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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매출 8백배 성장한 유통업계 기린아

7년 만에 매출 8백배 성장한 유통업계 기린아

1998년 1월. 부임한 지 2달이 채 되지 않은 LG홈쇼핑의 최영재(61) 사장은 양평동 사옥 지하 1층에 있는 품질관리실로 내려갔다. 창고 안으로 들어간 최사장은 제품들을 직접 확인하기 시작했다. 주방용품·가정용품 등 제품들을 일일이 뜯어봤다. 옷은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바느질이 꼼꼼한지 살폈다. 그 결과 창고 안에 있던 물건의 60%가 반품으로 처리돼 공장으로 돌려보내졌다. 상품 회전율이 빠르고, 재고가 많지 않은 TV홈쇼핑의 특성상 60%에 이르는 반품은 영업에 치명적이다. 납품업체들로부터 원성도 자자했다. 하지만 최사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97년에 회사에 와 보니 직원들이 ‘가격만 싸면 되지’하는 생각을 합디다. 그래서 직접 창고로 내려갔습니다.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장사는 믿음이 중요하거든요. 품질이 안 좋은데 믿음이 생기겠어요?” ‘가격이 아니라 품질이 우선’이라는 LG홈쇼핑의 전략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최사장의 품질우선주의는 바로 빛을 봤다. 그가 부임한지 1년 만인 98년, LG홈쇼핑은 매출액과 순이익에서 39쇼핑을 앞질렀다. 그후 3년이 지난 2001년 12월17일 LG홈쇼핑은 연간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76% 늘어난 1조6백여억원, 영업이익은 4백68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매출액 기준 연간 2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지난해 TV홈쇼핑 시장의 절반에 해당한다.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백화점의 대명사 롯데백화점 명동점(2001년 1조3천여억원)의 매출과 맞먹는 수준이다. 사업개시 첫해인 지난 95년 13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LG홈쇼핑은 연 평균 2백%의 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지난해는 6천1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 들어서도 꾸준한 신장세를 계속, 10월부터 월 매출 1천억원을 이어오고 있으며, 11월에는 업계 최초로 하루 주문매출 1백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6천4백억원 증가한 1조7천억원의 매출에, 영업이익은 96% 증가한 9백20억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말 그대로 가파른 성장세다. 불과 설립·사업개시 6년 만에 1조원 매출을 달성하는데에는 LG홈쇼핑의 끊임없는 품질·서비스 개선이 큰 역할을 했다. 품질관리 전문요원을 30여명이나 두고 3단계 품질테스트를 하고 있으며 배송 후에도 상품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나 교환·환불 등을 끝까지 책임진다. 또 구입한 상품에 대해 30일 환불보장제를 실시하고 있다. 통신판매 및 방문판매법에 규정된 청약철회 기간인 14일에서 20일보다 길다. 환불시에도 일단 구매자에게 돈을 먼저 입금한 후 물건을 회수해 간다. 이른바 선(先)환불제다. 지금은 다른 홈쇼핑에서도 다 실시하지만 LG가 최초로 도입한 제도다. 홈쇼핑업계 처음으로 실명제 서비스를 도입한 것을 비롯해 고객이 지정한 날 제품을 배송해주는 지정일배송·휴일배송제를 실시했다. 상품에 하자가 있을 때는 1∼2년이 아니라 평생환불을 보장하는 ‘1백% 고객만족책임제’를 선도적으로 도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20%대에 이르는 반품·취소율은 최사장의 고민이다. 인터넷 쇼핑몰 LG이숍(www.lgeshop.com)은 업계 최초로 24시간 실시간 고객상담 서비스 체제를 갖추고 있다. 고객상담 전문인력이 24시간 내내 게시판에 올라온 각종 문의사항에 대해 즉시 대답해 준다. 고객이 원할 경우 특정 텔레마케터를 통해 지속적으로 주문할 수 있도록 지정 텔레마케터제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LG홈쇼핑이 순탄한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사업개시 첫해인 95년 한국홈쇼핑(現 LG홈쇼핑)은 의외로 중소기업인 39쇼핑에 맥을 못 췄다. 대기업 LG를 등에 업고 무난히 1위를 할 줄 알았던 것과는 반대 결과가 나왔다. 그후 3년 동안 ‘홈쇼핑=39쇼핑’이라는 등식이 굳어 졌다. 당시 39쇼핑은 미국의 홈쇼핑에서 직접 마케팅과 영업에 대해 배우고 왔다. 