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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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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래 명예회장 별세…기술 효성 이끈 ‘미스터 글로벌’

산업 일반

창업주인 고(故) 조홍제 회장과 함께 효성그룹을 일궈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재계의 큰 별’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숙환으로 영면했다. 향년 89세(1935년생).193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조 명예회장은 고(故)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일본 와세다대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하고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당초 대학교수를 꿈꿨으나 1966년 박사 과정을 준비하던 중 부친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귀국, 효성물산에 입사하며 기업인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동양나일론 울산공장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이는 향후 효성그룹 성장의 기틀이 됐다는 평가다.1973년 동양폴리에스터를 설립하면서 화섬사업 기반을 다졌고, 1975년 한영공업(현 효성중공업)을 인수해 중화학공업에도 진출했다. 이후 1982년 효성중공업 회장직을 물려받으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창업주인 조홍제 회장은 장남인 조석래 명예회장에게 효성을 물려줬고, 차남 조양래 한국타이어 명예회장과 삼남 조욱래 DSDL(옛 동성개발) 회장에게는 각각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의 경영을 맡겼다.조 명예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경영 혁신과 주력 사업 부문의 글로벌화를 이끌며 효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기술을 중시해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으며 2006년에는 이를 효성기술원으로 개편했다. 이는 효성의 대표 제품인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등이 탄생하는 원동력이 됐다. 효성은 1997년 자력으로 스판덱스 상업화에 성공했고, 2011년에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고성능 탄소섬유를 세계 3번째,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하며 효성은 전 세계 50여개 제조·판매 법인과 30여개 무역법인·사무소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조 명예회장은 국제관계에도 밝아 민간외교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풍부한 국제 인맥을 바탕으로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 경제인들과 활발히 교류했고,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미재계회의, 한일경제협회,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한중재계회의 등 재계의 국제 교류단체를 이끌며 주요 교역 상대국과의 가교 역할도 적극 펼쳤다.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에는 양국의 반대 여론을 무마하고자 양국 재계 인사들과 미국 행정부·의회의 유력 인사들을 만나고 다니는 등 민간외교의 중심에 섰다.국내 대표 경제단체인 전경련에서 1987년부터 2007년까지 20년간 부회장을 지낸 데 이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회장을 맡아 국내 재계의 ‘얼굴’ 역할도 자처했다. 2017년 발간된 조 명예회장의 팔순 기념 기고문집에는 재계의 지인들이 기억하는 그의 일면이 여실히 드러난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정부에 적극 의견을 밝히는 조 명예회장을 두고 ‘재계 지도자’라 칭했고,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미스터 글로벌’이라고 불렀다.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부인 송광자 여사, 장남인 조현준 회장과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 삼남 조현상 부회장 등이 있다.

2024.03.29 19:32

2분 소요
최윤 OK금융 회장,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선임

은행

OK금융그룹은 사단법인 한일경제협회가 ‘제43회 정기총회’를 열고 최 회장을 협회 부회장으로 선임했다고 7일 밝혔다.한일경제협회는 1981년 설립된 경제단체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을 회원으로 해 일본 측 파트너 기관인 일한경제협회 및 일본 각 지역 경제단체와 손잡고 양국의 상호발전을 위한 다양한 경제 외교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그 일환으로 한일 양국간의 무역, 산업, 기술협력 등의 경제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양국 재계 간의 만남과 교류를 주도하는 ‘한일경제인회의’를 비롯해 ▲한일 고교생 교류 사업 ▲한일 양국 지역간 협력 강화 ▲한일 신산업 무역 회의 개최 등을 운영 중이다.이번 선임에 따라 최 회장은 향후 3년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경제인으로서 한일 양국의 경제 연계 확대 및 상호교류 증진을 위한 소통 창구 역할을 해낼 방침이다.최 회장은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한국 국적의 재일교포 3세다. 일본 현지의 경제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만큼, 일본 내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양국의 경제계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앞서 최윤 회장은 2020 도쿄올림픽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단 부단장에 이어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단장으로 활약하며 국제단체와의 네트워킹을 이끌며 스포츠 외교의 저력을 입증한 바 있다.최 회장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둔 중차대한 시기에 한일 경제협력 강화를 논의하는 자리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후배 기업인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며 “협회 발전은 물론, 한일 민간 교류 증진 및 경제관계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한편 현재 한일경제협회는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이 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부회장단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양종희 KB금융그룹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 등 재계 주요 인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협회 회장단은 오는 5월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경제인회의 등 주요 일정을 소화하며 한일 기업인들 간의 파트너십 강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 나갈 계획이다.

2024.03.07 08:57

2분 소요
韓 경제단체 대표들, 기시다 日 총리 만났다…“한‧일 중요한 경제협력 파트너”

산업 일반

국내 주요 경제단체 대표들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 경제 협력 활성화 의지를 재확인하고, 기업 간 교류에 일본 정부가 적극 협력해달라고 당부했다.재계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8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포함한 경제인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1시간가량 비공개 형식으로 진행된 자리에는 최 회장과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직무대행,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등 경제 6단체장, 김윤 한일경제협회장(삼양홀딩스 회장)이 참석했다.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일본과의 경제 협력에 대해 서로 각자 먼저 하자라는 말씀을 나눴다”고 말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다”며 “기시다 총리가 매우 온화하고 협력적으로 말씀했다”고 전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 중소기업들이 일본 중소기업과 원만한 거래가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며 양국 중소기업 간 우호적인 관계 유지를 건의했다고 밝혔다.다만 반도체나 배터리 산업 협력 등 구체적인 내용은 논의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회장은 ‘반도체 동맹’ 등에 대한 질문에 “디테일한 얘기는 나누지 않았다”며 “경제 협력과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에 관련된 전체적인 얘기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2023.05.08 17:11

