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G에 칼 뽑은 아이칸 의적인가 해적인가
85년부터‘냉혹한 사냥꾼’ 약점 폭로한 뒤 법정 분쟁 칼 아이칸(Carl Celian Icahn)이 KT&G와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그는 현재 일흔 살의 고령이다. KT&G는 최근 아이칸의 주식 인수 제안을 거부했다. 아이칸도 즉각 공개 매수 가능성을 경고했다. 회계장부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빌미만 잡히면 KT&G 경영진에 직격탄을 날리겠다는 태세다. 아이칸의 날카로운 상어 이빨이 KT&G를 한 번 문 이상 쉽사리 놓아줄 것 같지도 않다. 여차 하면 통째로 삼킬지 모를 일이다. 아이칸은 자신이 노린 기업의 경영진 약점을 찾아내 폭로하고, 법적 분쟁을 벌이는 것이 특기다. 그는 이미 KT&G의 지분 6.7%를 확보하고 경영권 위협 수위를 점차 높여가고 있다. 하지만 KT&G는 이렇다할 대안이 없다. 더구나 해외 기관투자가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 주주총회안건 자문기관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아이칸 측의 손을 들어줬다. ISS는 KT&G의 일반 사외이사 중 2명을 아이칸 측 후보로 선임할 것을 권고했다. 17일에 열릴 KT&G의 주총 표 대결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원래 아이칸은 정크 본드(junk bond·투기등급채권) 투자로 억만장자가 됐다. 이 후 기업사냥꾼(corporate raider)으로 월가에서 악명을 높였다. 1985년 트랜스월드항공(TWA)을 시작으로 석유회사 텍사코, 철강회사 USX, 식품·담배회사 RJR나비스코 등을 주물렀다. 2000년에는 제너럴 모터스(GM)를 위협했다. 지난해 3월에는 미국 석유회사인 커르맥기와 위임장 대결을 벌여 화학·석유영업 부문 매각, 자사주 매입 등을 이끌어냈다. (위임장 대결이란 주총에서 기존 경영자와 매수자 간의 표 대결에서 벌어진다. 매수자가 공격할 때는 지분의 50% 이상을 장악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양측은 소수주주의 의결권을 위임받아 경영권을 주장하게 된다. 평소 투자자 관리(IR)에 철저했던 기업들은 우호적 소수주주들을 확보, 매수자보다 적은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평소 이를 소홀히 하면 소액주주들이 외면하게 된다. 인수합병(M&A)업계에선 ‘악덕기업은 무조건 공격하라’는 금언이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아이칸은 또 지난해 5월에는 비디오 대여업체인 블록버스터를 공략해 이사 자리 3석을 확보했다. 이어 9월에는 타임워너 공략을 시도했고, 12월에는 캐나다 호텔체인 페어몬트 인수를 시도했다. 급기야 한국의 담배·인삼회사인 KT&G에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다.
철학 전공한 유대인 출신 칼 아이칸, 그는 누구인가? 그는 현재 세계 기업들을 위협하는 냉혹한 기업 사냥꾼으로 악명이 높지만 정작 출생과 성장과정은 지극히 평온했다. 아이칸은 미국 대공황 끝 무렵인 1936년 뉴욕 퀸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대인 가정으로 비교적 유복한 성장과정을 거쳤다. 아이칸의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교사였다. 아버지는 파 락어웨이(Far Rockaway)의 유대인 교회인 ‘시나고그(Synagogue)’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사회주의적인 성향이 강해 부(富)의 축적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부모만 봤을 때는 아이칸에게서 ‘유대인 상인’의 피를 찾기 어렵다. 아이칸이 대학을 졸업하고 부에 관심(열망)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삼촌의 영향이 컸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설명이다. 그의 삼촌은 당시 꽤 성공한 비즈니스맨이었다.
