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데인의 기적
메데인의 기적
콜롬비아의 2대 도시, IT에 기초한 도시 계획과 시민 참여 결합… 마약 관련 범죄와 빈곤에서 벗어나 세계의 모범적인 스마트 시티로 도약 공중에 연결된 줄을 따라 승객을 가득 싣고 가파른 산비탈로 이동시키는 케이블카를 상상해보자. 대부분 스키 리조트나 거금들인 휴가여행을 떠올릴 것이다. 콜롬비아 메데인 변두리의 한때 파벨라로 불리던 가난한 달동네 주민에게 이 케이블카 시스템은 생명줄이자 IT와 데이터 중심의 놀라운 도시혁신의 강력한 상징이다.
메데인을 살린 기술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보스턴 또는 싱가포르에서 목격하는 자율주행차량 행렬, IT 대기업들, 인공지능 류가 아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곳에 기술을 배치하기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게 관건이다. 그리고 부와 계급을 초월하는 개혁의 지지층을 구축하는 것이다. 뉴스위크의 모멘텀 어워드 심사위원들(27쪽 참고)을 포함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스마트 시티로 나아가는 길을 논할 때 모든 도시의 혁신 비전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메데인을 종종 거론한다.
대다수 스마트 시티 프로그램은 상당 부분 IT에 정통하고 자원이 풍부한 인구 집단이 자신들을 위해 실시하는 반면 메데인의 혁신은 상당 부분 극빈층에 초점을 맞췄다. 전 세계 스마트 시티를 조사해온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의 도시개발 연구원 솔레다드 가르시아-페라리는 “스마트 시티 프로그램은 중앙정부에서 계획하고 IT 기업들이 변화를 이끄는 경향을 띤다”며 “메데인은 사회의 모든 측면을 포용하는 프로그램을 모색했으며 커뮤니티 스스로가 이끌어나갔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마약 관련 범죄·빈곤·절망의 중심지로 유명했던 인구 200만여 명의 도시 메데인은 ‘스마트 시티’가 관심을 끌기 10여 년 전인 1990년대 중반 스마트 시티 계획에 착수했다. 그 뒤 이 프로그램은 다른 여러 정당 소속 시장 5명의 손길을 거쳤다. 오늘날 메데인의 살인율은 1993년의 2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3분의 2 가까이가 빈곤에서 벗어났다. 10년 전만 해도 기본 서비스를 거의 누리지 못했던 과반수를 포함해 거의 모든 시민이 교육·헬스케어·교통 그리고 각종 문화·경제·온라인 서비스를 거의 무료로 제한 없이 이용한다.
그 과정에서 메데인의 극적인 혁신 프로그램은 기술과 인간의 경계선을 허물었다. 파리 팡테옹-소르본 대학의 메데인 출신 도시 연구원 카를로스 모레노는 “혁신에 중점을 뒀지만 사회 혁신의 비전 공유도 또 하나의 초점이었다”고 말했다.메데인의 혁신에서 핵심적인 요소는 시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들은 기술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고 시선을 더 멀리 뒀다. 대신 기술과 사회적 변화를 통합해 일상생활을 전반적으로 개선하고 도시 곳곳 특히 개선이 가장 필요한 곳에서 피부로 느끼는 방안을 모색했다. 메데인 대학의 스마트 시티 학과를 이끄는 경제학자 로버트 응 헤나오는 “메데인의 스마트 시티비전은 초현대화와 자동화의 통상적인 패러다임에서 벗어났다”며 “도시의 미래에 대한 더 인간중심적인 비전으로 그것을 대체했다”고 말했다.
그 비전은 메데인의 혼잡하고 궁핍하고 범죄에 찌든 달동네에서 처음 태동됐다.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통제하는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들과 연계된 갱들이 일상적으로 이들 파벨라에서 만나 마약과 돈을 교환하고 암살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1993년에 들어서면서 메데인의 ‘암흑기’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마약 카르텔들이 와해되고 있었다. 에스코바르는 몇 달 뒤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사망한다.
