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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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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부산 공연 예매 할인

유통

매표소 앱이 23일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부산 공연(2023년 2월 3~5일) 관람권 예매를 시작한다. 이 뮤지컬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7일간의 여정을 담은 작품으로 50주년을 기념해 7년여 만에 열리는 공연이다. KCLD는 자사 매표소 앱 회원들에게 부산 공연에 한해 28일까지 예매하면 15%(BC카드 20%)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예매 수수료 면제 이벤트도 진행하기로 했다. 박정식 기자 tango@edaily.co.kr

2022.12.23 14:55

1분 소요
“내 생각 공유하는 게 예술가로서의 사명”

산업 일반

페미니스트 찬가 ‘Armor’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사라 버렐리스, 자신의 노래가 정치적 색채 띠게 된 이유 말하다 그래미상 후보에 여러 차례 올랐던 가수 사라 버렐리스는 당초 새 노래 ‘Amor’를 내년에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세계가 이 노래를 들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스트 찬가인 이 노래는 반대에 맞서 더 강해지고 동료 여성들의 힘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녀는 여러 여성으로부터 성추행 고발을 당한 브렛 캐버너가 연방대법관으로 인준되자 가능한 한 빨리 이 노래를 발표하고 싶어졌다.‘Armor’는 버렐리스가 준비 중인 새 앨범의 리드 싱글이다. 그녀는 2007년 발표한 싱글 ‘Love Song’을 히트시킨 후 브로드웨이 뮤지컬 ‘웨이트리스’의 음악을 작곡하고 NBC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라이브 인 콘서트’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연기했다. 그녀는 처음 음악을 시작하던 시기에 실연당해 주로 사랑 노래를 썼다. 하지만 지금은 스타일이 사뭇 달라졌다. 음악으로 누군가를 소외시키거나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색채를 띠고 싶진 않지만 그런 관점을 자유롭게 탐험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사실 지금은 그와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만든다는 걸 생각할 수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뉴스위크가 버렐리스를 만나 ‘Armor’와 ‘웨이트리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라이브 인 콘서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Armor’는 어떻게 쓰게 됐나?2016년 미국 대선이 끝나고 여성 행진에 참가한 후 그 경험을 돌이키며 영감을 얻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고 아름다우며 평화롭고 강렬한 경험 중 하나였다. 그게 씨앗이 됐고 그 다음 1년 반 동안 지금의 노래로 완성됐다. 이 노래는 매우 정치적이다. 요즘 내가 관심을 쏟는 분야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에 관해 예술가로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전곡 앨범이 곧 나오나?내년에 나온다. 당초 ‘Amor’도 그때 같이 발표하려 했다. 하지만 브렛 캐버너의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그 노래를 서둘러 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연말과 내년 상반기에 그 노래로 미니 투어를 하고 앨범은 그 후에 발표한다.그 앨범 수록곡 중 정치적인 노래가 더 있나?그렇다. 내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공유하는 게 예술가로서 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내가 관심을 집중하는 문제는 정치다. 거기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현재의 세계를 제대로 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이 앨범을 들었을 때 매우 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듯하다.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두렵지 않다. 난 누군가를 소외시키려는 게 아니다. 다만 예술가로서 내 생각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싶다.