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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현정은VS정상영, 벼랑끝 격돌

[포커스]현정은VS정상영, 벼랑끝 격돌

현정은(오른쪽)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은 지난 18일 금강산 관광사업 5주년을 기념해 고 정몽헌 회장 묘소를 참배했다. 왼쪽부터 김재수 현대 경영전략팀 사장, 김윤규 현대아산.
현대가의 보수적인 여성관이 이번 현대그룹 M&A 사태로 불거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玄의 現代’ 유지될 수 있나 지난 11월14일 KCC 측이 “범현대가를 포함해 현대그룹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50% 이상을 취득했다”고 밝히면서 현대 사태는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완승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곧바로 현정은 회장 측은 ‘1천만주 증자를 통한 국민기업화’ 카드를 내놓으며 반격에 나섰다. 국민기업화 안(案)을 보자. 유상증자에 비례해 현회장 측 우호지분도 줄어들겠지만 우리사주에 기대면 계산이 달라진다(당초 우리사주에 2백만주를 배당했으나 증권거래법 규정에 따라 물량은 88만5천2백주로 줄어들었고 전체 유상증자 물량도 9백11만5천여주로 결정됐다). 유상증자에서 1백% 청약될 경우 현회장 측 지분은 28.3%에서 10.17%로 줄어들지만 우리사주 5.67%를 우호지분으로 얻게 돼 15.84%(2백47만2천여주) 지분으로 정명예회장 측(15.95%)과 엇비슷하게 된다. 증권가에서는 “늘어나는 주식 수에 비해 기업가치가 뒤따라줄 수 있을지가 여전히 의문”이라며 미지근하게 반응하고 있다. 게다가 KCC와의 소송 문제도 걸려 있어 현회장의 ‘뒤집기 카드’는 제동이 걸렸다. 정명예회장 측이 유상증자안에 반발해 신주발행금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것. KCC는 “대주주 의사에 관계없이 이사회 결의로 신주를 발행키로 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서를 제출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일단 21일 공시를 통해 최대주주가 김문희씨 외 6인(28.3%)에서 KCC 외 10인(31.57%)으로 변경됐다고 밝혔다. 이번 공시는 KCC 측이 20일 주식 대량보유 변동 보고서를 금감원과 증권거래소에 제출함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현회장 측의 맞대응 여부도 변수다. 현회장 측이 정명예회장과 KCC 측이 신한BNP파리바투신 사모 펀드를 통해 사들인 지분매입 과정의 위법성을 들어 해당 지분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설 경우 상황은 또 달라질 수 있다. 법정에서 정-현 갈등의 ‘연장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玄회장 체제’ 브레인은 누구 여기에서 또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누가 현회장을 ‘살벌한’ 비즈니스 세계로 끌어들였는가 하는 점이다. 현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에 취임한 시기는 지난 10월21일. “경영에 참가한다면 1백일 탈상 이후가 될 것이다”라는 추측이 한달 가까이 앞당겨진 것이다. 현회장이 회장 취임을 이렇게 서둘렀던 것은 무슨 이유일까. 또 현회장은 누구의 조언에 기대고 있을까? 현회장은 회장 취임에 앞서 정상영 명예회장을 몇 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현회장은 정명예회장에게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정명예회장은 “현대가에서 여자가 밖으로 나선 전례가 없다”며 말렸고, 한편으론 주식 매집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 위기감을 느낀 현회장은 ‘가정주부’에서 현대호 선장으로의 변신을 앞당겼다는 분석이다. 현회장의 경영 참여를 독려한 ‘참모’들로는 일차적으로 가신그룹을 들 수 있다. 한때 ‘N, K씨 등이 백기투항을 권유했다’ ‘2∼3명은 현회장에게 등을 돌렸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현대 관계자는 “(가신그룹은) 현정은호(號)와 한 배를 탄 사람들이다. 정상영 명예회장 측이 당장 자신의 목을 날릴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상황인데 누가 등을 돌리겠나”고 반문했다. 이런 가운데 고 정몽헌 회장의 보성고 동창으로 현대 계열사 사장을 지낸 J씨 등이 현회장 측의 ‘새 참모’로 주목받고 있다. 정몽헌 회장 사후 J씨는 현회장을 가끔 만나면서 경영 조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가신그룹의 인사 문제에 대해 적극 조언했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J씨는 현회장에게 K씨 등의 사표를 수리하도록 했다는 ‘구체적’인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후 젊고 참신한 인물을 발탁해 현대그룹의 ‘쇄신’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는 것. 정상영 명예회장 측에 공격 빌미를 주지 말고 오히려 공세적으로 미리 일을 하자는 포석이기도 하다. J씨는 정몽헌 회장 비자금을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현대자동차·현대전자 등에 몸담았다가 현재는 현대그룹에서 분사한 게임회사 경영을 맡고 있다.

