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10억 시청자를 잡아라
중국의 10억 시청자를 잡아라
One Billion Couch Potatoes
중국 장시(江西)성의 옛 공산당 게릴라 기지였던 야오리 마을의 많은 가구는 아직도 집안에 마오쩌둥(毛澤東) 초상화를 걸어 둔다. 그러나 오늘날 주민들은 TV에 사로잡혔다. 평범한 월요일 오후, 어린이 두 명이 깜빡거리는 TV 앞에 꼼짝도 않고 앉아 홍콩에서 제작된 복잡하게 얽힌 사랑 이야기의 드라마를 보았다. 인근의 다른 집에서는 은퇴한 부부가 방문객들에게 현지 유선방송 회사가 제공하는 다양한 지방 TV 방송에 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는 “우리는 상하이와 저장(浙江)·안후이(安徽)·후난(湖南)성 방송을 다 본다. 채널이 모두 12개”라고 자랑했다.
중국 전체가 유선방송이라는 새로운 오락수단의 파도를 타며 채널을 돌리는 듯하다. 유선방송망은 매달 1~2달러의 싼 요금으로 대다수 시골 마을마저 엮어버렸다. 또 명백히 불법인 위성 안테나들은 오지 마을의 지붕을 장식한 채 멀리는 인도에서 날아오는 공짜 TV 프로그램들을 낚아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시골에서 TV를 보유한 가구는 열 가구당 하나꼴이었다. 오늘날 TV 보급률은 거의 100%이며 시대극, 도시 드라마, 경찰 드라마, 요리 강습 등 통상적인 TV 프로들에도 시청에 제한이 없다. 그런 프로그램들 사이사이에 광고업자들은 미백 크림, 1회용 기저귀, 빅맥 등을 무차별로 선전한다.
중국에 TV 시대는 늦게 도달했는지 모르나 그 열기는 대단하다. 하룻밤 사이에 정부는 한때 선전도구에 불과했던 지방 TV 방송사들을 시청자 확보를 위해 서로 경쟁하는 재벌 기업들로 변모시켰다. 기술은 세계 최대 미디어 시장이 될 중국 시장에 대한 CCTV(독점적 국영 TV)의 장악력을 잠식해간다. 가장 최근의 혁신인 디지털 TV는 CCTV의 방대한 지상 인프라를 2015년께 무용지물로 만들지도 모른다.
2015년은 중국이 아날로그 방송을 종식하겠다고 약속한 해다. 정부는 강력해진 지방 TV 방송사들이 언젠가는 CNN이나 스타 TV 같은 국제적 방송사와 경쟁하기를 희망한다. 미 일리노이대 연구원 뤄윈바이는 “중국 정부는 실제로 지방 방송 재벌들을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변모시키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런 상업화의 욕구와 통제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한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지난 50년간의 서양문화가 증명하듯이, TV의 사회경제적 영향은 광범하고 강력해서 이를 봉쇄하려는 검열관들의 어떠한 시도도 뛰어넘는다. TV 업계의 철저한 상업화는 이미 평등주의적 농민사회라는 중국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오늘날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과 광고)들은 중국을 도시와 자본주의, 그리고 상향적 사회이동성으로 상징되는 사회로 묘사한다. 중국이 도달하고자 열망하는 미래의 모습이다.
“모두 대저택에서 사는 멋진 남성과 예쁜 여성들에 관한 얘기”라고 재벌기업인 상하이 미디어 그룹(SMG)의 국제관계 담당 중역 순웨이는 말했다. 다시 말해 모두 돈에 관한 얘기라는 뜻이다. 급격한 경제·사회적 변화 속에서 TV는 그런 변화의 견인차로 부상했다. TV는 성공적인 시장 개혁의 본보기이자 국가 정체성을 일신하는 도구가 됐다.