그해 임시로 임차한 작은 집으로 수십 명이 모여들었다. 갱단원들이 아니었다. 정부 지도자, 학술전문가, 시민운동가, 기업체 중역 연합체의 초청을 받은 보통 주민들이었다. 참가자들이 책을 가져와 즉석 미니 도서관이 생겨났다. 책을 읽고 둘러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무엇보다도 대화를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대화의 최대 주제는 메데인의 개혁이었다.
이 모임을 비롯해 기타 비슷한 미팅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이 그 뒤 수십 년에 걸쳐 도시를 바꿔놓을 야심적인 계획의 토대를 이뤘다. 메데인 세인트토마스 대학의 호르헤 페레스 자라밀로 건축대학 학장은 “우리는 자연재해 후 주택을 재건하는 대신 사회 재해 후 사회를 재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2000년대 2명의 시장 밑에서 수년간 메데인 도시계획 책임자를 지낸 그는 “시장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며 “시민의 주문을 이행하는 것이 자신들의 소임이라고 봤다”고 덧붙였다.시민들은 그들에게 많은 주문을 했다. 하수시설·상수원·학교 등과 같은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 없이 살아가는 주민이 대다수였다. 아이들이 놀 만한 곳도 없었다. 비가 오면 홍수와 토사 붕괴로 주택 심지어 마을이 통째로 쓸려 내려갔다. 계곡에 일자리가 있었지만 산동네에서 거기까지 가려면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이동하는 데 편도 2시간이 소요됐다.
그리고 치안이 불안했다. 마약 카르텔의 붕괴로 갱단과 범죄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대규모의 무장경찰 배치가 가장 손쉬운 솔루션인 듯했다. 그러나 메데인 사람들은 그런 지역 모임을 통해 도시 행정가들을 설득해 다른 접근법을 택하도록 했다. 청년들이 범죄를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로 선택하게 한 빈곤·고립·기회결핍의 해소였다. 최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EADA 비즈니스 스쿨의 리서치 학부장이자 도시 전략가로 일했으며 현재는 도시 모빌리티 앱 개발업체 로맙의 CEO인 보이드 코헨은 “그들은 길거리에 총을 더 많이 배치하는 대신 가난한 지역사회에 투자하고 주민들을 일등 시민처럼 대우하기로 했다”며 “사람들의 삶을 바꾼 비결”이라고 말했다.도시를 살리는 프로그램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범죄에 찌든 최근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메데인 경제에는 탄탄한 석유·의류 산업 같은 견고한 버팀목이 있었다. 제조업체들은 도시 르네상스가 투자수익을 가져다주리라는 믿음 아래 조세부담의 상당 부분을 짊어질 수 있었다. 시 정부는 공공 서비스 업체 EPM에 의존해 나머지 공백을 메웠다. 메데인에 수도·에너지·통신과 폐기물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콜롬비아 전역과 중남미 등지의 다른 나라에서 민간 기업체로도 경쟁을 벌이는 기업이었다. EPM은 훗날 메데인의 예산에 보태는 연평균 기부액을 4억 달러로 늘렸다. 시 당국은 이런 자원을 그 프로그램에 집중했다. 남미의 도시들은 통상적으로 예산의 약 4분의 1을 개발과 서비스에 투입하는 반면 메데인은 2000년대 초 이후 평균적으로 예산의 절반 이상을 그 부문에 할당해 왔다.
이들 1990년대 커뮤니티 모임과 전문가 토론회에서 부상한 각종 이니셔티브는 시행하기까지 여러 해 어떤 경우에는 수십 년씩 걸렸다. 케이블카 설치 같은 건의안과 연구는 1995년에 시작됐지만 가시적인 결과는 루이스 페레스 시장이 선출된 2000년 이후에야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시와 안티오키아주가 공동 운영하는 도시의 메트로 지하철 경영진을 설득해 케이블카 노선 건설 비용을 시와 분담하도록 했다. 곧바로 건설공사가 시작돼 2004년 케이블카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가난한 산동네 주민의 도심지 직장 통근 시간이 2시간에서 20분으로 단축됐다. 그 1호선의 하루 이용자 수는 3만 명에 이른다. 1호선 개통 이후 4개 케이블카 노선이 추가로 개통됐다.
