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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모 잡힌 ‘코리안 드림’

볼모 잡힌 ‘코리안 드림’


국내 외국인 근로자들의 고용 현황

두 해 전 ‘코리안 드림’을 좇아 한국에 온 외국인 이주 근로자 압둘(40)은 지난 2월 15일 싸늘한 주검으로 우즈베키스탄의 가족에게로 되돌아갔다. 압둘은 2월 5일 저녁 김해시 안동공단 내 한 공장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을 거뒀다.

일자리를 못 구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지 40여 일 만의 일이다. 그는 2007년 7월부터 지난해 10월 말까지 부산의 한 철강회사에서 일하면서, 본국의 가족에게 꼬박꼬박 돈을 송금해 왔다.

하지만 글로벌 위기가 한국의 실물경제를 얼어붙게 했던 지난해 10월 말 압둘의 꿈은 속절없이 부서졌다. 잘 다녔던 회사가 경영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외국인 근로자들을 모두 내보낸 것이다.

곧이어 그 회사도 결국 화의를 신청했다. 압둘은 목숨을 끊기 며칠 전, 한국에서 함께 일해 온 사촌동생 다브론(불법체류자인 관계로 가명을 썼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일자리 걱정을 했다.

“압둘이 김해에서 일감을 구하고 있다고 했는데 끝내 이루지 못한 거 같다”고 다브론이 울먹였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는 대부분의 이주 근로자가 그렇듯 압둘도 고용허가제에 따라 한국에 왔다.

이들의 한국 체류와 고용 문제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등에 따른다. 입국한 날부터 3년간 취업이 허용되고 사업장 변경도 3회로 제한했다.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2개월 내에 새 일터를 구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취업이 금지되고, 짐을 꾸려 집으로 돌아가거나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남아야 한다. 압둘은 2개월 재취업 규정에 걸려 합법적 신분에서 불법 신분으로 내몰렸다.

압둘은 유서조차 남기지 않아 현재로서는 정확한 자살 동기를 알 길이 없다. 정황으로 볼 때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해 고민 끝에 극단적 결정을 한 것으로 추정해 볼 뿐이다. 본국에 남은 부인과 3명의 아이에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다.

다브론은 “고향으로 전화를 자주 하면서 힘든 내색도 하지 않아 유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한국에 온 이주 근로자들로서는 압둘의 비극이 남의 일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월 취업자 수(2286만1000명)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0만3000명 줄었다.

신용카드 대란으로 경제가 휘청대던 2003년 9월 이래 한 달 기준으로 가장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지난 1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61.5%로 지난해 말보다 0.8%포인트 떨어졌다. 1980년 9월 61.2%를 기록한 이래 가장 낮다. 한국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지면서 이주 근로자들의 취업난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더욱 심화됐다.

앞서 말했듯이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고용허가제의 2개월 시한 규정은 커다란 구속이다. 2개월 안에 일터를 찾지 못하면 불법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어 직장 구하기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실직하거나 일터를 옮기려는 이주 근로자들은 노동부 산하 고용안전센터에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해 놓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절에 앉아서 새 일자리를 구하기가 쉬울 리 없다. 지난해 상반기에 4000명 선이던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 신청건수는 하반기 들어 6000명 선으로 껑충 뛰었다. 고용허가로 체류 중인 합법적인 외국인 근로자 수는 상반기(14만 명 선)나 하반기(15만 명 선)나 별반 차이가 없는데도 말이다.

노동부는 올해 들어 국내 경기 침체로 임금 체불, 사업장 도산, 휴업 등의 사유로 사업장 변경을 신청한 외국인 근로자가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인 업체가 크게 줄어들면서 외국인들의 재취업은 말 그대로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기가 됐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07년 3분기까지 사업장 변경신청을 하고도 2개월 동안 직장을 못 구한 비율은 2%대에 그쳤지만 지난 하반기에는 5%대(2008년 11월 5.3%)로 크게 늘었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고용불안은 지난해 9월부터 눈에 띄게 뚜렷해졌다. 그들이 주로 몸담고 있는 영세 제조업체들이 대부분 경기에 가장 민감한 업종들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수급조절을 위해 생산량을 줄이면 그 충격은 곧바로 하청업체들에 미친다. “이들 영세업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를 본격적으로 강타하기 이전부터 감원 등 감량경영 압박을 받았다”고 우삼렬 아산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 소장은 말했다.

