 조선일보 등 각종 언론에서 선정하는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5년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2021년에는 대한민국 증권대상을 수상했다.

2025.04.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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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과 ABCDE로 풀어 본 세계경제 위험 요인 [조원경 글로벌 인사이드]

전문가 칼럼

기대 인플레이션이 쉽사리 꺾이지 않은 채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14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4%를 훌쩍 뛰어넘어 연방준비위원회(Fed)의 강력한 통화긴축 전망을 반영하고 있다. 10년물 국채금리가 상승하면 달러 강세, 미국 주식시장 하락이라는 공식이 이어진다. 10년물 국채금리 상승에도 불구하고 10월 17일 주간 미국 주가는 월요일부터 강한 상승의 모습을 보였다. 여느 때 금요일의 하락 마감과 달리 상승 마감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11월 0.75%포인트 올린 후 12월에는 0.50%포인트 금리인상을 할 가능성이 단기 주가 반등에 불을 붙였다. 중간 선거 랠리일까? 달라진 게 크게 없는데 24일 주 다우지수 상승이 지나치다는 평가도 나왔다. 과거의 기억을 불러보자. ━ 기대인플레이션 제어 불능, 미국 최종 금리 향방은 기준금리 동결이나 인하는 주가상승을 유도할까? 2018년 금리 인상으로 주가가 급격히 하락하자 연준은 2019년 세계 경제 냉각에 따른 보험성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주가는 상승으로 방향을 틀었다. 2000년대 초 닷컴버블이 터지고 난 뒤 지나친 주가상승에 놀란 정책당국은 6.5%까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후 지나친 주가 하락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주가는 금리 인하를 할 때 반짝 상승을 하였을 뿐 경기침체를 반영하여 주르륵 흘러내렸다. 기억을 습작하고자 하는데 가까운 2019년만 떠오를 뿐 2000년대 초반은 아득해 보인다. 이 시점에서 우리를 둘러싼 세계경제 위험요인을 ABCDE 머리글자로 풀어보자. 먼저 A다. America’s Terminal Rate, 이번 금리 인상기의 미국의 최종 정책금리 수준과 도달 시기이다. 올해 5월만 하더라도 미국의 최종 금리가 내년 6월에 3.25~3.50 퍼센트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젠 올 12월 금리가 4.5-4.75 퍼센트로 훌쩍 올라갈 것으로 전망한다. 내년 5% 이상도 각오해야 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각국 중앙은행에서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하지 않으면 세계 경제가 1970년대식 ‘인플레이션 소용돌이’에 빠질 거라고 경고했다. 현재의 실질금리는 1970년대의 오일쇼크 때와 같은 마이너스 수준이다. 물가상승세에 미치지 못하는 속도의 금리인상은 실질금리 하락을 의미하며 물가상승 위험을 제어하기 힘들다. 지금 우리가 피할 최대의 과제는 물가와 임금의 연쇄 상승이고 그 와중에 경기가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다. 다음은 B다. British Government Bond Market, 영국의 채권 시장이다. 지난 9월 23일 영국 정부가 대책 없는 감세 정책을 내놓은 여파로 9월 26일 파운드화 가치는 1.0327달러까지 내려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1972년 이후 반세기 만에 최대 규모의 감세 정책이 공개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영국 정부의 부채 규모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 번째로 높은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영국의 9월 물가상승률이 10퍼센트를 넘었다. 높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성장을 촉진하겠다고 재원 마련책도 없는 재정지출 계획을 동원했다가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만 본다는 결과를 보여줬다. 채권 레버리지 투자로 인한 연기금의 투자 손실은 막대한 상황이다. 영국이 처한 고물가 저성장 상황을 두고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제적 불확실성, 큰 폭의 경상수지 적자는 불안요인이다. 혹자는 46년 전 IMF 구제금융 당시를 떠올린다. ━ 도처에 산재한 지뢰밭, 시스템위기 발생시킬까 다음은 C다. Chinese Real Estate Market 중국의 부동산 시장 이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을 사실상 확정하며 홍콩 증시는 52주 최저로 폭락했다. 그가 부동산 문제, 홍콩, 대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하다. 중국은 일단 아파트 분양 구조 자체가 위험하다. 아파트가 약 30% 정도 지어지면 분양을 하는데, 계약금은 30% 정도 내고 나머지 70%는 은행 대출로 갚아간다. 부동산과 기타 관련 산업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만큼 경제에 미칠 영향이 상당하다. 주택 공급 시장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사람들은 경제 전반에 대한 확신을 잃는다. 주택 매수자는 미완성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거부하고 있으며, 일부는 주택 완공을 확신하지 못한 상황이다. 부동산 개발업자가 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당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시티그룹이 추산하는 주택담보대출의 규모는 5,610억 위안(111조원)이다. 부동산 채권이 부실율은 29.1 퍼센트까지 올랐다고 하니, 부동산 대출 채권의 약 1/3이 돈을 떼일 수 있는 상황이다. 그 다음은 D로 Developing Countries’ Currency & Debt Crises, 약체 개발도상국가의 폭등하는 물가상승에 따른 통화 약세와 채무 위기 문제이다. 경제성장율 하락과 달러 강세가 신흥국 채무 부담 능력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올해 5월 스리랑카가 역사상 첫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다. 이집트와 파키스탄·가나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IMF의 자금 지원을 받은 국가는 93개국 2580억 달러(370조 원)에 달한다. 올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뒤 지원을 약속한 규모도 16개국 총 900억 달러(약 130조 원)로 집계됐다. IMF가 구제 금융을 결정한 뒤 실제로 집행한 대출 총액은 9월 말 기준 1350억 달러(약 194조 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E는 European Energy Market Security, 유럽의 에너지 안보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2년 4분기 가스시장 보고서에서 겨울을 앞두고 EU의 가스 비축률이 90%를 넘어서면서 천연가스가격 하락을 견인하고 있다고 본다. 독일의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에너지 가격의 사상 최대 증가폭으로 전년 동기 대비 45.8% 상승했다. 에너지 가격은 1년 전보다 132.2% 상승했다. AFP통신이 보도한 독일과 프랑스의 가공할만한 내년 전기료 인상 기사를 떠올리는데 겨울을 앞두고 난방비 공포에 사로잡힌 독일인들이 앞 다퉈 장작을 사들인다는 기사가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영국은 10월부터 전기·가스요금 상한선을 80 퍼센트 높였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내년 전기 계약 요금이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세상은 이제 다른 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돈 찍어 내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은 기억저편으로 넘어갔고 새로 맞은 긴축의 시대에서 정책 묘수를 발굴해야 한다. 약한 고리가 자칫 시스템 위기를 발생할 수 있다는 말로 경계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야 한다. ※ 필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이자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이다. 국제경제 전문가로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제금융심의관, 울산 경제부시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등이 있다. 박정식 기자 tango@edaily.co.kr

2022.10.2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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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핍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김광석 경제 읽어주는 남자]

