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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해 보이는 아이들의 말 못할 고통

멀쩡해 보이는 아이들의 말 못할 고통


Small Patients, Big Pain

알리사 아얄라(10)는 5년 전 맹장 파열의 후유증으로 생긴 만성통증에 시달리며 산다. 2cm 너비로 배꼽에서 치골까지 뻗어 있는 상처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 때문에 거의 매일 죽을 지경이다. 아얄라는 “마치 헤라클레스가 막대기를 배에 대고 세게 문지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사지·요가·생체자기제어 치료와 병행해 항우울제 엘라빌과 불안장애 치료제 에펙소를 소량 복용하면서 조금은 살 만해졌다.

아얄라는 요즘 한달에 한번씩 캘리포니아주 레드랜즈의 집에서 자동차로 두시간을 달려가 캘리포니아대(UCLA)가 운영하는 ‘아동 통증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또 최근에는 ‘퍼스트 네이션스 트라이벌 패밀리 센터’(샌버나디노)가 운영하는 한 무료 프로그램에도 일주일에 두번씩 나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비디오게임 같은 생체자기제어 기계를 (손이 아닌) 마음으로 작동시키면서 긴장을 풀고 집중하는 법을 익힌다. 아얄라는 겉보기에는 ‘멀쩡’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아이가 얼마나 심한 고통을 받는지 모른다고 어머니 마리아 이사벨 아얄라는 말했다. “사람들은 휠체어나 목발 신세가 아니거나 머리에 붕대를 감지 않은 아이를 보면 으레 멀쩡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얄라는 결코 멀쩡하지 않다. 만성, 또는 재발성 통증으로 고생하는 18세 미만의 미국인 약 1천만명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편두통·암·낭포성 섬유증·겸상적혈구빈혈, 그리고 사고나 골절로 인한 신경 손상 등 갖가지 증세로 고생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의학계는 이들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신생아의 미숙한 신경계가 통증을 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수술했다(마비제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이는 아기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 뿐 통증은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러나 요즘 의사들은 어린 환자의 불편을 덜어줄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이제 과학자들은 어린 시절, 특히 신경계가 발달하기 시작하는 신생아 때 경험하는 통증이 장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연구 결과 탄생 직후 마취를 하지 않고 포경수술을 받은 아기는 4∼6개월 후 예방접종을 맞을 때 그렇지 않은 아기들에 비해 고통을 더 느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통증이 수반되는 시술을 반복적으로 받는 미숙아들의 경우에는 과다 자극으로 신경세포가 손상돼 나중에는 고통을 덜 느낄 수도 있다. “그런 아이들의 통증 체계는 결국 고장나게 된다”고 아칸소대의 소아과 전문의 K. J. S. 애넌드는 말했다. 그는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국립보건원(NIH)이 공동으로 구성한 통증 통제를 위한 ‘신생아 이니셔티브’ 태스크 포스팀을 지휘한다. “이런 아이들은 심한 상처를 입고도 자각을 못해 아프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된다.”

현재 의료계는 어린이들의 불편을 측정할 방법을 조율하고 있다. “통증을 측정하는 미터기는 없다”고 뉴욕 장로교 아동병원 소아 통증관리센터의 소장 윌리엄 셰흐터는 말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어린이들이 늘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의사들은 20년 전부터 얼굴을 찡그리는 정도 따위를 측정치로 삼는 ‘이스턴 온타리오 아동병원 통증 등급’(CHEOPS) 같은 방법을 이용해 어린이들의 행동과 고통을 측정해오고 있다.

1996년 캐나다의 간호사 보니 스티븐스와 동료들은 ‘미숙아 통증 지수’(PIPP)를 개발했다. 고통받는 아기의 날카로운 울음소리, 꼭 감은 눈, 일그러진 미간, 빠른 심장 박동, 거친 동작 등을 통해 통증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의사들은 또 미시간대가 어린애의 통증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개발한 FLACC 등급(얼굴·다리·동작·울음·달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통증 판단의 기준으로 한다)을 활용한다. 좀더 자란 아이들에게는 비에리 얼굴 지표가 적용된다. 어린이들은 고통이 아주 심한 상태의 얼굴 표정부터 무표정까지의 여러개를 놓고 자신의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을 고르게 된다.

그런 지표들은 인지 능력이 떨어지거나 신경계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효과가 작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아이의 통증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개선하기 위해 계속 연구한다. 필요하다면 자세한 뇌사진을 보여주는 기능적 자기공명 촬영(fMRI)처럼 비용이 많이 드는 최첨단 장비도 활용한다. 문제는 통증은 주관적인 것이라서 뇌의 한 부분이 활발히 활동한다고 그것이 곧 아이가 고통받고 있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점이다.

의료계는 첨단기술의 발달에 흥분하지만 저급기술의 발달에도 들뜨기는 마찬가지다. 어린이들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는 법을 배우거나, 바닷가나 디즈니월드처럼 기분을 좋게 만드는 장소에서 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법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통증을 덜 수 있다. “아이들이 공상에 빠지면 호흡이 느려지고 근육이 이완되며 심장 박동이 바뀐다. 공상을 통해 고통의 신호를 바꾸는 법을 배운다”고 UCLA 소아 통증 프로그램의 책임자인 로니 젤처는 말했다.

