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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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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노 칼럼 단독 공개] ‘세이노의 가르침’ 못다 한 이야기

전문가 칼럼

인연이란 참 놀랍다.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을 돌아보며 ‘세이노 열풍’을 주목하기로 했다. 취재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그의 글을 직접 소개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올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세이노의 가르침’을 쓴 저자는 잘 알려졌다시피 1955년생 1000억원대 자산가다. 대외에 좀처럼 나서지 않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의 문장처럼 까탈스럽고 고집스러우며 대화가 통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선입견이었다. ‘어른이 사라져가는 시대’를 보고 자란 기자 홀로 가진 착각이기도 했다. 취재하며 느낀 그는 까탈이 아닌 세심함을, 고집이 아닌 신념을 지닌 어른이었다. 상대방의 의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인물이란 평도 인상에 남는다. 세이노는 책 ‘세이노의 가르침’의 각주 성격인 이 글을 보내며 첫 문장에 “인터뷰 요청은 사양하였으나 20여 년 전 이코노미스트에 글을 쓴 인연조차 모른 척할 수가 없어서 이 글을 인터뷰 대신 쓴다”고 했다. 본지는 잊고 있던 인연의 소중함을 필자가 일깨워준 셈이다. ‘이코노미스트’는 1713호(12.4~10) 커버스토리로 시작한 ‘세이노 열풍’ 기획을 이렇게 저자가 직접 쓴 글로 매듭지을 수 있게 됐다. 힘든 한 해였다. 내년은 더욱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어른’ 세이노의 글로 올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남이 떠먹여 주는 숟가락에는 독이 묻어 있기 마련…직접 손을 놀려라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 중 많은 수는 미래에 보유하고픈 자산 규모를 구체적으로 말하곤 한다. 이를테면 “나는 10년 후에 100억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라는 식이다. 나는 어땠을까? 결혼 후 최우선 목표는 집 하나 장만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에게 숫자로 표시되는 목표는 전혀 없었고 “한 달에 1000만원을 벌자” 같은 생각도 전혀 없었다. 혼자 벌레처럼 살면서 복권을 사던 시절에는 미래의 내가 부자로 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지만, 이후에는 내 두뇌에서 그런 상상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1년 후에 대한 계획도 없었다. 내가 계획하는 미래는 길어야 3개월 정도였고, 오로지 고객의 신뢰를 쌓아가면 수입은 늘어날 것이라고만 믿었다. 그러던 중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경매 직전의 아파트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출을 끼고 샀다. 그 후 사업에 재정적 어려움도 많았으나(7000만원 받을 어음이 부도난 일도 있었다) 아파트 매입 5년 후 면적이 2배인 다른 아파트를 현금 구매 후 이사한 뒤에도 금전적인 목표는 세우지 않았고 그저 모으고 정기예금만 했다. 어느 날 부채 없이 보유 현금이 20억원이 되자 은행 금리가 연 10% 이상 되었던 시절이었기에 이자 범위 안에서 돈을 쓰기 시작하였다. 여전히 몇억 부자가 되자는 그런 생각은 꿈속에서도 하지 않으면서 사업과 투자를 계속했다. 그 과정에서 2·3년에 한 번 정도 자산을 살펴보니 부채는 전혀 없이 자산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운도 따라주었지만, 사업과 투자를 제대로 한 덕분이고 독자들에게 그 방법을 자세히 얘기한 적은 외환위기 당시의 달러 투자와 전동 현수막 걸이 이외에는 거의 없는 듯싶다. 돌이켜보면 한 번도 돈의 액수를 목표로 삼지 않았던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목표액을 채우려다 보면 사람들에게거짓말이나 뻥튀기도 할 것이고 직원들에게 야박한 월급이나 주면서도 최대한 부려 먹고자 했을 것이며 그 결과, 나의 인티그리티(Integrity·머릿속에서 옳다고 믿는 생각들과 행동이 엇갈림 없이 하나된 상태, ‘세이노의 가르침’ 186쪽)는 박살 나면서 나 자신이 내가 침 뱉던 대상으로 변하여 거울을 볼 때마다 내 모습이 구역질 날 정도로 역겨워져서 나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도록 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돈을 빨리 벌려고 하면 돈을 못 번다는 말이 진리라고 믿는다. 어쨌든 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일부는 종종 내게 질문한다. 시간을 아껴 자기 개발을 해 종잣돈을 모으라는 것은 알겠는데 ‘종잣돈을 모은 후에는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는 것이다. 어째서 총론은 이야기하면서 각론은 알려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숟가락으로 돈을 떠먹여 주기를 바라는 자들이고 비싼 강의 하나 잘 들으면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기연과 비급을 얻게 되어” 팔자가 바뀔 것으로 기대하는 어리석은 닭대가리들이다. “남이 떠먹여 주는 숟가락에는 돈이 아니라 독이 묻어 있다”(내 책을 출판한 차보현 대표의 말이다)는 것을 왜들 그렇게 모를까?나를 개인적으로도 알고 있는 오상익 오간지프로덕션 대표가 MZ세대이면서도 대학교 강의에서 내 책을 교재로 사용하기에 ‘어째서 세이노는 총론만 얘기하고 각론은 얘기하지 않는지’를 설명해 보라고 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이 왔다.● 세이노는 종잣돈을 모으라고 하면서 얼마나 모아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 쌓인 돈이 부자가 될 종잣돈이라고 말하지만, 종잣돈의 기준은 누가 정해주는 것인가, 종잣돈의 기준과 가치는 독자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몇천이 종잣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몇억이 종잣돈이 될 수 있다. 종잣돈의 금액이 다르듯이 돈을 모으는 기간도 다르다. 독자마다 수입이 다른데 어찌 모으는 기간이 같겠는가.● 종잣돈은 독자의 가치관과 처한 환경, 우선순위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부자마다 부자가 된 과정이 다르듯, 종잣돈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공통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세이노는 독자가 어떠한 상황인지, 독자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모르기에 종잣돈의 활용법에 대하여서는 침묵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종잣돈을 모으는 단계까지는 일종의 보편적 방식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르침을 준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에 필요한 핵심역량을 타인에게만 의존하면 독자 생존할 수 없다. 세이노가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여 주었다면 1인치씩 전진하는 걸음(종잣돈을 증식하려는 노력)은 철저히 독자의 몫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줄 아는 독자라면 누군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종잣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스스로 깨칠 것이다. ● 영화 ‘위플래쉬’(Whiplash)에서 앤드류의 음악은 플래처 선생의 채찍질(Whiplash)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와 맞서 싸우고 필사적으로 분투하면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지휘자 플래처는 앤드류가 전혀 모르는 곡으로 교묘히 바꿔 그를 함정에 빠뜨리지만, 앤드류는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카라반’(Caravan)을 당당하게 독주하며 폭군 플래처까지 흥분시킬 정도로 최고 스윙을 폭발시킨다. 즉, 영화에 나오는 앤드류처럼 독자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만의 게임(인생)’을 만들어 나가라는 것이 세이노의 진짜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맞다. 종잣돈에 대한 얘기도 맞고, 스스로 자기만의 게임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도 맞다. 영화 ‘위플래쉬’는 드러머인 주인공 앤드류가 최악의 갑질 폭군인 선생 밑에서 끝없는 경멸과 모욕과 멸시를 당하지만 결국은 그 선생을 이겨내며 음악적 성취를 이루는 이야기이다. 사업을 하면서 나도 그런 갑질을 하곤 했지만, 격려와 칭찬은 물론 두둑한 보너스도 잊지 않았기에 플래처의 내리꽂기만 하는 교육방식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은 크게 공감하며 흥미롭게 보았다.1970년대 말, 20대 초반이었던 내가 미군 부대 안의 대학에 다니면서 학원과 기독교 관련 서적 번역으로 돈을 벌고 있던 때의 일이다. 번역일을 꽤나 하며 우쭐하던 시기에 어느 기독교계 대형출판사에 번역 지원을 하였더니 짧은 영문 자료를 시험 삼아 번역하여 오라고 했다. 제목은 데올로구메논(theologoumenon). 조직신학 용어인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힌트를 좀 얻으려고 여러 도서관을 뒤져봤지만 내가 받은 원문이 독일어 신학백과사전 ‘사크라멘툼 문디’(Sacramentum Mundi)의 영어번역본에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만 미군 군종장교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결국 몇 주 동안이나 끙끙대며 헤매다 직역으로 원고지 15매 정도를 번역하고 그 출판사의 번역 총책임자에게 직접 제출했다. 그분은 내 원고지 몇 매를 읽다가 휙 내 얼굴에 집어 던지면서 짜증 섞인 음성으로 “이걸 번역이라고 했어요?”라고 내뱉는 것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모욕을 당한 것에 자존심이 상하고 ‘독일어 원문을 영어로 번역한 건데 헤매는 게 당연한 거 아냐?’하는 생각에 그냥 나가버릴까 하는 충동도 순간적으로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내 실력이 너무나도 창피했다. 내 원고는 내가 읽어도 이해가 안 되었으니까. 나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원고지들을 모은 뒤 벌게진 얼굴로 공손히 말했다. “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분이 플래처 선생과 다른 점은 아주 무뚝뚝했지만 “한번 해보시겠어요?”라고 내게 물었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종로서적에서 당시 독일 유학 중이던 고영민 목사가 번역한 조직신학 책과 그 책의 원서를 동시에 구입했고, 그 뒤 번역문을 원문과 한 문장씩 대조하며 한 달 이상을 철저히 혼자서 나만의 게임을 했다(원서 저자가 ‘루이스 벌콥’이었는지 ‘찰스 하지’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번역서로는 두 저자의 조직신학을 모두 읽었다). 그 다음 데올로구메논의 의미를 이제는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번역 일감을 받으러 그곳에 다시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번역 원고가 그대로 최종 원고로 인정받는 사람으로 올라섰다. 1. 부동산 이야기사람들이 투자 각론을 알고자 하는 분야는 부동산·주식(채권 포함)·사업·장사일 것이다. 가장 많은 질문이 들어오는 분야는 부동산인데 사람들은 나를 전국구 부동산 상담사 정도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전혀 아니다. 나는 내가 탐내는 물건이나 내가 보유한 물건과 관련하여서만 공부하지, 전국의 부동산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당신이 갖고 있거나 구매하려는 부동산에 대해 내게 메일을 보내 봤자 내가 오랜 시간을 투자해 그 지역에 대해 조사할 리는 전혀 없으므로 시원한 답은 결코 줄 수 없다.(법적인 문제로 인해 메일을 보내는 독자들도 꽤 있는데 내가 힌트 한두 마디 정도는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법을 새로 공부하여 해답을 제시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 될 것이다.) 내가 부동산 하나를 사려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곤 하였는지 당신은 모를 거다. 한 번은 100여 개 이상의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며 소유주의 나이, 관계회사 재무제표, 대출 상황 등을 전부 분석한 후 마음에 드는 것들만 추려낸 적도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마음에 드는 매물이 나오기까지 3년을 계속 지켜보다가 매입하기도 했다. (비단 부동산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나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것과 관련된 것들을 파악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변기에 앉아서 한 시간 이상을 서류에 몰두한 적도 가끔 있었는데 직원은 내가 화장실에서 쓰러져 정신을 잃은 줄로 착각하여 작은 소동이 일어났던 적도 있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왜 그렇게까지 파고드느냐고 묻기도 하고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냐고까지 하는데, 사실이 뭔지도 모르고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생각하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자칫 고통 속에서 처절한 시간을 보내게 될 수도 있다. 솔깃한 얘기일수록 들리는 대로 믿어 버리기 쉬운데,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서 뒤쪽에 쓰겠다.)당신이 부동산 투자를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였다 할지라도 갓난아이 우유 먹이듯이 누군가 떠먹여 주기를 바란다면 조만간 사기나 당할 가능성이 더 크다. 대부분의 사람은 복잡한 등기부등본 분석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친구들이나 부동산중개업소 혹은 강의팔이들이 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이다가 부동산을 매입한다. 전세 사기범이 극성을 부리는 이유 역시 사람들이 일부 개X 같은 중개사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을 너무나 잘 믿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 말이 틀렸는가? 부동산 시장의 흐름부터 배워야 할 것 아닌가. 그러려면 경제신문이나 경제주간지 하나 정도는 반드시 종이로 구독하여라.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고? 당신 눈에 들어오는 제목의 기사만 읽을 텐데? 당신 눈에 숨어 있는 기사들은 지면을 펼쳐 볼 때나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당신 나이와 상관없이 부동산에 대해서는 미리미리 그렇게 공부 좀 하여라. 이미 20여 년 전에 “부동산에 빨리 눈 떠라” 하면서 무엇부터 배워야 할지도 말하지 않았던가(‘세이노의 가르침’ 707쪽). 2. 부동산 경매 이야기동아일보 칼럼 연재의 마지막 회(2001년 9월 12일)에서 나는 아래 글을 쓴 바 있다.“작년에 서울 강남에서 지은 지 2년 된 빌라트가 경매시장에 나왔는데 대지와 건물에 대해 모두 저당이 잡혀있었으나 대지에 대한 저당권 문제만큼은 낙찰자가 해결해야 하는 특별매각조건이 붙어있었다. 결국 대지권 없이 건물 소유권만 갖게 되는 것이고 사람들은 이런 집은 재산권 행사에 지장이 있어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입찰에 참여하여 감정가의 반값에 낙찰받았다.”그 특별매각조건은 대지 지분에 대해 근저당이 과도하게 잡혀 있는 별도 토지등기가 낙찰자에게 인수된다는 것이었다. 즉 대지 근저당권자가 경매낙찰가에서 대지분 가격을 분배하여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경매로 인해 소멸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 경매 전문가들은 모두 위험한 물건이라고들 한다. 