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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아류’ 벗고 우뚝 유행감각은 ‘한수 위’

‘江南아류’ 벗고 우뚝 유행감각은 ‘한수 위’

“마케팅에 대한 반응이 빠르고 뚜렷하며 강하다. 다른 지역에는 없는 긴장감과 에너지가 있다.” 국민은행 원효성 부행장(마케팅 담당)이 몇 년 전에 분당에 지점을 개설하며 느낀 점이다. 그는 “이런 특성 덕분에 분당은 모든 제품의 테스트 마켓으로 안성맞춤”이라고 말한다.
4월 5일 낮 12시30분. 분당 서현역 앞 거리에 있는 퓨전 음식점 ‘라이스 앤 누들바(RNB)’. 실평수 28평에 좌석 64석인 가게엔 2개 테이블만 제외하고는 모두 들어차 있다. 한쪽에선 30대 주부 안지영 씨가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의 생일파티를 열어주고 있었다. 분당의 정자동 아파트에 사는 그녀는 “메뉴가 깔끔하고 다양해 이곳을 자주 찾는다”며 “아이들도 건강을 중시하는 흐름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피자나 켄터키 치킨 같은 음식보다는 이곳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RNB는 자체 개발한 새로운 면과 캘리포니아 롤을 앞세워 지난해 7월에 문을 열었다. 얼음을 동동 띄운 ‘냉 누들’과 국물 맛이 매콤한 ‘소호칠리칠리’가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대표적인 메뉴. 안씨와 함께 온 이웃 김현숙 씨는 “분당 사람들은 유행을 앞서가는 경향이 있어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한다. 옆 자리의 20대 직장인 이형은 씨는 “중 ·고등학교 친구 3명과 왔다”며 “분당은 강남에서 살던 사람들이 많이 넘어와 기호가 고급스럽다고들 한다”고 말한다.

RNB는 가정요리 전문점인 서정쿠킹이 낸 ‘1호점’이다. 서정쿠킹은 국, 찌개, 죽, 소스 등을 서울 삼성동, 압구정동, 목동, 신촌, 천호동, 미아동 등의 백화점에서 판매한다. 분당에는 삼성플라자에 입점해 있다. 서정쿠킹의 고재현 이사는 “강남에 RNB 직영점 한 곳과 가맹점 한 곳을 내기 위해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고 이사는 “손님이 주로 20대에서 30대 초반인 데 비해 객단가가 1만2,000원으로 높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곳엔 면적 70㎢에 인구 44만 명이 살고 있는 분당신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1989년 정부의 수도권 주택난 해소 대책의 하나로 세워진 이곳은 지리적 근접성 때문에 서울 강남 주민들이 대거 이주해와 그동안 ‘강남 축소판’이라고 불려왔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이곳 사람들은 강남 사람들과는 또 다른, 자신들만의 독특한 생활 ·소비문화인 ‘분당 컬처’를 만들어냈다.

‘분당 컬처’는 분당에 대단위 아파트가 밀집해 있고 대부분이 고학력에 외국생활 경험이 있는 중상위 소득 소비자층이라는 특징을 반영한다.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이 같은 분당 컬처의 내용으로 “소비자들이 까다로우면서도 합리적”이라는 점을 우선 꼽는다.

이런 특성 탓에 분당에선 외국의 명품 브랜드도 이름만 내세웠다가 맥을 못 추는 일도 생기고, 국내 중저가 제품도 디자인과 품질로 승부해 당당히 자리를 잡는 일이 빈번하다. 또 분당 소비자들은 유행에 민감해 새로운 흐름을 즐겨 받아들인다. 동창회 등 지역모임이 활발하고 소비의 응집력도 무척 강하다. 교통이 원활하고 주차가 편리하기 때문에 모든 소비활동을 분당 안에서 해결하면서 분당을 ‘소비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 응집력 있는 시장’으로 만들고 있다.