이처럼 TV는 수많은 중국인이 열망하는 더 나은 미래를 정의한다. 그 핵심에는 서방에서는 익숙하지만 중국에서는 낯선, 강력한 역동성이 놓여 있다. 광고 수입을 극대화하려는 편성자들과 또 다른 성공작을 만들려는 제작자들은 모든 잠재 광고주들의 목표인 ‘도시 소비자’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훨씬 광범한 시청자들, 아직 해안 도시에 살지 않는 나머지 8억 명의 중국인에게도 전달된다. 홍콩중문대학(香港中文大學)의 조셉 천(미디어학)교수는 “오늘날 TV는 문화적 열망의 원천이다. TV는 도시의 풍요로움에 관한 신화를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마오쩌둥 시대 이후 전개된 각종 변혁 운동에서처럼 TV의 변화도 단순히 이윤 동기에서 시작됐다. 중국 지도자들은 이웃 홍콩과 대만의 예를 따라 지방과 도시 TV 방송사들의 사기를 진작하는 전략을 만들었다. 그런 개혁 정책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방 TV는 방대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선전도구에 불과했고, 국영 TV에서 방영된 프로그램들을 재방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주요 지방의 모든 TV 채널은 지금도 CCTV의 오후 7시 뉴스를 생방송으로 중계한다. 중국 정부의 계획은 그들이 좀 더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신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며 광고 수입을 올리는 것이다. 서양세계의 선례에 따라 중국의 TV 방송사들은 스스로를 공산당의 대변인이 아니라 오락의 판매자로 보게 됐다. “이런 상업 논리가 중국 TV 업계에도 스며들었다”고 천은 말했다.
새로운 논리는 광시(廣西)성 TV의 최신 히트작 ‘에게해의 사랑’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상하이를 무대로 한 이 드라마는 부유한 사업가의 딸, 그녀의 약혼자(약혼녀 가족의 기업제국을 인수하도록 훈련받는 미남 청년), 그리고 그가 그리스 섬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우연히 만난 상하이 출신의 ‘가난한’ 여성 등 세 사람의 삼각관계를 다룬다. 호화판 저택, 유니폼을 입은 하녀들, 세계 여행, 긴 리무진 등이 등장하는 배경 속에서 이야기는 돈에는 무관심해 보이는, 늘어진 대만식 헤어스타일의 등장인물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뤄윈바이 연구원이 자신의 권위 있는 연구서 ‘현대 중국 TV 오락물의 정치경제학’(The Political Economy of Contemporary Chinese Television Entertainment)에서 지적하듯이, 중국의 TV 프로는 1990년대 초 ‘문예’에서 ‘오락’으로 변신했다. 우연찮게도 당시는 위대한 지도자 덩사오핑(鄧小平)이 경제개혁 촉진운동을 막 벌인 시점이었다. 그는 태동 단계였던 광고산업을 강화하고, 언론매체들의 상업화를 허용했다. 몇 년 뒤 중국은 민영기업들이 국영 TV를 위한 프로그램들을 제작하도록 허용하고, 34개 지방 방송사들에 위성 채널 사업권을 부여했다.
그런 개혁 조치 덕분에 지방 방송사들은 위성을 통해 부유한 해안 지대 시청자들에게 접근했다. 중부 지역의 후난 TV는 그 기회를 재빨리 활용했다. 90년대 말 후난 TV에서 만든 몇몇 프로그램은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광고주들도 몰려들었다. 유명한 지방 방송사들은 CCTV보다 저렴한 광고비로 광고주들을 끌어들였다.
정규 프로그램들처럼 광고 방송 역시 도시적 취향에 영합한다. 예컨대 상하이의 리브 맥주는 여피족이 정원에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광고에 담았다.
치약 제조업체 크레스트는 유리와 강철로 만들어진 사무용 고층 건물 속에서 젊은 남녀가 만나는 장면을 연출한다(예상대로 그 만남은 승강기 속에서 청년의 입에서 나오는 마늘 냄새 때문에 엉망이 된다). 나이키는 길쭉한 반바지와 헐렁한 티셔츠의 10대들이 상하이 부두에서 농구공을 드리블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맥도널드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10대 힙합 족들을 내세웠다. 중국에서 인기있는 운동기구 광고에서는 한 여성이 자신의 뱃살을 꼬집으며 “임신 때부터 이런 뱃살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친구는 그 운동기구 사용을 권유하면서 “기분이 한결 좋아지고 더욱 섹시해진다”고 말한다.