전문가 칼럼

맞는 옷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옷을 선택해야 한다. 고기를 양껏 2인분 먹고 싶지만, 1인분으로 만족해야 하는 상황에 비유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것을 ‘정하기’보다, 조건에 맞추어 ‘정해지는’ 모습이다. 살기 좋은 집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정에 맞게 살집이 정해지는 처지다. 부모님께 풍성한 명절 선물을 드리고 싶지만, 여유가 없어 알뜰한 상품을 골라야만 하는 불효자의 마음이다. 아이에게 유기농 달걀로 요리해 주고 싶지만, 저렴한 물건을 골라야 하는 부모의 감정도 보여주는 듯하다. 2023년은 ‘내핍’의 시대다. 내핍(austerity·耐乏)은 물자가 없는 것을 참고 견딤을 뜻한다. 궁핍(needy·窮乏)과도 유사한 표현이지만 다소 차이가 있다. 궁핍은 몹시 가난한 상황을 말하고, 내핍은 가난한 상황을 인내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2023년 경제가 녹록지 않을 것이고, 경제주체는 그 어려운 경제를 인내해야 한다. 높은 물가에 허덕이는데, 소득은 넉넉지 않다. 가진 자산은 쪼그라들고,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켜져 간다. 소비심리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할 여력 자체가 없어진다. 가계만 힘든 것이 아니다. 소비가 위축되니 기업도 생산활동을 줄일 수밖에. 가뜩이나 원자재 가격이며 전기요금, 가스요금 모두 올랐는데, 매출은 그 자리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을 통해 2023년 경제를 ‘내핍점(Point of Austerity)’이라고 규명했다. 인플레이션 쇼크는 2022년 고점을 찍고 내려오겠지만, 2023년에도 해소되지 않은 채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과제로 남아있을 것이다. 세계 각국의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2023년까지 연장됨에 따라, 종전에 생각했던 수준보다 기준금리의 고점과 속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높아져 버린 시중금리는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가계의 소비심리를 얼어붙게 만든다. 고물가와 저성장의 부담을 안고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경제주체들은 매우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전망이다. ━ 거품의 생성과 소멸을 읽어내야 한국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학술적으로는 4% 수준의 높은 물가상승률이 유지되고, 경제성장률은 전년동기대비 1%를 밑도는 상태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고물가와 저성장이라는 안 좋은 선택지만 받아든 상태를 뜻한다. 보통 고물가 시대에는 고성장이, 저성장 시대에는 저물가가 찾아오는데 말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한다. 세계 그리고 한국경제가 어떤 국면에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경제 여건은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온다. 누구에게만 금리가 올라가고, 누구에게는 금리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거시경제는 한 방향으로 찾아오지만, 방향을 모르는 사람에게만 위협이 찾아온다. 코끼리 뒷다리에 매달려 있지 말라. 코끼리 발의 발톱만 바라보지 말라. 높은 곳에 올라가 수십 마리의 코끼리 떼가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지켜보라. 종목만을 지켜보면, 이 종목이 왜 오르고 또 왜 떨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높은 곳에 올라가 거대한 세상의 움직임이 내려다보이게 해야 한다. 2023년 경제를 먼저 들여다보라.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텐가. 2020년 자산버블 시기를 놓치면서 당하고, 2021년 뒤늦게 내 집 마련하자마자 집값 내려가서 또 당하고, 2022년 주가 하락하는데 ‘쌀 때 담아야 한다’면서 추격 매수하며 또 당하지 않았는가? 경제를 모르면 당한다. 거품의 생성과 소멸을 읽어내야 한다. 돈의 이동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경제를 모르고 투자하는 것은, 눈을 감고 운전하는 것과 같다.” 재테크는 소득의 일부를 자산과 바꾸는 행위다. 아무 자산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치상승이 기대되는 자산을 찾아 바꾸어야 한다. 종목에만 연연하지 말고, 주식, 부동산, 금, 채권 등과 같은 자산가치의 움직임을 관찰하라. 투자대상의 가치는 경제와 연결되어 움직이고, 어떤 자산에 투자할 것인지는 경제전망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 눈을 감고 운전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 신흥국 외환위기 고조에 대응해야 기업은 패러다임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 기업은 경제환경에 둘러싸여 있고, 그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므로 그 자리에 머무를 수만은 없다. 세계적으로 경기가 둔화하고, 통상환경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긴축전략(tightening strategy)이 필요하다. 즉,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확장적인 사업전략을 취하기보다, 수익성이 높은 캐시 카우(cash cow)에 집중하는 방향이 적절할 수 있겠다. 해가 비추기 전까지 비가 오는 기간에는 준비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금리뿐만 아니라 원자재나 인건비도 높은 국면에서는 수축해 있다가, 경기 바닥을 통과하는 지점에 신사업 진출과 신제품 출시를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 신흥국 외환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에, 그 위험이 전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흥국 위험이 주변 신흥국으로까지 전이될 수 있고, 부분적으로 한국 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채무불이행에 처하는 기업들로부터 대금 회수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취약 신흥국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잠재적 위험이 감지될 때 해당국 공급업자나 현지 법인 및 파트너사를 중심으로 위험을 관리함으로써 조기 대응에 나서야 한다. 정부의 대응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대한 시점이다. 세계는 군사·안보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금융·외환 시장은 극도로 불안정하다. 신흥국들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최악의 경제환경이다. 외환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무역적자 문제는 해소될 기미가 없다. 경제주체들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지 않도록 진두지휘해야 한다. 특히, 경제 상황에 맞는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 글로벌 리세션에 대한 공포가 현실화 하는 지금에 경제주체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책이나, 무분별한 확장적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금물이다. 정부는 위기 상황에서도 다음 경로를 감지해야 한다. ’죽음의 계곡‘을 지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후 어떤 먹거리를 위해 도전할지를 미리 모색해야 한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재생에너지, 디스플레이, 콘텐츠, NFT 등과 같은 유망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유망기술 인재를 육성하고, 해외 주요기업들을 국내 유치해 기술교류가 일어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과거의 규제가 미래의 신성장 산업을 제약하지 않도록 합리적 규제체제를 마련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오늘을 살지만, 내일을 고민해야 한다. 경제주체들이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도록 ’성장 사다리‘를 놓는 경제·산업 정책이 필요하다. * 필자는 ‘경제 읽어주는 남자’로 알려진 한국의 대표 이코노미스트다. 현재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이자 한양대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과 삼정KPMG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을 역임하며 경제 이슈를 분석해 왔다. 정부 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인사혁신처·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2021년 경제 전망’, ‘위드 코로나 2022년 경제 전망’, ‘그레이트 리세션 2023년 경제 전망’ 등 5년째 베스트셀러 경제전망서를 발간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2022.10.22 14:00

5분 소요
가계 부채가 불러온 장기 침체 그림자  [최배근 이게 경제다]

국제 이슈

전 세계에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이른바 S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 진행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최근 경기침체의 정의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사실상 많은 국가에서 이미 진행 중이다. 사람들에게 경기침체는 소득 후퇴가 가장 구체적 신호일 것이다. 그리고 대개 소득 후퇴는 고용 상황의 악화와 관련이 있다. 이 두 가지 경우를 반영하는 지표가 GDP이다 보니 기술적으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이 진행될 때 경기침체 국면이라고 말하곤 한다. 성장률이 한 나라의 평균적인 소득 변화율을 의미하기에 마이너스(-) 성장률 자체는 한 나라 전체의 평균적 소득의 감소를 의미한다. 그리고 (공급 측면에서) GDP는 단기적으로 고용 규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GDP의 감소는 고용 규모의 감소, 즉 실업의 증가를 의미한다. 미국 재무부 장관인 재닛 옐런이 (미국 경제가 전기대비 기준으로 1분기에 –0.4%에 이어 2분기에도 –0.2%를 기록했음에도) 경기침체가 아니라고 주장한 배경도 일자리 창출이 지속하고 있다는 해석 때문이다. 연준 의장인 파월 역시 (여러 지표가 긍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미국 경제는 침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금리 인상으로 이자 상환 부담이 증가한 가계는 가처분소득이 감소하고 있고, 많은 기업 역시 매출 증가율 둔화 및 순이익 감소 그리고 그에 따라 고용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장의 많은 경제주체는 경기침체를 이미 실감하고 있다. 게다가 고용 개선이 지속되고 있다는 주장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 물론, (6월에 3.6%를 기록한) 미국의 실업률은 팬데믹 이전 최저 수준까지 하락한 상태이다. 그러나 얼마나 일자리를 갖고 있냐를 나타내는 고용률을 보면 6월에 59.4%로 팬더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60.1%를 기록한) 3월 이후부터 꺾이고 있다. 물론, 고령화나 인구 증가 요인 등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핵심 노동력(25~54세) 고용률 역시 전체 고용률과 비슷한 추이를 보인다. 게다가 미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들의 경영자들은 미국 경제가 이미 침체 상태이거나 침체 직전에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경제는 침체 혹은 침체로 진입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은 (일부에서는 조만간 정점에 달할 것이라는 희망을 드러내고 있지만)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인플레이션이 지속하는 한 금리 방향을 바꾸기는 어렵다. 경기침체 압박이 증가하면서 금리 인상 종료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기대(?)도 인플레이션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현실화하기 어렵다. 이전 칼럼에서 ‘이지 머니 시대의 종언(the end of an easy money era)’을 말한 이유이다. 금융위기 이후 팬데믹 이전까지 금융완화에 의한 경기와 자산시장 부양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금융위기 이후 (그 이전에 비해) 둔화한 성장률이 더 둔화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이는 저성장 혹은 무성장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 부동산 매개로 한 한국 사회의 자산 집중과 불평등...시대 말기적 모습과 유사 문제는 한국 경제이다. 한국 경제도 스태그플레이션을 피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미국 경제보다 더 악성이다. 에너지와 원자재, 곡물 수입 그리고 중국이라는 특정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뿐 아니라 무역적자가 구조화할 경우 환율 상승 압력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주목할 점은 가계부채와 자영업부채다. 가계부채로 금융위기와 (그 연장선인) 유로존위기를 겪은 국가들은 팬데믹 상황에서 재정을 동원하여 가계부채를 관리하였다. 그런데 한국은 팬데믹 상황에서 가계부채와 자영업부채가 폭증하였다. 가계부채는 팬데믹 직전 GDP 대비 95%에서 지난해 말까지 106.6%로 증가했고, 자영업부채는 팬데믹 직전 GDP 대비 35.6%에서 올해 1분기에는 45.8%까지 증가하였다. 가계부채 및 자영업부채와 동전의 앞뒷면을 이루는 것이 주택담보대출이다. 그런데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주택구입부담과 주택담보대출의 이자 상환 부담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주택 수요가 억압되고 가처분소득의 감소 및 담보가치의 하락으로 가계소비 둔화 및 부채 축소(와 그에 따른 주택 매물) 압력이 증가하면서 주택거래가 급감하고, 주택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택가격 하락은 주택 수요 감소와 공급 증대 압력으로 작용하며 다시 주택거래 감소와 주택가격 하락의 악순환을 형성하고 있다. 이른바 ‘부채 디플레이션(Debt Deflation)’ 혹은 ‘대차대조표 침체(Balance-Sheet Recession)’의 초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부채 디플레이션이나 대차대조표 침체는 용어 자체가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이나 90년대 일본의 자산시장 거품 붕괴에 뿌리를 두고 있듯이 한번 진행되면 ‘재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자산시장의 붕괴는 한국 경제의 붕괴를 의미한다. 2019년 말 대비 지난해 말까지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약 96조원이 증가한 반면, 가계의 순자산은 2291조원, 즉 소득의 24배가 증가하였다. (불평등을 결정하는 요소가 소득에서 자산으로 이동한 사실에 초점을 맞춘) 피커티계수(=자산/소득)를 보면 한국이 어느 주요국보다 높다. 2021년 한국의 (순자산/순소득) 배율은 11.9배로 금융위기 직전 미국의 5.8배를 크게 앞서고 있다. 자산 중심의 경제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의 힘이 경제력을 결정하고, 경제력은 자녀의 교육 수준을 결정하고, 교육 수준은 다시 국가의 공적 자원에 대한 접근 기회와 정치력 및 경제력 축적 기회를 증대시킨다. (금수저-흙수저의 존재가 오래 전 우리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듯이) 자산이 신분 대물림의 원천이 되었다. 사회의 계층 사다리는 사라지고, 사회자원들은 혁신을 통한 소득 창출보다 자산 축적 활동에 배분된다. 출산률이 떨어지고 수축사회로 진화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구매력을 반영해 측정한 성인 1인당 (자산/소득) 배율은 2020년 기준 한국이 8.4배로 미국 5.3배나 독일 5.1배, 일본 6.2배 등보다 높다. 자산 집중과 불평등은 시대 말기의 대표적 징후이다. 예를 들어, 전통 사회에서 왕조 말기에 토지 집중과 귀족의 권력 강화는 국가 세수 감소와 국가 권력 약화, 그리고 생산자 농민의 궁핍화 및 예속민으로의 전락으로 이어졌고, 그 연장선에서 토지개혁을 명분으로 한 혁명과 왕조 교체는 역사적 공식이었다. (기독교 사상에 기초한) 서양 사회에서 (채무 면제와 노예 해방, 즉 빚에 의해 사람이 지배되지 않는 장치로서 의미를 갖는) ‘희년(禧年)’을 설정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자산 축적의 메커니즘은 수많은 개인을 채무노예로 전락시키고, 사회의 역동성은 약화하기 때문이다. 구질서에서 신질서로의 이행과정에서 역사는 자산 불평등의 비극적 경로를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처럼 현재 부동산을 매개로 한 한국 사회의 가계부채와 자영업부채는 시대 말기적 모습과 유사하다. 따라서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의 연착륙, 그리고 자산 축적에 기반한 한국 경제를 혁신에 기반한 경제로 바꾸지 않는 한 (S공포가 끝나기 전에 밀려오는 D공포의 결합이 만들어낼) 장기침체는 불가피하다. 재앙을 막을 시간이 별로 없다. *필자는 건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 전문가다. 현재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경제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유튜브 채널 ‘최배근TV’를 비롯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KBS ‘최경영의 경제쇼’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 중이며, 한겨레21, 경향신문 등에 고정 칼럼을 연재했다. 주요 저서로 등이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022.08.06 15:00