의대 중퇴 후 월스트리트 진출 아이칸은 어린 시절부터 영리했고, 학업 성적도 뛰어났다.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는 최고 점수의 졸업논문을 써 수석으로 졸업했다. 당시 그가 쓴 논문 제목은 ‘의미의 경험적 기준을 정확하게 설명해 나타내는 문제(The Problem of Formulating an Adequate Explication of the Empirical Criterion of Meaning)’로 듣기만 해도 어렵고 철학적인 주제였다. 정신적인 가치를 수치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논문이다. 서강대 철학과 김완수 교수는 “논문 제목으로만 보면, 아이칸은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경험적이고 실증적으로 실현해 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그는 기업 인수에서 행동주의 투자자를 자처했고, 치부하는 데에 수단보다는 눈에 보이는 목표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억만장자가 되었을 때 “우습게도 20세기 철학을 공부한 것이 기업 인수를 위한 마인드를 훈련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졸업 후 그는 뉴욕대 의과대학에 진학해 2년을 다니다 중퇴한다. 의학이 적성에 맞지 않아 학업을 중단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생명공학(바이오테크)에 특별한 애정이 있음에 틀림없다. 모교인 프린스턴대와 마운트 사이나이 메디컬 스쿨 등의 바이오테크 연구에 막대한 기부금을 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인수할 기업을 고를 때도 생명산업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가 의대를 중퇴한 것은 단지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다고 아버지처럼 변호사나 어머니처럼 교육자가 될 생각도 없었다. 그는 삼촌처럼 돈을 벌고 싶었다. 마침내 아이칸은 엄청난 돈이 모여있는 월가로 진출한다. 주변에서 융통한 40만 달러를 들고 뉴욕증권거래소의 중개인이 된다. 60년대 미국의 월가는 새로운 기법의 기업 투자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부실 기업을 헐값에 인수해 구조조정을 통해 빚잔치를 한 후 비싼 값에 되팔아 적잖은 시세차익을 남기는 투자였다. 영국인 제임스 핸슨과 고든 화이트가 투자신탁회사 ‘핸슨 트러스트’를 세워 미국으로 건너가 ‘해적’이라 불리며 돈을 긁어모으던 것도 그 즈음이다. 당시 아이칸도 그런 기업 사냥꾼을 꿈꾸었다. 충분히 현장감각을 익힌 그는 80년대 들어 M&A 시장을 휩쓸며 ‘무자비한’ 기업 사냥꾼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85년 TWA에 대한 적대적 M&A에 성공하면서 기업 사냥꾼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어 RJR나비스코, USX 등 조금이라도 틈만 보이면 닥치는 대로 공략했다. 한 번 눈독들이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 덕분에 ‘상어(Shark)’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타임워너 경영권 장악은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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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매각 요구한 뒤 지분 처분 그러나 아이칸은 열흘 뒤 타임 워너의 경영권 장악을 포기했다. 상당수 기관투자가가 타임 워너 분할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아이칸은 최고경영자(CEO)인 딕 파슨즈가 경영을 잘못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정작 투자자들은 파슨즈가 잘했다는 의견도 있다며 경영진을 축출할 때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타임 워너 이사회 14명에 대한 아이칸의 이사후보 추천도 5명으로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타임 워너 경영권을 획득하려면 최소 8석의 의석이 필요한 만큼 경영권 획득 전략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월가에서는 아이칸의 경영권 장악 포기 소식에 의아해했다. 그렇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경영권 공격이 약화될지언정 멈추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가 원했던 것을 얻기 위해 그동안 보여준 집요함을 감안할 때 그렇다는 얘기다. 델라웨어대학의 기업지배구조센터 찰스 엘슨 이사는 “5명의 이사만 확보해도 아이칸은 이사회를 감시할 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더욱 명석한 움직임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아이칸이 타임 워너 공격을 갑자기 포기한 것은 다른 먹잇감을 노리는 신호로 보고 있다. 생명공학업체 임클론이 다음 타깃이 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아이칸은 지분을 가진 회사에 대해 회사분할, 자산처분, 기업공개(IPO), 타회사 인수 등을 강력 요구한다. 이를 통해 주가를 끌어올린 뒤 적절한 시점에서 지분을 처분해 거액의 이익을 챙기는 방식을 선호해왔다. 아이칸은 KT&G를 공략할 때도 같은 방법을 쓰고 있다. 올 초 5% 미만의 KT&G 지분을 매집한 아이칸은 이 회사의 유휴부동산(6000억~7000억원 추정) 매각,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1조2000억원 추정) 상장 등을 통한 주가 부양을 요구했다. KT&G가 이를 거절하자 아이칸은 곧바로 지분을 6.59%로 늘렸고, 경영권 참가의사를 밝혔다. 급기야 사외이사 3명을 추천,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했다. 아이칸 측은 “KT&G 주식을 취득한 후 의결권 보장을 약속받았으나 최근 KT&G가 취한 일련의 행동은 이런 약속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라며 “주식공개매수를 위해 이미 20억 달러(2조원)의 자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주식공개매수(TOB)란 미국 등에서 흔하게 사용돼 온 적대적 M&A 수법 중 하나다. 특히 아이칸이 TOB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른바 ‘곰의 포옹 (bear’s hug)’은 유명하다. 사전경고 없이 인수 목표 기업의 경영진에게 매수 제의서를 보내 신속한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전략이다. 곰이 껴안은 상태와 같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매수 가격과 조건을 제시하기 때문에 경영진은 반대하기 힘들다. 아이칸은 M&A 대상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기 전에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기도 한다. 이른바 ‘페리 기법’으로 아시아에서 써먹겠다고 그가 공언한 바 있다. 실제로 아이칸은 최근 세계 최대 미디어 기업인 타임 워너와 경영권 분쟁을 마무리하면서 주가 부양책과 사외이사 선임 등에 대한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시켰다.
