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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이 춤추면 경제도 덩달아 춤춘다

수달이 춤추면 경제도 덩달아 춤춘다

‘물의 나라’ 화천엔 휴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유일한 육상 동물이 산다. 천연기념물 제330호 수달이다. 수달은 남북평화의 메신저다. 휴전선을 오가면서 평화 DNA를 전한다. 수달이 춤추면 남북평화의 싹이 튼다. 침체에 빠진 화천 경제도 덩달아 어깨춤을 출 것이다. ‘DMZ는 살아 있었네’ 화천 경제편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로 북한강이 출렁인다. 학 한 마리가 연방 잔 날갯짓을 하며 절벽과 강 사이를 오르내린다. 북한강의 그윽한 소리와 어울리며 장관을 연출한다. 절벽과 강이 펼쳐 놓은 비경이다. DMZ 최전방 강원도 화천은 신이 선물한 자연을 그대로 품고 있다.

이곳은 ‘물의 나라’로 유명하다. 금강군 만폭동에서 용솟음친 북한강이 화천 파로호로 이어진다. 아쉬운 점은 이 물이 북한강 본류가 아니라는 것. 휴전선 북쪽에 건설된 임남댐이 본류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물은 20만㎾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사용된 뒤 동해로 쓸쓸하게 빠져나간다.

남북 분단이 사람의 왕래는 물론 물의 흐름까지 끊어 놓은 것이다. 이데올로기 갈등이 초래한 뼈저린 아픔이다. 물만 막은 게 아니다. 북한강 최상류 화천 오작교 밑엔 수중 저지선이 깔려 있다. 가로 15㎝, 세로 10㎝ 구멍이 촘촘히 박혀 있는 저지선이다. 그래서 작은 물고기를 제외하곤 어떤 육상동물도 이곳을 통과하기 어렵다.

목숨을 담보로 내놓지 않는 한 말이다. 학계에서 “한국전쟁 이후 남북 육상동물의 DNA가 달라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이념 갈등은 생태계까지 변질시키고 있다. 그런데 육상동물 중 유일하게 남북을 왕래하는 것이 있다. 특유의 유연함으로 수중 저지선을 돌파하는 동물, 바로 수달이다.

화천에서 수달을 남북평화의 상징으로 치켜세우는 까닭이다. 천연기념물인 수달을 보호하기 위한 군(郡)의 노력이 남다르다. 2007년 화천군과 남북한 연구기관은 수달 보호를 위한 공동조사 연구협약을 체결했다.

북한 국적의 정종렬 조선대 교수는 “금수강산에 서식하는 동물은 한 종도 멸종해선 안 된다”며 “수달 공동연구 협약은 한반도가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거듭나는 초석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화천군은 ‘비무장 지대 수달 계획’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모두 99억3100만원을 투입해 수달연구센터와 생태공원을 건설하고 있다.

2010년 12월 완공할 계획이다. 여기엔 야생동물의 표본전시실·연구센터실 등이 들어선다. 물의 나라 화천엔 이처럼 수달이 살고, 수달은 허리가 두 동강난 남북을 오가며 희망의 싹을 틔운다. 하지만 화천 경제는 아직 희망의 끝자락마저 보이지 않는 어두침침한 터널을 지나고 있다.


‘물의 나라’ 화천 막아선 휴전선


산천어 축제 광고판 : 겨울에 열리는 화천의 산천어 축제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축제다. 사진은 이를 홍보하기 위한 벽화. ⓒ이상엽
“하늘에서 돈이 내립니까? 물 팔면 돈이 나옵니까?” 조그만 밭을 일구던 군민은 회한을 쏟아냈다. “여기는 성장 시계가 멈춘 곳 같습니다. 오죽하면 젊은이는 없고, 노인만 남아 있을 정도죠.”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선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화천도 예외일 수 없다.

군의 자연환경보존지역은 전체 면적 909㎢의 4.5%(41㎢), 수질환경보호법상 청정지역은 68%(618㎢)를 차지한다. 접경지역인 탓에 군사시설보호구역도 685㎢에 이른다. 이 때문인지 상업거리, 공장지대도 눈에 띄지 않는다. 군의 상·공업지대는 각각 0.3㎢, 0.03㎢에 불과하다.