“분당서 되면 강남에서도 뜬다”

수내역 인근 초림플라자 지하 1층에는 ‘호랑이 굴’이 있다. 4월 8일 금요일 저녁 7시30분. 90여 평의 널찍한 공간에 16개 테이블이 여유 있게 배치돼 있다. 직장인과 아이를 데리고 온 주부들이 주말을 즐기고 있다. 호랑이 굴은 일식을 바탕으로 한 퓨전 음식점이다. 오석 사장은 “일본 도쿄(東京)의 신주쿠(新宿) 등에 있는 고급 음식점 체인 ‘도라 노 아나(우리 말로 호랑이 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차리게 됐다”고 가게 이름의 유래를 설명했다. 도라 노 아나를 경영하는 재일교포에게서 이름을 쓸 수 있도록 양해를 얻었다.

호랑이 굴은 2003년에 분당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만 해도 서울 강남에서 식사하는 분당 사람들이 많았어요. 굳이 강남에 가지 않아도 음식과 서비스, 분위기에서 강남에 못지않은 음식점을 차리면 되겠다는 생각에 분당을 택했죠. ” 오 사장은 95년부터 분당에서 살고 있다. 단골은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하고, 고객 중에는 분당에 거주하는 연예인과 일본인 주재원들도 있다. 메뉴판에 있는 ‘한국 1호점’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오 사장은 “가맹점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며 “하지만 가맹점보다는 직영체제로 내년쯤에 2호점을 낼 생각”이라고 밝혔다.

초기 분당 사람들은 주로 서울 강남으로 나가 소비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97년 11월 삼성플라자의 개관을 시작으로 서현역 일대가 붐비기 시작했다. ‘로데오 거리’라 불리며 영화관, 커피전문점, 쇼핑공간, 호프집 등이 들어서면서 분당상권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 뒤 분당상권은 분당대로를 중심으로 ‘서현동 먹자골목’으로 확대됐고, 율동공원에도 음식점, 고급 카페 등이 속속 들어섰다.

서현역 일대가 분당의 젊은이들의 거리라면 수내동 일대는 고소득 직장인들이 모이는 지역이다. 지금은 롯데백화점으로 바뀐 블루힐백화점이 있었던 이곳은 KT 등 대기업들이 들어서고, 대형 주상복합아파트가 만들어지면서 최근 서울 강남에서 성업하던 고급 레스토랑, 일식집 등 음식점과 비즈니스 바 등이 점포를 내고 있다.

이렇게 상권이 굳어지면서 분당은 이제 중상층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테스트 마켓으로, 유행의 발원지로 강남보다 더 주목받고 있다. 호랑이 굴과 RNB도 이런 사례에 속한다. 서정옥 서정쿠킹 사장은 “분당은 소득이 중상위 수준으로 고른 편이고 젊은층도 소비성향이 높아 RNB의 입지로 적당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 회사 고 이사는 “분당에서 되면 강남에서도 통한다는 말이 있다”며 “우리도 분당을 테스트 마켓으로 삼아 시작했고 반응이 좋아 서울로 확장하게 된 경우”라고 말했다.

외식 프랜차이즈 컨설팅회사인 CS라인컨설팅의 민채영 전무는 “분당은 대단위 아파트가 밀집해 있고 소비가 내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장사가 될지 안될지 테스트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 전무는 “이런 특성 때문에 많은 프랜차이즈들이 안테나숍 입지로 분당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분당에는 인구 44만 명이 산다. 가구 수로 따지면 16만 가구 정도다. 분당에 밀집한 아파트 가운데 20평형대는 보기드물다. 아파트촌인 수내동이나 서현동은 적은 평수라고 해봐야 30평형대인 경우가 많고 50~70평형대의 대형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분당동과 구미동 등엔 고급 빌라촌이 자리 잡고 있다. 정자동엔 최근 파크뷰 등 대형 주상복합 타운이 형성되고 있다.

