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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모험 건 英 석유개발사

인도에 모험 건 英 석유개발사

과거 미국 텍사스주에서 흔히 볼 수 있었듯 도박처럼 유정을 개발하는 업체가 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는 케언 에너지가 바로 그런 회사다.
1998년 석유회사 로열더치 셸(Royal Dutch Shell)은 인도 라자스탄주 사막에서 시추정을 하나 뚫었다. 끌어올린 시추공은 말라 있었다. 검층(檢層) 자료를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시추를 맡은 영국 스코틀랜드 소재 석유채굴업체 케언 에너지(Cairn Energy)의 전문가는 탐침에서 석유가 뚝뚝 떨어지고 있음을 알아챘다. 케언은 당시 시추 지역 임차권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었다. 케언은 이후 두 차례 시추 비용을 모두 부담하는 대가로 지분 50%를 확보했다. 2002년 725만 달러에 나머지 지분 도 매입했다.

사막에 1억 달러를 쏟아 부은 지 1년, 셸의 애초 유정으로부터 겨우 1.6km 떨어진 북쪽에서 대박이 터졌다. 드골리어 앤 맥노턴(DeGolyer & MacNaughton)은 이곳에 석유 3억 배럴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드골리어 앤 맥노턴은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석유 매장량 측정업체. 16년 전부터 케언의 CEO를 맡고 있는 윌리엄 갬멜(William Gammell?2)이 얻은 교훈은 “시추하다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잘못”이라는 것이다.

운이 따른 덕분일 수도 있다. 사실 케언은 언제나 운이 좋은 편이었다. 주가는 92년 주당 0.65달러에서 현재 20.50달러로 껑충 뛰었다. 케언의 시장가치는 33억 달러다.

소규모 석유탐사 업체들은 대개 세계 곳곳의 유전에서 소지분만 확보해 리스크를 분산한다. 이는 대형 석유업체들을 모방한 것이다. 리스크를 더 줄이기 위해 개발이 상당히 진행된 북해나 멕시코만 등지의 유정 일부도 매입한다. 그러나 이는 일반론에 불과하다. 케언의 개발 담당 이사 마이클 와츠(Michael Watts)는 “중소 석유업체들은 사업 초점과 자산이 분산돼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케언은 석유·가스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거나 혹은 조금 발견된 곳에서 가능한 한 넓은 지역의 지분 100%를 확보한다.

갬멜은 80년대 에든버러에서 자본을 조달해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미국의 유전·가스전에 투자했다 몽땅 날리기도 했다. 이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가스전 개발에 성공해 손실을 만회했지만 주변 땅은 이미 다른 임자들에게 넘어간 뒤였다. 갬멜은 이를 통해 소심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게 됐다. 스코틀랜드의 럭비 스타 출신인 갬멜은 “케언의 유일한 강점이라면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라며 “유전 인근에 충분한 땅부터 확보하고 수익을 잘 운용할 수 있는지 계산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10여 년 전 갬멜과 와츠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인도·방글라데시에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메이저 석유업체들은 이 지역에서 12개의 유정만 개발하고 있었다. 와츠는 남아시아의 석유 역사를 공부한 적이 있다. 옛날 현지 주민들은 땅에서 새어 나오는 기름이나 ‘꺼지지 않는 불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땅에 불을 붙여 요리할 정도였다. 케언은 거의 개발되지 않은 방글라데시 연안의 한 구역을 100% 확보했다. 그곳에서 발견한 상구(Sangu) 가스전은 지금까지 5억 달러를 안겨줬다.

케언은 라자스탄에서 15억 평의 임차권 100%를 보유하고 있다. 케언이 인도석유천연가스공사(ONGC)에 건넬 로열티를 빼도 지분은 70%다. 석유 매장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개발도상국에서 ‘올인’ 전략을 구사할 경우 정치적 리스크가 따르지 않을까. 이에 대해 와츠는‘노’라고 답했다. 메이저 업체들이 인도에 콧방귀를 뀔 때 케언은 기꺼이 투자할 용의가 있었다. 인도 정계 인사들과 돈독한 친분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케언은 현재 인도 최대의 외국계 석유생산 업체다.

99년 후반 케언은 인도 서해안으로부터 27km 떨어진 광구 지분을 45%에서 75%로 늘렸다. 지분 확대에 들인 돈은 400만 달러. 케언은 2차원 지질조사로 지하에 뭔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공개시장에서 굴착장비를 확보하는 데에는 적어도 9개월이 걸렸다. 또 두바이나 싱가포르로부터 실어오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갬멜은 ONGC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에게 연락한 지 몇 주 만에 굴착장비를 확보한 것은 물론 국영 대출기업도 찾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케언은 대규모 가스전을 발견했다.



조지 W 부시와 블레어가 친구

갬멜의 노련한 정치적 감각은 집안 내력이다. 그의 부친은 스코틀랜드에 아이보리 앤 사임(Ivory & Sime) 펀드를 창업했다. 부친은 50년대 조지 부시가 소유한 석유업체 부시 오버비(Bush-Overbey)에 펀드 일부를 투자했다. 미래의 미국 대통령을 강력히 후원한 것이다. 조지 W 부시는 소년 시절 갬멜 부자의 스코틀랜드 농장에서 여름을 보냈다. 그는 윌리엄 갬멜이 결혼할 때 식장에 참석하기도 했다. 갬멜은 부시 일가의 메인주 케네벙크포트 별장에서 머물기도 하고 80년대 조지 W 부시가 운영하는 석유회사에 투자했다.

그뿐 아니다. 갬멜은 스코틀랜드의 엘리트 기숙 학교인 페티스 칼리지에서 토니 블레어를 만나게 됐다. 블레어 영국 총리는 97년 에든버러 소재 케언 본사 개소식에 참석했다.

갬멜의 정치적 본능은 앞으로 케언에 닥칠지 모를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유용할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케언은 네팔과 그 인근 인도에서 110억 평의 토지를 매입했다. 그곳은 지질학상 캐나다 서부와 흡사하지만 마오쩌둥(毛澤東)주의 반군 등 정치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갬멜과 와츠는 케언의 미래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도이체 애셋 매니지먼트(Deutsche Asset Management)의 소형주 담당 리처드 컬링(Richard Curling)은 지난해 케언 주식의 비중을 18%에서 6%로 낮췄다. 아니나 다를까 인도의 세금 인상에 대한 우려로 지난해 12월 중순 케언 주가는 하락했다. 컬링은 케언을 주식으로 한 번 재미 본 성급한 펀드매니저에 비유했다. ‘이제 물 위를 걸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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