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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 상상력으로 풀어본 새만금

건축적 상상력으로 풀어본 새만금


새만금 방조제 위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새만금이 가진 바다와 갯벌, 만경강과 동진강, 철새 도래지와 염전이라는 새만금 일대의 풍광은 무한한 상상을 자극한다. 건축가들이 새만금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른 시각과 열린 논의들’이라는 제목으로 9월 6일까지 동숭동 쇳대박물관에서 열린 건축가 22명의 전시회는 새만금에 대한 건축가들의 대안적 상상을 잘 보여준다.

이 전시회는 지난 8월 서울건축학교가 마련한 워크숍에 제출된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워크숍에는 김광수·승효상·김영준·민현식·이일훈씨 등 소장에서 중견에 이르는 건축가 22명과 63개 대학 1백5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했다. 워크숍의 코디네이션을 맡은 건축가 최문규씨는 “새만금 문제에 대해 건축가들이 아무런 대안도 내지 않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라며 “이번 작업은 새만금의 미래에 대한 건축가들의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만금의 미래에 대한 이들의 상상은 현재 새만금이 처한 ‘현실’에서 출발한다. 1991년 시작된 방조제 공사로 33km의 긴 둑이 형성된 것이나 갯벌 생태계와 그를 통해 살아가는 지역민의 삶 또한 수긍해야 할 현실이라는 것이다. 현재까지 쌓아놓은 방조제를 인정하면서도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갯벌을 간척해 농지나 공단을 조성한다는 농업기반공사의 방안에 대해서는 참가 건축가들 모두가 반대의사를 갖고 있다.

‘생생지리’(生生之理)라는 제목을 단 김영준·민현식 스튜디오의 ‘새만금 환형도시 구상’은 거시적 대안에 속한다. 이 작품은 새만금 지역 해안과 방조제를 따라 원형의 소도시군을 만들 수 있다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방조제와 해안, 섬과 반도라는 새만금 지역의 서로 다른 지형은 그 특성에 맞는 건축물들을 세울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방조제에 기대어 만드는 주거형태, 방조제를 따라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세운 건축물, 물위에 떠 있는 도시,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하고 섬에서 길게 뻗어 나오는 줄기 형태의 건축물 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영준씨는 “치밀하게 짜여진 마스터플랜식 도시 개발은 좋은 도시가 되기 어렵다. 그보다는 미래에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는 소도시 형태의 건축물들을 원형의 공간 안에 배치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승효상·김병윤 스튜디오가 낸 작품은 옥구 지역의 폐염전을 활용해 납골당을 만들자는 ‘바다묘지안’이다. 바다 위로 뻗은 염전 위의 묘지를 따라 걸으며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 방안은 실용적이면서도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생태계의 교란을 막기 위해선 급격한 지형 변화를 꾀하지 말고 지문(地文)을 읽고 그 뒤에 슬쩍 덧대는 방식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게 출품자인 승씨의 생각이다.

새만금 지역에는 60년대 간척된 계화도 간척지가 포함돼 있다. 이충기·조성용 스튜디오가 ‘에코뮤지엄’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한 작품은 계화도 주변을 생태공원화하자는 방안이다. 새로운 땅에 대한 열망으로 시작된 계화도 간척지는 쇠퇴를 거듭하고 있는 곳으로 새만금이 간척되었을 경우 벌어질 상황을 예고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씨 등은 간척 이전의 옛 섬의 흔적들을 되살리고 간척지의 삶을 체험하고 관람할 수 있는 공원을 조성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11개 팀이 출품한 작품들은 새만금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거시적’ 개발과 가능한 한 원형을 유지한 채 부분적으로 활용하자는 ‘미시적’ 개발로 나뉜다. 방조제를 활용해 그 위에 선형의 열도(列都)를 건설하자는 김광수·이종호 스튜디오의 제안이나, 갯벌 위에 도시를 만들자는 김인철·김태홍 스튜디오의 안 같은 경우는 거시적이고 과감한 개발론에 가깝다.

반면 갯벌과 해안 마을에 소규모 구조물을 설치하여 새만금 전체를 갯벌공원으로 만들자는 정기용·김승희 스튜디오의 안은 미시적 대안이다. 그동안 새만금의 대안으로 제출된 방안은 건축가 김석철의 바다도시 구상, 이필렬 에너지대안센터 소장이 제안한 풍력발전단지안, 오창환 전북대 교수 등이 제안한 제한개발론 등이다. 제한개발론은 간척 규모를 대폭 줄이고 첨단 산업단지와 항만으로 구성되는 복합단지를 만들자는 방안이다. 여기에 11개의 대안들이 또다시 추가된 셈이다.

서울건축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건축가 김원씨는 “새만금 사업 반대운동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지금 상황에서 새만금을 원상태로 되돌리자는 주장은 현실적 설득력이 떨어진다. 건축가들이 적절한 대안을 내고 그 중에서 타당한 방안을 채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환경운동과 건축가들의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상상력이 새만금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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