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록 음악 “아직도 가시밭길”
당국의 가사 검열과 상업성 중시하는 새로운 시장이 미래 스타들의 성장에 걸림돌 올 봄 팝 음악 전문지인 롤링스톤의 중국판이 창간됐다. 중국 로커들이 중국 팝 문화에 확실히 자리매김하도록 돕겠다는 사명을 내세웠다. 롤링스톤은 과거 존 레논과 밥 딜런이 미국 내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지는 데도 일조했다고 주장한다. 중국판 창간호인 3월호의 표지 모델은 중국 록의 우상 추이젠(崔健)이었다. 롤링스톤 중국판의 발행은 중국 록 음악 20주년을 맞는 팬들에게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중국 록 음악은 1986년 대중의 환호를 받기 시작했다. 당시 세계평화의 해를 기념하는 공연에서 추이젠이 연주한 중국 노동계급의 클래식 ‘Nothing to My Name’(一無所有)이 계기였다. 이 노래는 1989년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들의 시위가가 됐다. 중국 정부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한창 싹을 틔우던 록 운동도 심한 비난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추이는 사실상 베이징(北京)의 스타디움 연주회 출연을 금지당했고, 그의 앨범 두 장은 정치 풍자적인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 판금 됐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지난해 그 앨범들은 해금되었고, 추이는 12년 만에 처음으로 베이징의 한 스타디움에서 솔로 공연을 했다. 그의 최근 앨범에서는 가사 한 마디도 잘리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추이는 지난 3월 롤링스톤에 실린 인터뷰에서 힘겨웠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그 시절에는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 죄인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기엔 시기상조였던 듯하다. 롤링스톤의 창간호가 거의 매진됐을 무렵 중국 신문출판총국은 4월 발행 예정인 제2호의 출판을 금지했다. 롤링스톤은 정부로부터 허가받은 제호로만 출간이 가능하다는 형식적인 법에 저촉됐다. 그것은 곧 제호를 롤링스톤보다 훨씬 덜 매력적인 AV 월드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보그부터 굿 하우스키핑까지 수십 종의 다른 수입 잡지는 이 법을 우회해 원래 제호로 발행돼 왔다. 롤링스톤은 이미 록의 정치적 측면보다 패션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편집 방향을 정한 터였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가 이 잡지를 탄압하는 이유가 뭘까? “시장의 반응이 너무 뜨거웠다”고 잡지사의 한 직원은 말했다. 그는 잡지에 해가 될까 염려해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중국에서는 이런 경우 내용이 민감하지 않더라도 정부 관리들이 신경을 곤두세운다.” 롤링스톤의 창간에 얽힌 이 이야기는 록 음악이 공산 치하의 중국에서 넓은 시장을 개척하려면 얼마나 험난한 길을 헤쳐가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여러 면에서 현재 중국의 록 음악계는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다. 중국 정부는 대규모 록 콘서트에 관한 규제를 상당히 완화했다. 중국 록 스타 10여 명은 서양의 기준으로 봐도 꽤 성공을 거두었다. 대규모 록 콘서트는 이제 중국인들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미래의 인디 록 스타들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하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기는 했지만 많은 록 밴드의 메시지와 사운드에 반대하는 정치적 편견은 여전하다. 또 문화 당국은 아직도 가사와 노래 목록을 검열하고, TV와 라디오의 록 음악 방송 시간을 최소한으로 규제한다. 그리고 업계(국영 방송과 개인 제작자들, 록 음악을 지원하는 음반 회사들)는 종종 귀에 거슬리는 사운드를 내는 순수 록 밴드보다 대중에게 먹히는 팝 뮤직을 편애하는 경향을 두드러지게 보여왔다. 그들은 결국 그것이 대다수 청중이 듣고 싶어하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예술적 자유를 지키려는 로커들은 소위 언더그라운드 록의 세계에 틀어박히게 된다. 클럽 연주로 그날그날 생계를 이어나가고, 저예산 록 음악제에 참가하고, 자신의 음악을 인터넷 무료 다운로드용으로 게재한다. 언더그라운드 록 음악계는 가장 활기찬 음악이 연주되는 현장이지만, 이 밴드들은 많은 젊은이에게 다가가기 어렵다고 베이징의 음악 평론가들은 말한다. 많은 청중을 접할 기회가 없다는 점이 한 가지 이유다.