철저한 “명분보다 실리 챙기기” 아이칸의 KT&G 공략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R&B(Raid and Break-up·공격 후 분할매각)’ 기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단순한 ‘투자차익 챙기기’보다는 KT&G 자체를 탐내고 있는 듯하다. 명분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그의 전략이 공격대상 기업들을 잇따라 굴복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다. SK를 공격한 소버린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에 매달려 우호세력 결집에 실패했지만 아이칸은 이런 점에서 다르다. 그는 기업가치 제고라는 실리를 내세우고 있다. 약 60%에 달하는 KT&G의 외국인 지분 결집이 그만큼 쉽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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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성과 나쁜 기업은 없애야” 그럼에도 아이칸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뉴저지 애틀랜틱시티의 샌즈 카지노 호텔 소액주주들은 그를 고소했다. 이들은 아이칸이 자신의 지주회사인 ‘아메리칸 부동산 파트너스LP’에 카지노 자산을 흡수시키는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에 재산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보유 주식을 처분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칸이 겉으로는 소액주주의 대변자를 자청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좇고 있다는 주장이다. 소액주주의 피해도 마다하지 않는 자세를 비판했다. 샌즈 카지노의 소유주 GB 홀딩스의 16% 대주주인 마이클 스토티니는 “그 친구는 텔레비전에 나오면 언제나 항상 주주 권리에 관해 떠들지만 TV 밖(현실)에선 우리가 거꾸로 당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아이칸의 변호사는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주장한다. 아이칸은 인터넷 웹 호스팅 공급자이자 통신업체인 XO커뮤니케이션과 레스톤 텔레콤 주주들도 단단히 화가 나게 했다. 아이칸은 2003년 파산한 이들 회사에 손을 댔다. 그 후 XO는 6억2000만 달러의 손실을 냈다. 지난해 11월 아이칸은 XO에 7억 달러를 내기로 합의했지만, 그가 낸 돈은 장기부채 채권자와 아이칸이 대부분 갖고 있는 우선주 주주에게 지급됐다. XO의 8% 대주주인 윌리엄 홀로웨이 2세는 “위선자 아이칸이 이사회 장악을 통해 비정상적 거래가 가능해졌다”며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문제 소지가 있고 돈 냄새가 나는 곳에 파고들어 경영권을 흔들어 놓은 뒤 시세차익을 남기고 튀는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아이칸은 공개적으로 타임 워너 소액주주들이 제 목소리를 낼 것을 주장하면서 왜 XO의 과소 주주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물론 아이칸은 지금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아이칸은 “나에 대한 비난은 내가 너무 단기 지향적이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자신은 현 경영진보다 더 나은 경영진에 경영권을 맡기면 자산은 보다 잘 활용될 수 있고 나아가 사회적 가치도 높아질 것이라고 반박한다. 아이칸이 타임 워너를 공략할 때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도 그를 비난했다. 머독은 “아이칸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슬픈 가정이긴 하지만 그가 타임 워너에 요구하는 케이블 사업이 끝내 분사한다 하더라도 이익을 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약을 올렸다. 그는 타임 워너를 ‘매우 훌륭하게 운영된 회사’라며 오히려 아이칸이 위태롭게 한다고 지적했다. 투자차익을 위해서라면 경영진 교체나 회사 매각도 서슴없이 요구한다는 이유에서다. 타임 워너를 이끌고 있는 파슨즈 회장도 “아이칸 측 제안이 타임 워너의 주가를 올린다는 어떤 보장도 하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시가 85억 달러어치 주식 보유 아이칸은 자신이 공격했던 기업 경영자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인간’이라는 악평을 받아왔다. 아이칸은 타고난 도박꾼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라스베이거스의 몇몇 카지노 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취미가 도박으로 알려져 있다. 투자 스타일도 도박처럼 과감하다. 