서현동 태평양공인중개사사무소의 손준근 대표는 “중상위 소득층이라고 할 수 있는 대형 아파트나 빌라촌, 주상복합 타운 등에 거주하는 인구가 분당 전체 인구의 3분의 1가량 된다”고 말했다. 그만큼 중상위층이 밀집돼 있다는 얘기다. 그는 “50~40평형 주상복합 아파트에 사는 30대가 많다”며 “분당의 30대는 소득과 소비수준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지역사회와 연대 끈끈한 분당 사람들

이들은 강남에 직장을 갖고 출퇴근하는 벤처기업인이나 경영컨설턴트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다. 또 강남에서 살다가 좀더 넉넉한 삶을 위해 이사 온 사업가와 기업체 경영진도 대표적인 분당의 구성원이다. 그런 만큼 외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고, 고학력 인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삼성플라자 판촉팀의 신유진 씨는 “분당은 다른 곳보다 외국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유난히 많다”고 말했다.분당 고소득층 중에서는 은퇴한 사람들의 비중이 강남보다 높은 게 특징이다. 정자동 파크뷰 오피스타워 21층에 자리 잡은 신한은행 분당PB센터의 하상봉 지점장은 “고객 중에서 직함을 갖고 있는 비율이 10∼20%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형편이 비슷한 사람들이 몰려 살다 보니 분당 사람들은 직장동료보다 이웃과 더 끈끈한 유대를 맺고 있다. 지역 모임도 많고 지역에서 보내는 시간도 길다.
4년 전 분당으로 이사 온 장한각 변호사의 휴대전화에는 매달 두 번째 일요일에 ‘분당경기고모임’이란 문자메시지가 뜬다. 장 변호사는 “서울에서 살던 때보다 고교 동창들을 더 자주 만난다”며 흡족해 했다. “다들 차로 5~10분 거리에 살고, 사는 형편이 비슷비슷해 만나면 마음이 편합니다. 누구 하나 튄다거나 처진다거나 하면 좀 껄끄럽잖아요.”

강남에서 일하는 분당 사람들은 저녁 술 약속을 대부분 분당에서 잡는다. 음주운전을 걱정할 필요 없이 홀가분하게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장 변호사의 사무실은 서울 서초동에 있다. 장 변호사는 “퇴근하고 분당에 와서 편하게 친구들과 한 잔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한다.

서울고 20회 총무인 이동수 씨는 강남에서 학원을 운영한다. 8년째 분당에서 살고 있다. 그의 고교 동기 490명 가운데 50여 명이 분당에 산다. 분당 동기들은 직장은 대부분 강남에 있지만 한 달에 한 번씩 만날 때면 강남 대신 분당에서 저녁을 한다. “강남이나 서초 동기회에 비해 분당이 잘 됩니다. 물론 분당에는 서울에 비해 현업에서 물러난 친구들이 더 많은 이유도 있지만요.”

분당엔 불황이 없다?

이런 분당 소비자들은 탄탄한 수요를 만들어낸다. 삼성플라자의 성장세를 보면 잘 드러난다. 97년 개점한 삼성플라자의 매출은 98년 2,700억원에서 지난해에는 두 배인 5,40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플라자는 지난해 전국 백화점 가운데 단일매장으로는 6위에 올랐다. 5위인 현대 무역센터점을 약 200억원 차이로 바짝 따라붙었다.

20년 가까이 된 현대 무역센터점을 불과 8년 만에 추격하고 있는 것이다. 내수침체에 빠진 지난해에도 삼성플라자의 매출은 소폭이나마 증가했다. 지난 2003년 5,300억원보다 100억원 늘어난 것. 삼성플라자 판촉팀의 신유진 주임은 “분당 주상복합을 비롯해 주위의 용인 ·수지 ·죽전 등 아파트단지에도 입주가 많이 이뤄진 덕분”이라고 풀이했다.

도요타의 렉서스 자동차도 분당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 율동 공원을 옆으로 끼고 들어선 렉서스 매장의 고객 휴게실에서 고객들은 벽면에 설치된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들로 자신이 맡긴 차량을 정비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도요타코리아의 정세준 마케팅실장은 “분당 시장은 강남에서 넘어온 젊은 웰빙족이 주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 실장은 “이들 소비층은 강남 소비자들보다 더 알뜰하고 꼼꼼하다”고 전했다.