위험한 것은 맞다.대지에 대한 근저당은 건설사가 대위 등기한 것이었다. 등기부의 복잡한 기재 내용들을 살펴보니 건물분 소유권자는 A이고 대지지분의 소유자는 실제로는 A와 B였으나 등기법적으로는 A였다. A와 B는 모두 건설사에 대한 채무가 있는 상태에서 C에게 대지지분의 양도 계약을 하였으나 집합건물에서 건물분 소유자와 대지분 소유자가 다를 수는 없으므로 C의 명의로 등기가 되지는 못한 상태였다. 건설사가 대지지분에 설정한 채권최고액은 8억5000만원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낙찰받았던 금액은 4억2000만원 정도였다. 낙찰 후 내게 지대(대지사용료)를 청구한 자가 있었을까? 없었다. 등기부상 경매물건 소유자는 법적으로 A였고 낙찰된 부동산의 직전 소유자가 낙찰자에게 지대를 청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근저당권자였던 건설사에서 내게 대지지분을 사라고 권유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하려면 C가 동의하여야 하는데 C는 등기부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채권자나 채무자도 아니었고, 경매 낙찰가가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다가 입찰하려는 사람으로 추정되었다.(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몇 %나 이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나는 이곳을 전세금 4억원에 임대하고는 이 물건이 세월이 지난 후 다시 경매되도록 하고자 했다. 왜? 이런 집합건물이 세월이 지나 다시 경매로 나올 때는 이미 이전 경매에서 특별매각조건을 낙찰자가 인수하는 조건으로 경매가 진행되었으므로(그 조건이, 근저당권자에게 돈을 실제로 주고 대지지분에 대한 별도 등기를 반드시 해지시키라는 것은 전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건물분과 대지분의 소유자는 동일인으로 간주된다. 결국 두 번째 경매에서는 대지분에 대한 별도의 등기는 사라지고 감정가에서의 건물분과 대지분의 비율대로 낙찰가가 분배되어 대지분 근저당권자에게 지불된다. 결국 1차 경매에서는 전세금 수준의 비용으로 낙찰을 받고, 전세금을 받은 후 세월을 기다렸다가 다시 경매로 처리되게 낙찰자가 “자의적으로” 만들면 큰돈을 투자하지 않고서도 부동산 가격 인상분 정도는 그대로 챙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월이 좀 지난 후 이루어진 두 번째 경매에서 낙찰자는 C였다. 내가 회수한 돈은 전세금 등을 제외하고 약 1억9000만원이었는데 투자 기간이 예상보다는 길었지만 세금 등을 포함하여 4000만원 정도 투자하고 거둔 수익으로는 괜찮았다.자, 내가 동아일보에 특별매각조건 관련하여 칼럼을 쓰고 나서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내게 이 경매와 관련하여 질문한 자가 있었을까? 한 명도 없었다. 오늘 날짜로 검색하여 봐라. 토지별도등기 인수라고 하는 특별매각조건이 있는 경우 2번의 경매를 이용하여 이익을 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단 한 명이라도 글을 올리거나 책에 쓴 사람이 있는지 말이다.22년 전 칼럼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돈이 돈을 버는구나’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말라.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지식이 돈을 벌게 해주는 것이다. 먼저 지식을 쌓고 사람들이 지식 부족으로 입찰을 꺼리는 경쟁이 약한 물건을 찾아라.” 지식을 쌓으라는 말은 스스로 공부하라는 뜻이다. 경매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의 책이 아니라 경매법 자체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책부터 먼저 읽고 공부하여라. 등기법 역시 경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법원공무원교육원 교수였던 분이 쓴 ‘집합건물의 등기’(신언숙·육법사)인데 오래전에 절판되었다. 절판된 책의 중고품을 몇만원씩 지불하고 사는 사람을 나는 평상시에 도서관을 가까이한 적이 없는 사람으로 본다. 대한민국에서 출판된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전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협약된 도서관에 가면 지정된 PC에서 국립중앙도서관의 도서 원문을 볼 수 있고 대부분 복사도 가능하다. 협약된 도서관은 공공도서관·대학도서관·전문도서관 등이 있는데 당신이 사는 동네에도 틀림없이 있을 작은도서관(전국에 약 7500개나 있다)도 협약 도서관이고 해외에 있는 외국 도서관들 중에도 협약 도서관이 있다. 작은도서관에서 절판된 책을 읽다가 보유하고픈 부분을 복사하는 데 드는 비용은 A4 1장당 40원이므로 2쪽씩 인쇄하면 1쪽당 20원이다. 법적으로는 책의 3분의 1분량 정도만 복사가 허용된다.(나는 국회도서관도 몇 번 이용한 경험이 있는데 민간인용 주차장이 너무 멀다.) 전세 사기 문제가 심각하니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동산중개사들을 불러 교육을 시키는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계약을 맺고 임대차 계약을 맺은 후, 주인이 바뀌면 HUG에서 임대 조건이 바뀐 것으로 치부하여 보증금 반환을 거부할 수 있으니, 임차인에게 매달 등기부등본을 떼 보고 주인이 바뀌지 않았는지 확인하도록 안내하라고 한다고 들었다(다중언어를 구사하는 글로벌 공인중개사 MINO가 알려주었다). 미쳤나? 대한민국에서 매달 자기가 사는 집 등기부등본을 떼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외국인 임차인은? 그것보다는 집주인이 바뀌면 자동으로 임차인과 HUG에 알람이 가도록 시스템을 바꾸거나, 시스템 변경에 예산이 많이 필요하다면 모든 임대차계약서에 “부동산 소유권이 변경되는 계약이 발생하면 계약일로부터 3일 이내에 임차인과 HUG에게 동시 통보하여야 한다. 이를 어기는 경우 임대인은 이러저러한 벌을 감수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강제 삽입되도록 하면 어떨까? 3. 사업과 장사 이야기1980년대 말, 여름 길거리에 있는 건물 지하 1층의 식당이나 찻집 같은 곳을 가게 되면 대부분 퀴퀴한 냄새가 났다. 지하층 벽체에 스며든 습기로 인해 곰팡이가 생기면서 나는 냄새였고 습기를 제거하는 전기 제습기를 설치하면 해결될 문제로 보였다. 그 당시 청계천과 용산 전자상가들의 상점들에서는 미국 월풀(Whirlpool)의 제습기가 판매되고 있었는데 가격이 40만원대 후반이었다. 나는 경쟁력 있는 제습기를 수입하여 판매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월풀 제습기를 하나 구입하여 사용자 입장에서 꼼꼼히 살펴보았다(제습기의 작동 원리 및 부품들의 기능 등을 배우고, 마케팅 측면에서 월풀 제습기에 있는 약점들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약점이 없으면 포기하려고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긴다고 하지 않던가). 제습기는 거의 대부분 바닥에 놓게 되므로 전원 스위치나 제습 강도를 조정하는 스위치 같은 것은 모두 상부에 있어야 할 텐데 월풀 제습기의 스위치들은 사용자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제습기 전면에는 물 세척이 가능한 공기필터가 있고 하부에는 습기를 빨아들여 응축시킨 물이 고이는 물통이 있었다. 물통이 가득 차면 표시등이 켜져서 물통을 비워야 함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물통을 비우려면 벽체 가까이에 놓은 무거운 제습기를 앞으로 잡아당긴 뒤 그 후면에서 물통을 빼내야 하는데 제습기 본체에 바퀴가 달려있기는 하지만 물이 가득 담긴 물통을 빼내는 과정에서 물이 출렁거렸고 상당히 번거롭게 느껴졌다. 물통을 빼내는 곳이 제습기 전면에 있고, 응축된 물이 직접 건물 내 배수구로 나가도록 할 수 있는 호스 연결구가 뒷면에 있는 제품이 훨씬 더 좋아 보였다. 디자인도 월풀의 고전적 디자인보다는 모던한 디자인의 밝은 색상이 더 좋아 보였다. 제습 용량은 크기에 따라 달랐지만 회사별 차이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 페더스(Fedders)의 제품이었다.그 제품을 즉시 수입했을까? 사업이 그렇게 쉽게 진행되겠는가? 법적으로 복병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판매용 전기용품은 수입 이전에 KC 안전 인증을 받아야 수입 통관을 할 수 있었다. 안전인증을 받는 과정은 상당히 까다롭고 복잡했으며 사후서비스를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도 밝혀야 했는데 나에게는 버거운 과제였다(현재 수입 하이브리드 슈퍼카 중에는 충전 코드에 대한 안전 인증이 쉽지 않기에 이미 인증을 받은 국산 제품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그 당시 알게 된 것: AC(교류) 전원을 사용하지 않는 DC(직류) 전기용품은 안전 인증이 면제되었기에 AC를 DC로 바꾸어 주는 트랜스를 이미 인증받은 국산으로 제공하면 된다는 것. 이를테면 워터픽(구강세정기)같은 경우 220V용이면 수입판매하는 데 애를 먹지만 직류용인 경우는 국산 트랜스를 끼워 팔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오디오 스피커 같은 것은 앰프에 물리는 것이므로 안전 인증이 없다는 것(이런 규정들이 요즘은 전자파 문제 때문에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자, 어쨌든 제습기는 AC 전원을 사용하여야 했다(그 당시는 110V와 220V가 혼용되던 시기였다). 나는 관세청의 품목별 수입 제한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두꺼운 관세품목 분류표(HS code) 책자를 구입하여 살펴보았고 거기서 제습기는 전기사용량이 일정 수준이 넘으면 KC 안전 인증이 면제되는 산업용으로 분류되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페더스의 제습기 중에서 하루 제습량이 가장 큰 제품 한 종류만을 수입하기로 하고 페더스 본사의 아시아 담당자와 접촉하였다. 여름이 오기 전, 컨테이너 1개분을 꽉 채운 제습기가 도착하였다. 당시 내 사무공간까지의 도착 가격은 제습기 1대당 25만원 선이었고 판매가격은 경쟁사 제품과 비슷하게 48만원으로 정했으며 기존에 컴퓨터나 음향 설비를 판 곳과 도서관들에 안내문을 먼저 돌렸다. 청계천이나 용산 전자상가에는 단 1대도 위탁판매용으로 전달하지 않았고 할인판매도 금지하였다. 판매 방식은 방문 구입 혹은 현금이체(화물발송비 별도)만 하였고 불티나게 팔렸기에 추가 수입을 부랴부랴 하였다. 판매가 잘된 이유는 경쟁사 제품의 약점들을 정확하게 파고들면서 무료 사후서비스를 무려 5년으로 해주었기 때문이다(퀴즈: 나는 무슨 배짱으로 5년을 내걸었을까?) 구매자가 고장 난 제품을 가져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30분 이내에 수리해 전달하며 3회 이상 고장이 나면 신품 교환 조건이었다. 실제로 고장 난 제품이 들어오면 신품에서 겉 케이스만 제거하여 교환한 후 바꿔주었고(15분도 안 걸렸다) 손님이 간 후 비로소 무엇이 문제인지를 체크하였는데 내부에 있는 컴프레셔는 삼성이 만든 것이었음도 그때 알았다.제습기 판매로 1년마다 서울 맨션아파트 한 채 값 이상의 수익을 올린 지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페더스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의 큰 회사에서 내가 수입하던 물량의 2배를 수입 약정하겠다면서 독점권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미원통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포기하겠다고 했다. 물량을 키우려면 용산과 청계천에 상품을 도매가격으로 깔아야 하고 전담 영업사원도 지정하여야 하며 외상값을 못 받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결국 물량을 2배로 키워도 내 손에 쥐어지는 수익이 크게 증가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중단하기에는 수익이 컸기에 멕시코로 날아가서 페더스의 남미 담당자와 접촉하였다. 큰 조직일수록 영업 담당자들은 서로 정보 공유를 안 하므로 남미 담당자는 나에 대해 전혀 몰랐고 손쉽게 물건을 주문할 수 있었다. 컨테이너들이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것을 한국으로 보낸 뒤 귀국하였고 더 이상 가져올 물건도 없었으므로 천천히 느긋하게 팔았다(물량을 2배로 늘려 수입하겠다고 한 그 회사에서 그 후 따로 물건을 들여왔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나의 방해 공작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미수금 발생은 전혀 없었고 나는 5년 서비스 약속을 철저히 지켰다. 이 이야기에서 내가 독자들에게 알려주려는 내용은 첫째 어 이게 왜 없지? 하는 자각, 둘째 경쟁제품의 약점 파악, 셋째 법적 장애물을 뛰어넘는 지식, 넷째 많이 파는 것이 장땡은 아니라는 것, 다섯째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5년 무상서비스 약속 준수이다. 장사는 어떨까? 이미 내가 내 책에서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다. 사람들 대다수가 망하여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고도 했다. 어느 독자가 그 흔하디흔한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오픈하였는데 몇 개월도 안 되어 대박이 났음을 전해왔다. 그 비법이 무엇이었을까? 추상적으로 표현하면 좁은 길로 간 것뿐이었다. 정말로 비법이기에 공개하기 어렵다(내게 묻지 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장사를 할 때 남들 하는 것처럼 하면 망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다.약속은 지켜야 약속이다. 몇몇 독자가 내게 알려준 내용: 어떤 온라인 강의를 “100% 환불보장”이라고 하여 들었는데 막상 환불 신청을 하니 아래와 같이 답이 왔단다.“100% 환불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전체 강의를 수강 및 미션을 수행하세요. 2.배운 내용을 실전에서 실행하세요. 3.xxx 대표가 직접 수업에 배웠던 지식에 대하여 질문드리겠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모두 답변을 완벽하게 하세요. 4.그럼에도 삶의 변화가 없었다면 환불해 드립니다.”그래서 찾아보니 제목은 ‘ 돈이 따라오는 억대 소득의 자수성가법’이고 화면을 넘기면 ‘EVENT2 100% 환불보장제’라는 제목으로 “환불보장제 적용”이라는 구호를 여러 개 배경에 깔아놓고 강사 얼굴이 나오면서 “수강 후 원하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면 100% 환불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나온다. 다시 화면을 넘기면 “안 되면 진짜 말씀하세요. 100% 환불보장”이라는 글 밑에 강사 얼굴이 나오고 “수업을 모두 수강하고 성과가 나지 않는 경우는 100% 환불해 드리겠습니다”고 나온다. 그리고 위에서 인용한 “100% 환불기준”은 마지막 화면 하부까지 가야 지금까지 나왔던 글씨들보다 훨씬 작은 글씨로 나온다(부동산이나 보험 광고에서 자기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아주 작은 글씨로 써 놓는 것과 유사하다). “100% 환불기준”을 읽은 후 쌍욕이 전혀 나오지 않고 말 그대로 100% 환불보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애초부터 환불 약속을 지킬 생각은 있었을까? 아무도 환불을 받아 가지 못했으므로 100% 모두 만족하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도대체 누가 이렇게 광고하는 것일까? 심리전문가를 자칭하며 자기 강의만 들으면 인생이 바뀐다고 말하는 박세니다(강의 중에 박세니가 “세이노 그 사람 돈 많으면 뭐해, 정신과 다니는데”, “세이노가 그렇게 돈 많이 벌어봤자 매일 정신병약 먹고 있는데 무슨 소용이야”라고 틈틈이 걱정해 준다는 제보도 받았다. 내가 내 책에서 대장동 사건으로 불안해져서 정신과를 다녔다고 한 얘기 때문인 듯싶다. 그때 정신과 의사인 동창을 찾아갔더니 여러 가지 심리 조사와 몇 차례 상담 후 이렇게 얘기했다. “의사로서 뭘 해줘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너에게는 어떤 약도 의미가 없다. 심리 조사에서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심지어 죽음에 대해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나오는 너 같은 사람을 나는 처음 본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런 네가 관련되지도 않은 정치적 부패 사건에 불안해하며 이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다. 네가 왜 그거까지 걱정을 하냐.” 