5분 소요
악재 겹겹 쌓인 국내외 경제 상황 돌파할 대응 전략은

재테크

세계 각국이 묶여 있는 산업 사슬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들이 올해 증가하면서 국제사회는 경제 성장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지난해 말 발표된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는 6개월 동안 수 차례 바뀌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지난해엔 6.1%로 예측했으나 올해 1월에는 4.4%로 낮췄으며 이어 4월엔 3.6%로 -0.8%포인트 내렸다. 7월에도 또 한번 하향 조정할 계획이다. 그럴 경우 올해 들어서만 경제 성장률 조정을 세번이나 낮추게 된다. 이는 시장에선 전례 없는 일로 여기고 있다. 그만큼 세계 경제가 긴박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급기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Kristalina Georgieva)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6일(현지 시간) 세계 경제 상황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또 한번 강조했다. 그는 내년에 “세계 경제가 침체 상황을 맞을 수 있다”며 “이에 따라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도 조만간 또 한번 하향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 배경엔 세계 공급망을 뒤흔드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정책과 고강도 금리 인상 의지를 비롯해 물가 폭등 인플레이션 심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그에 따른 세계 공급망 불안전, 그리고 국제사회 신냉전 분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사태가 악화 장기화 되고 있어서다. 해외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고심이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 이에 대한 해법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경제 포럼’을 마련했다. 분야별 전문가들이 강연자로 나와 길잡이가 될 혜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경제 포럼은 12일 오전 10~12시 KG타워(서울 중구 통일로 92) 하모니홀에서 열린다. 41년여 만에 폭등한 인플레이션 공포가 미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과 ‘슬로플레이션’(slowflation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에 대한 경기 전망을 분석하는 자리다. 경제 포럼은 세션1에서는 한문도 연세대 교수(금융부동산학과)가 부동산 시장을 전망한다. 한 교수는 고금리, 거래 규제, 공급 확대 등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주요 요인들을 짚어줄 예정이다. 특히 경제 성장 둔화와 관련한 지표들을 분석해 부동산 시장의 향방을 진단할 계획이다. 세션2에선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증시 전망에 대해 강연한다. 윤 센터잘은 환율·금리·임금·소비·수출과 관련한 지표들을 진단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반도체·원자력 등 한국 경제의 주력 업종에 대한 전망, 중국·러시아의 경기 흐름에 따른 세계 공급망과 한국 경제의 위험요소 등을 집중 살펴볼 계획이다. 세션3엔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가 급변하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진단한다. 김 교수는 이날 경제 흐름에 영향이 미치고 있는 악재들을 하나씩 짚어 나가며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제공할 계획이다. 부채에 의한 성장의 한계, 선진국과 신흥국의 부채 상황,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미치는 파급, 금리·달러·주가·집값의 변동에 대한 중장기 전망, 이를 통한 가계 자산 분배 전략 등을 제시할 예정이다. 경제 포럼에 대한 안내는 이코노미스트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박정식 기자 tango@edaily.co.kr

2022.07.11 17:53

3분 소요
금리 수혜‧호실적 전망에도...“금융주 주가 왜이래?”

은행

금리 인상기 대표적인 수혜주로 불리는 금융주가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이달 들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금융그룹의 주가는 평균 약 15% 하락했다. 기준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금융주 하락에 직격탄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 금융주 주가 6월에만 9~18% 하락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KRX금융지수는 666.75로 이달 초인 지난 2일과 비교해 15.2% 떨어졌다. 같은 기간 코스피200 금융지수도 697.45에서 616.37로 13.2% 하락했다. 4대 금융 주가도 일제히 주저앉았다. 금융주 중 시가총액 1위인 KB금융은 24일 주당 4만9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달 초인 지난 2일 종가와 비교하면 18.8% 하락했다. 같은 기간 ▶신한금융 -9.4% ▶하나금융 -18.1 ▶우리금융 -13.6% 등 금융주가 모두 하락했다. 신한금융을 제외한 대부분의 금융주는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하락률 12.4%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 통상 금융주는 금리인상기 대표적인 수혜수로 꼽힌다. 은행들의 예대마진이 오르면서, 이자이익 증가를 통한 실적 개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리 0.75%포인트를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다. 이어 7월에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이상 인상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한국은행 또한 7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이는 등 급격한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었다. 실제로 금융사는 올해 상반기 금리인상 수혜에 호실적을 낼 것으로 보인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대 금융의 상반기 순이익 추정치는 8조904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1% 증가할 예정이다. ━ 금리 수혜 못이긴 ‘경기 침체’ 우려 금융주에 호재로 꼽히는 금리 인상과 호실적 전망에도 주가가 부진한 것은 경기 침체 공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에 따른 추후 금융사의 건전성 저하 등의 우려가 주가에 반영된 것이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은행주 주가 부진 원인은 경기 침체 가능성 심화와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외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대폭 인상으로 경기 침체 및 은행권의 여신 부실화 우려가 확대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인플레이션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상승하면 금융주에는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 영향이 더욱 크게 나타난다”며 “특히 경기는 부진한데 반해 물가만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환경은 금융주에 치명적”이라고 평가했다. 금리인상기 금융사는 리스크 대비를 위한 대손충당금 적립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 대손충당금이란 은행이 부실채권 리스크를 대비해 쌓는 자금을 의미한다. 적립 규모가 늘어날수록 순이익이 감소해 실적에는 부정적이다. 최근 금융당국 또한 경기 악화 우려가 높아지자, 금융권에 대손충당금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2분기부터 금융사는 충당금 추가 적립에 나설 예정이다. 최정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금리 급등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되면서 글로벌 금융주들이 주가 약세를 시현 중”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경기침체 우려 외에도 단기간에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건전성 악화 우려 또한 부각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금리가 더 이상 은행주에 호재로만 작용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윤주 기자 joos2@edaily.co.kr

2022.06.24 16:34

2분 소요
코로나 사태로 커진 유동성 인플레이션 쓰나미 올까?

