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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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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필리핀 대학 졸업식장서 총격 사건 발생…3명 사망

차이나 포커스

(마닐라=신화통신) 필리핀 마닐라의 한 대학교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24일(현지시간) 필리핀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아테네오 데 마닐라대학교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다.경찰 측은 총격 사건으로 로즈 푸리게이 전 필리핀 라미탄시 시장이 숨졌고 그의 딸도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또 용의자가 차량을 타고 도주하려다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고 전했다.현지 언론은 이날 오후 아테네오 데 마닐라대학교 로스쿨의 졸업식이 열릴 예정이었으며 푸리게이 전 시장이 딸의 로스쿨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학교를 찾았다고 보도했다. 경찰 측은 현재 총격 사건의 경위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07.2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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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명 숨진 텍사스 총격 사건…美 총기규제 언제쯤 가능할까 [채인택의 글로벌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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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주에 있는 인구 1만5000명의 작은 도시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서 5월 24일 학생과 교사를 노린 무차별 총격사고가 발생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 사고로 적어도 어린이 19명과 성인 2명이 숨졌고, 또 다른 3명은 중태에 빠졌다. 18세 고교생인 범인은 진압요원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학교에서 총격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급히 출동할 수 있는 무장경찰이나 군이 인근에 없어 가까운 곳에 있던 국경경비대가 동원돼 범인을 무력화했다. 이날 미국 백악관에는 사건이 보고된 즉시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기가 게양됐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이날 귀국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도착 직후 사고를 보고받고 “또 다른 학살”이라고 표현하며 의회에 총기규제법 처리를 촉구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무차별 총격 희생자들의 시신은 윌리드 리온 하사 기념시민회관으로 옮겨졌다. 다수의 시신을 보관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 4명 이상 숨진 학교 총격사고 건국이래 29건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 사건이 올해 들어 미국에서 발생한 19번째 학교 총격이라는 사실이다. 비영리연구단체인 ‘총기폭력아카이브(GVA)’에 따르면 5월에만 세 번째다. 5월 17일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8살 어린이가 모친의 침대 아래에서 총기를 발견하고 자신의 가방에 넣어 학교까지 가져갔다. 그런데 학교에서 사고로 격발돼 7살짜리 급우가 다쳤다. 이 사건으로 28세의 아이 엄마는 아이들을 위험에 놓이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5월 9일엔 조지아 주 서워니에서 한 여성이 지나가는 스쿨버스에 12발의 총격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아무도 총에 맞진 않았지만, 운전기사가 총탄으로 깨진 유리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 유밸디 사건 한 달쯤 전인 4월 22일에는 워싱턴DC에서 한 주민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인근의 에드먼드 버크 학교에 239발의 총탄을 퍼붓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총격으로 자동차에 타고 있던 12살짜리 어린이와 2명의 성인, 그리고 학교 경비원이 부상을 입었다. 총격을 가한 범인은 경찰이 문을 부수고 방에 들어오자 자해를 했는데 이 부상으로 나중에 숨졌다. 4월 5일에는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의 고등학생이 학교에 들어온 신원 미상의 범인으로부터 여러 발의 총탄을 맞고 상처를 입었다. 3월 31일에는 12살의 학생이 다른 학생이 쏜 총에 맞아 학교에서 숨졌다. 미국에서 학교 총격이 얼마나 흔한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는 사실 미국에서 오래된 현상이다. GVA에 따르면 미국에서 4명 이상이 숨진 학교 총격사고는 건국 직전부터 기록에 남은 것만 29건에 이른다. 사망자(총격범 포함) 30명 이상이 1건, 20명 이상이 2건, 10명 이상이 7건이며 4~9명의 희생자를 낸 사고는 19건에 이른다. 역대 최악은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 주 블랙스버그의 버지니아 공대에서 재학생이던 23세의 조승희가 두 자루의 권총으로 벌인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이다. 당시 본인을 포함해 33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했다. 이 사건은 당시엔 학교를 넘어 미국에서 발생한 모든 총격 사건 중 가장 피해자가 많은 사건으로 기록됐지만 그새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총격 사건이 더 발생해 현재는 세 번째로 희생자가 많은 사건이다. 그 다음이 2007년 12월 14일 코네티컷 주 뉴타운의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격이다. 당시 20세의 애던 랜저가 집에서 모친을 살해한 뒤 모친 소유의 총기 네 자루를 들고 자신이 다녔던 초등학교를 찾아가 6~7세의 1학년 학생들과 교사와 교장, 그리고 학교 정신과 상담원 등을 살해했다. 범인은 경찰이 도착하자 총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범인을 포함해 28명이 숨졌다. 2명은 부상을 입었다. 셋째로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이 이번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 총격이다. 이번 사건도 어린이를 무참하게 살해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범인인 18세의 살바도르 라모스는 교실 한 곳에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어린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7~10세의 어린 학생 19명과 2명의 교사를 포함해 21명이 살해됐고, 범인은 진압을 위해 도착한 국경경비대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국경경비대원도 2명이 부상을 당했다. 범인은 자신의 할머니에게도 총격을 가해 중태로 만들었다.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유밸디의롭 초등학교 총격사고가 뉴타운의 샌디 훅 초등학교 사건의 충격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미국 사건은 패닉에 빠졌으며 총기 구매와 총기협회 가입이 줄을 이었다. ━ 10명 이상 숨진 학교 총기 사건 모두 21세기에 발생 놀라운 점은 지금까지 살펴본 미국 최악의 3대 학교 총격사고가 모두 21세기 들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10명 이상 사망자가 나온 10건의 학교 총격사고 중 21세기 들어 발생한 것이 7건이다. 나머지는 1999년 4월 20일 콜로라도 주에서 발생한 컬럼바인 고교 총격 사건, 1966년 8월 1일 벌어졌던 텍사스대 타워 총격 사건, 미국 건국 직전인 1764년 벌어진 이녹 브라운 학교 학살 사건 등이 있다. 1999년 발생한 컬럼바인 고교 총격은 15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 학교 학생인 18세의 에릭 해리스와 17세의 딜런 클레볼드가 학교 정원에서 2명의 학생을 사살하고 교사를 중태에 빠트린 뒤 도서관에 들어가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를 살해했다. 21명은 이들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었다. 두 범인은 뒤이어 도착한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며, 결국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당시로선 가장 끔찍한 학교 총격으로 기록됐지만 21세기 들어 그 모든 기록이 깨지고 더욱 잔혹한 일이 줄을 이었다. 1966년 텍사스 주 오스틴의 텍사스대 타워 총격 사건은 희생자는 많았지만 다른 사건과 방식이나 성격은 좀 다르다. 해병대에서 제대하고 이 대학 공대에 다니던 25살의 찰스 휘트먼이 범인이었다. 그는 대학의 종탑에 올라가 3명을 살해한 뒤 그곳을 관측대로 삼아 96분 동안 학교 교내를 지나다니던 12명을 사살하고 31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는 앞서 자신의 집에서 모친과 부인을 살해했다. 그는 출동한 경찰에 사살됐다. 1764년 펜실베이니아 주 그린캐슬에서 벌어진 이녹 브라운 학교 학살 사건은 당시 백인들과 전쟁을 벌이던 인근 원주민들이 학교에 들어와 교장 이녹 브라운을 총기로 살해하고 10명의 학생을 근접무기로 살해했다. 총기로 피살된 사람이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총기 사고로 분류하기도 모호한 점이 있긴 하다. 이 세 건을 제외하고 1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학교 총기 사건은 모두 21세기에 벌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총기가 갈수록 흔해지고, 이를 이용한 무차별 총격 사건이 갈수록 잦아지고, 그 피해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미국에서 발생한 학교 총격 사건이 벌써 19건이나 된다. 팬데믹으로 미국 전역이 고통을 받았던 2021년에도 32건이나 된다. 2020년에는 50건이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전인 2019년에도 43건에 이른다. 이러한 데이터는 학교 총격에만 국한한 것이다. 미국에서 발생해 사망자가 4명 이상인 모든 총격 사건은 2014년 272건이었던 것이 2021년에는 692건으로 늘었다. 총기가 갈수록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셈이다. ━ AR-15 소총 저가 버전은 400달러면 구매 미국에서 이처럼 학교를 비롯한 다양한 장소에서 총격 사건이 흔해진 큰 이유는 총기가 흔하고 접근성이 좋은 데다 성능이 좋다는 점에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텍사스 주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서 범인이 사용한 총기가 AR-15 소총이라는 사실이다. 1950년대에 개발된 AR-15 소총은 미군이 제식 소총으로 채택한 M-16이나 총신 길이를 줄인 M-4와 구조와 기능에서 상당히 유사하다. 전쟁터에서 살상용으로 사용하는 군용 돌격소총의 원형인 셈이다. 가볍고 장전과 조준, 발사가 쉬운 데다 위력이 강하다. 이 때문에 미국 민수 시장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저가 버전은 400달러 정도의 가격에 구매할 수 있으며, 범인이 사용한 사양이 좋은 종류는 2000달러쯤 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학교 총격을 물론 미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총기 사고에 자주 등장하는 종류가 됐다. 일부 주에서 민수용은 연발 사격이 되지 않도록 규제했지만, 워낙 광범위하게 보급됐다 보니 이를 피해 개조할 수 있는 부품과 서비스 시장이 활발하게 가동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문제는 총기 접근성이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18세가 되면 합법적으로 총기와 실탄을 살 수 있다. 총포상에서 신분증만 제시하면 형식적인 범죄이력 조회나 정신병원 입원 여부 조사를 할뿐 별 문제없이 살 수 있다. 돈이 부족하면 매달 100달러씩 갚는 금융지원을 받아 총기를 구매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살상력이 좋은 고성능 총기가 미국에 널려 있다. 전미사격스포츠재단(NSSF)은 2018년까지 미국에서 팔린 소총이 1600만 정을 넘는다고 추산한다. 또 다른 문제는 연방법에 따라 총기등기소가 총기 소지 이력을 보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를 관리해야 할 연방주류·담배·화기·폭발물단속국(ATF)조차 자국 내에 얼마나 많은 총기가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왜 이렇게 총기 관리가 느슨할까. 그 이유는 막강한 로비력을 가진 전미총기협회(NRA)에서 찾을 수 있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 공격용 무기 판매를 금지했다. 하지만 NRA는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면서 로비에 나서 결국 2004년 판매가 가능하도록 되돌렸다. 그 결과 AR-15는 물론 장거리 저격용 소총까지 민간에 나돌고 있다. 더욱 문제는 이렇게 총기가 흔하다 보니 총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구매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총기 구매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상승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롭 초등학교 총기 사고 뒤 대국민 연설에서 “도대체 우리는 언제나 총기 로비에 맞설 수 있을까”라며 개탄했지만 이런 비극과 참사에도 총기 규제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 공화당 꽉 잡은 NRA 로비력 막강 그 중심에 NRA가 있다. NRA는 남북전쟁이 끝난 뒤인 1871년 참전용사 2명이 ‘과학적인 소총 사격의 장려와 촉진’을 앞세워 세운 단체로, 151년의 역사에 회원 수 300만명(추산)을 보유한 막강한 특수 이익 로비 조직이다. 이미 1934년부터 국가총기법(NFA)‧총기규제법(GCA) 등 총기와 관련한 입법 정보를 회원들에게 제공하면서 총기 로비의 이력을 쌓았다. 오랜 로비 끝에 1970년대에 GCA가 단체의 뜻에 맞게 통과되면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과시했다. 1975년이 되자 입법행동연구소를 세워 미국의 총기 규제정책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더욱 주목할 점은 1977년 정치행동위원회(PAC)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정치 로비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이 단체는 2020년 한 해에만 2억5000만 달러의 예산을 사용했다. 공식적으론 예산을 주로 교육 등에 사용하고 정치 로비엔 300만 달러 정도를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공개된 부분이지 공개되지 않은 곳에서 어떤 거래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바이든 대통령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미국에서 NRA의 로비력이 막강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스스로 무장해서 자신을 보호한다는 뿌리 깊은 미국의 총기문화가 결합해 총기 문제를 더욱 늪으로 빠뜨리고 있다. 총기와 관련한 각종 통계를 보면 암울하기만 하다. 국제 무기연구단체인 ‘스몰암스서베이(SAS)’에 따르면 민간 보유 총기는 2017년 기준 미국이 3억9330만여 정으로 압도적인 1위다. 2위인 인도(7110만 정)의 다섯 배에 이른다. 총기가 흔하니 당연히 총격사고도 많다. 세계인구리뷰는 2019년 총기 관련 사망자 1위가 브라질로 4만9436명이고, 그 뒤를 미국이 3만738명으로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치안 불안을 개탄하는 베네수엘라와 멕시코는 그 다음이다. 미국인이라고 다른 나라보다 더 이성적으로 총기를 다루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다. 2017년 인구 15만면 이상 국가 중 100명당 총기 소지 비율은 미국이 1위(120.5명)이고 2014년부터 격렬한 내전을 겪고 있는 예멘(52.8명)이 2위다. 예멘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시리아‧소말리아‧우크라이나와 함께 한국 국민이 외교부의 특수입국허가를 받지 않으면 입국도 할 수 없는 나라다. 미국은 그런 나라보다 총기 보유 비율이 2배나 높다. 미국은 언제나 이런 총기의 악순환과 이로 인한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2.05.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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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필리핀 대선 당일 투표소에 총격 발생...군경 3명 사망

차이나 포커스

(마닐라=신화통신) 필리핀 군부는 9일 민다나오섬 마긴다나오주 불루안시의 한 선거 투표소에서 이날 오전(현지시간) 군경 3명이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밝혔다.필리핀 군부는 오전 7시25분 공격범들이 흰색 트럭 2대를 몰고 초등학교 입구에서 질서를 지키던 군경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고 전했다. 이에 근무 중이던 군경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보고했다. 해당 초등학교는 필리핀 정부에 의해 당일 선거 투표소로 지정됐다.필리핀 군부에 따르면 이번 공격은 선거 투표와 관련이 있다. 용의자들은 공격 후 현장에서 달아났으며 필리핀 보안요원들이 이들을 추적하고 있다.필리핀 경찰은 앞서 전날 민다나오섬의 마긴다나오주의 다투 운사이와 샤리프 아구아크 자치 구역에서 다섯 차례의 수류탄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8명이 다쳤다고 전했다.필리핀 전국 및 지방 선거는 9일 오전 6시에 시작됐다. 필리핀은 이날 대통령과 부통령 외에도 국회의원, 지방 행정장관, 의원 등을 선출한다. 이번 선거의 유권자는 6천570만 명 이상이며 선거위원회는 선거 전 폭력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전국 118개 도시를 '중점'지역으로 분류했다.

