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집값이 올라야 경제가 산다?
강남 집값이 올라야 경제가 산다?
▒ 아파트 가격 변천사 ▒
세계적 명품을 한국에 들여와 판매하는 김석중(가명)씨는 매출이 부진하면 색다른 처방을 쓴다. 그는 언론에 ‘일부 계층의 삐뚤어진 향락소비로 명품엔 불황이 없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만들어 돌린다. 물론 본인이 나서지 않는다. 서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시민단체와 접촉, ‘명품의 소비실태’ 등을 조사하는데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고 이들로 하여금 보도자료를 만들게 하는 것이다. 그는 “명품소비에 대해 욕을 하게 만들어야 명품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도 강해진다”며 “부정적인 마케팅 수단이지만 서민들의 심리를 자극하면 매출이 는다”고 귀띔했다.
서울 강남의 집값이 폭등하는 이유도 ‘강남’이라는 말이 서민들에게 주는 위화감에서 찾을 수 있다. 강남은 ‘높은 신분’의 상징이다. 남녀간 데이트를 할 때도 상대방이 강남에서 산다고 하면 달리 보인다. 대학에서도 강남파·잠실파 등으로 나뉘어 누가 돈을 잘 쓰는지 경쟁하기도 한다. 이렇듯 강남을 두고 벌어지는 풍경은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전국에서 가장 집값이 높은 강남은 이렇듯 집없는 서민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주면서도 집값은 꾸준하게 오른다. 강남에서 15년째 부동산 컨설팅을 하는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강남 욕을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집값은 더 상승한다”며 “강남의 주택산업은 계층간 박탈감을 거름삼아 성장한다”고 말했다.
강남이 욕을 먹어도 강남에서 살고 싶다는 ‘대기 수요자’는 줄을 선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해마다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신혼살림을 어디서 차리겠냐고 물으면 40% 이상이 ‘강남구’라고 답한다(2001, 2002년 모두 41%). 이유는 “쾌적하고 안정된 주거환경” 때문이다. 해마다 전국에서 신혼가정을 꾸리는 사람들은 대략 30만쌍, 따라서 매년 12만쌍의 ‘강남 거주 선호자’들이 생겨나는 셈이다.
과거엔 어떤 사람들이 강남으로 몰려갔을까. 1970년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으로 강남개발을 주도했던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76년부터 강남 아파트 개발 계획이 나오자 당시 갓 시집온 며느리들이 분가를 목적으로 강남으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대학을 졸업한 신세대 며느리들은 시부모와 떨어져 살기 위해 낮엔 공사차량으로 시끌벅적한 강남에서 이를 견뎌내며 살았다고 손교수는 전했다. 지금 60대가 된 이들이 지난 30년간 강남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고, 극성스러운 교육열 덕에 강남은 사교육 중심지로 발전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강남이 뜨기 전 서울의 집값을 좌지우지하던 곳은 여의도였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전후 비행장으로 사용되던 여의도는 80만평 규모의 모래땅이었다. 그러나 주요 관공서와 대기업 본사,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주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특히 여의도 주민들의 자제들만 들어갈 수 있는 ‘특수학군’(여의도 중·고등학교)제도가 시행되면서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 김홍배 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 전무는 “당시 여의도는 금융의 중심지가 될 것으로 전망됐고, 강북과 영등포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로 부각되면서 집값이 급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80년대 초반 강남 압구정동 일대의 아파트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서울 집값의 주도권은 여의도에서 강남으로 넘어간다. 강북 주민들이 강남으로 집을 옮긴 결정적 요인은 강북에 있던 중·고등학교의 강남 이전이었다. 78년 고 박정희 대통령은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해서라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강북에 있는 학교를 강남으로 유치·이전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경기·서울·배재·휘문 등 남자 고등학교와 창덕·숙명·정신 등 여자 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옮겨졌다. 70년대는 ‘강북 억제·강남 유치’의 연대였던 것이다.
