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말 들었다고 엄마가 혼내는 꼴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에 행정지도를 내리는 부처나 당국을 대상으로 카르텔 관련 판례 정보를 제공하고 업무 설명회를 하기로 했다.”지난해 말 한 경제신문은 공정위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려 이같이 보도했다. 감독 부처의 행정지도를 따른 기업에 대해 공정위가 담합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에 논란이 일자 나온 보도였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얼마 전 정부 장관급 회의에서 처음으로 행정지도에 대한 안건을 다뤘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7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위기관리 대책회의를 두고 한 말이다. 이날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은 “정부 부처가 행정지도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정부가 담합을 유발하거나 가격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 현실 모르는 공정위이게 전부다. 국세청, 금융감독원, 방송통신위원회, 지식경제부 등에 공정위가 관련 정보를 제공했거나 설명회를 연 적은 현재까지 없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세세한 프로그램은 추진 중”이라고만 했다. 하지만 그럴 의향은 없어 보인다. 당시 정 위원장의 발언은 공정위가 한결같이 지켜온 원칙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그동안 정부 부처의 행정지도에 따른 담합 논란이 일 때마다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공정위와 각 부처가 긴밀히 협조해 사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실제로 그런 척(?)했던 움직임이 있었다. 2007년 공정위와 금감위는 행정지도와 관련해 업무협약을 맺은 적이 있다.
행정지도 범위 내에서는 담합 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과 양 기관이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진행 여부를 사전에 문의하고 함께 조율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 협약은 사실상 흐지부지됐다. 이와 관련, 지난해 10월 공정위 국정감사 때 정호열 위원장과 이진복 한나라당 의원이 나눈 대화를 잠시 보자.
정 위원장 : 보험회사나 은행에 대해 공정거래법 집행과 관련해서는 중복 규제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문제를 줄이기 위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의원 : MOU도 사실은 이행이 잘 안 되잖아요.
정 위원장 : 예,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이 의원 : 공정위하고 그런 기관들이 같이 일하기를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 제가 법안 심사를 하다가 “공정위하고 의견을 나누었습니까? 협의를 했습니까?”라고 물으면 금융위가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압니까? “저희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답변해요.
공정위는 공정위대로, 감독 부처는 그들대로 한 치의 양보가 없다. 행정지도에 따른 담합 조사를 공정위가 관련 부처와 사전 협의하는 문제에 대해 공정위의 송상민 카르텔총괄 과장은 “조사 자체를 사전에 알릴 수 없고 행정지도 부처가 그렇게 요구할 수도 없다”며 “조사는 공정위 고유의 업무이고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공정위 입장은 명확하다. 정호열 위원장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행정지도에 따른 담합 논란이 시작된 것이 15년 정도 됐는데, 이 문제는 상당히 복잡한 함의가 있다”면서도 “공정위는 행정지도에 따른 담합과 관련해 심사 지침이 마련돼 있고, 순수하게 행정지도 범위 내에서 행한 사업자들 사이의 합의에 대해서는 제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송상민 과장은 “행정지도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전후에 사업자 간 별도 합의가 있었느냐는 팩트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규제 분위기에서 정부 당국자가 행정지도를 했다 하더라도 사업자가 독자적으로 판단하면 되는 일”이라고 밝혔다.
쉽게 말해 공무원이 행정지도를 해도 기업이 무시하거나, 독자적으로 판단하거나, 모여서 협의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공정위의 이런 태도는 기업 현실을 모르거나 애써 외면한 결과다. 다음 사례를 보자.
모호한 담합 판결
▎2008년 공정위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공정위의 한 간부가 선진 시장경제의 원년을 열겠다`는 내용이 적힌 대통령 업무보고 문서에 대통령의 발언을 기록하고 있다.
공정위에 코를 꿰이면 향후 계속 밀리게 된다. 그러니 화끈하게 대응해라. 만약 생보사가 이번 공정위 의견을 수렴한다면 향후 모든 상품 인가를 거부하겠다.
공정위 대응 시 법률 대리인은 동일인으로 하는 방법도 검토해 보라. 그리고 친(親)공정위 법률법인인 ○○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쓰지 마라.”
지난해 6월 금감원 팀장이 보험회사 상품팀장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지시했다고 전해졌다. 지난해 4월 공정위가 실손의료보험의 약관 불공정 여부를 검토하면서 26개 생명·손해보험사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금감원에서 대응책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이다. 이 내용은 이진복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폭로했다.
당시 사실관계가 불분명해 일부 언론만 이 의원의 발언을 전하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해 이 의원실 관계자는 “국감 직후 금감원 고위급이 찾아와 해명하면서 사실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문제가 된 내용은 금감원 팀장이 주재한 모임에 참석했던 한 보험사 팀장이 회사 내부 보고용으로 제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이 금감원과 기업의 관계다. 이런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감안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카르텔을 총괄하는 과장은 “누가 사람들을 불러모아 무슨 얘기를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담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법률적, 기술적으로 따질 뿐”이라고 했다.
공정위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공정위는 기업에 과징금을 세게 물리면 “무리한 조사”라는 비난을 받고, 여러 사안을 감안해 법 적용을 약하게 하면 “솜방이 처벌”이라는 욕을 먹는다. 공정위는 행정지도에 따른 담합에 관한 한 일관된 원칙을 지켜왔다.