1분 소요
한·일 경제 관계 회복 ‘시동’…한일재계회의 3년만에 재개

국제 경제

한국과 일본이 한국의 새 정부 출범과 코로나19 방역지침 완화 등을 계기로 경제 관계 회복에 나서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 기업인 단체 ‘게이단렌’(經團連)이 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제29회 한일재계회의를 연다. 한·일 양국의 경제계 인사 20여명이 참석한다. 회의는 ▶한·일 경제 동향과 전망 ▶지속가능사회 실현을 위한 한·일 협력 ▶새로운 세계 질서와 국제 관계 등 3개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양국은 공동성명서도 채택할 계획이다. 이 행사는 전경련과 게이단렌이 1982년 양국 경제계의 상호 이해와 친목을 위해 만들어 1983년부터 정례적으로 개최해왔다. 2020년과 지난해엔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행사를 열지 못해 3년 만에 개최되는 자리다. 코로나19 탓도 있지만 올해 5월 출범한 ‘친(親) 기업’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회복과 대일(對日) 교역의 확대에 시동을 걸고 있는 점도 주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대일 관계를 국내 정치에 너무 끌어들였다”며 문재인 정부 시절 망가진 한·일 관계를 지적했다. 한·일 관계는 2019년 급속 냉각됐다.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과 관련해 국내 대법원이 당시 배상과 해당 기업의 자산 압류를 판결했다. 그러자 일본 경제산업성이 그해 7월 1일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의 수출에 제동을 걸어,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에 나서면서 한·일 무역분쟁이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엔 한·일 관계 냉각기가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당선인 시절인 올해 4월 24일 한·일 정책협의대표단을 일본에 파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에게 친서를 전했다. 정책협의대표단 파견은 미국에 일본이 두번째다. 한·일 관계에 대한 윤 대통령의 복원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일본과 거래하던 국내 기업들의 기대감도 커졌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4월 327개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기업의 50.4%가 ‘윤 정부 출범 후 일본에 대한 교역과 투자를 늘리겠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 5월에도 한·일 경제 교류 행사가 열렸다. 한일경제협회와 일한경제협회는 5월 30일 서울 롯데호텔서울과 일본 오쿠라도쿄호텔에서 각각 제54회 한일경제인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서울과 도쿄를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영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자리엔 구자열(LS 이사회 의장)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윤(삼양홀딩스 회장) 한일경제협회 회장, 사사키 미키오(전 미쓰비시 상사 회장) 일한경제협회 회장 등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회의 주제는 ‘한·일 경제 연계의 새로운 스테이지’였다. 박정식 기자 tango@edaily.co.kr

2022.07.04 06:01

2분 소요
‘다시 시작합시다’ 윤 정부 한·일 경제관계 회복 시동

정책이슈

앙숙이었던 한·일 경제 관계가 다시 호전되는 분위기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면서 국내 주요 경제단체들도 한·일 관계 복원에 나서고 있다. 한일경제협회와 일한경제협회는 30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서울과 일본 오쿠라도쿄호텔에서 각각 제54회 한일경제인회의를 연다. 회의는 서울과 도쿄를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영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행사엔 구자열(LS 이사회 의장)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김윤(삼양홀딩스 회장) 한일경제협회 회장과 사사키 미키오(전 미쓰비시 상사 회장) 일한경제협회 회장이 개회사를 할 예정이다. 회의 주제는 ‘한·일 경제 연계의 새로운 스테이지’다. 한국과 일본이 정치적 관계에선 아직 서먹하지만 경제적 관계에선 새로운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해보자는 목적이다. 민간 차원에서 한·일 경제 관계를 재개하려는 이같은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다음달에는 무역협회와 수출기업·지방자치단체들과 일본 도쿄에서 한국상품 전시상담회를 연다. 코로나 사태로 그동안 온라인으로 진행해오다 3년여만에 오프라인 행사를 열게 됐다 . 7월엔 도쿠라 마사카즈(스미토모화학 회장) 회장이 이끄는 게이단렌 회장단이 방한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일재계회의를 열 예정이다. 스미토모화학은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한·일 무역분쟁이 일자 한국에 포토레지스트 공장을 세웠던 기업이다. 앞서 지난 11일에는 김진표 의원이 회장을 맡은 한일의원연맹과 일한의원연맹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합동간담회를 가졌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사절로 방한한 일한의원연맹 임원단은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대한상공회의소 등 국내 경제단체 인사들과 만났다. 손경식 경총 회장과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은 만찬에 참석해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2022.05.30 08:05

2분 소요
한·일 대화의 물꼬부터 빨리 터야

산업 일반

불안하던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6월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한·일 양국의 정상회담이 불발되더니 결국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라는 강경 보복조치로 이어졌다. 정치 갈등이 경제 문제로까지 번졌다. 최근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파기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면서 안보 문제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사실 한·일 갈등이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지난 2년 간 양국은 정치·외교적으로 수많은 갈등을 빚어왔다. 2017년에 ‘평화의 소녀상’ 설치 문제로 일본이 한국과 통화스와프 논의를 중단한 데 이어 2018년 10월에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책임 인정 판결로 일본의 반한(反韓) 감정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올 1월에는 자민당 국방부회 회장을 맡고 있는 야마모토 도모히로 의원이 레이더·저공비행 갈등과 관련해 한국을 ‘도둑’이라고 부르는 등 망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이전의 정치·외교 갈등과는 결을 달리한다. 과거 한·일 양국은 정치·외교 갈등이 아무리 깊어도 경제만큼은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었는데 지금은 아니기 때문이다.물론 이번 갈등이 이처럼 확대된 원인은 정치 갈등을 경제 보복으로 응수한 일본의 태도에 있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은 한·일 관계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별 다른 일이 있겠냐’는 식으로 안일했던 탓도 크다. 하지만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경고가 있었던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4월 15일 긴급좌담회를 열고 양국의 경제협력이 얼어붙고 있다면서 민간 차원에서라도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윤 한일경제협회 회장은 지난 6월 한·일 간 첨예한 현안으로 경제인 교류마저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사실상 손 놓고 있었다.우리 정부와는 달리 일본 정부는 철저한 준비로 한국 산업의 급소를 찔렀다. 우리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을 통제해 공급망을 붕괴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했다. 2018년 이들 품목의 대일본 수입금액은 3억8000만 달러로 매우 적은 규모지만, 한국의 대일의존도는 리지스트 93.2%,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84.5%, 에칭가스 41.9%로 매우 높다. 에칭가스와 리지스트의 공급 차질이 생기면 대체 여력이 적은 한국은 1267억 달러의 반도체 수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더 큰 문제는 한·일 무역 분쟁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일본의 무역 규제로 반도체소재가 30%만 부족해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손실은 2.2%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여기에 한국의 보복조치가 시행된다면 0.9%에 달하는 추가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의 경우는 수출규제로 인한 GDP 감소폭이 0.04%에 불과하며, 한국이 보복을 한다고 해도 1.8% 감소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복잡한 분석 없이 단순히 전체 GDP에서 한·일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만 봐도 한국은 5.3%인데 반해 일본은 1.7%다. 이대로 가면 일본은 찰과상, 한국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지난 7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 정부는 한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태세다. 이미 일본은 한국을 백색국가 대상에서 제외하겠고 밝혔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한국의 피해는 전 산업으로 확산된다. 전략물자관리원에 따르면 첨단소재, 전자, 통신, 센서, 항법 장치 등 1100여개 품목이 규제 대상이 된다고 하니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 같다.여러 대책들이 논의되고 있으나 뾰족한 방안은 없는 듯하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새계무역기구(WTO) 제소만 해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WTO 제소의 승패 여부를 떠나 최종 결정까진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당장의 해결책으로 보긴 어렵다. 부품·소재 수입처를 다변화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수십년간 구축해온 글로벌 부품·소재 공급 체인망을 하루아침에 변경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이번에 부품·소재를 국산화하자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국산화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모든 부품·소재를 다 국산화 하는 것이 가능한지, 가능하더라도 가격경쟁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부품·소재 국산화는 30년 넘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모든 정권마다 외쳐왔던 주장이다.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걱정이다. 한번 본때를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일본 제품을 불매한다면 일본 제품 관련 기업들에게 어느 정도 타격을 주고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도 풀릴 수 있다. 만일 일본의 한국 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진다면 우리의 출혈이 더 커진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대일본 소비재 수출금액은 360억 달러로 중국, 미국에 이어 3번째로 높다. 반면 소비재 수입금액은 292억 달러다.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에 허덕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는 분야가 소비재다. 누구에게 피해가 더 큰지는 자명하다.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우선 한·일 양국 정부가 상대를 자극할 수 있는 표현부터 자제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감정적인 강경 대응으로 한·일 갈등이 더 깊어진다면 지난 반세기 동안 공생해온 경제 협력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양국 미래의 발전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다. 가슴이 아무리 뜨거워도 냉철한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다음으로 정부가 하루 빨리 나서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전쟁 중에도 물밑 대화는 있다. 여기에 정치인은 물론 기업인, 경제단체, 지식인 등의 모든 대화채널을 가동해 문제 해결에 함께 노력해야 한다. 특히 기업인과 경제단체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한·일 수교 54주년 동안 수없는 정치적 갈등에도 흔들림 없이 경제교류가 이어지지 않았던가. 한편 대화 중에는 모든 비방과 보복조치를 중지하고 현상유지(Standstill) 원칙을 지키며 상호간 건설적인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일본도 새롭게 맞이한 레이와(令和) 시대를 갈등과 반목으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 일본이 아무리 빈틈없이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일본 경제의 피해도 분명하다. 레이와(令和)의 의미처럼 평화(平和)와 조화(調和)의 정신이 필요하다.1998년 10월 8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고(故)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前) 일본 총리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에는 일본 총리가 과거사에 대해 반성과 사죄를 하고, 한·일 정상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자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일본 내 한류열풍 등으로 민간 교류가 활발해지며 두 나라 간의 간극을 좁히는 계기가 됐다.지금 세상은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산업의 판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 시기를 놓치는 나라는 영영 따라잡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과 일본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긴밀한 경제 교류로 양국이 함께 발전해왔가. 사생관두(死生關頭)의 시기에 승자 없는 치킨게임을 지속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일 관계가 좋았을 때 우리 경제도 좋았다”는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말을 다시 새겨본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

