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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0 기름 넣기 돌풍

60:40 기름 넣기 돌풍

대전의 한 전문판매점에서 주유원이 세녹스 주입량을 확인하고 있다.
가구업체에 다니는 박재민(36)씨는 두 달 전부터 더 이상 자신의 차량에 휘발유를 가득 채우지 않는다. 60%만 넣은 후 서울 가락동에 있는 카센터에서 ‘세녹스’라는 연료 첨가제를 구입해 나머지 40%를 채워 넣는다. “처음에는 불안했죠. 이거 넣다가 차 엔진 버리는 게 아닌가 하고요. 그런데 소개를 해준 후배가 괜찮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용해 봤는데 확실히 연비가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더라고요." 박씨가 ‘60:40’이라는 기름 넣기를 하는 이유는 연비도 연비지만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휘발유 가격이 1ℓ에 1천3백원을 오르내리는 상황이지만 세녹스는 ℓ당 9백90원. 박씨의 아반떼 승용차 연료 탱크 용량이 50ℓ 정도임을 감안할 때 40%인 20ℓ를 세녹스로 넣을 경우 1회 주유시 적게 잡아도 6천원을 아낄 수 있다. 보통 2∼3일에 한 번씩 ‘만땅’ 넣기를 하는 박씨로서는 ‘거금’을 절약하는 방법인 것이다. 세녹스를 사용한 지 두 달 만에 그의 회사 동료 여러 명도 세녹스 애용자가 됐다. 이렇게 세녹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박씨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60:40 기름 넣기’는 전국적인 현상이 돼 가고 있다. 특히 전라도와 대전 지역은 세녹스가 휘발유 시장을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반화 됐다. 지난해 10월 전남 여수에서 세녹스를 팔기 시작한 한 판매점은 지난 2월 중순 하루 6천ℓ를 판매해 한달 평균 1억5천만원대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을 정도다. 더구나 최근 이라크 전쟁설이 임박했다는 소식으로 휘발유 값이 뛰면서 세녹스 붐은 마른 들판에 불이 번지듯 확산되고 있다. 세녹스를 판매하는 지오에너지에 의하면 세녹스의 판매량은 지난 1월 하루 평균 20만ℓ에 이르던 것이 2월 들어서는 40만ℓ로 두 배 이상 뛰었고 가끔씩 50만ℓ를 돌파하기도 했다. 50만ℓ는 중형 승용차 1만대의 연료통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물량이다. 이처럼 세녹스 바람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가자 지난 2월20일 대한석유협회·한국주유소협회·한국석유유통협회가 공동으로 “정부가 유사 휘발유인 세녹스 문제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전국 1만1천여개 주유소에서 휘발유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성명서를 내기에 이르렀다. 불경기와 유가 인상으로 가뜩이나 매출이 격감하고 있는 데 세녹스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복주 석유유통협회 부회장은 “세녹스 대리점 근처의 주유소는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라고 보면 된다”며 “대전 지역의 경우 휘발유 판매량이 30% 이상 감소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석유 관련 3개 협회가 대책을 촉구하자 산자부는 기다렸다는 듯 ‘석유사업법령을 개정해 유사 석유제품 제조 및 판매 중지 명령과 유사 석유제품 사용자 처벌을 단행하겠다’는 요지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23일에는 환경부도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등을 오는 6월 말까지 개정해 자동차 연료 첨가제의 혼합 비율을 규제하겠다’며 박자를 맞췄다. 현재 ‘소량’으로 돼 있는 연료 첨가제의 혼합 비율을 1%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것이었다. 혼합비율 40%인 세녹스의 판매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세녹스를 판매하는 지오에너지와 소비자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특히 소비자들은 최근 들어 산자부 홈페이지에 몰려가 세녹스 관련 글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들의 의견은 ‘도대체 왜 세녹스가 나쁘냐’는 것이다. 날마다 수십건의 비난 글이 쏟아지고 있다. 다음 카페에는 벌써 20개 가까운 세녹스 모임이 결성돼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지난해 6월부터 프리 플라이트 생산공장이 있는 전라도 목포 지역을 시발점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세녹스의 법적인 명칭은 ‘자동차용 다목적 연료 첨가제'. 2001년 7월 환경부 산하인 국립환경연구원으로부터 자동차용 연료 첨가제로 인정받은 이 제품은 솔벤트·톨루엔·메틸 알코올 등을 적절하게 혼합해 만든 것으로 제조는 프리 플라이트가, 판매는 지오에너지가 맡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연료 첨가제’로 시판에 나선 세녹스를 산자부가 ‘유사 석유’로 규정, 지난해 7월 제조사인 프리 플라이트를 서울지검에 고발하는 한편 8월에는 세녹스를 판매한 5개 주유소에 3개월 영업정지와 5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 산자부는 자동차 연료로 직접 사용이 가능하다는 한국석유품질검사소의 성분 분석 결과를 근거로 세녹스가 석유사업법 제26조를 위반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석유사업법 제26조는 휘발유에 다른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을 혼합해 연료로 쓰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오에너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며 판매를 강행해 오고 있다. “유사 석유가 아니라 첨가제이며, 첨가제이기 때문에 석유사업법을 위반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한국석유품질검사소의 성분 분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또 국립환경연구원의 검사 결과 매연 배출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세녹스를 휘발유와 6:4로 혼합해서 사용하면 연비가 10%나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양측의 이런 팽팽한 대립은 명목상 ‘유사 석유’인가 그렇지 않은가로 나타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세금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휘발유나 첨가제는 제조원가가 비슷하지만 휘발유에는 ℓ당 8백62.68원의 세금이 붙기 때문이다. 만일 세녹스가 ‘유사 석유’(휘발유)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ℓ당 교통세 5백86원, 교육세 87.9원의 세금이 붙게 된다. 석유 관련 협회들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첨가제로 인가받아 실질적으로는 연료로 판매되고 있어 경쟁이 안 된다”는 주장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산자부의 고영균 사무관도 “세금도 내지 않고 시장을 교란하고 있는 세녹스에 대해서는 대체에너지로 고려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현재 전반적인 상황은 지오에너지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산자부와 환경부가 법을 개정해 세녹스 판매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고 나선데다, 프리 플라이트를 관할하는 전남 목포세무서가 산자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해 6∼9월 판매분에 대해 44억9천만원의 세금을 부과한 데 이어 조만간 10∼12월 판매분에도 54억6천만원을 부과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이에 대해 1억원만 납부하고 대신 공장 등 회사의 모든 자산을 국세청에 담보로 제공, 오는 3월 말까지 납부 유예를 신청해 놓고 있으나 연기 시한이 지나면 국세청의 압류 여부에 따라 생사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세녹스의 운명에 따라 지난 1월 같은 연료 첨가제로 선을 보였다가 산자부로부터 ‘유사 석유’로 판정받은 ‘LP 파워’도 같은 길을 걸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김진희(33) 녹색소비자연대 정책부장은 “환경부의 평가와 소비자들의 평가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면 무조건 냉대를 하는 것보다는 정부가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며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기회를 계기로 삼아 대체에너지의 상용화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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