분당상권의 중핵으로 불리는 삼성플라자 6층에 올라가면 분당 소비자층이 탄탄함을 짐작하게 하는 곳이 있다. 바로 ‘나비테라피센터’다. 이곳에서 얼굴마사지를 받는 서비스료는 1회에 최저 8만원이다. 이 센터 이경하 주임은 “손님들은 보통 1회 15만원짜리 서비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나비테라피의 간판서비스는 1회에 30만원이 넘는 ‘보디테라피’다. 고가임에도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예약이 꽉 차있다고 이 주임은 밝혔다.

나비테라피센터는 보통 10회 회원제로 운영하고 할인이나 부가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 10회에 300만원을 받는 셈이다. 나비테라피센터 분당점은 2호점이다. 1호점은 압구정동에 있다. 이 주임은 “5년 된 1호점보다 2년도 안 된 분당점의 매출이 더 많다”며 “실제 돈을 쓰는 사람은 압구정동보다 분당에 더 많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분당 사람들의 24시 웰빙, 만남, 여유…
서현역 삼성플라자 지하 식품관에는 색다른 코너가 있다. 바로 세계 곳곳의 소스와 양념, 향료를 모아놓은 곳이다. 삼성플라자 판촉팀의 신유진 씨는 “분당은 다른 곳보다 외국 경험이 많은 사람이 집중된 곳”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렇듯 분당 사람들은 상당수가 외국 경험이 많은 전문직 종사자다. 강남에서 살다가 윤택한 삶을 위해 이사 온 사업가와 기업체 경영진도 빼놓을 수 없다. 대표적인 분당 사람들의 24시를 재구성해봤다.

정자동에 사는 조경애(37)씨는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다 출산과 함께 회사를 그만뒀다. 남편은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을 둔 그녀의 하루 일정은 언제나 촘촘하다. 매일 아침이면 남편을 출근시킨 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
아이들의 하교 시간인 오후 3시 전까지는 그녀의 개인 시간. 오전 10시에 헬스클럽에 도착해 1시간 동안 가벼운 운동을 한다.

낮 12시면 어김없이 친구나 이웃들과 점심 약속이 잡혀 있다. 오늘은 동창회날. 서울 대치동이나 잠원동에 사는 친구들도 분당에서 모이는 것을 반긴다. 강남에서 30분 거리인 데다 주차도 수월하고 마치 교외에 나온 듯한 근사한 카페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점심 식사를 한 후 할인매장에 가서 장을 보기도 한다. 아이들이 귀가하면 숙제를 봐주거나 학원진도를 체크한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가까운 공원에 가서 남편과 산책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서현동에 거주하는 정용범(52)씨는 대학병원 정형외과 과장이다. 가족은 부인과 1남1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대치동에서 살던 그는 올해 둘째인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분당으로 이사 왔다. 그는 1주일에 3번만 진료를 보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많다. 여건이 비슷한 친구들도 하나둘씩 분당에 합류하고 있어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곤 한다.

진료가 없는 날 그의 일정은 더욱 여유롭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읽은 후 부인과 함께 중앙공원을 거닌다. 부부는 1시간여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데이트를 한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은 뒤 율동공원 근처 분위기 있는 곳에 가서 점심을 즐긴다.

이어 삼성플라자에 들러 윈도 쇼핑을 하곤 한다. 그는 집으로 아내를 바래다주고 나서 골프연습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최근 분당으로 이사 온 동창들을 만난다. 연습이 끝난 후 그들은 수내동으로 발길을 돌려 저녁을 한다. 2차로 근처 호프집에서 맥주를 한 잔씩 하며 담소를 나눈다.
-홍지나 기자


까다롭고 합리적인 소비패턴

중상층 소비자들이 집중돼 있다고 해서 분당이 장사하기 쉬운 곳은 결코 아니다. 임대료가 강남 못지않은 데다 소비자들이 합리적이고 까다롭기 때문에 충분한 경험 없이 시작했다가는 낭패를 보기가 십상이라는 지적이 많다.
태평양공인중개사사무소의 손 대표는 “분당 소비자들은 유행에 민감해 해외에서 인기있는 아이템이 분당에 먼저 들어오는 경향이 있는 반면 한 번 유행에 뒤떨어지면 문을 닫게 된다”고 전했다. CS라인컨설팅의 민 전무는 “분당이 안테나숍 입지로 선호되지만 성공 사례는 홍초불닭 등 몇 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비용은 강남만큼 드는데 단가는 낮기 때문에 강남보다 불리하다는 설명이다.