메데인 법에 따라 시장 임기는 4년 단임제다. 페레스 시장은 2004년 수학교수이자 건축가의 아들 세르지오 파하르도에게 시장 자리를 물려줬다. 파하르도는 극빈 지역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신규 사업 지출에 관한 큰 결정을 주민에게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약속을 지켜 임기 중 지역 협의회의 지침을 요청하고 그에 따라 지출 우선순위를 정했다.파하르도 시장은 지역 협의회의 결정에 따라 도시의 교육제도를 개편했다. 2만 명의 교사를 대상으로 특수 센터에서 혁신적 교육 방법에 초점을 맞춘 추가 연수를 실시했다. 모든 어린이가 지금은 문화·과학·기술 그리고 언어 강좌를 포함하는 지역 방과 후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한다. 젊은이들이 범죄에서 손을 씻도록 인도하는 프로그램으로 연간 수천 명의 청소년이 갱단에서 탈퇴했으며 대학 진학률을 높이려는 노력으로 수만 명의 청년이 도시의 30개 대학과 기술교육센터에 등록했다. 파하르도 시장은 또한 아동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 헬스케어를 업그레이드했다. 어린이와 그 가족에게 건강과 영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동 보건 센터를 신설했다.
파하르도 시장은 또한 도시의 문화와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지역 협의회의 지지를 끌어냈다. 시는 또한 훗날 37만여㎡에 상당하는 다양한 용도의 공공 공간을 확충했다. 40개 공원의 건설 또는 개보수 작업이 대표적이다. 파하르도 시장은 스패니시 라이브러리 파크의 건설을 승인했다. 산꼭대기에 녹색 공간으로 둘러싸인 대규모의 현대적인 도서관이다. 마침 시의 1호 케이블카 노선이 끝나는 종점 자리다. 빈민촌에 가까운 이 공원은 그린웨이(보행자·자전거 전용로)로 전용된 강을 따라 8㎞에 뻗친 고속도로와 함께 글로벌 관광명소가 됐다. 그는 또한 일차적으로 도시 사업체들의 자금지원으로 세계 최고 인기 과학박물관 중 하나를 신설하도록 했다. 공공 서비스 업체 EPM은 제2의 대형 도서관을 건설했다.파하르도 시장의 임기는 2007년 말 끝났지만 그의 프로그램과 커뮤니티 중심의 운영 스타일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 후임자들이 그의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약속하지 않고는 당선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파하르도 시장의 후임자 알론소 살라자르 하라밀로는 산동네에 각기 약 370m 길이의 야외 에스컬레이터를 잇따라 건설해 케이블카 역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가난한 달동네 주민 수만 명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또한 공원과 도서관 시스템 그리고 케이블카 노선을 확장하고 교육과 헬스케어 개선에 계속 투자했다.
하라밀로 시장은 계속되는 개선의 흐름에 더 뚜렷하게 첨단·디지털 관점을 도입했다. 예컨대 도시의 숨 막히고 지극히 위험한 자동차 주행을 표적으로 삼았다. 2009년에는 가장 사고가 빈발하는 교차로에 40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하루 100만 대 이상의 차량을 감시했다. 과속·신호위반 그리고 차선을 넘나드는 난폭운전 차량을 적발했다. 교통위반 차량의 번호판을 읽어 우편으로 범칙금 고지서를 발송하는 시스템이다. 2009~2014년 사이 교통위반이 80% 감소했다. 그 밖에 80대의 스마트 카메라가 교통정체를 유발하는 사고 또는 고장 차량을 감지해 경찰과 기타 관련 서비스에 통보한다. 모두 800대 이상의 카메라가 메데인의 도로를 감시하며 어떤 문제든 감지한다. 혼잡 구역 전체적으로 22개의 전자 문자안내판이 설치돼 최적의 경로에 관한 최신 정보를 운전자에게 제공한다.