어쨌든 현재 3가지 비타민과 가벼운 고지혈증 약을 매일 먹는 나에게 박세니는 정신병약까지 먹이고 싶은가 보다).100% 환불보장은 일정 기간 이내에 구매자가 불만족하면 무조건 100% 환불하는 것이지 구매자가 판매자의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처음일 것이기에 확실히 박세니는 선구자인 것 같고 “100% 환불보장”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최면을 일단 걸어 놓고 마지막에 그 환불조건을 작은 글씨로 표시하는 것 역시 최면을 강조하는 박세니답다. 4. 보험보험은 위험 대비용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에 대해 나는 이견이 전혀 없으나 보험을 대여섯 개씩 드는 것은 보험설계사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본다. 꼬임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보험회사가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고 수익을 만들어 내는지는 알아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는 보험사들의 비밀 하나부터 얘기하자. 오래전 12월이 되면 나는 계좌에 20억원 정도 준비해 놓곤 하였다. 그때가 되면 유명 보험사 지점장들로부터 청탁이 들어왔는데 12월 31일 이전에 5억원을 입금하면 즉시 5000만원을 현금으로 주고 1년 후 5억원에 대해 은행 정기예금보다 조금 더 높은 이자를 주겠다는 것이었다(5000만원은 그 당시 백화점 대형봉투 하나에 만원권으로 모두 들어갔다). 당연히 나는 응하였고 연말을 기다리기까지 했다(이걸 몇 년이나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 5000만원은 수십 명의 보험설계사 수수료로 떼어놓은 금액이었는데 보험설계사는 근로자가 아니라 자영업자 신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던 시기였음에도 그런 일이 가능하였다는 것은 세무서나 감독기관도 잘 모르는 구석이 보험사들에 있었다는 뜻이고 지금도 여전히 일부는 남아있지 않을까?예를 들어, 혹시 기존 보험은 해지하고 새 상품으로 갈아타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그걸 보험업법에서는 자사 승환이라고 하는데, 타사 승환도 있다. 자사 승환은 가입자의 금전적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가입 나이도 늘어나 예전보다 불리한 조건이 될 수 있기에 6개월 이내의 자사 승환은 불법으로 금지되고 있음에도 기간에 상관없이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뭘까? 보험사에도 이익이 되고 설계사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승환 요청은 일단은 거절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보험은 크게 생명·손해·질병 관련으로 분류된다. 보험사에 가장 이익이 되는 분야는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비하는 생명보험이다(보험료는 가장 비싸지만 갑자기 죽을 확률은 낮기 때문이다). 생명보험 영업은 기본적으로 인맥을 바탕으로 한다. 당신이 보험을 들게 된 것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 찾아와 권유하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보험설계사는 없는 돈에 수입차를 사서 골프도 치러 다니고 명품도 걸치며 종교모임은 물론 갖가지 행사에 참석할 수밖에 없다. 인맥이 없는 경우에는 보험 가입에 관심이 있는 고객명단(DB)을 회사에서 받는다. 그 명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예를 하나 든다면 홈쇼핑에서 “상담만 받아도 사은품을 준다”는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상담을 받았던 사람들의 정보가 분석·집약되어 DB가 되는데 그 과정에서 허접한 DB도 만들어지고 좋은 DB도 만들어지게 된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 1만원 할인쿠폰을 준다는 것도 당신이 예뻐서 쿠폰을 주는 것이 아니다. 여러 유명 생명보험사들이 그 전속 대리점 및 “모집위탁계약을 체결한 자”(보험설계사를 의미한다) 등에게 줄 DB를 만들고자 당신의 개인정보를 얻으려고 1만원 이상을 지불하기 때문이다(확신하건대 그 DB 중 일부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불법적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회사에서 준 DB에 의존하면 영업 수당도 줄어들고 인맥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그만두는 설계사들이 계속 나온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설계사들이 끊임없이 충원되어야 하니 고수익을 내세워 유인하는 것이다.요즘 보험설계사들은 생명보험의 하나인 종신보험을 상속세 절세용으로 국세청이 추천하는(또는 인정하는) 방법이라고 너도나도 선전하면서(인터넷 검색하여 봐라) 국세청이 발행한 ‘세금 절약 가이드’에 최적의 상속세 마련 방법으로 소개되었다고까지 말한다. 정말? 내가 2020년·2021년·2022년·2023년도의 ‘세금 절약 가이드’를 뒤져보았지만 “자녀 명의로 보장성 보험을 들어 놓는” 것이 여러 가지 상속세 납세자금대책 중 하나로 언급되어 있을 뿐이지 종신보험이 최적의 상속세 마련 방법으로 소개되었다는 것은 완전 뻥이다. 왜 뻥을 칠까? 그게 보험설계사에게 가장 고액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상품이어서 그렇다. 어느 정도나 수수료를 주기에 그럴까?(종신보험이 상속세 대비책이 되려면 보험료를 반드시 소득이 이미 있는 자녀나 배우자가 납부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결국 종신보험은 상속인들이 자기들 돈으로 보험료를 납부하고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보험금을 받아 상속세 납부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피상속인이 빠른 시일 내에 사망할수록 유리하고 오래 살수록 불리하다.) 박세니의 ‘억대소득 세일즈맨 양성-박세니마인드코칭 삼성생명 협업프로젝트’를 보면 “억대소득 세일즈맨이 되는 기회를 드리려고”한다면서 선발 과정을 이렇게 명시했다. 요즘(2023년 11월) 박세니의 오프라인 강의는 ‘강의만족도 98%, 강의추천률 98%’을 내세우면서 초급·중급·고급 과정이 165만원이며 최면반이 따로 있다. 입금하면 ‘박세니마인드코칭 수강안내(환불규정안내)’를 알림톡 등으로 받게 되는데 납입한 강의료는 강의 시작일 3일 전 ‘오후 5시 이후 환불·변경 불가’로 나오며 “100% 환불”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매주 중급반과 고급반 강의 후에 있는 미팅에서는 삼성생명 WM(Wealth Management·자산관리이지만 실제는 보험상품 판매다) 영업직원들이 십여 명 참석하여 보험영업을 권유한다. “고급반 수업도 보험영업에 도움 되는 내용 위주이며 ‘삶을 바꾸려면 높으신 분을 최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최근 강의를 들었던 사람이 제보해 주었다.2023년 6월 22일, 인스타그램에서 박세니는 4월부터 삼성생명의 파트너가 되어 제자들을 연결시켰다고 하면서 4월에 11명으로 시작해 26명이 합류하였고 삼성생명보험으로부터 6월 21일 2692만5135원을 첫 소득으로 입금받았다고 하였다. 파트너가 되었다는 말은 삼성생명의 보험설계사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 보험설계사를 삼성에서는 FC(Financial Consultant)라고 하지만 회사마다 제각각이어서 영문 호칭이 15개 이상이고 재무상담사·금융전문가·인생상담사 등으로도 부르지만 좀 더 멋있게 보이려고 지어낸 것들일 뿐이고 법적으로는 모두 다 보험상품을 파는 보험설계사이다. FC는 보험사의 직원이라기보다는 자영업을 하는 개인사업자이며 관리자인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관리자인 경우에는 자기 밑에 영업조직을 두며 그 조직원들의 활동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게 되는데 박세니는 이 경우에 해당된다. 박세니는 삼성생명 본부장으로부터 8월 11일 ‘경력도입 우수 FC’ 특별상을 받은 사진도 올리면서 “억대 소득 정도는 너무나 쉽고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경력도입’이란 다른 회사에서 보험설계사를 했던 경험자를 삼성생명에 들어오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쨌든 박세니가 “억대소득 정도는 너무나 쉽고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억대소득을 달성하는 대표적 방법은 상속세 걱정을 하고 있을 부유층 고객이 종신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것이다(그래서 박세니가 “높으신 분을 최면에 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예를 들어 월 1000만원을 납부하는 종신보험에 가입하도록 한 보험설계사는 도대체 수수료를 얼마나 받게 될까? 법적으로는 월 납입액의 12배인 1억2000만원이 상한선이지만 법인보험대리점(GA)의 경우 보험사로부터 이른바 ‘시책비’(판매촉진비)를 별도로 받아서 보험설계사에게 그 이상을 지급하기에 2억원 정도도 받는다. 보험 가입자가 1년 이상만 보험료를 납부하는 한 그 수수료는 설계사의 수입으로 남는다. 속된 말로 1년에 1명의 부자만 가입시키면 놀고먹을 수 있게 되고, 심지어 누군가 가입한 것처럼 만들어 놓고 자기 돈으로 1년간 보험료를 납부한 후 1년 후 해지하여도 수수료가 남을 수 있다(이른바 차익거래라고 한다. 보험업계에서는 물론 금감원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은 하는데… 글쎄다). 삼성생명은 GA 자회사들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박세니가 소속된 삼성생명 ‘헤리티지 센터’는 헤리티지(유산)라는 명칭이 암시하듯이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다. 생명보험 영업조직은 리쿠르팅(채용)-교육-영업으로 이어지는 경로 관리가 핵심이며 일종의 다단계적 성격으로 자신이 만든 조직의 보험설계사 실적 일부를 인센티브로 받게 되는데 조직이 커지고 실적이 올라가면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이다. 박세니는 FC로 활동하면서 소위 제자들을 리쿠르팅하여 영업에 투입 활용하는 것이다. 중도 포기자가 생기면 새로 인원을 채워 놓으면 된다. 어째서 그 제자들은 생명보험사 영업직 입사 면접은 웬만하면 다 합격하는 것이고 보험 영업방식은 유튜브에 엄청나게 많은데도 박세니의 교육 강의에 돈까지 낸 후 자기 수수료의 일부가 박세니에게 할당되도록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박세니의 말대로 했더니 높으신 분이 최면에 잘 걸려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놀랍고 고마워서?).박세니 강의의 뼈대는 멘탈 프로그램을 팔면서 삼성생명에서 기회를 만들어 주겠다는 구체적 취직 제안까지 하는 것임을 볼 때, 삼성생명 입사를 미끼로 ‘쎈멘탈 판매’ 등 개인 장사를 직접 연계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문제가 될 텐데 삼성의 준법감시팀이나 윤리경영팀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을 보면 좀 놀랍다. 게다가 박세니의 강의는 주로 ‘돈을 벌고 최고가 되는 것’을 자기 최면과 타인 최면을 통해 이루라는 것인데, 자기 최면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타인 최면은 “높으신 분을 최면에 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서 나오듯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심리적 지배) 같은 시도이고 처음 만난 여자에게 최면을 시도하여 뭔 짓을 하려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싶다(이 글을 읽고 종신보험이 보험설계사에게 그렇게나 수당을 많이 주는데 가입자에게 유리하게 과연 그 보험이 운영될까를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의 눈이 떠진 것이다). 5. 주식주식에 대해서는 2008년 10월 11일 딱 한 번 다음 카페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삼성전자가 내 관심사고 포스코는 아니다”라고만 언급한 바 있다. 그 당시 그 말을 하고 나서 후회를 정말 많이 하였는데 내가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 주식을 사도록 유도한 것과 다름없는(그래서 주가가 더 오르도록 유도하여 수익을 더 보려는) 행동이 아닌가 하는 자책을 느꼈기 때문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조차 90% 이상이 이 주식이 좋다는 식이며 목표주가를 높이 잡는다. 왜? 주식 거래량이 늘어나야 자기네 이익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리딩방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모두가 그런 심보로 주식을 추천한다. 아 물론 그런 심보를 역이용하여 초단타 위주로 하면 좀 챙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세이노라는 이름으로 쓰는 글을 통해 내 사익이 증가한다면 나 자신이 X 같은 나쁜 놈으로 전락하게 됨을 잘 안다. 언젠가 L 및 K 재벌가 사람들(손자들)의 작전회의에 각 한 번씩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 느낀 것은 ‘결국 개미들이 밥이 되는구나’였고 1원도 가담하지 않았다. 약 1년 후 K 재벌의 직계 가족이 구속되고 몇 개월 후 L 재벌의 직계 가족도 구속되었는데 내가 양쪽 모두 가담했다면 가중 처벌을 크게 받았을 듯싶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그 작전에 가담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를 K 재벌에 연결해줬던 동창 녀석은 15억원 정도를 날렸다. 내가 개미들에게 하고픈 말: 주식으로 큰 수익이 났을 경우 당신이 똑똑하고 주식투자 재능이 있어서 돈을 번 것은 절대 아니므로 전업투자자가 되겠다는 개꿈은 갖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게 전업투자를 하다가 배우자도 모르게 엄청난 빚을 진 후 내게 ‘어찌하오리까’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비정상적으로 수익이 발생하고 있으면 빨리 처분하여야지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가 계속 집어넣는 짓도 절대 하지 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는 성경 말씀도 있다(야고보서 1:14). 통정 거래로 주가를 끌어올렸다가 폭삭 망한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 하한가 사태에서 무려 1500명의 의사들이 위임 매매를 하였던 것도 ‘욕심에 끌려 미혹’당한 것이다. 이때 역시 내게 수백억원을 날렸는데 어찌하오리까 메일을 보낸 독자가 있었다.거듭 강조하는 것이지만 주식 투자는 여유 자금으로 하여야 하는 게임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이길 확률은 10%도 안 된다. 그래서 내가 20여 년 전에 썼던 글은 아직도 유효하다. “편안하게 빨리 돈 벌고 싶어서 애를 태우는 자들이여. 평생 가난의 괴로운 숯불이 이마 위에 올려지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채권은 어떨까? 채권은 인터넷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주식 정보보다 훨씬 쉽게 얻을 수 있다. 국고채는 자본차익(금융투자수익)이 비과세이기에(2025년부터 과세되는 것으로 예고되어있다) 종종 종합소득세율이 이미 40% 이상 되는 경우에는 정기예금 이자 수익보다 세후 실수령액이 더 높다. 즉 종합소득세율이 낮은 경우에는 좋은 투자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좋은(회사가 망할 가능성이 아주 낮은) 회사채는 개미들에게는 기회가 잘 안 간다. 2023년 11월 2일 대한항공 회사채 수요예측이 흥행에 성공하였다는 기사가 그다음 날 떴다. 수요예측은 증권사나 투자사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큰손들에게만 연락하여 예상 투자액을 물어보지 개미들에게는 전화도 안 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잣돈이 모이면 좋은 회사채들은 정기예금보다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으므로 경제기사를 평소에 꼼꼼히 잘 읽어나가라. 요즘은 인터넷 뱅킹에서 10만원으로도 채권투자가 가능하므로 경험을 쌓아가며 소소한 기회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홍콩 H지수 ELS의 헤지자산 74% 정도는 국내 채권이므로 ELS의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 상반기에는 그 시점에서도 만기가 남아있는 채권들이 ELS 자산 현금화를 위해 쏟아져 나올지 여부도 주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다만 나는 ELS, ELB, DLB, DLS 등등 금융공학자들이 만든 상품들은 가까이하지 않는 고집이 있다.) 6. 