10년 전만 해도 내륙지방에서는 이런 광고들이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고 그레이 글로벌 그룹 차이나의 비베카 찬 회장은 말한다. “우리는 매우 도시지향적인 현상들을 본다. 5년 전만 해도 지나치게 앞서간다 싶었을 만한 현상이다.”
TV는 보다 도시적인 미래를 향해 사람들을 재교육시키는 도구가 됐다. 이는 요리 강습(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수단으로 시골의 잠재적 요리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같은 교육 프로그램이나 최신 패션 경향을 넌지시 귀띔하는 광고 등을 통해 이뤄진다. 그녀는 “사회이동성이 높아졌다. 그런 만큼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국적으로도 관심을 끌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 경향은 최신식 외제 스포츠다목적차량(SUV)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비베카 찬은 10만 달러짜리 폴크스바겐 투아레그의 중국 진출 캠페인을 도왔다. 그 TV 광고의 주인공은 중국인 모험가이자 부동산 재벌인 왕시였다. 그는 힘 좋은 투아레그가 티베트의 황야를 질주하는 동안 자신의 2003년 에베레스트 등정 경험을 소개한다. 수도승들이 염불을 외고, 기도문이 적힌 깃발이 펄럭이며, 히말라야의 강풍이 몰아치는 동안 열정적인 등산가인 왕시는 고통스러웠던 산행 경험과 관련해 이렇게 설명한다. “정열을 정의하기는 정말 어렵다. 정열은 자신의 삶에 결코 만족하지 않을 때 생길지 모른다.”
지방 방송사들은 참신한 프로그램 개발과 광고 유치에서 성공했지만 아직 CCTV에 큰 위협이 되지는 못한다. 9억 명에 달하는 CCTV 시청자는 지방 TV 시청자 수를 왜소하게 보이게 한다. 베이징 소재 미디어컴의 미디어 기획 책임자 애런 초이에 따르면 중국에서 모든 TV 광고비의 절반은 10대 도시를 겨냥한다. 지방의 위성 채널 사업자들은 CCTV 산하 12개 방송사와 높은 시청률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이론상 1개 위성 채널은 중국 전체를 감당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위성 채널은 그 정도로 비중이 크지 않다”고 애런 초이는 말했다.
그런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나선 유망한 신흥기업이 바로 SMG다. SMG는 2002년 상하이 TV·라디오 방송국들의 통합으로 설립된 이래 새 기술과 산하 방송사들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SMG 산하 패션 네트워크인 ‘채널 영(Young)’은 10대와 젊은이들을 겨냥한 최신 드라마, 패션쇼, 유명인사 소식을 방영한다. 역시 SMG 산하 위성채널인 드래건 TV는 도발적인 대담, 스포츠 생방송, CNN식 뉴스 보도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소수의 유력한 지방 방송 재벌처럼 SMG도 중앙정부가 허용하는 범위 이상의 야망을 품었다. 순웨이는 “물론 국가에는 산업을 관리하기 위한 정책과 규정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SMG의 채널들이 점차적으로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접근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은 인쇄 매체 개혁의 선례를 따라 앞으로 지방 방송사들에도 더 많은 재량권을 부여하리라고 전문가들은 본다. 사실 SMG는 이미 두 번째 위성채널 툰맥스 사업권을 획득했다. 또 미국의 비즈니스 채널 CNBC, 바이어콤의 어린이 채널 니켈로디언, 한국의 홈쇼핑 채널 CJ 등 국제적 파트너들과도 제휴했다. 덕분에 SMG는 이미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을 우선적으로 공급하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으며, 이런 프로그램들은 나중에 다른 네트워크에도 판매된다.