어린이들은 손가락이 따뜻해지면 색깔이 바뀌는 무드링 같은 검사지를 이용해 자신의 노력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한 심상 치료’의 저자 낸시 클라인은 “상상할 때는 ‘무슨 소리가 들리느냐’, ‘무슨 냄새가 나느냐’ 등의 질문으로 가능한 한 많은 감각기관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통스런 시술을 앞두고 겁먹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주면 초조감을 덜 수 있다. 예컨대 아이들은 만화 ‘닌자 거북이’의 주인공들이 본래는 사람이었는데 방사선 때문에 거북이가 됐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방사선 치료를 앞두고 겁먹을 수 있다. 부모가 침착하게 행동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봉제인형 등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물건을 챙기는 것도 좋다.

어린이를 위한 종합 통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병원은 거의 없다. 소아 통증 병동을 운영하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수술이나 약물 치료에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만 침·최면치료·요가·마사지·미술치료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전문치료들은 큰 효과를 줄 수 있다. UCLA의 소아 미술 치료사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에스더 드레이퍼스-캐턴은 아이들에게 아크릴 물감과 도화지를 나눠준다. 그림으로 고통을 표현해 보라고 지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림에는 아이들의 고통이 드러나게 마련”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최면치료사 캐스린 드 플랭크는 아이들의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심상 유도 치료법’을 이용한다. 먼저 아이들에게 초록색은 치료 능력을 지닌 색으로, 파란색은 진정 효과가 있는 색으로 생각하도록 훈련시킨다. 그런 다음 그 색깔들이 빛나는 수소풍선으로 바뀌어 자신을 공중으로 들어올리는 상상을 하도록 시킨다. 요가 강사 베스 스턴리브는 낭창이나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앓는 아이들에게 예민해진 신경을 가라앉히고 관절운동을 할 수 있는 자세를 가르친다.

연구자들의 꿈은 부작용이 없으면서 진통 효과만 내는 신약의 개발이다. 보스턴 아동병원의 통증 치료센터 소장 찰스 버드는 진통 효과가 최장 4일까지 지속되는 새로운 국소 마취제를 실험 중이다. 캘리포니아 노스리지에서 사는 매튜 루즈(17)는 “완벽한 진통제는 어떤 통증이든 가라앉힐 수 있어야 하고, 사용과 처방이 편해야 한다. 또 대다수 사람이 복용할 수 있어야 하고, 효과가 빠르며 장기간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체의 모든 기관에 영향을 미치는 중증 영아 마르판 중후군이라는 희귀한 증세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통증에 시달려왔다. 때로는 등에 전기충격기를 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 아직은 그가 꿈꾸는 완벽한 진통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대신 옥시콘틴·메타돈·발륨을 복용한다.

의사들은 사지 골절이나 봉합을 요하는 상처처럼 흔한 신체 손상으로 응급실에 실려오는 어린이들의 극심한 통증 치료법에 대해서도 생각을 바꿨다. 소아과 전문의이자 마취과 의사인 조 크래베로는 과거에는 “부모가 아이를 병원에 데려 가면 의료진이 아이를 눕혀 놓고 통증이 따르는 뭔가를 했다. 그러면 부모들이 다시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간다. 마치 개를 수의사에게 데려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쉽게 진정이 안되는 아이들에게는 그런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약효 지속 기간이 짧은 베르세드 같은 진정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크래베로는 “때로는 기억을 통째로 지워버림으로써 치료에 대한 기억을 흐리게 하는 것이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응급실 의료진은 어린이들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해 인형이나 비디오 등 온갖 것을 이용한다.

요즘은 가족 구성원 전체가 치료에 참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병원이 많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사는 린지 맨젤(17)은 반사성 교감신경성 위축증(RSD)으로 고생한다. 열한살 때 축구를 하던 중 무릎을 걷어차인 후 생긴 증세다. 발의 통증이 너무 심해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한다. 2002년에는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있는 위스콘신 아동병원의 통증 프로그램에 가서 2주를 보냈다. 린지는 “통증 때문에 정상적 삶을 살 수 없다. 움직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고 말했다. 밀워키 프로그램 덕분에 린지와 가족은 그녀의 상태가 두 자매 및 부모와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린지의 여동생은 엄마가 언니를 편애한다고 불만이 많았던 모양인데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번 프로그램 같은 성찰의 계기를 통해 린지의 가족은 좀더 균형잡힌 삶으로 돌아갔고, 린지는 이제 학교 수영팀에 들어갔다. 알리사 아얄라는 여전히 수박맛이 나는 막대사탕 모양의 마법의 진통제를 꿈꾼다. 아얄라는 “그 약이 만들어지면 ‘만병통치제’라 부르겠다”고 말했다. “통증을 영원히 없애줄 것이다.” 언젠가는 그녀의 꿈이 실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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