강남 개발의 결과 땅값이 63년부터 79년까지 16년 동안 강남구 학동은 1천3백33배, 압구정동은 8백75배, 신사동은 1천배가 올랐다. 반면 강북의 중구 신당동과 용산구 후암동은 25배 오르는데 그쳤다. 강남지역의 땅값 신화는 80∼90년대는 압구정동·청담동을 중심으로, 2000년 들어서는 대치동·도곡동을 중심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왜 강남의 부동산 가격만 압도적으로 올랐을까. 부동산 전문가들은 강남에는 각종 세금 면제 등 개발촉진 정책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집값을 올렸다고 분석한다.
제3한강교·경부고속도로·지하철 2호선 건설, 지하철 3호선 통과, 고속버스터미널 건설, 법원·검찰청 이전, 명문고 8학군 정착, 압구정동의 유행의 첨단지역화 등이 대표적인 예다. 또 강남지역은 규모(8백만평)가 워낙 커서 주택공급에 제한이 없을 정도였다는 점도 강남 개발붐을 일으키는 원동력이었다. 게다가 강남은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세대들에겐 안식처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다리가 끊겨 강을 건너지 못하고 공산치하에서 살았던 것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도강하지 않고도 언제든 남쪽으로 피란갈 수 있는 강남에서 살고 싶어했다.
80년대 강남 집값이 계속 오르자 전두환 정권부터 역대 정권은 이를 잡으려는 정책을 내놓았지만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실패한 부동산 정책은 1983년의 채권입찰제였다. 이는 아파트 분양신청을 할 때 매입할 채권액수를 써내면, 채권액이 많은 순서에 따라 당첨자를 결정하는 제도다. 채권은 제2종 국민주택채권으로, 여기서 조달된 자금은 무주택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 건설자금으로 지원됐다.
명분은 좋았지만 아파트 분양 후 거액의 프리미엄을 붙여 되파는 투기꾼을 막지는 못했다. 이들은 채권 매입액을 많이 써내 당첨된 뒤 실제 매입 계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악용했다. 이미 분양권 전매시장엔 최고 가격을 써낸 것이 아파트 시가로 형성되었고, 투기꾼들은 이 가격을 기본으로 분양권을 되팔았다. 김홍배 전무는 “당시 분양가를 묶어놔 건설업체는 부실시공을 하기 일쑤였고, 채권입찰제는 부실 아파트의 가격만 더 키웠다”고 지적했다.
최근 강남 집값을 폭등시킨 것도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9월 발표된 9·5대책은 시장의 흐름을 올바로 읽지 못해 역효과만 불러일으킨 것으로 평가한다. 재건축할 때 소형 평형(전용면적 25.7평) 건축 의무비율을 20%에서 60%로 확대한 9·5대책은 그야말로 강남 집값 폭발에 기름을 부었다. 9·5대책은 은마·청실·잠실주공 등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중심으로 강남 집값이 폭등하자 이를 잡기 위해 내놓은 것이었다. 정부 당국자들은 재건축 아파트값을 잡아놓으면 집값이 안정화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40평형대 이상의 중·대형 아파트값 폭등이었다. 소형 아파트가 늘면 반대로 대형 평형의 공급이 줄 것이고, 이에 따라 기존 대형 아파트 가격이 올라갈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아파트값의 변동 이유를 분석해 ‘아파트값 5차 파동’이라는 책을 펴낸 최명철씨는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한 정부의 실수로 중·대형 아파트값이 순식간에 1억∼2억원 올랐다”며 “재건축 아파트값도 덩달아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렇듯 정부의 정책은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역효과와 투기세력만 양산해 내고 있다. 중소기업 영업부에서 근무하는 김신영(36·가명) 과장은 지난 9월 송파구 가락동에 37평형 아파트를 4억5천만원에 구입했다. 사실 그는 1억3천만원짜리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어 4억5천만원짜리 아파트를 살 형편은 아니었다. 우선 그는 상계동 처가의 비어 있는 방으로 이사하면서 전세자금 1억3천만원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처가의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1억5천만원을 빌려 가락동 아파트를 1억7천만원의 전세를 끼고 구입했다. 그는 “매달 1백10만원의 이자를 내야 하지만 나는 이 돈을 저축한다고 생각한다. 곧 아파트값이 1억원 이상 뛸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록 처가살이를 할망정 떼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김과장을 비롯해 부동산 투자자들이 강남 투자에 과도한 욕심을 내는 이유는 이번 강남 집값 폭등이 10년 전 폭등 양상과 아주 유사하다는 점 때문이다. 87년부터 91년까지 진행된 아파트값 폭등 과정에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최근의 강남 집값 상승 과정에서 내놓은 것과 비슷하다. 87년부터 강남 집값이 오르자 89년 2월 노태우 정권은 서민용 아파트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중·대형 아파트값만 높여 놓았다. 이는 올해 9·5대책 이후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값이 올라간 것과 같은 실수다.