국제 경제

“일시적인 것은 잊어라. 인플레이션은 현재 지속적이며 매우 높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2021년 12월 11일 미국이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직면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같이 표현했다. 더 심각한 물가 상승도 예고했다. 40년 전 미국이 15년간 잡지 못한 ‘더 그레이트 인플레이션(The Great Inflation)’을 다시 경험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그 지속성과 강도는 금융권의 예측을 벗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인다. 이런 이유로 여유를 부렸던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매파적(긴축정책 선호 성향)으로 입장을 바꿔 서둘러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시행과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경제 교과서 분석처럼 잡힐 것이냐에 있다. 시장은 ‘반반’을 점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특징은 통제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백신 접종률을 높여도 좀처럼 확진자 증가를 잡기 어렵다. 백신 효과도 길지 않다는 점 때문에 부스터샷을 정부가 독려한다. 변이도 빠르다. 코로나19는 각 국가의 수많은 변수와 바이러스의 빠른 변이 탓에 백신 공급 확대와 상관없이 확진자 추이가 요동친다. 의료 체계는 요동 속에 혼란스러워한다. 금융시장이라고 다를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특징과 비슷하게 움직이는 곳이 금융권이다. 2020년엔 팬데믹 공포심에 전 세계 증시가 무너졌고, 이후 예상치 못한 속도로 자산 가격이 치솟았다. 국가마다 역대급 유동성을 일으킨 영향이다. 그렇게 자산 가격 하락은 막았지만, 그 결과로 나타난 인플레이션은 예상 속도를 뛰어넘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19 상황이 2년이 넘어도 멈추기 어렵다는 데 있다. 유동성에도 한계가 나타났다. 물가 상승세가 높아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경기 침체 우려는 여전히 높다. 금리 인상에도 물가 상승과 경제 불황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은 금융권의 불안을 더욱 키우고 있다. 금융권은 글로벌 경제가 위기의 벼랑에 서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1982년 이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각 국가의 물가도 비슷한 모습이다. 미국이 유동성 공급 축소와 기준금리 인상 신호탄을 급하게 쏘아 올렸지만 일각에서는 ‘결과를 확신할 수 없다’ 분석을 내놓는다. ━ 미국 인플레이션 심상치 않다 미 노동부가 2021년 12월 10일(현지시간)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6.8%가 올랐다. 10월 상승률(6.2%)을 넘어섰다. 11월 CPI는 1982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 상승은 시장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류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도 4.9%나 상승하며 5%에 육박했다. 유가는 1년 만에 33%나 급등했다. 현 인플레이션은 미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과 저금리, 임금 상승이 요인으로 지목된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2021년 11월 민간 부문의 시간당 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 4.8% 올랐다. 이런 이유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졌다며 미국 경제가 향후 2년 내 침체에 빠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서머스 교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을 지낸 민주당 핵심 인사다. 서머스 교수는 2021년 12월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최고경영자(CEO) 카운슬 서밋에서 “인플레이션이 뚜렷해졌다”며 “중앙은행인 연준이 경기침체 없이 물가를 억제할 가능성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2년 내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을 30~40%로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2021년 5월에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돈을 재차 풀어버린 탓에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고 주장한 바 있다. 유동성 확대에 따라 수요의 힘이 강해졌는데 공급은 부족해지면서 결국 가격 상승 속도가 빨라졌다는 설명이다. 서머스 교수와 마찬가지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2021년 12월 14일 CNBC에 출연해 인플레이션의 지속성을 경고했다. 그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아시아 일부 지역이 둔화하고, 이는 공급망 부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말해온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도 매파적으로 입장을 바꾸며 테이퍼링 조기 시행과 금리 인상을 전했다. 연준은 2021년 12월 15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테이퍼링 축소 속도를 현재의 2배로 높여 2022년 6월이 아닌 3월에 이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은 또한 향후 기준금리도 2022년에 세 차례 인상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에 미국 기준금리는 2022년 말 0.75~1.00%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3월부터 이어져 온 ‘제로(0)’ 수준의 기준금리 시대는 2년여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연준은 일단 현 인플레이션을 잡아보겠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는 과거 70년대에 발생했던 ‘더 그레이트 인플레이션’ 재발을 막아보자 점에서 합의를 본 결정으로 풀이된다. ‘더 그레이트 인플레이션’은 미국에서 1965년부터 1982년까지 17년 동안 물가가 최대 15%대까지 올라 생긴 명칭이다. 당시엔 베트남 전쟁에다 1, 2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원자재 가격들이 고공행진을 했고 장기적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대해 기존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표현을 없앤 것도 현 물가 상승 속도가 40년 전으로 갈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 한국도 인플레이션 피해 가지 못해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현상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가 코로나19의 글로벌 재확산, 아시아 지역의 셧다운(공장 폐쇄)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차질 확대, 중국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성장성 둔화가 보다 강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중국 무역 의존도가 높은 탓에 한국 경제는 중국 정책과 생산 변화에 경기가 민감하게 움직여 물가 불안정을 키울 수 있다. 한국은행도 이런 이유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장기간에 이어질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2022년 국내 물가 수준이 목표 수준인 2%를 넘는 등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할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다. 2021년 하반기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을 시행한 것도 물가 상승을 부추긴 것으로 분석된다. 심야 시간 이동량 증가와 서비스 부문에서의 신용카드 지출이 늘어났다는 지적이다. 이런 민간소비 증가가 2022년에도 쉽게 잡히지 않을 전망인 가운데, 한은은 민간소비가 2022년 상반기에 1년 전 대비 4.1% 증가, 하반기에도 3.2% 증가하는 등 높은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1년 하반기 이후로 고공행진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물가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한은은 “글로벌 물가 오름세가 당초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적어도 2022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또 한은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2021년 12월)’에서 “물가가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앞으로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적절히 조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물가 상승 원인으론 주요국의 물가 상방 압박, 공급병목 해소 지연, 임금 및 기대인플레이션 상승, 주거비 물가 오름세 등을 꼽았다. 이에 따라 한은은 2021년 8월과 11월 잇달아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제로금리 시대의 막을 내렸다. 미국의 테이퍼링과 기준금리 인상 예고에 따라 2022년 추가 기준금리 인상 시기도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는 2022년 1월 14일, 2월 24일 두 차례 열릴 예정이다. 금융업계는 한국의 대선을 앞둔 2월보다는 1월에 우선 한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수준이지만 장기적으로 이어지기는 힘들다는 전망도 있다. 이는 미국이 1965년부터 겪은 초고도 인플레이션 현상 때와 현재가 많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는 인구 증가로 인한 넘치는 수요로 공급망 문제가 발생하면 물가 상승이 곧바로 발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국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인구 감소 문제가 오랜 기간 누적됐다. 결국 수요의 힘이 계속 약해지면서 40년 전에 겪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이어지기 어렵다는 평가가 제시된다. 아울러 최근 중국의 헝다 사태에서 나타난 것처럼 중국 정부의 디레버리징(부채 줄이기) 정책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원자재 가격 폭등을 누르는 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과도한 인플레이션이나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2022년 하반기 이후로 글로벌 공급망 부족 해소와 금리 인상에 따라 선진국을 중심으로 물가 상승률이 안정 궤도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장기적 인플레이션 2022년 말 해소될 수도” 아울러 코로나19의 치사율이 변이 바이러스 발생에도 우려만큼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도 단기성 인플레이션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오미크론과 관련해 미국 전염병 권위자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델타 변이보다 심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지만 치사율에선 현재 심각한 수준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에 우려됐던 글로벌 이동 제한에 따른 생산·운송 차질 우려가 다소 완화될 것이란 전망이 힘을 받는다. 2022년 상반기부터 동절기 난방 수요 둔화와 중국 동계올림픽 이후로 예상되는 공장 가동 정상화로 2022년 1분기 이후 글로벌 물가 상승률이 하향 안정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중국 정부의 ‘일단 부채를 잡고 가겠다’는 정책이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호재가 되는 모습이다. 중국의 부동산 경기가 식을 경우 가장 먼저 건설 쪽에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따른 철강 등 원자재 수입 위축과 가격 하락이 발생할 수 있다. 김효진 KB증권 연구원은 “중기적으로는 1970년대와 달리 마이너스 진입을 앞두고 있는 인구,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분배 및 디레버리지 우선 정책이 수요 전망을 둔화시키며 인플레이션의 지속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2021년 11월 29일 발간한 ‘NABO경제·산업동향&이슈’를 통해 최근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 발생과 관련해 “향후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의 문제가 점진적으로 해소된다면 최근의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은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 전기차 시장 및 금·달러 투자 관심 커질 전망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미 연준의 테이퍼링 및 금리인상, 중국의 디레버리지 정책 등으로 2022년의 주식 시장 변동성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 업계에선 2020년과 같은 주식 호황은 2022년에는 보기 힘들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자산 거품을 형성하는 실질금리(중앙은행이 설정하는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공제한 금리)가 여전히 마이너스인 상황이다. 이에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라 금리 상승 체감도는 시장에선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장기간 견조한 실적을 달성해온 기업과 아닌 기업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JP모건은 2022년에도 인플레이션이 시장에 영향을 줄 것으로 평가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리플레이션(재정 확장을 통한 경기 성장과 인플레이션 상승)에 민감한 주식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이에 필수 소비재보다는 에너지주와 금융주가 상승 동력이 크고, 대형주보다는 소형주가 좋다고 내다봤다. 기술주의 경우에는 금리로 인해 적정 주가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고 전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비중을 확대할 만한 섹터로 에너지·헬스케어·금융을 꼽았다. 인플레이션에 따라 노동 집약적인 생산 구조를 가진 필수 소비재 섹터의 경우 어려움이 예상된다. 수요가 계속 창출될 것이란 예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금융주의 경우 전통적 금리 수혜주인 만큼 확대된 대출자산과 금리 인상에 따라 안정적인 실적이 예상되고 있다. 아울러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감소할 경우 소형주가 대형주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만큼 코로나19 위기를 벗어나 경영 정상화로 이익 창출이 가능한 기업들에 대한 투자도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코로나19 이후 친환경 분야 투자가 여전히 안전한 투자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전기차 시장과 관련한 자동차 기업과 전기차 개발을 위한 핵심 부품 소재에 대한 정부 및 기업적 투자는 계속 활발할 전망이다. 에너지조사기관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는 2021년 하반기에 발표한 ‘무공해 자동차(ZEV) 팩트북’ 보고서를 통해 2021년 말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전기차가 560만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BNEF는 ‘2021 전기차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40년까지 무공해차 규모가 6억7700만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종전 전망치(4억9500만대)보다 크게 확대됐다. 전기차 시장과 함께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주요국 정부 주도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어 민간시장의 관심 증가도 예상된다. 금과 달러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시기에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손꼽힌다. 금 현물만 아니라 금통장(골드뱅킹)과 금 상장지수펀드(ETF) 등이 자산 배분에서 필수 전략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달러에도 투자자들이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달러의 가치는 오르고 있다. 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네, 스위스 프랑 등 주요 6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2021년 12월 15일 기준 96.58로 11월 초 대비 2.61% 올랐다. 이용우 기자 lee.yongwoo1@joongang.co.kr

