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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과‘비타민C 외교’흔들

北과‘비타민C 외교’흔들

▶2005년 8월 북한 화물선 두 척이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제주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핵실험 여파로 일부 국회이ㅡ원은 북한 어선의 제주해협 통과 '불과'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10월 9일 제주국제공항 대합실에 설치된 대형 TV 앞. 북한이 이날 오전 핵실험을 강행했다는 긴급 속보를 접한 제주시민들과 관광객들은 큰 동요는 없었으나 근심스러운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강창근(55·제주시 용담동)씨는 “게메 마씀(글쎄 말입니다). 어떵 될초록 몰랑 앞이 왁왁허우다(어떻게 될지 모르니 앞이 캄캄하다)”며 장탄식을 했다. TV 앞에 모여든 제주시민들은 “북한이 무사 두렁청하게 쩡햄서(왜 정신 차리지 못하고 저렇게 하느냐)” “북한은 아멩 고라도 몰라 마씀(북한은 아무리 잘 말해도 모른 척한다)”며 우려했다. 관광객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인천에서 관광 온 김행주(57)씨는 “상당히 당황스럽다”며 “북한의 핵실험은 엄포로만 생각했는데 정말 강행할 줄은 몰랐다”며 정부의 현명한 대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시민들 반응은 대체로 차분 막상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지만 제주시민들의 반응은 차분했다. ‘위기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할인매장이 이를 대변한다. 제주시 탑동에 있는 이마트 등 대형 할인매장에서는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전군에 경계태세 강화 명령이 내려졌지만 제주는 육군부대가 없어 북의 핵실험으로 제주 사회가 바짝 긴장되거나 들썩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제주는 해안경계를 전투경찰이 맡고 있다). 시민단체들도 비난성명을 내는 정도였다. 상대적으로 담담하다고나 할까. 제주도 재향군인회·자유총연맹 제주도지회 등은 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명백한 도발 행위”라며 “대한민국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선전포고에 버금가는 안보 위기상황임을 자각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일체의 지원을 즉각 중단하고 엄정 대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요한 곳은 주식시장이었다. 제주에 있는 증권지점 객장에서는 투자자들이 주가 급락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제주의 주식투자 인구는 현재 2만3000여 명. 전체 인구(56만 명)로 본다면 적지 않은 시민들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강근형 제주대 교수는 “국제사회의 강한 경고에도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그동안 추진해온 북한의 핵 개발이 협상용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핵 보유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 셈”이라고 지적했다. 권영민 제주평화연구원 부원장(외교부 본부대사)은 “북한은 이번 일로 국제사회, 특히 유엔안보리 이사국들과 자존심 대결로 치달으면서 막판까지 가는 것 같다”며 “제주도가 추진해왔던 감귤 보내기도 일단 중단되거나 보류될 것이며, 전 세계가 지원 중단 또는 경제 봉쇄 등 제재를 가할 경우 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핵실험으로 금강산 관광 단체여행객들의 취소가 잇따르는 가운데 제주 관광업계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전해지고 있다. 제주도관광협회와 관련 업계에서는 북한의 핵실험 발표 소식이 전해지자 제주 관광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고심하며 사태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북핵 사태 등 국제적 문제가 관광시장에 파급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다”며 “미국의 반응과 북한의 대응 등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관광업계는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일본인 관광객 등 외국인 관광객의 유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일본 현지에서는 안전문제에 민감한 제주 수학여행에 대한 취소 문의가 나타나고 있으며 일본의 각 지역 관광협회 등도 사태가 원만히 해결될 때까지 여행 자제를 당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오는 17일 서귀포시 중문골프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국관광공사 후쿠오카 지사 창립기념 골프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던 일본 관광 인사들과 공무원들의 참석 취소를 요청했다. 일본 현지 언론도 북한 핵실험과 관련된 내용을 수시로 보도하는 등 미디어를 통한 공포감 조성도 제주행 취소에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년간 북선박 114척 통과 제주는 감귤 지원으로 북한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이를 두고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제주도가 ‘비타민C 외교’로 남북한 관계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신문은 제주 농민들이 정부의 대북 쌀 지원 사업에 착안해 감귤을 북한에 보내면서 병원과 유치원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1998년부터 시작된 감귤 보내기 운동은 지난해까지 8년째 이어지면서 민간 교류의 물꼬를 트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 따라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감이 감돌면서 제주발 남북교류 사업도 파장이 우려되고 있다.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진 감귤 보내기 사업은 영역이 확대되면서 지원 품목에 제주산 당근도 끼게 됐으며 지난 8년간 감귤 3만6228t, 당근 1만3000t 등 모두 4만9228t이 북한에 보내졌다. 이에 보답해 북한은 2002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제주도민 대표단 766명을 초청하는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처음으로 인적 교류까지 성사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주변 정세가 악화된 가운데 이번에는 핵실험 강행까지 이뤄지면서 초긴장 국면이 조성돼 제주발 남북 교류 사업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로 정치권 일각에선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를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평화의 바닷길’ 봉쇄 여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대북 제재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를 봉쇄하는 것은 실질적 제재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국방부와 합참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공개하며 제주해협을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10일 제5차 남북 해운협력 실무접촉 합의에 따라 북한의 민간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가 허용되면서 지난 1년 동안 제주해협을 통과한 북한 상선은 114척이었다. 이 중 핵실험 장소로 추정되는 함북 김책시 상평리 인근의 김책항을 드나든 선박은 24척이었다.

[인터뷰] 핵실험 한 길주가 고향인 김기환씨


“평생 그리던 온수평 온천이었는데…” “어머니와 동생들은 탈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 내 고향에서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에 가족들이 더욱 생각납니다.”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핵실험이 강행됐다는 소식을 접한 실향민 김기환(87·제주시 한경면)씨는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보게 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길주군에서 태어난 김씨는 젊은 시절 일본에서 학업을 마친 뒤 고향에 머물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남쪽으로 피란했다. 제2의 고향인 제주에서 교편을 잡고 60년간 살아온 김씨는 이번 핵실험에 대해 “우리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를 전공한 김씨는 “북의 핵실험으로 그동안 재무장을 꾸준히 외쳐왔던 일본에 핵무장을 부추기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고향 길주에 어머님이 생존해 있는지 아닌지 모르겠다”며 “한국전쟁에서 국군으로 참전한 사실 때문인지 몰라도 지금까지 북에 있는 가족들과 상봉은 물론 생사조차 모르고 늙어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김씨는 특히 “핵실험이 길주에서 가능한 것은 마천령산맥과 함경산맥이 가로지르면서 탄광과 온천이 발달돼 깊은 굴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라며 “일제시대부터 대규모 제철소가 들어서는 등 공업이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고향 길주군에 있는 온수평 온천에 다시 가보고 싶었어요. 온천물에 계란을 넣으면 5분 안에 삶아질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온천이었는데…. 그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핵실험을 했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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