삼성플라자 5층에는 26개 아동복 매장이 집중돼 있다. 삼성플라자 유통본부의 송규호 대리가 분당 소비자들의 성향을 들려준다. 송 대리는 “까다롭고 합리적”이라고 짤막하게 분당 소비자들을 묘사했다. “대부분 고객이 ‘엘리트층’이라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소비자들이 저희보다 브랜드를 더 자세히 분석해서 놀랄 때가 있어요. 인터넷이나 외국 경험 등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겁니다. ”

그래서 분당에서는 제아무리 이름난 브랜드라도 외면받는 경우가 생긴다. 송 대리는 그런 실패 사례로 명품브랜드 크리스천 디오르의 ‘디오르 베이비’를 들었다. “아이 원피스 한 벌에 70만~80만원을 호가하는 이 브랜드가 2003년 입점 초기에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어요. 그런데 값이 아니라 디자인이 문제였죠. 디자인이 현지만큼 자주 바뀌지 않는 겁니다. 소비자들은 기다렸다가 외국에 나갈 때 더 저렴한 값에 구입하기 시작했어요. ” 결국 디오르 베이비는 지난해 삼성플라자에서 철수했다.

성공한 브랜드로는 올해 2월에 선보인 ‘버버리 칠드런’이 있다. 송 대리는 “고가이긴 하지만 디자인이 외국과 거의 비슷한 간격으로 교체되고 있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삼성플라자 매장이 버버리 칠드런의 전국 매장 중 매출 1위”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내 회사인 이현어패럴의 ‘빈’은 중가이면서도 뛰어난 디자인과 품질로 분당 주부들의 입맛을 충족시킨 경우라고 송 대리는 소개했다. “고급 구매력과 합리적 구매력이 모두 강한 곳이 바로 분당입니다. ”

소비가 밖으로 새지 않는 응집력 있는 시장

4월 5일 여성의류 브랜드들이 들어서 있는 삼성플라자 2층. 봄 세일을 맞아 들른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영국 니트 의류 브랜드 ‘피터 지슨’에서 옷을 고르던 50대 주부 서정숙 씨는 “도대체 왜 돈을 그 복잡한 서울까지 나가서 쓰겠느냐”고 반문한다. 분당에 산 지 10년이 넘은 서씨는 혼기가 찬 아들을 염두에 두고 분당에 집을 한 채 더 장만해 뒀다. 서씨는 “아들 직장이 강남이라 분당에서 20분이면 출퇴근이 가능하다”며 “서울은 비싸기만 하지 공기도 안 좋고, 생활의 질이 아무래도 떨어진다”며 분당 예찬론을 펼쳤다.

주차시설이 널찍하게 잘 갖춰져 있는 등 쇼핑이 편리하다는 점도 소비자들을 분당에 붙들어두는 요인 중 하나다. 분당에는 5층 상가건물도 지하 2층에는 주차장이 있다. 차를 몰고 가서 들르고 나올 때 번거로움이 없다. 구미동에 있는 2001아울렛은 1,000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건물을 확보하고 있다. 이에 비해 서울의 당산 ·중계 ·안산, 안양 등 다른 4개의 2001아울렛이 보유한 주차공간은 400~500대에 불과하다.