2022.05.0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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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중동평화] 트럼프는 왜 이스라엘 편을 들었을까

국제 경제

유대인 정착촌은 국제법에 어긋난다던 미국, 41년 만에 입장 뒤집어… 표심 잡기 위한 ‘정치쇼’ 비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28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을 위한 중동평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스라엘과 더불어 한쪽 당사자인 팔레스타인 측의 강력한 반발로 시행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앞으로 팔레스타인의 운명은 어떻게 되고 중동지역은 평화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영국의 BBC와 일간 가디언, 독일의 국제방송인 도이체벨레(DW), AP·AFP·로이터 등 다양한 국제 뉴스원을 참고해 중동평화 방안을 분석하고 향후 사태 전개를 예측해본다.먼저 평화안을 따져보자. 트럼프의 구상은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해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하는 대신 팔레스타인이 남은 지역과 가자지구 등에서 독립국가를 건설하도록 했다. 팔레스타인 국가는 동예루살렘의 일부를 수도로 삼도록 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앞으로 4년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국가 건설 협상을 하는 동안 요르단강 서안에 더는 새 정착촌을 건설하지 않도록 했다. 트럼프는 팔레스타인이 국가를 건설하고 해외에 대사관을 개설하는 데 500억 달러의 국제 금융을 제공하기로 했다. 아울러 서로 연결되지 않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를 도로와 교량, 터널로 연결하기로 했다. 이스라엘 땅인 서부 네게브 사막의 일부에 산업단지와 농장을 건설해 팔레스타인 측에 제공하는 내용도 있다.하지만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 없이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와 나란히 발표한 중동평화 구상은 대놓고 이스라엘을 편들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하는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정착촌은 이스라엘 점령 정책의 상징이며, 팔레스타인인이겐 수모와 영토 잠식, 주권유린의 증거다. 요르단강 서안은 가자지구와 함께 1947년 유엔 결의로 팔레스타인 국가가 들어서기로 예정된 지역이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직후 발발한 제1차 중동 전쟁(이스라엘 독립전쟁)에서 요르단강 서안은 요르단이, 가자지구는 이집트가 점령했다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 때 이스라엘이 대승하면서 이곳을 점령했다.이스라엘군 장교 출신으로 영국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의 전쟁학 교수로 의 저자인 아론 브레크먼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첫째 군사력과 물리력, 둘째 각종 인허가권을 비롯한 법과 행정 규제, 셋째 토지와 물과 같은 자원의 통제라는 강압 통치를 무기로 점령을 계속했다. 이스라엘 국민도 아니고 자신들을 지켜줄 나라도 없는 상태에서 점령 당국으로부터 탄압받고 희생된 팔레스타인 주민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이스라엘은 물론 서구에 대한 아랍인의 불신과 분노를 낳았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서 정착촌을 늘려왔다. 가자지구에서는 주민들의 시위와 총격 등으로 2000년 8월 유대인 정착촌을 모두 철수했지만 펠라스타인 자치지구인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에는 약 70만 명의 이스라엘인 정착촌을 건설해 거주하고 있다. ━ 트럼프, 재선 앞두고 미국 기존 노선 뒤집어 주목할 점은 정착촌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다. 미국은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인 1978년 제정한 법률을 바탕으로 정착촌은 국제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마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이 국제법에 어긋난다고 더 이상 간주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시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의 입장을 41년 만에 뒤집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할 중동평화방안의 근거를 만들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 방안을 준비해왔다는 이야기다. 트럼프의 방안에 팔레스타인 당국은 펄쩍 뛰었다. 가자지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무장정파 하마스는 물론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이 이끄는 정당인 파타도 트럼프의 중동평화 구상을 거부했다.트럼프의 중동평화 구상 발표에도 팔레스타인 분쟁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에겐 도움이 될 수 있다. 네타냐후는 현재 정치적으로 사면초가 상태다. 우선 두 차례의 총선으로도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의석을 얻은 정당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세 번째 선거를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 이스라엘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인 네타냐후를 부패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트럼프가 들고 온 중동평화 구상은 이런 네타냐후를 상황을 반전시킬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이 거부하고 시위와 폭력으로 맞설 경우 이스라엘과 중동 정세는 불안해지겠지만 네탸냐후는 오히려 강경 유권자의 표를 모을 수 있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로서도 이미지와 유대인 표와 정치자금 흡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어차피 중동평화 구상 자체가 평화정착을 위한 진심을 담았다기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과 일정을 감안한 ‘정치쇼’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다시 시간을 거슬러 팔레스타인 분쟁의 근원을 살펴보자. 팔레스타인 분쟁은 유대인들이 1948년 영국 위임통치령이던 요르단강 서쪽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땅을 잃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대항하면서 시작됐다. 요르단강 동쪽의 트란스요르단과 서쪽의 시스요르단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 전까지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영토였으나 튀르크의 패전으로 영국에 넘어갔다. 트란스요르단에선 과거 메카를 지배하다 1차대전 중 영국에 협력했던 하심 가문이 1946년 요르단 왕국을 세워 독립했다. 요르단강 동쪽에서 지중해까지를 이르는 시스요르단은 팔레스타인으로도 불렸는데 1947년 11월 29일 유엔총회 결의안 제181호로 이 지역의 아랍인 국가(팔레스타인)과 유대인 국가(이스라엘),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분할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1945년 3월 22일 알렉산드리아 의정서를 바탕으로 발족한 아랍연맹의 지원을 받은 팔레스타인 해방군은 유대인 민병대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지만 패배했다. ━ 오슬로 합의에도 불구, 관계 삐걱 추가 협상 난항 결국 유대인들은 1948년 5월 14일(유대 헤브루 달력 기준)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집트·시리아·요르단 등 주변 아랍 국가들은 일제 공격으로 응답했다. 이스라엘 독립전쟁, 또는 제1차 중동전쟁으로 불리는 무력충돌이다. 이스라엘은 1956년 영국·프랑스 주도의 수에즈동란(제2차 중동전쟁)을 거쳐 1967년 6일전쟁(제3차 중동전쟁)에선 아랍 국가들을 상대로 6일간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지구, 동예루살렘 등 팔레스타인 몫의 땅은 물론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시리아의 골란고원까지 점령했다. 1973년 소련의 최신무기로 무장한 아랍의 보복 기습공격으로 욤 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이 벌어져 한때 밀렸지만 가까스로 위기를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팔레스타인 측은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1929~2004년, 1996~2004년 의장)이 이끄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중심으로 이스라엘과 서구를 상대로 항공기 납치, 총기 난사 등 테러를 계속 벌였다.힘만으론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생각에 이스라엘은 1979년 이집트에 시나이 반도를 반환하고 평화조약을 맺은 다음 수교했다. 1987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1차 인티파타(반이스라엘 민중봉기)를 일으키면서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계기는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소녀가 유대인이 쏜 총을 맞고 숨진 사건이었다. 범인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으며 그가 자유의 봄이 된 그날 이스라엘 군인들이 아이들에게 발포해 5명이 숨졌다. 그런 상황에서 그해 12월 8일 가자지구 난민촌의 청년들이 이스라엘 군용 트럭에 치어 숨지는 사건이 터지면서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항쟁은 5년간 계속됐고 수많은 아랍 국가와 아랍인이 연대했다.인타파타 운동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이라크가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친미 중동국가와 나토 회원국을 포함한 다국적군을 결성해 1991년까지 이라크전을 치렀다. 당시 이라크를 지지했던 PLO는 그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각국에 나가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주민이 대거 추방되면서 해외 송금이 끊겨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다. PLO는 생존을 위해 1991년부터 이스라엘과 협상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타협의 필요성을 느낀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과 대화에 들어갔다. 협상은 미국의 중재로 이뤄졌으며 1993년 9월 이스라엘과 PLO는 ‘2국가 공존’을 틀로 하는 오슬로 합의를 이끌어냈다. PLO는 유대국가의 생존권을 인정하고,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수립해 5년간 잠정적으로 자치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1994년 5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운영에 들어가고 그해 7월 아라파트가 자치지역으로 돌아오면서 인티파타는 끝났다. 이는 2013년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 선언으로 이어졌다. 오슬로 합의의 공로로 PLO의 아라파트 의장과 당시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1922~1955년, 1974~77년, 1992~95년 총리)와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1923~2016년, 1977, 1984~86년, 1995~96년 총리, 2007~14년 대통령 재임)은 199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1994년엔 요르단과 평화조약을 맺고 수교했다. 이로써 이스라엘과 육상으로 국경을 맞댄 네 나라 중에서 레바논과 시리아를 제외한 두 나라와 평화조약을 맺고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나라 사이 국경을 육상으로 통과하는 것도 가능해졌다.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추가 협상은 계속 난항을 겪었다. 5년간의 한시 자치가 종결된 1999년까지도 최종 해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자치 시한은 2000년 9월까지 연장돼 협상을 계속하던 양측은 미국의 중재로 2000년 7월 미국의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마주 앉았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아라파트 의장과 이스라엘의 에후트 바라크 총리와 무릎을 맞댔다. 이스라엘은 앞으로 수립될 팔레스타인 국가의 비무장과 유대인 정착촌을 이스라엘 주권 아래에 두는 방안을 내놨다. 아라파트는 이를 거부했으며 협상은 결렬됐다. 이번에 트럼프가 내놓은 방안도 2000년에 아라파트가 거부한 방안에 몇 가지를 보탰을 뿐 큰 맥락에선 대동소이하다.이런 상황에서 특히 1970~1990년대에 걸쳐 정착촌 건설을 지지해온 강경파 정치인 아리엘 샤론(1928~2014년, 2001~2006년 총리)은 팔레스타인 측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샤론은 2000년 9월 당시 야당이던 리쿠드당 대표로서 경찰 1000명의 호위를 받으며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과 알아크사(Al-Aqsa Mosque) 모스크가 있는 성전산(Temple Mointain)에 올랐다. 성전산은 동예루살렘에 속하는데 이슬람 성지인 바위의 돔과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는 만큼 이스라엘 군경은 출입을 삼가는 불문율이 있었는데 샤론이 이를 무시하면서 점령지 팔레스타인 주민의 분노와 봉기를 유발했다. 자살공격을 포함해 격렬하게 진행된 2차 인티파타는 2005년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2국가 체제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정착촌 건설을 계속했고,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을 장벽으로 휘감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계속 고통을 받았고, 명예로운 국가 창설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 중동 산유국들 실리 챙기려 트럼프 손 들어줘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포인트는 이번 트럼프의 중동평화 구상이 나온 뒤 중동권에서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아랍에미리트·바레인·오만이 트럼프 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사실이다. 중동 산유국인 이들 나라는 그동안 이스라엘을 비판해오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꾸준히 원조를 제공해온 ‘물주’다. 이들은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팔 분쟁으로 이스라엘과 수교도 곤란하고, 국내정치에도 부담이 상당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 나라들이 이번에 트럼프의 손을 들어준 것은 팔레스타인 분쟁 피로증을 상당히 느끼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아울러 트러프와 쿠슈너의 끈질긴 설득에 일단 트럼프의 방안을 인정하고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대가로 미국이 어떤 선물을 줄 것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특히 지역 맹주의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이즈 알사우드 왕세자는 ‘비전2030’이라는 국가 개조계획을 발표하고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핵심은 사우디아라비아 서북쪽 티란 해협 인근에 거대한 신도시를 건설해 21세기형 관광·레저·교통·환경·에너지 핵심 도시로 키우는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선 이스라엘과 안보·기술·경제 협력이 시급하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이 지난 1월 27일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5주년을 앞두고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본부를 둔 ‘무슬림 세계연맹’의 무함마드빈 압둘카림 알이사 사무총장이 28개국의 무슬림 지도자 62명과 함께 미국 유대인위원회(AJC)의 대이비드 해리스 최고경영자와 함께 아우슈비츠를 찾아 함께 기도를 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그 직후 자국 국민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양국 관계에 훈풍이 부는가 싶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 여권 지참자의 자국 방문을 계속 불허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중동에 뭔가 지각변동이 생길 것이란 희망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안보뿐 아니라 중동 국가들이 절실하게 원하는 과학기술과 경제 분야에서도 실력을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중동평화 방안이 당장은 큰 가치나 의미가 없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수정을 더해가면서 중동 평화를 위해 달려갈 수 있는 이정표는 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 기자 ciimccp@joongang.co.kr※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2020.02.0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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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인의 기적