‘Love Song’ 이후 예술가로서 어떻게 성장해 왔다고 생각하나? 무엇보다 인간적으로 성숙했다. ‘Love Song’을 쓴 게 23세 때였다. 그 후 개인적으로나 뮤지션으로서나 많은 일이 있었다. 뮤지션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개인적으로 하는 경험이 음악에 반영되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앨범을 만들면서 진짜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는 노래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 뺐다. 우리는 매우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내 음악에서 그 문제를 논의하고 헤쳐나갈 방법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난 모든 문제에서 그랬다. 20대 때는 실연의 문제를 다뤘기 때문에 그 당시 노래들은 더 단순했다. 지금은 더 깊이 있는 문제를 다룰 뿐이다.사실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당신이 뉴요커라서다.내가 뉴요커라고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이곳에 산 지 6년밖에 안 됐다.뉴욕을 사랑한다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뉴욕에서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은?아주 많다. 제일 좋아하는 곳 중 하나는 놀리타에 있는 카페 하바나다. 오래된 곳이지만 최고로 맛있는 우에보스 란체로스(토르티야에 달걀 프라이와 토마토 칠리 소스를 얹은 멕시코 요리)를 먹을 수 있다. 또 10번가에 있는 메메는 지중해 요리가 기막히다. 뮤지컬 ‘웨이트리스’를 공연하는 동안 동료들과 극장 근처에 있는 맛집들을 찾아 다녔다. 맛있는 레스토랑이 정말 많다.뉴욕의 어떤 점이 좋은가?활기찬 분위기가 좋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대결적이고 숨이 막힐 듯 답답한 것도 좋다. 날씨가 고약할 때는 도시도 그렇게 느껴지지만 그게 인간적인 것 같다. 뉴욕은 마치 살아 숨쉬는 기관 같아서 여기서 살아가려면 이 도시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어야 한다.난 뮤지컬 ‘웨이트리스’를 좋아해 두 번이나 봤다. 제나 역을 연기할 때 어땠나? 제시 뮬러가 그 역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본인이 할 계획이었나 아니면 나중에 결정됐나?나중에 결정됐다. 처음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겁났다. 그럴 능력도 없었고 준비도 안 돼 있었다. 그런데 난 운 좋게도 제시 뮬러가 이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걸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녀의 뛰어난 해석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정말 아름다웠다. 뮬러가 떠나고 제나 역을 제안 받았을 때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공연 팀은 아주 열정적이고 협조적이었다. 그들과 함께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난 이 작업을 통해 공연가로서, 그리고 뮤지션으로서 많이 성장한 것 같다. 매일 밤 동료들과 한 무대에 서면서 내가 팀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싱어송라이터로서 무대에 설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모두가 서로를 의지했다.한가족이 된 듯한 느낌이었나?그렇다. 우린 서로 매우 가까웠고 거의 함께 살다시피 했다. ‘웨이트리스’ 뮤지컬 팀은 마치 작은 클럽하우스 같았다. 극장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거의 3년째 공연을 해왔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라이브 인 콘서트’에서는 존 레전드와 공연했는데 어땠나?멋진 남자다. 내가 만나본 중 가장 멋진 사람이다. 열정적이고 두려움이 없으며 아주 다정하고 고요하며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마음이 너그럽고 사랑이 많다. 예수는 레전드에게 딱 어울리는 역이다. 그는 완벽주의자다. 위대한 배우가 되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하며 실제로 그렇다. 그러니까 같이 일하기엔 그보다 더 좋은 사람이 없다. 난 그가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걸 보고 감동했다. 그는 정말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한다.그의 부인 크리시 타이겐을 만나 봤나?그렇다. 그녀는 딸 루나를 데리고 왔는데 둘째(마일스)가 아직 뱃속에 있을 때였다. 정말 사랑스러운 모녀다. 난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무척 좋아한다.- 마리아 벌태지오 뉴스위크 기자