팩트를 보는 법2014년 12월 5일 발생한 땅콩회항 사건과 관련된 내 글을 내 책에서 읽고 나서(541쪽), 마카다미아를 봉지째로 주는 것으로 서비스 매뉴얼이 바뀌었는데 그것을 조현아 부사장이 모르고 있었고 세이노도 모르고 있었다는 내용이 종종 독자 메일로 오곤 하였다. 그래서 내 책 17쇄부터는 552쪽에 ‘손님에게 알레르기가 있으면 먹지 않을 것이므로 봉투째 준다는 얘기를 누가 하던데, 나는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기 일등석에서 항공사를 불문하고 그런 경우를 경험한 바 없다’고 첨언하였고, 실상을 좀 더 조사해 봤다.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언론의 기자들이 팩트(Fact·사실)를 제대로 못 보고 비틀어 보도한 전형적인 가짜 뉴스였으며 나무위키나 위키백과도 대동소이했고,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하는가’ 책이 생각나는 사건이었다.(팩트를 골라내는 법을 알게 되면 형사소송이나 민사소송에서도 유리하여진다.)아마 당신은 그 비행기에서 승무원의 땅콩 서비스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조현아가 서비스 매뉴얼이 바뀐 것을 모르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으며 나중에 매뉴얼이 바뀐 것을 알고는 사무장에게 화살을 돌려 화풀이를 한 것으로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땅콩을 봉지째 주는 대한항공 홍보영상 장면도 있다고 하여 나도 봤는데 광고 영상을 찍는 사람들은 화면이 예쁘게 나오는 것에 신경을 쓰지 서비스 매뉴얼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다. 문제의 발단이 비행기 이륙 전 조현아에게 객실 승무원이 승객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마카다미아(언론에서는 땅콩, 콩, 너츠 등으로 표기했다)를 봉지째로 전달한 것에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날 회사 내부 이메일로 인증받은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블라인드’의 대한항공 게시판에는 이런 내용이 떴다고 한다(동아일보 2014-12-10).“음료와 마카다미아 너츠를 줄 때 봉지째 주느냐? 규정이 뭐냐?(규정은 음료를 요청한 승객에게 마카다미아 너츠를 봉지째 보여주고, 먹겠다고 하면 갤리에 들어가서 뜯어서 작은 그릇에 담아줌)…갤럭시노트 10.1을 꺼내 규정을 보여줌.(당연히 잘못이 없는 객실 승무원)…”2014년 12월 10일 한겨레신문은 서비스 매뉴얼을 단독 입수하여 “조현아의 딴죽? 승무원은 ‘매뉴얼’대로 했다”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10일 <한겨레>가 단독 입수한 대한항공의 ‘일등석(FR/CL) 웰컴 드링크 SVC(서비스) 시 제공하는 마카다미아 너츠 SVC 방법 변경’ 공지를 보면, 승무원은 “음료와 함께 마카다미아 너츠를 포장 상태로 준비하여 보여준다(showing)”고 명시돼있다. 이어 “마카다미아 너츠를 원하는 승객에게는 그릇에 담아 가져다드릴 것을 안내해 드린 후, 갤리(Galley)에서 버터볼(작은 그릇)에 담아 준비하여 칵테일 냅킨과 함께 음료 왼쪽에 놓아드린다”고 돼 있다.이 매뉴얼 변경이 공지된 것은 2012년이다. 변경 내용은 승객에게 ‘봉지째 마카다미아 너츠를 보여주라’고 한 부분은 그대로 두었다. 다만 그 뒤 원하는 승객에게 갖다줄 때 ‘봉지째 제공’하던 것을 ‘그릇에 담아 제공’하도록 바꾼 것이 전부다. 미주노선을 운항한 적이 있는 복수의 대한항공 승무원은 “지난 5일 뉴욕발 항공기 승무원이 봉지째 너츠를 갖다 보여줬다면 이런 매뉴얼에 어긋나지 않는다. 전부터 그렇게 해왔다”고 말했다.2014년 12월 10일 경향신문은 대한항공 측은 승무원의 ‘잘못’을, 노조 측에서는 조현아 부사장의 ‘착각’을 주장하고 있음을 보도하였다.“여전히 말이 엇갈리고 있지만 승무원이 1등석에 타고 있던 조현아 부사장에게 마카다미아 견과류를 봉지째 건네자 조 부사장이 그릇에 담아오지 않았다고 지적을 했다는 게 대한항공 측의 설명이다. 반면 노조 측은 “드실 것”인지 승객에게 물어보기 위해 규정대로 봉지를 들고 갔는데 조현아 부사장이 화부터 낸 것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그리고 하루 뒤인 2014년 12월 11일 경향신문은 그 매뉴얼의 영어 원문을 보여주면서 아래와 같이 보도하였다.“…당시 문제가 된 것은 마카다미아를 어떻게 서비스하느냐였다. 승무원은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가져갔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에 대해 왜 봉지를 뜯은 뒤 마카다미아를 버터볼(그릇)에 담아오지 않았느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향신문이 지난 10일 입수한 대한항공의 일등석 객실 서비스 매뉴얼을 보면 “웰컴 드링크 서비스 시 음료와 함께 마카다미아넛을 포장 상태로 준비해 보여준다”고 돼 있다. 이어 “승객이 마카다미아넛을 원하면 갤리(음식을 준비하는 곳)에서 버터볼(그릇)에 담아 칵테일 냅킨과 함께 음료 왼쪽에 놓는다”고 돼있다. 2012년부터 이 매뉴얼대로 서비스해오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매뉴얼을 잘못 알았다는 것이다.”2014년 12월 19일 경북매일신문 기사 내용: “조현아는 자신이 탄 비행기에서 땅콩을 봉지째로 줬다는 이유로 사무장을 내리라고 지시해 비행기를 돌려 사무장이 공항에 내린 후 비행기가 출발하게 했다. 비행기 기내 규정은 땅콩을 요청한 승객에게 땅콩을 봉지째 보여주고, 먹겠다고 하면 갤러리에 들어가서 뜯은 후 작은 그릇에 담아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 사무장이 했던 행동은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다.” 조현아는 땅콩회항 사건으로 결국 구속 기소되었다. 2015년 1월 16일 경향신문이 조현아에 대한 검찰 공소장을 입수하여 분석한 단독 기사에 의하면 12월 5일 현지시간 0시 43분 “승무원 견과류 봉지째 쟁반에 받쳐 제공. 조 전 부사장 승무원에게 ‘매뉴얼 가져오라’ 지시. 박창진 사무장 매뉴얼 담긴 태블릿 PC 가져오자 조 전 부사장 격분”으로 언급된다. 0시 53분에는 “조 전 부사장, 승무원 김 씨의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박 사무장에게 ‘당신 잘못이야. 네가 내려’ 지시”하였다고 한다.즉 승무원이 봉지째 쟁반에 받쳐 제공했음이 분명하므로 경향신문의 12월 11일자 기사는 틀린 뉴스가 되고 경향신문 12월 10일자 기사에서 나온 노조의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른 것이 된다.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공소장은 물론 여러 기사에서 “조 전 부사장, 승무원 김 씨의 잘못 없었다는 것 알면서도”라고 하거나 “뒤늦게 조 전 부사장은 변경된 매뉴얼에 따라 김 씨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것을 알게 됐다. 이번에는 적반하장격으로 박 씨에게 ‘화살’을 돌렸다”는 식으로 나온다. 과연 그럴까?(참고로 “조 전 부사장 격분” 이유는 승무원들이 서비스를 준비하는 공간(갤리)이 바로 앞에 있고 그곳에 종이 매뉴얼이 있는데 사무장이 태블릿PC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비행기 이착륙 시 승무원이 하는 안내방송 역시 제아무리 고참 승무원일지라도 종이 매뉴얼을 보면서 하는 것이고 종이 매뉴얼들은 언제나 그것이 필요한 장소에 놓여 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격분”할 만한 것이었냐고? 그 판단은 당신이 어떤 조직에서 그 정도 지위에 올라갔을 때까지 유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격분” 이후의 행동들은 나도 이해하지 못한다.)2015년 2월 2일 2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무려 11시간이나 계속된 결심공판법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언론보도를 축약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과연 기자들이 11시간 동안 그곳에 계속 있었을까? 검사의 질문들은 동아일보에서 상세히 보도했으므로 궁금하면 찾아봐라.)경인일보(2015년 2월 2일)조현아는 기내에서의 행동이 여승무원 김 모 씨의 서비스 위반으로 인한 것이고, 이 과정에서 박창진 사무장이 매뉴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냐는 검사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사건의 원인제공을 승무원과 사무장이 했다는 것이냐’는 검사의 질문에 “승무원의 서비스가 매뉴얼과 다르다고 생각해 이를 확인하기 위해 매뉴얼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 매뉴얼을 찾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조현아는 기소된 이후 진행된 두 차례 공판 동안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것과 달리 조심스럽긴 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진술했다. 특히 그는 당시 승무원의 견과류 서비스 방식이 ‘명백한 서비스 매뉴얼 위반’이라고 강조했다.조현아 전 부사장은 당시 여승무원이 ‘웰컴 드링크’를 서비스한 것과 관련해 “웰컴 드링크는 매뉴얼에 ‘오더 베이시스’(Order Basis)라고 설명돼 있는데, 이는 승객이 원하는 것을 물어보면 갖다 주는 것”이라며 “하지만 여승무원은 (물어보지 않은 채) 물을 갖다 주면서 콩과 빈 버터 볼을 갖고 왔고, 이는 분명한 매뉴얼 위반”이라고 밝혔다.이는 앞서 박창진 사무장이 증인신문에서 “관련 매뉴얼이 작년 12월 초 ‘봉지째 보여주며 먹을지 묻고, 먹겠다고 하면 작은 그릇에 담아 제공’으로 개정됐고, 이는 조 전 부사장의 결재로 공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 것과 정면 배치되는 주장이다.동아일보(2015년 2월 3일)결심공판에서 조 전 부사장은 어떤 부분이 위반이냐는 질문에 “자신은 물을 갖다달라고 했는데 물과 함께 견과류를 가져왔기 때문에 매뉴얼 위반”이라고 답했다. 이는 사건 초기 조 전 부사장이 “견과류를 봉지째 보여주면서 의향을 물은 부분”을 문제 삼으며 “승객 의향을 먼저 물어본 뒤 종지에 담아 서비스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달라진 대목이다.본보 보도(지난해 12월 15일자 A14면)와 재판 시 공개된 매뉴얼에 따르면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 출발편에는 견과류 서비스 관련 내용이 없다. 세계 공항은 보안 규정에 따라 항공기 문이 닫히기 전까지 주류와 음식을 담아놓는 실(seal·카트의 봉인)을 열 수 있는 곳(실 오픈 가능)과 열지 못하는 곳(실 오픈 불가)으로 나뉜다. 케네디 국제공항은 ‘실 오픈 불가’ 공항인데 조 전 부사장은 사건 초기 ‘실 오픈 가능’ 공항에서 사용하는 매뉴얼에 근거해 사무장과 승무원의 서비스가 틀렸다고 한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이 착각한 부분이다. 주간동아(2015년 2월 29일) “당시 물을 갖다 달라는 저의 말에 승무원은 콩과 빈 버터볼 종지를 가져왔습니다. 명백한 매뉴얼 위반입니다. 서비스가 매뉴얼과 틀리다고 생각해 확인하기 위해 매뉴얼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 매뉴얼을 찾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뒤에 있었던 저의 행동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조선비즈(2015년 2월 6일) 검찰이 피고인 심문에서 “사건의 발단이 승무원이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조 전 부사장은 “분명히 매뉴얼에 따라 (마카다미아를) 가져 오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고 답했다. 나무위키에서는 “2007년 이후에는 봉지를 들고 가서 보여주고 취식 여부를 물어본 뒤 먹겠다고 하면 까서 접시에 담아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승무원은 이 지침을 완벽하게 준수했다”고 나온다.위키백과에서는 “이륙하기 전에 대한항공 객실본부장이었던 조현아 부사장이 접시 위가 아닌 뜯어지지 않은 봉지 속에 있는 마카다미아를 객실 승무원으로부터 받았다…마카다미아 서비스 규정을 잘 알지 못했던 조현아는 마카다미아 서비스를 빌미로 객실 승무원을 심하게 질책하였고”라고 나온다.결국 진실은 ①먼저 손님에게 봉투째 보여준 뒤 ②원하는 승객에게는 봉투를 까서 그릇에 담아 제공하는 게 매뉴얼이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그 당시 객실 승무원은 ①에서의 보여주는 행위를 하지 않은 채 접시에 봉투째 담아 전달한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가?땅콩회항의 발단이 된 서비스 문제를 내가 이렇게 길게 늘어놓은 것은 조현아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갖가지 소문 속에서 팩트를 판별하는 능력 훈련을 스스로 하라는 뜻이다. 그래야 자기만의 게임을 하게 된다. 물론 당시 조현아가 남편과 아들에게 욕하고 소리 지르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저 사람은 평소에도 저렇게 행동하는 여자’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조현아가 “격분”한 동기가 어디에 있든 간에, 사람들은 어차피 조현아를 이상한 인간으로 낙인찍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적어도 기자들만큼은 상황을 추종하려고 하지 말고, 설령 독자들의 미움을 받는다 할지라도 팩트를 써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팩트를 비틀어 보도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들 덕분에 안하무인의 재벌 가족들에게 경종이 울리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 동영상에서나 땅콩회항에서나 왜 조현아가 그렇게 행동하였는지를 나는 안다. 조직 내에서 지위가 높아지면 언행이 변하게 됨을 나 역시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현대의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이 공사 현장에 나타나 자주 따귀를 때리거나 정강이를 걷어찼다는 뉴스 말미에 갑질 논란 따위는 전혀 없이 일을 철저히 하려는 그의 의지를 칭송하는 내용이 나오던 시절에 청춘을 보낸 사람이다. 그런 내가 다국적 기업에서 승승장구할 때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어린 딸들과 무슨 얘기를 하던 중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딸들이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전화로 누구에게나 야야 하며 소리 지르고 화를 내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번개를 맞는 느낌을 받았다. 내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할 사람들은 가족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에게 내가 잘못하고 있음을 말하는 직원을 보배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그 시기였다. 어떤 조직에서든 고위직에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경험적 조언: ①가족에게 뭔가를 지시하려고 하지 말아라. 가족은 당신의 하급 직원이 아니며 가족에게 당신은 직장 상사가 아니다. 청소가 이게 뭐냐, 냉장고 정리가 왜 이 모양이냐 같은 말은 회사에서나 통하는 말이므로. 먼저 가족이 하는 말에 귀부터 기울여라. ②당신을 분노하게 만든 직원이 있으면 즉시 “10분 후에 다시 얘기하자”고 해라. 그 10분간 분노를 가라앉힌 후 사근사근 대화하거나 이메일로 감정 표현 없이 팩트만 전달하여라. 개인적으로 나는 이 방법이 내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것을 체험하여 왔다. 곽상도 아들 50억원 퇴직금 수수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을 때 나는 “아니 도대체 팩트가 뭔데 무죄야?”라는 생각에 판결문 속 사실관계를 며칠 동안 분석하였고 뇌물이라고 판단하였다. 때마침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 이 사건을 주로 이야기하는 조건으로 지난 4월 출연하여 뇌물이라고 판단한 근거들을 팩트를 통해 설명하였다. 우리 사회가 뇌물을 주고받는 부패한 사회가 되어선 안 된다는 점 외에도 개개인이 정치적 성향을 떠나 팩트가 무엇인가 알아내려는 노력 역시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꼭 전하고 싶어서였다. 12월 19일 ‘곽상도 50억원 뇌물수수’ 건에 대한 2심 재판이 시작될 예정이다. 독자들과 함께 그 추이를 지켜보고자 한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3.12.11 07:00