노태우 정권은 89년 2월 내놓은 대책이 오히려 집값 상승의 계기가 되자 2개월 뒤인 4월 ‘1가구 2주택 과세를 강화하고 분양권 전매를 금지하며, 분당 신도시 건설 계획’ 등 강도높은 집값 안정화 대책을 발표한다. 올해 5월 노무현 정권도 경기도 김포와 파주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신도시 건설 발표 이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강남 집값은 계속 올랐다. 89년 4월 평당 8백만∼1천만원에서 움직이던 서초동·압구정동의 50평형대 아파트값이 90년 평당 1천2백만원으로, 91년엔 평당 1천4백만원으로 뛰었다. 올해도 신도시 건설 발표 이후 5월 강남의 아파트는 평당 1천7백만원, 8월엔 평당 2천만원, 그리고 10월엔 2천2백만원을 넘어섰다.
토지공개념 얘기가 나온 시기도 비슷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각종 부동산 대책의 약발이 먹혀들지 않자 89년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명령권을 발표해서라도 부동산 투기를 뿌리뽑겠다”며 토지공개념 계획을 발표했다. 토지공개념법은 그해 12월 발효됐다. 노무현 대통령도 올해 10월 토지공개념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집값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잡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집값은 호가만 떨어졌을 뿐 매물이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장이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 전문가 최명철씨는 “노태우 정권은 89년부터 각종 대책을 내놓았지만 집값은 2년 뒤 91년 분당 신도시 입주 때부터 겨우 안정화됐다”며 “지금의 집값 역시 2007년 김포·파주 신도시에 실제 입주가 시작되면서 안정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정부의 강력한 대책이 나올수록 가격 상승 기간은 장기화된다고 믿는다.
정부가 과거나 지금이나 실책을 거듭하면서도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 떠들어대는 데엔 이유가 있다. 강남 집값이 전국의 집값을 좌지우지한다는 통념 때문이다. 올해 강남 집값이 상승하면서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대전·대구·부산의 집값이 오르자 국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강남 집값이 전국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이와 관련, 한국개발연구원(KDI) 도시경제연구소 정희수 소장은 재미있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정소장은 ‘강남 집값이 전국적으로 집값을 올리는가, 집값이 떨어지면 경제활력도 줄어드는가, 그리고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하는가’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 그는 강남 집값 상승이 전국의 집값을 올리는 것으로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서울시의 집값 상승에도 우려할 만큼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른바 강남권역(강남·서초·송파구)의 집값이 오르면 서울의 25개 구 중에서 강북·성북·종로·용산·서대문·구로·영등포·중량·강서·중구 등 10개구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분당·일산·의정부 등 경기도 일부 지역도 영향권에 포함된다.
그러나 서울의 나머지 12개구와 대전·대구·부산 등 지방 대도시엔 강남권역의 집값이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소장은 “나머지 지역의 집값이 오르는 이유는 통화량·이자율·지가·국내총생산(GDP) 등의 영향 때문이지 강남 집값이 원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정소장은 강남의 집값을 안정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시장의 논리대로 내버려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을 억제하면 주택 공급량이 줄고 언젠가는 대가를 치른다는 점 때문이다.