2018.12.17 15:12

5분 소요
CEO 에세이 - 남용하다 빛바랜 말 ‘민주화’

CEO

언어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속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출생·확장·변용·소멸을 거친다. 같은 발음이라도 시대에 따라 뜻이 달라지고 사용자 계층을 이동한다. ‘동무’라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어린 시절에 자주 쓰였지만, 북한에서 더 많이 사용해서인지 지금은 ‘어깨동무’와 같은 복합명사로만 사용되고, 단독으로는 ‘친구’를 주로 쓴다.신성한 단어가 욕설로 변천하거나 반대의 경우도 나타난다. 영어사전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Jesus Christ)의 첫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둘째 의미는 ‘제기랄’이다. 몽골에서 하늘을 뜻하는 탱그리도 마찬가지이다. 고대 알타이어인 ‘탕구르(Tangur)’가 어원으로 한자로 음차하면 ‘단군(檀君)’, 즉 ‘거룩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수장’의 뜻이다.부여 계통인 고구려의 제천 행사에서 경배하던 하늘신 탱그리는 오늘날 중국 서부 소수민족의 신앙대상으로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무당을 뜻하는 ‘당골네’로 의미가 퇴색하고, 심지어 중·고교생이 사용하는 ‘X탱구리’라는 욕설로 전락했다.유사한 패턴은 이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경제학자인 롤랜드 프라이어는 1961년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아이 1600만명의 이름을 분석해서 중요한 패턴을 발견했다. 특정 이름이 고소득에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면 사회·경제적 지위라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10년 정도 지나면 중간층으로, 또 10년이 지나면 저소득에서 유행하고 20년 단위로 이 과정은 반복된다.예를 들어 1980년대 고소득층에서 가장 인기를 얻은 여자아이 이름인 앰버(Amber)와 헤더(Heather)는 2000년대 저소득층 이름이다. 1990년대 가장 인기인 부유층 이름인 로렌(Lauren)과 메디슨(Medison)은 현재 중간 소득층 이름이다.최근에는 ‘민주화’가 이 범주에 들어가는 모양이다. 인기 걸그룹 가수가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말하면서 파장을 일으켰다. 여기서 ‘민주화’란 ‘개성 없이 획일화된다’는 의미로 변용됐다. 실제로 젊은 세대간에 주가 하락을 ‘주식 민주화’로 표현하거나, 시험 망친 것을 ‘교수한테 민주화 당했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흔하다.숭고한 ‘민주화’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점에서 비난도 거세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남용이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의미를 변용시킨다는 점에서 ‘민주화’란 단어도 예외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그동안 일부 정치 집단과 시민단체에서 무책임하고 무분별하게 온갖 명분과 구호 앞에 ‘민주화’를 갖다 붙여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댄 자업자득 아닐까.그러나 마음 한 켠으로는 역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저항시인 김지하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쓰던 간절함과 경건함은 어디로 갔나. 기껏 일부 정치 집단과 이익단체의 명분을 포장하는 형용사로 전락하더니, 이제는 연예인과 일반인들 가운데 무질서와 혼란을 뜻하는 명사로 추락한 운명이 씁쓸하다. 역시 소중할수록 아껴야 유지됨을 ‘민주화’라는 말의 처지에서도 실감한다.

