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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 ·유통 ‘쾌청’ 여행 ·식음료 ‘흐림’

가전 ·유통 ‘쾌청’ 여행 ·식음료 ‘흐림’

올 여름 장사는 여느 때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 ‘100년 만의 더위’ 해프닝을 겪은 이후이기도 하지만 가을 이후 소비심리가 본격적으로 살아날지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나막신 장수가 웃고, 날씨가 좋으면 짚신 장수가 웃는다’는 속담이 있다. 여름철 장사가 날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최근 엇갈린 날씨예보로 가전 ·유통 업계에 한바탕 무더위 소동이 벌어졌다.

발단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었다. 지난 2월 11일 미국 나사의 연구원이 “온실효과 ·엘나뇨현상 등으로 올해가 기상관측이 시작된 19세기 말 이래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국내 언론들은 ‘올 여름 100년 만의 무더위가 찾아온다’며 ‘여름’이란 문구를 추가로 집어넣었다. 문제는 ‘가장 더운 해’와 ‘가장 무더운 여름’은 다르다는 것.

전세계 연평균 기온이 높다고 해서 그해 여름이 더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날씨 정보제공 업체인 케이웨더의 정재희 대리는 “나사 연구원이 ‘한국’이나 ‘여름’ 등을 특징지어 언급한 적이 없는데 국내 언론과 가전업체들이 확대 해석한 것”이라며 “지난해에도 가전업체들은 10년 만의 무더위가 왔다고 대대적으로 알렸지만 돌이켜 보면 예년 여름 평균 기온에 비해 0.6도 정도 높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기상청도 예측이 보도된 다음날 이에 대한 오류를 지적했다. 그러나 기상청의 이런 해명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삼성전자 ·LG전자 ·위니아만도 등 주요 에어컨 업체들은 ‘100년 만의 무더위’를 대대적으로 내세우며 에어컨 예약판매에 열을 올렸다. 실제 예약실적이 지난해보다 3~5배나 늘었다. 위니아만도의 정연규 아산공장장은 “4~5월 말 하루 24시간 3교대로 에어컨 라인을 풀가동할 정도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5월 23일 기상청은 “올해 여름은 국지성 호우가 잦고 이상저온 발생 가능성이 있다”며 나사의 전망을 뒤집었다. 무더위는 커녕 오히려 이상저온이 온다는 내용이다. 그러자 에어컨 업계를 비롯해 여름 상품 업계의 마케팅 담당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는 매장에 설치된 ‘100년 만의 무더위’ 관련 광고물은 모두 거둬들이기로 결정했다.

테크노마트는 6월 말로 잡았던 에어컨 판촉행사를 7월 중순으로 미뤘다. 박상후 테크노마트 부장은 “예년 같으면 6월부터 에이컨 판촉 행사로 한창 바쁠 시점이지만 날씨와 관련된 보도로 행사를 아예 연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발 빠르게 구매 고객 중 1,000명을 추첨해 8월 중 낮 최고기온이 28도 이상인 날이 10일 이하이면 25만원씩 돌려주는 행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빙그레는 아이스크림 생산 품목을 조정했다. 빙그레의 박일환 홍보실장은 “얼음이 많이 들어간 제품의 비중을 줄이고 대신 유지방 아이스크림 생산을 늘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홈쇼핑의 경우 에어컨 대신 선풍기로 방송을 대체했다. CJ홈쇼핑의 전성곤 대리는 “무더위가 오지 않는다는 발표 때문에 1주일에 한 번 방송하던 에어컨 판촉 대신 1주일에 2번씩 선풍기 상품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예약판매를 실시한 에어컨업계는 빗나간 예보의 혜택을 톡톡히 본 것으로 나타났다. 위니아만도 김만석 차장은 “70% 이상이 예약판매로 이뤄지기 때문에 타격이 없었다”며 “무더위 소동이 지났는데도 취소하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기상청 발표 직후 잠시 주춤한 것을 제외하고는 판매량의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집계했다. 현대백화점의 송인석 가전담당 바이어는 “6월 중반부터 낮기온이 올라가면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올 여름 무더위가 여름장사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면서 날씨 정보업체들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케이웨더의 정 대리는 “특정 지역의 맞춤 날씨 정보를 매일 제공받는 기업은 유통 ·건설 ·엔너지 ·제조 ·레저 분야 4,000여 곳에 이른다”며 “여름철 1주일 매출이 날씨 비수기인 2월이나 10월 한 달 매출보다 낫다”고 말했다.