하라밀로 시장 체제에서 시는 디지털 경제의 건설과 육성에 착수해 제조업 의존을 줄이기 시작했다. ‘루타 N’이라는 혁신지구를 지정해 첨단 스타트업 대상으로 업무공간·창업자금·노하우와 기타 지원을 했다. 또한 루타 N 기업과 대형 IT 기업 간의 파트너십을 중재하고 관급 프로젝트 입찰 자격요건을 완화해 소규모 스타트업이라도 응찰할 수 있도록 했다. 하라밀로 시장은 루타 N 기업과 기타 혁신 촉진 노력에 시 예산의 2%를 배정했다. 일정 부분 이런 노력의 결과로 25개국 170개 이상의 기업이 메데인에서 사업을 시작해 불과 지난 3년 사이 4000개 가까운 일자리를 창출했다.2012년 시장에 취임한 아니발 가바리아 코레아는 도시 전체 산비탈의 수량·수위·토양수분 그리고 토양 움직임을 모니터하는 센서를 설치해 위험한 홍수와 토사붕괴에 대처하는 일련의 프로그램을 수립했다. 이는 홍수와 기타 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곳과 관련해 조기에 더 정확한 경보를 제공했다. 홍수와 토사붕괴 위험 지대의 마을 주민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잠재적인 위험지역의 사진과 자신의 관측으로 센서 데이터를 보완할 수 있다. 도시 기획자들은 그 데이터로 배수관과 기타 수로의 위치를 파악해 취약지역의 넘쳐나는 빗물을 다른 지역으로 돌린다.
와이파이 연결망의 부재로 인해 산동네 등지의 많은 주민이 온라인 혁명에서 소외됐다. 그에 따라 시 당국은 150개 이상의 공공 와이파이 구역을 신설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아울러 주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500여 개소에 무료 컴퓨터를 설치했으며 48개 인터넷 교육센터를 신설해 무료 강좌를 제공한다. 도시 최저 소득층의 3분의 2가 현재 스마트폰을 보유하며 코레아 시장의 권유에 따라 약 500개 기업에서 텔레커뮤팅(컴퓨터를 이용한 재택근무)을 통한 직원의 원격 근무를 허용해 교통정체를 완화했다.2016년 취임한 페데리코 구티에레스 줄루아가 시장 체제에서 시 당국은 임부와 산모에게 교육과 개인적 상담을 제공하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범도시적인 온라인 시스템을 신설해 건강 관련 서비스를 병원이나 클리닉에서 손쉽게 예약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긴급 헬스케어 서비스의 개편으로 대응시간이 37% 단축됐다. 시는 또한 청소년 참여에 초점을 맞춘 수십 개의 스포츠 시설을 신설했다. 줄루아가 시장은 전기 버스 64대와 범도시적인 무료 자전거 공유 서비스와 함께 96㎞ 길이의 별도 자전거 전용로를 신설해 시의 모빌리티(이동성) 개선과 오염 감축을 계속해 나갔다.
줄루아가 시장은 시와 공공 서비스 대다수를 온라인에 올려 시민이 시 당국과 쉽게 교류할 수 있게 했다. 지금은 거의 어느 서비스든 웹 브라우저나 스마트폰을 통해 시작하고 변경하고 중단하거나 돈을 납부할 수 있다. 주민들은 시의 입법·정책입안·프로젝트에 관한 업데이트를 온라인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주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시 당국자와 소통하며 시 지도자와 행정가들에게 가치 있는 인풋을 제공해 시 예산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관한 결정에 지역사회가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한다.스마트 시티 관련 노력으로 메데인은 1990년대 초반의 암울한 환경에서 남미에서 빈곤과 범죄율이 가장 낮은(그리고 교육과 헬스케어 보급률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로 인정받는 위치까지 도약할 수 있었다. 메데인이 이런 발전을 이루도록 한 결정에 실제로 기여했다는 주민들의 의식이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에딘버러 대학의 가르시아-페라리 연구원은 말한다. “스마트 시티 솔루션을 이런 유형의 참여 플랫폼과 결합해야 한다.”
아무도 메데인의 혁신 프로젝트가 완성됐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지난 20년 사이 빈곤율이 48%의 고점에서 크게 낮아졌지만 근년 들어 여전히 심각한 14% 수준에서 정체됐다. 적어도 10월 말의 시장선거로 판단하건대 이제껏 이룬 업적이 상당히 만족스러운 듯하다. 이번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많이 비유된 보수파 후보가 의외의 대패를 당했다. 콜롬비아 디지털 경제부 차관 출신의 다니엘 퀸테로 칼레가 특히 빈민층과 취약계층에 혜택을 주는 교육·인프라·첨단 이니셔티브에 대한 이전 시장들의 투자를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당선됐다. 분명 메데인은 케이블카를 상징으로 내세운 르네상스를 단축할 의사가 아직은 없는 듯하다.