凡현대가’ 침묵 언제까지 11월18일 현정은 회장은 경기도 하남 창우리 정주영 명예회장·정몽헌 회장 묘소를 참배했다. 금강산 관광 5주년을 기념하는 한편, ‘현대그룹 사수’를 선언한 현회장으로선 계열사 사장단을 대거 대동한 ‘세(勢) 과시’이기도 했다. 오후에는 고려대 경영관을 찾았다. 시아주버니이자 현대가의 ‘맏형’ 격인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명예경영학 박사학위 받는 것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는 정몽준 국회의원 부부도 참석했다. 현대 사태가 있고 나서 첫 만남이었지만 세 사람은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을 뿐 경영권 분쟁에 대한 깊은 얘기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회장으로서는 ‘확실한 우군’을 얻지 못한 것. 정몽구 회장은 “심정적으로 도와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상황이 못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정적으로’라는 표현은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동안 정회장은 자동차그룹 분리 이후 현대가 적통 계승에 대한 미련을 가져왔다. ‘현실적으로’ 현대차가 현대그룹에 개입하기엔 걸림돌이 많다. ‘돈이 보이지 않는 비즈니스’ 대북사업 문제를 피해갈 수 없고, 시장의 반발도 피해갈 수 없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은 더 난감하다. KCC가 현대중공업의 2대주주(8.15%)이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한쪽을 지지하기가 쉽지 않다. 성우·현대백화점 등 은 지난 8월 GMO펀드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매입에 공동 대응한 이후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범현대가 기업들이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사이 정상영 명예회장과 현정은 회장의 평행선 대치는 계속되고 있다. 내심 백기투항을 바랐던 정명예회장 측으로서는 현회장 측의 반격이 곱게 보일 리 없다. 게다가 현회장의 어머니인 김문희씨가 “고 정몽헌 회장 상(喪)중에 (현회장에게) 상속 포기를 종용했다”는 발언이 알려지면서 정-현 집안 간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정명예회장은 11월20일 “이 말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주식 매입은 고 정몽헌 회장 영결식 당일 장례식장에서 적대적 인수·합병을 우려한 현대그룹 최고경영진의 요청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범현대가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기라도 한 듯 “현대가는 이번 사태에서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일절 관여하는 바 없다”고 대답했다. 문제는 내년 3월이다. 양측이 박빙의 지분 차이로 내년 3월 주총에서 표 대결을 벌일 경우 이들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승부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家에서 여자는 안 돼? 타일·위생도기 같은 건축용 자재를 생산하는 동서산업이라는 회사가 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남인 몽필씨가 경영해 왔으나, 82년 몽필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이 회사 주식은 은희·유희 자매에게 상속됐다. 은희 자매는 정명예회장이 살아생전 각별한 관심을 쏟은 것으로 유명하다. 차녀 유희씨는 이화여대 수석입학, 98년 정명예회장 방북 때 그림자 수행 등으로 눈길을 끌었다. 96년부터는 동서산업 감사를 맡아 정씨 3세 가운데 가장 먼저 경영 일선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명예회장이 장손녀 몫으로 일찌감치 떼어준 동서산업은 현대그룹 2세 승계를 둘러싸고 벌어진 ‘왕자의 난’ 와중이던 2001년 4월 화의를 신청하고 만다. “90년대부터 꾸준히 진행된 설비 투자가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2백억원이 모자랐습니다. 이영복 회장(정은희씨의 이모부)이 정씨 형제를 찾아다녔지만 소용없었어요.” 회사 관계자의 말대로 동서산업은 허무하게 쓰러졌고, 출자전환·감자 등을 겪으면서 은희·유희씨 지분은 4.9%대로 줄었다. 영업본부장을 맡았던 은희씨의 남편 주현 상무도 10월 초 회사를 떠났다. 세간의 기억에서 잊혀졌지만 ‘동서산업 사례’는 현대가에서 상속 문화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조금 거칠게 표현해 “여자한테 경영권을 물려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대가의 여인에게 요구된 원칙은 ‘유교적 여인상’ 자체였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부인인 변중석 여사도 기회 있을 때마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것이 (며느리의) 본분”이라고 가르쳤다고 전한다. 당연히(?) 사회활동은 엄두도 못 냈다. 8남1녀의 가장이었던 정씨 일가에서 공식 직업을 가진 여인은 거의 없었다. 미국 웨슬리대학 출신의 ‘똑똑한 며느리’ 김영명씨가 남편인 정몽준 의원의 지역구(울산 동구) 관리를 하는 정도였다. 정명예회장의 장녀인 경희씨 역시 남편인 정희영 천마산스키장 회장의 부인으로만 알려져 있다. 사회활동을 하기로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넷째동생인 고 신영씨의 부인 장정자씨가 꼽히지만, 이 역시 신영씨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정명예회장이 현대고교 이사장 자리를 배려해 준 것이다. 이런 보수적인 여성관은, 지금이야 의미가 퇴색했지만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과 대조된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 고문은 젊은 시절 “손수 자갈을 골라내며 신라호텔 건설을 도맡았던” 여걸 경영인이고, 5녀 이명희 회장은 신세계를 굴지의 유통그룹으로 키워냈다. 이런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삼성 3세이자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녀 부진씨는 신라호텔 부장으로, 차녀 서현씨는 제일모직 부장으로 근무 중이다. 삼성의 ‘안주인’인 홍라희 여사는 삼성미술관 관장으로 있다. 현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회장 취임을 정상영 명예회장이 말리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정명예회장은 “평생 집안일만 하던 조카며느리가 어떻게 굴지의 대기업을 끌고 갈 수 있겠느냐”며 현회장을 말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회장이 걸스카우트연맹 이사를 지냈다고는 하지만 이는 어머니인 김문희씨가 걸스카우트연맹 총재를 역임했던 ‘인연’에서 비롯됐고, 한달에 한두 차례 이사회에 출근하는 수준인데 어떻게 대그룹의 지휘를 맡기느냐는 것이 정회장의 논리다.