2013.06.18 14:40

2분 소요
나에게 뮤지컬과 오페라란

산업 일반

필자가 느낀 뮤지컬과 오페라의 차이점을 몇 가지 이야기 하고자 한다. 필자는 뮤지컬을 보러 갈 때 폴로셔츠에 청바지나 편한 면바지를 입고 가곤 한다. 편하게 가서 편하게 듣고, 즐기고 싶은 게 뮤지컬이라는 생각에서다. 신발도 정장 구두보단 운동화나 캐주얼 한 구두를 고른다. 반면 오페라를 보러 갈 땐 먼저 대충이라도 내용을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긴장하게 된다. 옷도 양복을 입을 때가 많다. 물론 구두도 정장구두를 신는다.뮤지컬에는 유머가 많이 녹아 있어 보면서 많이 웃을 수 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뿐만 아니라 한국 창작 뮤지컬에도 코믹적인 요소가 많이 있는 것 같다. 잘 이해하지 못해서 타이밍을 놓쳐도 남들이 웃을 때 따라서 웃으면 되니 부담도 없다. 이와 달리 오페라에는 코믹한 요소가 드물다.물론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처럼 희극적 오페라도 있지만 대부분은 보는 이의 마음을 쥐어짜고 슬프게 만드는 게 특징이다. 특히 대부분의 오페라에서는 여자 주인공을 비참하게 죽게 만들어 심금을 울려놓기 때문에 공연이 끝난 후 기분이 우울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뮤지컬은 막과 막 사이에 박수를 쳐야 하는 타이밍을 잡기가 쉽다. 내용 파악이 쉬운 뮤지컬의 경우, 극의 중간에 자신감을 가지고 박수를 친다. 필자가 먼저 환호를 하며 박수를 치면 다른 관객이 따라서 함께 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오페라 공연 때는 딴판이다. 언제 박수를 쳐야할 지 파악하기 힘들 때가 많아 다른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린 이후에야 따라 치는 정도다. 용기를 내어 먼저 박수를 한두 번 친 경우도 있었지만 적막이 흐르며 거북이처럼 고개를 양복 속으로 집어넣은 적도 있다.필자에게 뮤지컬과 오페라의 또 다른 차이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점이다. 필자는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를 즐겨 부른다. 마스사이공, 레미제라블, 팬텀오브 오페라,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 그리스 등 많은 뮤지컬에 나오는 주옥 같은 노래는 가끔 노래방 기계에도 있어 즐겨 부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페라의 아리아는 따라서 흥얼흥얼할 수는 있지만 가사든 멜로디든 따라 부르기는 다소 벅차다. 노래방에서도 찾기 어렵고.마지막으로 뮤지컬을 보고 나선 코카콜라와 햄버거, 맥주가 생각난다. 아마 브로드웨이에서 수입된 뮤지컬이 많아서 유년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필자의 잠재의식을 자극하는 듯하다. 그러나 오페라를 보고나선 와인과 스테이크 또는 파스타가 구미가 당긴다. 아마도 이탈리아어를 오래들어서, 그리고 라트라비타에서 보여주는 인상 깊은 와인에 관한 장면이 무의식에 녹아 들어서인 듯하다. 많은 오페라에서 유래된 와인 이름도 뮤지컬 관람 후 와인을 찾게 만드는 요인이다.이렇게 필자에게 뮤지컬과 오페라가 딴판으로 다가오지만 둘 다 삶의 활력소가 된다. 특히 경제 용어와 숫자에 치여 사는 직업의 특성상 이를 잠시나마 잊을 피난처가 필요한데 뮤지컬과 오페라가 안성맞춤이다. 요즘처럼 주식시장이 맥을 못 출 때는 더욱 그렇다. 이른바 ‘힐링캠프’가 따로 없다. 오늘 저녁, 직원이나 가족과 함께 뮤지컬이나 오페라 한편 보러 가는 건 어떨까. 이런저런 불행에도 여전히 내일을 다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작은 위로가 되지않을까.