중국 정부는 아직 전면적인 규제 완화 조치를 취할 준비가 안됐다. 규제가 완화될 경우 SMG는 더 많은 자체 프로그램들을 전국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게 된다. 예컨대 위성채널에 대한 제한의 상향 조정, 지방방송사들의 합병 허용, CCTV의 독점권 축소 같은 조치다. 하지만 관계당국은 지방 방송사들이 좀 더 많은 시청자에게 보다 쉽게 다가가도록 한다. 올해 들어 SMG는 CCTV를 누르고 중국 최초로 인터넷 TV(IPTV) 사업 허가를 받았다. SMG는 디지털 유료 TV처럼 잠재적으로 혁명적인 분야에서도 선두를 달린다.
최근에는 전국의 유선TV방송 사업자들에게 16개 디지털 채널을 한 묶음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유선방송 사업자들이 SMG의 2개 위성 방송만 이용했다. 아직 초기 단계 시장이긴 하지만 SMG는 전국의 약 100만 디지털 TV 신청 가구 가운데 약 66%와 계약을 해 CCTV와의 경쟁에서 앞섰다. 베이징 소재 컨설팅 업체 BDA의 뉴미디어 분석가 팡메이칭은 “디지털 TV가 소규모 방송사들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한다”고 말했다.
SMG의 순웨이는 기적을 바라지 않는다. 그는 “그동안 소비자들에게 거의 무료로 제공하다가 갑자기 유료로 바꾸지는 못한다”고 시인했다. 그의 해결책은 다른 상품의 판매다. “드라마와 영화 등의 콘텐츠 품질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미래에는 쌍방향 서비스도 제공된다. 시청자들이 승자를 결정하는 리얼리티 쇼도 가능하다.”
베이징의 검열당국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최근 검열당국은 인기있는 경찰 드라마의 방영을 중단키로 한 결정은(경찰의 수뢰와 부패에 관한 얘기가 지나치게 정곡을 찌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TV가 아직도 통제된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의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TV 산업은 계속 발전 중인 매혹적인 분야다.
With JONATHAN ANSFIELD in Beijing
장병걸 cbg58@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중국 장시(江西)성의 옛 공산당 게릴라 기지였던 야오리 마을의 많은 가구는 아직도 집안에 마오쩌둥(毛澤東) 초상화를 걸어 둔다. 그러나 오늘날 주민들은 TV에 사로잡혔다. 평범한 월요일 오후, 어린이 두 명이 깜빡거리는 TV 앞에 꼼짝도 않고 앉아 홍콩에서 제작된 복잡하게 얽힌 사랑 이야기의 드라마를 보았다. 인근의 다른 집에서는 은퇴한 부부가 방문객들에게 현지 유선방송 회사가 제공하는 다양한 지방 TV 방송에 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는 “우리는 상하이와 저장(浙江)·안후이(安徽)·후난(湖南)성 방송을 다 본다. 채널이 모두 12개”라고 자랑했다.
중국 전체가 유선방송이라는 새로운 오락수단의 파도를 타며 채널을 돌리는 듯하다. 유선방송망은 매달 1~2달러의 싼 요금으로 대다수 시골 마을마저 엮어버렸다. 또 명백히 불법인 위성 안테나들은 오지 마을의 지붕을 장식한 채 멀리는 인도에서 날아오는 공짜 TV 프로그램들을 낚아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시골에서 TV를 보유한 가구는 열 가구당 하나꼴이었다. 오늘날 TV 보급률은 거의 100%이며 시대극, 도시 드라마, 경찰 드라마, 요리 강습 등 통상적인 TV 프로들에도 시청에 제한이 없다. 그런 프로그램들 사이사이에 광고업자들은 미백 크림, 1회용 기저귀, 빅맥 등을 무차별로 선전한다.