2022.01.02 16:00

9분 소요
[조원경의 알고 싶은 것들의 결말(6) 인플레이션 시대의 종언?] 뉴노멀 시대 누워버린 필립스 곡선

전문가 칼럼

각국이 돈 풀어도 물가 낮고 실업률도 안정적… 수요 자극 위한 적절한 임금 인상 필요 미국 증시는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한국·인도네시아·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고 주요국 증시는 10~30%대로 올랐다. 주요국 시장의 장기 채권 역시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내 증시도 저조한 성장률 가운데서도 미중 무역분쟁의 1차 협상 타결과 영국 보수당의 총선 압승 후 안정을 찾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도 서울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은 강세를 이어갔다. 넘치는 유동성이 원동력이다. 이렇게 유동성이 넘치고 고용 사정도 유례 없이 좋은 데도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물가는 그다지 높지 않다. 지난해 4분기 이후 물가안정으로 세계 중앙은행들이 비둘기파적으로 변했고, 그런 기대감이 자산시장 강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취임 초기만 해도 서슬퍼렇던 파월 미 연준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빚으면서도, 내년 금리 인하는 없을 것이라며 경기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증시를 달아오르게 만들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를 계속 내리라고 압박할지 모를 일이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고용 호조에도 물가 압력이 크지 않은 현실이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통상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하면 물가상승 압력이 커야 한다. 이쯤에서 자신의 이론이 먹히지 않아 좌절해 버릴 경제학자 빌 필립스를 불러보자.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는 거시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 필립스 곡선이라고 강조했다. 뉴질랜드 출신 경제학자 필립스가 제시한 이 그래프는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마이너스의 상관관계임을 제시한 것이다. 이 곡선은 실업률이 떨어지면 물가가 오르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물가가 하락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빌 필립스가 울고갈 현상? 사실 실업과 인플레이션은 정부나 국민에게 고통거리다. 국민 생활 고통지수는 미저리 지수(Misery Index)라고 한다. 이는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한 것으로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을 계량화해서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물가상승률이 6%이고 실업률이 7%이라면 국민고통지수는 13%이다.필립스 곡선의 탄생으로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실업률이 너무 높으면 세금 감면이나 소비 촉진, 이자율 인하 같은 확장 정책을 구사하고, 인플레이션이 심각할 때는 세금을 인상하고 지출을 줄이며, 이자율을 높이는 수요 줄이기 정책에 나선 것이다. 1960년대까지 각광받던 필립스의 이론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여러 지역에서 실업률 증가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으로 이론적 문제점이 지적됐다. 종전의 필립스 곡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수요의 관리를 통한 해법은 유효하지 않게 된다. 물가와 실업률이 모두 높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상황을 개선하면 다른 쪽의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이 경우 공급 충격을 상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생산기술의 발달로 생산비용이 줄어 재화의 가격을 낮출 수 있다. 가격이 하락하면 시장 수요가 늘어 경기가 차츰 활발해진다. 경기가 회복 국면에 들어서면 기업의 투자가 늘어 일자리가 늘어난다. 그래서 생산기술의 발달이 스태그플레이션의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이는 필립스 커브를 좌측으로 옮겨 더 낮은 물가 상승률과 더 낮은 실업률의 상황이 도래하게 한다.벤 버냉키 전 미 연준 의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 미국 고용시장이 개선 조짐을 보일 때까지 ‘사실상 무기한’ 매달 400억 달러 규모의 주택담보증권(MBS)을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어쩌면 빌 필립스가 제공한 필립스 곡선의 문제의식에 연유한 것이리라. 벤 버냉키의 주장과 반대로 실업문제를 변형된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고, 실업의 문제는 임금의 문제라는 주장이 대두됐다. 실업률은 노동 시장에서 임금에 따라 결정될 문제이지 중앙은행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주장이다. 아울러 실업률과 물가 사이에 안정적인 함수관계가 있다고 본 빌 필립스의 주장은 최근 통계를 보면 무색해지게 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 간의 음(-)의 관계를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이 위기 이전 10년간은 비교적 안정적인 음(-)의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위기 이후에는 양상이 달라져 보인다. 연준이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을 동시에 이루었음에도 물가상승 압력은 크지 않았다. 물가와 실업률과의 반비례 관계가 부정되는 사례다. 이런 사례는 또 있었다. 1991년 이후 113개월간의 장기 호황을 설명하기 위해 비즈니스위크는 신경제(New Economy)란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 1990년대 인플레이션 없이 장기 호황을 누린 미국의 경제 모델에 붙인 이름이다. 당시 컴퓨터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생산성이 계속 증가하면서 임금상승률보다 생산성 증가율이 높아졌다. 인플레이션 없는 지속성장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나라마다 상이한 여건과 수요 요인으로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가 다르기도 하고 공급 조건이 달라지면 필립스 곡선 자체가 움직이기도 한다. 예컨대 2000년대 들어 한국의 경우 자본집약적 수출의존도가 확대됐다. 세계화와 경제 개방의 진전도 있었다. 그래서 국내 수요 요인의 영향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게 됐다. 그 결과 성장률과 물가 간의 탄성치 하락 속도가 빨라져서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가 완만해졌다. 경제 성장으로 수요가 늘어도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아지고 있다는 주장이 그래서 가능하다. 성장에서 수출의존도가 높아지는 데다 정보통신기술 등 자본집약적 산업 위주로 수출이 이뤄지다 보니 성장 확대가 고용 증대, 임금 상승, 기업 비용 증가, 제품 가격 인상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약해졌다. 성장이 이뤄지면 고용이 늘고, 이에 따라 임금이 올라 기업 입장에선 비용 증가로 이윤을 맞추기 위해 가격을 올렸으나 성장이 되도 고용이 이뤄지지 않으니 가격을 올릴 요인도 크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세계 경제의 공급 측 요인, 즉 곡물이나 원자재 가격 상승이 각국의 물가상승률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여하튼 온라인 경제의 발달과 세계화로 필립스 곡선은 점점 더 눕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음을 우리는 쉽게 목격할 수 있다. ━ 우리나라에서도 먹히지 않는 필립스 곡선 최근 우리나라 고용시장은 고용률만 놓고 보면 상당히 호조이다. 고용률은 23년 만에 최고를, 실업률은 6년 만에 최저를 각각 기록했다. 정상적인 필립스 곡선과 반대되는 현상이 발생해 빌 필립스를 무안하게 만들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 증감률이 4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물가에 수출 가격 하락이 겹쳤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와 달리 GDP디플레이터에는 국내에서 생산한 수출품이 들어간다. GDP디플레이터는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값이다. GDP를 구성하는 투자, 소비, 수출입 등 경제 전체의 물가수준을 반영해 ‘GDP 물가’로도 불린다. 소비자물가가 가계 지출 비중이 큰 460개 품목에 가중치를 붙여 산출하는 반면 ‘GDP 물가’는 모든 물가 요인을 포괄하는 종합 지표여서 체감경기와 밀접하다. 거시경제 진단 때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3분기 수출 디플레이터는 전년 동기 대비 -6.7%를 기록했다. 이는 3년 전인 2016년 3분기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물가도 같은 기간 7.4% 떨어졌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분기(-11.9%) 이후 최대 낙폭이다. 중국 등 다른 나라와 경쟁이 심해지면서 우리의 수출 주력 제품 경쟁력이 약해져 제값을 받기 어려워진 게 수출 물가 하락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추세는 좀 더 이어질 전망으로 갑작스러운 GDP 디플레이터의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그래서 혹자는 경기 침체 속에서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 공포가 도래하는 것은 아닌지 문제를 제기한다. 디플레이션은 ‘앞으로 물건 값이 더 싸질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생각에 기반을 두어 소비심리를 더욱 악화시킬지 두려움이 앞선다. 신용평가사 S&P는 2020년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인 중 하나는 디플레이션이라고 경고했다. S&P는 우리나라의 경기가 바닥을 지난 것 같지만 수퍼 예산편성에 따른 재정지출 확대에도 경제성장률과 물가는 낮은 수준에 머물고, 금리는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S&P는 글로벌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아주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투자도 부진한 만큼 디플레이션 경고음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이런 디플레이션 상황에 맞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얼마까지 낮출 수 있을까? S&P는 한국은행이 통화완화 효과를 내려면 정책금리를 더 낮춰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다며, 한두 차례 더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물가상승 압력이 크지 않음을 제기한 대목이다. 이 와중에 미중 무역 분쟁 1차 협상이 타결된 것은 다행이라 하겠다.