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검안기 시장의 가격 파괴자
세계 검안기 시장의 가격 파괴자
휴비츠 자동검안기는 일본 제품이 휩쓸던 국내 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다 . |
시력이 떨어져 눈이 침침해지면 누구나 안경원을 찾게 된다. 현미경처럼 생긴 기계에 눈을 갖다 대면 바로 검사 결과가 나온다. 그 장비가 바로 자동검안기다. 렌즈 앞에 갖다 댄 눈이 점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따라가면 알아서 시력을 측정해 준다.
이 기계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만드는 업체가 안광학 의료기기 전문 업체인 (주)휴비츠(대표: 김현수)다. 1998년 창업 이래 지난해까지 1756대의 자동검안기를 국내에 팔았다. 올 6월 현재 전국 각 보건소에 신고된 안경원이 8175곳임을 감안하면 안경원 5곳 중 1곳은 이 회사 제품을 쓰는 셈이다.
그러나 휴비츠의 주활동 무대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다. 지난해 2931대의 자동검안기를 수출했다. 연 1만4500대로 추정되는 자동검안기 세계시장 수요를 감안하면 시장 점유율이 20%에 이른다. 이 회사의 한성일 이사는 “세계 3위권에 드는 점유율”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회사 매출(310억원)의 83%를 수출로 거둬들일 정도로 해외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다.
휴비츠는 주력 제품인 자동검안기(전체 매출의 40%)뿐만 아니라 렌즈미터(렌즈의 굴절률 측정), 리플렉터(시기능 검사), 렌즈 가공기(안경테에 맞춘 렌즈 절삭) 등 안경원에서 쓰이는 각종 기기도 만든다. 최근엔 안과에서 쓰는 세극등 현미경(각막 세포 검사)도 품목에 추가했다.
휴비츠가 검안기 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전인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시장은 니덱(Nidek), 탑콘(Topcon) 등 일본 기업의 독무대였다. 검안기를 만드는 업체가 국내에는 아예 없었다. 그래서 장년층 안경사들은 지금도 일본 제품을 더 찾는 경향이 있다. 작동할 때 몸에 익숙한 기계에서 이른바 ‘손맛’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제품을 경험하지 못한 청년층은 국내 제품에 매력을 느낀다고 대한안경사협회 윤영수 홍보부회장은 말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다 국산품을 애용하려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윤 부회장도 오래 써온 일본 제품이 더 편하다.
하지만 그는 휴비츠를 일러 “대단한 기업”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0년 전엔 일본 기업이 장악한 국내 검안기 시장에 국내 기업이 진출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휴비츠가 어느새 당당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최근까지도 몇몇 글로벌 기업이 이 분야를 독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동검안기와 같은 안광학 의료기기는 몇 가지 핵심 기술을 갖추지 못하면 시장에 명함도 못 내밀기 때문이다. 먼저 렌즈를 다루는 ‘광학 기술’은 기본이다. 또 렌즈로 읽은 눈의 정보를 데이터로 처리하는 ‘전자 기술’이 따라야 하고, 여러 의료기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기술도 필수다.
게다가 눈을 다루는 의료기기여서 수출하자면 미 FDA(식품의약국)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휴비츠도 자동검안기, 렌즈미터, 리플렉터, 세극등 현미경 등 4개 제품이 FDA 인증을 받았다. 물론 사람이 먹는 식품이나 의약품처럼 절차가 극히 까다롭고 엄격하지는 않지만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추자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업종이다.
전체 임직원이 110명에 불과한 휴비츠는 10년 남짓한 기간에 이 장벽을 어떻게 뛰어넘었을까? 회사의 탄생 배경에 그 실마리가 있다. 휴비츠는 LG산전 중앙연구소 헬스케어(Health care) 개발팀이 그 모태다. LG산전은 1995년 자동검안기를 신사업 품목으로 선정하고 세계 최고 수준인 LG의 전자·반도체 기술진을 개발에 투입했다.
당시 개발팀장이 지금 휴비츠의 김현수 대표다. 2년여의 연구개발 끝에 시제품을 만드는 등 모든 공정이 마무리될 즈음 외환위기가 닥쳤다. 당시 검안기 사업이 수익을 내자면 2~3년은 족히 더 기다려야 했다. LG산전 입장에서는 당장 돈이 안 되는 사업을 접어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1998년 김 대표와 개발팀이 주축이 돼 따로 차린 기업이 휴비츠(창업 당시 회사명은 미래광학)다. 전화위복이라고 외환위기가 오히려 약이 된 측면도 있다. 벤처기업을 장려하던 김대중 정부 시절 운영자금 5억원을 아주 유리한 조건에 빌렸다.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우수 인력을 대거 흡수하는 등 여건도 좋았다.
그래서 창업 첫해 일부 수출도 하고 매출도 올렸다. 하지만 세계 자동검안기 시장은 길게는 70년, 짧게는 3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유럽 기업들의 굳건한 아성이다. 오랜 세월 기술과 운영 노하우도 쌓였다. 검안기를 많이 다뤄본 대한안경사협회 윤영수 부회장은 “검안기 기술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지라 하루아침에 따라잡기 어려운 듯하다”고 말했다.
휴비츠 측도 전자기술이나 네트워크 기술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광학기술에서는 밀린다는 점을 인정한다. 대신 기술의 열세를 가격으로 메웠다. “처음 제품을 만들 때 시장 가격보다 20~30% 낮춰 팔아도 남았다”고 김 대표는 돌이켰다. 자동검안기 시장에 가격 거품이 잔뜩 끼어 있었다는 말이다.