산업 일반

콜롬비아의 2대 도시, IT에 기초한 도시 계획과 시민 참여 결합… 마약 관련 범죄와 빈곤에서 벗어나 세계의 모범적인 스마트 시티로 도약 공중에 연결된 줄을 따라 승객을 가득 싣고 가파른 산비탈로 이동시키는 케이블카를 상상해보자. 대부분 스키 리조트나 거금들인 휴가여행을 떠올릴 것이다. 콜롬비아 메데인 변두리의 한때 파벨라로 불리던 가난한 달동네 주민에게 이 케이블카 시스템은 생명줄이자 IT와 데이터 중심의 놀라운 도시혁신의 강력한 상징이다.메데인을 살린 기술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보스턴 또는 싱가포르에서 목격하는 자율주행차량 행렬, IT 대기업들, 인공지능 류가 아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곳에 기술을 배치하기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게 관건이다. 그리고 부와 계급을 초월하는 개혁의 지지층을 구축하는 것이다. 뉴스위크의 모멘텀 어워드 심사위원들(27쪽 참고)을 포함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스마트 시티로 나아가는 길을 논할 때 모든 도시의 혁신 비전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메데인을 종종 거론한다.대다수 스마트 시티 프로그램은 상당 부분 IT에 정통하고 자원이 풍부한 인구 집단이 자신들을 위해 실시하는 반면 메데인의 혁신은 상당 부분 극빈층에 초점을 맞췄다. 전 세계 스마트 시티를 조사해온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의 도시개발 연구원 솔레다드 가르시아-페라리는 “스마트 시티 프로그램은 중앙정부에서 계획하고 IT 기업들이 변화를 이끄는 경향을 띤다”며 “메데인은 사회의 모든 측면을 포용하는 프로그램을 모색했으며 커뮤니티 스스로가 이끌어나갔다”고 말했다.오래전부터 마약 관련 범죄·빈곤·절망의 중심지로 유명했던 인구 200만여 명의 도시 메데인은 ‘스마트 시티’가 관심을 끌기 10여 년 전인 1990년대 중반 스마트 시티 계획에 착수했다. 그 뒤 이 프로그램은 다른 여러 정당 소속 시장 5명의 손길을 거쳤다. 오늘날 메데인의 살인율은 1993년의 2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3분의 2 가까이가 빈곤에서 벗어났다. 10년 전만 해도 기본 서비스를 거의 누리지 못했던 과반수를 포함해 거의 모든 시민이 교육·헬스케어·교통 그리고 각종 문화·경제·온라인 서비스를 거의 무료로 제한 없이 이용한다.그 과정에서 메데인의 극적인 혁신 프로그램은 기술과 인간의 경계선을 허물었다. 파리 팡테옹-소르본 대학의 메데인 출신 도시 연구원 카를로스 모레노는 “혁신에 중점을 뒀지만 사회 혁신의 비전 공유도 또 하나의 초점이었다”고 말했다.메데인의 혁신에서 핵심적인 요소는 시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들은 기술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고 시선을 더 멀리 뒀다. 대신 기술과 사회적 변화를 통합해 일상생활을 전반적으로 개선하고 도시 곳곳 특히 개선이 가장 필요한 곳에서 피부로 느끼는 방안을 모색했다. 메데인 대학의 스마트 시티 학과를 이끄는 경제학자 로버트 응 헤나오는 “메데인의 스마트 시티비전은 초현대화와 자동화의 통상적인 패러다임에서 벗어났다”며 “도시의 미래에 대한 더 인간중심적인 비전으로 그것을 대체했다”고 말했다. 그 비전은 메데인의 혼잡하고 궁핍하고 범죄에 찌든 달동네에서 처음 태동됐다.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통제하는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들과 연계된 갱들이 일상적으로 이들 파벨라에서 만나 마약과 돈을 교환하고 암살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1993년에 들어서면서 메데인의 ‘암흑기’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마약 카르텔들이 와해되고 있었다. 에스코바르는 몇 달 뒤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사망한다.그해 임시로 임차한 작은 집으로 수십 명이 모여들었다. 갱단원들이 아니었다. 정부 지도자, 학술전문가, 시민운동가, 기업체 중역 연합체의 초청을 받은 보통 주민들이었다. 참가자들이 책을 가져와 즉석 미니 도서관이 생겨났다. 책을 읽고 둘러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무엇보다도 대화를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대화의 최대 주제는 메데인의 개혁이었다.이 모임을 비롯해 기타 비슷한 미팅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이 그 뒤 수십 년에 걸쳐 도시를 바꿔놓을 야심적인 계획의 토대를 이뤘다. 메데인 세인트토마스 대학의 호르헤 페레스 자라밀로 건축대학 학장은 “우리는 자연재해 후 주택을 재건하는 대신 사회 재해 후 사회를 재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2000년대 2명의 시장 밑에서 수년간 메데인 도시계획 책임자를 지낸 그는 “시장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며 “시민의 주문을 이행하는 것이 자신들의 소임이라고 봤다”고 덧붙였다.시민들은 그들에게 많은 주문을 했다. 하수시설·상수원·학교 등과 같은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 없이 살아가는 주민이 대다수였다. 아이들이 놀 만한 곳도 없었다. 비가 오면 홍수와 토사 붕괴로 주택 심지어 마을이 통째로 쓸려 내려갔다. 계곡에 일자리가 있었지만 산동네에서 거기까지 가려면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이동하는 데 편도 2시간이 소요됐다. 그리고 치안이 불안했다. 마약 카르텔의 붕괴로 갱단과 범죄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대규모의 무장경찰 배치가 가장 손쉬운 솔루션인 듯했다. 그러나 메데인 사람들은 그런 지역 모임을 통해 도시 행정가들을 설득해 다른 접근법을 택하도록 했다. 청년들이 범죄를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로 선택하게 한 빈곤·고립·기회결핍의 해소였다. 최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EADA 비즈니스 스쿨의 리서치 학부장이자 도시 전략가로 일했으며 현재는 도시 모빌리티 앱 개발업체 로맙의 CEO인 보이드 코헨은 “그들은 길거리에 총을 더 많이 배치하는 대신 가난한 지역사회에 투자하고 주민들을 일등 시민처럼 대우하기로 했다”며 “사람들의 삶을 바꾼 비결”이라고 말했다.도시를 살리는 프로그램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범죄에 찌든 최근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메데인 경제에는 탄탄한 석유·의류 산업 같은 견고한 버팀목이 있었다. 제조업체들은 도시 르네상스가 투자수익을 가져다주리라는 믿음 아래 조세부담의 상당 부분을 짊어질 수 있었다. 시 정부는 공공 서비스 업체 EPM에 의존해 나머지 공백을 메웠다. 메데인에 수도·에너지·통신과 폐기물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콜롬비아 전역과 중남미 등지의 다른 나라에서 민간 기업체로도 경쟁을 벌이는 기업이었다. EPM은 훗날 메데인의 예산에 보태는 연평균 기부액을 4억 달러로 늘렸다. 시 당국은 이런 자원을 그 프로그램에 집중했다. 남미의 도시들은 통상적으로 예산의 약 4분의 1을 개발과 서비스에 투입하는 반면 메데인은 2000년대 초 이후 평균적으로 예산의 절반 이상을 그 부문에 할당해 왔다. 이들 1990년대 커뮤니티 모임과 전문가 토론회에서 부상한 각종 이니셔티브는 시행하기까지 여러 해 어떤 경우에는 수십 년씩 걸렸다. 케이블카 설치 같은 건의안과 연구는 1995년에 시작됐지만 가시적인 결과는 루이스 페레스 시장이 선출된 2000년 이후에야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시와 안티오키아주가 공동 운영하는 도시의 메트로 지하철 경영진을 설득해 케이블카 노선 건설 비용을 시와 분담하도록 했다. 곧바로 건설공사가 시작돼 2004년 케이블카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가난한 산동네 주민의 도심지 직장 통근 시간이 2시간에서 20분으로 단축됐다. 그 1호선의 하루 이용자 수는 3만 명에 이른다. 1호선 개통 이후 4개 케이블카 노선이 추가로 개통됐다.메데인 법에 따라 시장 임기는 4년 단임제다. 페레스 시장은 2004년 수학교수이자 건축가의 아들 세르지오 파하르도에게 시장 자리를 물려줬다. 파하르도는 극빈 지역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신규 사업 지출에 관한 큰 결정을 주민에게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약속을 지켜 임기 중 지역 협의회의 지침을 요청하고 그에 따라 지출 우선순위를 정했다.파하르도 시장은 지역 협의회의 결정에 따라 도시의 교육제도를 개편했다. 2만 명의 교사를 대상으로 특수 센터에서 혁신적 교육 방법에 초점을 맞춘 추가 연수를 실시했다. 모든 어린이가 지금은 문화·과학·기술 그리고 언어 강좌를 포함하는 지역 방과 후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한다. 젊은이들이 범죄에서 손을 씻도록 인도하는 프로그램으로 연간 수천 명의 청소년이 갱단에서 탈퇴했으며 대학 진학률을 높이려는 노력으로 수만 명의 청년이 도시의 30개 대학과 기술교육센터에 등록했다. 파하르도 시장은 또한 아동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 헬스케어를 업그레이드했다. 어린이와 그 가족에게 건강과 영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동 보건 센터를 신설했다.파하르도 시장은 또한 도시의 문화와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지역 협의회의 지지를 끌어냈다. 시는 또한 훗날 37만여㎡에 상당하는 다양한 용도의 공공 공간을 확충했다. 40개 공원의 건설 또는 개보수 작업이 대표적이다. 파하르도 시장은 스패니시 라이브러리 파크의 건설을 승인했다. 산꼭대기에 녹색 공간으로 둘러싸인 대규모의 현대적인 도서관이다. 마침 시의 1호 케이블카 노선이 끝나는 종점 자리다. 빈민촌에 가까운 이 공원은 그린웨이(보행자·자전거 전용로)로 전용된 강을 따라 8㎞에 뻗친 고속도로와 함께 글로벌 관광명소가 됐다. 그는 또한 일차적으로 도시 사업체들의 자금지원으로 세계 최고 인기 과학박물관 중 하나를 신설하도록 했다. 공공 서비스 업체 EPM은 제2의 대형 도서관을 건설했다.파하르도 시장의 임기는 2007년 말 끝났지만 그의 프로그램과 커뮤니티 중심의 운영 스타일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 후임자들이 그의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약속하지 않고는 당선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파하르도 시장의 후임자 알론소 살라자르 하라밀로는 산동네에 각기 약 370m 길이의 야외 에스컬레이터를 잇따라 건설해 케이블카 역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가난한 달동네 주민 수만 명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또한 공원과 도서관 시스템 그리고 케이블카 노선을 확장하고 교육과 헬스케어 개선에 계속 투자했다.하라밀로 시장은 계속되는 개선의 흐름에 더 뚜렷하게 첨단·디지털 관점을 도입했다. 예컨대 도시의 숨 막히고 지극히 위험한 자동차 주행을 표적으로 삼았다. 2009년에는 가장 사고가 빈발하는 교차로에 40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하루 100만 대 이상의 차량을 감시했다. 과속·신호위반 그리고 차선을 넘나드는 난폭운전 차량을 적발했다. 교통위반 차량의 번호판을 읽어 우편으로 범칙금 고지서를 발송하는 시스템이다. 2009~2014년 사이 교통위반이 80% 감소했다. 그 밖에 80대의 스마트 카메라가 교통정체를 유발하는 사고 또는 고장 차량을 감지해 경찰과 기타 관련 서비스에 통보한다. 모두 800대 이상의 카메라가 메데인의 도로를 감시하며 어떤 문제든 감지한다. 혼잡 구역 전체적으로 22개의 전자 문자안내판이 설치돼 최적의 경로에 관한 최신 정보를 운전자에게 제공한다.하라밀로 시장 체제에서 시는 디지털 경제의 건설과 육성에 착수해 제조업 의존을 줄이기 시작했다. ‘루타 N’이라는 혁신지구를 지정해 첨단 스타트업 대상으로 업무공간·창업자금·노하우와 기타 지원을 했다. 또한 루타 N 기업과 대형 IT 기업 간의 파트너십을 중재하고 관급 프로젝트 입찰 자격요건을 완화해 소규모 스타트업이라도 응찰할 수 있도록 했다. 하라밀로 시장은 루타 N 기업과 기타 혁신 촉진 노력에 시 예산의 2%를 배정했다. 일정 부분 이런 노력의 결과로 25개국 170개 이상의 기업이 메데인에서 사업을 시작해 불과 지난 3년 사이 4000개 가까운 일자리를 창출했다.2012년 시장에 취임한 아니발 가바리아 코레아는 도시 전체 산비탈의 수량·수위·토양수분 그리고 토양 움직임을 모니터하는 센서를 설치해 위험한 홍수와 토사붕괴에 대처하는 일련의 프로그램을 수립했다. 이는 홍수와 기타 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곳과 관련해 조기에 더 정확한 경보를 제공했다. 홍수와 토사붕괴 위험 지대의 마을 주민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잠재적인 위험지역의 사진과 자신의 관측으로 센서 데이터를 보완할 수 있다. 도시 기획자들은 그 데이터로 배수관과 기타 수로의 위치를 파악해 취약지역의 넘쳐나는 빗물을 다른 지역으로 돌린다.와이파이 연결망의 부재로 인해 산동네 등지의 많은 주민이 온라인 혁명에서 소외됐다. 그에 따라 시 당국은 150개 이상의 공공 와이파이 구역을 신설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아울러 주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500여 개소에 무료 컴퓨터를 설치했으며 48개 인터넷 교육센터를 신설해 무료 강좌를 제공한다. 도시 최저 소득층의 3분의 2가 현재 스마트폰을 보유하며 코레아 시장의 권유에 따라 약 500개 기업에서 텔레커뮤팅(컴퓨터를 이용한 재택근무)을 통한 직원의 원격 근무를 허용해 교통정체를 완화했다.2016년 취임한 페데리코 구티에레스 줄루아가 시장 체제에서 시 당국은 임부와 산모에게 교육과 개인적 상담을 제공하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범도시적인 온라인 시스템을 신설해 건강 관련 서비스를 병원이나 클리닉에서 손쉽게 예약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긴급 헬스케어 서비스의 개편으로 대응시간이 37% 단축됐다. 시는 또한 청소년 참여에 초점을 맞춘 수십 개의 스포츠 시설을 신설했다. 줄루아가 시장은 전기 버스 64대와 범도시적인 무료 자전거 공유 서비스와 함께 96㎞ 길이의 별도 자전거 전용로를 신설해 시의 모빌리티(이동성) 개선과 오염 감축을 계속해 나갔다.줄루아가 시장은 시와 공공 서비스 대다수를 온라인에 올려 시민이 시 당국과 쉽게 교류할 수 있게 했다. 지금은 거의 어느 서비스든 웹 브라우저나 스마트폰을 통해 시작하고 변경하고 중단하거나 돈을 납부할 수 있다. 주민들은 시의 입법·정책입안·프로젝트에 관한 업데이트를 온라인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주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시 당국자와 소통하며 시 지도자와 행정가들에게 가치 있는 인풋을 제공해 시 예산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관한 결정에 지역사회가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한다.스마트 시티 관련 노력으로 메데인은 1990년대 초반의 암울한 환경에서 남미에서 빈곤과 범죄율이 가장 낮은(그리고 교육과 헬스케어 보급률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로 인정받는 위치까지 도약할 수 있었다. 메데인이 이런 발전을 이루도록 한 결정에 실제로 기여했다는 주민들의 의식이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에딘버러 대학의 가르시아-페라리 연구원은 말한다. “스마트 시티 솔루션을 이런 유형의 참여 플랫폼과 결합해야 한다.”아무도 메데인의 혁신 프로젝트가 완성됐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지난 20년 사이 빈곤율이 48%의 고점에서 크게 낮아졌지만 근년 들어 여전히 심각한 14% 수준에서 정체됐다. 적어도 10월 말의 시장선거로 판단하건대 이제껏 이룬 업적이 상당히 만족스러운 듯하다. 이번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많이 비유된 보수파 후보가 의외의 대패를 당했다. 콜롬비아 디지털 경제부 차관 출신의 다니엘 퀸테로 칼레가 특히 빈민층과 취약계층에 혜택을 주는 교육·인프라·첨단 이니셔티브에 대한 이전 시장들의 투자를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당선됐다. 분명 메데인은 케이블카를 상징으로 내세운 르네상스를 단축할 의사가 아직은 없는 듯하다.- 데이비드 H. 프리드먼 뉴스위크 기자

2019.11.2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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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독재자가 아니라고?