일본에서부터 미국과 유럽에 이르기까지 인플레이션 압력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일본은행, 미 연준, 유럽중앙은행을 비롯한 대표 중앙은행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중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풀었는데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기묘한 일이다. 일본의 실업률이 26년 이래 가장 낮고, 미국의 실업률도 근 50년 만에 가장 낮은 데도 임금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게 세계 경제의 만성적인 수요 부족에서 연유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세계는 수요 진작을 위해 지금의 상황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나타난 세계적인 경기 반등이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미국, 일본, 유럽에서 취한 대규모 양적완화 조치는 경제를 살리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전반적 소득은 살아나지 못했다. 일본은행은 1999년 이후 기준금리를 제로 부근으로 유지해왔다. 가끔은 그 아래로 내리기도 했다. 다시 성장이 시작되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2년 일련의 개혁 조치에 착수했지만, 일본 노동자들의 임금은 인플레이션과 마찬가지로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각국 정부가 수요 진작의 책임을 중앙은행에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경쟁력과 생산성 제고에 필요한 수급 상황의 개선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일본이 구조적 개혁보다 통화 부양책에 의존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선순환적 리플레이션(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심한 인플레이션까지는 이르지 않은 상태) 주기를 일으킬 수 있게 임금을 올려줄 용기를 내지 못했다. 미국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연준의 공격적 금리 인하나 1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감세 조치 어느 것도 국민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모두 ‘낙수 경제’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차 입증해주고 있다. 이제 통화정책이나 재정 정책만으로 경제 성장을 제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세계는 인식해야 한다. ━ 에드먼드 펠프스의 필립스 곡선 반론 노벨경제상을 탄 에드먼드 펠프스는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인 역학관계를 종합적으로 보고 진단하는 방법을 사용한 학자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2006년 그의 노벨상 수상과 관련해 거시경제 정책의 장기와 단기 효과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넓힌 공로를 인정했다. 그는 완전고용과 물가안정 그리고 경제성장 사이의 상호 충돌을 해결하는 데 언제나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도대체 어떻게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연구했다.펠프스는 필립스 곡선을 부정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필립스 곡선 이론에 ‘물가상승 기대심리’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물가는 실업률과 함께 물가상승 기대심리에 영향을 받으며 장기적으로 실업률은 물가가 아닌 노동시장의 기능에 따라 좌우된다고 보았다. 통화정책의 효과는 단기적일 뿐이고 고용주에 대한 보조금 등 임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재정정책으로 중산층을 육성하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펠프스는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차별화된 고용 보조금 제도가 빈곤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빈곤이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의 원천이 되고 있다면서 취약계층에서 벌어지는 빈곤의 악순환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저임금 근로자에 대한 보조금이나 세금 혜택을 제시한 것이다.세계 주요국이 양적완화를 실시했음에도 소득은 크게 늘지 않고 자산시장의 양극화만 조장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에드먼드 펠프스의 인본적 시장경제를 생각하면 어떨까? 그는 완전한 자유방임 상태의 시장경제는 취약계층에게 야수와도 같은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정부가 고용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을 파격적으로 낮출 것을 주문했다. 그는 정부가 각종 규제와 예외로 만들어진 진입장벽을 쌓아올려 유명 기업을 도와왔다고 평가하며 거대 기업들이 포진한 산업군에서 새로운 산업은 발붙일 곳이 없어졌다고 역설했다.인터넷의 발달은 유통단계를 축소시켜 물가를 하락시킨다. 한국은행은 2013년 이후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이 세계화에 따른 국가별 분업이나 전자상거래 확산 같은 세계적인 요인에 이전보다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은행의 ‘글로벌 요인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례없는 완화적 통화정책 대응에도 주요국 인플레이션은 장기간 물가목표를 하회하며 하향 동조화 현상을 보였다. 세계적인 저인플레이션 지속 현상은 글로벌 공급망 확충, 온라인 거래 확산 같은 구조적 요인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영향이 확대됐을 가능성이 있다. 한은이 물가상승률에서 경기순환적 요인과 불규칙 요인을 제거한 ‘추세 인플레이션’을 구해본 결과, 우리나라는 2001~2008년 사이 2.5%였는데 2011~2018년은 1.7%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21개국 평균치는 같은 기간 2.0%에서 1.4%로 하락했다. 동 보고서는 “글로벌 요인이 개별 국가의 추세 인플레이션에 미친 영향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소규모 국가에서 비교적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글로벌 요인의 영향은 대외 연계성이 높을수록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2013년 3분기 이후 우리나라에 대한 글로벌 추세 인플레이션 영향력은 더 커졌다. 2001년 2분기~2013년 2분기 양측의 상관계수는 0.5였지만 2001년 2분기~2019년 1분기 상관계수는 0.91까지 높아졌다. 세계 공장의 역할을 한 중국을 보자. 세계 제조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8%에서 2018년 25%로 확대됐고,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기존 선진공업국의 비중은 축소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게 된 이유이다. 그 이유는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하여 노동집약적 상품을 세계에 대규모로 공급했다는 점에만 있지 않다. 개혁개방 정책 실시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은 13억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앞다퉈 중국으로 진출했다. 그 결과 선진국 기업들의 제품 다수가 중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제조업 상품들이 브랜드만 선진국 기업일 뿐 실상은 ‘Made in China’였다. 이제 그 공급망이 더 싼 베트남 등으로 이동하고 있고 4차 산업혁명의 발달로 선진국에서도 더 싸게 공급할 기반이 마련됐다.지금의 저물가 부분이 우려스럽게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논의하는 디플레이션과는 아직 괴리가 있을 수 있다. 당장 디플레이션이 올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인플레이션의 시대는 여러 요인에 의해 종말을 고하고 있을 수 있다. 이쯤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디플레이션은 수요 부진에서 온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포용적 성장에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 물가 하락이 기술 발전과 세계화에 따른 공급적인 측면에서 더 문제가 많아 보인다면 그건 꼭 위협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현 단계에서 친노동적 정책으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가능한지 더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처방은 각국의 사정에 따라 다르게, 다양하게 추진될 수 있다. 소비수요를 충분히 자극시키기 위해서는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손상시키지 않아야 하는 문제와 양립이 가능해야 한다. ━ 수요 요인과 공급 요인의 혼재 적정한 임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은 시간은 곧 화폐인 세상을 묘사했다. 세상에서 지폐와 동전이 모두 사라지고 시간만이 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일해서 시간을 벌고, 번 시간으로 소비를 한다. 주어진 시간을 모두 다 쓰고 잔여시간이 제로(0)가 되는 순간 누구나 심장마비로 죽는다. 이런 세상에서 시간이 별로 없는 사람은 결국 가난한 사람이다. 주인공 윌 살라스는 48시간 이상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가난뱅이였다. 어느 날 그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있던 부자의 목숨을 구한 대가로 100년이란 시간을 받게 된다. 너무 기뻐 꽃을 사들고 어머니의 귀가를 기다리지만 그날 어머니는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버스비가 갑자기 1시간에서 2시간으로 오른 탓에 생명줄인 시간이 바닥나 버렸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아득한 옛날 같지만, 금융위기 직후에도 우리는 그걸 겪었다. 인플레이션보다 더 두려운 게 디플레이션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영화 에서 어머니를 잃은 살라스는 무작정 한 대형 시간은행의 은행장을 찾아가 협박하며 금고 안에 있던 100만년을 시중에 유통시키라고 절규한다. 그러자 은행장은 그렇게 되면 시스템이 파괴되고 다음 세대 삶의 균형까지 무너진다고 말한다. 인플레이션의 위험성을 말하는 영화와 달리 현실은 유동성을 엄청나게 살포하는 데도 물가가 오르지 않은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필립스 곡선은 그래서 부침이 많은 주제가 되고 있다.※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기획재정부 국장(국립외교원 파견)이다. 대한민국 OECD 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국제금융심의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등이 있다.