2012.11.07 16:00

2분 소요
최악의 경기침체에도 ‘유령’은 건재

산업 일반

최악의 경기침체 속에서도 유령은 죽지 않았다. ‘오페라의 유령’은 지난 9월 17일 미국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인 9000회를 기록했고 우리나라에서는 23일부터 장기공연에 들어갔다.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이 공연이 23년간 벌어들인 돈은 6조원에 달한다. 1986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영국에서 처음 공연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 공연이 전 세계적 인기를 끌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1970년 스물두 살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로 스타가 되었고 연이어 ‘에비타’ ‘캐츠’의 성공으로 뮤지컬의 황제란 칭호를 얻은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이었지만 역시 ‘오페라의 유령’은 다소 위험한 도전으로 보였다. 이 작품은 이미 소설, 그리고 몇 번의 영화화를 거친 콘텐트였기 때문이다.한국에서의 인기 아시아로 퍼져그러나 그의 탁월한 음악성으로 성공할 수 있었고 2년 뒤인 1988년 뉴욕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하게 된다. 이때부터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오페라의 유령’을 세계화하기 위한 포석을 두기 시작한다. 그는 이때 이미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당시 웨버는 ‘배트맨 포에버’ 감독인 조엘 슈마허의 ‘THE LAST BOY’를 관람한 후 그를 점찍어 뒀다.그리고 2004년 이 작품은 영화화됐다. 영화화되기까지 15년이 흐르는 동안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바쁘게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27개국 144개 도시에서 공연된 ‘오페라의 유령’은 약 1억 명이 관람했으며, 50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거둬들였다. 브로드웨이와는 좀 떨어진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시에선 2002년 ‘오페라의 유령’이 약 한 달 동안 공연된 적이 있다.공연 후 디모인시는 약 400만 달러의 티켓 판매수입이 있었으며 적어도 티켓 판매액의 2배에 달하는 경제유발효과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관광객이 공연을 보기 위해 시를 찾아오고 주변 식당가에 활기가 돌았다는 것이다. 쇼 비즈니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이런 경제유발효과를 노리고 ‘오페라의 유령’을 유치하기 위해 4000만 달러를 들여 공연장을 지었다.종연을 예상할 수 없이 계속되는 뉴욕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 공연은 말할 것도 없다. ‘오페라의 유령’은 2006년 ‘캐츠’의 7486회 공연기록을 경신했고 2009년 9월 17일 브로드웨이 9000회 공연을 돌파했다.세계 27개국에서 50억 달러 매출흥행 행렬에는 한국도 포함된다. 최근 다시 장기공연에 들어간 이 작품은 2001년 처음 한국 무대에 올랐다. 2001년 12월부터 2002년 6월까지 7개월간 총 244회 공연됐으며 객석 점유율 94%, 24만 관객 기록을 달성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 수치는 단일 공연으로는 아직 깨지지 않았다.8개월간 공연되었던 ‘아이다’와 1년간 공연되었던 ‘라이언킹’ 역시 ‘오페라의 유령’ 기록엔 도달하지 못했다. 한곳에서 흥행하면 또 다른 곳으로 흥행이 전염되곤 했는데 한국 라이선스 공연의 대성공 이후 2005년 한국 공연계로는 최초로 RUC(RUG의 아시아·태평양 지사)와 설앤컴퍼니가 공동 제작한 월드투어가 좋은 예다.이 월드투어는 중국, 남아공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했으며 한국에서 역시 100회 공연 동안 객석 점유율 99%로, 실질적인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며 총 20만 명이 관람했다. 이쯤 되면 ‘오페라의 유령’을 가장 세계화된 문화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최근 ‘오페라의 유령’ 티켓 판매율이 북미나 유럽 지역뿐 아니라 아시아 비율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회사이자 ‘오페라의 유령’을 제작하는 영국의 RUG(The Really Useful Group)의 아시아·태평양지사 RUC에 따르면 “크게 북미, 유럽, 아시아 지역으로 세계를 나눌 때 점차 아시아 매출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이미 같은 회사의 ‘캐츠’는 일본에서 7000회 공연을 했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의 지속적 성장은 경기침체 속에서 이뤄낸 것이어서 의미가 깊다. ‘주라기공원’ 같은 할리우드 영화가 20주 정도 개봉된다면 ‘오페라의 유령’은 무려 23년 동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영국에서 미국 그리고 아시아로 이어지는 흥행 돌풍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2009.09.28 14:16

3분 소요
막달라 마리아 예수의 아내?

산업 일반

‘다빈치 코드’로 촉발된 논란을 계기로 수수께끼를 풀어본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와 함께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받으며 숨이 끊어져 갈 때 막달라 마리아는 그 자리에 있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곁에서 그의 임종을 지켰다. ‘예수의 수난’은 격앙되고 끔찍했으며 십자가 처형은 느리게 진행됐지만 그래도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 마침내 그 순간이 다가왔다. “다 이루었다”하고 예수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시신은 세마포로 감싸져 동산으로 옮겨진 뒤 묘지에 묻혔다. 안식일 다음날 동트기 전 막달라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몸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 일어나 묘지로 향했다. 묘지는 비어 있었다. 주님이 사라졌다. 그녀는 혼란스럽고 무서웠다. 다른 제湄涌“?달려가 그 사실을 알렸다. 그들을 데려와 두 눈으로 직접 보도록 했다. 제자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들락날락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몸이 얼어붙은 듯 동산을 떠나지 않았다.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다”라고 말하였다. 그때 낯익은 목소리로 예수가 말했다. “마리아야!” 그녀는 “랍오니(선생님)”라고 외치며 기쁨에 벌떡 일어나 끌어안으려 했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붙들지 마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느님 곧 너희 하느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그녀가 예수의 제자들에게 전한 말은 짧고 간단했지만 세상을 바꿨다. “내가 주를 보았다.” “내가 주를 보았다.” 이것이 요한복음에 전해지는 부활의 기록이다. 그와 함께 기독교가 시작되며 그와 함께 신약성서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기록이 끝난다. 베드로와 바오로가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 스테판은 순교자로 생을 마감하며 성도 요한은 계시록을 구상한다. 그러나 생전 예수의 중요한 측근이던 막달라 마리아는 그 후로는 흔적도 없다.