산업 일반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은 중국 정권의 성격을 자의적으로 착각하면서 판타지의 세계 만들어” 미국이 중국 공산당 독재정권을 다루는 장기 전략을 모색하면서 지금까지 늘 부닥친 문제는 우리가 중국 독재정권의 성격과 목표를 너무나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내가 신저 ‘트럼프 대 중국: 미국의 최대 위협에 맞선다(Trump vs. China: Facing America’s Greatest Threat)’에서 지적했듯이 미국 엘리트층은 중국의 독재정권을 오랫동안 착각해왔다.최근의 사례가 그런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은 지난 9월 말 PBS TV 토크쇼 프로그램 ‘파이어링 라인’의 진행자 마거릿 후버와 가진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대기 오염에 관해 이야기하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독재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며 “시 주석은 인민을 만족시켜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생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중국 공산당은 대기 오염과 같은 문제에 대해 인민에게 귀 기울인다.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기후변화 싸움의 선봉에 서고 있다. 베이징의 권부는 공기를 개선하라는 인민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한다. 공기 질 개선을 위해 겨울철 석탄 난방을 금지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중국 정부가 적극 나서 조치를 취한다는 점이 중요하다.”보수주의 정치 전문 웹사이트 ‘워싱턴 프리 비컨’의 칼럼니스트 그레이엄 파이로가 지적했듯이 그런 언급은 블룸버그가 오는 11월 베이징에서 블룸버그통신 주최로 ‘신경제 포럼’을 개최한다고 발표한 직후 나왔다. 신경제 포럼은 유럽의 다보스 포럼과 경쟁하기 위해 미국에서 만든 세계경제 포럼이다. 그는 그 행사를 널리 알리려고 주목받고 싶어 하는 게 분명하다.따라서 블룸버그의 판타지 세계에선 베이징 톈안먼 광장의 학살이 일어난 적이 없는 듯하다. 그런 가공의 세계에선 몇 달 동안 홍콩에서 벌어지는 시위를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한 적도 없는 게 분명하다. 또 홍콩의 연약한 자치권을 중국 공산당과 시 주석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시위에 참여한 주민에게 경찰이 총격을 가한 사건도 가짜뉴스에 불과한 것 같다(지난 10월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국경절에 홍콩에서 벌어진 ‘애도 시위’에서 18세 고등학생이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고, 또 그 전날 췬완 지역에서도 시위 참여자가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국제 인권단체들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중국 당국이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약 100만 명에 달하는 위구르족과 그 외 다른 무슬림 소수 민족을 반테러 캠페인의 명목으로 초법적인 ‘재교육 수용소’에 수용해 탄압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중국 당국이 재교육 수용소에 수용된 무슬림을 대상으로 이슬람교를 부정하고 공산당에 충성하도록 세뇌 교육을 한다고 비판한다(중국 당국은 재교육 수용소를 ‘직업교육 훈련센터’라고 주장하고 있다).하지만 블룸버그의 판타지 세계에선 그곳에 수용된 무슬림들이 중국 공산당이 귀 기울이는 ‘만족하는 인민’일 것이다. 중국 고위 관리한 명은 내게 그 수용소를 ‘더 나은 중국인’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숙학교로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나로선 그 말을 들을 때 표정을 관리하기가 무척 힘들었다.블룸버그는 얼마 전 중국에서 열린 국제산업박람회에 관한 호주 ABC 방송의 뉴스 보도가 갖는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그 행사에서 중국은 인공지능(AI)과 얼굴인식 기술을 갖춘 최첨단 500메가픽셀 카메라를 선보였다. 중국 공산당이 수만 명의 군중 속에서 반체제 인사를 색출하고 추적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다. 그 카메라의 설계자 중 한 명은 기자들에게 “우리 카메라는 사람의 얼굴이나 다른 물체를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확인할 수 있으며, 붐비는 경기장에서도 특정 표적을 즉시 찾아낼 수 있다”고 자랑했다. 중국이 첨단기술을 이용해 방대한 국가적 감시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전 인민의 통제를 철통같이 강화한 ‘빅 브러더’ 사회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이런 정교한 탄압 기술은 중국 공산당의 ‘사회신용 시스템’ 개발과도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개인과 기업 등에 사회신용 점수를 매기는 이 시스템에선 예를 들면,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음악을 듣거나, 무단횡단하는 일 등 생활의 모든 것이 통제 대상이 될 수 있다. 사회신용 불량자는 중국에서 비행기나 고속철도도 탈 수 없다. 따라서 중국의 ‘사회신용 시스템’은 시 주석과 당 지도부가 당 노선을 따르지 않는 중국인을 집단으로 처벌하고 억압할 수 있게 해준다.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보면 어떤 식으로든 블룸버그의 주장을 이해하기 힘들다. 블룸버그는 20세기 독재자들에 관한 비극적인 교훈을 전혀 얻지 못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어떤 정부도 혁명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국민 대다수의 의지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다.” 블라디미르 레닌, 이오시프 스탈린, 아돌프 히틀러, 마오쩌둥, 피델 카스트로가 살아 있다면 그들 모두 블룸버그의 순진함과 잘 속아 넘어가는 그의 약점을 이용하고 싶어 할 게 분명하다.이 점을 기억하라.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 총서기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인민해방군은 정부가 아니라 당의 지시를 받는다)이자,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이다. 바로 그 순서다. 그의 일차적인 세력 기반이 중국 공산당이라는 뜻이다. 군은 당의 도구이며 당이 모든 정책을 규정하기 때문에 국가주석보다 총서기의 역할이 훨씬 더 강력하다.블룸버그가 마법으로 만들어낸 판타지 세계 속의 중국은 말 그대로 ‘판타지’일 뿐이다. 시 주석은 서방 억만장자들의 도움으로 무자비한 경찰국가를 유지하며 독재 통치를 하고 있다. 서방의 그 거부들은 중국 정권의 속성에 관해 스스로 자신을 속일 만한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때문에 나머지 우리가 현실에 근거해 건전한 정책을 제시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아울러 그런 행동은 홍콩과 티베트, 신장 등 중국 전역에서 자유를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하는 수많은 사람을 배신하는 행위다.- 뉴트 깅리치※

2019.10.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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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위험한 행동 나쁘지만은 않다