집값이 상승하면 경제활력이 좋아진다는 점에 대해 정소장도 긍정한다. 집값 상승은 국내 건설경기를 활성화시켜 실업률을 감소시키고 경제에 활력을 준다. 예컨대 아파트 한채를 지으면 1명의 노동자가 1년을 먹고 산다. 50만호의 아파트를 건설하면 50만명의 노동자가 1년을 산다. 또 건설업과 관련있는 건자재·운송 등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계산하면 1백만명의 1년분 일자리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소장은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 나서는 것은 소모적인 노력이며,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는 데에 부정적 의견을 나타내는 전문가들은 강남 집값을 잡는다는 것은 한국에 1등을 부정하는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며, 정부가 경제 정책 실패의 책임을 강남에 돌리는 ‘마녀사냥’을 하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바른경제연구회 유한수 회장은 “배추값이 올라가면 정부가 잡아야 하지만, 삭스핀(상어지느러미 요리·강남 집값을 비유)이 오르는데 왜 정부가 나서는가”라고 되물었다.
정부가 좀더 강력하게 집값 안정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명지전문대 부동산학과 김근전 교수는 부동산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들어맞지 않는 ‘역수요공급법칙’을 따른다며, 강남을 시장논리에 맡겨 아무리 많은 아파트를 지어도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투기세력과 아파트 건설업체의 턱없이 높은 분양가 책정이 강남 집값 폭등의 주범이며 정부 내에 부동산관리청을 신설, 실거래가로 신고하지 않는 중개업소를 적발하고 아파트 건설업자들의 분양원가를 실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남 중에서도 ‘강남’으로 불리는 지역은 대치동의 빅3 아파트(미도·우성·선경)촌이다. 길 건너에 삼성타워팰리스가 있지만, 평당 가격은 3천만원대로 비슷하다. 빅3 아파트가 지은지 20년이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제 막 지은 타워팰리스보다 훨씬 가격이 높은 것이다. 이 지역의 아파트값이 높은 이유는 배타적인 학군 때문이다. 대치초등학교와 대청중학교에 가려면 빅3 아파트에 거주해야 한다. 대청중학교는 외고 등 특목고 진학률이 높은 것으로 소문난 학교여서 인기를 끌고 있다. 우성아파트에서 거주하는 김희연(42·가명)씨는 “이곳 학군이 좋다고 주위에서 부러워하지만, 나는 중학교 때부터 외국의 유명 사립학교에 보내는 상위 1%의 학부모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70년대에 강남으로 이사온 당시 젊은 어머니들은 강남에서 터를 닦으며 8학군이라는 특수학군에서 자녀들을 키웠다. 하지만 지금 강남에서 살고 있는 젊은 주부들은 강남을 떠나 외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정부가 정작 걱정해야 하는 부분은 대한민국의 상위 1%가 한국을 떠나려고 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현재의 문제점을 직시하는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한국의 엘리트들은 이 사회를 등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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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주택공사가 한강을 매립해 조성한 반포지구에 강남 최초의 아파트가 건설됐다.70년대 초반 아파트 시장의 황제는 한강변에 대규모로 세워진 동부 이촌동의 한강 맨션아파트였다.도심과의 거리와,아파트 단지 앞으로 버스가 다니느냐에 따라 가격이 결정됐다.74년 한강맨션 아파트의 평당 가격은 40만원대.철근 원자재 파동과 석유 파동으로 아파트 값은 크게 올랐다. | |