(역설적이게도 롤링스톤은 소규모 록 밴드들이 주류에 합류하도록 도움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중국의 록 음악계는 비주류의 자유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발전했다”고 추이는 지난 가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나 많은 밴드가 상업적 성공의 기반이 되는 좀 더 큰 기회를 잡으려면 [자신들의 음악을 향한] 비판과 의구심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국은 록 음악이 당국을 위협하기보다는 이득이 되는 쪽으로 이용할 점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러 면에서 현재 중국의 록 음악은 과거 어느 때보다 서양 시장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다. 매년 음악제와 대형 팝-록 콘서트의 규모와 횟수가 늘어간다. 외국 스타들의 중국 공연도 마찬가지다. 롤링스톤스가 20년 동안 중국 공연을 거부당한 뒤 올 봄 마침내 상하이(上海) 공연을 성사시켰듯이 제임스 브라운도 올 봄 상하이에서 공연했다. 중국의 얼터너티브 음악계는 수십 개의 인디 하위문화로 넘쳐난다. 데스 메탈부터 중국 오페라틱 글램, 랩톱 익스페리멘털, 보헤미안 포크, 랩코어, 그리고 각종 펑크까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인기 밴드들은 외국 대사관의 보조금으로 지방 순회 공연이나 미국과 유럽 순회 공연을 마음껏 하며, 자신들의 공연을 모두 웹사이트에 올린다. 베이징의 사립 음악대학인 미디 뮤직 스쿨이 주최하는 중국 최대의 상설 록 음악제, 미디 록 페스티벌은 장소를 학교 캠퍼스에서 공원으로 옮겼다. 지방 문화 당국에서 공연 허가를 받는 일이 더 쉽고 빨라졌으며, 유럽에서 수입한 무대 보호 방책 덕분에 공안 배치도 최소한으로 줄었다. 지난 5월 이 페스티벌은 청바지 업체인 리 진스와 기타 생산업체인 깁슨을 스폰서로 확보했다. 하루 관객이 1000명에서 1만 명 이상으로 늘었다. 6년 전 미디 록 페스티벌이 시작됐을 때는 가라오케 팝보다 록 음악을 더 즐기는 학생 수가 100명 중 5~10명 정도였지만 “지금은 15~20명에 이른다”고 이 학교에 근무하는 장판은 말했다. 중국 정부가 록 음악에 관용을 베푸는 이유는 과거 공산당 기관들이 하던 일을 요즘은 대중에 영합하려는 흥행업자들이 대신 해주기 때문인 듯하다. 스타디움 콘서트는 여전히 규제가 심하다. 얼마 전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동북부 도시 선양(瀋陽)에서 3일 동안 열린 록 음악제가 좋은 예다. 중국 록 음악 20주년을 기념하는 이 음악제는 청중과 출연자들 모두에게 끔찍한 행사였다. 추이가 출연자 선정에 참여했다. 추이와 프로그레시브 록의 선구자인 탕차오(唐朝), 소프트 록의 미남 스타 왕펑(汪峰) 등 노장 스타들과 일렉트로·메탈·이모코어·그런지·브리트팝 부문에서 인기가 높은 젊은 유망주들이 선정됐다. 그러나 현지 흥행업체들은 신진 그룹들을 음악제 홍보에서 제외시켰고, 출연료도 쥐꼬리만큼 지급했다. 베이징 클럽가에서 인기 높은 4인조 포스트 펑크 그룹 Subs는 멤버당 62달러 50센트를 출연료로 받았고, 교통편도 딱딱한 좌석의 기차 편을 제공받았다(인기있는 스카펑크 그룹 리플렉터 등 다른 그룹들은 이런 형편없는 대우 때문에 출연을 포기했다). 또 콘서트 티켓 뒷면에는 관객에게 콘서트 도중 일어서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적혀있었다. Subs의 여성 리드 보컬 강마오는 음악제를 개막하는 자리에서 불만을 표시했다. “오늘은 로커들의 축제다. 하지만 관객들이 모두 앉아 있어서 유감이다. 록은 일어서서 즐기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공연장의 수용 인원이 2000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흥행업자들은 음악제 1일 이용권의 가격을 48달러가 넘게 끌어올렸다(이 정도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10대들에게는 비싼 수준이며 중국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다 보니 관객이 제일 많았던 추이의 마지막 공연이 관람석 절반을 간신히 채웠을 정도로 손님이 적었다. 또 공연 직후 비디오 판권을 둘러싼 논쟁으로 흥행사 측이 추이의 음악 장비를 빼앗고 그의 비행기표를 압류했다고 전해진다. “과거에는 정부가 우리를 통제했지만 지금은 [욕설 생략] 흥행업자들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고 리플렉터의 베이스 주자 티안 지안화는 말했다. 중국의 록 음악 시장에는 아직도 사회주의적 성격이 남아 있다. 검열관들은 ‘우울하고’ ‘어두운’ 내용 대신 ‘밝고’ ‘건강한’ 내용을 요구하며 방송 시간을 제한한다. 신문들은 록의 우상과 팝 아이돌 사이의 경계를 흐리고 ‘언더그라운드’의 소식은 좀처럼 전하지 않는다. 1990년대 중국 음반업계에서 합법적으로 출반된 록 음반은 1년에 5~10장에 불과했다. 지금은 적어도 40~50장에 이르는데 대다수가 성공한 인디 음반사 모던 스카이(Modern Sky)와 스크림(Scream)에서 출반됐다. 그러나 대부분이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CD와 카세트 테이프 판매량이 5만 장도 안 된다고 스크림의 창업자 루보는 말했다. “음반 시장의 확장 속도가 음악의 확산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 중국 방송은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다. 그러나 상업적 선호의 대상은 여전히 온순한 팝-록 그룹들이다. 