- 데이비드 H. 프리드먼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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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인을 살린 기술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보스턴 또는 싱가포르에서 목격하는 자율주행차량 행렬, IT 대기업들, 인공지능 류가 아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곳에 기술을 배치하기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게 관건이다. 그리고 부와 계급을 초월하는 개혁의 지지층을 구축하는 것이다. 뉴스위크의 모멘텀 어워드 심사위원들(27쪽 참고)을 포함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스마트 시티로 나아가는 길을 논할 때 모든 도시의 혁신 비전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메데인을 종종 거론한다.
대다수 스마트 시티 프로그램은 상당 부분 IT에 정통하고 자원이 풍부한 인구 집단이 자신들을 위해 실시하는 반면 메데인의 혁신은 상당 부분 극빈층에 초점을 맞췄다. 전 세계 스마트 시티를 조사해온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의 도시개발 연구원 솔레다드 가르시아-페라리는 “스마트 시티 프로그램은 중앙정부에서 계획하고 IT 기업들이 변화를 이끄는 경향을 띤다”며 “메데인은 사회의 모든 측면을 포용하는 프로그램을 모색했으며 커뮤니티 스스로가 이끌어나갔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마약 관련 범죄·빈곤·절망의 중심지로 유명했던 인구 200만여 명의 도시 메데인은 ‘스마트 시티’가 관심을 끌기 10여 년 전인 1990년대 중반 스마트 시티 계획에 착수했다. 그 뒤 이 프로그램은 다른 여러 정당 소속 시장 5명의 손길을 거쳤다. 오늘날 메데인의 살인율은 1993년의 2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3분의 2 가까이가 빈곤에서 벗어났다. 10년 전만 해도 기본 서비스를 거의 누리지 못했던 과반수를 포함해 거의 모든 시민이 교육·헬스케어·교통 그리고 각종 문화·경제·온라인 서비스를 거의 무료로 제한 없이 이용한다.
그 과정에서 메데인의 극적인 혁신 프로그램은 기술과 인간의 경계선을 허물었다. 파리 팡테옹-소르본 대학의 메데인 출신 도시 연구원 카를로스 모레노는 “혁신에 중점을 뒀지만 사회 혁신의 비전 공유도 또 하나의 초점이었다”고 말했다.메데인의 혁신에서 핵심적인 요소는 시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들은 기술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고 시선을 더 멀리 뒀다. 대신 기술과 사회적 변화를 통합해 일상생활을 전반적으로 개선하고 도시 곳곳 특히 개선이 가장 필요한 곳에서 피부로 느끼는 방안을 모색했다. 메데인 대학의 스마트 시티 학과를 이끄는 경제학자 로버트 응 헤나오는 “메데인의 스마트 시티비전은 초현대화와 자동화의 통상적인 패러다임에서 벗어났다”며 “도시의 미래에 대한 더 인간중심적인 비전으로 그것을 대체했다”고 말했다.
그 비전은 메데인의 혼잡하고 궁핍하고 범죄에 찌든 달동네에서 처음 태동됐다.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통제하는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들과 연계된 갱들이 일상적으로 이들 파벨라에서 만나 마약과 돈을 교환하고 암살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1993년에 들어서면서 메데인의 ‘암흑기’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마약 카르텔들이 와해되고 있었다. 에스코바르는 몇 달 뒤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사망한다.
그해 임시로 임차한 작은 집으로 수십 명이 모여들었다. 갱단원들이 아니었다. 정부 지도자, 학술전문가, 시민운동가, 기업체 중역 연합체의 초청을 받은 보통 주민들이었다. 참가자들이 책을 가져와 즉석 미니 도서관이 생겨났다. 책을 읽고 둘러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무엇보다도 대화를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대화의 최대 주제는 메데인의 개혁이었다.
