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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명 숨진 텍사스 총격 사건…美 총기규제 언제쯤 가능할까 [채인택의 글로벌인사이트]

어린이 19명, 성인 2명 사망…올 들어 19번째 학교 총격 사건
2017년 기준 美 민간 보유 총기 3억9330만정 넘어
한해 2억5000만달러 로비하는 전미총기협회(NRA)에 밀려

 
 
[AP=연합뉴스]
 
미국 텍사스 주에 있는 인구 1만5000명의 작은 도시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서 5월 24일 학생과 교사를 노린 무차별 총격사고가 발생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 사고로 적어도 어린이 19명과 성인 2명이 숨졌고, 또 다른 3명은 중태에 빠졌다. 18세 고교생인 범인은 진압요원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학교에서 총격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급히 출동할 수 있는 무장경찰이나 군이 인근에 없어 가까운 곳에 있던 국경경비대가 동원돼 범인을 무력화했다.
 
이날 미국 백악관에는 사건이 보고된 즉시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기가 게양됐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이날 귀국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도착 직후 사고를 보고받고 “또 다른 학살”이라고 표현하며 의회에 총기규제법 처리를 촉구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무차별 총격 희생자들의 시신은 윌리드 리온 하사 기념시민회관으로 옮겨졌다. 다수의 시신을 보관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4명 이상 숨진 학교 총격사고 건국이래 29건

[중앙포토]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 사건이 올해 들어 미국에서 발생한 19번째 학교 총격이라는 사실이다. 비영리연구단체인 ‘총기폭력아카이브(GVA)’에 따르면 5월에만 세 번째다. 5월 17일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8살 어린이가 모친의 침대 아래에서 총기를 발견하고 자신의 가방에 넣어 학교까지 가져갔다. 그런데 학교에서 사고로 격발돼 7살짜리 급우가 다쳤다. 이 사건으로 28세의 아이 엄마는 아이들을 위험에 놓이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5월 9일엔 조지아 주 서워니에서 한 여성이 지나가는 스쿨버스에 12발의 총격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아무도 총에 맞진 않았지만, 운전기사가 총탄으로 깨진 유리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
 
유밸디 사건 한 달쯤 전인 4월 22일에는 워싱턴DC에서 한 주민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인근의 에드먼드 버크 학교에 239발의 총탄을 퍼붓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총격으로 자동차에 타고 있던 12살짜리 어린이와 2명의 성인, 그리고 학교 경비원이 부상을 입었다. 총격을 가한 범인은 경찰이 문을 부수고 방에 들어오자 자해를 했는데 이 부상으로 나중에 숨졌다.
 
4월 5일에는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의 고등학생이 학교에 들어온 신원 미상의 범인으로부터 여러 발의 총탄을 맞고 상처를 입었다. 3월 31일에는 12살의 학생이 다른 학생이 쏜 총에 맞아 학교에서 숨졌다. 미국에서 학교 총격이 얼마나 흔한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는 사실 미국에서 오래된 현상이다. GVA에 따르면 미국에서 4명 이상이 숨진 학교 총격사고는 건국 직전부터 기록에 남은 것만 29건에 이른다.
 
사망자(총격범 포함) 30명 이상이 1건, 20명 이상이 2건, 10명 이상이 7건이며 4~9명의 희생자를 낸 사고는 19건에 이른다. 역대 최악은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 주 블랙스버그의 버지니아 공대에서 재학생이던 23세의 조승희가 두 자루의 권총으로 벌인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이다. 당시 본인을 포함해 33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했다. 이 사건은 당시엔 학교를 넘어 미국에서 발생한 모든 총격 사건 중 가장 피해자가 많은 사건으로 기록됐지만 그새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총격 사건이 더 발생해 현재는 세 번째로 희생자가 많은 사건이다.
 
그 다음이 2007년 12월 14일 코네티컷 주 뉴타운의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격이다. 당시 20세의 애던 랜저가 집에서 모친을 살해한 뒤 모친 소유의 총기 네 자루를 들고 자신이 다녔던 초등학교를 찾아가 6~7세의 1학년 학생들과 교사와 교장, 그리고 학교 정신과 상담원 등을 살해했다. 범인은 경찰이 도착하자 총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범인을 포함해 28명이 숨졌다. 2명은 부상을 입었다.
 