중국에 TV 시대는 늦게 도달했는지 모르나 그 열기는 대단하다. 하룻밤 사이에 정부는 한때 선전도구에 불과했던 지방 TV 방송사들을 시청자 확보를 위해 서로 경쟁하는 재벌 기업들로 변모시켰다. 기술은 세계 최대 미디어 시장이 될 중국 시장에 대한 CCTV(독점적 국영 TV)의 장악력을 잠식해간다. 가장 최근의 혁신인 디지털 TV는 CCTV의 방대한 지상 인프라를 2015년께 무용지물로 만들지도 모른다.
2015년은 중국이 아날로그 방송을 종식하겠다고 약속한 해다. 정부는 강력해진 지방 TV 방송사들이 언젠가는 CNN이나 스타 TV 같은 국제적 방송사와 경쟁하기를 희망한다. 미 일리노이대 연구원 뤄윈바이는 “중국 정부는 실제로 지방 방송 재벌들을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변모시키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런 상업화의 욕구와 통제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한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지난 50년간의 서양문화가 증명하듯이, TV의 사회경제적 영향은 광범하고 강력해서 이를 봉쇄하려는 검열관들의 어떠한 시도도 뛰어넘는다. TV 업계의 철저한 상업화는 이미 평등주의적 농민사회라는 중국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오늘날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과 광고)들은 중국을 도시와 자본주의, 그리고 상향적 사회이동성으로 상징되는 사회로 묘사한다. 중국이 도달하고자 열망하는 미래의 모습이다.
“모두 대저택에서 사는 멋진 남성과 예쁜 여성들에 관한 얘기”라고 재벌기업인 상하이 미디어 그룹(SMG)의 국제관계 담당 중역 순웨이는 말했다. 다시 말해 모두 돈에 관한 얘기라는 뜻이다. 급격한 경제·사회적 변화 속에서 TV는 그런 변화의 견인차로 부상했다. TV는 성공적인 시장 개혁의 본보기이자 국가 정체성을 일신하는 도구가 됐다.
이처럼 TV는 수많은 중국인이 열망하는 더 나은 미래를 정의한다. 그 핵심에는 서방에서는 익숙하지만 중국에서는 낯선, 강력한 역동성이 놓여 있다. 광고 수입을 극대화하려는 편성자들과 또 다른 성공작을 만들려는 제작자들은 모든 잠재 광고주들의 목표인 ‘도시 소비자’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훨씬 광범한 시청자들, 아직 해안 도시에 살지 않는 나머지 8억 명의 중국인에게도 전달된다. 홍콩중문대학(香港中文大學)의 조셉 천(미디어학)교수는 “오늘날 TV는 문화적 열망의 원천이다. TV는 도시의 풍요로움에 관한 신화를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마오쩌둥 시대 이후 전개된 각종 변혁 운동에서처럼 TV의 변화도 단순히 이윤 동기에서 시작됐다. 중국 지도자들은 이웃 홍콩과 대만의 예를 따라 지방과 도시 TV 방송사들의 사기를 진작하는 전략을 만들었다. 그런 개혁 정책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방 TV는 방대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선전도구에 불과했고, 국영 TV에서 방영된 프로그램들을 재방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주요 지방의 모든 TV 채널은 지금도 CCTV의 오후 7시 뉴스를 생방송으로 중계한다. 중국 정부의 계획은 그들이 좀 더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신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며 광고 수입을 올리는 것이다. 서양세계의 선례에 따라 중국의 TV 방송사들은 스스로를 공산당의 대변인이 아니라 오락의 판매자로 보게 됐다. “이런 상업 논리가 중국 TV 업계에도 스며들었다”고 천은 말했다.