이 모임을 비롯해 기타 비슷한 미팅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이 그 뒤 수십 년에 걸쳐 도시를 바꿔놓을 야심적인 계획의 토대를 이뤘다. 메데인 세인트토마스 대학의 호르헤 페레스 자라밀로 건축대학 학장은 “우리는 자연재해 후 주택을 재건하는 대신 사회 재해 후 사회를 재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2000년대 2명의 시장 밑에서 수년간 메데인 도시계획 책임자를 지낸 그는 “시장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며 “시민의 주문을 이행하는 것이 자신들의 소임이라고 봤다”고 덧붙였다.시민들은 그들에게 많은 주문을 했다. 하수시설·상수원·학교 등과 같은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 없이 살아가는 주민이 대다수였다. 아이들이 놀 만한 곳도 없었다. 비가 오면 홍수와 토사 붕괴로 주택 심지어 마을이 통째로 쓸려 내려갔다. 계곡에 일자리가 있었지만 산동네에서 거기까지 가려면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이동하는 데 편도 2시간이 소요됐다.
그리고 치안이 불안했다. 마약 카르텔의 붕괴로 갱단과 범죄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대규모의 무장경찰 배치가 가장 손쉬운 솔루션인 듯했다. 그러나 메데인 사람들은 그런 지역 모임을 통해 도시 행정가들을 설득해 다른 접근법을 택하도록 했다. 청년들이 범죄를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로 선택하게 한 빈곤·고립·기회결핍의 해소였다. 최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EADA 비즈니스 스쿨의 리서치 학부장이자 도시 전략가로 일했으며 현재는 도시 모빌리티 앱 개발업체 로맙의 CEO인 보이드 코헨은 “그들은 길거리에 총을 더 많이 배치하는 대신 가난한 지역사회에 투자하고 주민들을 일등 시민처럼 대우하기로 했다”며 “사람들의 삶을 바꾼 비결”이라고 말했다.도시를 살리는 프로그램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범죄에 찌든 최근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메데인 경제에는 탄탄한 석유·의류 산업 같은 견고한 버팀목이 있었다. 제조업체들은 도시 르네상스가 투자수익을 가져다주리라는 믿음 아래 조세부담의 상당 부분을 짊어질 수 있었다. 시 정부는 공공 서비스 업체 EPM에 의존해 나머지 공백을 메웠다. 메데인에 수도·에너지·통신과 폐기물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콜롬비아 전역과 중남미 등지의 다른 나라에서 민간 기업체로도 경쟁을 벌이는 기업이었다. EPM은 훗날 메데인의 예산에 보태는 연평균 기부액을 4억 달러로 늘렸다. 시 당국은 이런 자원을 그 프로그램에 집중했다. 남미의 도시들은 통상적으로 예산의 약 4분의 1을 개발과 서비스에 투입하는 반면 메데인은 2000년대 초 이후 평균적으로 예산의 절반 이상을 그 부문에 할당해 왔다.
이들 1990년대 커뮤니티 모임과 전문가 토론회에서 부상한 각종 이니셔티브는 시행하기까지 여러 해 어떤 경우에는 수십 년씩 걸렸다. 케이블카 설치 같은 건의안과 연구는 1995년에 시작됐지만 가시적인 결과는 루이스 페레스 시장이 선출된 2000년 이후에야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시와 안티오키아주가 공동 운영하는 도시의 메트로 지하철 경영진을 설득해 케이블카 노선 건설 비용을 시와 분담하도록 했다. 곧바로 건설공사가 시작돼 2004년 케이블카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가난한 산동네 주민의 도심지 직장 통근 시간이 2시간에서 20분으로 단축됐다. 그 1호선의 하루 이용자 수는 3만 명에 이른다. 1호선 개통 이후 4개 케이블카 노선이 추가로 개통됐다.
