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격 비슷해 토론도 싸우듯이
첼리스트인 정명화(66)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과 구삼열(69) 서울관광마케팅 대표 부부가 사는 서울 구기동 빌라에 찾아간 것은 지난 10월 10일 해 질 무렵이었다. 북한산이 병풍처럼 두른 그곳은 아늑하고 조용했다. 집은 간소했다. 거실 벽 한쪽에는 어린 손자들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진열돼 있고 앤티크풍 소파, 명화 두 점이 걸려 있다.
3층 다락방을 개조해 만든 정명화 감독의 연습실. 하얀 카펫 위에는 1731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우리나라엔 하나밖에 없다)가 든 은빛 하드케이스가 피아노 옆에 세워져 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정 감독이 직접 공을 들여 아기자기하게 만든 그녀만의 작은 공간이다. 한쪽 벽면에는 그녀가 첼로에 기대 활짝 웃고 있는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아내가 연습을 할 때 구 대표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간식이나 물을 챙겨주고 연주에 대한 코멘트를 해 준단다.
그녀는 연습을 끝내고 나면 바로 옆 테라스로 나와 남편과 와인을 즐긴다. 부부는 밤늦게까지 이곳에서 음악부터 세상사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성격 비슷하지만 토론은 치열“누가 들으면 우리가 싸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워낙 의견을 주고받는 걸 좋아해요. 토론을 해 문제점을 찾지 서로 덮어놓
고 따라가진 않죠.” 구삼열 대표는 “보는 관점이나 취향, 성격이 비슷한 편이지만 내가 많이 참는 편”이라고 말했다.
정명화 감독은 내년 대관령국제음악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저명한 해외 음악가들을 섭외하고 페스티벌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자주 듣지 않던 음악까지 열심히 듣는단다. “이 음악이 이렇게 좋았나 깨닫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힘들어도 이 일이 너무 즐거워요.” 그녀는 그동안의 연주 경험을 살려 깊이 있고 즐거운 페스티벌을 만들 계획이란다. 예술감독뿐 아니라 전국 순회 연주에 마스터클래스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줄리아드 음대 졸업 후 제네바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첼리스트로 이름을 알린 그녀는 이젠 세계적인 연주자로 명성을 얻었다. 정 감독은 이제껏 해외 순회 연주가 많아도 한 번도 펑크 낸 적이 없다. “연주자는 컨디션이 나쁘면 연주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항상 시간관리를 철저히 하는 게 중요해요. 늘 1순위가 뭔지 생각하고, 계획을 적절히 바꿔가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죠. 장단기 스케줄을 잘 알고 있어야 해요.”
구삼열 대표도 요즘 아내 못지않게 바쁘다. “서울을 해외에 알리는 일은 1년 내내 계속되거든요. 얼마 전 애를 많이 쓴 ‘2010 서울 고메(Gourmet)’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났어요. 한식 세계화가 화두였죠. 유명한 셰프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한식자재로 한식 만드는 기술을 습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세계적인 요리 전문 기자도 15명 초청했죠. 곧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국제 컨벤션이 있고 G20 정상회의 관련 준비도 합니다. 연말엔 코리아MICE마켓 행사에 유럽 출장도 다녀와야 해요. 그래도 시간 날 때마다 아내의 대관령국제음악제 준비를 돕고 있지요.”
구 대표는 65년 코리아헤럴드 기자를 시작으로 AP통신 유럽 특파원으로 15년간 활동했다. 89년엔 유니세프 대변인을 맡았고 93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유엔에 진출해 유엔본부에서 공보국장과 특별기획본부장을 거쳤다. 아리랑TV 사장도 지냈다. 현재 서울관광마케팅 초대 대표이사 겸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관광위원장을 맡고 있다. 40년간의 해외생활에 에피소드가 없을 리 만무하다. “AP통신 유럽특파원을 할 때 큰 실수를 했어요. 유엔에서 수많은 회의가 매일 열리는데 기자 입장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도 있어요. 하루는 ‘뻔한 회의’라 생각하고 한 회의장을 안 갔는데 하필 그날 정말 중요한 결의안이 갑자기 올라와서 표결이 된 거죠. 당연히 AP가 다른 곳보다 보도가 늦었지요. 얼마나 애먹었는지 몰라요.”