2019.07.27 15:33

5분 소요
[COVER STORY] 서용성 교수가 만난 예술경영 CEO -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

CEO

이운형(65) 세아그룹 회장은 33세에 세아제강 사장에 올라 회사를 연 매출 8조원의 대기업으로 키웠다. 그는 차갑고 강한 철강을 다루지만 부드러운 CEO다. 문화예술계 후원에도 앞장서고 있다. 단정한 복장에 걸음걸이는 힘이 넘쳤다. 희고 가지런한 치아가 반듯한 인상을 준다. ‘허허허’ 하고 웃을 때마다 눈이 가늘어진다. 머리카락을 검게 염색했다지만 3월 16일 서울 봉래동 세아제강 본사 회장실에서 만난 이운형 회장은 나이보다 확실히 젊어 보였다.서용성 요즘 말로 ‘동안(童顔)’이십니다. 혹시 피부 관리 받으세요?이운형 아니, 안 받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나한테 자주 물어봐요. 피부과 어디 다니느냐고. 허허허. 피부과는 안 가고 김광석 참존 회장님이 가끔 화장품을 선물해주세요. 원래 화장품을 많이 안 바르는데 이 제품이 잘 맞나봐요.이 회장과 김 회장은 공부 모임을 함께한다. 또 다른 멤버인 윤병철 한국FP협회 회장은 이 회장에 대해 “학구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끈기 있게 매달린다”고 말했다.서용성 자주 모이시나요?이운형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고 토론하거나 연사를 초청해서 강연을 들어요. 모임이 오전 7시 15분에 시작하는데 보통 9시까지 강연하고 얘기하다 보면 10시가 넘어야 끝나. 오늘 아침에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하는 CEO 인문학 강좌를 들었어요. 노자 얘기였는데 상당히 좋더군요.서용성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하시나 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이운형 이제 은퇴 후를 준비해야지. ‘지공 도사’ 알죠? 지하철 공짜 세대. 허허허. 일주일에 조찬이 4번 정도 있어요. 이번 주는 월요일에 미술사, 화요일에 오페라…. 바쁘네요.서용성 저도 가끔 조찬에 갑니다만 전날 밤 약속을 피해야 하는 게 단점인 것 같습니다.이운형 그럴 필요 뭐 있어요. 잠은 6시간쯤 자면 되니까 12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나면 되겠네. 내가 보통 그 정도 자요. 신문을 보며 꾸벅꾸벅 졸다 누우면 금세 잠들지.서용성 아까 은퇴를 준비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이운형 언젠간 해야겠죠. 요즘 어떻게 인생을 정리해나갈지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10년 동안 어떤 일이 생길까 상상해보는 거지요. 지금 하고 있는 사회공헌 활동을 좀 더 구체화할 생각입니다.일주일에 조찬모임 4개, 하루 6시간 자세아그룹은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로 문화예술 단체를 후원한다. 사회공헌에 쓰는 비용은 매년 영업이익의 1% 정도. 국립오페라단과는 인연이 깊어 2000년부터 8년 동안 이사장을 맡았다. 현재는 후원회장이다. 오페라 애호가로 소문난 이 회장은 성악을 했다는 말에 관심을 보였다.이운형 테너를 하셨어요? 목소리가 좋으시네. 성악가들 참 대단해요. 자기 몸이 악기니까 감기도 걸리면 안 되잖아요. 단 몇 분의 무대를 위해서 굉장히 노력하더라고.서용성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라 자기관리가 중요하죠. 회장님은 원래 오페라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이운형 아니, 잘 몰랐어요. 이사장을 맡고 나서 오페라를 보기 시작했죠. 성악가들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로 노래를 외워서 연기하는 것을 보고 감탄을 넘어 존경심을 느꼈어요. 그러다 관심이 생겨 찾아보게 됐지요.오페라가 좋아 국립오페라단 이사장을 맡은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얘기다. 2000년 국립오페라단이 국립극장 산하에서 재단으로 독립할 때 당시 단장이던 박수길 한양대 성악과 명예교수가 급하게 이 회장을 찾았다. 당장 모레까지 이사장을 선출해야 한다며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우선 이름을 빌려주고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승낙한 것이 12년 인연의 시작이다.서용성 고민이 좀 되셨겠어요.이운형 오페라에 문외한이었으니까요. 그러다 며칠 후에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한테 임기 4년이라고 써진 임명장이 왔어요. ‘어휴, 이거 큰일났다’고 생각했지요. 일은 단장이 하더라도 한 조직의 장이 된 거니까. 지금은 이사장을 하면서 여러 예술인을 만난 걸 행운으로 생각해요.올해 국립오페라단은 창단 50주년을 맞았다. ‘그 동안 고생 많으셨다’고 하자 이 회장은 손사래를 치며 “그런 소리를 들으면 부끄럽다”고 말했다. “국립단체라 국가에서 예산이 나와요. 작품은 감독이 만드는 거고 저는 옆에서 후원자를 연결해주고 조금 돕는 것뿐이지요. 크게 한 게 없어요.”“난 조금 돕는 것뿐, 한 일 없어”국립오페라단은 한중수교 20년을 기념해 5월에 중국 베이징에서 ‘라보엠’ 공연을 할 예정이다. 이 회장은 “따라가서 관객이 많이 들게 해야 한다”며 웃었다. 1년에 최소 30회 이상 오페라 공연을 본다는 이 회장에게 ‘성악을 직접 해 본 적 있느냐’고 묻자 “음치”라며 손을 내저었다. 이 회장은 여유가 생기면 배워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무대에 설 일은 없을 거라고 못박았다.그는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한국철강협회 부회장,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한국메세나협의회 부회장,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미시간대학 한국동문회장 등을 맡았지만 유난히 부회장 직함이 많다.서용성 언론에 나오길 꺼리시는 이유는 뭔가요(인터뷰는 이 회장이 몇 번이나 고사한 끝에 성사됐다).이운형 제가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하지만 뒤에서 돕는 건 좋은데 앞에 나서서 이렇게 한다고 자랑하고 싶진 않아요.서용성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앞장서 후원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많은 기업이 마케팅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후원을 하는데 회장님은 어떠세요.이운형 세아그룹은 철강소재를 다루는 B2B(기업 간 거래) 기업이라 소비자와 직접 마주칠 일이 없어요. 기업의 후원 활동이 마케팅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요. 물론 회사에 도움이 되는 점도 있지요. 철강산업이라는 게 시장이 크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시간에 쫓길 일이 없어요. 그래서 이쪽 사람들이 대체로 우직하지요. 나쁘게 얘기하면 재미가 없어요. 회사는 계속 발전해야 하는데 뭐로 자극을 주나 고민하다가 오페라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이거다’ 싶었어요. 이 회장은 오페라 공연에 직원들을 초대했다. 초창기에는 마지못해 가는 직원이 많았다고 한다. 이 회장 역시 공연에서 졸기 일쑤였다. 그는 이사장을 맡은 첫 해 오페라단을 따라 일본에서 처음으로 오페라를 봤다. 일본에서 두 번, 한국에서 두 번 총 4회의 공연을 다 갔다. 네 번째 공연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알고 가면 재미있어요. 이젠 성악뿐 아니라 무대장치, 조명, 합창단 움직임까지 다 보여요.” 요즘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아 늘 표가 모자란다고 했다.서용성 오페라가 직원들 업무 향상에 도움이 되나요?이운형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을 좋아하면 감성이 풍부해지고 자연히 격이 높아져요. 그게 내공으로 쌓여서 다 일에 나타납니다. 지난주에는 세아베스틸 공장이 있는 군산에서 시민을 위한 음악회를 열었어요. 직원 가족도 오고, 사람들이 참 좋아하더라고요. 지난해부터 정기적으로 하고 있어요. 올해는 현장 직원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열려고 해요. 