2006.05.30 00:56

2분 소요
4년 만에 새 단장… 오페라의 유령이 돌아왔다!

산업 일반

기괴한 분위기의 지하 미궁으로 향하는 팬텀과 크리스틴. 뮤지컬의 신화 ‘오페라의 유령’이 다시 한국을 찾는다. 6월 10일부터 석 달 이상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이번 공연단은 영어를 쓰는 외국인들로 구성된 투어팀으로, 제작에 한국 자본이 투입된 공동제작 형태를 띠고 있다. 설앤컴퍼니와 예술의전당·CJ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한다. ‘오페라의 유령’은 2001년 한국 배우가 출연, 우리말로 공연하는 라이선스 제작으로 선보였다. 당시 19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하며 뮤지컬 산업화를 선도했다. 7개월 장기 공연도 국내에서 전무한 시도였지만 제작비·매출·순이익 등 공연사의 기록 여럿을 새롭게 작성했다. 영국 뮤지컬인 ‘오페라의 유령’은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이다. 웨버는 이 작품 외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비타’ ‘캐츠’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 등 20세기 말 불멸의 대작을 만들어 ‘뮤지컬 황제’로 불리는 인물이다. 웨버는 작품 구상 2년 뒤인 1986년 런던 ‘허 매지스티스 극장(Her Majesty’s Theatre)’에서 첫선을 보였다. 지금도 이곳에서 19년째 롱런하고 있다. 2막으로 이뤄진 ‘오페라의 유령’은 현실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괴담을 소재로 했다. 무대는 1911년 프랑스 파리 오페라 하우스. 이 고색창연한 무대를 배경으로 여가수 크리스틴과 그녀를 사랑하는 유령(팬텀), 그의 연적 라울 세 사람이 엮는 러브 스릴러다. 크리스틴과 라울의 사랑이 익어갈수록 팬텀의 질투와 복수심은 오페라 하우스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간다. 30만 개의 유리구슬로 장식된 0.25t의 샹들리에 낙하 장면(1막 끝)도 유령이 조화를 부린 것. 비록 ‘오페라의 유령’을 보지 못한 사람도 상식처럼 알고 있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오페라의 유령’은 오페레타 형식의 뮤지컬이다. 오페라와 본격 뮤지컬의 중간 단계에 있는 형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대사보다 노래(아리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옥 같은 멜로디를 뒷받침하는 극적인 러브 스토리, 시대를 고증한 화려한 의상, 스펙터클한 무대 메커니즘 등 뮤지컬의 핵심 요소들이 가장 잘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꼽힌다.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뮤지컬 넘버(노래)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은 지하 유령의 미궁에서 팬텀과 크리스틴이 부르는 이중창 ‘The Phantom of the Opera’(1막4장)와 호수 저편에서 팬텀이 홀로 부르는 ‘The Music of the Night’(1막5장), 그리고 2막 극중극 형식으로 삽입된 오페라 ‘돈 주앙’에서 팬텀과 크리스틴이 부르는 ‘The Point of No Return’이 꼽힌다. 특히 팬텀이 남의 눈을 피해 신분을 숨긴 채 크리스틴과 재회해서 부르는 2막의 노래는 제목처럼 ‘돌아설 수 없는’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을 절절히 전하는 백미다. 2001년 한국 공연에서도 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이혜경과 김소현·윤영석·유정한 등이 당시 살인적인 오디션을 통과한 주인공들이다. 이번엔 브로드웨이 활동 경력이 있는 브래드 리틀과 마니 랍이 각각 남녀 주연으로 등장한다. ‘오페라의 유령’은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소설이 원작이다. 세계 공연시장에서 30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

2005.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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