70년대 후반 부동산 시장에 두가지 재미 있는 변화가 생겼다.첫째는 노인 복덕방이 대졸 출신의 학사 부동산에 밀려 퇴장한 것이다.둘째는 복부인의 등장이다.77년 여의도 아파트 청약률이 1백대 1을 넘어서면서 과열양상을 보이자 국세청이 프리미엄을 받고 분양권을 되판 투기꾼을 적발했다.투기꾼 중에는 주부들이 많았는데 초기엔 토지부인으로 불렸다.이들은 가수 윤수일의 노래 '아파트'를 들으며 아파트 사재기에 나섰다.17년대 후반 아프트 1번지는 여의 아파트였고,평당 1백만원대였다. | |
80년대 초반 아파트 가격을 높인 주범은 저금리였다.82년 자영자씨의 어음사기 사건으로 금융시장이 엉망이 됐으며,정부가 이를 수습하느라 시중에 많은 돈을 뿌려 은행 금리가 하자릿수로 낮아졌던 것이다.전두환 정권은 강남의 아파트 투기를 막기 위해 서울 서부지역의 목동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82년을 기점으로 집값의 주도권은 여의도에서 압구정동으로 넘어왔고,압구정동 아파트는 평당 2백50만원대였다. | |
80년대 말~90년대 초반 서울시의 집값을 주도한 공은 강남구 일대였다.압구정동 · 청담동이 대표적인 곳이었으며,평당 1천만원대를 돌파했다.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3저 시대의 도래와 88올림픽 특수 덕에 국제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하면서 아파트 값이 치솟았다.이를 막기 위해 노태우 정권은 89년 분당 · 일산 신도시계획을 발표했지만 91년 초까지 상승세는 이어졌다. | |
98~2003년 IMF 이후부터 2000년까지 집값이 안정화됐다.하지만 정부가 경기부양을 이유로 앞파트 분양가 자율화,양도세 완화,강남지역 재건축사업 등을 추진하자 강남지역 아파트 값이 상승했다. 2001년 은행 금리가 5% 이하로 떨어지면서 아파트값은 급격히 상승했다.2002년 부동산 시장의 화제는 단연 강남구 도곡동의 삼성타워팰리스였다.30억원이 넘는 1백평형 아파트가 선을 보였다.('아파트 5차 파동 '참조) |
세계적 명품을 한국에 들여와 판매하는 김석중(가명)씨는 매출이 부진하면 색다른 처방을 쓴다. 그는 언론에 ‘일부 계층의 삐뚤어진 향락소비로 명품엔 불황이 없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만들어 돌린다. 물론 본인이 나서지 않는다. 서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시민단체와 접촉, ‘명품의 소비실태’ 등을 조사하는데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고 이들로 하여금 보도자료를 만들게 하는 것이다. 그는 “명품소비에 대해 욕을 하게 만들어야 명품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도 강해진다”며 “부정적인 마케팅 수단이지만 서민들의 심리를 자극하면 매출이 는다”고 귀띔했다.
서울 강남의 집값이 폭등하는 이유도 ‘강남’이라는 말이 서민들에게 주는 위화감에서 찾을 수 있다. 강남은 ‘높은 신분’의 상징이다. 남녀간 데이트를 할 때도 상대방이 강남에서 산다고 하면 달리 보인다. 대학에서도 강남파·잠실파 등으로 나뉘어 누가 돈을 잘 쓰는지 경쟁하기도 한다. 이렇듯 강남을 두고 벌어지는 풍경은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전국에서 가장 집값이 높은 강남은 이렇듯 집없는 서민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주면서도 집값은 꾸준하게 오른다. 강남에서 15년째 부동산 컨설팅을 하는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강남 욕을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집값은 더 상승한다”며 “강남의 주택산업은 계층간 박탈감을 거름삼아 성장한다”고 말했다.
강남이 욕을 먹어도 강남에서 살고 싶다는 ‘대기 수요자’는 줄을 선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해마다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신혼살림을 어디서 차리겠냐고 물으면 40% 이상이 ‘강남구’라고 답한다(2001, 2002년 모두 41%). 이유는 “쾌적하고 안정된 주거환경” 때문이다. 해마다 전국에서 신혼가정을 꾸리는 사람들은 대략 30만쌍, 따라서 매년 12만쌍의 ‘강남 거주 선호자’들이 생겨나는 셈이다.