새로운 논리는 광시(廣西)성 TV의 최신 히트작 ‘에게해의 사랑’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상하이를 무대로 한 이 드라마는 부유한 사업가의 딸, 그녀의 약혼자(약혼녀 가족의 기업제국을 인수하도록 훈련받는 미남 청년), 그리고 그가 그리스 섬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우연히 만난 상하이 출신의 ‘가난한’ 여성 등 세 사람의 삼각관계를 다룬다. 호화판 저택, 유니폼을 입은 하녀들, 세계 여행, 긴 리무진 등이 등장하는 배경 속에서 이야기는 돈에는 무관심해 보이는, 늘어진 대만식 헤어스타일의 등장인물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뤄윈바이 연구원이 자신의 권위 있는 연구서 ‘현대 중국 TV 오락물의 정치경제학’(The Political Economy of Contemporary Chinese Television Entertainment)에서 지적하듯이, 중국의 TV 프로는 1990년대 초 ‘문예’에서 ‘오락’으로 변신했다. 우연찮게도 당시는 위대한 지도자 덩사오핑(鄧小平)이 경제개혁 촉진운동을 막 벌인 시점이었다. 그는 태동 단계였던 광고산업을 강화하고, 언론매체들의 상업화를 허용했다. 몇 년 뒤 중국은 민영기업들이 국영 TV를 위한 프로그램들을 제작하도록 허용하고, 34개 지방 방송사들에 위성 채널 사업권을 부여했다.
그런 개혁 조치 덕분에 지방 방송사들은 위성을 통해 부유한 해안 지대 시청자들에게 접근했다. 중부 지역의 후난 TV는 그 기회를 재빨리 활용했다. 90년대 말 후난 TV에서 만든 몇몇 프로그램은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광고주들도 몰려들었다. 유명한 지방 방송사들은 CCTV보다 저렴한 광고비로 광고주들을 끌어들였다.
정규 프로그램들처럼 광고 방송 역시 도시적 취향에 영합한다. 예컨대 상하이의 리브 맥주는 여피족이 정원에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광고에 담았다.
치약 제조업체 크레스트는 유리와 강철로 만들어진 사무용 고층 건물 속에서 젊은 남녀가 만나는 장면을 연출한다(예상대로 그 만남은 승강기 속에서 청년의 입에서 나오는 마늘 냄새 때문에 엉망이 된다). 나이키는 길쭉한 반바지와 헐렁한 티셔츠의 10대들이 상하이 부두에서 농구공을 드리블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맥도널드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10대 힙합 족들을 내세웠다. 중국에서 인기있는 운동기구 광고에서는 한 여성이 자신의 뱃살을 꼬집으며 “임신 때부터 이런 뱃살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친구는 그 운동기구 사용을 권유하면서 “기분이 한결 좋아지고 더욱 섹시해진다”고 말한다.
10년 전만 해도 내륙지방에서는 이런 광고들이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고 그레이 글로벌 그룹 차이나의 비베카 찬 회장은 말한다. “우리는 매우 도시지향적인 현상들을 본다. 5년 전만 해도 지나치게 앞서간다 싶었을 만한 현상이다.”
TV는 보다 도시적인 미래를 향해 사람들을 재교육시키는 도구가 됐다. 이는 요리 강습(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수단으로 시골의 잠재적 요리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같은 교육 프로그램이나 최신 패션 경향을 넌지시 귀띔하는 광고 등을 통해 이뤄진다. 그녀는 “사회이동성이 높아졌다. 그런 만큼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국적으로도 관심을 끌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 경향은 최신식 외제 스포츠다목적차량(SUV)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비베카 찬은 10만 달러짜리 폴크스바겐 투아레그의 중국 진출 캠페인을 도왔다. 그 TV 광고의 주인공은 중국인 모험가이자 부동산 재벌인 왕시였다. 그는 힘 좋은 투아레그가 티베트의 황야를 질주하는 동안 자신의 2003년 에베레스트 등정 경험을 소개한다. 수도승들이 염불을 외고, 기도문이 적힌 깃발이 펄럭이며, 히말라야의 강풍이 몰아치는 동안 열정적인 등산가인 왕시는 고통스러웠던 산행 경험과 관련해 이렇게 설명한다. “정열을 정의하기는 정말 어렵다. 정열은 자신의 삶에 결코 만족하지 않을 때 생길지 모른다.”