셋째로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이 이번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 총격이다. 이번 사건도 어린이를 무참하게 살해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범인인 18세의 살바도르 라모스는 교실 한 곳에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어린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7~10세의 어린 학생 19명과 2명의 교사를 포함해 21명이 살해됐고, 범인은 진압을 위해 도착한 국경경비대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국경경비대원도 2명이 부상을 당했다. 범인은 자신의 할머니에게도 총격을 가해 중태로 만들었다.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유밸디의롭 초등학교 총격사고가 뉴타운의 샌디 훅 초등학교 사건의 충격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미국 사건은 패닉에 빠졌으며 총기 구매와 총기협회 가입이 줄을 이었다.
 

10명 이상 숨진 학교 총기 사건 모두 21세기에 발생 

지난 4월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경찰이 출근길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브루클린 36번가 지하철역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놀라운 점은 지금까지 살펴본 미국 최악의 3대 학교 총격사고가 모두 21세기 들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10명 이상 사망자가 나온 10건의 학교 총격사고 중 21세기 들어 발생한 것이 7건이다. 나머지는 1999년 4월 20일 콜로라도 주에서 발생한 컬럼바인 고교 총격 사건, 1966년 8월 1일 벌어졌던 텍사스대 타워 총격 사건, 미국 건국 직전인 1764년 벌어진 이녹 브라운 학교 학살 사건 등이 있다.
 
1999년 발생한 컬럼바인 고교 총격은 15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 학교 학생인 18세의 에릭 해리스와 17세의 딜런 클레볼드가 학교 정원에서 2명의 학생을 사살하고 교사를 중태에 빠트린 뒤 도서관에 들어가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를 살해했다. 21명은 이들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었다. 두 범인은 뒤이어 도착한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며, 결국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당시로선 가장 끔찍한 학교 총격으로 기록됐지만 21세기 들어 그 모든 기록이 깨지고 더욱 잔혹한 일이 줄을 이었다.
 
1966년 텍사스 주 오스틴의 텍사스대 타워 총격 사건은 희생자는 많았지만 다른 사건과 방식이나 성격은 좀 다르다. 해병대에서 제대하고 이 대학 공대에 다니던 25살의 찰스 휘트먼이 범인이었다. 그는 대학의 종탑에 올라가 3명을 살해한 뒤 그곳을 관측대로 삼아 96분 동안 학교 교내를 지나다니던 12명을 사살하고 31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는 앞서 자신의 집에서 모친과 부인을 살해했다. 그는 출동한 경찰에 사살됐다.
 
1764년 펜실베이니아 주 그린캐슬에서 벌어진 이녹 브라운 학교 학살 사건은 당시 백인들과 전쟁을 벌이던 인근 원주민들이 학교에 들어와 교장 이녹 브라운을 총기로 살해하고 10명의 학생을 근접무기로 살해했다. 총기로 피살된 사람이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총기 사고로 분류하기도 모호한 점이 있긴 하다.
 
이 세 건을 제외하고 1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학교 총기 사건은 모두 21세기에 벌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총기가 갈수록 흔해지고, 이를 이용한 무차별 총격 사건이 갈수록 잦아지고, 그 피해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미국에서 발생한 학교 총격 사건이 벌써 19건이나 된다. 팬데믹으로 미국 전역이 고통을 받았던 2021년에도 32건이나 된다. 2020년에는 50건이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전인 2019년에도 43건에 이른다.
 
이러한 데이터는 학교 총격에만 국한한 것이다. 미국에서 발생해 사망자가 4명 이상인 모든 총격 사건은 2014년 272건이었던 것이 2021년에는 692건으로 늘었다. 총기가 갈수록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셈이다.
 

AR-15 소총 저가 버전은 400달러면 구매 

 
미국에서 이처럼 학교를 비롯한 다양한 장소에서 총격 사건이 흔해진 큰 이유는 총기가 흔하고 접근성이 좋은 데다 성능이 좋다는 점에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텍사스 주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서 범인이 사용한 총기가 AR-15 소총이라는 사실이다. 1950년대에 개발된 AR-15 소총은 미군이 제식 소총으로 채택한 M-16이나 총신 길이를 줄인 M-4와 구조와 기능에서 상당히 유사하다. 전쟁터에서 살상용으로 사용하는 군용 돌격소총의 원형인 셈이다. 가볍고 장전과 조준, 발사가 쉬운 데다 위력이 강하다. 이 때문에 미국 민수 시장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저가 버전은 400달러 정도의 가격에 구매할 수 있으며, 범인이 사용한 사양이 좋은 종류는 2000달러쯤 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학교 총격을 물론 미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총기 사고에 자주 등장하는 종류가 됐다. 일부 주에서 민수용은 연발 사격이 되지 않도록 규제했지만, 워낙 광범위하게 보급됐다 보니 이를 피해 개조할 수 있는 부품과 서비스 시장이 활발하게 가동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문제는 총기 접근성이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18세가 되면 합법적으로 총기와 실탄을 살 수 있다. 총포상에서 신분증만 제시하면 형식적인 범죄이력 조회나 정신병원 입원 여부 조사를 할뿐 별 문제없이 살 수 있다. 돈이 부족하면 매달 100달러씩 갚는 금융지원을 받아 총기를 구매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살상력이 좋은 고성능 총기가 미국에 널려 있다. 전미사격스포츠재단(NSSF)은 2018년까지 미국에서 팔린 소총이 1600만 정을 넘는다고 추산한다.
 