과거엔 어떤 사람들이 강남으로 몰려갔을까. 1970년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으로 강남개발을 주도했던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76년부터 강남 아파트 개발 계획이 나오자 당시 갓 시집온 며느리들이 분가를 목적으로 강남으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대학을 졸업한 신세대 며느리들은 시부모와 떨어져 살기 위해 낮엔 공사차량으로 시끌벅적한 강남에서 이를 견뎌내며 살았다고 손교수는 전했다. 지금 60대가 된 이들이 지난 30년간 강남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고, 극성스러운 교육열 덕에 강남은 사교육 중심지로 발전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강남이 뜨기 전 서울의 집값을 좌지우지하던 곳은 여의도였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전후 비행장으로 사용되던 여의도는 80만평 규모의 모래땅이었다. 그러나 주요 관공서와 대기업 본사,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주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특히 여의도 주민들의 자제들만 들어갈 수 있는 ‘특수학군’(여의도 중·고등학교)제도가 시행되면서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 김홍배 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 전무는 “당시 여의도는 금융의 중심지가 될 것으로 전망됐고, 강북과 영등포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로 부각되면서 집값이 급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80년대 초반 강남 압구정동 일대의 아파트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서울 집값의 주도권은 여의도에서 강남으로 넘어간다. 강북 주민들이 강남으로 집을 옮긴 결정적 요인은 강북에 있던 중·고등학교의 강남 이전이었다. 78년 고 박정희 대통령은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해서라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강북에 있는 학교를 강남으로 유치·이전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경기·서울·배재·휘문 등 남자 고등학교와 창덕·숙명·정신 등 여자 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옮겨졌다. 70년대는 ‘강북 억제·강남 유치’의 연대였던 것이다.
강남 개발의 결과 땅값이 63년부터 79년까지 16년 동안 강남구 학동은 1천3백33배, 압구정동은 8백75배, 신사동은 1천배가 올랐다. 반면 강북의 중구 신당동과 용산구 후암동은 25배 오르는데 그쳤다. 강남지역의 땅값 신화는 80∼90년대는 압구정동·청담동을 중심으로, 2000년 들어서는 대치동·도곡동을 중심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왜 강남의 부동산 가격만 압도적으로 올랐을까. 부동산 전문가들은 강남에는 각종 세금 면제 등 개발촉진 정책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집값을 올렸다고 분석한다.
제3한강교·경부고속도로·지하철 2호선 건설, 지하철 3호선 통과, 고속버스터미널 건설, 법원·검찰청 이전, 명문고 8학군 정착, 압구정동의 유행의 첨단지역화 등이 대표적인 예다. 또 강남지역은 규모(8백만평)가 워낙 커서 주택공급에 제한이 없을 정도였다는 점도 강남 개발붐을 일으키는 원동력이었다. 게다가 강남은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세대들에겐 안식처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다리가 끊겨 강을 건너지 못하고 공산치하에서 살았던 것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도강하지 않고도 언제든 남쪽으로 피란갈 수 있는 강남에서 살고 싶어했다.
80년대 강남 집값이 계속 오르자 전두환 정권부터 역대 정권은 이를 잡으려는 정책을 내놓았지만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실패한 부동산 정책은 1983년의 채권입찰제였다. 이는 아파트 분양신청을 할 때 매입할 채권액수를 써내면, 채권액이 많은 순서에 따라 당첨자를 결정하는 제도다. 채권은 제2종 국민주택채권으로, 여기서 조달된 자금은 무주택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 건설자금으로 지원됐다.
명분은 좋았지만 아파트 분양 후 거액의 프리미엄을 붙여 되파는 투기꾼을 막지는 못했다. 이들은 채권 매입액을 많이 써내 당첨된 뒤 실제 매입 계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악용했다. 이미 분양권 전매시장엔 최고 가격을 써낸 것이 아파트 시가로 형성되었고, 투기꾼들은 이 가격을 기본으로 분양권을 되팔았다. 김홍배 전무는 “당시 분양가를 묶어놔 건설업체는 부실시공을 하기 일쑤였고, 채권입찰제는 부실 아파트의 가격만 더 키웠다”고 지적했다.