지방 방송사들은 참신한 프로그램 개발과 광고 유치에서 성공했지만 아직 CCTV에 큰 위협이 되지는 못한다. 9억 명에 달하는 CCTV 시청자는 지방 TV 시청자 수를 왜소하게 보이게 한다. 베이징 소재 미디어컴의 미디어 기획 책임자 애런 초이에 따르면 중국에서 모든 TV 광고비의 절반은 10대 도시를 겨냥한다. 지방의 위성 채널 사업자들은 CCTV 산하 12개 방송사와 높은 시청률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이론상 1개 위성 채널은 중국 전체를 감당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위성 채널은 그 정도로 비중이 크지 않다”고 애런 초이는 말했다.
그런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나선 유망한 신흥기업이 바로 SMG다. SMG는 2002년 상하이 TV·라디오 방송국들의 통합으로 설립된 이래 새 기술과 산하 방송사들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SMG 산하 패션 네트워크인 ‘채널 영(Young)’은 10대와 젊은이들을 겨냥한 최신 드라마, 패션쇼, 유명인사 소식을 방영한다. 역시 SMG 산하 위성채널인 드래건 TV는 도발적인 대담, 스포츠 생방송, CNN식 뉴스 보도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소수의 유력한 지방 방송 재벌처럼 SMG도 중앙정부가 허용하는 범위 이상의 야망을 품었다. 순웨이는 “물론 국가에는 산업을 관리하기 위한 정책과 규정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SMG의 채널들이 점차적으로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접근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은 인쇄 매체 개혁의 선례를 따라 앞으로 지방 방송사들에도 더 많은 재량권을 부여하리라고 전문가들은 본다. 사실 SMG는 이미 두 번째 위성채널 툰맥스 사업권을 획득했다. 또 미국의 비즈니스 채널 CNBC, 바이어콤의 어린이 채널 니켈로디언, 한국의 홈쇼핑 채널 CJ 등 국제적 파트너들과도 제휴했다. 덕분에 SMG는 이미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을 우선적으로 공급하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으며, 이런 프로그램들은 나중에 다른 네트워크에도 판매된다.
중국 정부는 아직 전면적인 규제 완화 조치를 취할 준비가 안됐다. 규제가 완화될 경우 SMG는 더 많은 자체 프로그램들을 전국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게 된다. 예컨대 위성채널에 대한 제한의 상향 조정, 지방방송사들의 합병 허용, CCTV의 독점권 축소 같은 조치다. 하지만 관계당국은 지방 방송사들이 좀 더 많은 시청자에게 보다 쉽게 다가가도록 한다. 올해 들어 SMG는 CCTV를 누르고 중국 최초로 인터넷 TV(IPTV) 사업 허가를 받았다. SMG는 디지털 유료 TV처럼 잠재적으로 혁명적인 분야에서도 선두를 달린다.
최근에는 전국의 유선TV방송 사업자들에게 16개 디지털 채널을 한 묶음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유선방송 사업자들이 SMG의 2개 위성 방송만 이용했다. 아직 초기 단계 시장이긴 하지만 SMG는 전국의 약 100만 디지털 TV 신청 가구 가운데 약 66%와 계약을 해 CCTV와의 경쟁에서 앞섰다. 베이징 소재 컨설팅 업체 BDA의 뉴미디어 분석가 팡메이칭은 “디지털 TV가 소규모 방송사들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한다”고 말했다.
SMG의 순웨이는 기적을 바라지 않는다. 그는 “그동안 소비자들에게 거의 무료로 제공하다가 갑자기 유료로 바꾸지는 못한다”고 시인했다. 그의 해결책은 다른 상품의 판매다. “드라마와 영화 등의 콘텐츠 품질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미래에는 쌍방향 서비스도 제공된다. 시청자들이 승자를 결정하는 리얼리티 쇼도 가능하다.”
베이징의 검열당국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최근 검열당국은 인기있는 경찰 드라마의 방영을 중단키로 한 결정은(경찰의 수뢰와 부패에 관한 얘기가 지나치게 정곡을 찌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TV가 아직도 통제된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의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TV 산업은 계속 발전 중인 매혹적인 분야다.
With JONATHAN ANSFIELD in Beijing
장병걸 cbg5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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