지난해 8월 공격 당시 타임 워너의 시가총액은 830억 달러. 5% 지분을 확보하려고 해도 40억 달러가 들기 때문에 불과 0.1%의 지분을 갖고 있는 아이칸의 힘으로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회의론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타임 워너 역시 최대주주 지분이 5.3%에 불과하다는 약점과 주가가 17달러 선에 묶여 있어 이에 불만을 품은 주주가 많은 점을 이용해 공략해 갔다. KT&G 역시 타임 워너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만큼 아이칸의 도박에 걸려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이칸에게 붙여진 명칭 가운데 ‘행동주의적 투자자’는 그나마 중립적인 평가로 볼 수 있다. 아이칸은 과거, 기업 인수 후 실제로 회장직을 맡는 등 ‘행동주의적’ 투자 양식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최근 타임 워너와 블록버스터 사례에서도 잘 나타난다. 하지만 그를 ‘제국주의적 주주(imperial shareholders)’라는 다소 과격한 별명으로 부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 2월 1일 와튼비즈니스스쿨이 개최한 세미나에서 변호사 마틴 립튼(Martin Lipton)이 아이칸을 집중 공격했다. 그는 1982년 적대적 M&A에 대항하는 방어장치 중 하나인 ‘독소조항(유사시 인수인을 제외한 기존 주주에게 저가의 신주 할인 매입권을 부여하는 조치)’을 개발한 기업법 전문 변호사다. 그는 “새로운 종류의 공격적인 주주들이 기업들로 하여금 장기적 성장 대신 단기적 성과를 내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성토하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이칸’이라고 지목했다. 엔론과 월드컴 스캔들 이후 기업 지배구조의 무게 중심은 제국주의적 CEO에서 제국주의적 이사회로 옮아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난 4년간 주주들의 힘이 막강해졌고, 그것은 아이칸 같은 행동주의적 투자자의 활동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런 주주들의 압력이 너무 강해 이사회는 적대적 인수에 대한 방어를 서서히 줄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대로 돌아가는 회사는 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주가가 떨어지거나 경영상 문제가 있을 경우 더욱 공격적인 주주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아이칸은 반박했다. “나는 단기적 성과에 집착해 회사를 갈가리 찢는 제국주의적 주주가 아니다. 오히려 엄청난 연봉을 받는 비효율적인 경영진들이 경영하는 성과가 낮은 기업들을 없애려는 것이다.” 그는 “파산은 기업을 갈가리 찢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의 자산을 더욱 생산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심지어 그는 기업의 경영진들은 주인(주주)이 부동산을 팔려는데 자신의 자리가 없어질 것을 두려워해 주인의 행동을 막는 존재”라고 쏘아붙였다.
포브스지 발표 세계 부자 49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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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 기부 아끼지 않는 사업가 조명까지 환하게 내걸었다. 밤에도 운전자들은 이 사인을 잘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칸이 그렇게 해 달라고 요청하지는 않았다. 이는 더 많은 기부자를 유치하기 위한 공원 측의 결정이다. 원래 아이칸은 회사 이름이 간판에 걸리기를 원했지만, 개인 이름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최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뉴욕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신디 애덤스는 ‘비즈니스맨 칼 아이칸의 이고(ego) 경기장’이라며 이 사인을 비난했다. 아무튼 이 사인은 비용 대비 효과가 매우 컸던 광고 집행으로 평가되고 있다. 렐리언트 에너지(Reliant Energy)는 휴스턴 텍산(Houston Texan’s)의 축구경기장에 대한 네이밍 권리를 30년간 3억 달러를 주고 샀으며, 페덱스(FedEx)는 27년간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홈 경기장에 대한 네이밍 권리를 갖기 위해 2억500만 달러나 지불했다. 그의 이름은 다른 곳에도 있다. 일류 고등학교인 뉴잉글랜드 프렙 스쿨(대학 진학 예비학교) ‘아이칸 사이언스 센터’와 ‘아이칸 장학 프로그램’도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모교인 프린스턴대에도 상당액을 기부했다. 학내에 그의 이름을 딴 실험실이 있을 정도다. 2004년에는 ‘마운트 사이나이 메디컬 센터’에 5년에 걸쳐 25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탐욕은 선(greed is good)’이라고 주장하던 기업 사냥꾼. ‘냉정한 기업 파괴자’ ‘감정 없는 이익 추구자’. 아이칸에게 수단은 문제가 안 된다. 그에게는 ‘누가 돈을 갖게 됐느냐(Who got the money)’가 최종 목표다. 하지만 아이칸은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틴 프리슨은 그의 저서 『억만장자가 되는 법』에서 “아이칸은 스스로를 무자비하고 터프한 협상자라고 일부 인정한다”면서 “비난에 둔감한 성격이 아이칸에게는 ‘성공의 열쇠’가 됐다”고 썼다. 