36분 소요
대우건설-SK에코플랜트, 해상풍력 발전사업 맞손

건설

대우건설과 SK에코플랜트는 지난 30일 서울 중구 을지로 대우건설 본사에서 ‘해상풍력 발전사업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31일 밝혔다.이날 협약식에는 김용해 대우건설 토목사업본부장과 조정식 SK에코플랜트 에코솔루션 BU 대표, 양사 풍력사업 임원 및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이번 협약을 토대로 양측은 해상풍력 발전사업 개발 및 설계‧조달‧시공(EPC)에 공동으로 참여하고, 정기적으로 운영협의체를 개최해 구체적인 협업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대우건설은 토목사업본부 내 풍력사업 담당부서를 신설해 풍력발전 분야 역량을 강화하고 있으며, 세계 최장 방파제인 이라크 알포(Al-Faw) 방파제, 세계 최대 수심에 설치한 거가대교 침매터널을 비롯해 국내외 다수의 대형 해상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등 국내 최고의 해상인프라건설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시화호 조력발전소를 시작으로 제주감귤 태양광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준공했고, 현재 영월 풍력발전단지 준공을 앞두고 있다. 또한 인천 굴업도 해상풍력을 비롯하여 다수의 육상, 해상풍력 사업에 참여 중이다.SK에코플랜트는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사업개발과 기자재 생산, 그린수소 생산까지 이어지는 전 분야 사업모델을 갖추고 있다.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제조사인 SK오션플랜트를 자회사로 두고 있으며 현재 울산, 전남 등 5개 권역에 총 3.8기가와트(GW) 해상풍력 사업을 개발 중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기업 처음으로 500메가와트(MW)급 해상풍력 프로젝트인 ‘안마 해상풍력’ 운송·설치 사업 수행을 위한 우선공급계약을 체결했다. SK에코플랜트 대표이사는 해상풍력 전 분야 밸류체인을 완비하는 등 그 대표성을 인정받아 한국풍력산업협회 회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최근 시장이 확대되는 해상풍력은 고난이도 해상공사가 수행되고, 주기기, 하부기초 등 제작과 설치 선박을 적기에 투입하는 것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업계의 평가를 받는다. 대규모 해상공사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 대우건설과 하부기초 제작업체 보유 및 해상풍력 전용선박 지분 확보를 추진 중인 SK에코플랜트가 협업해 시너지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우건설과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제10차 전력수급 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약 14GW 규모의 해상풍력 수급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해상풍력사업이 추진 중”이라며 “대우건설과 SK에코플랜트의 협업을 통해 풍력업계 리딩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2023.10.31 14:32

2분 소요
與, 내일 김재원·태영호 징계수위 결정…“연기 없다”

정책이슈

국민의힘 중앙당 윤리위원회가 오는 8일로 예정된 김재원, 태영호 최고위원에 대한 3차 회의를 예정대로 개최하고 징계수위를 결정한다. 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윤리위는 오는 8일 오후 4시 중앙당사에서 3차 회의를 열고 두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수위를 결정한다. 3차 회의에서 소명을 청취한 뒤 곧바로 징계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윤리위는 지난 1일 1차 회의를 열고 지난 3일 예정에 없던 2차 회의를 열어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앞서 일각에선 이날부터 1박 2일간 이어지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방한 일정 탓에 두 최고위원의 징계 결정이 연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8일 회의가 예정대로 열리더라도 최종 징계 결정이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김·태 최고위원이 징계결정 이전 자진 사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두 최고위원의 징계를 신속하게 끌어내지 못 하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리더십에 타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여기에 2차 회의 후에도 김·태 최고위원이 사퇴 의사를 밝히기 않으면서, 징계 결정이 연기될수록 불필요한 논란이 지속되면서 당에 부담만 더할 수 있다는 판단이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재원 최고위원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반대’ ‘전광훈 목사의 우파 진영 천하통일’ ‘제주 4.3 추념일은 격이 낮다’는 발언 등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김 최고위원은 한 달 가까이 공개활동을 자제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 했지만, 당원 200여명이 징계 요구서를 제출하면서 징계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태영호 최고위원은 ‘제주 4.3은 북한 김일성의 지시’ ‘백범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했다’는 발언에 더해 더불어민주당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Junk(쓰레기), Money(돈), Sex(성) 민주당. 역시 JMS 민주당’이라는 글을 올려 구설에 오르자 스스로 윤리위 심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한편 국민의힘 당 최고위 회의는 오는 8일 열리지 않는다. 윤리위가 예정된 상황에서 징계절차 등과 관련한 오해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최고위 회의를 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2023.05.07 16:53