아산지역에서도 대표적 제조업체인 현대자동차가 정규 조업시간을 단축하자 1, 2차 납품업체들의 일감이 크게 줄었다. 대기업으로부터 밀려온 감량경영 압력은 하청업체와 그곳에 몸담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겐 더욱 큰 압박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요즘엔 외국인 근로자들을 찾는 구인 업체가 거의 씨가 말랐다”고 안산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의 임동근 상담팀장이 낙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부 고용지원센터엔 구인을 의뢰하는 업체가 아예 없어 외국인 근로자들을 딴 지역으로 보내기도 한다. 더구나 고용지원센터에서 근로자들에게 건네주는 구인 업체 목록마저도 왕왕 채용인원을 채운 기업들이 끼어 있다.” 이런 절박한 처지를 이용해 외국인 근로자들로부터 돈을 갈취하는 취업 브로커도 기승을 부린다.

이주 근로자 지원단체의 관계자들은 벼랑 끝에 내몰린 일부 외국인 노동자는 뒷돈을 내면서 취업에 매달리는 일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외국인 이주 근로자들은 한국 경제의 밑바닥을 떠받치는 힘이다. 하지만 경기침체기에는 이들이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는 “외국인 근로자는 국가 고용의 안전판”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노동시장의 빈자리를 메우지만, 일단 일자리가 줄면 멀쩡한 직장에서도 내몰린다. “이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신흥시장의 일반적인 추세”라고 그가 덧붙였다.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이주 근로자들의 정착을 돕는 정책이라기보다는 산업인력 수급제도로 여긴다는 말이다. “정부는 외국인 인력을 노동력 공급 측면에서 접근하며, 안전하게 돌아가게 하는 장치도 마련한다”고 법무부 김종호 체류정책팀장이 말했다.

글로벌 불황의 그늘은 쉽사리 걷힐 조짐이 안 보인다. 한국의 경제회복 시기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하지만 일부 외국인 근로자의 한국행은 계속된다. 스리랑카인 란짓(33세)은 지난해 10월 입국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2월 일했던 가구공장이 문을 닫아 4월 초까지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할 처지다. 그는 한국으로 오기 위해 스리랑카 사채업자에게서 한화 400만원을 빌려 송출비용을 댔다고 한다.

하지만 일터를 잃어 고민에 휩싸였다. “직장을 얻지 못하더라도 불법체류자로 한국에 남을 수밖에 없다”고 그가 말했다. “입국한 지 1년이 채 안 된 외국인들은 회사에서 쫓겨나면 대부분 자신들의 나라에서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다”고 인천 소재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이상재 교육팀장이 말했다.

대부분의 외국인 이주 근로자는 한국에 오기 위해 큰돈을 지출한다. 현지 인력송출업자들에게 돈을 주고, 한국어 학습(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은 한국어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비용도 만만찮다. 지난해 11~12월 외국인 이주운동협의회와 이주인권연대 등이 국내 9개국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2008년 고용허가제 실태보고)를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3520달러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 이주 근로자들이 한국에서 받는 급여는 야근수당 등을 포함해 한 달 114만원 수준이다(2008년 노동연구원의 조사결과). “생활비 등 지출비용 등을 감안하면 한국에서 적어도 3년은 일해야 그 빚을 갚을 수 있다”고 이상재 팀장이 말했다.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한국에 남아 있으려고 한다.”

한국에서 일자리가 줄면 불법체류자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이유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계속 줄여 나간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2004년 고용허가제 실시 후 증가하던 불법체류자는 지난해 처음으로 줄어들었다. 2005년 20만4000명→2006년 21만2000명→2007년 22만3000명으로 늘다가 지난해 말엔 전년 대비 10.3% 감소해 20만 명 선 아래로 내려섰다.