산업 일반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든 종에서 생존의 열쇠는 치명적인 위험과의 조우 통해 경험과 교훈 얻어 십대는 위험한 행동으로 악명 높다. 극한 스포츠부터 폭음까지 그들의 별나고 예측 불가한 행동은 종종 주변의 성인들에게 설명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반항의식일까, 잘못된 판단일까, 정신적인 미성숙 때문일까? 베스트셀러 ‘주비쿼티(Zoobiquity, 국내에선 ‘의사와 수의사가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번역판이 나왔다)’의 의 공동저자인 심장 전문의 바버라 내터슨-호로위츠와 언론인 캐스린 바워스는 신저 ‘와일드후드(Wildhood)’에서 5년 동안 야생동물의 행동을 연구한 결과를 청소년의 행동 성향과 연결했다. 그들은 동물의 경우 인간의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시절에 위험한 행동을 하도록 유전적으로 설정됐으며,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동물의 세계 전반에서 ‘청소년기’의 위험한 행동은 더 안전하고 자신감 있는 ‘성체’로 발달하는 데 도움을 준다. 부모가 십대 자녀의 돌출 행동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녀의 독립심 함양과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본능 사이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다음은 그들의 책 ‘와일드후드’의 발췌문이다청소년은 성인보다 외상성 손상이나 죽음을 훨씬 더 많이 당한다. 세계 어디서든 사망의 위험은 어린 시절과 성인 시절 사이인 청소년 시절에 급속히 높아진다. 그 나이엔 교통사고나 총격, 추락, 익사, 또는 독살이 주요 사망 원인이다.청소년은 성인보다 차를 더 빨리 몰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 경우가 잦다. 범죄율도 어느 연령층보다 높으며 피살될 확률도 35세 이상보다 5배나 높다. 콘센트에 손가락을 꽂는 아기와 전기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성인을 제외하면 감전사의 비율도 청소년층에서 가장 높다. 그들의 자살률도 다른 연령층보다 높다. 정신질환과 중독도 같은 추세를 보인다. 또 청소년은 성인보다 폭음으로 만취해 정신을 잃거나 사망에 이를 가능성도 다른 연령층보다 훨씬 크다.우리는 야생동물의 세계에서 연령과 관련된 사망률을 폭넓게 조사한 결과 아주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동물의 경우도 인간처럼 ‘청소년기’의 삶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야생에서 그들은 성체보다 추락하거나 물에 빠지거나 굶어 죽는 경우가 더 잦다.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들은 더 나이가 많고 몸집이 큰 동료들에 의해 위험한 행동을 하도록 강요받고, 또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 포식자도 연약한 그들을 먼저 노린다. 한마디로 그들은 주변 모든 동물의 ‘봉’이다.매년 남극 주변에선 킹펭귄 새끼 수천 마리가 둥지를 떠나 포식자가 득실거리는 바다로 뛰어든다. 어떤 해에는 그중 절반만 살아남는다. 나머지는 표범해표와 범고래에게 잡아먹히거나 굶어 죽는다. 더 많이 살아남는 해도 있지만 아무튼 모든 펭귄에겐 둥지를 떠난 첫 며칠, 몇 주, 또는 몇 달이 극히 위험한 시기다.둥지를 떠날 정도로 성장했지만 외부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을 처음 접하는 이 시기는 인간 청소년에게도 위험한 때다. 다행히도 인간 청소년의 사망률은 펭귄만큼 높진 않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 전반에서 그런 시기는 그들을 치명적인 위험에 취약하게 만드는 특징을 공유한다. ‘경험 부족’이다. 야생 생물학자들은 그처럼 준비가 안 됐고 아무런 의심도 없는 그들의 특성을 ‘포식자를 모르는 순진무구함’으로 묘사한다. 예를 들어 새끼 상태를 벗어난 마멋은 부근에 코요테가 어슬렁거리는 데도 아무런 생각 없이 신나게 뛰어다닌다. 또 그런 시기의 해달도 백상아리 떼에서 멀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쪽으로 무모하게 헤엄쳐간다.인간 청소년이 아무런 경험 없이 외부 세계에 들어설 때도 마멋이나 해달과 똑같이 ‘포식자를 모르는 순진무구함’을 보인다. 그들이 파티에 가거나 다른 도시로 이사할 때 그곳에서 마주치는 위험은 치명적일 수 있다. 갑자기 방향을 틀어 달려오는 트럭, 술 취한 상태에서 치르는 신고식, 우울증, 성인 약탈자 등.성숙해가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위험에 부닥치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청소년기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살아남으려면 포식자에 관해 잘 알아야 한다. ‘알기 위해선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 역설적인 사실이다. 안전함을 얻기 위해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보호 본능이 강한 부모가 곁에 있을 때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 어렵다. 살아남을 수 있는 교훈을 못 얻어 앞으로 상당히 불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부모가 언제나 자녀를 보호할 순 없다. 특히 물리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을 때가 그렇다. 그리고 무모한 운전이나 약물 사용, 무분별한 섹스 등 많은 청소년이 하기 쉬운 위험한 행동을 성인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성인에겐 무조건 사고를 피하는 게 위험을 가까이 불러들이는 것보다 훨씬 논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십대가 찾아다니는 위험한 상황과 그들을 쉬운 표적으로 만드는 순진무구함을 구별하는 것이 도움될 수 있다. 살아남았을 경우엔 그 둘 다가 앞으로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다. 따라서 안전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역설이 아니라 인간이든 동물이든 청소년기의 필수적인 행동이다.인간이나 동물이 자신의 생명을 위험하게 하는 행동을 하는 이유가 뭘까? 아직 후손을 만들지 못한 청소년의 위험한 행동은 진화론적으로 보면 전혀 타당하지 않다. 하지만 야생동물의 공통적인 위험 행동 중 하나를 살펴보면 궁극적으로 그런 행동이 혜택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필수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박쥐 성체는 원숭이올빼미 같은 포식자를 보면 곧바로 달아난다. 그러나 새끼 상태를 갓 벗어난 박쥐는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목격됐다. 포식자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청소년에게서 그런 행동을 본다면 우리는 그들이 스릴을 추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파나마 소재 스미소니언 열대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박쥐의 그런 행동은 아드레날린 넘치는 스릴을 찾는 청소년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자신은 의식하진 못하겠지만 올빼미에게로 날아가는 박쥐 새끼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는 것이다.생물학자들은 그런 행동을 ‘포식자 탐색’이라고 부른다. 야생의 물고기나 새, 포유류가 ‘청소년기’에 위험을 피해 달아나지 않고 오히려 위험이 도사린 쪽으로 다가가는 행동을 가리킨다. 경험 없고 순진한 그들은 그런 행동을 통해 치명적인 포식자에 관한 중요한 정보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포식자의 전략을 잘 알면 향후의 공격을 피하고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된다.그런 과정을 통해 ‘청소년기’의 동물은 ‘포식자를 모르는 순진무구함’에서 ‘포식자 인식’ 단계로 나아간다. 호르몬과 뇌의 변화가 그런 행동을 유도한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동물의 뇌는 생존 확률을 높이는 행동에 ‘쾌락’을 느끼도록 하는 화학적인 보상을 전달한다. 하지만 ‘포식자 탐색’처럼 아주 위험하지만 중요한 안전학습에는 더 많은 보상을 전해준다.십대가 위조 신분증을 갖고 야밤에 몰래 집을 나가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에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연구를 통해 그 핵심적인 원인을 찾아냈다. 동물의 세계 전반에서 성체가 되기 전의 시기엔 위험에 이끌린다는 사실이다. 그런 ‘위험과의 조우’에서 살아남는다면 앞으로 더 안전해지고 자신감도 더 커진다. 그와 비슷하게 인간의 십대가 금지된 장난에 빠져드는 것도 경고받은 포식자와 대면해 보려는 원초적인 욕구에서 비롯될 수 있다. 모든 종에서 생존의 열쇠는 치명적인 위험과의 조우를 통해 교육적인 혜택을 얻는 것이다.공포영화 관람객과 롤러코스터 앞에서 줄을 선 대기자의 대다수가 청소년인 것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뇌가 공포를 통해 강렬한 쾌감을 얻기 때문이다. 마약중독, 암, 테러, 총격에 의한 죽음에 초점을 맞추는 청소년 소설은 실제 몸을 다치지 않고 그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좋아하는 살인(My Favorite Murder)’ 같은 실화 범죄 팟캐스트가 미국에서 그토록 인기 높은 것도 ‘포식자 탐색’이라는 진화론적 유산 덕분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야생동물의 ‘청소년기’에 관한 연구는 십대인 우리 자녀가 무모한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따라서 이런 이해는 보호 본능과 자녀의 독립성 함양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는 부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안전을 위한 가장 적절한 조언이다. 하지만 무경험에는 그 나름대로 위험이 따른다. 우리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은 앞으로 언젠가 직접 부닥쳐야 할 위험에 미리 어느 정도 노출될 필요가 있다. 그런 이해 없는 부모의 무조건적인 과잉보호가 그보다 더 위험한 행동일지 모른다.- 바버라 내터슨-호로위츠, 캐스린 바워스※ ━ “위험과의 조우 필요하지만 목숨 걸 필요 없어” ‘와일드후드’의 저자 바버라 내터슨-호로위츠와 캐스린 바워스 인터뷰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됐나?바워스(KB) & 내터슨-호로위츠(BNH):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암, 심장병, 우울증, 약물중독 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자연 세계를 연구했다. 그러다가 십대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청소년의 위험한 행동에 관한 이해가 더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소셜미디어의 바다로 뛰어드는 것을 봤다. 개인적으로 연구의 스트레스도 아주 심했다. 달라지는 성문화를 잘 헤쳐가도록 십대 자녀를 안내하는 것도 아주 힘든 일이었다. 또 우리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청소년 불안증과 우울증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도 접했다. 그런 상황에서 성인의 삶에 전혀 준비되지 않은 십대가 더 많아졌다. 우리는 자녀들과 그런 문제에 관해 솔직하게 대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세계의 연구 방법을 현대 청소년이 부닥치는 어려움에 적용했다. 동물의 행동 중 어떤 것이 인간에게 가장 많은 교훈을 준다고 보는가?KB & BNH: 포식자가 무리를 이룬 물고기나 새, 영양을 사냥할 때는 사냥감이 전부 같아 보여 한 마리를 표적으로 삼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무리 중에서 특이한 모습을 한 개체가 눈에 띄기 때문에 가장 먼저 잡혀먹힌다. 그러나 흰색 메기처럼 특이하게 생긴 동물은 동료 메기도 피한다. 무리 중에 그런 친구가 섞여 있으면 포식자의 눈길을 끌어 전체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특이함의 효과’는 인간의 삶에서보다 무리 지어 사는 동물 사이에서 더 크다. 그러나 우리가 인터뷰한 청소년들은 중학교를 무난하게 졸업하는 최선의 조언이 “동료 사이에서 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동물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청소년에게 앞으로 인생에서 도움이 되는 위험 감수를 허용하는 동시에 주변의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KB & BNH: 모든 청소년은 위험을 감수한다. 하지만 그 위험에 이끌리는 정도와 위험을 허용하는 정도는 개인적으로 다르다. 어떤 청소년은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행동에서 스릴을 찾는다. 또 어떤 청소년은 체스 대회나 스포츠, 연극에서 짜릿함을 찾는다. 아무튼 청소년이 본능적으로 갈구하는 것은 바로 그 ‘위험과의 조우’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조우에서 유익한 교훈을 얻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다른 한편으로 무경험은 어떤 상황에서든 더 위험하다. 따라서 경험을 하되 안전한 한도에서 머무는 것이 요령이다. 동료 압력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동료들이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도록 부추기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연구에 따르면 동료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장기적인 안전을 도모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먼바다로 처음 나아가는 연어는 좀 더 경험 많은 동료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포식자에 관해 중요한 정보를 얻어 앞으로 좀 더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다.자녀 보호와 독립심 함양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나?KB: 이 책을 쓸 때 딸아이가 십대였다. 그래서 우리 연구에서 얻은 지식으로 양육 방식을 바꿀 수 있었다. 특히 딸아이와 갖는 대화에 더 개방적이 됐다. 딸아이가 맨해튼에 나갈 때 노심초사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청소년은 본능적으로 위험에 빠져들기 쉽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따라서 “아니, 어디를 간다고? 옷을 그렇게 입고 말이야?” 같은 뻔한 반응 대신 청소년 시기와 세상에 관해 좀 더 심도 있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 책에서 소개한 다른 중요한 인생 기술 하나도 내가 딸아이의 앞길을 안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예를 들어 우리 연구는 청소년의 경우 동료가 곁에 있을 때 더 안전하며, 청소년기에 많은 사람을 접하면 성인이 됐을 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도 딸아이가 많은 친구와 어울릴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지난 9월 초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2019 노벨 컨퍼런스에서 여러분의 첫 저서 ‘주비쿼티’가 소개됐는데 거기서 어떤 메시지를 전했는가?KB & BNH: 자연 세계는 인간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의 해결책을 갖고 있다. 올해의 노벨 컨퍼런스 주제는 ‘생명의 영감을 주는 의학’이었다. 우리가 참가한 ‘주비쿼티’ 심포지움은 여성 건강의 두 가지 중요한 분야 사이의 연결에 초점을 맞췄다. 생식 건강과 심장병을 가리킨다. 심장병은 여성의 주된 사망 원인이다. 한 패널에선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치명적인 혈압을 가진 기린이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는 이유를 다뤘다. 다른 토론에선 배란 문제가 다뤄졌다. 캥거루와 곰이 체내에 배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법을 이해하면 화학요법으로 암치료를 받는 여성이 임신 능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앞으로 계획은? 또 다른 합작 프로젝트가 있는가?KB & BNH: 그렇다. 인간과 동물의 생활주기에 관해 배울 게 너무 많다. 특히 우리가 관심 있는 분야는 노화의 이유, 또 고령이 될 때 종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등이다.- 메러디스 울프 샤이저 뉴스위크 기자

2019.10.0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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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이라크 전쟁?