홈쇼핑 선진국이었던 미국의 노하우를 전수받은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초기 시장을 선도해 갔다. 97년 말 전임 CEO 두 명이 물러난 LG홈쇼핑에 최영재 사장이 부임했다. LG화학의 생활건강부문에서 30년간 소매장사를 해온 최사장이 홈쇼핑 사장에 부임한 것이다. 이때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홈쇼핑의 전략을 바꿨다. ‘홈쇼핑=저가(低價)’라는 개념에서 ‘홈쇼핑=신뢰’라는 개념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미국은 케이블TV 홈쇼핑의 주 시청자가 히스패닉이나 흑인 등 저소득층이었다. 당연히 저가 위주의 제품들이 주요 품목을 이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당시까지만 해도 케이블TV가 아파트 단지 등 중산층 위주로 보급되고 있었다. 주 시청자들의 소득 수준이 다른 만큼 영업전략도 달라야 한다고 최사장은 생각했다. 가격보다는 품질이 우선이다. 만져보지 않고, 직접 접촉해 보지 않고 물건을 사는 곳이 홈쇼핑이기 때문에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천우신조(天佑神助)랄까? 경쟁사에서 가짜 보석 판매사건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3년간 쌓아놨던 명성이 하루아침에 내려앉았다. 이 사건을 보며 최사장의 ‘품질 위주’ 전략은 더욱 확고해 졌다. 홈쇼핑이 걸음마 단계이던 97년, 이처럼 홈쇼핑의 개념을 저가에서 품질 위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최사장의 ‘35년 장사꾼’ 경력 덕이다. 65년 LG화학에 입사한 이래 최사장은 줄곧 주부들을 상대로 하는 소매부문에서만 근무했다. 그가 30년간 근무한 LG화학 생활건강 사업부는 비누·세제·치약·화장품 등을 만드는 그야말로 ‘아줌마 상대 장사’였다. 마진도 박해 일반적으로는 ‘10원 떼기 장사’라고 불린다. 빨랫비누나 주방용 세제 같은 제품은 하나 팔아봐야 백원도 안 남는 제품이 허다하다. 때문에 소비자들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가전제품처럼 신기술이 시장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선호가 시장을 이끄는 업종이다. 서비스업인 홈쇼핑은 그야말로 소비자와 기업간의 생각이 교환되는 곳이다. 제품을 방송하면 소비자들의 반응이 바로 온다. 주문전화 숫자가 바로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때문에 어느 사업보다 소비자들의 트렌드, 그것도 주부들의 트렌드를 정확히 판단하는 CEO가 필요하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고객”이라는 말은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다. 스스로 “사장은 속여도 고객을 속이는 것은 용서 못한다”고 공언하고 다닐 정도다. 그의 방에는 임원이나 비서진에서 건드릴 수 없는 팩스가 있다. 이 팩스는 소비자들이 사장실로 직접 보내는 핫라인이다. 여기로 들어오는 소비자들의 불만은 즉시 해당 부서나 담당자에게로 전해진다. 사장이 직접 읽고 문제를 해결한다. 고객의 반응을 여과 없이 듣기 위해서 설치한 것이다. 이런 자세 덕에 시장에 대한 감각도 여전하다. 머천다이저(MD)가 납품불가 판정을 내린 제품 중에서도 그의 눈에 띄어 히트상품이 된 제품도 많다. 2000년 여름 TV홈쇼핑의 히트상품 중 하나인 냉장고용 회전식 반찬통이 좋은 예다. 당시 담당MD가 “아이디어는 좋은데 금형이 좋지 않아 제품이 별로다”고 반품을 해버렸다. 최사장은 보고를 받으면서 담당MD를 나무랐다. “그런 제품을 잘 만들게 하는 게 MD가 할 일 아니냐. 돈이 필요하면 돈을 대서라도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 와!” 주부들에게 큰 인기를 끌 수 있는 제품이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회전식 반찬통은 엄청난 수량이 팔렸다. 경쟁사는 물론 소형 홈쇼핑사들도 그 제품을 팔 정도였다. 이처럼 품질관리도 단순히 납품업체의 제품을 합격·불합격 판정만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납품업체가 중소형 업체인 봉제제품의 경우 LG홈쇼핑의 MD들이 직접 제조공장에 가서 품질 지도를 하고 있다. 원천적으로 불량품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다. “불량품을 반품하는 것도 코스트가 듭니다. 불량품이 원천적으로 나지 않아야 제조사도 코스트를 줄일 수 있고, 그래야 우리도 더 싸게 팔 수 있지요.” 상품과 시장을 보는 눈은 이미 LG화학 생활건강부문에 있을 때 검증을 받았다. 우리나라 치약시장 판매 1위인 페리오나 드봉 화장품 등이 모두 최사장의 작품이다. 드봉의 경우 화장품 브랜드가 전혀 없던 LG를 단숨에 화장품 업계 2위로 만든 브랜드다. 하지만 최사장이 마냥 소비자들의 기호만 따라가는 스타일은 아니다. 