올빼미족 겨냥 ‘심야 마케팅’ 활발

날씨와 더불어 최근 유통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시간을 활용하는 마케팅이다. 특히 무더운 낮시간을 피한 심야 마케팅으로 ‘올빼미족’ 잡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GS홈쇼핑은 심야시간 매출이 예전보다 15% 이상 치솟자 6월부터 ‘도깨비 특가’ 등의 심야영업을 개시했다. 예년보다 보름 정도 앞당겨 올빼미족 공략에 나선 것.

여성 올빼미족을 유혹하기 위해 패션용품과 란제리 등을 판매하는 심야방송 프로그램도 지난달보다 10~20%가량 늘려 편성했다. 현대홈쇼핑도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심야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 자정 이후에 진행하는 생방송 프로그램을 늘리고 경품과 할인 등의 프로모션도 준비했다. 인터넷쇼핑몰업체 인터파크는 자정부터 쇼핑몰을 방문하는 올빼미족에게 할인쿠폰을 증정한다.

옥션도 경매 인기상품을 밤 10~12시에 집중 배치했다. GS이숍의 양승환 영업본부장은 “날씨가 더워지면서 온라인 쇼핑몰에 심야 쇼핑객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게 쇼핑할 수 있도록 야간 이벤트를 준비했다”며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6월 말부터는 올빼미 쇼핑족을 겨냥한 할인행사와 이벤트 경쟁이 더욱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올 여름 매출을 위해 6월부터 모든 점포의 개점 시간을 밤 12시까지로 연장했다. 황금 영업 시간대가 평소 오후 4~7시에서 여름엔 밤 8시~12시로 옮겨지기 때문이다. 대형 할인점으로선 최초로 24시간 영업에 들어간 홈플러스는 현재 33개 점포 중 29개점이 24시간 영업체제로 운영 중이다. 특히 올 여름 종전 5시에 실시하던 시간 세일을 점포별로 8~10시에 한 번 더 벌이고 있다. 극장가도 마찬가지. CGV는 ‘야한(夜寒)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 12시 이후 2편의 심야영화를 1만원에 즐길 수 있다.

여름철을 맞아 예상치 않았던 제품들이 호황을 누리는 경우도 있다. 위니아만도 아산공장은 지난 5월 말까지만 해도 에어컨만 생산하던 라인에서 6월 들어 딤채를 하루 2,000대씩 생산하고 있다. 정연규 공장장은 “여름김장 수요에 맞춰 딤채와 에어컨을 같이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마철이 시작되면 배추나 각종 채소값이 급등하기 때문에 장마 전 여름김장을 담그는 가정이 늘고 있기 때문. 위니아만도의 월별 딤채 판매량에 따르면 6~7월은 11월 김장시즌 다음으로 최고의 성수기다.

햇반도 여름철에 인기를 끄는 제품. CJ의 민정현 햇반브랜드 매니저는 “바캉스 용품으로 팔리기도 하지만 나들이 고객이 늘면서 여름철에는 평월 대비 20~30% 증가한다”고 말했다. 피부과도 여름철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이지함피부과의 김성환 마케팅 팀장은 “노출의 계절인데다 자외선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여름철 수요가 가장 많다”고 말했다.