범현대가의 分家

1947년 현대토건 설립


1970년대 ‘永’자 형제들의 독립


1970년 정순영(3남) 성우그룹으로 독립


1974년 김영주(처남) 한국프랜지로 독립


1975년 정인영(2남) 한라그룹으로 독립(97년 부도)


1976년 정상영(6남) 금강고려화학(KCC)으로 독립


1979년 현대그룹 재계 1위 진입


1980년대 정세영 회장의 부상


1987년 정세영 그룹회장 취임, 정몽구 회장과 마찰


1996년 정몽구 그룹회장에 취임하는 것으로 일단락


1990년대 ‘夢’자 2세들의 계열 분리


1998년 현대정유(정몽혁) 분리(지배주주 아람코로 변경) 현대백화점(정몽근 회장) 분리 현대해상화재(정몽윤 고문) 분리 현대아산 설립하면서 대북사업 전개


1999년 정세영(4남) 현대산업개발로 독립


2000년대 그룹 경영권 둘러싼 집안 갈등


2000년 3월 ‘왕자의 난’ 정몽구·몽헌 회장 간 현대그룹 계승 둘러싼 갈등 정몽구 회장 현대차로 분리, 형제간 계열분리 가속화 현대, 상선·엘리베이터·아산 등 미니그룹으로 축소


2000년 9월 현대자동차그룹(정몽구 회장) 계열분리


2001년 3월 정주영 명예회장 사망


2002년 2월 현대중공업(정몽준 대주주) 계열분리


2003년 8월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사망


2003년 10월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 취임


2003년 11월 정상영·현정은 회장 간 현대그룹 M&A 갈등


2004년 3월 현대그룹의 향방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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