산업 일반

미국이 잘못된 정보로 이라크를 침공한 지 16년, 트럼프 정부가 이란에서 또다시 똑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격분했다. 평소 아침 습관대로 백악관 관저에서 TV를 시청하던 중 자신의 역점 정책 중 하나인 이란 캠페인을 휘하의 정보기관장들이 저격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고위 국가안보 담당자 2명과 함께 이슬람 공화국 이란이 여전히 핵무기를 확보하려 애쓰며 이웃과 서방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한다고 2년 전부터 주장해 왔다.그런데 지금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해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의 미국을 비롯한 6개국과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기로 약속했던 합의문 내용대로 움직인다고 코츠 국장은 말했다. 그뿐 아니라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미국이 합의에서 한 약속을 어기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다시 발동한 제재를 풀지 않는다면 이란이 프로그램을 재가동하기로 결정할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30일 코츠와 해스펠 국장의 말이 ‘틀렸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어쩌면 정보계가 학교를 더 다녀야 할 듯!’ 그리고 계속해 이란에 비난을 퍼부었다. 그 뒤 며칠 사이 그는 CBS방송·뉴욕타임스와 이례적인 인터뷰를 갖고 이란을 “세계 제1의 테러 국가”로 부르면서 자신이 중동에서 물려받은 “모든 문제”를 이란 탓으로 돌렸다. 놀라운(그리고 전혀 지지할 수 없는) 주장이다. 그는 자신의 정보기관장들을 가리켜 “이란의 위험 문제에선 극히 수동적이고 순진하다”고 평했다. 그는 그 뒤 이란에 대한 비밀공작의 확대 나아가 군사대결까지 암시했다. “바로 한 주 전까지 우리가 이란에 어떤 일을 하려 했는지 말해줄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설명했다.기억력 좋은 많은 관측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서 17년 전의 결정적인 순간을 떠올리며 섬뜩함을 느꼈다. 당시 역시 공화당 소속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악의 축’ 국가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미국 상공을 이라크의 ‘버섯구름’으로 덮을 무기를 개발하기 직전이라고 비난했다. 다음 해인 2003년 부시 대통령은 20만 명에 육박하는 미군 병력을 이라크에 파견해 핵·화학·생물학 무기를 찾아내도록 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테러 조직 알카에다와 연관됐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었다. 그 후 10년에 걸쳐 파멸적인 점령이 이어져 미국과 중동 전체가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린다.베테랑 중동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오판으로 미국이 또 다른 지역적인 재앙으로 끌려들어가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번에는 이란이 그 상대다. CIA에서 오래 근무했던 한 전 고위 공작원은 이란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확한 인식을 두고 베트남 전쟁을 정당화하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반복적으로 보고된 거짓 정보에 비유했다. CIA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며 익명을 요구한 그는 “베트남에 대한 비유로 과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보기엔 이란에 관해 우리 자신과 미국민에게 거짓을 말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란이 내일 우리를 공격하거나 죽이지는 않는다. 그들의 말은 전투적이지만 미국과 정면 대결할 생각은 없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차스 프리먼 전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미국 대사는 “그들은 압박 받을수록 더 저항한다”며 “대놓고 압박하며 실수를 범할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모두 우리 탓으로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와 테헤란의 강경파들 간에 “일종의 위험한 파트너십”이 형성됐다는 의미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실수와 이란의 과잉반응이 아무도 원치 않는 무력대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그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전 고위 국가안보 당국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는 이란에 대한 극적인 조치가 검토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암시가 의심스럽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러나 정통한 관측통들은 트럼프가 취임하면서 핵 협정을 파기한 이후 정책의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위협과 더러운 술수를 주고받은 40년간의 전쟁에서 위험한 챕터를 새로 열지 못해 안달난 듯했다. 그리고 미국 특히 친이스라엘 강경파들이 이를 후원한다. 프리먼 전 대사는 이를 “제스처 외교정책”으로 부른다.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상대방에게 어려움을 안겨주지만 대단한 목적의식은 없다”고 그는 뉴스위크에 말했다.트럼프 대통령의 무기로는 제재, 반이란 망명자 단체 지원, 이스라엘의 시리아 내 이란 기지 공격 재량권 부여 등이 있다. 나머지 공세로는 2016년 미국 대선 캠페인 중 러시아가 미국을 상대로 구사했던 소셜미디어 조작을 포함한 비밀 공작 같은 그림자 전쟁이 있다.당국자들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말마따나 “이란이 안정을 저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과 관련된 일반론적 대화에는 기꺼이 응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밝히려 하지 않는다. 그런 조치는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대통령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등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조언자 3명을 포함한 오랜 이란 강경파들의 지지를 받아 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모두 쿠슈너 고문과 막역하며 미국이 이란에 대해 더 공세적인 정책을 펼치도록 오래 전부터 로비를 벌여 왔다. 예컨대 이란의 핵·군사·정보 시설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공격 등이다.트럼프 정부를 포함한 이전 미국 정부가 제재의 고삐를 조일 때마다 이란 정권도 나름대로 위협과 폭력으로 대응해 왔다는 점이 문제라고 여러 전문가는 말한다. 그리고 갈수록 빨라지는 공격과 반격이 어디로 향하는지 양쪽의 어느 누구도 모르는 듯하다.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초 이라크에 병력을 남겨 이란을 모니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또 다른 파문을 일으키면서 지역 우방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CBS 방송에 “계속 지켜볼 것”이라며 “문제가 생긴다면, 누군가 핵무기나 다른 뭔가를 만들려 한다면 행동에 나서기 전에 우리가 먼저 알게 된다”고 말했다. 바르함 살리 이라크 대통령이 곧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뉴스매체를 통해 “자기들 문제를 이라크에 떠넘기지 말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했다. 미국은 또한 새로운 제재의 일환으로 전력난에 시달리는 이라크에 이란으로부터의 에너지 구입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해 이라크 정부와 관계를 한층 악화시키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이 트럼프 정부가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지에 관해 혼란만 가중시켰다. 이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후폭풍을 몰고 올 소지가 있다. 이란 분석가인 알리 알포네흐는 “미국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며 “트럼프 정부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온통 엇갈려 이란이 워싱턴 정부의 의중을 읽을 길이 없다”고 말했다. 알포네흐 분석가는 이란의 앙숙 사우디의 후원을 받는 워싱턴 DC 소재 아랍걸프국가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다.1979년 시아파 성직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망명 생활에서 돌아와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이슬람 혁명을 이끈 뒤로 이란은 두려움과 매혹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사반세기 전 CIA의 후원으로 영-미 석유 그룹의 이해를 대변하는 쿠데타가 일어나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의 사회주의 정부를 전복시켰다. 이슬람 혁명은 그 쿠데타를 사실상 뒤엎었다. 이란 대학생들이 미국 대사관에 침입해 50여 명의 미국인을 인질로 잡으면서 워싱턴과 테헤란의 관계가 더욱 경색됐다. 444일 동안 그 사태 관련 뉴스 보도가 TV 화면을 도배했다. 그 뒤로 이란은 불량국가로 낙인 찍혔다.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란 정권을 ‘테러 후원국’으로 지정하고 1981년 이라크의 이란 침공을 지원했다. 그 전쟁은 1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이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1989년 호메이니 사후 그의 후계자 아야톨라 알리하메네이는 먼저 1982년 이스라엘의 침공에 대한 시아파 레바논의 저항을 후원함으로써 이란의 지역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로 인해 막강한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창설돼 미국 목표물을 겨냥한 테러 공격을 벌였다.그 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인해 이란 프락치들이 바그다드에서 정권을 잡았다. 2011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민중봉기에 직면했을 때 이란과 헤즈볼라가 결정적인 지원을 했다. 지난 2월 11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혁명 40주년을 맞아 이란의 군사력을 찬양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우린 우리의 방위력 향상에 대해 누구의 허가도 받지 않았고 앞으로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지역·글로벌 안정에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보다 더 큰 위협으로 간주하며 그들을 억제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는 1978년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알포네흐 분석가가 지난해 가을 ‘롱 워 저널(Long War Journal)’에 썼듯이 이란도 망명한 재야 인사들의 암살단을 해외 파견하는 등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의 불안정한 시절로 시계를 되돌리려 애쓰는” 듯하다. ‘롱 워 저널’은 친이스라엘 성향의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다.이란의 첩보기구들은 1980년 공작에 돌입한 뒤 지체 없이 국내외에서 이란의 적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초창기 해외 공작 중에는 미국 워싱턴 DC 외곽에서 벌어진 망명 재야 지도자의 암살도 있었다. 미국인으로 혁명수비대에 자원해 다우드 살라후딘이라는 이름을 받은 암살범은 1975년작 첩보 스릴러 ‘콘돌(Three Days of the Condor)’의 유명한 장면을 흉내 내 우편배달부로 위장해 표적의 거주지 초인종을 울린 뒤 그가 문을 열자 총격을 가했다.테헤란 정부는 초기 몇 년간 해외로 망명한 적들을 계속 뒤쫓아 정권 전복 음모를 꾸미는 망명 관료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했다. 그러나 몇 년간 비교적 잠잠하던 이란 정보부가 다시 해외 공작을 강화하고 있다. 2015년과 2017년 네덜란드에서 반체제 인사들을 제거한 혐의를 받았다.지난해 암살 공격의 템포가 빨라지면서 범위가 확장됐다. 유럽 각지의 정보기구들이 해외의 반이란 단체들을 겨냥한 암살 음모를 여러 건 적발했다. 특히 무자헤디네할크(MEK)의 정치 조직인 이란저항국민회의(National Council of Resistance of Iran)가 대표적인 표적이다. 한때 미국에 테러단체로 낙인 찍혔던 이 준(準) 마르크스주의 이란 망명자 단체는 오래 전부터 미국 강경파들의 후원을 받아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를 맡은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2017년 공개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기세를 올렸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지난해 6월 MEK가 프랑스 파리에서 주최한 집회에 참가해 연설했다.유럽 당국에 따르면 이란은 참석자들 사이에 고성능 폭탄을 설치하려 음모를 꾸몄다. 공인 외교관 신분의 이란인 아사돌라 아사디를 독일 당국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체포하면서 음모가 발각됐다. 당국은 아사디가 강력한 폭발물인 TATP 500g을 앤트워프의 이란 태생 벨기에인 2명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 밖에도 음모와 관련된 이란 태생 용의자 3명이 프랑스에서 체포됐다. 유엔의 이란 대변인은 그 음모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며 그것은 MEK나 이스라엘이 이란을 중상하려고 꾸민 이른바 위장술책(false flag operation)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지난 2월 초 유럽 첩보 당국은 그 음모와 관련해 아사디와 테헤란 정부 간의 문자 메시지 또는 대화 기록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미국에도 이란의 손길이 뻗치고 있었다. 지난해 8월 미국 사법부는 뉴욕과 워싱턴 DC 행사에서 MEK에 대한 정탐·침투 음모 혐의로 캘리포니아주의 남성 2명을 기소했다. 한 명은 미국 영주권을 가진 이란 국적자, 또 한 명은 이중 국적자였다. 연방수사국(FBI)은 또한 그들이 시카고대학 학생회관인 로르 차바드 하우스를 포함해 유대인 표적들을 정탐했다고 전했다. 학내 유대인 단체들은 이스라엘 강경파 정부의 후원단체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란의 주적은 여전히 MEK다. 테헤란 정부가 미국·유럽 그리고 페르시아만 국가들에 잠복세포 조직을 구축해 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런 표적들을 공격하려 한다고 일부 전문가는 말한다.조지타운대학 에드먼드 A. 월시 외교대학원의 대표적인 테러리즘 전문가인 브루스 호프먼은 이란은 “현실과 동떨어진” MEK에 “광적으로 집착한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MEK는 체제의 존립을 위협하지만 다른 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이란 전문가인 무함마드 사히미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다양한 반정부 인사와 단체를 지원해 왔다. 이란 내 쿠르드족, 극우 학생 단체들, 군주제 지지자 등이 대표적이다(사망한 팔레비 국왕의 아들로 워싱턴 DC 교외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레자 팔레비가 군주제 지지자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란의 주요 표적은 MEK인 듯하다.CIA에서 28년간 근무하며 중동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고 은퇴한 루이스 루에다는 다소 기이한 상황으로 보는 듯하다. MEK는 “이란 내 지지 기반이 없다. 모두가 그들을 미치광이로 본다.” 치열한 이란-이라크 전쟁 때 이라크 편을 들어 이란 내에선 혐오 대상인 MEK를 트럼프 정부가 후원하자 이란 정권이 분명 움찔했을 것이다. “이란은 미국·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가 MEK에 돈을 쏟아부으며 그들을 내세워 자국의 정정을 뒤흔들려 하지 않나 걱정한다”고 루에다 전 요원은 뉴스위크에 말했다.워싱턴 DC 심장부에서 일어날 뻔했던 대형 폭탄 테러 미수 사건에도 IRGC가 연루됐다. 2011년 미국 당국은 고급 레스토랑 ‘카페 밀라노’에서 아델 알주베이르 당시 사우디 대사를 암살하려던 음모를 적발했다. 미국과 외국의 고위 관료, 로비스트, 언론인이 즐겨 찾는 부자 동네 조지타운의 식당이다. 이란과 미국의 이중 국적자인 만수르 아르밥시아르가 체포돼 훗날 IRGC의 정예부대인 쿠드스군(Quds Force) 소속인 사촌의 요청으로 음모를 꾸몄다고 유죄를 인정했다. 그 음모는 아르밥시아르가 고용한 멕시코인 암살범이 미국 마약단속국(DEA)의 비밀 정보원으로 드러나면서 조기에 발각됐다.밀라노 레스토랑 음모에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다. 이란 핵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폭탄 테러로 알주베이르 대사뿐 아니라 워싱턴 DC의 주요 인사 수십 명이 숨졌다면 협상이 깨졌을 것이다. 협상 좌초를 원할 만한 세력으로 IRGC의 강경파들이 있다. 루에다 전 요원은 “그들은 서방과 이란 간에 불신을 조장하고 긴장을 확산시키는 데만 관심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이 이란 지도자들을 음모의 배후로 지목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반사적으로 군사 공격을 했을 것”이라고 오바마 정부의 전 고위 국가안보 당국자가 익명을 조건으로 말했다.전 세계 위협에 관한 미국국가정보국의 최신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다른 주요 적국들과 마찬가지로 이란도 은밀히 사이버공작을 펼친다. 미국 사법부가 지난해 3월 기소한 바에 따르면 6년 전 IRGC와 연결된 해커들이 미국의 144개 대학과 21개국 176개 대학에서 다량의 학술 자료와 지적재산을 훔쳐냈다. 사법부는 기소 사상 최대 규모의 국가 후원 해킹 중 하나라고 말했다. 미국 국방기구들과 밀접한 독립적 연구조직 랜드 연구소에 따르면 이란 해커들은 ‘기밀로 분류되지 않은’ 미국 해군-해병대 인트라넷(Navy-Marine Corps Internet)뿐 아니라 미국 은행 사이트들, 석유 대기업 사우디 아람코의 컴퓨터, 공화당의 고액 기부자이자 친 이스라엘 강경파 셸던 아델슨 소유의 카지노 회사 라스베이거스 샌즈에도 침투했다.그 뒤 11월 말에도 사법부가 이란인 2명을 기소했다. 애틀랜타주와 뉴저지주 뉴어크의 컴퓨터 시스템뿐 아니라 병원과 헬스케어 기관 등 약 200개 표적에 대한 일련의 랜섬웨어(사용자의 파일을 인질로 잡는 악성 프로그램) 공격 혐의였다. 용의자들은 아직 체포되지 않았다.이란은 이를 포함한 앞서의 공격에 아무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악명 높은 스턱스넷 바이러스에 대한 보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2009년 께부터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나탄즈 핵시설의 수천 개 원심분리기를 통제 불능으로 만든 합동 작전이다. 그 뒤로 이란의 시스템을 공격하는 바이러스가 최소 3개 이상 추가로 발견됐다.이란은 곧잘 ‘미국이 먼저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분명 CIA는 혁명 첫날부터 이란 정권에 침투해 정정불안을 초래하려 했다. 1979~1980년 인질위기 중 지금은 고인이 된 CIA 위장의 대가 토니 멘데스가 이란에 몰래 잠입해 미국인 외교관 6명을 구해냈다. 이 작전은 훗날 ‘아르고’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그러나 CIA의 기록 중 알려진 것은 대부분 커다란 실패로 점철됐다.리서치 단체 다이사트 컨설팅의 마한 아베딘 소장은 베테랑 이란 정권 분석가다. 그의 2007년 설명에 따르면 1989년까지 “이란 내 거의 모든 미국 첩보 조직이 발각돼 와해되고 말았다. 이들 네트워크 붕괴의 최대 요인은 미국의 무능(이란의 유능함)이었다.”야후 뉴스에 따르면 그 뒤 2009~2013년 CIA와 요원들 간 비밀 통신의 오류로 인해 이란(그리고 중국)에서 CIA 정보원 수십 명이 적발돼 처형됐다. 2011년에도 또 다른 실수가 발생해 이란 발표에 따르면 CIA 스파이 용의자 12명이 체포됐다. 당시 아베딘 소장은 CIA의 ‘요원 모집과 관리 면에서 낮은 품질관리 기준’으로 인해 이런 재앙이 발생했다고 썼다.그 뒤 클린턴 정부 시절 표면상 핵프로그램을 좌초시키려는 목적으로 위조된 핵무기 부품 설계를 이란에 제공하려다가 실패한 멀린 작전(Operation Merlin)도 있었다. 제임스 라이슨 전 뉴욕타임스 기자의 2006년 저서 ‘중앙정보국과 부시 정부의 비밀 역사(State of War: The Secret History of the CIA and the Bush Administration)’에 따르면 그것이 오히려 그들의 프로그램에 박차를 가했을지도 모른다.그런 식으로 서로 치고받는 공방전이 한없이 계속된다. 트럼프 정부는 이란을 더욱 압박하겠다며 갈수록 강경 발언의 수위를 높여 왔다. 이란의 시리아 내 쿠드스군과 로켓 배치, 예멘 내 같은 시아파 후티족 반군에 대한 은밀한 지원, 그리고 최근의 탄도미사일 테스트를 이유로 거론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월 13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국방부에 이란 공격 옵션 리스트 작성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한 전 고위 정부 당국자는 그 소식이 “분명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고 WSJ에 말했다. 같은 날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페르시아만의 이란 ‘쾌속정’ 폭파 계획을 국가안보팀에 반복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그런 폭로는 외교정책 관계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이란에 불안을 유발하려고 의도적으로 그런 정보를 흘렸을 공산이 크다.CIA에 34년간 근무하며 2008년부터 2017년 은퇴할 때까지 이란에 대한 미국의 첩보작전과 정책을 이끌었던 노먼 룰은 트럼프 대통령이 압박을 계속해야 한다며 서방의 대응이 “상당히 미온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란 제재 강화가 바람직하다고 뉴스위크에 말하며 이란의 마한항공이 테러 활동에 이용된 혐의로 최근 착륙허가를 취소하기로 한 독일의 결정에 지지를 보낸다. 룰은 “군사행동은 언제나 마지막 옵션이 돼야 하지만 이란 정부가 자신들의 행동에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트럼프 대통령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또 다른 균열을 원치 않는 한 적어도 현재로선 군사공격 방안은 고려되지 않는 듯하다. 우방들이 이란의 음모에 깊은 반감을 나타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없이 이란 핵협정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쓴다. 새로운 미국 제재를 피해 이란과 거래하려 대안적인 결제 시스템을 구축할 정도다. 트럼프 정부의 위협 앞에서 핵협정의 앞날은 불확실하다.한편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1월 중 상당 기간 중동 전역을 돌며 시리아에서 “이란군을 마지막 한 명까지” 몰아내는 데 대한 지지를 끌어모았다(시리아에서 이란에 대한 워싱턴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트럼프 대통령의 미군 철수 지시와는 또 다른 행보였다). 또한 “이란이 안정을 저해하지 못하도록” 할 목적으로 폴란드에서 개최하는 컨퍼런스를 홍보했다. 하지만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강경 메시지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반발에 부닥쳐 집회의 목표 수위를 낮춰야 했다.그러나 미국 정부가 구두탄만 날리는 건 아니다. 미국은 이라크 쿠르드족 자치지역에서 도청 시설을 운영하며 그 지역과 터키에서 이란으로 요원들을 파견해 왔다고 소식통들이 뉴스위크에 전했다. 노련한 관측통들은 또한 지난해 초 2건의 이란 위성 미사일 발사 실패에 미국 첩보부가 개입했다고 의심한다.클린턴 정부 시절 국제안보문제 담당 국방차관보로도 일했던 프리먼은 미국 당국자들이 북한 미사일 프로그램을 파기했다고 사실상 자랑해왔기 때문에 “이란에도 그런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고 평한다. 그는 또한 트럼프 정부가 망명자 단체들을 이용해 이란 내에서 게릴라 공작을 펼친다고 의심한다. 중국과 쿠바 혁명 이후 초기 몇 년 간 미국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수법이다.그것은 “멍청한” 작전이라고 그는 말한다. CIA의 일반 요원들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 첩보 소식통은 뉴스위크에 귀띔한다. “이란이 나쁜 짓을 하지만 그들과 전쟁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전쟁을 벌일 만한 가치가 없다.”미국이 공격하면 중동지역의 일부 미국 우방이 멀어지고 유엔안보리의 비난을 촉발하고 이란 반체제 인사들까지 혁명정부 아래로 뭉칠 것이라고 2006년 은퇴한 전 CIA 고위 중동 전문가 에밀 나클레는 말한다. 그는 친 CIA 웹사이트 ‘더 사이퍼 브리프(The Cipher Brief)’에 올린 글에서 ‘지역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이란을 침공하는 것은 광기의 극치’라고 썼다.이란은 미국의 존재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CIA의 고위 공작원 출신인 나클레는 말한다. 적을 제거하기 위한 그들의 무자비한 해외 공작도 미국을 겨냥하기보다 방어적인 성격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이슬람국가는 모집하는 대원들에게 할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어떻게든 미국인과 그 우방 국민을 살해하도록 촉구한다.그는 이스라엘이 핵 문제를 과대 포장한다고 비난한다. “매년 한 두 명의 이스라엘 고위 정보 당국자가 워싱턴을 찾아가 ‘이란이 1년 뒤에는 핵무기를 손에 넣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 행동을 되풀이하다보면 마침내 누군가 ‘10년 동안이나 같은 말을 들어왔는데 왜 아직 그들에게 핵무기가 없소?’라고 묻는다.”그는 중동 전역에 오해로 발생해 해결되지 않은 분쟁이 그렇게 많은 데 넌더리 난 듯 불만스러운 한숨을 내쉰다. 그는 이란과 좋은 결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트럼프 정부를 이란과의 분쟁으로 끌어들이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란은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에 잠재적인 위협이며 (핵무기로 이란을 지도상에서 지울 수 있는) 이스라엘에는 전통적 안보 위협”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목숨이 걸려 있다면 그들도 군대를 움직일 수 없다.”그는 “이란 입장에 서서 그들의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칫 공개적인 분쟁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는 “양쪽에 오판의 소지가 있다”고 말한다. “사고는 일어나게 마련이다. 누군가 전쟁할 생각 없이 한 일로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제프 스타인 뉴스위크 기자