메데인 법에 따라 시장 임기는 4년 단임제다. 페레스 시장은 2004년 수학교수이자 건축가의 아들 세르지오 파하르도에게 시장 자리를 물려줬다. 파하르도는 극빈 지역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신규 사업 지출에 관한 큰 결정을 주민에게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약속을 지켜 임기 중 지역 협의회의 지침을 요청하고 그에 따라 지출 우선순위를 정했다.파하르도 시장은 지역 협의회의 결정에 따라 도시의 교육제도를 개편했다. 2만 명의 교사를 대상으로 특수 센터에서 혁신적 교육 방법에 초점을 맞춘 추가 연수를 실시했다. 모든 어린이가 지금은 문화·과학·기술 그리고 언어 강좌를 포함하는 지역 방과 후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한다. 젊은이들이 범죄에서 손을 씻도록 인도하는 프로그램으로 연간 수천 명의 청소년이 갱단에서 탈퇴했으며 대학 진학률을 높이려는 노력으로 수만 명의 청년이 도시의 30개 대학과 기술교육센터에 등록했다. 파하르도 시장은 또한 아동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 헬스케어를 업그레이드했다. 어린이와 그 가족에게 건강과 영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동 보건 센터를 신설했다.
파하르도 시장은 또한 도시의 문화와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지역 협의회의 지지를 끌어냈다. 시는 또한 훗날 37만여㎡에 상당하는 다양한 용도의 공공 공간을 확충했다. 40개 공원의 건설 또는 개보수 작업이 대표적이다. 파하르도 시장은 스패니시 라이브러리 파크의 건설을 승인했다. 산꼭대기에 녹색 공간으로 둘러싸인 대규모의 현대적인 도서관이다. 마침 시의 1호 케이블카 노선이 끝나는 종점 자리다. 빈민촌에 가까운 이 공원은 그린웨이(보행자·자전거 전용로)로 전용된 강을 따라 8㎞에 뻗친 고속도로와 함께 글로벌 관광명소가 됐다. 그는 또한 일차적으로 도시 사업체들의 자금지원으로 세계 최고 인기 과학박물관 중 하나를 신설하도록 했다. 공공 서비스 업체 EPM은 제2의 대형 도서관을 건설했다.파하르도 시장의 임기는 2007년 말 끝났지만 그의 프로그램과 커뮤니티 중심의 운영 스타일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 후임자들이 그의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약속하지 않고는 당선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파하르도 시장의 후임자 알론소 살라자르 하라밀로는 산동네에 각기 약 370m 길이의 야외 에스컬레이터를 잇따라 건설해 케이블카 역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가난한 달동네 주민 수만 명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또한 공원과 도서관 시스템 그리고 케이블카 노선을 확장하고 교육과 헬스케어 개선에 계속 투자했다.
하라밀로 시장은 계속되는 개선의 흐름에 더 뚜렷하게 첨단·디지털 관점을 도입했다. 예컨대 도시의 숨 막히고 지극히 위험한 자동차 주행을 표적으로 삼았다. 2009년에는 가장 사고가 빈발하는 교차로에 40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하루 100만 대 이상의 차량을 감시했다. 과속·신호위반 그리고 차선을 넘나드는 난폭운전 차량을 적발했다. 교통위반 차량의 번호판을 읽어 우편으로 범칙금 고지서를 발송하는 시스템이다. 2009~2014년 사이 교통위반이 80% 감소했다. 그 밖에 80대의 스마트 카메라가 교통정체를 유발하는 사고 또는 고장 차량을 감지해 경찰과 기타 관련 서비스에 통보한다. 모두 800대 이상의 카메라가 메데인의 도로를 감시하며 어떤 문제든 감지한다. 혼잡 구역 전체적으로 22개의 전자 문자안내판이 설치돼 최적의 경로에 관한 최신 정보를 운전자에게 제공한다.