공장 직원들이 식사하는 동안 옆에서 실내악을 연주하는 거죠. 현장이 참 거칠거든요. 긴장감을 풀어주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오페라단 이사장 맡은 후 오페라 좋아져서용성 많은 기업이 예술문화 활동을 통해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려고 합니다. 조언을 해주신다면요.이운형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능력에 맞는 대우를 못 받는 게 안타까워요. 기업이 더 관심을 두고 더 많이 지원하면 문화선진국이 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문화라는 게 곧 국민의 힘이거든요. 세아도 올해 예술문화 후원 예산을 더 늘렸습니다. 허허허.서용성 국립오페라단에 아이디어 제안이나 조언을 자주 하십니까.이운형 잘 안 해요. 내 영역이 아니고 내가 할 일은 옆에서 돕는 거니까. 김의준 단장이 LG아트센터 CEO 출신이라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들었어요.서용성 그룹을 경영할 때도 임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편인가요?이운형 참견을 잘 안 하죠. 업무보고는 한 달에 한 번 정기회의 때 받아요. 주력 계열사인 세아베스틸, 세아제강, 세아특수강 사장이 일당백 하는 분들입니다. 그 아래 임원들도 베테랑이고요. 저희 회사가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하는 게 전통입니다. 허허허. 저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만 하죠.철강 전문기업인 세아그룹은 강관(파이프)회사인 세아제강과 지주회사인 세아홀딩스를 주축으로 국내외 40여 개 자회사와 계열사를 두고 있다. 공기업, 외국계 기업을 제외하고 자산 기준 재계 30위권이지만 이 회장은 “등수는 의미가 없다”며 “그보다는 경쟁력 있는 제품을 더 많이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서용성 창업주이신 고(故) 이종덕 선대회장께 어떤 경영철학을 이어받으셨나요?이운형 선대회장께서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제조업을 시작하셨어요. 굉장히 힘드셨지요. 무엇보다 현장을 중시하셨어요. 또 “부당하게 회사 돈을 쓰지 마라”고 항상 강조하셨어요. 제가 회사 돈을 쓰면 직원들이 더 많이 쓰고 그러면 회사가 무너진다는 말씀이셨지요. 저희는 회사에서 골프를 치러가면 각자 그린피를 냅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이런 풍토가 쌓여서 회사의 가치를 만드는 거죠.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경쟁사들이 다 주저앉았을 때도 살아남은 이유가 있습니다.경영철학과 기업문화. 손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반세기 동안 세아그룹을 지켜왔다. 세아제강은 74년 포스코가 제1고로를 가동하기 전부터 외국에 강관을 수출했다. 우리나라 전체 철강 수출액이 1억 달러를 넘지 않았을 때다. 이 회장은 원칙을 지키는 정도경영이 해외 개척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엔지니어, 구매 담당 할 것 없이 모두 좋은 제품을 어떻게 싸게 살지 고민했어요. 개인의 이익을 취할 생각은 하지 않았죠.”정도경영으로 외환위기 넘겨서용성 52년 동안 철강이라는 한 우물을 파셨는데 왜 다른 사업에 진출하지 않았습니까.이운형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에 금융이 활황이었어요. 그때 건설, 금융은 아무나 다 한다고 할 정도로 시장이 좋았지요. 지금 생각하면 안 하길 잘한 것 같아요. 철강은 기간산업이라 정부에서 가격통제를 하기 때문에 고수익을 내기 어려워요. 좋은 품질을 싸게 만드는 일에 집중하느라 다른 곳에 눈 돌릴 여유가 없었어요. 여유가 생겨 다른 분야에 투자를 하기도 했지만 잘 모르는 분야라 그런지 다 실패했어요. 회사를 설립하고 10년은 지나야 성장과 발전을 위한 기초가 세워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이 회장은 “세아베스틸을 인수한 것은 좀 이례적이었다”고 말했다. 사업 다각화를 꾀하던 세아그룹은 2003년 법정관리 중이던 기아특수강(현 세아베스틸)을 인수하면서 대형그룹 면모를 갖췄다. 특수강 산업은 개발비가 많이 들고 다품종 소량 생산구조라 흑자를 내기 어렵다. 이 회장은 적자기업을 1년 만에 흑자로 돌려놨다. 이때 역시 개인보다 회사를 위하는 기업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 현재 이 회사는 국내 1위의 특수강 전문기업으로 인수할 때의 세 배 규모로 성장했다.서용성 다시 사업 분야를 넓힌다면 어떤 업종에 투자하실 건가요.이운형 현재 장기적으로 자원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세아베스틸의 주력 제품인 특수강 원료를 확보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지요. 해외자원과 광물 투자 전담 팀을 구성해 사업을 검토 중이고, 2010년 몰리브덴을 가공하는 광양합금철(현 세아 M&S)을 인수했습니다. 철강산업과 연관이 있는 쪽에 장기적으로 투자해 10~15년 후를 준비할 계획입니다.서용성 앞으로 좀 더 공격적으로 경영하시겠단 말씀입니까.이운형 올해 신년사에서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해야 한다고 당부했어요.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우니 방어가 필요하고, 나라마다 무역 규제가 심해지고 수출환경이 어려운 요즘 같은 때일수록 할 일은 과감하게 해야 합니다. 이율배반적이지만 집중과 선택을 하자는 것이지요.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 회장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조용한 카리스마로 기업을 이끌어왔다. 외향적이고 추진력이 강했던 창업주와 다르게 이 회장은 철강업계에서 부드러운 ‘신사’로 통한다.“부사장으로 입사한 게 내 약점”이 회장은 부인 박의숙 여사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막내 아들 태성(34)씨는 2여 년 전 세아홀딩스에 입사해 현재 전략기획팀장을 맡고 있다.서용성 아들에게 조언을 많이 해주시나요?이운형 요즘은 2, 3세들이 실력이 없으면 조직이나 사회에서 용납을 안 합니다.기본 소양은 갖출 수 있게 제가 도와주지만 스스로 근무할 자격을 갖춰야지요.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능력이 글로벌 감각인데 미국, 중국, 일본에서 몇 년씩 공부하고 일해 외국어는 잘해요. 군대를 방위산업체로 가겠다고 해서 제가 ‘현역으로 빨리 가라’ 그랬어요. 아들이 제대하고 ‘갔다 오길 잘했다’고 하데요. 가서 보니 부모 돈으로 공부하고 그런 사람이 군대에 많이 없거든. 자신이 받은 게 있으면 해야 할 일이 있지요. 군대에서 그걸 배워왔더군요.서용성 같이 회사 이야기를 자주 하십니까.이운형 아직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이 부족하죠. 좋은 점은 있어요. 제 약점이 세아제강에 부사장으로 입사한 겁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처음부터 임원으로 들어와 직원들 마음을 잘 몰라요. 처음 왔을 때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케이스 스터디를 많이 했으니 다 알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몰랐던 거죠. 다행히 아들이 열정이 있어 직원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이 회장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건축설계사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버지가 일군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사회에 기여하며 살면서 좋은 가문으로 기억되는 것이 인생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2012.03.2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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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권계의 산증인 떠나다