비슷한 실수가 또 있었다고 그는 ‘실토’ 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제네바를 방문했을 때였어요. 78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전담 취재를 했는데 교황이 어디를 가나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 땅에 키스를 하셨어요. 그날 바빠서 다른 사람을 공항에 보내고 저는 TV스크린을 보며 기사송고를 했는데 교황이 내려오는 모습을 TV에서 보고 ‘땅에 키스를 하셨다’고 내보낸 거예요. 그런데 그날은 교황께서 그냥 내려오셨어요. 정정기사를 써야 했죠. 교황은 그때 제네바 방문이 두 번째였기 때문에 키스를 안 하셨던 거예요.” 그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93년부터 2003년까지 10년간 떨어져 지냈다. 1970년 뉴욕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처음 만나 이듬해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로마에 정착했다. 두 딸은 모두 로마와 뉴욕에서 자랐다. 구삼열 대표는 87년 유니세프에서 일하려고 뉴욕으로 돌아왔고 아내는 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직 제의를 받아 먼저 귀국했다. 부부는 오래 떨어져 살았지만 자신들만의 부부애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된장국 끓여 먹는 집은 아니에요. 한자리에 모여 먹진 않지만 다른 방법으로 가족애를 느끼죠.” 정 감독은 “서로에 관한 일들, 예를 들어 회사일과 출장이야기 등은 남의 집에 초대 받았다가 자연스럽게 듣는 경우가 많아요. 남들은 평소 들은 얘기 또 듣고 하는데 저는 처음 듣는 거라 재미있어요”라며 웃었다. 구 대표는 “나는 음악에 대해 많이 아는데 아내는 내 세계를 잘 모른다”고 말했다.
비행기 옆좌석엔 첼로가 앉아 그는 아내와 함께 요즘도 주말마다 음악회 나들이를 다닌다. 지금은 모두 바빠 서로 시간을 내기 힘들지만 로마에서 살 때만 해도 매일같이 음악회를 가거나 함께 골동품을 보러 다녔다. “남편이 맛있는 집을 찾아놓으면 저는 졸졸 따라가서 맛있다, 없다 평가하고 그랬죠. 둘 다 와인과 요리를 좋아해 참 즐거웠어요.”
무거운 첼로가방은 누가 들까. “20대 때는 멋 부린다고 하이힐 신은 채로 무거운 첼로가방을 메고 다녔어요. 아주 피곤할때만 남편에게 맡겼죠. 동생 명훈이는 음악가니까 자주 맡겼는데…. 첼로가방을 자주 들어야 팔의 근육도 생기고 체력적으로 도움이 돼요. 특수한 경우 아니고는 잘 안 맡기죠.”
그녀는 해외 순회 연주를 할 때 비행기 옆좌석 티켓을 끊어 첼로를 앉혔다. “남편과 셋이 비행기를 타면 나는 첼로랑 앉고 남편은 따로 앉았던 적이 많았어요. 저보다는 남편이 외조를 많이 했죠. 신혼 땐 서신 작성이나 커리어 관리를 많이 해 줬고요.” “제가 대서소 역할을 했어요. 문서 대필을 해 주는 거요.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구 대표가 외조를 자랑하자 아내는 “나도 처음에는 내조를 했다”고 ‘반격’한다. “남편은 로마에 있을 때 손님 초대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나름대로 잘하고 싶어 만날 요리책 보고 연구하고 그랬죠. 남편이 은수저 같은 걸 좋아해 자꾸 사오는데 얄미웠죠. 안 쓰면 검게 되니까 닦느라 고생했어요.”
두 딸은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큰딸은 미국에서 브라운대학을 나와 초등학교 교사로, 작은 딸은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영양학을 공부하며 유니세프에서 일하고 있다. “e-메일과 전화로 자주 연락해요. 서로 이야기할 것이 있으면 영어로 장문의 e-메일을 쓰죠.” 부부는 지난 여름휴가를 미국 워싱턴 근교 해변에서 결혼한 두 딸 가족과 보냈다. “휴가 때는 가끔 경화, 명훈이도 함께해요. 내년엔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있어 거기로 불러 모을 생각이에요.”부부의 소망은 소박하다. “스페인에 가서 음식기행을 하면 참 행복할 것 같아요.” 결혼 40주년, 부부는 바쁜 와중에도 아름답게 서로를 보듬으며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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