2분 소요
국민의힘 윤리위, ‘논란의 입’ 김재원·태영호 징계 결정

정책이슈

국민의힘 중앙당 윤리위원회가 잇따른 ‘설화’로 물의를 빚은 김재원, 태영호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절차에 착수한다. 윤리위는 1일 오전 첫 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황정근 윤리위원장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윤리위원회가 구성되고 첫 임명장 수여식 직후 1차 회의를 진행했다”며 “김재원, 태영호 두 최고위원에 대해 징계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김재원 최고위원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반대’ ‘전광훈 목사의 우파 진영 천하통일’ ‘제주 4.3 추념일은 격이 낮다’는 발언 등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김 최고위원은 한 달 가까이 공개활동을 자제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 했지만, 당원 200여명이 징계 요구서를 제출하면서 징계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태영호 최고위원은 ‘제주 4.3은 북한 김일성의 지시’ ‘백범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했다’는 발언에 더해 더불어민주당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Junk(쓰레기), Money(돈), Sex(성) 민주당. 역시 JMS 민주당’이라는 글을 올려 구설에 오르자 스스로 윤리위 심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황 위원장은 “징계 사유는 징계 신고서와 윤리위 직권으로 사실 관계를 조사한 것을 종합했다”며 “징계 개시 결정은 국민의힘이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기 위한 자체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윤리위는 오는 8일 오후 4시 2차 회의를 열고 두 최고위원의 소명을 듣고 징계 수위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한편 윤리위 결정에 대해 김 최고위원은 “(징계 여부는) 윤리위에서 판단하리라 본다. 소명을 요구하면 자세히 소명하겠다”며 “(과거사 발언은)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사과 말씀을 드릴 생각”이라고 밝혔다. 태 최고위원은 “윤리위는 당 지도부와 별도로 존재하는 독립적 기구라 윤리위 활동 상황에 대해 제가 언급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면서도 “국회의원은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안 된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직이다'라는 점을 끊임없이 말씀드렸다”고 강조했다.

2023.05.01 14:03

2분 소요
대우건설-군산대학교, 해상풍력사업 MOU 체결

건설

대우건설과 군산대학교는 지난 23일 전북 군산대학교에서 ‘군산지역 해상풍력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날 협약식에는 김용해 대우건설 토목사업본부장과 이장호 군산대학교 총장, 장민석 산학협력단장, 이상일 해상풍력연구원장, 대우건설 풍력사업 임원 및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이번 협약을 토대로 양측은 해상풍력 실증기술 개발을 공동 수행한다.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사업화 모델을 찾아 해상풍력이 군산 지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힘을 합칠 계획이다. 군산 지역은 군산항과 군산 국가산업단지가 위치해 해상풍력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한 데다 우수한 바람 자원까지 보유해 풍력발전에 적합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대우건설은 자사가 개발한 사업화 모델을 바탕으로 군산지역이 해상풍력 사업의 거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지역경제 활성화 및 주민과 상생할 수 있는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대우건설은 최근 토목사업본부내풍력사업TFT를 신설하는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시화호 조력발전소를 시작으로 제주감귤 태양광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준공했다. 현재 영월 풍력발전단지를 시공 중이며 인천 굴업도 해상풍력을 비롯한 다수의 육상, 해상풍력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대우건설은 세계 최장 방파제인 이라크 알포(Al-Faw) 방파제, 세계 최대 수심에 설치한 거가대교 침매터널을 비롯해 국내외 다수의 대형 해상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등 국내 최고의 해상공사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며 “풍력사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박지윤 기자 jypark92@edaily.co.kr

2022.12.26 08:44

1분 소요
'나눔의 표상' 제주 거상 김만덕 [김준태 조선의 부자들⑱]

전문가 칼럼

1796년(정조 20년) 11월 25일, 실록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제주의 기녀 만덕(萬德)이 재물을 풀어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해 살렸다고 목사가 장계로 보고하였다. 상을 내리려고 하자 만덕이 사양하면서 금강산을 유람하길 원하니 허락하고, 인근의 고을이 양식을 지급하게 하였다.” 제주도에 사는 만덕이라는 사람이 재산을 내놓아 백성 구호에 이바지한 공을 기려 금강산 여행을 보내주었다는 것이다(당시 제주도민은 나라의 허락이 없으면 육지로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조정의 허가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 실록 기록은 너무 간략하다. 만덕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했는지, 그 소식이 조정에까지 알려진 계기가 무엇인지, 더는 나와 있지 않다. 대신 정조가 직접 쓴 일기인 에 관련 내용이 있다. 같은 해 6월 6일 자에 실린 제주 목사의 장계다. “노기(老妓) 만덕이 스스로 백미 60섬을 바쳤습니다. 만덕은 사리상 진실로 구할 것이 없는데도 재물을 가볍게 여길 줄 아니, 비천한 무리가 그리하기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서 노기란 은퇴한 늙은 기녀를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기녀를 천한 신분으로 여겼는데, 그런 기녀 출신이 무려 백미 60섬을 구휼미로 자진 헌납하니(만덕은 추가로 500섬을 구휼미로 내놓았다고 한다. 560섬이면 동등비교는 어렵겠지만 30억 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목사로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전현직 관리를 제외하면 가장 큰 기부액이었다. 자신들만이 윤리 도덕을 이해하고 공공의 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자부하던 양반사대부의 시각에서 “아니, 비천한 자가 어찌 이런 기특한 생각을?”이라 여겼다고 보면 된다. ━ 굶주리고 궁핍한 백성 살린 ‘대가없는 기부’ 아무튼 장계를 받아 본 정조는 “노기 만덕은 무엇을 원하기에 이렇게 면 100포에 가까운 백미를 마련하여 굶주리고 궁핍한 사람들을 도와준 것인가? 면천해 주든지 별도로 보상해 주든지 간에 그가 원하는 대로 시행해 준 뒤에 진행 상황을 장계로 보고하라”라고 지시했다. 훌륭한 일을 하였으니 원하는 바를 모두 들어주라는 것이다. 하지만 만덕은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제주 목사가 후속 조치를 보고한 7월 28일자 의 기록이다. “신이 삼가 전하의 뜻을 받들어 만덕에게 알리니, 만덕이 고하길 ‘저는 늙고 자식도 없으니 면천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죽기 전 소원이 있다면 한양과 금강산 구경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라고 하였으므로, 그가 바라는 바에 따라 육지에 다녀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정조는 감탄했다. 많은 재산을 기부했기에 무언가 바라는 바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단지 금강산 구경을 한번 하고 싶을 뿐이라니. 정조는 “만덕이 비록 천인(賤人)이기는 하나 의로운 기상은 옛날의 정의로운 협객에 못지않다. 지금은 겨울이니 봄이 올 때까지 양식을 주어 내의원 차비대령 행수(行首, 우두머리) 의녀로 머물게 하고 각별하게 돌보아 주라. 그리고 금강산을 구경하고 돌아가는 연로에 있는 수령들에게 분부하여 양식과 경비를 넉넉히 지급하게 하라”(일성록 11월 25일)고 하교했다. 만덕에게 내의원의 수석 의녀라는 명예직을 하사한 것은 궁궐에 들어와 왕을 알현할 수 있도록 하고(실제로 알현한 것은 중전과 세자빈이다) 한양 체류 경비를 지급하는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금강산 여행 비용까지 넉넉히 지원해주었으니, 그야말로 최상으로 예우한 것이다. 이는 조선 역사상 전례 없던 일로 당시 지식인들로부터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정조가 초계문신을 대상으로 ‘만덕’에 대해 서술하라는 시험문제를 냈고, 이가환, 박제가, 정약용이 만덕을 추켜세우는 글을 지었으며, 재상이었던 채제공이 만덕의 일생을 기록한 전기 을 집필했을 정도다. ━ 전 재산 사회환원으로 ‘부자의 사회적 책임’ 모범 그런데 안타깝게도 만덕에 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조금씩 전해지는 흔적을 모아 연결해보면, 그는 양인(良人)으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 부모를 모두 잃고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제주 관아의 기녀가 되었다고 한다. 기녀 시절에 근검절약하여 돈을 모았는데, 심노숭이 남긴 글을 보면 “품성이 음흉하고 인색하여 남자가 돈이 많으면 따랐다가 돈이 떨어지면 떠나되 옷가지마저 빼앗아서 그녀가 지닌 바지저고리가 수백 벌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심노숭은 만덕을 싫어한 사람이니 그의 말을 모두 믿을 것은 없겠지만, 만덕이 돈을 악착같이 모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후 만덕은 기녀를 그만두고 장사에 눈을 돌렸다. 처음 시작한 사업은 객주(客主)였는데, 육지와 제주를 오가며 돈을 버는 상인들을 보고 물류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본래 제주는 물류, 유통과 운송이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우선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육지로부터 물자를 공급받지 못하면 독자적으로 생존하기가 힘들다. 특히 땅이 척박하여 쌀 등 곡식이 상시 부족했다. 반면에 최상 등급의 말을 키우는 곳으로, 자연히 최고품질의 양태(涼臺)와 총모(驄帽), 즉 갓을 만드는 두 핵심 재료의 독점적 공급지이기도 했다. 감귤과 같은 특산품, 양질의 해곽(海藿)도 생산했다. 그러니 제주로 들여오는 것이든, 제주 밖으로 나가는 것이든 물류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고, 많은 이윤을 얻을 기회도 많았다. 만덕은 이 점에 주목한 것이다. 만덕은 육지 상인과 연계하여 안전하고 신속한 유통망을 구축하고, 소규모 생산자를 규합하여 제주 특산물의 우월적 공급자의 위치를 확보했다. 그리고 양쪽 물가의 차이를 이용하여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둔다. 육지에서 온 장사꾼이 만덕으로 인해 패가망신한 이가 많았다는 기록도 있는데, 상대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 공격적인 사업방식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만덕은 그를 시기한 다른 상인들의 허위 신고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한데 만덕이 이 단계에서 머물렀다면 그가 얼마나 많은 재물을 축적했든 간에 사업이 위태로워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사업방식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데다가 기녀 출신이라며 깔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힘을 합쳐 공격했다면 만덕이라도 당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덕이 대규모 재산을 희사하여 백성 구휼에 나선 것은, 물론 순수하고 선한 의도였겠지만, 바로 이러한 공격을 막아주는 효과도 가져왔다. 왕과 재상이 직접 만덕을 칭찬하고, 만덕에게 도움받은 백성들이 그의 덕을 칭송하니, 이후론 누구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을 것이다. 만덕은 1812년 눈을 감으면서 양아들의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재산을 제주도의 가난한 백성들에게 기부하였는데,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등이 있다. 김준태 칼럼니스트

2022.04.09 18:00

5분 소요
제주 출신 김만일, 군마 헌납으로 ‘사업보국’ 실천 [김준태 조선의 부자들⑨]