산업 일반

▎ 양재봉 1925년 전남 나주 출생 목포상고, 전남대 상대 조선은행, 한일은행 지점장 1973년 대한투자금융 창업 1975년 대신증권 창업 1992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199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금융재정위원회 위원장 1998년 한국능률협회 부회장 2001년 대신그룹 명예회장 “대신은 창업 이래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세계 제일의 금융 전업 그룹을 이룩해 국내뿐 아니라 세계 무대에 우뚝 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가자.” 고(故) 양재봉 명예회장이 지난 6월 대신증권 창립 48주년 기념식에서 남긴 말이다. 그가 참석한 마지막 공식 행사였다. 그의 각오와 격려는 결국 유지(遺志)가 됐다.대신증권 창업자인 송촌(松村) 양재봉 명예회장이 12월 9일 오후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 노령이지만 10월까지도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본사 구석구석을 다니던 그의 모습은 추억으로 남았다. 노정남 대신증권 사장은 “한국 증권업계의 산 역사이자 한국 금융계의 거목이 쓰러졌다”고 애도했다.금융업은 신용이 생명”양 명예회장은 국내 증권업계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말단 은행원으로 출발해 1973년 대한투자금융을 창업했다. 1975년 중보증권을 인수해 현재의 대신증권으로 키워 대기업 계열 증권사와 경쟁하며 국내 증권업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컴퓨터란 단어조차 생소하던 1970년대 후반에 증권업계 최초로 전산화를 시작했다. 1981년에는 증권사 최초로 전광 시세판을 설치했다. 1980년대 초반 금리가 치솟자 회사채 매매를 통해 회사를 키웠다. 그러면서 금융사고의 여파로 흔들리던 대신증권을 5대 증권사 반열에 올려놓았다.고인은 1925년 전남 나주에서 농부인 양홍철씨의 2남4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3년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를 졸업했다. 22회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기다. 상고 졸업 이듬해인 1944년 한국은행의 전신인 조선은행에 들어가 금융계에 첫발을 디뎠다. 거상의 꿈을 키우던 청년 양재봉에게 안정된 직장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1946년 은행을 박차고 나온 그는 한국전쟁 전 외자관리청 목포부소장을 지냈고, 전쟁 후에는 목포와 나주에서 쌀을 사 부산에 파는 미곡상을 했다. 거상의 꿈을 이루려면 젊은 시절에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전남대 상학과에 진학해 만학의 꿈을 이뤘다.그의 본격적인 첫 사업인 양조업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그는 그러나 당시 모든 자산을 팔아 부채를 말끔히 청산하면서 사업가로서 신용을 지켰다. 훗날 경영의 1대 원칙인 신용의 중요성을 절실히 배웠다.1960년 한일은행에 들어간 뒤 청량리지점장 시절 9억원이던 지점 수신액을 특유의 영업수완을 발휘해 1년 반 만에 네 배 가까이 불려 은행가에 화제가 됐다. 사업가로서 그의 두 번째 도전은 한일은행 청량리지점장 시절이었다. 1970년대 초 단자사를 세워 금융업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973년 임대홍 미원그룹 회장, 박병규 해태제과 사장 등과 함께 대한투자금융을 설립하고 1975년 중보증권을 인수해 대신증권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금융업은 신용이 생명’이라는 신념에 따라 회사 이름을 ‘대신(大信)’으로 바꿨다. 같은 해 정부가 ‘증권회사 대형화 계획’을 발표한 데 맞춰 대신증권도 자본금을 20억원으로 늘리며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창업 당시 1.9%에 불과했던 시장점유율은 1977년 증권업계 2위인 9% 수준까지 올랐다. ▎1987년 12월 대신전산센터 시스템 가동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는 양재봉 명예회장. 1977년 사장에 취임했지만 다시 시련을 겪었다. 사장 취임 4개월 만에 당시 대신증권 영업부장이던 박모씨가 회사 주식과 고객 돈을 횡령해 자신의 부채를 갚다 들통난 사건이 터졌다. 결국 도의적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양 명예회장은 3년간 용인에서 농사일을 하며 와신상담했다.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대신증권은 자본잠식에 빠졌다. 1981년 대신증권 사장직에 복귀한 그는 임대홍 전 회장의 보유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1980년대 중반엔 증시 활황에 힘입어 사세 확장에 나섰다. 1984년 대신경제연구소, 1986년 대신개발금융, 1987년 대신전산센터, 1988년 대신투자자문, 1989년 대신생명보험, 1990년 송촌문화재단, 1991년 대신인터내셔널유럽 등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오늘의 대신금융그룹을 일궜다.그는 생전에 금융을 보는 탁월한 안목과 과감한 결단으로 대신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다. 1980년대 초 사장 복귀 후 조달할 수 있는 재원을 총동원해 채권투자에 나선 게 대표적인 사례다. 대신증권은 이 덕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위기관리 능력도 탁월했다. 1990년대 말 펀드 열풍이 불면서 다른 증권사가 20%대의 고금리 회사채를 편입한 채권형 수익증권을 무차별적으로 판매하고 있었고, 시중 자금은 증권사로 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회사채를 편입한 수익증권을 팔지 못하게 하고 안전한 국공채 위주의 채권형 펀드만 취급하라고 지시했다. 얼마 안 가 대우그룹 부도와 하이닉스 사태가 연이어 터지며 이들 기업의 회사채를 편입한 수익증권을 판 증권사에 대규모 환매사태가 벌어지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증권가 IT시스템 도입의 선구자1997년 터진 외환위기는 양 명예회장의 위기관리 능력이 빛난 때였다. 그는 1995년부터 보유 중이던 자산을 처분해 단기차입금을 모두 갚고 무차입 경영에 들어갔다. 2년 뒤 외환위기가 닥쳐 동서증권·고려증권이 문을 닫는 등 당시 5대 대형 증권사 중 네 곳이 사라지거나 주인이 바뀌었지만 대신증권은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증권가에서는 그를 IT시스템 도입의 선구자로 여긴다. 컴퓨터의 개념도 낯설던 1976년 증권업무 전산화 체계를 도입했고, 1978년에는 온라인을 통한 거래 업무를 증권업계 최초로 시작했다. 1997년 증권사 최초로 도입한 HTS(홈트레이딩시스템)는 대신증권을 증권 명가로 끌어올리는 데 효자 노릇을 했다.2001년 현업에서 물러난 그는 고인이 된 차남 양회문 전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겨줬다. 은퇴 후에는 송촌문화재단을 통해 장학사업과 사회복지시설 지원사업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쳤다.