아이칸은 “이 세상에서 가장 탐욕적인 사람 중 한 명”이라는 비난을 받으나 개의치 않는다. 아이칸이 자주 쓰는 농담은 “친구를 원하면, 개나 한 마리 사라”다. 올리버 스톤의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악명높은 기업 사냥꾼 고든 게코가 사용하던 말이다. 필립스 페트롤리엄의 적대적 인수 캠페인 중 모건 스탠리의 투자 뱅커인 조 포그가 그의 제안을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당신이 석유 사업에 대해서 아는 게 뭐냐?”며 대답을 요구하자 아이칸은 전혀 기죽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조, 당신은 지금 상황 판단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소. 나는 인터뷰를 하려고 여기 있는 게 아니오.” 그의 인생과 비즈니스에서는 두 가지 죄악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생각하지 않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예 행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어느덧 70세가 된 아이칸의 ‘아이칸 파트너스 마스터 펀드’가 대표적 우량기업 KT&G의 주식을 7% 가까이 사 모아 3대 주주로 올라섰다. 그가 죄를 짓지 않으려 ‘생각하고 행동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아이칸 어록 |
“탐욕은 선(善)이다(greed is good)” “친구를 원하면 개나 한 마리 사라”(올리버 스톤의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악명 높은 기업 사냥꾼 고든 게코가 한 말) “누가 돈을 갖게 됐느냐(Who got the money)” “요즘 CEO들은 부(不)적자 생존법칙을 따른다”(갈수록 능력 없는 경영자들이 양산된다는 뜻) “파산은 기업을 갈가리 찢는 것이 아니라 더욱 생산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
아이칸의 별명 |
상어(shark) = 80년대 인수를 시도한 기업들을 한 번 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아이칸의 집요함을 나타낸다. 푸시 파이낸서(Pushy financier) =‘이거다’ 하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아이칸의 추진력을 보여준다. 로빈 훗 =거대 기업 타임 워너를 공략할 때 그가 행동주의 투자자를 자처하고 경영진을 압박하면서 마치 빈민을 위해 부잣집을 터는 의적처럼 비춰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를 소액주주를 대변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제국주의적 주주 = 적대적 M&A를 방어할 수 있는 독소조항을 만든 변호사 마틴 립튼은 아이칸을 가리켜 경영진을 핍박하는 제국주의적 주주라고 말했다. 냉정한 기업 파괴자 = 경영진의 약점을 들추고 문제삼아 기어이 부동산이나 사업부문 자회사를 매각하도록 압박하는 아이칸의 스타일을 나타내는 악명이다. |
아이칸의 기업인수 전략 |
공매도 전략 = 말 그대로 없는 걸 판다는 뜻. 아이칸은 인터넷주의 거품이 붕괴될 것을 예상하고 주식이나 채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매도 주문을 내는 놀라운 수완을 보여주었다. 곰의 포옹 = 사전 경고 없이 인수 목표 기업의 경영진에게 매수 제의서를 보내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는 공개매수 전략. 곰이 껴안은 것 같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 매수 가격과 조건을 제시하므로 경영진이 반대하기 어렵다. 아이칸은 현재 KT&G에 대해서도 이런 전법을 구사하고 있다. 페리 기법 = 인수 목표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기 전에 파생상품 거래를 함으로써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는 전략. 아이칸은 아시아 시장에서 이런 전략을 구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숫자로 본 아이칸 |
1985년. 아이칸이 TWA를 인수한 해. 그는 이를 계기로 월가를 위협하는 ‘기업 사냥꾼’으로 떠올랐다. 69%. 아이칸은 RJR나비스코의 경영진을 압박해 2000년 식품사업을 필립모리스에 매각하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무려 69%에 달하는 투자수익률을 올렸다. 85억 달러. 2005년 포브스는 그의 보유 주식 재산을 85억 달러로 평가, 세계 부자 랭킹 49위로 발표했다. 1000만 달러. 뉴욕시 앤덜스 아일랜드의 종합경기장(아이칸 스타디움) 설립에 아이칸이 기부한 금액. 2.4m. 아이칸 스타디움에는 ‘ICAHN STADIUM’이라고 쓰인 2.4m 높이의 스테인리스 간판이 있다. 20억 달러. 아이칸은 KT&G에 주식 공개매수 가능성을 시사하고, 20억 달러의 자금을 준비해 놓았다고 엄포를 놓았다. 17개사. 아이칸이 그동안 인수했거나 인수를 시도한 기업, 그리고 경영권 참여를 시도한 기업 수. 17번째 기업이 KT&G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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