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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모자란다! 은퇴 늦추고 다시 일터로

손이 모자란다! 은퇴 늦추고 다시 일터로

▎2007년 아베 전 일본 총리(사진 맨 오른쪽)가 고령자 고용촉진 사업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70대 안팎의 고령자들이 비지땀을 흘리면서 제품을 운반하고 있다.

▎2007년 아베 전 일본 총리(사진 맨 오른쪽)가 고령자 고용촉진 사업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70대 안팎의 고령자들이 비지땀을 흘리면서 제품을 운반하고 있다.

#도쿄 스미다(墨田)구의 재단법인 공업소유권협력센터. 100여 대의 컴퓨터 앞에 앉은 직원들의 평균연령은 60.5세다. 1985년 설립된 이 센터는 특허청 심사관의 일부 업무를 대행하는 기관으로, 개별 특허출원이 나오면 과거 유사한 발명이 있었는지를 조사하는 곳이다.

현재 1500명 정도의 조사원이 일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기업에서 정년퇴직한 사람들이다. 센터의 오카마쓰 소사부로 이사장은 “정년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퇴사한 많은 사람의 능력을 일본의 지적재산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센터 규정으로는 65세까지 고용하도록 돼 있지만 건강 등이 허락하면 69세까지 일할 수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 3분의 2가 65세를 넘겨서도 계속 근무하고 있다. 2007년부터는 71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연령제한을 완화했다.

#2008년 37년간 근무하던 공기업에서 정년퇴직한 이이다 후미오(62)는 퇴직금으로 승용차와 46인치 디지털TV를 구입했다. 그는 “바쁜 직장일 때문에 집안일은 물론, 아이들 교육을 도맡아 해온 아내와 자동차 여행을 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년 된 자동차를 새 차로 바꿨다”고 말했다.

2010년 시작하는 디지털 방송에 맞춰 30만 엔이 넘는 대형 스크린 TV도 장만했다. 과거 일본 고도성장기의 주역인 단카이(團塊)세대(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의 특징은 고가품도 자신 있게 구입하고 해외여행을 즐기는 등 자신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 일본의 전후 베이비붐 세대는 이렇듯 노동과 소비환경은 물론, 전체 일본 사회를 이끄는 거대한 집단이다.

2차대전 패전 직후인 1947∼49년 태어난 이들에게는 다른 해에 비해 수적으로 월등히 많아 큰 덩어리라는 뜻의 ‘단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단카이 세대는 약 680만 명, 일본 인구의 5.4%에 달한다. 이들이 일제히 정년퇴직을 맞은 2007년에는 ‘2007년 문제’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정부와 기업은 이들의 집단 퇴직에 따른 문제를 막기 위해 2004년 ‘고령사회 대책 기본법’을 제정, 정년을 연장하는 등 적극 대응함으로써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했다.



퇴직한 선배 기술을 후배에게 전수하려는 시도일본 정부는 특히 2006년 4월부터 기업이 ▶65세까지 정년 연장 ▶정년제 임의선택(종업원이 자신의 정년 시기를 선택) ▶계속고용제도(퇴직 후 재고용이나 근무연장제도) 중 한 가지를 도입하도록 의무화하는 ‘개정고령자고용안정법’을 마련, 시행했다. 그 결과 60세 이상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은 2004년 50.5%에서 2008년 59.4%로 늘어났다.

정부는 물론 학교와 기업에서는 단카이 세대의 퇴직 후 공백을 메우기 위해 퇴직자들을 다시 노동현장으로 불러들이는 제도를 마련했다. 경제산업성의 경우 각 지방에 필요한 기능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단카이 세대와 공업고교를 연계하는 사업도 벌였다. 아직도 건강한 퇴직자들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이들이 가진 기술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에서 단카이 세대의 정년은 고용환경을 크게 변화시켰다. 총무성의 ‘노동력 조사’와 후생노동성의 ‘고용정책연구회’ 추산에 따르면 1990년 730만 명이던 60세 이상 노동인구는 2007년 1000만 명을 웃돌았다. 2030년에는 1270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전체 노동인구에서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도 1990년 11.5%에서 2030년에는 20.6%로 거의 2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 기업들도 단카이 세대 활용을 위한 제도 마련을 서둘렀다. 미쓰비시상사는 고령인재를 필요로 하는 직장과 정년퇴직자 사이를 연결하는 인사 전문부서를 설치했다.