2010.12.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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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경영 남겨두고 하늘 부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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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이 10월 20일 오전 폐암으로 별세했다. 62세. 평북 출신인 인송 설경동 대한전선 창업주의 4남으로 맏형은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 셋째 형은 고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이다. 경기고와 연세대 법학과, 미 브루클린대 경영대학원을 나와 학교법인 연세대 이사,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대한제당협회 회장,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1년 대한제당 회장에 올랐다. 유족으론 미망인 박선영씨와 설윤호 대한제당 부회장 등 1남1녀가 있다. 설 회장과 40년 우정을 나눈 박상은(한나라당) 국회의원이 고인을 기리는 추모 글을 보냈다. ▎ 설원봉 1948년 서울 출생 2010년 10월 20일 별세 연세대 법학과 1976년 대한전선 입사 1985년 대한제당 사장 1991년 대한제당 회장 얼마 전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을까. 내 친구 설원봉 회장이 기어이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중환자실로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갔지만 친구의 호흡은 이미 멈춘 상태였다.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주지 못했는데…. 안타까움과 회한이 동시에 밀려온다.설 회장과 나는 40년 지기이자 대학 동문이다. 더 큰 인연은 한 회사의 오너와 CEO로 박자를 맞췄다는 것이다. 나는 설 회장이 회장에 오른 지 3년 후인 1994년 대한제당 대표에 취임했다. 2002년까지 대표를 맡았으니 10여 년은 오너와 CEO로 생활한 셈이다.옆에서 본 설 회장은 말수가 적었다. 나서길 좋아하지 않아 경영도 소리 소문 없이 했다. 하지만 투병 생활까지 조용히 할 줄이야. 설 회장은 1년 전 폐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출장을 미루지 않았다. 해외 인사와의 만남도 늦춘 적 없다. 그만큼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았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싫어했다. “암은 결국 나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지 않은가.그는 조용했지만 뚝심 있는 오너였다. 한번 결정하면 고집스러울 정도로 밀어붙였다. 일부 사람이 추상적이라며 깎아내렸던 ‘인화(人和)경영’을 줄기차게 펼친 끝에 1956년 창업 이후 계속된 대한제당의 무분규 전통을 잇는 데 성공했다. 어쩌면 그였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설 회장은 인화경영을 위해 직원의 이름을 일일이 외우고 불렀다. 직원에게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서려 애썼다. 대부분의 기업이 허리띠를 졸라맨다며 서슬 퍼런 구조조정의 칼을 뺐던 1998년, 그는 ‘직원을 지키겠다’며 다른 길을 갔다. 당시로선 파격에 가까운 무감원·무감봉·무분규의 ‘3무(無) 경영’을 외환위기 기간 내내 특유의 뚝심으로 실천에 옮겼다. 온화한 성품의 그였기에 가능했고, 절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음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오너의 고뇌를 누가 알아주랴.그렇다고 그가 뒷방에 앉아 남 몰래 ‘자기 식구’만 챙긴 건 아니다. 그는 조용했지만 은둔하진 않았다. 한국무역협회 및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으로 한국의 대외통상 활성화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한국학술연구원을 지속적으로 후원해 한국학이 전 세계에 전파되는 데 일조했다. 한국학술연구원은 SSCI(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 등재지로 전 세계 100여 개국에 판매·배포되고 있다. ‘코리아 옵저버’지를 낸다. 이 연구회는 1968년 설 회장의 스승인 연세대 김명회(국제정치학) 교수와 내가 창립했다. 1998~2002년엔 대한핸드볼협회장에 취임해 내부 파벌 싸움을 뿌리 뽑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회사 경영에 전념한다며 2년 만에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그 뒤에도 고문을 자임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그의 기업가 정신이 유명을 달리한 이제야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게 한편으론 아쉽지만 뿌듯하기도 하다.그는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지금도 다소 생소한 해비타트운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후원한 인물이 설 회장이었다. 해비타트운동은 무주택자를 위해 집을 지어주는 사업을 말한다. 1990년 정근모 박사가 주거 복지를 위해 이 운동을 소개했다. 해비타트운동에 설 회장이 초기부터 참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그는 선행도 남모르게 했다.설 회장과 나 사이엔 동고동락하면서 겪은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그중 대학 모교에 멋진 교사(校舍)를 짓자고 의기투합했던 일이 생각난다. 우리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 연세대 법대 교수 출신으로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하던 함병춘 박사, 역시 연세대 법대 출신인 남재두 당시 민정당 총재 비서실장, 연세대 철학과 교수 출신으로 문교부 장관이었던 이규호 박사 등에게 법학과를 법과대학으로 독립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 법대 건물을 짓겠다고 했다. 당시로선 가당치 않은 제안이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변호사·의사 같은 이른바 ‘사’자의 문턱이 너무 높다며 신규 대학 수를 늘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법대 독립을 요구했으니 관철될 리 있었겠는가.그런데 말이 씨가 됐다. 법대는 독립했고, 설 회장과 나는 연세 법학 50주년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동문을 상대로 건립기금 43억원을 모았다. 37억원은 광복관 건립에 썼고, 나머지 6억원은 연세법학진흥재단에 기부했다. 제법 패기만만했던 설 회장과 나는 모교의 법학 중흥에 기여했다며 뿌듯해했다. 지금은 국내 굴지의 법과대학으로 성장한 모교 법대 캠퍼스를 보면 설 회장이 떠오를 것 같다.이제와 돌이켜보면 ‘설원봉’ 하면 떠오르는 일화가 너무 많다. 하지만 4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친구를 몇 개 일화로 설명하긴 여간 어렵지 않다. 아마도 사진 속에 남아 있는 설 회장의 온화한 표정이 많은 이에게 더 많은 설명을 해줄 거라 믿는다.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한다. “이제 고인이 된 친구여! 젊다면 젊은 나이에,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그저 안타깝구나. 마음 깊이 명복을 빈다. 그래도 걱정 마라. 자네의 못다 한 뜻을 내가, 우리가 이룰 테니….” ▎ 박상은 한나라당 국회의원 박상은 한나라당 국회의원