경영효율이나 미래 전략상 필요한 경우 소비자들을 ‘훈련’ 시키기도 한다. LG홈쇼핑 방송을 보면 제품을 주문할 때 ‘자동응답전화(ARS)로 전화하면 1천원을 적립해 준다’는 자막이 있다. 얼핏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전략이 LG홈쇼핑 수익성 개선에 큰 몫을 하고 있다. 현재 LG홈쇼핑의 직원은 1천6백여명. 이중 계약직인 텔레마케터들이 8백50명에 이른다. 직원 수의 절반이 넘는 수준이다. 만약 모든 주문이 텔레마케터들이 직접 응답하는 전화로 온다면 LG홈쇼핑은 내일 당장 8백50명의 텔레마케터를 추가로 고용해야 한다. 현재 전체주문의 절반 정도가 ARS를 통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1천원 적립금을 주면 고객을 붙잡는 효과도 생기고 ARS를 통해 주문받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인터넷에도 비슷한 방법을 적용했다. TV방송을 보고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구매 금액의 3%를 적립금으로 줬다. 주변에서는 “인터넷 매출을 올리기 위한 꼼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최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인터넷을 앞으로 (홈쇼핑이) 가야할 방향입니다. 그런데 주부들은 인터넷을 잘 몰라요. 대신 적립금을 준다고 하면 인터넷 쇼핑을 배우는 사람도 생기고, 안 되면 자녀들을 통해 LG이숍에 들어가라고 시키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꾸 LG이숍과 친근하게 만드는 겁니다.” 어차피 주문할거면 적립금을 미끼로 LG이숍 인터넷 쇼핑을 훈련시키고, 전화비용도 줄일 수 있다. 이 두 가지 전략은 다른 홈쇼핑들에게도 퍼졌다. 그 결과 올해 LG홈쇼핑은 인터넷 부문에서 1천억원 정도 매출을 기록했다. 연간으로는 적자지만 지난해 10월부터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내년에는 LG이숍을 통해 2천5백억원의 매출을 계획하고 있다. CJ39쇼핑이 지난해 10월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시작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진척된 상태다. LG홈쇼핑은 인터넷 부분에 상당히 역점을 두고 있다. 지금은 TV홈쇼핑의 한 부분이지만 3∼4년 내에 주력이 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아직까지는 CJ와 매출액 비교하면 ‘인터넷이 없어서’라고 하지요? 3∼4년 뒤에도 그런 얘기하면 안 통하죠. 그때는 이미 인터넷이 중심일 텐데요.” 다혈질에다 직선적인 스타일이긴 하지만 흔히 말하는 ‘불도저’형 경영자는 아니다. 주변에선 그를 보고 “상당히 유연한 경영자”라고 말한다. 일단 확정된 사항은 강력하게 밀어붙이지만 주변의 의견을 듣고 심사숙고해 보고 아니라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결정을 바꾼다. 아침에 정해진 결정이라도 틀렸다고 판단되면 저녁에 바꿀 정도로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다. 시장판단도 상당히 냉철하다. 그의 정확한 시장 읽기를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 97년에 LG홈쇼핑 매출액은 7백억 정도였다. 2위였다. 최사장이 부임한 후 98년에는 2천2백억원으로 껑충 뛰면서 1위를 했다. 그러자 99년 계획으로 직원들이 4천5백억을 잡았다. 1년만에 3배 했으니 99년에 2배 정도는 문제없다는 생각들이었다. 최사장은 “안 된다 3천3백억원 정도로 낮춰라”고 했다. 막상 99년 말이 되니 매출액이 3천2백억 정도로 집계됐다. 그러자 직원들이 2000년에는 목표액을 4천5백억 정도로 잡아왔다. 최사장은 또 바꿨다. “올해 목표는 6천억원이다.” 2천년 매출액은 6천13억원. 또 최사장이 맞았다. 지난해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연초 목표는 8천6백억원. 최사장은 여름쯤에 1조원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결국 지난해도 최사장이 맞았다. 올해 목표 1조7천억원을 발표한 최사장은 벌써 “목표를 좀 늘려 잡아야 겠는데….”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신세계백화점이나 현대백화점과 비슷한 수준의 매출액이다. 하지만 좀더 욕심이 생기는 모양이다. “계획 발표한 지 한 달도 안돼서 또 수정하면 바보라고 할까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4년 연속 연말 매출액 맞추기에 성공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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