여유있는 쇼핑환경이 다른 지역 소비자들도 분당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서울 도곡동의 대림아크로빌에 사는 주부 최연실 씨는 “비교적 분당과 가까워 주로 분당에서 쇼핑을 한다”고 말한다. “쇼핑하기 위해서 분당에 가는 건 아니지만, 분당 쪽으로 이사한 친구들과 모임을 갖고 나서 장을 보곤 하죠. 한 달에 3?번 정도 이마트에 들르는데, 금요일과 주말에는 분당 거주자만큼이나 서울에서 온 이용객들로 넘치는 것 같아요. 길도, 주차도 덜 번잡하고 분위기도 강남과 비슷해서겠지요.”

2001아울렛을 운영하는 뉴코아는 “분당 2001아울렛 고객 가운데 분당과 성남 거주자가 64%이고 나머지 36%는 다른 곳에서 온다”고 밝혔다. 뉴코아 영업지원부의 정영운 과장은 “분당과 성남 고객을 구분하면 분당 지역보다 비분당 지역에 사는 고객이 더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 과장은 편리한 교통, 앞서가는 트렌드, 고급 소비문화 등을 인근 지역으로부터의 원정쇼핑 유인으로 꼽았다.

2001아울렛 분당점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2%로 5개 매장 중 가장 크다. 정 과장은 “2001아울렛 가운데 분당점이 가장 늦은 2002년 5월에 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돋보이는 실적”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수지 등 인근 상권의 중심이라는 덕도 봤고 지역 특성에 맞는 영업방식을 도입한 효과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분당 마케터들 사이에서는 분당이 핵심 상권, 용인에서 수지에 이르는 지역은 2차 상권으로 불린다. 판교까지 들어서면 분당 상권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태평양공인중개사사무소 손 대표는 “판교는 상업지역이 분당의 3분의 1밖에 안되기 때문에 판교 개발로 상권이 분할되기보다는 분당 상권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분당의 어제와 오늘
강남 대체한 ‘녹색 공화국’

일요일 오전 12시30분. 예배가 끝난 교회에선 신도들이 물밀듯이 몰려나온다. 역 주변의 번화가 식당가는 어딜 가도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촘촘히 들어선 고층건물과 주상복합단지의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는 밤에도 쇼핑을 즐기는 인파는 변함이 없다. 개발된 지 불과 15년 만에 성남시의 50%에 육박하는 70㎢ 면적에 44만 인구로 성장한 분당신도시의 모습이다.

분당은 수도권 주택난 해소를 위해 89년에 착수된 대규모 신도시 건설사업에서 비롯됐다. 분당의 입지조건은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여러 신도시 후보지 가운데 단연 돋보였다. 경부 ·중부 ·판교~구리 간 고속도로에 인접한 분당지구는 여타 신도시에 비해 서울 강남과 가까운 장점이 있었다.

대규모 단지 계획과 함께 발표된 정부의 수도권 정비시책 또한 분당을 베드타운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인구집중 유발시설로 분류된 공공기관 등이 대거 분당으로 이전된 것. 현재 가스공사 ·토지공사 ·주택공사가 분당에 들어서 있고, 도로공사 역시 분당에 인접한 수정구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정보기술(IT) 벤처기업들이 가세했다. 벤처의 메카인 강남과 가까운 거리이지만 강남에 비해 저렴한 건물 임대료, 그리고 쾌적한 근무환경이 이들을 끌어들였다. 아울러 KT 본사와 SK텔레콤 연구소, 포스데이타 등 전자 통신 분야의 대기업과 연구소들이 입주했다.

훌륭한 입지조건과 저가의 토지가 개발 초기 분당의 강점이었다면 강남 출신의 중상층 분당 거주자들은 미래 분당 개발을 이끄는 힘이다. 포화상태인 도로여건과 오래된 아파트에 지친 강남 사람들에게 분당의 주거조건은 매력적이었다.

강남의 낡은 30평 아파트보다는 충분한 녹지를 확보한 공해 없는 주거전용 도시의 새 아파트 40평을 택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새로운 이주민들은 고학력 커뮤니티와 경제력도 함께 갖고 들어왔다. 강남의 생활문화가 고스란히 유입돼 분당의 지역발전과 타 신도시와의 차별화에 크게 기여했다.

박세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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