2010.10.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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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계를 움직이는 최고경영자들

산업 일반

이슈메이커새해 유통 兩大 매물 인수해 주목 끈 신동빈 롯데 부회장 ‘줄기찬 M&A는 유통 최강자 굳히기 포석’새해 유통업계 최대 인수합병(M&A) 매물로 꼽혔던 GS스퀘어(백화점)와 GS마트가 지난 9일 예상대로 롯데그룹으로 넘어갔다. 인수액은 무려 1조3400억원. 롯데 M&A 사상 최대 규모다.이뿐만이 아니다. 롯데는 지난달 25일 편의점 ‘바이더웨이(점포 수 1503개)’도 2740억원에 인수했다. 올 초에만 대형 매물 2건을 1조6140억원에 인수해 낸 것이다.최근 롯데그룹의 투자 확대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와 올해,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한국 재계가 전반적으로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데 반해 롯데만큼은 예외다. 오히려 최근 2년간 기업 M&A 등 국내외 투자에 더욱 적극적이다.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는 중심에는 신격호(88) 롯데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55) 부회장이 있다.롯데의 유력한 승계자로 꼽히고 있는 그의 이 같은 공격경영 움직임에 대해 국내 언론들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유통 황태자서 M&A 귀재로’ ‘유통 공룡으로 몸집 불린 롯데’ ‘공격 앞으로, 롯데 기업 사냥 박차’ ‘롯데의 끝없는 영토 확장 M&A’ ‘국내외 행보 빨라진 신 부회장’ 등-.■ ‘2세 승계 굳히기 포석’이란 시각도 = 언론에 얼굴을 잘 내비치지 않는 편인 그는 지난 1월 중순 전경련 행사에 참석한 뒤 기자들을 만나자 이렇게 말했다. “기업 M&A는 좋은 기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하겠다.” 이 발언을 한 지 불과 열흘 후 바이더웨이 인수가 이뤄졌다.M&A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처럼 현재진행형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그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을 붙인다. 첫째가 유통업계 최강자로 자리 굳히기이며, 둘째는 2세 승계 굳히기 포석이란 것이다. 롯데는 이번 두 건의 대형 M&A를 통해 백화점과 마트, 편의점 3개 부문에서 모두 바잉 파워와 유통력, 매출, 시장점유율 등을 높일 수 있게 됐다.특히 업계는 롯데가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수도권 유통망 확보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보고 있다. 백화점 부문에선 기존 26개 점포에다 이번에 GS백화점 3개를 합쳐 29개 점포를 확보했다. 백화점 매출도 GS백화점 매출 6000억원 상당을 합쳐 올해 처음 10조원 이상(10조6000억원)으로 커질 전망이다.2위 현대백화점(11개 점포)과 유통업계 맞수 신세계(백화점 8개) 등과 차이를 벌려 ‘부동의 백화점 1위’를 고수하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국내 기반이 취약했다는 평을 들은 대형 마트 부문도 이번에 보강했다. 기존 70개 점포를 일단 84개로 늘렸으며, 연내에 점포 수를 100여 개 가까이로 키워 1위 이마트(127개)와 홈플러스(114개)를 바짝 추격할 것이란 분석이다.편의점 부문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기존 세븐일레븐 점포(2240개)에 바이더웨이 점포(1503개)를 합쳐 모두 3743개의 점포를 확보하게 됐다. 1위 훼미리마트(4666개)와는 차이가 나지만 2위 GS25(3914개)와는 치열한 2위 다툼이 불가피해졌다. 이로써 롯데는 백화점-대형 마트(롯데마트)-편의점(세븐일레븐+바이더웨이)으로 이어지는 유통 수직계열화를 더욱 다지게 됐다.유통업태별로 국내 선두권을 차지해 명실상부한 유통 최대 기업군으로 발돋움하게 됐다는 해석이다. 또 롯데는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내에 내년까지 유럽형 프리미엄 아웃렛을 짓기로 했고, 이천 등에서도 후보지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맞수 신세계의 여주 프리미엄 아웃렛과 파주시 통일동산 아웃렛(건설 중)을 겨냥한 움직임으로 보여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또한 재계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의 경영 승계 시점이 임박한 점도 신 부회장이 공격경영을 하는 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는 그가 경영 승계를 앞두고 입지를 더욱 확고히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고 있다는 시각이다.■ 2018년 매출 200조원 향한 ‘롯데 2018 비전’ 견인 = 신 부회장은 1955년 일본 도쿄에서 신격호 회장의 차남으로 태어나 20대 초반까지 일본에서 생활했다. 일본과 미국에서 학업을 마친 그는 1981년 노무라증권에 입사했다. 1982년부터 88년까지 6년간 영국 런던지점에서 근무하면서 국제금융과 경제 실무능력을 쌓았다.금융에 대한 그의 남다른 감각은 그때 경험에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1988년부터 2년간 일본 롯데에서 일한 그는 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한국롯데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주요 계열사 등을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았고, 1997년 부회장에 올랐다. 2004년 10월 그룹 전략과 신사업 등을 책임지는 정책본부 본부장을 맡아 경영 현안을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이때부터 사실상 한국 롯데의 책임자로 주위에 비쳤다. 