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아버지가 꿈에 보이면 되는 거야”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아버지가 꿈에 보이면 되는 거야”
▶열사의 땅이지만 새벽은 춥다. 정주영 회장은 언제나 현장에서는 현대건설 작업복 차림으로 ‘나도 근로자’라고 강조했다. |
- 보증서는 2000만 달러지만 결국 공사 전체 규모인 10억 달러를 보증 서는 것 아닙니까. 국내 은행 어디에서도 불가능했을 텐데요. “그러니가 외국계 대형 은행에서 보증서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얼마나 속이 타는지 말이야. 처응ㅁ에는 온갖 은행 다 찾아다녔고 나중에는 바레인 국립은행에서 우리가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을 통해 차관을 들여다가 조선소를 건설해 내더라는 것도 알고 해서 자기네가 해 주겠다 했거든? 얼마나 고마운지 말이지. 근데 다음 날 안 되겠다는 거야. 입찰 날짜는 다가오고 피가 마르는 거예요. 그런데 꿈에 아버지가 보이더니 다음 날 사우디 국립상업은행에 가니까 2000만 달러 지불 보증서를 끊어주겠다고 하잖아요. 너무 희한하잖아? 그래가지고 결국 엄청난 경쟁을 했지만 10억 달러 주베일 공사를 따낸 거예요. 그때 기분이라는 건 잊을 수가 없어. 더구나 그게 무보증이야, 하하항.” 바레인 국립은행이 현대건설과 정 회장의 신용을 믿고 담보 하나 없이 입찰보증서뿐만 아니라 낙찰을 받게 되면 수행 보증금까지 발행해 주겠다고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당초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바레인 국립은행의 자본금이 1500만 달러밖에 되지 않아 그보다 500만 달러나 더 많은 보증서 발급은 법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2000만 달러는 컸다. 그러나 바레인 은행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우디 국립상업은행에 보증서 발급을 요청했고, 결국 사우디 국립은행이 바레인 은행 신용을 믿고 승인한 것이지만 정 회장은 위기에서 기회를 만들어낸 결과의 환희가 어떻다는 것을 꿈을 통해 얘기하고 싶은 것 같았다. 정회장이 주베일 산업항 수주에 얼마나 혼신의 노력을 했던가 하는 것은 당시 사우디 주재 한국대사관 홍순길 건설관의 증언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기막힌 이야기입니다. 사실 내가 정주영 회장하고 개인적으로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내가 건설부 국장이었기 대문에 업체 사주들하고는 늘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 문제로 대립해서… 당시 분위기가 그랬어요. 그렇지만 개인 문제는 개인 문제고, 정말 정 회장의 집념은 대단하고 그야말로 집요한 노력, 높이 평가해야 됩니다. 사우디에서 입찰 보증서를 받아냈을 때 얘긴데, 사우디가 생기고 현대건설이 첫 케이스입니다. 그걸 정 회장이 해낸 거예요. 발주처 입장에서는 회사 규모와 신용을 보는 거니까 보증하는 은행을 보겠다, 당신네가 거래하는 은행을 보겠다는 거거든요. 보증 내용은 그런겁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창피한 얘기지만 2000만 달러니까 정부 보증서를 내겠다고 했더니 사우디 정부에서 안 받아준다 그랬어요. 너희 나라가 부도난 나라인데 거기에 무슨 신용이 있겠느냐 이겁니다. 사우디가 안 받으면 세계에서 다 안 받아요.” 한국이 당시 사실상 국가부도였다는 것은 국민만 모르고 있었지 세계 시장에서는 이미 ‘부도난 나라’로 인식되어 있었다. 국가부도 일보직전에서 박 대통령은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할 때마다 외환 문제를 다그쳤고, 각국에 주재하고 있던 외교관들은 돈 꾸러 다니기에 급급했다. 부총리가 은행마다 다니면서 구걸하고 최대 3000만 달러를 꾸어 왔을 때는 부도를 막는 데 털어 넣어야만 했을 정도로 외환 고갈 상태였던 것이다. ”꿈 얘기 듣고 황당하다 생각” “그런 형편인데, 일개 건설회장 회장이 2000만 달러 보증서를 끊어 달라고 하니 누가 해 줍니까. 그러니까 아주 아슬아슬한 얘기고 결국은 현대건설만 볼게 아니고 나는 국운이라고 보는데, 정 회장은 계속 찾아다니면서 떼를 쓰듯이 자신을 알리고 현대에 대해 자꾸 설명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은행 측에서 딱하다는 듯이 그래요. ‘당신이 한국에서 제일 큰 회사를 가지고 있고 능력이 있다는 것도 알겠단 말이야. 그러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보증서를 가져와야지, 우리가 받을 수 없는 보증을 가져오면 어떡하라는 거냐.’ 창피한 면박을 당하는 거죠. 그런데도 정 회장은 ‘내가 영어에 능통하지 못해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 이러면서 가지고 온 16mm 필름을 막 돌리는 겁니다. 옆에 통역이 있지요, 하하하. 지금은 웃지만 눈물겨운 얘깁니다 이게. 내가 볼 때는 불가능한 것을 저 양반이 자꾸 우기는구나, 그렇게 판단되는데 정 회장은 무조건 꼭 해야 되겠다 이거에요. 당신이 입찰보증만 해 주면 꼭 수주한다는 얘기까지 해요. 그래가지고 결국은 받아 냈어요. 아주 급하게 돌아가던 시점인데, 그건 장관 아니라 총리가 가도 안 될 일이었어요.”
▶거대한 산업도시 주베일의 원유필드(field)선과 동일한 철구조물을 현대중공업에서 제작했다. |
- 전문 내용에 현대라는 말이 들어 있었습니까? “그래요. 이미 현대도 발주처 정보를 입수하고 처음에는 입찰 자격부터 얻는 게 관건이니까 정 회장이 박 대통령한테 부탁을 드렸겠지요. 우리 정부도 꼭 수주를 해얗만 한다는 게 당시엔 지상명령이었으니까. 그 당시 중동에 대한 관심은 월남전 이후 최대였고, 사실 월남전이 끝나면서 이제는 중동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었으니까 대통령부터 대단한 관심을 가지셨지요. 그랬는데 내가 월남 대사를 끝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 대통령께서 빨리 사우디로 나가라고 말이야, 나가서 보니까 그런 엄청난 프로젝트하고 전쟁을 하다시피 하고 있는 겁니다.” <계속>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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