2019.12.2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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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세계 경제 - 최대 화약고는 유럽중앙은행

은행

크리스틴 라가르드(55)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논란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2011년 12월 15일 미국 국무부 연설에서 “세계 경제가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보수적인 경제학자인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비전문가의 성급한 발언”이라고 촌평했다. 라가르드가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점을 두고 한 지적이었다. 반면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그의 말대로 될 가능성은 무시할 정도가 아니다”고 말했다.그런데 라가르드가 의도하지 않은 사건이 벌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요즘 월가의 이코노미스트들이 서가의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대공황 서적을 다시 꺼내 들고 있다”고 전했다.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이 새삼 대공황 전체 역사를 섭렵하려는 게 아니다. 미국 자산운용사 GMO의 투자전략가인 에드워드 챈슬러는 기자와 통화에서 “이른바 ‘결정적 시기’가 요즘 월가의 최대 관심사”라고 말했다. 챈슬러가 말한 결정적 시기는 1929~33년이다. 주가 대폭락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집권 원년 사이다. 『금융투기의 역사』 지은이기도 한 챈슬러는 “주가 폭락이 곧 대공황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실제로 1929년 그날 이후 추락하던 주가는 11월 말쯤 1차 저점에 이르렀다. 이후 회복하기 시작해 이듬해인 1930년 저점과 견줘 50% 정도 다시 올랐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1874~1964)는 그 해 3월 “앞으로 두 달 이내에 주가 폭락의 상흔은 다 지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주가는 1930년 6월 이후 다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이어 실물 경제 붕괴가 뒤따랐다. 제조업체 등이 줄줄이 도산했다. 실업이 급증했다. 주가 폭락과 실물 경제 붕괴 사이엔 적어도 1년 이상 시차가 있었다.‘결정적 시기’의 재현?주가 폭락이 실물 경제 붕괴로 이어진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고든은 당시 미국 금융통화정책 담당자들의 무기력을 들었다. 거품과 주가 폭락 시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로이 영(재직 1927~30)이었다. 은행 줄도산 시기 의장은 유진 메이어(1930~33)이었다. 영은 거품을 키워 주가 폭락을 방관했다. 신용경색도 빨리 진정시키지 못했다. 메이어는 뱅크런(예금인출) 사태를 진정시키지 못했다. 정책적 외통수(Policy Stalemate)가 화근이었다. FRB 역사가인 로버트 헤철은 “두 사람이 의장으로 있을 때 FRB 이사들과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은 기존 패러다임에 젖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영과 메이어 등이 그 시절 고수한 경제 패러다임은 바로 자유방임이었다. 시장 또는 경제의 자생력을 신봉했다. 하지만 경제 자생력은 발휘되지 않았다. 기업과 가계가 줄도산하면서 돈이 흐르는 채널이 막혀버렸다.금융역사가 챈슬러는 “영과 메이어의 무대응은 전형적인 패러다임 지체 현상”이라며 “그런 지체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면 놀랄 만한 일이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무슨 말일까. 챈슬러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영과 메이어 시절 FRB처럼 해묵은 패러다임에 빠져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 해묵은 패러다임은 바로 ‘물가안정’이다. ECB는 1998년 출범하면서 모든 초점을 ‘물가안정’에 맞췄다. ECB 설계자들은 고용 안정이나 금융 시스템 유지 등은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개별 회원국들이 알아서 할 일로 젖혀뒀다. ‘물가안정이 곧 중앙은행 존재 이유’라는 1980년 이후 시대적 패션에 따른 것이었다. 유로존의 맹주인 독일이 1920년대와 2차대전 직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린 트라우마도 한 몫 거들었다.ECB의 물가안정 패러다임은 평상시 문제되지 않았다. 오히려 성공적이었다. 유로존 평균 인플레이션이 2% 남짓에서 유지됐다. 문제는 위기 순간이었다. ECB 대응 능력이 미국이나 영국의 중앙은행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요즘 ECB 논란의 핵심은 국채 매입 확대 여부다. ‘ECB가 유로화를 찍어 재정위기에 시달리는 이탈리아·스페인 등의 국채를 통 크게 사줄 것인가’다. 금융통화 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채의 화폐화(Monetization of Debt)’다. 또 다른 양적완화(QE)이기도 하다. 당연히 돈의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살인적 인플레이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독일이 반대하는 까닭이다. 독일은 ECB의 최대 주주다. 이탈리아 출신 마리오 드라기(64)가 2011년 11월 ECB 총재가 됐지만 독일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신세다. 그는 위기 대응을 강조하는 쪽이다. 그의 조국 이탈리아를 도와야 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원론만 되풀이 하고 있다. 최근 그는 “국채 매입을 늘리는 일은 ECB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ECB의 원칙 고수는 앙겔라 메르켈(57) 독일 총리 등 유럽 리더들의 위기 대응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돈 살포가 없는 상황에서 재정 수단은 효과가 떨어진다. 현재 유럽 리더들이 쓰는 재정수단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과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ESM)이다. 둘 다 일종의 펀드다.유럽 은행들 돈 가뭄 시달려그 결과 유럽 정상들이 2009년 11월 그리스 사태가 불거진 이후 15차례 회의를 열고 온갖 대책을 내놓았지만 유럽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유럽 실물 경제는 이미 침체에 빠졌다는 진단이 우세하다. 재정위기 때문에 세상의 관심이 실물 경제에 미치지 못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ECB의 기존 패러다임 고수는 재정위기를 금융위기로 전이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 유럽 시중은행들이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틈만 나면 이탈리아 등의 국채를 덤핑하고 있다. 기업과 가계에 자금을 공급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다. ECB가 3년 만기 대출 제도를 만들어 시중 은행에 자금을 대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용경색과 채권시장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미국 상황도 좋지 않다. 최근 주택시장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고 있고 소비가 되살아나는 기미가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재정적자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민주·공화 양당의 대결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재정 투입을 통한 경기 부양이 어려워 보인다. 벤 버냉키 FRB 의장만이 위기 대응에 나설 수 있는 형편이다. 이런 와중에 ECB가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을까. 독일 프랑크푸르트 ECB 본부에선 노선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독일 세력이 너무 강해 쉽게 패러다임과 정책 전환이 어려워 보인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2008년 9월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파산처럼 유럽의 대형 금융그룹 하나가 위기를 맞아야 ECB가 기존 패러다임을 버리고 행동에 나설 것이란 얘기다. 마켓워치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패럴은 “유럽 대형 금융그룹 위기는 달리 보면 위기 해결의 본격화일 수 있다”며 “그 이후엔 주가 회복이 시작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럽 대형 금융그룹이 위기를 맞더라도 공포에 떨 필요는 없을 듯하다. 금융버블의 최고 전문가인 고(故) 찰스 킨들버거 전 MIT대 교수는 생전에 “근대 자본주의 시작 이후 대형 금융위기는 모두 40여 차례 발생했다”며 “금융위기 때문에 망한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고 강조했다.브릭스 국가 사정도 좋을 것 같진 않다. 영국 출신인 짐 오닐 골드먼삭스 자산운용 회장은 2001년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을 상징하는 브릭스란 말을 만들었다. 이후 브릭스는 글로벌 경제 신형 엔진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새로운 투자 대상이기도 했다. 네 나라는 자원과 노동력(인구), 산업생산 능력을 갖췄다. 외풍에 흔들릴지 않을 면역력을 갖춘 듯했다. 그러나 2012년은 브릭스가 본격적으로 시험에 드는 한 해가 될 듯하다. 베이징대학 경영대학원 교수인 마이클 페티스는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우리는 10여 년 동안 ‘브릭스 그들은 다르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2012년엔 세상 사람들이 ‘그들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페티스는 “브릭스 환상이 전형적인 유동성 거품 증후군”이라고 진단했다. 넘쳐나는 돈이 좀 더 높은 수익을 좇아 신흥시장독일은 ECB의 최대 주주다. 이탈리아 출신 마리오 드라기(64)가 2011년 11월 ECB 총재가 됐지만 독일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신세다. 그는 위기 대응을 강조하는 쪽이다. 그의 조국 이탈리아를 도와야 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원론만 되풀이 하고 있다. 최근 그는 “국채 매입을 늘리는 일은 ECB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ECB의 원칙 고수는 앙겔라 메르켈(57) 독일 총리 등 유럽 리더들의 위기 대응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돈 살포가 없는 상황에서 재정 수단은 효과가 떨어진다. 현재 유럽 리더들이 쓰는 재정수단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과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ESM)이다. 둘 다 일종의 펀드다.유럽 은행들 돈 가뭄 시달려그 결과 유럽 정상들이 2009년 11월 그리스 사태가 불거진 이후 15차례 회의를 열고 온갖 대책을 내놓았지만 유럽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유럽 실물 경제는 이미 침체에 빠졌다는 진단이 우세하다. 재정위기 때문에 세상의 관심이 실물 경제에 미치지 못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ECB의 기존 패러다임 고수는 재정위기를 금융위기로 전이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 유럽 시중은행들이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틈만 나면 이탈리아 등의 국채를 덤핑하고 있다. 기업과 가계에 자금을 공급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다. ECB가 3년 만기 대출 제도를 만들어 시중 은행에 자금을 대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용경색과 채권시장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미국 상황도 좋지 않다. 최근 주택시장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고 있고 소비가 되살아나는 기미가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재정적자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민주·공화 양당의 대결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재정 투입을 통한 경기 부양이 어려워 보인다. 벤 버냉키 FRB 의장만이 위기 대응에 나설 수 있는 형편이다. 이런 와중에 ECB가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을까. 독일 프랑크푸르트 ECB 본부에선 노선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독일 세력이 너무 강해 쉽게 패러다임과 정책 전환이 어려워 보인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2008년 9월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파산처럼 유럽의 대형 금융그룹 하나가 위기를 맞아야 ECB가 기존 패러다임을 버리고 행동에 나설 것이란 얘기다. 마켓워치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패럴은 “유럽 대형 금융그룹 위기는 달리 보면 위기 해결의 본격화일 수 있다”며 “그 이후엔 주가 회복이 시작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럽 대형 금융그룹이 위기를 맞더라도 공포에 떨 필요는 없을 듯하다. 금융버블의 최고 전문가인 고(故) 찰스 킨들버거 전 MIT대 교수는 생전에 “근대 자본주의 시작 이후 대형 금융위기는 모두 40여 차례 발생했다”며 “금융위기 때문에 망한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고 강조했다.브릭스 국가 사정도 좋을 것 같진 않다. 영국 출신인 짐 오닐 골드먼삭스 자산운용 회장은 2001년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을 상징하는 브릭스란 말을 만들었다. 이후 브릭스는 글로벌 경제 신형 엔진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새로운 투자 대상이기도 했다. 네 나라는 자원과 노동력(인구), 산업생산 능력을 갖췄다. 외풍에 흔들릴지 않을 면역력을 갖춘 듯했다. 그러나 2012년은 브릭스가 본격적으로 시험에 드는 한 해가 될 듯하다. 베이징대학 경영대학원 교수인 마이클 페티스는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우리는 10여 년 동안 ‘브릭스 그들은 다르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2012년엔 세상 사람들이 ‘그들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페티스는 “브릭스 환상이 전형적인 유동성 거품 증후군”이라고 진단했다. 넘쳐나는 돈이 좀 더 높은 수익을 좇아 신흥시장으로 흘러 들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자금이 몰린 쪽이 바로 브릭스였다.그런데 요즘 글로벌 자금 풍년이 가시고 있다. 미국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때문이다. 브릭스로 흘러드는 자금이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세계 최대 시장인 유럽 실물 경제가 재정긴축 도미노 때문에 침체하고 있다. 브릭스의 원자재 수출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 방증이 바로 최근 지지부진한 원자재 가격이다. 미국 상품 투자 전문가인 데니스 가트먼은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이미 원자재 수요는 정점을 지난 듯하다”며 “그 여파가 브라질 등을 강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에서 시작된 경기 침체가 올해 세계로 확산되면 자원가격은 더 떨어질 수 있다.브릭스 국가들 내부도 심상치 않다. 2008년 리먼 파산 이후 공격적인 돈 살포와 재정 투입 때문에 물가 불안이 심각하다. 그 와중에 경기는 정점을 지나 떨어지고 있다. 정책 처방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브라질은 최근 기준 금리를 내리며 경기 부양을 서두르고 있다. 인플레이션 진정을 사실상 포기한 듯한 처방이다. 인도는 요즘 통화가치 급락에 애를 먹고 있다. 재정 적자, 경기 둔화, 경상수지 악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다. 더구나 물가상승률은 8~9% 선이다. 블룸버그는 최근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인도 경제가 21세기 처음으로 스태그플레이션(침체+물가급등)을 앓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블라디미르 푸틴의 정치 행보 자체가 러시아 경제에 리스크다. 푸틴은 올해 다시 대통령 선거에 나선다. 녹록한 여정은 아닐 듯하다. 지난해 연말에 실시된 선거 후폭풍 때문이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저항이 거세게 일고 있다. 로이터 통신과 이코노미스트지는 “사회주의 경제 붕괴 이후 러시아 경제는 올리가르히(신흥부호) 단계를 지나 푸틴의 관료 자본가 시대를 맞고 있다”며 “정치 불안과 최대 교역 파트너인 서유럽 경제 영향으로 올 한해 러시아 경제는 요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정권 교체기 중국 경제 놓고도 갑론을박한국 경제가 많이 의존하는 중국도 경기 둔화 조짐은 뚜렷하다. 2012년 성장률이 8% 선으로 내려 간다는 게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은행의 부실자산이 다시 불어나고 있다. 은행들이 지방정부에 꿔준 돈을 받지 못해서다. 부동산 시장이 추락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서구의 시각에서 보면 금융위기 필요조건이 하나씩 갖춰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금융 긴축의 고삐를 살짝 늦췄다.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낮췄다. 물가가 4%대로 안정 기미를 보여서다. 기업 도산 등 그동안 긴축의 부작용도 만만찮다. 최근 중국 정부는 경제공작회의를 열었다. 2012년 경제 운용 전략을 결정했다. 재정 수단으로 경기를 지탱하기로 했다. 금융통화 정책은 신중함을 유지할 요량이다.2012년과 2013년은 중국의 권력 교체기다. 위기 대응 능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큰 시기다. 『레드 캐피털리즘』의 지은이인 칼 월터는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중국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적극적 대처보다 일을 만들지 않는 소극적 대처로 권력 교체기를 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중국의 최초 투자은행인 국제투자유한공사(CICC)의 전무를 지낸 인물이다.중국 내수는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 수출을 대신해 성장을 이끌 단계가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런 와중에 올해 중국 경제는 최대 수출시장인 유럽의 침체를 견디어내야 한다. 중국 정부의 재정 투입이 유럽시장 침체를 얼마나 상쇄해줄지 관심이다. 월터는 “현재 중국 경제는 경계선상에 있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어느 변수를 강조하느냐에 따라 올 한해 전망이 달라지는 단계다. 현재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가 둔화하고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쟁점은 둔화의 정도와 깊이다.짐 오닐과 중국계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의 둔화가 침체로는 가지 않는다는 쪽이다. 중국 정부가 충분한 재정을 보유하고 있어 수출시장 침체가 낳을 파장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어서다. 이들은 이른바 중국 건재론을 주장하는 쪽이다. 반면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 등은 2013년 위기설을 주장했다. 금융 부실이 위기로 이어지고 실물 경제가 침체에 빠지는 서구식 금융위기론(경착륙설)이다. 이들은 “중국 경제가 다른 시장 경제와 다르다는 게 통념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며 “금융 시스템 곳곳에 누적된 부실은 언젠가 폭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페티스 베이징대 교수 등은 “중국 금융 시스템 구조상 경착륙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쪽이다. 이들은 “여차하면 중국 정부가 금융권 부실자산을 사들인 뒤 탕감해줄 가능성이 크다”며 “이런 상황에서 서구식 경착륙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내다봤다. 대신 “경착륙에 이은 경제의 신진대사 활성화가 일어나지 않아 중국 경제 성장률이 연 6% 정도로 떨어져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1.12.2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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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PB  4인이 말하는 ‘요즘 부자’