2019.03.1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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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표 문화가 다양성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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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국적의 무슬림 반체제 여성 작가 이르샤드 만지, “망신주기와 탓하기 그만두고 상대방의 말 경청하라” 백인 남자가 술집에 들어선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운동 슬로건)’라고 적힌 야구모자를 썼거나 프로야구팀 보스턴 레드 삭스의 티셔츠를 입었거나 십자가상 목걸이를 찼을 수 있다. 어쩌면 팔 전체에 문신을 했거나 코걸이를 걸었거나 야물커(유대인 남자가 머리 정수리 부분에 쓰는 동글납작한 모자)를 썼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꾸몄든 그 술집에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또는 잠재의식적으로 그가 자신들의 편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단상이다.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부족주의(tribalism)를 추구한다. 소속된 부족(집단)의 이익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현상이다. 미국 건국 이래 그런 부족주의를 감내해야 했던 쪽은 당연히 그 사회에서 처음 와서 뿌리를 내려야 하는 서러운 소수민족이었다. 그러나 캐나다 국적의 무슬림 여성 이르샤드 만지는 신저 ‘나에게 꼬리표를 달지 마(Don’t Label Me)’에서 자신과는 다른 사람에게 꼬리표를 붙이는 건 ‘혐오스러운 백인 남성’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꼬리표를 붙인다. 만지처럼 다양성을 주창하고 옹호하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만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소위 ‘진보파’는 많은 미국인을 인종차별주의자니 레드넥(rednecks, 교육 수준이 낮고 보수적인 미국 시골 주민을 비하하는 표현)이니 하며 꼬리표를 달았다”고 말했다. “진보파의 조롱을 받은 그들 대다수가 그에 대한 보복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만지는 자신이 말하는 ‘정직한 다양성’을 주창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만든 ‘후츠파 어워드(Chutzpah Award, 용기와 신념이 투철한 여성에게 매년 주는 상)’를 받았고, ‘도덕적 용기 프로젝트(moral Courage Project)’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무슬림이자 레즈비언이고, 진보적 이슬람 옹호자로서 주류 이슬람의 코란 해석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그녀는 지난 30여 년 동안 늘 자신에게 붙은 꼬리표를 떼어내려고 발버둥쳤다. 경직된 정체성에 매몰된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고, 다른 사람에게 도덕적 용기를 내라고 지도했으며(“두려움 앞에서도 옳은 일을 하라”), 트럼프 대통령의 선출로 드러난 미국 사회의 부족주의 고조를 비판했다. 하지만 결국 얻은 건 실망이었다. 만지는 ‘나에게 꼬리표를 달지 마’에서 “나 자신의 부족 울타리에서 벗어나려다가 오히려 내가 비관주의에 빠져버렸다”고 털어놓았다.다행히 실명한 늙은 구조견 릴리(만지는 “나의 멘토이자 고문자였다”고 말했다)가 그녀에게 탈출구를 열어줬다. ‘나에게 꼬리표를 달지 마’는 그 둘 사이의 가상 대화로 ‘부정직한 다양성(백인·흑인·남성·여성·성소수자·정상인 등 생물학적인 특징에 집착하는 분류를 일컫는다)’과 그에 따르는 호전적인 문화(약간만 잘못된 질문을 하면 완전히 매도당하는 현상)를 거부하는 열정적이고 때로는 재미있으며 설득력 있는 주장을 담았다. 뉴스위크는 ‘꼬리표’ 문화와 관련해 만지를 인터뷰했다. ‘나에게 꼬리표를 달지 마’를 집필한 계기는?지금까지 나는 늘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는 상징으로 인식됐다. 그래서 사회에서 실제로 다양성이 어떻게 실행되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다양성을 수용하는 행위가 꼬리표 달기로 변질돼 갔다. 큰 걱정이다. 초기 미국 정착민이 한 행동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인을 집단으로 묶어 분류하고 그 집단을 계급으로 나눠 가치를 매겼다. 과연 그런 사고방식의 부활을 사회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책에서 왜 구조견 릴리와의 대화라는 방식을 도입했나?나는 자라면서 개를 아주 무서워했다. 릴리를 분양 받아 마침내 그 두려움과 마주하면서 나는 두려워할 합당한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완전히 쓸데없는 두려움이었다.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두려워할 때도 그렇다.릴리는 독립심이 아주 강하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 마냥 코를 대고 내가 따라오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늙은이’나 ‘장님’ 같은 꼬리표는 릴리를 정확히 묘사하는 단어가 아니라는 또 다른 교훈이다. 릴리와 가까워지면서 나는 틈만 나면 릴리에게 인간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에 관해 말했다. 그럴 때마다 릴리는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묻는 듯 머리를 갸우뚱했다. 그런 릴리를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 때로는 내 말을 반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미국의 복고적인 정치 분위기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게 바로 그런 숙고다.요즘 뉴스는 모든 측면에서 상대방에게 망신을 주고 상대방을 탓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사사건건 승강이를 벌이는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이 그렇다. 일한 오마르(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연방하원에 입성한 최초의 무슬림 여성 민주당 의원으로 미국 정치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유대인 단체를 비난했다)와 이스라엘이 그렇다. 또 버지니아주 정치인들과 흑인들이 그렇다(버지니아주 주지사 등 몇몇 정계 인사들이 과거에 흑인분장을 하고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비난 받았다). 또 “흑인을 죽이고 싶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 사회가 이런 비판과 비방을 넘어 건설적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다고 보나?상황에 따라 반응도 달라야 한다. 하지만 망신주기와 탓하기가 자동적인 첫 반응이 돼선 안 된다. 역풍을 일으킬 뿐이기 때문이다. 망신주기는 상대방을 비하하는 행위다. 망신주기로는 상대방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 오히려 상대방을 격분시켜 복수를 부추긴다.우리가 얻은 사회적 이득이 오래가려면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수용해야 한다. 우리 입장을 지키면서도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반대 견해를 경청하고 진지하게 질문해야 한다. 상대방이 왜 나와 다르게 생각할까? 어떤 경험에서 나온 견해일까? 자신의 말을 상대방이 들어주길 원한다면 먼저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 심리의 기본 원칙이다.지난 1월 켄터키주 코빙턴 가톨릭고교에 다니는 백인 학생(트럼프 대통령이 즐겨 쓰는 붉은색 MAGA 모자를 썼다)이 미국 원주민 운동가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그 학생이 백인우월주의자로 비난 받은 사건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양측 모두에게 잘못이 있는 사건의 한 장면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진보 진영은 그런 맥락이 밝혀지기도 전에 무조건 그 학생을 맹렬히 비난했다.우리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건이다. 인간은 생물학의 지배를 받는다. 난 뇌가 우리를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인간에게 연민을 느끼게 됐다. 책에서 나는 릴리에게 사람이 아니라 개로 태어났기 때문에 총격을 받지 않는 행운을 누린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의 악성 댓글은 용서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꼬리표를 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선택이다. 코빙턴 가톨릭고교생의 경우 진보 진영은 전후 맥락을 모르면서 한 장면만 보고 SNS를 통해 무조건 그 학생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렇게 꼬리표를 달아야 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 선택은 그의 피부색이나 성별, 또는 그가 쓴 모자를 근거로 이뤄진다. 그건 진보 진영이 다양성을 위해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자멸적인 행동일 뿐이다.‘부정직한 다양성’이 백인을 비하한다고 지적했는데.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나는 미국 중서부에서 출판홍보 투어를 한 뒤 뉴욕으로 돌아가 대학에 있는 동료와 중서부 독자들의 질문에 관해 얘기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질문에 관해선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 이슬람 공포증)를 얼마나 자주 겪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겪었는지 안 겪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오로지 얼마나 자주 겪었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는 중서부 미국인(주로 백인을 가리킨다)을 이슬람 혐오주의자로 묘사함으로써 자신이 다양성을 지지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고방식이 오히려 다양성을 해친다고 내가 설명하자 그도 자신의 편견을 인정했다.책에서 지적한 젊은 흑인 남성 두 명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그들은 경찰이 비무장 흑인들을 살해한 사건으로 촉발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저항 운동 때문에 오히려 소외당한다고 느꼈다. 그들은 경찰과 대화함으로써 인종에 근거한 잔혹행위를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견해는 현지 흑인 운동권 지도자에 의해 묵살됐다. 그 지도자는 경찰과 대화하는 것이 흑인사회를 배신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흑인 생명도 소중하다’에서 활동하는 운동가 중에는 백인과의 대화를 환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 외 다른 사람들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백인과 대화했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그가 존경 받을 수 있는 접근법을 취했지만 결국 암살당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다. 흑인 민권운동이 도덕적 권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킹 목사를 비롯해 당시 운동가들이 백인에게 존경심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존경 받은 게 아니라 상대를 존경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킹 목사는 많은 백인의 존경을 받지 못했다. 그는 증오의 대상이었다.또 나는 민권운동이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킹 목사의 메시지가 정말 옳았다. 그는 모든 사람을 ‘우리’와 똑같이 대하도록 운동가들을 훈련했다.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사람을 판단하라는 것이었다. 그런 도덕적 권위 덕분에 그 메시지가 결국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요즘은 갈수록 많은 사회운동가가 무조건 백인을 비난한다. 그래서 좋은 의도를 가진 많은 백인이 배신당하고 사기당했다고 느꼈다. 그들이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질문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백인이라고 피부색으로만 판단 받는다면 구태여 대통령의 인격에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첨단기술이 사회의 분열과 미치광이 행동을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많지만 당신은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는데.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 내면에 미치광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외부나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다. 물론 기술업체는 수많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를 동원해 우리가 균형 잡힌 사고를 하지 않도록 부추긴다. 그들은 알고리즘을 조작해 우리가 우리의 편파적인 생각과 일치하는 콘텐트만을 소비하도록 유도한다. 우리가 로그온하는 순간부터 알고리즘이 우리를 조종한다. 하지만 그들이 이용하는 것은 우리가 쉽게 얻을 수 있는 쾌락을 추구하려는 경향이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우리 견해를 인정하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둘러싸일 경우 승리감에 도취되기 쉽다. 하지만 그런 도취감은 금방 사라져 그런 경험을 더 많이 갈구하게 된다. 그러면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담을 쌓고 서로 비슷한 사람들 속에서 안주하면서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을 물리치게 된다.그렇다고 소셜미디어를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로그온했을 때 자신의 의식 있는 정신을 콘텐트에 속박시키지 말아야 한다. 릴리가 책에서 나를 상기시키듯이 난 트위터의 ‘암캐’가 아니다. 질문을 많이 하라고 장려하는데 그러면 인종차별주의자니 무식하다느니 위험하다느니 같은 꼬리표가 붙기 쉽지 않은가?백인이 아닌 젊은이들과 대화할 때 그들은 흔히 ‘사람들이 내 삶에 관해 질문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을 올바로 교육하는 게 내 일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면 난 그들에게 ‘변화를 원하는가?’라고 되묻는다. 그들은 당연히 원한다고 말한다. 난 ‘그렇다면 올바른 교육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준다. 사실이 그렇다. 질책만 하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다.다른 사람의 말을 더 잘 들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지만 스마트폰을 손에 달고 성장한 세대에게 전화기를 끄고 얼굴을 맞대며 대화하라고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난 그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감정적인 방어벽만 높아질 뿐이다. 실제로 감정은 의사결정에서 우리 대다수가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한다. 따라서 난 그들에게 그런 직설적인 훈계를 하지 않고 그냥 소셜미디어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 묻는다. 또 그들에게 기술업체가 하루 24시간 사용자를 추적하고 조종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렇게 조종당해도 좋은가?’라고 나는 묻는다.사람들의 생각은 언제나 다를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하지만 그런 견해차를 감싸안을 능력도 우리에게 있다. 요즘 많은 학교가 상대에게 공격적이지 않게 접근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와 마찬가지로 학교는 학생에게 상처 받지 않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내가 인간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면 그건 너무 적게 바라는 것이 더 나쁘기 때문이다.- 메리 케이 실링 뉴스위크 기자

