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역설 건강학
뚱보 역설 건강학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 6월 말 LEAN Works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뚱뚱한 사람의 고용에 따르는 의료 비용 관련 정보를 기업인들에게 제공하고 비만을 예방하고 제어하는 방법을 알리려는 목적이다.
이 사이트는 ‘비만 비용 계산기’를 사용해 비만의 기준이 되는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인 사람을 고용하는 데 추가되는 비용을 계산해 준다.
고용주가 회사의 업종과 위치, 직원들의 BMI, 임금과 수당 등을 입력하면 “의료 비용과 비만에 따른 결근의 달러 환산 가치”가 계산돼 나온다. 공식 기준에 따라 비만으로 분류되는 미국인은 7200만 명이나 된다.
그 많은 이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수단이 과학적으로 정당할까? CDC의 영양, 육체 활동, 비만 부서의 책임자 윌리엄 디츠 박사는 그 사이트가 포괄적인 비만과의 전쟁에서 유용한 한 가지 무기가 된다고 항변했다.
“우리는 유행병처럼 번지는 비만이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며, 심각한 의학적 비용을 발생시킨다고 파악한다”고 디츠는 말했다. “최선의 증거가 나오기를 마냥 기다릴 순 없다고 판단됐다. 그래서 기존의 가장 유력한 증거에 입각해 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들은 BMI가 ‘비만 유행병’의 두려움을 부채질할 뿐이라고 본다.
개인 건강을 측정하는 신뢰할 만한 도구가 아니라는 뜻이다. 콜로라도대 법학 교수 폴 캄포스는 “BMI 때문에 멀쩡한 사람들이 졸지에 뚱보로 분류됐다”고 말했다. “그게 진정한 유행병이다.” 미국 심장협회(AHA)는 비만을 심장병의 주요 위험 인자로 규정한다.
혈압을 올리고,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면서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그 자체가 심장병의 위험 인자인 당뇨 발병의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만은 암, 천식, 수면 무호흡증 등 다양한 건강 문제와 연관이 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비만 유행병이 실제로 있는지, 뚱뚱한 사람이 정상 체중인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더 큰지, 또는 체중 감량이 과연 달성 가능한 목표인지는 전혀 확실치 않다.
비만 유행병을 이야기할 때는 그 수치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야 한다. CDC를 포함해 공공기관의 비만도 평가의 대부분은 BMI를 사용한다. 키와 몸무게를 사용하는 계산법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계산법은 체중(kg)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다. BMI가 18.5 미만이면 저체중, 18.5~24.9는 정상, 25~29.9는 과체중, 30 이상은 비만으로 분류된다.
BMI 계산법은 터무니없는 경우가 있다. 1970년대에 미국인들의 평균 BMI는 24였다. 지금은 27이다. 3포인트 차이일 뿐이다. 키가 같은 데도 몸무게 때문에 BMI가 한 사람은 24이고 다른 한 사람은 27이라면 27인 쪽이 과체중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1995년 BMI 25 이상을 과체중으로 규정했다. 건강 위험성이 높다는 증거 때문이었다.
그에 따라 평균적인 미국인이 모두 그 부류에 들게 됐다. 미국인 66%가 순식간에 과체중이 됐다. 캄포스는 일반인들이 BMI의 정확한 이해 없이 그 놀라운 통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 결과 비만 유행병의 두려움이 불필요하게 커졌다. CDC가 미국인의 3분의 1이 비만이라고 선언했을 때 그 결과는 오명과 공포의 혼합물이었다.
캄포스가 지적하듯이 비만이 “병리 용어”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비만이 질병이라는 주장은 전혀 확정적이지 않으며 과장됐다. “비만이 건강 위기를 부른다는 주장은 체중 증가가 공중 보건에 제기하는 위협보다는 문화적 정치적 요인들 때문에 더 많이 부추겨진다.”
미국인의 비만 인구가 1980년 이후 두 배로 늘었지만 성인의 비만율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특히 2003년에서 2006년(CDC가 성인 관련 데이터를 확보한 마지막 해) 사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지난달 CDC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층 취학 전 어린이들(비만 공포의 초점 중 하나다)의 비만율이 2003년에서 2008년 사이 약 15%에 머물렀다. 시카고대 공중보건학 교수 S 제이 올샌스키는 이런 높은 BMI 수준의 안정화가 좋은 조짐이 아니라고 말했다. “더 이상 나빠질 여지가 없기 때문에 악화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CDC 산하 국립보건통계센터(NCHS)의 조사 결과는 성인으로서 과체중이거나 다소 비만인 상태가 사망률을 높인다는 증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를 말해준다. “우리의 추정에 따르면 과체중(BMI 25~29.9)인 사람들의 경우 전반적으로 사망률이 약간 낮다”고 그 조사를 지휘한 CDC 연구원 캐서린 플레걸이 말했다.
서로 다른 BMI 범주에 드는 사람들의 수명을 비교한 결과 다소 비만으로 간주되는 사람의 사망률이 정상 체중인 사람보다 조금 높았다. 하지만 저체중인 사람보다는 높지 않았다. 지난 8월 미국 외과학회지 애널스 오브 서저리에 발표된 한 논문도 이런 ‘비만의 역설(obesity paradox)’을 뒷받침했다.
비만과 관련없는 일반 수술을 받은 환자 10만 명 이상을 조사한 이 연구에서 과체중이나 다소 비만인 환자들의 사망률이 정상 체중의 환자들보다 15~27% 낮았다. 논문 공동 집필자 중 한 명인 도널드 무어먼 박사(보스턴 베스 이스라엘 디코네스 메디컬 센터)는 과잉 체중에 저장된 단백질이 치유 과정에서 공급됐다고 추정했다.