산업 일반

10월 11일 오후에 서울 역삼동 강남파이낸스빌딩 1층 미래에셋증권 WM에서 강남 PB 4인을 만났다. 박승안 우리은행 투체어스 강남센터장, 이희정 씨티은행 반포중앙지점 부지점장, 이보훈 미래에셋증권 WM 강남파이낸스센터 부장, 한은경 삼성증권 SNI 강남파이낸스센터 PB팀장이다. 각 금융사 대표 PB로 강남 자산가들의 돈을 굴리는 큰손이다.요즘 국내 금융시장은 불안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코스피는 오르락내리락한다. 유럽발 금융위기와 미국 경기침체 가능성이 겹치면서 시장 변동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국내외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가는 요즘, 강남 부자들은 어떻게 돈을 굴리고 있을까. 자산관리 경력이 가장 많은 박승안 센터장의 진행으로 요즘 부자들의 돈 관리와 하반기 투자 전략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다. 1시간 반가량 진행됐으며 중간중간 화제 전환을 위해 기자가 질문을 했다.박승안 우리은행 투체어스 강남센터장 요즘 고객들은 어디에 돈을 묻고 있나요.이보훈 미래에셋증권 WM 강남파이낸스센터 부장 특별히 어느 한 곳에 돈을 묻었다기보다는 투자했던 걸 현금화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띕니다.이희정 씨티은행 반포중앙지점 부지점장 저희 고객도 비슷해요. 4월까진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이었는데 몇 달 사이 환경이 확 바뀌었습니다. 연말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오고 있어요. 시장 변동성이 높을 땐 저희 예상과 다르게 갈 수 있는 상황까지 대비해야 합니다. 그래도 고객들은 2008년 금융위기를 한번 겪은 터라 크게 동요하지는 않고 있어요.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주식투자 비중이 높은 고객은 줄이고 있고요. 우량주와 적립식 펀드에 넣어둔 돈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한은경 삼성증권 SNI 강남파이낸스센터 PB팀장 40~50대 고객들은 요즘 수익형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아요. 작은 상가나 가게를 사서 권리금을 받고 팔거나 매달 임대료를 받는 방식입니다. 아무래도 주식투자에 나서기엔 리스크가 높다 보니 매달 안정적으로 돈이 나오는 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요.박승안 시장을 꼭 예측할 필요가 있을까요. 미래를 본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고요. 오히려 기회를 잘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몇 년 전 자산가들이 앞다퉈 서울 역세권 소형 아파트에 투자한 게 대표적인 사례예요. 실제로 젊은층의 수요가 늘면서 소형 아파트 임대료가 많이 올랐습니다. 이때도 부자들이 시장을 예측했다기보다는 기회가 왔을 때 투자에 나선 거죠. 충분한 자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은 기대수익을 낮추고 현금 유동성이 높은 곳에 돈을 넣어둘 때라고 봅니다. 그리고 투자 기회를 노리는 거죠.이희정 요즘처럼 시장이 불안할 땐 한 곳에 투자비중을 높게 유지하면 위험합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왔을 때 대처하기가 힘들거든요. 일부 해외펀드는 환매하는 데도 8일이나 걸려요. 기준가를 적용하는 시기도 3일 후라 시장을 예측하기 힘듭니다.요즘 부자는 ‘현금’ 선호박승안 다른 분들은 투자 시기를 언제로 보고 있나요. 저는 국내 금융시장에 공포가 확산될 때라고 봐요. 지금은 지수가 1600과 1800 사이를 오가고 있잖아요. 고객들도 1600이면 전화 해 “팔아야 되느냐”고 문의했다가 지수가 오르면 잠잠해집니다. 요즘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요. 아무래도 모든 매체에 뉴스화될 때까지는 진짜 위기는 안 왔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기다리는 게 맞습니다.한은경 사실 저희 고객들도 공격적으로 나서는 분은 없어요. 다만 현금화된 자산이 많다 보니 채권, 달러, 원자재 등에 투자하려는 경향은 있어요.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투자 시기를 두고 고민이 많을 거 같습니다. 기업을 가진 분들은 M&A도 고려하시는데요.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분은 없어요. 그만큼 예측하기 힘든 시장이에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내년 상반기엔 투자 환경이 더 안 좋을 것으로 봅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잖아요. 정치 이슈가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겠어요. 고객들에게도 유동화할 수 있는 자산에 투자하길 권합니다.이보훈 맞아요.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투자해야 합니다. 그동안의 위기는 돈을 푸는 통화정책 등 다양한 해결책이 있었지요. 유럽발 금융위기는 단기간에 풀기 어려울 거 같아요. 자칫하다간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도 있고요.이희정 씨티은행에선 하반기 금융시장이 긍정적이지는 않지만 나올 만한 악재는 다 나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은 금융위기 때 돈을 풀어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죠. 상반기까진 바닥을 벗어난 듯 보였지만 다시 더블딥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경제와 금융시장이 함께 움직이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경제가 어려워도 주식시장은 좋을 수 있으니 역발상 투자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헤지펀드·중국 본토 시장 매력적이보훈 그렇습니다. 시장이 침체돼 있어도 투자 기회는 있습니다. 현재 준비 중인 한국형 헤지펀드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합니다. 헤지펀드는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펀드지요. 요즘처럼 시장 변동성이 높을 땐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헤지펀드는 다양한 투자 대상과 투자기법을 활용하다 보니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일정한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한은경 한국형 헤지펀드가 올해 안에 나올 수 있을까요? 저는 어렵다고 보는데요. 하지만 이보훈 부장 얘기처럼 변동성이 높은 장에서는 관심을 가져볼 만합니다. 현재 개인투자자가 할 수 있는 헤지펀드는 재간접 헤지펀드(펀드 오브 헤지펀드)예요. 국내 운용사가 해외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펀드입니다. 전 세계 주식이나 채권, 통화, 원자재 관련 선물상품에 투자하는 방식이에요. 절대수익을 추구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투자하면 안 됩니다. 펀드마다 운용전략이 달라요. 운용사나 PB에게 자문을 구해 편입된 펀드 내용을 정확히 알고 가입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헤지펀드 운용 경험이 많고 운용사 성과가 괜찮은 곳을 고르는 게 좋습니다.박승안 헤지펀드는 방향 설정이 중요해요. 한번 방향을 잘 잡으면 수익이 계속 쌓여 좋지만 반대인 경우는 힘들 겁니다. 투자위험이 높다는 얘기지요. 고객에게도 헤지펀드는 절대수익을 추구하지만 투자위험도 있다고 솔직하게 얘기합니다.이희정 저는 중국 시장에 투자 기회가 있다고 봐요. 과거엔 홍콩 시장을 많이 얘기했는데요. 홍콩 주식시장은 은행주 비중이 높다 보니 세계경제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번 돈을 빼기라도 하면 휘청거려요. 앞으로는 중국 본토인 상하이 A 시장을 활용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물론 중국 정부의 긴축정책이 변수일 수 있는데요. 최근 인플레이션 둔화 조짐이 보이고 있어 정책이 완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저금리 시대, 부자도 흔들린다금융위기 전만 해도 PB들은 부자들이 남들보다 한발 앞서 움직이고 위기 대처능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요즘 들어 부자들도 세계적인 변수가 나올 때마다 우왕좌왕하는 거 같습니다.이희정 저금리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에요. 과거 예금 금리가 좋을 때는 10%포인트에 달했죠. 정기예금에만 돈을 넣어둬도 돈을 벌었어요. 금리가 낮을 때는 대안이 마땅치 않아요. 안전자산으로 꼽는 부동산마저 침체기잖아요.이보훈 지금 시장이 혼돈의 시대인 것 같아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입니다.한은경 제 생각도 그래요. 금융위기 전엔 시장 사이클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어요. 최근 국내 주식시장만 봐도 한두 달 사이에 20~30%가 빠졌습니다. 너무 급작스레 움직이기 때문에 대응할 시간이 없어요. 세계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면 더 큰 문제지요. 그때는 그나마 수익률이 좋은 주식마저 수익이 안 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현금을 들고 시장을 봐야겠죠. 그만큼 앞날을 내다보기가 어렵네요.그렇다면 올 연말까지의 투자전략을 제시한다면….이보훈 고객들에게 보수적인 시각을 유지하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최대한 자산을 현금화하는 게 좋지요.한은경 저도 현금화가 중요하다고 봐요. 포트폴리오에서 안전자산 투자비중을 높이는 게 좋습니다. 채권도 10년짜리 물가연동채나 국고채 등에 넣어두길 권합니다.이희정 그렇죠. 자금을 최대한 분산투자하고 유동성을 확보하는 게 안전합니다.박승안 무엇보다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봐요. 보통사람은 현금을 갖고 있으면 굉장히 불안해 해요. 남들은 투자해 돈을 벌고 있는데 가만 있으면 손해보는 느낌이 들거든요. 흔히 하는 얘기가 있잖아요.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예금에 왜 돈을 넣어두느냐고요. 하지만 유동성이 높은 현금을 갖고 있는 게 투자라고 보면 어떨까요. 기회가 왔을 때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이 생기잖아요. 진짜 부자는 기다렸다가 기회가 온 순간 과감히 투자하는 겁니다.만약 고객 돈이 아니라 개인자금이라면 어떻게 운용하실 건가요.이보훈 글쎄요. 적립식펀드를 하면서 시장 변화에 맞춰 직접 주식을 사고팔 것 같은데요.한은경 장·단기에 따라 조금은 달라지겠죠. 기본적으로 국채를 살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 시장도 매력적으로 봅니다. 중국 내수 종목을 사고 헤지펀드에도 일부 돈을 넣을 거 같은데요. 전체 비중의 절반은 언제든지 현금화가 가능한 곳에 묻어두겠습니다.이희정 저는 중국 본토와 국내 시장을 좋게 봅니다. 여전히 저평가된 한국을 비롯해 중국의 소득 증가와 위안화 절상을 기회로 볼 수 있습니다.박승안 저라면 3개월짜리 정기예금을 여러 개 나눠서 넣어둘 거 같은데요.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고요. 그리고 투자기회가 올 때마다 하나씩 깨서 투자할 겁니다.

2011.10.2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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