최근 강남 집값을 폭등시킨 것도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9월 발표된 9·5대책은 시장의 흐름을 올바로 읽지 못해 역효과만 불러일으킨 것으로 평가한다. 재건축할 때 소형 평형(전용면적 25.7평) 건축 의무비율을 20%에서 60%로 확대한 9·5대책은 그야말로 강남 집값 폭발에 기름을 부었다. 9·5대책은 은마·청실·잠실주공 등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중심으로 강남 집값이 폭등하자 이를 잡기 위해 내놓은 것이었다. 정부 당국자들은 재건축 아파트값을 잡아놓으면 집값이 안정화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40평형대 이상의 중·대형 아파트값 폭등이었다. 소형 아파트가 늘면 반대로 대형 평형의 공급이 줄 것이고, 이에 따라 기존 대형 아파트 가격이 올라갈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아파트값의 변동 이유를 분석해 ‘아파트값 5차 파동’이라는 책을 펴낸 최명철씨는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한 정부의 실수로 중·대형 아파트값이 순식간에 1억∼2억원 올랐다”며 “재건축 아파트값도 덩달아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렇듯 정부의 정책은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역효과와 투기세력만 양산해 내고 있다. 중소기업 영업부에서 근무하는 김신영(36·가명) 과장은 지난 9월 송파구 가락동에 37평형 아파트를 4억5천만원에 구입했다. 사실 그는 1억3천만원짜리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어 4억5천만원짜리 아파트를 살 형편은 아니었다. 우선 그는 상계동 처가의 비어 있는 방으로 이사하면서 전세자금 1억3천만원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처가의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1억5천만원을 빌려 가락동 아파트를 1억7천만원의 전세를 끼고 구입했다. 그는 “매달 1백10만원의 이자를 내야 하지만 나는 이 돈을 저축한다고 생각한다. 곧 아파트값이 1억원 이상 뛸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록 처가살이를 할망정 떼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김과장을 비롯해 부동산 투자자들이 강남 투자에 과도한 욕심을 내는 이유는 이번 강남 집값 폭등이 10년 전 폭등 양상과 아주 유사하다는 점 때문이다. 87년부터 91년까지 진행된 아파트값 폭등 과정에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최근의 강남 집값 상승 과정에서 내놓은 것과 비슷하다. 87년부터 강남 집값이 오르자 89년 2월 노태우 정권은 서민용 아파트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중·대형 아파트값만 높여 놓았다. 이는 올해 9·5대책 이후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값이 올라간 것과 같은 실수다.
노태우 정권은 89년 2월 내놓은 대책이 오히려 집값 상승의 계기가 되자 2개월 뒤인 4월 ‘1가구 2주택 과세를 강화하고 분양권 전매를 금지하며, 분당 신도시 건설 계획’ 등 강도높은 집값 안정화 대책을 발표한다. 올해 5월 노무현 정권도 경기도 김포와 파주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신도시 건설 발표 이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강남 집값은 계속 올랐다. 89년 4월 평당 8백만∼1천만원에서 움직이던 서초동·압구정동의 50평형대 아파트값이 90년 평당 1천2백만원으로, 91년엔 평당 1천4백만원으로 뛰었다. 올해도 신도시 건설 발표 이후 5월 강남의 아파트는 평당 1천7백만원, 8월엔 평당 2천만원, 그리고 10월엔 2천2백만원을 넘어섰다.
토지공개념 얘기가 나온 시기도 비슷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각종 부동산 대책의 약발이 먹혀들지 않자 89년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명령권을 발표해서라도 부동산 투기를 뿌리뽑겠다”며 토지공개념 계획을 발표했다. 토지공개념법은 그해 12월 발효됐다. 노무현 대통령도 올해 10월 토지공개념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집값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잡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집값은 호가만 떨어졌을 뿐 매물이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장이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 전문가 최명철씨는 “노태우 정권은 89년부터 각종 대책을 내놓았지만 집값은 2년 뒤 91년 분당 신도시 입주 때부터 겨우 안정화됐다”며 “지금의 집값 역시 2007년 김포·파주 신도시에 실제 입주가 시작되면서 안정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정부의 강력한 대책이 나올수록 가격 상승 기간은 장기화된다고 믿는다.