여름 특수업종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게임 업계다. 학생들이 방학을 맞는 여름이 되면 수백억 원에 가까운 개발비를 투입한 게임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보인다. 여름방학 기간 게임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그라비티의 김현활 팀장은 “7~8월이 게임업체로선 겨울방학 다음으로 중요하다”며 “여름철에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게이머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 올 여름이 지난해보다 나을 듯’

여름특수를 노리는 업체뿐 아니라 내수 시장 전반적으로 올 여름 장사가 1년 장사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허찬국 선임연구원은 “최근 소비 심리 회복을 겨냥해 여름 동안 기업들이 마케팅에 대거 나설 것”이라며 “올해 여름 실적이 국내 내수시장 회복은 물론 기업들의 1년 장사를 결정짓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올 여름 장사는 예년보다 나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교보증권 박종렬 연구원은 “무더운 여름이 예년에 비해 일찍 시작되면서 여름철 수혜주의 성수기가 이전보다 빠른 2분기부터 시작됐다”고 전망했다. 할인점과 백화점 등 유통업체 매출이 3개월 연속(2~4월) 증가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4월에 여름 신상품 수요가 매출을 끌어올린 원동력으로 내다봤다.

박 연구원은 “4월 말에 닥쳐온 이른 더위에 힘입어 선글라스겭宕?등 여름상품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정기세일 기간보다 오히려 매출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여름철 최대 수혜 업종으로 불리는 테마파크의 실적도 지난해에 비해 좋아지고 있다. 에버랜드의 경우 캐리비안베이를 합칠 경우 6월 초까지 입장객이 전년 대비 약 7% 늘었고, 매출은 약 13% 증가했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올 여름은 지난해 대비 한자릿수 대의 성장률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텔겱컥슘?국내 여행사 등 일부 업계에서는 예년만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 특급호텔의 한 관계자는 “최근 일본인 관광객들이 급감하면서 서울 소재 호텔뿐만 아니라 제주도 호텔 객실률까지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한 아이스크림업체의 영업사원은 “소형 슈퍼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지난해에 비해 불황이 더 심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며 “4월과 5월 날씨가 좋았음에도 예년에 비해 주문이 20% 가까이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제주도 중문관광단지에서 만난 한 여행업자는 “제주도 방문객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며 “여행 패키지를 이용하는 사람보다 렌터카 등 개별여행객들이 늘어가는 추세로 특화된 여행상품만이 잘나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주목할 만한 마케팅 대전]
여름은 식음료 업체들이 최대 마케팅 비용을 쓰는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 실적에 따라 업계 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 여름 주목할 만한 마케팅 대전 2곳을 소개한다.

박카스 vs 비타500

관심의 초점은 비타 500이 박카스의 40년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느냐는 것. 징후는 이미 나타났다. 비타500이 지난 4월 매출액에서 박카스를 앞질렀다. 동아제약은 “기존제품(박카스F)을 신제품(박카스D)으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광동제약 관계자는 “생산라인을 풀가동해도 물량이 모자랄 지경”이라며 “올 여름에는 포털사이트 제휴, 마라톤대회 지원 등 다양한 마케팅 전략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겠다”는 포부다. 동아제약은 타우린을 두 배 늘린 박카스D를 통해 기능성 의약품으로 비타500과 차별화한다는 계획이다. 광고에서도 기존의 공익 광고를 탈피해 신세대 스타 임수정과 <올드보이> 의 최민식을 CF 모델로 기용하는 등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하이트맥주 vs OB맥주

여름 시장은 맥주 업계가 마케팅 비용의 절반 가까이를 사용하는 계절이다. 관전 포인트는 하이트맥주에 뒤처져 있는 OB맥주가 점유율을 좁힐 수 있을지다. 맥주 시장은 하이트맥주와 OB맥주가 58%대 42%의 점유율로 오랫동안 고착 상태에 빠져 있다.

지난해 순매출액은 하이트맥주가 8,608억원으로 OB맥주의 6,002억원을 앞섰다. 하이트맥주는 “올해엔 회사 1년 마케팅 예산인 800억원 중 400억원을 여름철에 집중해 점유율 60% 시대를 열겠다”고 말한다. OB맥주는 “올 여름 장사에 따라 점유율을 추가로 1~2% 상승시킬 수 있다”고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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