법무부는 여세를 몰아 “상·하반기 정부 합동단속을 실시하고, 불법체류 감소 특별대책반을 상시 운영해 불법체류를 줄여 나가겠다”고 지난해 12월 말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혔다. 외국인 이주 근로자와 한국 정부 간의 대립적인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주 근로자들도 언제까지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의 단속도 단속이거니와 더 직접적으로는 직장도 없이 한국의 높은 물가와 생활비를 당해 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주 근로자 지원단체들은 이들의 한국 생활비를 적게는 월 20만~40만원, 많게는 80만~100만원까지 예상한다. 중국교포들과 동남아 근로자가 많이 거주하는 안산시의 ‘국경 없는 마을’도 요사이 활력을 잃었다.

“출퇴근 시간에 외국인 근로자들을 실어 나르던 전세버스들도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고 안산시 원곡동 사업체에 다니는 박월식씨가 말했다. 한국에서 일하던 해외 교포들도 불황의 쓰나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중국과 구소련의 독립국가연합(CIS) 교포들은 대부분 방문취업비자(보통 H-2비자로 불린다)로 들어와 고국에서 일한다.

하지만 고용허가제에 얽매이는(E-9 비자) 외국인 근로자에 비해 이들의 일자리 선택과 입출국은 훨씬 자유로운 편이다. 특히 중국교포들은 1월 말 현재 방문취업비자로 국내에 머물고 있는 전체 해외교포 가운데 98%를 차지한다. 지난해 하반기 일감이 크게 줄어들자 중국으로 돌아가는 교포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방문취업비자로 체류 중인 교포는 30만958명으로 가장 많았던 지난해 10월 말 30만6623명보다 6000명 가까이 줄었다. “지난해 2월에는 중국 교포들이 하루 열 명가량 방을 보러 왔다면 올해는 두 명이 채 안 된다”고 안산시 원곡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김현철씨가 말했다.

안산시 원곡동에 사는 중국교포 김광호(46)씨는 “한국에서도 힘들지만 중국에도 일자리가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투덜대듯 말했다. “중국으로 돌아간 친구들과 자주 전화통화를 하면서 서로 사정 이야기를 한다. 일자리만 해결되면 언제든지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 솔직히 한국에서 살다 중국에 돌아가면 그쪽 생활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역류현상도 나타나지만 금세 복원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동훈 교수가 지적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외국인 근로자가 크게 줄었다가 경기가 좋아지자 다시 늘어났던 전례가 있다.” 우리 정부도 다가올 2012년 체류외국인 수가 157만 명에 이를 걸로 예측했다(지난해 말 국내 체류 외국인은 115만8866명이다). 결국 국내 체류 외국인 근로자 수도 경기부침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하는 ‘요요’ 현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불황은 일손이 부족한 기피 분야(3D 업종)에 인력을 골고루 나눠주는 노동 이동 효과를 낳기도 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이규용 박사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에서 부담스러운 생활비를 감당하자면 어쩔 수 없이 궂은 일과 부당한 대우라도 감내해야 할 처지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외국인 근로자들의 사업장 변경 건수는 4290명으로 예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휴·폐업 사업장이 늘어나 제조업 가동률이 바닥인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현상이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는 “작업환경이 열악해도 옮길 일터가 마땅치 않은 탓에 자발적으로 일터를 바꾸는 경우가 줄었다”고 풀이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동계나 정부 양쪽 모두 신규 외국인력 도입 규모를 축소하거나 보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국내 주요 노동단체 30여 곳이 참여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운동 협의회’는 지난 2월 10일 외국인 근로자 생존권 보장을 강조하는 한편, 올해 외국 인력 도입 규모를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노동부도 1∼2월 고용허가서 발급을 중단한 데 이어, 3월 이후에도 신규 인력 도입에 신중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당분간 외국인 근로자 수도 일정선에서 묶일 공산이 크다. 이와 함께 노동계는 사업장 이동 횟수(3회) 와 구직기간(2개월) 제한을 한시적으로라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힘겨운 삶을 마감한 이주 근로자 압둘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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