“이 그룹의 낮은 사망률은 영양분이 고갈되지 않아서 치유 인자들이 훨씬 양호한 상태였기 때문인 듯하다.” 다른 연구들은 환자들이 심장이나 신장 장애로 응급치료를 받을 때 과잉 체중이 반드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2008년 덴마크에서 실시된 한 연구에 따르면 BMI 기준으로 과체중과 다소 비만의 범주에 속하는 환자들이 심장 이상으로 집중치료를 받았을 때 정상 체중 환자들보다 사망률이 높지 않았으며 저체중 환자들보다는 경과가 훨씬 좋았다. 이런 직관에 반하는 결과는 저체중이 건강 악화의 표시인 경우가 많고 뚱뚱한 사람이 체내에 저장한 영양분이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런 모호함의 와중에도 한가지 변하지 않는 요소가 있다. 다이어트와 체중 감량에 매달리는 미국인들의 집착이다. 다이어트가 전혀 효과가 없다는 점이 확실한데도 그렇다. 2007년 캘리포니아대(LA)의 트레이시 만 교수는 심리학과 학생들과 함께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체중을 얼마나 잘 유지하는지 조사했다.
그들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수만 명 포함된 31건의 장기 연구 결과를 분석했다. 그중 한 연구에서는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의 83%가 2년 만에 옛날 체중으로 돌아갔다. 검토된 연구 논문들이 대개 그런 결과를 나타냈다. 5년 뒤에는 아주 희귀한 경우만 감량한 체중이 그대로 유지됐다.
“어떤 다이어트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고 만은 말했다. “얼마 동안은 전부 효과가 있지만 그 다음은 전부 실패한다.” 전문가들은 그런 실패의 주된 원인을 미국의 기름진 음식 문화에서 찾는다. 캐나다 앨버타대 비만 연구관리 센터의 애리어 샤르마 박사는 어디를 가나 기름진 음식을 쉽게 만나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비만을 관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장기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고 대신 수년간 찌운 살을 단 몇 달 안에 빼려고 한다. 결국 요요 현상이 생긴다. 체중 증감이 반복되면 건강에 나쁠 뿐 아니라 사망률이 비만이라도 같은 체중을 유지하는 사람보다 높아진다. “체중 감량 권고 중 많은 부분이 비윤리적”이라고 샤르마가 말했다.
“사람들이 몸무게를 줄여 유지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현실인 데도 계속 줄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 그러나 CDC 같은 기관들은 체중 감량이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본다. CDC의 LEAN Works 웹사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체중과 관련된 결과(몸무게, BMI, 체지방, 허리 둘레, 허리-엉덩이 둘레비)를 개선하고 과체중 또는 비만인 직원을 줄이는 바람직한 프로그램을 고용주들이 도입해야 한다.”
그 ‘바람직한 프로그램’의 한 가지 예가 ‘체중 감량 경연대회’다. CDC의 직장 비만예방 프로그램들을 조사한 코넬대의 한 연구는 이런 프로그램들의 성공 확률이 매우 낮으며 대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 연구를 지휘한 경제학자 존 콜리는 “이런 개입은 마약 중독 치료보다 효과가 더 떨어진다”고 말했다.
다이어트의 문제는 체중 감량이라는 지극히 어려운 목표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그보다 유망한 새로운 방법은 초점을 체중 감량에서 건강 전반으로 옮긴다. ‘체중 불문 건강 증진법(Healthy at Every Size: HAES)’으로 불린다. 캘리포니아대(데이비스)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린다 베이컨은 2005년부터 2년 동안 비만 여성 두 그룹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한 그룹은 표준 다이어트를 실시했다. 음식량을 제한하고 지방 함유량과 칼로리를 계산하는 법을 배웠다. 다른 그룹은 HAES의 개념에 따라 훈련을 받았다. HAES 그룹은 체중과 자존심을 구분하는 법을 배웠고, 신체 내부가 보내는 신호에 따라 식사를 했다. 그들은 어떤 음식이 체중이 아니라 전반적인 건강에 이로운지 배웠고, 하기에 편안한 신체 활동을 하도록 요구 받았다.
전통적인 다이어트 그룹에선 거의 절반이 중도 하차했다. HAES 그룹은 92%가 프로그램을 완료했다. HAES 그룹은 24개월 내내 체중을 유지했다. 반면 전통 다이어트 그룹은 처음에는 평균 체중이 줄었다가 얼마 후 원래로 돌아갔다.
특히 연구 기간 동안 양쪽 그룹 모두 수축기 혈압(최고 혈압)과 나쁜 콜레스테롤(LDL) 수치가 내려갔지만 HAES 그룹은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낮은 수치가 그대로 유지됐다. 그들이 살이 빠졌다가 다시 찐 여성들보다 건강 증진의 목표에 훨씬 가까이 다가갔다는 뜻이다.
베이컨은 자신이 펴낸 책 ‘몸무게의 놀라운 진실(Health at Every Size: The Surprising Truth About Your Weight)’에서 이렇게 말했다. “체중 감량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의미다. 체중 감량이 아니라 건강의 전반적인 상황을 개선할 목적으로 선택하는 생활방식은 오랫동안 유지된다.”
물론 미국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뚱뚱하다. 그리고 과체중은 건강에 좋지 않다. 하지만 비만 유행병을 과장하고 배가 나온 사람을 낙인 찍어도 미국인들의 체중은 줄지 않았고 전반적인 건강이 더 나아지지도 않았다. 체중보다는 건강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법을 빨리 배울수록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비만 관련 질병들을 더 빨리 극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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