가격 현실화와 함께 독자적인 기술 개발을 통한 원가 절감 노력도 병행했다. 반도체 회로의 집적률을 높이고 기판의 층수도 높여 부품 수를 30~40%가량 줄였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이런 가격 파괴는 휴비츠만의 고유한 마케팅 기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의 시장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휴비츠에 자극 받은 선진국 기업들도 기술 혁신을 통한 가격 인하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자동검안기 시장 가격이 전반적으로 30%가량 내린 것 같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휴비츠가 가격의 흐름을 돌려놓았고 그 이익은 소비자들에게 돌아갔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고도 불황을 모를 정도로 실적이 좋다. 올해 매출을 지난해보다 10% 이상 늘린 350억원으로 잡았지만 지금 추세라면 400억원 돌파도 가능하리라 본다. 이미 상반기에 200억원 가까이 매출을 올렸다. 이 제품이 10~12월에 더 많이 팔리는 점을 감안하면 하반기 실적이 더 좋아진다고 한성일 이사는 전망했다.
물론 환율 덕을 많이 보기도 했지만 지난 10년간 해외 마케팅 파워를 다져온 점도 들어맞았다고 휴비츠 측은 덧붙였다. 요즘 휴비츠는 몸담은 시장이 너무 비좁다고 느낀다. 업계 1, 2위 업체의 이 분야 매출액이 많아야 3000억~4000억원 선에 그치기 때문이다. 훗날 정상에 올라선들 매출의 최대치가 이 정도란 말이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성장을 기약하기 어렵다고 경영진은 고민한다. 그래서 광학현미경 등 광전자 정밀기기 분야로 눈을 돌렸다. 이미 일본인 기술자들을 영입해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지금까지의 제품군이 눈과 관련된 진단기기에 국한됐다면 이제는 눈과 무관한 광학현미경 같은 더 넓은 시장으로 나간다는 구상이다. 이 회사의 승부수가 통할지는 광학현미경 신제품이 나오는 내년 이후 판가름 날 전망이다. ■
“검안기 본고장 일본 시장에도 수출” 김현수 대표 이학박사 출신인 김현수 대표는 안광학 의료기기 국산화의 물꼬를 텄다. 1995년 LG산전 신사업 연구기획팀을 이끌며 자동검안기 개발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추진했다. 지금은 광학현미경 등 신사업 진출을 밀어붙이는 등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더 많이 발휘한다. 1995년 당시 LG 내부에서도 사업에 회의적인 의견이 있었다고 들었다. 자동검안기 사업은 LG라는 대기업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시장 규모가 작았다. 일단 출발은 자동검안기로 하지만 궁극적으론 MRI(자기공명영상)이나 X-레이 같은 고급 의료기기까지 확장한다는 구상으로 윗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때까지 안광학 의료기기 분야에 국내 업체들은 왜 참여하지 않았나? 먼저 중소기업이 손대기에는 벅찬 아이템이다. 대기업이 아니고는 초기 투자와 기술개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미 말했듯이 대기업이 뛰어들기에는 시장이 협소하고…. 그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국내 자동검안기 시장은 일본 제품이 싹쓸이했을지 모른다. 사업의 성공을 확신하기가 쉽지 않은데. 내 전공이 광학이다. 자동검안기는 망막에 반사되는 빛을 전자적으로 분석한다. 전자, 네트워크, 기타 설계 관련 기술에서는 한국도 뒤처지지 않는다. 그래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매달리면 일본을 능가하지는 못해도 성능을 갖춘 제품 개발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첫 제품을 만들 때 국내 시장 판매에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는? 이학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또 LG에서 신사업 연구기획팀에서 관련 업계를 많이 접했었다. 국내 시장은 우리 기술과 제품에 너무 냉담했다. 내가 만드는 자동검안기를 국내에서 파는 것은 난센스에 가까웠다. 그래서 해외 시장을 먼저 두드렸다. 가장 큰 고비는? 초창기 미국에 처음 납품한 자동검안기에 하자가 발생했다. 직원의 절반을 미국에 보내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주력할 정도로 심각했다. 미국 시장에서 무너지면 비전이 없다고 봤기에 사운을 걸다시피 했다. 검안기에 들어가는 부품 500개를 어떻게 조달하나? 우리는 주요 부품의 설계만 전담하고 하드웨어는 10여 개에 달하는 협력사에 제작을 의뢰한다. 휴비츠는 협력사에서 보내온 부품을 조립하고 성능을 검사해 해외에 판매한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연구개발과 마케팅 전문 기업인 셈이다. 기술의 특징을 든다면? 고급 기술이면서 기술 자체가 혁신적으로 발전하진 않는다. 제품을 이해하고 만들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새로운 요소를 가미해 차별화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우리 제품은 성능에서 뒤지지 않았지만 인지도가 떨어졌다. 그래서 가격을 낮추고 산뜻하고 멋진 디자인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주요 선진국 중에서 어느 쪽 시장 공략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나? 유럽이다. 유럽인들은 사고가 합리적이고 유연하다. 제품의 성능과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브랜드가 낯설어도 쉽게 받아들인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휴비츠가 일본 시장에 상륙한다는데. 일본 시장은 우리 제품이 뚫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일본 시장은 가격보다는 성능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소비자들이 불경기를 타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인다. 일본 내 2위 업체가 가격을 지렛대 삼아 1위 업체를 맹렬히 추격하는 현실만 봐도 안다. 가격 경쟁이라면 우리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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