행정지도는 법률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이 따를 의무가 없고, 설령 합리적 행정지도라 할지라도 해당 기업들이 모의나 협의를 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판단해 따르면 제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행정지도에 따른 결과가 사안마다 모호하고, 동시에 강제성을 갖는다는 데 있다.
행정기관은 행정지도를 통해 기업에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없다. 원칙적으로는 기업이 따를 의무도 없다. 하지만 각종 인허가권을 가지고, 기업의 손익에 영향을 미치는 행정기관의 지도를 피규제자인 기업이 거스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계속 문제가 되는 주류, 보험, 통신, 에너지 업계의 경우 사실상 각 소관 부처가 기업의 생살여탈권을 갖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정위는 이런 현실은 ‘논외’로 친다. 가령 특정 부처가 가격 인상을 5% 이내로 하라고 행정지도를 내린 경우 업계가 사전에 합의해 대응했건, 지도 후에 합의를 통해 일괄적으로 올렸건, 특정 업체가 올리는 것을 보고 동조했건, 묵시적으로 합의했건 모두 담합이 된다. 법원의 판결 역시 공정위 입장과 유사한 경우가 많다.
행정지도 후 담합 혐의가 모호한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0년 초 맥주회사 담합 사건이다. 당시 국내 맥주 3사는 국세청의 행정지도에 따라 공장 출고가격을 인상했다. 공정위는 이를 담합으로 보고 과징금을 물렸고, 사건은 법원으로 갔다. 2003년 대법원 판결은 이랬다.
“맥주 회사들이 유사한 시기에 유사한 비율로 가격을 인상한 행위가 문제됐으나 맥주회사의 가격 인상은 국세청의 행정지도를 받게 돼 있는데, 재경부와 국세청이 맥주 제조사들의 가격 인상 요구에 훨씬 미달하는 인상률만을 허용함으로써 허용된 인상률 전부를 가격 인상에 반영할 경우 인상률이 유사해질 수밖에 없고 맥주 시장의 과점적 시장 구조에서 가격 추종적 행태, 유통 구조 등을 고려해 부당한 공동행위로 인정할 수 없다.”
물론 업계가 행정지도에 따른 불가피한 담합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에서 패소한 경우가 더 많다. 2005년 KT와 하나로텔레콤이 정보통신부 행정지도를 받아 가격과 시장점유율을 담합해 조정했다는 이유로 공정위는 양사에 1152억원의 과징금을 매겼다. 법원은 양사 간 합의가 있었다며 공정위 손을 들어줬다.
과징금 폭탄에 우는 기업행정지도의 결과로 담합이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기술적, 법률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는 공정위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이런 사안의 경우 공정위가 무작정 조사해 과징금을 부과하고 기업 이름을 공표하기에 앞서 더욱 신중해 달라는 것이 재계의 바람이다. 설령 기업이 공정위의 결정에 불복해 소송에서 이긴다 해도 이미 기업은 비용과 시간과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뒤다.
공정위가 그간 무리한 기업 조사를 해 왔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에 따르면 2004년부터 5년간 공정위가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은 1조5000억원이다. 같은 기간에 공정위가 과징금을 잘못 부과해 기업에 돌려주거나 감면해 준 돈은 3300억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잘못된 과징금을 돌려줄 때는 환급가산금이라는 것이 붙는다. 법원 판결 등의 이유로 과징금을 돌려줄 경우 과징금을 납부한 날부터 환급한 날까지 날짜를 계산해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요율은 현재 5.52%). 이 환급가산금으로만 나간 돈이 2004~2008년에만 730억원이다. 국민 세금이 낭비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결과와 상관없이 ‘담합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문제는 또 있다. 공정위의 ‘과징금 폭탄’에 기업이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내는 사례가 늘면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공정위는 행정소송 비용으로 28억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소송 착수금만 20억원이었다.
“공정위가 마구잡이로 기업에 과징금을 매겼다가 가산금과 기업의 법률대리인 비용까지 돌려주는 것은 재량권을 남용해 신뢰를 잃고 있다(고승덕 한나라당 의원)”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정호열 위원장이 말했듯이 행정지도에 따른 담합 논란은 15년간 이어진 난제다. 그런 만큼 해법도 많이 제시됐다.
공정위가 2007년 용역 발주해 이봉의 서울대 교수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현실적으로 규제산업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행정지도는 개념상 비권력적 행정 행위이나 실제는 구속력이 강한 경우가 많고, 그에 따른 카르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초 불합리한 산업 규제를 개선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개별 산업에 대한 이해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백용호 국세청장은 소주 값 담합에 대한 과징금 부과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2월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기본적으로 가격과 관련해서는 행정지도가 최소화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앞으로 국세청이 소주 가격과 관련해 담합으로 오인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털겠다”고 말했다.
윤증현 장관 역시 비슷한 시기에 “각 부처의 행정지도도 고유 목적이 있으므로 부당한 공동행위와 균형 있는 접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더 객관적이고 예측 가능한 기준을 통해 행정지도에 대한 지침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특히 금융, 통신, 주류, 에너지 등 행정지도에 강제성이 높은 분야에는 한층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아울러 힘센 감독 기관들은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행정지도를 자제해야 한다. 행정지도는 대부분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공정위와 각 부처가 협조 체계를 구축해 매년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업은 “아빠 말씀 잘 들었다고 엄마한테 혼나는 꼴”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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