정부가 과거나 지금이나 실책을 거듭하면서도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 떠들어대는 데엔 이유가 있다. 강남 집값이 전국의 집값을 좌지우지한다는 통념 때문이다. 올해 강남 집값이 상승하면서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대전·대구·부산의 집값이 오르자 국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강남 집값이 전국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이와 관련, 한국개발연구원(KDI) 도시경제연구소 정희수 소장은 재미있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정소장은 ‘강남 집값이 전국적으로 집값을 올리는가, 집값이 떨어지면 경제활력도 줄어드는가, 그리고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하는가’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 그는 강남 집값 상승이 전국의 집값을 올리는 것으로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서울시의 집값 상승에도 우려할 만큼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른바 강남권역(강남·서초·송파구)의 집값이 오르면 서울의 25개 구 중에서 강북·성북·종로·용산·서대문·구로·영등포·중량·강서·중구 등 10개구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분당·일산·의정부 등 경기도 일부 지역도 영향권에 포함된다.
그러나 서울의 나머지 12개구와 대전·대구·부산 등 지방 대도시엔 강남권역의 집값이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소장은 “나머지 지역의 집값이 오르는 이유는 통화량·이자율·지가·국내총생산(GDP) 등의 영향 때문이지 강남 집값이 원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정소장은 강남의 집값을 안정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시장의 논리대로 내버려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을 억제하면 주택 공급량이 줄고 언젠가는 대가를 치른다는 점 때문이다.
집값이 상승하면 경제활력이 좋아진다는 점에 대해 정소장도 긍정한다. 집값 상승은 국내 건설경기를 활성화시켜 실업률을 감소시키고 경제에 활력을 준다. 예컨대 아파트 한채를 지으면 1명의 노동자가 1년을 먹고 산다. 50만호의 아파트를 건설하면 50만명의 노동자가 1년을 산다. 또 건설업과 관련있는 건자재·운송 등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계산하면 1백만명의 1년분 일자리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소장은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 나서는 것은 소모적인 노력이며,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는 데에 부정적 의견을 나타내는 전문가들은 강남 집값을 잡는다는 것은 한국에 1등을 부정하는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며, 정부가 경제 정책 실패의 책임을 강남에 돌리는 ‘마녀사냥’을 하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바른경제연구회 유한수 회장은 “배추값이 올라가면 정부가 잡아야 하지만, 삭스핀(상어지느러미 요리·강남 집값을 비유)이 오르는데 왜 정부가 나서는가”라고 되물었다.
정부가 좀더 강력하게 집값 안정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명지전문대 부동산학과 김근전 교수는 부동산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들어맞지 않는 ‘역수요공급법칙’을 따른다며, 강남을 시장논리에 맡겨 아무리 많은 아파트를 지어도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투기세력과 아파트 건설업체의 턱없이 높은 분양가 책정이 강남 집값 폭등의 주범이며 정부 내에 부동산관리청을 신설, 실거래가로 신고하지 않는 중개업소를 적발하고 아파트 건설업자들의 분양원가를 실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남 중에서도 ‘강남’으로 불리는 지역은 대치동의 빅3 아파트(미도·우성·선경)촌이다. 길 건너에 삼성타워팰리스가 있지만, 평당 가격은 3천만원대로 비슷하다. 빅3 아파트가 지은지 20년이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제 막 지은 타워팰리스보다 훨씬 가격이 높은 것이다. 이 지역의 아파트값이 높은 이유는 배타적인 학군 때문이다. 대치초등학교와 대청중학교에 가려면 빅3 아파트에 거주해야 한다. 대청중학교는 외고 등 특목고 진학률이 높은 것으로 소문난 학교여서 인기를 끌고 있다. 우성아파트에서 거주하는 김희연(42·가명)씨는 “이곳 학군이 좋다고 주위에서 부러워하지만, 나는 중학교 때부터 외국의 유명 사립학교에 보내는 상위 1%의 학부모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70년대에 강남으로 이사온 당시 젊은 어머니들은 강남에서 터를 닦으며 8학군이라는 특수학군에서 자녀들을 키웠다. 하지만 지금 강남에서 살고 있는 젊은 주부들은 강남을 떠나 외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정부가 정작 걱정해야 하는 부분은 대한민국의 상위 1%가 한국을 떠나려고 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현재의 문제점을 직시하는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한국의 엘리트들은 이 사회를 등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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