전문가 칼럼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 가면 김만일(金萬鎰, 1550~1632)이라는 인물의 묘가 있다. 그의 묘비에는 “숭정대부 동지중추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숭정대부는 종1품 품계이고, 동지중추부사는 종2품, 오위도총부 도총관은 정2품이다. 실제로 직무 활동은 하지 않은 명예직이었지만 요즘으로 말하면 장관급에 해당한다. 그야말로 최고위직에 올랐던 것이다. ━ 개국공신 김인찬의 후손…위기 때마다 군마 기부 도대체 김만일이 어떤 인물이기에 이처럼 화려한 이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조선 조정은 왜 머나먼 섬사람에 불과한 그를 각별히 예우한 것일까? 김만일의 선조는 조선 개국공신 1등에 봉해진 김인찬이다. 공신 중에서도 으뜸가는 공신이었으니 그의 집안도 번성할 법 하지만 여러 풍파를 겪었던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 김인찬의 셋째 아들 김검룡이 제주도까지 내려와 정착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그의 가문이 태종 이방원의 집권에 반대했기 때문에 탄압받았다는 설이 있다). 이 김검룡의 직계후손이 바로 김만일이다. 김만일은 대규모 말 목장을 경영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는데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명나라의 영락제가 조선에서 진상한 제주마를 ‘천마(天馬)’라고 불렀을 정도로 제주마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조정에서 말을 징수해 가는 양이 막대했다. 숙종 때 제주목사 이형상이 올린 장계를 보면, 국영 목장의 경우 말 사육자 한 사람당 연 10필의 말을 거둬갔다(민영 목장에서도 말을 세금으로 받았다). 말이 죽으면 그 값에 해당하는 책임을 물었으니 이를 충당하기 위해 가족을 노비로 파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또한, 관리와 아전들이 말을 빼앗아 착복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육지로 가져가면 매우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으니 한 몫 단단히 챙기자는 속셈이었다. 상황이 이와 같으니 김만일 역시 말 목장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애로가 되었던 것은 말을 수탈하다 못해 종마로 쓸 암말까지 빼앗아 가는 것이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이건이 제주도 유배시절에 지은 를 보면, 김만일은 우수한 종마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그 눈에 상처를 내어 앞을 못 보게 만들거나, 가죽과 귀에 상처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그의 사업을 지키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이에 김만일은 승부수를 던진다. 조정에 말을 자발적으로 헌납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만일이 처음 말을 바친 것은 1594년(선조 27) 임진왜란의 와중이었다. 당시 조선 조정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군마가 절실하게 필요했는데, 제주도의 사영(私營) 말 목장 주인들이 말을 모아 바쳤고, 김만일도 말 2백 필을 내놓았다. 다만, 이때는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조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요청한 바가 있었을 것이다. 한데, 김만일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말 헌납을 계속했다. 1600년, 전후 복구 및 구휼사업 진행에 쓰라며 말 5백 필을 자진하여 내놓았다. 1620년(광해군 12) 조정에서 명나라에 조공할 말 2백 필을 요청했을 때도 오히려 3백 필을 더해 5백 필을 헌납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1627년 정묘호란 직후 김만일은 다시 말 5백 필을 바쳤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나라에서 꼭 필요로 하는 말을 자발적으로 기부해주니, 조정으로서도 김만일에게 부채 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조정에서는 김만일에게 계속 벼슬을 내려주었는데 종국에는 명예직이기는 하나 재상의 지위인 종1품 숭정대부에까지 오르게 된다(지중추부사에 임명됐을 때는 짧지만 실제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의 아들은 고을 수령에, 손자는 변장(邊將)에 제수됐다. 자손 대대로 종 6품 산마감목관(山馬監牧官)의 벼슬을 맡는 특혜도 주어졌다. 제주도를 지배하는 제주목사가 정3품, 김만일의 거주지인 정의현(의귀리)의 현감이 종6품이니, 제주도에서는 김만일과 김만일 집안을 감히(?) 건드릴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됐다. ━ 종마 보존에 필사적…조정 헌납으로 강력한 보호막 조정에서 김만일을 대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1618년(광해군 10) 9월 25일, 국가의 말 목장 관리 실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파견된 양시헌이 자신에게 협조하지 않는다며 김만일과 그의 아들 3명을 체포해 형벌을 가하자 광해군이 격노했다. “양시헌이 어떤 자인지 모르겠으나 김만일에 대하여 어찌 조정에 아뢰지도 관찰사에게 보고하지 않고 제멋대로 형벌을 가할 수가 있는가. 김만일은 이미 2품의 직첩을 받았을 뿐 아니라 동지중추부사의 실직까지 지낸 사람이다. …… 게다가 암말은 비록 한 필이라도 바다를 건너게 하지 말라고 하교했는데, 어떻게 감히 천여 필의 암말을 한 번에 뽑아낼 수 있단 말인가. 양시헌을 파직한 뒤 그의 죄를 심문하라. 양시헌을 차출한 책임자도 문책하라.” 김만일은 말의 번식량을 늘리고 우수한 종마를 보존하기 위해 암말을 지키는 데 필사적이었다. 앞서 일부러 말의 눈을 멀게 만들기도 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조정에서도 이러한 김만일의 취지를 이해하고 암말의 제주도 밖 유출을 금지하였는데, 이때 양시헌이 암말의 징발을 요구하고 김만일이 이에 따르지 않자 형벌을 가한 것이다. 하급 관료인 양시헌이 조정의 명을 어긴 것도 문제지만 자기 마음대로 2품계의 김만일에게 형을 가했으니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묘호란이 끝난 뒤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전후 복구와 국방력 강화를 위해 말이 필요했던 조정은 김만일로부터 말 1천 필을 징발하고자 했다. 그러자 인조가 너무 많다며 절반을 줄이라고 지시한다. 비변사에서 “김만일의 말이 무려 1만 필이나 되는데, 이 나라에서 태어나 나라 땅에서 나는 풀을 먹으며 자라났으니 모두 국가의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10분의 9를 가져다 사용해도 불가한 것이 없는데 하물며 만에서 천을 취하는 것이 문제이겠습니까?”라고 하였지만, 인조는 듣지 않았다. (김만일은 이때 말 5백 필을 무료로 헌납한다.) 생각해보라.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나라에서 필요한 물품을 자진해서 기부한 사람이 있다. 대가를 받고 판매할 때도 이윤을 남기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었지만, 기꺼이 포기했다. 어디 그뿐인가? 손해를 감수하고 나라에서 요청한 양보다 항상 더 많은 양을 내놓았다. 조정으로서는 당연히 고마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최상의 예우를 다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함부로 대한다는 것은 당연히 말도 안 된다. 기부자가 홀대받는 사회에선 더 이상의 기부를 찾아보기 힘들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김만일에게 손해이기만 했을까? 물론 김만일에게 나라와 백성을 위한다는 숭고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동시에 전략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관리들의 수탈에서 벗어나고, 핵심 사업을 보존하기 위해, 헌납을 통해 강력한 보호막을 얻은 것이다. 대대로 산마감목관을 세습하는 큰 이권까지 얻었으니, 단기적인 손해로 장기적인 이익을, 좋은 일로써 좋은 결과를 얻은 사례라 할 수 있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등이 있다. 공인호 기자 kong.inho@joongang.co.kr

2021.10.31 19:00

5분 소요
교회 성장하면 지역사회도 발전

산업 일반

판교성전을 시작으로 부산 제주도 등지에 30여 개 교회 건립… 강원도 지역 교회는 평창동계올림픽 앞두고 환경정화와 서포터즈 활동에 큰 역할할 듯 통계청이 10년마다 실시하는 종교 인구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2005년 개신교 신도 수는 861만6438명이다(2015년 센서스는 올가을 발표한다). 1995년 876만336명과 비교해 1.6%가 감소했다. 또 문을 닫는 교회 수도 증가한다. 문화관광부가 조사한 ‘2002 한국의 종교현황’을 살펴보면 개신교 교회 수는 6만785개였다. 하지만 2008년 같은 조사에서는 그 수가 5만8612개로 4% 줄었다. 많은 사람이 교회의 위기를 거론하는 이유다.하지만 이와 반대로 국내외에서 신도와 교회 수가 급증하는 곳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교회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175개국 2500여 지역에 교회를 설립할 만큼 세계적으로 눈부시게 성장하는 하나님의 교회는 나눔과 봉사로 지역민과 소통한다. 등록신자만 해도 1996년 10만 명에서 현재는 250만 명을 넘어섰다.목회사학연구소가 2014년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도가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로 목회자를 꼽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교회 지도층은 믿음과 희생의 본을 보임으로써 신도들과의 결속을 다져 종교를 등지는 사람들을 다시 교회로 이끌고 있다. 영국 ‘여왕 자원봉사상’의 심사위원이었던 폴 덴비는 “문제점마저 기회로 만드는 이곳 리더들의 뛰어난 역량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7월 20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만난 김주철 목사는 “여러 단체에서 기독교가 하향 곡선을 긋는 시점이 아니냐고 얘기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교회 위기론을 일축했다.“기독교는 올바른 믿음과 정신으로 정립한다면 언제든지 성장할 수 있고, 세계인에게 가장 위안을 줄 수 있는 신앙입니다. 교인들이 지도자들에게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는 것이지,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건 아니거든요. 영국에 가보니 술집과 아파트로 바뀐 교회 건물이 많더군요. 참 안타까웠습니다. ‘우리가 신앙하는 하나님이 결코 그런 분이 아닌데 제대로 소개가 안돼서 그렇구나’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생각의 틀을 바르게 잡으면 신앙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지금 이 순간에도 국내외 곳곳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건립되고 또 그곳으로 신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만 약 40개 지역교회 헌당식을 거행한 하나님의 교회는 올해도 수도권을 시작으로 제주도까지 30여 개 교회의 헌당기념예배를 순차적으로 진행한다.지난 1월 연면적 25102㎡(약 8000평) 규모의 새예루살렘 판교성전을 시작으로 7월까지 부산·충청·경기·대전 등지에서 헌당식이 치러졌다. 제주도에는 대지 면적만 9467㎡인 서귀포시의 WMC 제주연수원과 제주시에 연면적 3824㎡ 규모의 대성전이 헌당식을 앞두고 있다.부산에는 시청 앞에 지상과 지하를 합쳐 연면적 6416㎡(12층) 규모의 성전이 건립돼 휴가철을 맞아 지역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천 간석역 부근의 연면적 4539㎡의 새 성전과 강원도 원주에 대지면적 4548㎡ 규모의 새 성전이 들어설 계획이어서 지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6월에는 500여 명이 참석한 경기도 여주의 헌당식에 이어 7월 12일에는 대전에서 진행된 헌당식에 1000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해 그 기쁨을 나눴다. 사실 국내에 새롭게 건립되는 하나님의 교회는 단순히 국내 신도만을 위한 장소는 아니다. 15년 넘게 계속되는 해외성도방문단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7월 초까지 68차 방문단이 한국을 다녀갔다. 매회 200명 내외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지역교회 방문과 더불어 우리의 전통과 명소 탐방, 예절과 문화 등을 배운다. 이렇듯 국내 교회는 해외 성도들의 입국부터 출국까지 숙박, 음식, 통역, 이동 등 생활 전반을 돕고 다채로운 한국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강원도의 교회는 세계인에게 한국을 알리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해외성도방문단의 시티 투어는 그동안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주로 이뤄졌지만 부산·강원도·제주도 등지의 교회 건립으로 투어 지역이 광범위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지방자치단체에는 희소식이다. 지역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판교 테크노밸리 등 국내 주요 명소 주변에 위치한 대규모 성전들이 해외성도방문단의 탐방 코스가 되면서 지자체도 호재를 맞았다. 그들이 보고 듣고 맛본 경험들을 고국으로 돌아가 전파한다면 이보다 더 효과적인 한국 알리기가 어디 있겠는가.이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갈수록 성장하면서 지역사회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국 곳곳에 들어서는 하나님의 교회 성전은 예배, 모임 등 교회 활동뿐 아니라 헌혈행사, 이웃초청잔치, 메시아오케스트라 연주회,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 등 이웃과 사회를 위한 열린 공간 역할도 한다. 그동안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은 국내 46개 지역교회에서 개최됐고 50만여 명이 관람했다.하나님의 교회 신자들은 국내외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도 외면하지 않고 내 일처럼 달려가 지역민과 함께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는 자원봉사단체로서 마지막까지 남아 무료급식 봉사로 피해 가족과 공무원들에게 큰 힘이 됐다.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 무료급식, 2007년 태안기름유출사고 방제작업에도 손을 걷어붙였다. 해외에서는 네팔 대지진, 미국 허리케인, 영국 홍수, 필리핀 태풍, 아이티 지진 등 복구와 구호,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곳마다 현장으로 달려갔다.서포터즈 활동도 하나님의 교회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부터 아태장애인경기대회, 2003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까지 크고 작은 국제대회에서 이들은 대회에 열기를 불어 넣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신자들은 선수단 응원은 물론 입국 환영, 출국 환송, 문화체험, 통역, 가이드 등 대회 전반에 걸쳐 성심성의껏 아무런 보수 없이 도왔다. 이처럼 국가적 위상을 높인 공로로 정부가 수여하는 훈장과 포장, 각종 상도 받았다. 하나님의 교회는 국가적 큰 행사인 평창동계올림픽 때도 필요하다면 기꺼이 돕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2016.07.25 14:51

4분 소요
청도 몰래길 만든 ‘문화 독립군’