2019.03.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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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히어로, 르브론 제임스

산업 일반

스테판 커리보다 연봉 적지만 소셜 미디어 팔로어 수는 가장 많아 … 철저한 스포츠 정신과 끈기, 그리고 봉사활동으로 ‘스포츠 아이콘’ 자리매김 폴 사이먼은 자신의 노래 ‘The Boy in the Bubble’에서 ‘세대마다 영웅을 한 명씩 팝차트 위로 밀어 올린다’는 가사를 읊조린다. 각 세대의 아이콘이 교체될 때마다 나름의 독특한 목소리, 그들만의 언어, 반항적인 이미지가 얼마나 요구되는지에 관한 관측이자 한탄이다. 오래 되고 쿨하지 않은 것을 냉소적으로 폄하하는 한편 반항적으로 새롭고 쿨한 것을 선언하고 규정하려는 욕구는 세탁세제만큼이나(품질이 향상된 신제품!) 음악·문학·정치 그리고 스포츠에서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모든 시대는 불멸의 영웅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 문화의 가장 걸출한 영웅들을 면밀히 탐구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시대적 가치를 반영할 뿐 아니라 그 가치가 우리를 어떤 미래로 인도할지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현 세대의 가장 저명한 농구 영웅은 르브론 제임스(34)다. 그리고 그는 분명 두드러진 새로운 언어를 대표한다.제임스는 스포츠계의 반짝이는 샛별은 아니다. 그는 발랄한 십대 아이돌도 오만한 유튜브 ‘인플루언서’(SNS의 유명인)도 아니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2회), 마이애미 히트, LA 레이커스에서 선수 생활을 한 미국 프로농구(NBA) 16년차 베테랑이다. 남편이자 아빠이며 신체 능력과 지적 능력이 절정에 달한 남자처럼 고도의 경기력을 발휘하지만 관절통 치료제 광고 모델로 나설 날도 몇 해 남지 않았다. 그는 수년간에 걸쳐 하루하루 승리를 일궈내며 스포츠 아이콘이 됐다. 현재 맹활약을 펼치는 탁월한 선수들이 많은데 왜 제임스를 선택했냐고? 스테판 커리가 연봉을 더 많이 받고(제임스의 연봉은 3500만 달러인 반면 그는 3700만 달러를 받는다), 지난해 커리의 저지 셔츠는 NBA의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나 소셜미디어 팔로어 수는 제임스가 1억430만 명으로 가장 많다(커리는 4200만 명). 3점 슛과 자유투 성공률은 케빈 듀란트가 더 높지만 다른 대다수 항목에선 제임스가 그를 능가한다. 그의 높은 성적은 일정 부분 커리와 듀란트보다 오래 선수 생활을 한 데서 비롯된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제임스를 뛰어넘을지 모르지만 현재로선 그를 NBA의 최고 선수로 꼽는 사람이 많다.제임스의 대표적인 통산 실적으로는 NBA 우승 3회, NBA MVP 4회, NBA 올스타 출전 15회와 기타 다수의 수상과 선발 경력이 꼽힌다. 그러나 그가 최고로 여겨지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제임스는 기복 없는 경기력으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잡지에서 6년 연속 최고의 NBA 선수로 선정됐다. 그는 어디서 뛰든 누구와 함께하든 또는 나이에 상관없이 변함 없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몇몇 해엔 경험과 재능이 떨어지는 동료 선수들을 이끌고 혼자 힘으로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다. 그의 꾸준함은 2012~2013년 시즌 통계가 2017~2018 시즌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20대 선수로선 대단한 일이 아니겠지만 28세와 34세 선수를 비교할 때는 인상적일 뿐 아니라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문화적 영웅의 핵심적 특성이다. 제임스의 철저한 스포츠 정신은 어린 선수들에게 경기력 향상이라는 동기를 부여한다. 그의 신체적 우월성은 단순히 타고난 유전자 덕분이 아니다. 그는 운동과 식사조절을 철저히 하고 엄격히 지킨다. 오프시즌에는 종종 주당 5일 동안 새벽 5시에 기상해 운동을 시작하며 시즌 중에는 매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스케줄을 따른다. 그가 하는 운동으로는 스텝 클라이머(하체 근력강화), 실내 자전거타기, 필라테스, 웨이트 트레이닝, 온탕·냉탕 사우나, 액체질소 냉동요법 등이 대표적이다. 그의 가혹한 운동방식을 듣기만 해도 당장 엎드려 50회 팔굽혀 펴기를 하고 싶은 충동이 솟구친다.바로 이런 점에서 그의 또 다른 영웅적 특성인 끈기가 잘 드러난다. 제임스는 트레이닝에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한다고 전해진다. 네이비씰(해군 특수부대) 출신의 전속 생체역학(biomechanist) 연구자가 휴가 중 동행하는 비용도 거기에 포함된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지출을 많이 한다고 배 아파할 사람은 없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몸을 혹사하면서 멍이 가실 날이 없던 직업 운동선수다. 여러 해 동안 요통에 시달려 왔다. 분명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 은퇴할 만큼 돈을 많이 모았지만 매년 코트로 나가 더 많은 육체적 고통을 감내한다. 물론 그는 거의 매일 코트에서 막강한 적수들과 맞닥뜨리지만 무엇보다도 시간과 장대한 싸움을 벌인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직면해야 하고 결국에는 누구나 무릎을 꿇게 되는 싸움이다. 그러나 그처럼 품위 있고 단호하게 대적하는 운동선수를 응원하지 않을 순 없다. 누군들 무리 없이 중년으로 넘어가고 싶지 않겠는가. 체중 123㎏의 34세 선수가 그런 민첩함·스태미나·스타일로 경기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누구나 발걸음에 약간 더 힘이 들어가게 된다. 지난해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제임스는 발목을 심하게 접질르고도 33 득점, 10 리바운드, 11 어시스트의 트리플 더블을 달성했다. 인내심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준 셈이다.그러나 뛰어난 리더는 단순히 추종자들을 지휘해 승리로 이끄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각자의 개별적인 재능을 끌어올리도록 돕는다. 모든 배가 떠오르도록 하는 밀물 역할을 한다. 제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리더십은 하루나 이틀 또는 두 달 만에 생기지 않는다. 리더십은 꾸준함에서 나온다. 팀 스포츠에 참여해 성공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 혼자만 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게 된다. 성공을 이어가려면 모든 구성원이 중요하며 성공에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 경쟁적이고 야심 있는 선수들 사이에서 리더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UCLA(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와 LA 레이커스 팀에서 리더였는데 그런 역할의 균형을 잡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선수로서뿐 아니라 전략가로서 팀 동료들의 존경을 받느냐에 성패가 좌우된다. 그러나 선수로서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는다. 문화적 영웅으로 칭송 받으려면 소속된 문화의 핵심 가치를 촉진할 뿐 아니라 구현하기도 해야 한다. 제임스는 특히 인종적 평등을 지지하는 등 정치·사회적 권익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활동을 통해 그런 면모를 보여줬다. 그러나 그저 말로만 그치지 않고 커뮤니티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전향적인 행동으로 보여줬다. 이는 제임스가 다른 많은 주제를 논하며 정치에 관해 언급한 ESPN 방송 인터뷰에 대해 폭스 뉴스 진행자 로라 잉그램의 화제를 모은 논평에서 잘 드러났다. 잉그램은 이렇게 푸념했다. “공을 튕기는 재주로 1년에 1억 달러를 버는 사람에게 정치적 조언을 구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짓이다. 정치적 발언은 입밖에 내지 말라. 입 다물고 드리블이나 하라.”그는 소셜미디어 전쟁에 뛰어드는 대신 그녀의 부적절한 모욕을 토대로 오늘날의 분열적인 정치 환경에서 운동선수들의 역할 진화를 탐구한 ‘입 닥치고 드리블이나 하라(Shut Up and Dribble)’는 쇼타임 방송용 3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제작했다. 제임스는 수년 간에 걸쳐 사회적 불평등에 대중적인 관심을 환기시켜 그것을 퇴치하고자 하는 양심적인 운동선수들의 활동에 자신의 목소리를 보태왔다.나를 비롯해 다른 많은 운동선수는 그런 ‘멍청한 운동선수(dumb jock)’의 고정관념에 관한 이야기를 보수파들로부터 평생 동안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그들은 가장 저급한 논리적 오류, 다시 말해 인신공격으로 메시지의 초점을 흐려놓는다. 그런 공격에는 미국에서 자란 흑인은 농구도 좋아하기 때문에 인종적 불평등은 전혀 모른다는 해괴한 암시가 깔려 있다. 나는 농구선수보다 언론인과 저술가 생활을 더 오래 했지만 내가 공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때마다 과거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내 의견에 타당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임스는 똑 부러지게 의사를 표현하고 널리 존경받기 때문에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 내 시대의 흑인 선수 운동가와 오늘날의 운동가 간에 중대한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1960~1970년대에는 그런 선수가 많지 않았다. 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 미식축구 선수 짐 브라운, 육상 선수들인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를 포함해 손에 꼽힐 정도였다. 요즘에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안타깝게도 그런 숫자 말고는 거의 변한 게 없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운동선수들은 여전히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를 구사한 대가로 처벌을 받으며 50년 전 우리가 항의했던 일들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그리고 미국 일각에서는 거의 변한 게 없다는 사실보다 그런 사실이 다시 거론되는 데 더 격분한다. 흑인 운동선수들이 그런 반응에 절망해 포기하기 쉽다. 그러나 제임스, 미식축구 선수들인 콜린 캐퍼닉, 앤드류 호킨스, 에릭 레이드와 자매 테니스 선수 세레나와 비너스 윌리엄스 외에 많은 선수가 정의를 위한 싸움을 계속한다.과실도 있었다. 예컨대 2017년 캐벌리어스의 경영진이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하지 않은 데 대해 제임스가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자 농구 스타 출신의 스포츠 해설가 찰스 바클리가 그를 “상황 파악 못하고 우는소리 한다”고 평한 뒤의 미디어 공방전이 대표적이다. 제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내 유산을 그렇게 무시하도록 놔두지 않겠다. 나는 사람을 창문 밖으로 던지는 사람이 아니다. 아이에게 침을 뱉지도 않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빚을 떼먹은 적도 없다. ‘나는 역할모델이 아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주말 내내 라스베이거스에서 파티하느라 일요일의 올스타 위켄드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적도 없다.” 그런 적개심은 일정부분 바클리가 역대 NBA 베스트 5 선수 명단을 작성하면서 제임스를 제외한 데서 비롯된 듯하다. 농구를 좋아해서, 또는 팬들의 사랑을 받으려, 심지어 돈 벌려고 운동하는 선수는 이해한다. 그러나 자신의 ‘유산’에 대한 그의 우려는 근시안적인 듯하다. 나는 선수 생활 중 많은 기록을 세웠지만 기록수립을 위해 경기한 적은 없다. 나는 스포츠 유산의 축적보다는 팀메이트·사회운동가 그리고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구성원으로서의 유산에 더 많이 신경 썼다. 제임스도 그런 모든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자신의 스포츠 유산에 관한 걱정은 편협해 보인다.제임스의 유산은 보장돼 있다. 그는 계속 기록을 세워나갈 것이다. 어쩌면 나의 통산 득점 기록도 넘어설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나도 그 자리에 서서 박수를 보낼 것이다. 기록이 깨질 때는 언제나 인류가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지난해 제임스는 오하이오주 에이크론에서 도시의 불우 아동을 위한 ‘아이 프라미스 스쿨’ 설립을 지원했다. 이 학교는 교육 외에도 경제적·정서적으로 학생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자원을 학생들의 가족에게 제공한다. 이 같은 지역사회에의 봉사활동이 농구 코트에서 슬램덩크를 꽂아 넣는 것보다 그를 더 영웅으로 만든다. 끝으로 심한 독감처럼 미디어에 퍼지고 있는 ‘누가 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냐’의 GOAT(Greatest of All Time) 문제. 한 달 전 제임스는 ESPN 인터뷰에서 그 타이틀은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 1승 3패로 뒤진 상황에서 기적 같은 역전극을 연출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클리블랜드에 우승을 안겨줬기 때문에 자신이 그 타이틀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바로 그 업적이 나를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만들었다”고 큰소리쳤다.그가 이런 상상의 게임을 하는 소리를 듣자니 다소 실망스럽다. 이는 하늘을 나는 슈퍼맨과 투명인간 중 누가 더 낫냐는 질문이나 다름없다. 한 주에 두어 번씩 이런 질문을 받는데 내 답은 항상 똑같다. 오랜 기간에 걸쳐 농구 경기가 너무 많이 변해 온갖 변수를 공평하게 감안할 표준 척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제임스, GOAT는 신화 속의 동물인 셈이니 자네는 아닐세. 그것은 마치 유니콘의 뿔이 얼마나 크냐고 묻는 격이다.그러나 제임스는 현 세대가 팝 차트 위로 밀어 올린 영웅이다. 그것은 분명 자신의 노력으로 획득한 자리이며 그 자리에 그가 있어서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해졌다.- 카림 압둘-자바※

2019.02.2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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