또 다른 문제는 연방법에 따라 총기등기소가 총기 소지 이력을 보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를 관리해야 할 연방주류·담배·화기·폭발물단속국(ATF)조차 자국 내에 얼마나 많은 총기가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왜 이렇게 총기 관리가 느슨할까. 그 이유는 막강한 로비력을 가진 전미총기협회(NRA)에서 찾을 수 있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 공격용 무기 판매를 금지했다. 하지만 NRA는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면서 로비에 나서 결국 2004년 판매가 가능하도록 되돌렸다. 그 결과 AR-15는 물론 장거리 저격용 소총까지 민간에 나돌고 있다.
 
더욱 문제는 이렇게 총기가 흔하다 보니 총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구매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총기 구매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상승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롭 초등학교 총기 사고 뒤 대국민 연설에서 “도대체 우리는 언제나 총기 로비에 맞설 수 있을까”라며 개탄했지만 이런 비극과 참사에도 총기 규제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공화당 꽉 잡은 NRA 로비력 막강

 
백악관 앞에서 열린 ‘총기규제 강화 요구’ 학생 시위 [AP=연합뉴스]
그 중심에 NRA가 있다. NRA는 남북전쟁이 끝난 뒤인 1871년 참전용사 2명이 ‘과학적인 소총 사격의 장려와 촉진’을 앞세워 세운 단체로, 151년의 역사에 회원 수 300만명(추산)을 보유한 막강한 특수 이익 로비 조직이다.
 
이미 1934년부터 국가총기법(NFA)‧총기규제법(GCA) 등 총기와 관련한 입법 정보를 회원들에게 제공하면서 총기 로비의 이력을 쌓았다. 오랜 로비 끝에 1970년대에 GCA가 단체의 뜻에 맞게 통과되면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과시했다. 1975년이 되자 입법행동연구소를 세워 미국의 총기 규제정책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더욱 주목할 점은 1977년 정치행동위원회(PAC)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정치 로비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이 단체는 2020년 한 해에만 2억5000만 달러의 예산을 사용했다.
 
공식적으론 예산을 주로 교육 등에 사용하고 정치 로비엔 300만 달러 정도를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공개된 부분이지 공개되지 않은 곳에서 어떤 거래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바이든 대통령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미국에서 NRA의 로비력이 막강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스스로 무장해서 자신을 보호한다는 뿌리 깊은 미국의 총기문화가 결합해 총기 문제를 더욱 늪으로 빠뜨리고 있다.
 
총기와 관련한 각종 통계를 보면 암울하기만 하다. 국제 무기연구단체인 ‘스몰암스서베이(SAS)’에 따르면 민간 보유 총기는 2017년 기준 미국이 3억9330만여 정으로 압도적인 1위다. 2위인 인도(7110만 정)의 다섯 배에 이른다.
 
총기가 흔하니 당연히 총격사고도 많다. 세계인구리뷰는 2019년 총기 관련 사망자 1위가 브라질로 4만9436명이고, 그 뒤를 미국이 3만738명으로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치안 불안을 개탄하는 베네수엘라와 멕시코는 그 다음이다. 미국인이라고 다른 나라보다 더 이성적으로 총기를 다루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다.
 
2017년 인구 15만면 이상 국가 중 100명당 총기 소지 비율은 미국이 1위(120.5명)이고 2014년부터 격렬한 내전을 겪고 있는 예멘(52.8명)이 2위다. 예멘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시리아‧소말리아‧우크라이나와 함께 한국 국민이 외교부의 특수입국허가를 받지 않으면 입국도 할 수 없는 나라다. 미국은 그런 나라보다 총기 보유 비율이 2배나 높다. 미국은 언제나 이런 총기의 악순환과 이로 인한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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