지난해 3월 발표한 ‘롯데 2018 비전’도 그의 역할 확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 비전에는 ‘2018년 아시아 톱10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꿈이 담겨 있다. 2018년 매출 목표는 200조원. 2008년 매출(43조원 상당)의 약 4.6배 규모다.최근 몇 년간 그가 국내외를 통해 몸집 불리기에 나선 것은 이 비전 달성과도 연관이 깊다는 해석이다. 전경련 부회장,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인 그는 지난해 9월 한국방문의해위원회 위원장도 맡아 대외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스키와 골프를 즐기며 특히 스키는 프로급으로 알려졌다.롯데 자이언츠 야구단 일을 직접 챙길 정도로 야구에도 관심이 많다. 일본어는 말할 것도 없고, 영어도 수준급. 오너 2세지만 겸손하고, 예의 바르며, 탈(脫)권위적이란 얘기를 듣는다. 현장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해외출장도 무척 잦은 편. 대형 M&A를 통해 과감한 몸집 불리기에 나선 그가 소위 ‘승자의 저주’에 걸리지 않고 한국 롯데를 더욱 튼실하게 키워낼지 주목된다. 인&아웃 ■ 구본무 LG 회장, “원천기술 R&D 50년 걸려도 해야”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최근 열린 신임 전무 승진자 교육에서 원천기술 연구개발(R&D)과 기(氣)를 살려 젊은 인재를 육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은 “기술자립을 못 하면 생존할 수 없고, 기술을 가진 기업에 수모를 당한다”며 “영속 기업이 되려면 10년이 걸리든 50년이 걸리든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R&D를 꼭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젊은 사람을 키우려면 자꾸 칭찬해서 기를 살려줘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최근 3D 영화 ‘아바타’ 관람 소감을 밝히면서, 3D 디스플레이 사업 육성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 조양호 한진 회장, ‘피스 앤 스포츠’ 대사 임명받아조양호(61) 한진그룹 회장이 17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선수회관에서 국제 비영리 단체 ‘피스 앤 스포츠’의 대사로 임명받은 후 이 단체 후원자인 알베르 2세 모나코 국왕과 악수를 했다. 2007년 설립된 이 단체는 순수한 스포츠를 바탕으로 세계평화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국제단체다.조 회장의 이번 임명은 대한탁구협회장 및 아시아탁구연합(ATTU) 부회장 등으로 세계평화 증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에 힘입었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인도에 윤활유 사업 교두보허동수(67) GS칼텍스 회장은 최근 인도 뭄바이에 자본금 30억원 규모의 윤활유 판매 현지법인 ‘GS칼텍스 인디아’를 설립해 4월부터 영업에 나서도록 했다.인도에 윤활유 사업의 첫 해외진출 교두보를 구축한 것. 약 4조원 규모의 인도 윤활유 시장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에 이어 세계 5대 메이저 시장이란 점을 고려한 결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IOC 위원장 방문받아 이재용(42) 삼성전자 부사장은 16일(현지시간) 겨울올림픽 개최지인 캐나다 밴쿠버 삼성전자 홍보관에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방문을 받았다. 이 부사장은 로게 위원장으로부터 방문 기념으로 올림픽 기념 셔츠와 이번 대회 성화봉을 선물받았다. 이 부사장은 로게 위원장의 선물에 올림픽 기념 핀으로 화답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신규 등기이사 선임정의선(40)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회사의 새 등기이사로 선임된다. 이에 따라 현대차 등기이사는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 양승석 사장, 강호돈 부사장 등 4명이 된다. 현대차는 3월 12일 주총에서 새 이사진을 공식화한다. 정 부회장의 신규 이사 선임은 지난해 창사 이래 연간 판매 300만 대 첫 돌파 등에 힘입었다. 뉴페이스 ■ 장태종 신협중앙회장 장태종(62) 신임 신협중앙회장이 11일 취임했다. 장 회장은 10일 열린 정기대의원 대회에서 임기 4년의 제30대 중앙회장으로 뽑혔다. 그는 한국은행 및 은행감독원, 금융감독원을 거쳐 신협중앙회 검사감독이사와 심의제재위원회 위원장, 기금관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그는 “올해 신협의 중점 목표는 서민대출 확대”라고 밝혔다. . .■ 이현봉 넥센타이어 대표이사 부회장이현봉(61) 전 삼성전자 서남아총괄 사장이 넥센타이어 새 대표로 발령받았다. 그는 오는 3월 12일 국내 상장사 중 처음 열리는 넥센타이어 주총 의결을 거쳐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공식 임명된다. 그에 대한 이번 인사는 수출 비중이 80%에 이르는 넥센타이어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홍준기 한국직접판매협회장홍준기(52) 웅진코웨이 대표이사는 10일 한국직접판매협회 제18차 정기총회에서 제7대 협회장으로 선임됐다. 임기는 3년. 신임 홍 협회장은 성균관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1983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멕시코 생산법인 부장, 헝가리 생산·판매법인장을 거쳐 2006년 웅진코웨이 대표이사를 맡았다...■ 한영근 IBK자산운용 대표IBK자산운용은 11일 신임 대표이사 사장에 한영근(57)씨를 선임했다. 한 대표는 경남고와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1977년 기업은행에 입행했다. 이후 인사부장·카드사업단장·개인고객본부장·경영지원본부장 등을 거쳐 지난 1월 부행장으로 퇴직했다.

2010.02.2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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