하라밀로 시장 체제에서 시는 디지털 경제의 건설과 육성에 착수해 제조업 의존을 줄이기 시작했다. ‘루타 N’이라는 혁신지구를 지정해 첨단 스타트업 대상으로 업무공간·창업자금·노하우와 기타 지원을 했다. 또한 루타 N 기업과 대형 IT 기업 간의 파트너십을 중재하고 관급 프로젝트 입찰 자격요건을 완화해 소규모 스타트업이라도 응찰할 수 있도록 했다. 하라밀로 시장은 루타 N 기업과 기타 혁신 촉진 노력에 시 예산의 2%를 배정했다. 일정 부분 이런 노력의 결과로 25개국 170개 이상의 기업이 메데인에서 사업을 시작해 불과 지난 3년 사이 4000개 가까운 일자리를 창출했다.2012년 시장에 취임한 아니발 가바리아 코레아는 도시 전체 산비탈의 수량·수위·토양수분 그리고 토양 움직임을 모니터하는 센서를 설치해 위험한 홍수와 토사붕괴에 대처하는 일련의 프로그램을 수립했다. 이는 홍수와 기타 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곳과 관련해 조기에 더 정확한 경보를 제공했다. 홍수와 토사붕괴 위험 지대의 마을 주민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잠재적인 위험지역의 사진과 자신의 관측으로 센서 데이터를 보완할 수 있다. 도시 기획자들은 그 데이터로 배수관과 기타 수로의 위치를 파악해 취약지역의 넘쳐나는 빗물을 다른 지역으로 돌린다.
와이파이 연결망의 부재로 인해 산동네 등지의 많은 주민이 온라인 혁명에서 소외됐다. 그에 따라 시 당국은 150개 이상의 공공 와이파이 구역을 신설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아울러 주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500여 개소에 무료 컴퓨터를 설치했으며 48개 인터넷 교육센터를 신설해 무료 강좌를 제공한다. 도시 최저 소득층의 3분의 2가 현재 스마트폰을 보유하며 코레아 시장의 권유에 따라 약 500개 기업에서 텔레커뮤팅(컴퓨터를 이용한 재택근무)을 통한 직원의 원격 근무를 허용해 교통정체를 완화했다.2016년 취임한 페데리코 구티에레스 줄루아가 시장 체제에서 시 당국은 임부와 산모에게 교육과 개인적 상담을 제공하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범도시적인 온라인 시스템을 신설해 건강 관련 서비스를 병원이나 클리닉에서 손쉽게 예약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긴급 헬스케어 서비스의 개편으로 대응시간이 37% 단축됐다. 시는 또한 청소년 참여에 초점을 맞춘 수십 개의 스포츠 시설을 신설했다. 줄루아가 시장은 전기 버스 64대와 범도시적인 무료 자전거 공유 서비스와 함께 96㎞ 길이의 별도 자전거 전용로를 신설해 시의 모빌리티(이동성) 개선과 오염 감축을 계속해 나갔다.
줄루아가 시장은 시와 공공 서비스 대다수를 온라인에 올려 시민이 시 당국과 쉽게 교류할 수 있게 했다. 지금은 거의 어느 서비스든 웹 브라우저나 스마트폰을 통해 시작하고 변경하고 중단하거나 돈을 납부할 수 있다. 주민들은 시의 입법·정책입안·프로젝트에 관한 업데이트를 온라인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주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시 당국자와 소통하며 시 지도자와 행정가들에게 가치 있는 인풋을 제공해 시 예산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관한 결정에 지역사회가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한다.스마트 시티 관련 노력으로 메데인은 1990년대 초반의 암울한 환경에서 남미에서 빈곤과 범죄율이 가장 낮은(그리고 교육과 헬스케어 보급률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로 인정받는 위치까지 도약할 수 있었다. 메데인이 이런 발전을 이루도록 한 결정에 실제로 기여했다는 주민들의 의식이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에딘버러 대학의 가르시아-페라리 연구원은 말한다. “스마트 시티 솔루션을 이런 유형의 참여 플랫폼과 결합해야 한다.”
아무도 메데인의 혁신 프로젝트가 완성됐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지난 20년 사이 빈곤율이 48%의 고점에서 크게 낮아졌지만 근년 들어 여전히 심각한 14% 수준에서 정체됐다. 적어도 10월 말의 시장선거로 판단하건대 이제껏 이룬 업적이 상당히 만족스러운 듯하다. 이번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많이 비유된 보수파 후보가 의외의 대패를 당했다. 콜롬비아 디지털 경제부 차관 출신의 다니엘 퀸테로 칼레가 특히 빈민층과 취약계층에 혜택을 주는 교육·인프라·첨단 이니셔티브에 대한 이전 시장들의 투자를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당선됐다. 분명 메데인은 케이블카를 상징으로 내세운 르네상스를 단축할 의사가 아직은 없는 듯하다.
- 데이비드 H. 프리드먼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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