중국에는 록 음악 전문 TV나 라디오 방송국이 없다. 음반사와 흥행업체들이 방송 시간대를 통째로 사고 판다. 뇌물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구매력이다. 그들에게는 “장발의 추남 로커들”보다 “노래는 못하지만 예쁜 모델 출신 가수”에 작사가와 백 코러스를 끼워서 파는 장사가 1000배는 더 쉬운 일이라고 중국계 미국인 DJ겸 떠오르는 펑크 밴드 지요(自游)의 리드 싱어 헬렌 펑은 말했다. 베이징의 Hit FM에서 새로 시작한 그녀의 록 프로그램에서는 1시간에 중국 록 음악 두 곡만 틀 수 있다. “그러나 라디오 방송에 적합한 곡을 찾기 어렵다. 중국 록 밴드들은 멜로디를 혐오하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들은 언더그라운드 팬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많은 밴드가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광고 음악이나 휴대전화 벨소리 음악을 녹음하고, 부동산 홍보 행사나 시상식에서 기타에 앰프를 연결하지 않은 채 공연한다. 또 인기 스타들은 공산당 행사에도 초대된다. 지난해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84주년 기념행사에는 추이와 십여 명의 다른 로커들이 초대받았다. 그들은 중국에서는 반(反)파시스트의 승리로 치부되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혁명가요를 연주했다. 베이징 선전부 산하 흥행업체인 베이징거화(北京歌華)가 주관한 이 행사의 목적은 “정부의 태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고 베이징거화의 대표 장잉준은 말했다. 레드 & 록(Red & Rock) 콘서트라고 불린 이 행사(‘세계평화’를 위한 행사이기도 했다)는 일부 출연자에게는 베이징 공인체육장에서 공연하는 최초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팬들은 이 공연을 외면했다. 국영 TV 방송용으로 기획된 이 행사를 찾은 관객은 공연장 수용 인원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물론 정치적 이슈를 노래하는 젊은 펑크 가수들과 래퍼, 후음(喉音) 가수들도 있다. 공산당을 비난하는 가사로 유명한 인더스트리얼 그런지 밴드 판구(盤古)는 2004년 타이베이에서 열린 대만 독립 시위에서 노래해 중국에서 영구 추방당했다. 추이는 콘서트에서 립싱크를 금지하는 ‘생음악’ 운동을 이끌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7월 립싱크 공연에 벌금을 부과하는 새 법을 제정해 이 운동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일관성 있는 록 운동이 없다. “모두가 자기가 하고 싶은 노래를 한다”고 강은 말한다. “공통된 한 가지 문제점이 없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년 동안 변화해 왔기 때문에 “이전만큼 확실한 정치적 문제를 찾기 힘들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 대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 상업사회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묻는다.” 별로 준 게 없다고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스프링 & 어텀(Spring & Autumn)의 리드 싱어 양멩은 말했다. “음악만으로 풍요롭게 사는 로커는 중국을 통틀어 10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제작자들은 언더그라운드와 주류 음악의 골이 깊어질수록 멜로디를 첨가한 인디 록의 틈새시장은 더 커지리라고 믿는다. 워너 뮤직은 처음으로 중국 본토의 세 그룹과 계약하고 서서히 녹음 작업에 들어갔다. 그 그룹 중 하나가 지요다. 그리고 야심 찬 새 음반사 록 포 차이나(Rock for China)는 무드 로커 무마의 후견인 지치앙과 계약했다. 스크림과 모던 스카이는 “아주 많은 인디 밴드와 계약을 시도했다”고 록 포 차이나의 공동 창업자 샨웨이는 말했다. “우리는 소수의 우수한 밴드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을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려고 한다.” 추이의 세대와는 대조적으로 지는 중국 록을 위한 ‘사명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건 웃기는 얘기다. 착각에 불과하다”고 그는 말했다. “중요한 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것이다.” 중국 록의 미래는 인터넷에 달려있는 듯하다. 비록 서양에 비해 5년 정도 뒤지기는 했지만 웹을 향한 음악시장의 움직임은 좀 더 넓은 층의 팬들에게 다가가려는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다. 저작권 위반 때문에 당분간은 아티스트들이 웹을 통해 돈을 벌기는 어렵겠지만 록 히트곡들을 확산시키는 효과는 얻게 될 것이다. 무료 다운로드는 마침내 중국 록이 뛰어 놀 넓고 평평한 운동장을 제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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