2006년 4월 개정 고령자고용안정법 시행에 맞춰 미쓰비시상사는 고용연장제도를 도입했다. ‘65세 코스’로 명명된 이 제도는 정년퇴직 후에도 일하고 싶어 하는 사원들을 일단 퇴직시킨 뒤 다시 고용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특징은 미쓰비시상사 소속이지만 이 회사뿐 아니라 다른 직장에서도 일할 수 있다.

타사에서 일할 경우에는 출장근무 혹은 업무위탁 형태로 이뤄진다. 2000년대 호황기에 퇴직한 이들은 비교적 새로운 일자리 혹은 기존 직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단카이 세대의 집단 정년퇴직으로 인한 경제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거액의 퇴직금과 연금으로 무장한 이들은 일본 최대의 소비그룹이기도 하다.

이들이 받은 퇴직금 규모는 53조4000억 엔으로, 일본 정부의 한 해 세입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이들의 자산 규모도 총 130조 엔에 달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또 단카이 세대를 포함해 50세 이상 중장년층은 개인 금융자산의 4분의 3을 보유하고 있다. 단카이 세대는 이처럼 막대한 돈을 갖고 일본의 소비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백화점과 기업들은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맞은 단카이 세대를 겨냥한 상품들을 잇달아 내놨다. 가뜩이나 저출산으로 고전하던 완구업체들도 중장년층을 위한 오락물 생산에 돌입하기도 했다. 다카시마야(高島屋) 백화점은 지난해 단카이 세대를 겨냥한 인터넷 쇼핑몰 ‘넥스트 스테이지’를 개설했다.

주부 층을 겨냥했던 그간의 인터넷 쇼핑몰에서 벗어나 60세 이상 고령 남성들의 관심을 끌 만한 상품들을 모아놓은 게 특징이다. 어린이들의 놀이동산인 도쿄 디즈니랜드는 개장 25주년을 맞은 2008년부터 60세 이상 고령자들의 자유이용권을 22% 할인하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입장객 감소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책이다.

놀이기구 외에 공원 내 미관을 아름답게 하고 산책길을 늘리는 등 장년층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가족고객을 공략하다가 실버 마케팅으로 전환한 것은 전 세계 디즈니랜드 가운데 도쿄가 처음이다.



단카이 세대, 소비의 중심축 부상가전 업체들도 노년층을 위한 음향기기 코너를 별도로 설치하는 등 고가물품들을 중심으로 단카이 세대를 공략하고 있다. 최근에는 불황으로 젊은 층이 극도로 소비를 자제하는 가운데 여행과 골프, 스키 등 레저업계를 단카이 세대가 이끌고 있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저가의 국내여행은 물론 쇼팽 탄생 200주년 기념 동유럽 일주 여행, 아프리카 대지에서 석양 즐기기, 이집트 피라미드 탐방 등 일본 여행상품에선 체험하기 힘든 장기 체류형 여행상품도 모두 중장년층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디플레이션을 선언하는 등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조짐을 보이자 단카이 세대도 잔뜩 경계하고 있다. 퇴직금으로 투자한 주식이 금융위기로 폭락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일본항공(JAL) 같은 대기업들도 경영악화로 퇴직자들의 연금까지 30%씩 삭감해야 할 처지다. 이 때문에 최근 단카이 세대를 위한 금융상담 창구가 늘어났다.

미국계 피델리티투신은 원금 손실을 꺼리는 퇴직 세대의 속성을 감안해 원금을 보장하면서 수시로 인출이 가능한 퇴직금활용펀드를 내놓는가 하면 노무라 자산관리회사는 단카이 세대를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투자유치설명회에 파견하는 직원을 두 배로 늘렸다. 시중은행들도 단카이 세대만을 위한 ‘프리미엄 살롱’ 등 상담실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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