화천의 지역개발사업이 그만큼 더디다는 얘기다. 군의 살림살이 역시 썩 좋지 않다. 연 재정규모는 2000억원을 밑돌고, 재정자립도는 13%에 불과하다. 강원도 평균의 28% 선이다. 그러나 역으로 보면 이것이 화천의 또 다른 기회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청정 자연을 지켜온 덕분에 화천엔 볼거리가 넘친다.

자연스럽게 생긴 원시림은 이 군의 자랑거리. 광덕계곡을 따라 크고 작은 바위가 밀집한 것도 관광자원으로 충분해 보인다. 계성리 석등(보물 496호), 위라리 7층석탑(유형문화재 30호), 성불사지 석불입상(유형문화재 115호) 등 문화재도 적지 않다.

더구나 화천은 접경 지역. 평화의 댐, 인민군 막사, 비목공원, 칠성 전망대 등 역사·안보 관련 문화 자원이 풍부하다. 화천에 연 150만 명을 훌쩍 넘는 관광객이 붐비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화천이 추진하는 ‘친환경 DMZ 개발계획’도 그래서 주목된다. 대표적 사업은 자전거 코스 조성 계획이다.

군은 지난해 DMZ MTB 자전거 전국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올해엔 화천읍~풍산리~평화의 종 공원~안동철교 구간을 추가로 만들 방침이다. 화천강변 100리 길 레저 자전거 코스도 조성하고 있다. 북한강 일대를 잇는 이 코스는 전국 최고의 강변 자전거 코스로 계획돼 있다.

군 관계자는 “화천강변 100리 길 코스는 친환경적으로 개발되고 있다”며 “완성된다면 전국 최고의 자전거 레저 코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희망과 절망 공존하는 화천 경제


이뿐만 아니다. 파로호∼평화의 댐∼백암산을 연결하는 평화생태특구 조성사업도 눈길을 끈다. 이는 2012년까지 화천읍 풍산리와 파로호 일대 7만3156㎡에 세계 유일의 DMZ 평화·생태 관광지를 조성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34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이 특구는 ‘파로호권 관광벨트’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파로호 선착장→평화의 댐 일원(세계평화의 종 공원·국제평화아트파크)→ 평화생태특구(평화안보파크·생태관찰학습원)를 거쳐, 곤돌라를 타고 백암산 정상 전망대에 올라 DMZ를 바라보는 패키지 관광이 가능해진다.


한반도 넘어 글로벌 생태공원 부상 가능

특히 생태관찰학습원엔 최상류 습지의 다양한 생태자원을 체험할 수 있는 야생 사파리가 조성될 계획이다. 화천군은 2012년 평화생태특구 조성이 완료되면 연 35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생산 및 소득 유발액은 각각 400억원, 96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군 관계자는 “평화생태특구와 세계평화의 종 공원, 백암산 전망대(예정), 파로호 관광지를 연계한 색다른 평화·생태 관광지를 만들고 있다”며 “어떤 대규모 관광지보다 지역 이미지 개선은 물론 경제적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역시 군-군(郡-軍)의 유기적 협조체계다.

화천 평화생태특구가 민통선 안에 조성될 계획이기 때문. 아무래도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의 적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군(軍) 측은 안보상 문제만 없다면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화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군(郡)과 더욱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칠성 전망대에 있는 한 소초. 위쪽으론 적근산·백암산 자락이 펼쳐져 있고, 아래론 금성천이 숨죽인 듯 흐른다. 고요함을 넘어 적막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초병은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금성천의 수심이 연중 도강할 수 있을 정도로 얕기 때문이다. 고요 속 긴장이라는 말이 꼭 맞아떨어진다.

“보름 후면 제대한다(7월 초 당시)”는 한 초병은 “이곳에 서 있으면 시간이 정지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도 지금쯤 군복을 벗었을 게다. 그렇다. 화천의 시계추는 멈춘 적 없다.

소리 없이 움직여서 정지한 듯 느껴질 뿐이다. 화천 경제도 마찬가지다. 언뜻 보면 성장이 멈춘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성장 잠재력은 어느 지역보다 크다. 관건은 역시 남북 평화다. 수달처럼 사람이 남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바로 그날, 화천은 한반도 생태공원으로 부상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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