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여신에서 패션의 우상으로
From Film to Fashion 홍콩의 초저녁 하늘을 수놓은 불빛들이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발코니.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우아하게 샴페인을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한쪽 구석에 놓인 TV 화면에는 홍콩 여배우 장만위(張曼玉)의 활동 모습을 담은 영상이 흐른다. 2004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 장면, 기쁨에 겨워 신발을 벗어들고 호텔 안을 뛰어다니는 장면,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 등. 장만위는 그 TV 화면 근처에서 담배 연기를 천천히 빨아들이며 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해 11월의 이 우아한 저녁 모임은 원래 중국의 명품 보석회사 치린(麒麟)을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영화의 여신이자 패션 아이콘(패션 영역에서 대중에게 교본이 되고 우상이 되는 존재)으로 홍콩의 살아 있는 전설인 장만위의 생애를 찬양하는 자리처럼 돼버렸다. 치린의 공동 창업자이자 장만위와 가까운 친구인 천루이린(陳瑞麟)은 “보석을 디자인할 때 매우 현대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린다”고 말했다. “매기(장만위의 영어 이름)가 내게 영감을 준다. 매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끌려 다니지 않고, 앞장서서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기 때문에 좋다.” 실제로 칸 영화제에서 천루이린이 디자인한 보석을 착용한 장만위의 사진이 보도된 뒤 중국에서는 치린 제품을 모방한 모조품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 보석은 중국 전통의 복(福) 조롱박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었다. 수상 경력이 풍부한 장만위는 언제나 남다른 행동을 보여왔다. 수년 동안 영화 작업을 하는 틈틈이 홍콩의 한 최신 유행 부티크에서 옷을 디자인했다. 배우가 갖는 인지도와 저명인사들의 기호를 신봉하는 홍콩 대중의 심리를 최대한 이용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1년여 전 치린에 합류해 보석 디자인에 영감을 주는 공식 ‘뮤즈’로, 또 지면 광고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해 왔다. 그로써 무명의 신생 회사에 불과하던 치린이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 대열에 합류하는 데 기여했다. 이런 활동은 영화배우로서의 바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준 반가운 휴식이었다. 장만위는 지난 몇 년 동안 일련의 영화에서 인상적인 주인공 역할을 해냈다.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 ‘화양연화’(花樣年華·2000년), 장이머우(張藝謨) 감독의 본격 액션 영화 ‘영웅’(2002년), 그리고 전 남편인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작품으로 2004년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클린’ 등―. 이런 일련의 작품을 끝낸 뒤 1년쯤 촬영 현장에서 떠나 조용히 지내면서 패션 방면의 취미도 살리고, 다음 영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것도 내 일의 일부”라고 장만위는 말했다. 아직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장만위는 2006년 미국의 한 독립 영화에 출연하기로 계약했다. 다른 영화들도 고려 중이지만 작품 선정 기준이 매우 높다. “대본을 검토할 때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라고 장만위는 말했다. 현재 41세로 인생의 이 시점에 “앞으로 길이 남을 영화”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아시아 영화계는 여배우들의 가치를 오로지 젊음과 미모로만 평가하고, 그들을 남자 액션 스타들의 장식품 정도로 취급해왔다. 장만위는 중국 여배우로서는 보기 드물게 그런 관습에 도전할 수 있었던 배우다. “사람들은 내가 연기를 하려고 영화계에 몸담고 있다는 걸 알고 그 점을 높이 사는 듯하다. 인기에 연연해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장만위는 홍콩에서 흔한 방식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0대 시절 거리에서 한 기획자의 눈에 띈 뒤 잠시 모델 활동을 하다가 1983년 미스 홍콩 선발대회에서 2위로 입상했다. 그 후 TV 연속극과 영화에 출연하게 됐고, 85년 영화 ‘폴리스 스토리’에서 청룽(成龍)의 상대역으로 발탁되면서 첫 번째 큰 기회를 잡았다. 자신도 인정하듯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무턱대고 연기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연기 활동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고, 예측되는 결과를 이리저리 재본 뒤 모험을 하기도 했다. ‘성탄기우결양연(聖誕奇遇結良緣)’ ‘추남자(追男仔)’ 등 대중에게는 어필했지만 작품성이 의심스러운 영화들을 찍는 한편 왕자웨이·양판(楊凡)·관진펑(關錦鵬)·쉬안화(許鞍華) 같은 감독들의 작품에도 출연했다. 그 감독들은 연기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줬다. “지금 내가 스물한 살이 아니라 마흔한 살이어서 다행이다. 요즘은 과거에 비해 배우로서 인정받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 예전에 나는 작품을 1년에 아홉 편에서 열한 편 했다. 그중 괜찮은 작품이 단 두 편에 불과해도 사람들은 좋지 않은 작품은 빨리 잊어버렸다.” 장만위는 92년 중국 여배우로서는 최초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관진펑 감독의 ‘완영옥(阮玲玉)’에서 30년대의 전설적인 상하이 여배우 역할을 맡아 이룬 쾌거였다. 장만위는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놀라울 정도로 노력한다. 왕자웨이 감독의 대다수 영화에 참여했고, 세심한 성격인 미술감독 장수핑(張叔平)은 ‘화양연화’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장만위가 목적의식이 뚜렷한 배우라고 말했다. 장만위는 미술감독이 요구하는 60년대식 올린 머리 스타일(틀어 올려 헤어스프레이로 단단하게 고정한 머리)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머리 손질에만 매일 네 시간씩을 투자했다. 그러고도 미술감독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머리 손질을 했다. “매기는 그게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장수핑은 말했다. 결국 영화를 감상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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