산업 일반

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다면, 경북 청도 비슬산 기슭에는 ‘몰래길’이 있다!제주도 올레길이야 일본·영국 등에 수출된 문화상품으로 전 국민이 다 아는 유명한 길이다. 소설가 김훈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으로 제주도에 한때 자전거 여행 열풍이 불었지만, 지금은 ‘제주도=올레길’이 됐을 만큼 올레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제주도 올레길 얘기를 하다가 누군가 난데없이 ‘경북 청도에도 몰래길이 있는데 유명하데’라고 말하면 대부분 코웃음을 칠 것이다.청도는 예로부터 반시(홍시)와 소싸움의 고장이다. 청도의 먹거리 반시는 단맛이 일품이고, 짜릿한 소싸움은 청도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여기에 청도 몰래길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올레길 짝퉁 냄새가 폴폴 나지만, 인터넷에 몰래길을 검색하면 깜짝 놀라게 된다. 청도의 유명 문화상품으로 떡하니 존재하기 때문이다. ━ 개그맨 전유성과 손잡고 다양한 프로젝트 펼쳐 몰래길은 경북의 명산으로 꼽히는 비슬산 중턱에서 출발해 헐티재를 넘어가는 트래킹 코스다. 산불 예방을 위해 임시로 만들어진 길을 걷는다. 완주 시간은 걸어서 1시간30분~2시간 정도로 왕복 4시간 거리다. 몰래길을 걷다보면 천에 소원을 써서 걸어놓은 것이나, 마치 단풍잎처럼 나무에 매달린 짜투리 천을 볼 수 있다. 누군가 몰래길에 체험 프로그램을 결합시켰음을 알 수 있다. 비슬산 중턱에서 출발한 몰래길 종착지는 철가방처럼 생긴 공연장 부근이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운영하는 코미디 공연장 ‘철가방극장’이다.몰래길의 시작과 끝 지점에 몰래길을 알리는 비석이 서 있다. 군청에서 만들어 설치한 비석이다. 몰래길을 만든 주인공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 한 사람은 전유성, 또 한 사람의 이름은 최복호다. 전유성이라는 이름에는 고개를 끄떡이지만, 최복호(65)라는 이름에는 갸우뚱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만일 최복호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면 패션계 혹은 문화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몰래길의 시작은 하얀 건물과 몽골 게르처럼 생긴 텐트가 있는 공간이다. 이곳이 최복호패션문화연구소다. 서울과 청도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이 사람, 알고보니 너무 유명하다. 대구패션조합 이사장을 지냈을 만큼 대구의 패션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다. 120억원의 연매출을 올리는 문화패션기업 C&BOKO(Culture & BOKO)를 운영하는 기업가이기도 하다.대구가 아닌 청도에서도 최 대표가 유명해진 것은 전유성씨와 손잡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문화 독립군’으로 부른다. “청도에 기거하는 사람은 원주민과 이주민, 그리고 원주민도 아니고 이주민도 아닌 이를 독립군이라고 한다. 나는 청도에서 문화 독립군으로 살고 있다.”자신보다 6개월 전에 청도에 온 전유성씨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를 알아봤단다. “2008년 산골짜기를 찾아 비슬산에 들어왔는데, 그때 전유성씨를 처음 만났다. 프로는 프로가 알아본다고, 딱 봤을 때 그의 안목이 느껴졌다.”두 사람이 만든 대표적인 히트작이 몰래길이다. 원래 이 길은 사람들 눈을 피해 연인들이 자주 이용하던 데이트 코스였다. 몰래길이라는 이름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청도군은 몰래길에 이어 몰래길2를 내놓으면서 트래킹 코스를 확대하고 있다.최 대표를 설명하는 또 다른 단어는 ‘펀앤락’(Fun & 樂). 평생 그가 붙잡고 있는 화두다. 비슬산 자락에 최복호패션문화연구소를 짓고 청도에 들어온 이유다. “전유성씨는 이곳을 숲속 양장점이라고 부른다.” 최복호패션문화연구소에는 ‘펀앤락’이라는 이름의 갤러리와 샵, 야외공연장, 글램핑 텐트가 자리 잡고있다. “나만 흥겨움에 취할 게 아니라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며 사과밭 3300㎡(1000평) 부지에 복합문화공간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이곳은 지역 문화예술인의 사랑방이자, 지역주민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유성씨와 손잡고 한 달에 한 번 공연을 기획한다. 최근에는 가수 민해경씨의 콘서트가 열렸고 노사연, 변진섭, 전영록 등 많은 가수가 이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대구지역 패션인의 송년회도 이곳에서 열렸다. 비슬산 자락에 살고 있는 200여 명의 예술인들도 가끔 이곳을 찾는다. “도예가와 식물원 개장을 준비하는 사람과 자주 만난다.”2014년 7월에는 ‘힐링 글램핑’ 사업도 시작했다. “리조트 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사람들에게 자연속에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글램핑을 선택 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인기가 좋다”고 최 대표는 자랑했다. 그가 마련한 글램핑 텐트 내부는 매우 고급스럽다. 최 대표가 직접 디자인한 극세사 이불이 있고, 고급 캠핑 브랜드 제품이 풀세트로 갖춰졌다. 며칠을 머물러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다. 글램핑을 이용할 경우 운이 좋으면 최 대표와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패션디자이너는 트렌드에 민감하다. 그런데 왜 최 대표는 도시가 아닌 산속으로 들어왔을까. “사람들은 청담동 또는 뉴욕 거리에서 패션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자연이 있는 곳에서 영감을 얻고 있다. 패션의 흐름은 매체를 통해 얼마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최 대표의 작품은 해외에서 자연의 색이 옷에 스며들어 있다는 호평을 받는다.2014년 12월 10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제7회 코리아패션대상’ 시상식에서 최복호 대표는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지속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한 공로를 인정 받은 결과다. “일을 저지르는 편”이라며 남들보다 먼저 해외 진출을 시도했던 이유를 설명했다.최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목회자를 꿈꾸며 대구 계명대 철학과를 다니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신이 무섭다’는 이유로 패션계로 뛰어들었다. “외가가 모두 종교 집안이었다. 집에서는 내가 목회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공부하다보니 성직자의 길은 나와 맞지 않았다.” 그에게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알려준 이는 교회 목사였다. “넌 손재주가 좋아서 앙드레 김 같은 패션디자이너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해준 것. 당시 패션디자이너는 ‘양장쟁이’로 불리며 대접받지 못한 직업이었다. ━ 해외 7개국 24개 매장에서 작품 판매 최 대표는 그 길로 학원을 다니면서 디자이너 공부를 했다. 1973년 ‘의처증 환자의 작품D’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데뷔했다. 제목부터가 독특했던 작품을 눈여겨 본 이가 바로 고 앙드레 김을 배출한 국제패션학원 최경자 원장이다. 최 원장은 그를 연구원으로 발탁했다.하지만 1974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대구로 낙향했다. 당시 대구가 섬유산업의 중심지였지만, 패션디자이너로서 성장하려면 서울에서 활동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었다. “마음앓이를 심하게 해서”라며 낙향 이유를 설명하며 최 대표는 웃었다. 실연의 아픔 때문이었다.“지역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면 많은 제약이 있다. 하지만 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남들보다 일찍 해외 진출을 시도했고, 시류의 변화에 따라 백화점과 홈쇼핑 등에 진출해 성공했다.”최 대표가 해외 시장을 두드린 것은 1980년대부터다. 실패도 많이 했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자신의 옷을 들고 해외 매장을 뚫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물은 놀라울 정도다.최 대표의 옷은 해외 7개국 24개 매장에서 팔리고 있다. 특히 쿠웨이트의 경우 8개 패션몰에서 최 대표의 옷을 발견할 수 있다. 2014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서울컬렉션에 참석한 최 대표는 쿠웨이트 바이어와 현장에서 20만 달러(약 2억원) 계약을 맺기도 했다.해외 진출의 경험을 살려 주력한 것이 디자이너와의 교류였다. “패션의 중심은 이제 유럽과 미국을 거쳐 아시아가 될 것이다. 아시아 시장이 열릴 것을 대비해 해외 디자이너와 다양한 교류를 했다. 아시아에서 열리는 패션쇼에 가장 많이 초청을 받는 디자이너가 나일 것이다.” 그는 상하이·홍콩·파리·뉴욕 등 세계적인 패션쇼의 초청을 받고 있다. 2012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패션위크에 참여했을 때는 배우 우피 골드버그가 ‘The View’라는 자신의 토크쇼에서 최 대표의 작품을 입고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한 패션전문 매체는 “최복호 디자이너의 기발하고 유쾌한 프린트와 의상은 한국에서 레이가와쿠보(일본을 대표하는 패션하우스 꼼데가르송 디자이너)를 발견한 것 같다”는 극찬까지 했다.최 대표의 이름이 일반인에게도 각인된 계기는 2010년부터 롯데홈쇼핑에서 3년 동안 매출 1위를 차지하면서부터다. 당시 최 대표의 브랜드는 연매출 170억원을 올릴 정도였다. “1990년대 말 홈쇼핑에 도전했을 때는 실패했다. 그 경험을 살려 15년 동안 준비해 대박을 친 것이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과감하게 추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최 대표는 디자이너로서 이룰 것은 이뤘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젠 시간이 없다”면서 더욱 재미있는 삶을 만들려고 한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며 그는 웃는다.최 대표에게 2015년 계획을 물었다. “목표는 없다. 목표가 없는 곳에서 목표를 만들어 가고 싶다.”- 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김현동 기자

2014.12.3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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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ture - 60년대 풍미한 전설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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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 재개관작 … 판소리 ‘배비장전’ 모티브 ‘당신 생각에 부푸는 이 가슴, 살짜기 살짜기 살짜기 옵서예~’. 패티김이 불러 히트한 ‘살짜기 옵서예’는 1966년 창작뮤지컬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동명의 뮤지컬에 등장하는 노래다. 로봇 태권V의 작곡가 최창권이 작곡하고, 당대 국내 유명 아티스트들이 총출동해 제작에 참여했다. 7회 공연이 전석 매진되고 암표가 등장할 정도로 당시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이 전설의 작품이 CJ토월극장재개관작으로 무대에 오른다.‘살짜기 옵서예’는 고전소설이자 판소리인 ‘배비장전’을 토대로 만들었다. 제주 목사를 따라 제주로 간 배비장이 제주 기생 애랑을 만나 지조를 지키겠다는 아내와 약조를 어기고 망신 당한다는 이야기다. 고전 ‘배비장전’의 재미는 체면을 중시하면서도 여색 앞에서 무너지는 양반의 허위를 풍자하는 데 있다. 하지만 뮤지컬로 제작되면서 양반에 대한 풍자보다 배비장과 애랑의 로맨스가 강조된다.로맨스를 강조하다 보니 몇 가지 설정이 바뀐다. 원작소설에서는 배비장이 처를 서울에 두고 왔지만, 뮤지컬에서는 상처(喪妻)한 것으로 나온다. 배비장은 목사나 다른 비장들과 달리 기생놀음에 빠지지 않고 먼저 떠난 아내와 약속을 지키려 애쓴다. 애랑 역시 미색으로 양반을 희롱하고 서민의 욕망을 대변하는 역할보다는 여러 남자의 가벼운 사랑에 질리고 진실한 사랑을 희구하는 인물로 변한다.탄탄한 스토리에 최첨단 기술 가미여담이지만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구스타보 자작은 남자들이 기생을 물건 고르듯 정하는 기생점고 장면을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외국인 연출가가 맡으면서 원작의 풍자성보다 로맨스에 집중된 면이 있다.그렇다고 풍자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풍자의 강도는 약해졌지만 양반을 골탕 먹이고 위선을 풍자하는 색채는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방자의 캐릭터는 이전보다 풍자와 해학성을 더했다. 수염까지 기른 40대 배우 김성기가 천연덕스럽게 열아홉 방자라고 말하는 장면부터 웃음이 터진다. 방자는 계급적으로 약자이지만 양반들에게 교묘하게 반말이나 욕을 하고, 양반의 재물을 빼앗는다. 서민성과 해학성이 짙은 방자는 극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서민을 대변한다.1960년대 제작된 작품이 지금의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작품의 내력을 아는 이라면 당연히 드는 생각이다. 양반을 풍자하는 것에서 보편적인 로맨스로 중심을 이동한 것도 현대성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원작의 음악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으로 편곡한 노래, 전통과 현대적인 느낌이 공존하는 무대, 전통적인 패턴은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잃지 않은 의상으로 동시대 관객을 어느 정도 잡았다.선글라스를 쓴 제주 목사, 현대적인 헤어스타일의 배우는 이 작품이 고전을 바탕으로 하고, 1960년대에 만들었기 때문에 고루할 것이라는 편견을 완화한다. 영상기법도 현대적 감각을 살리는 데 역할을 한다. 하루방에 눈을 3D 랩핑으로 구현해 눈을 깜박이고 혀를 내미는 하루방을 만들고, 죽은 아내를 홀로그램으로 구현했다.‘살짜기 옵서예’는 노래가 등장하는 시점이나, 역할, 다양한 퍼포먼스를 결합한 스펙터클 면에서 1960년대 만든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뮤지컬의 기본을 잘 갖췄다. 이번 공연은 현대적인 기술의 도움으로 되살린 고급스런 앤틱 가구를 보는 느낌이다. 3월 31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2013.03.1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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