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나눈 17년 가슴에 간직하고 …
▎곽대희 원장이 17년간 사용해온 집필실.
일찍이 단골환자 중에 ‘무교동 빗자루’란 별명을 가진 중소기업 사장이 있었다. 40대 후반에 이미 3000여 명의 여성 편력을 자랑했을 정도이므로 여성에 관한 한 백전노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었다. 그런 섹스의 베테랑이 서양화를 그리는 30대 올드미스에 현혹되어 데이트를 하게 되면서 힘들여 그녀와 몇 차례 섹스할 기회를 만들었는데 그때마다 공교롭게도 발기불능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여 찾아왔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단지 나란히 보도를 걸어가고 있어도 손바닥에 땀이 고이고, 평소에 잘하던 말도 더듬거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런 변고는 그전에 없었던 일이었다. 이것은 관능적인 것에 집착하느라고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여성의 내면적 매력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되어 긴장한 케이스인데 종전에 농락한 여성과 차별 인식하는 데서 오는 정신반응의 일종이다. 이런 경우 복용약을 투여하면서 ‘반드시 좋은 효과를 볼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주면 거의 100%라고 할 정도로 완벽하게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본다. 약이 갖는 치료효과 때문이라기보다 ‘약을 먹었으니까 걱정 없다’ 하는 정신적인 위안에 의해 치유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 (후략·1994년 2월 5일자 이코노미스트 곽대희 칼럼 ‘지나친 분발심이 실패를 부른다’ 중).
‘무교동 빗자루’라는 이 중소기업 사장의 일화가 ‘지나친 분발심이 실패를 부른다’는 제하의 곽대희 칼럼 1회 내용이다. 그 후로 17년이 흘렀다. ‘무교동 빗자루’는 일흔을 앞두게 됐을 테고, 중소기업은 어쩌면 대기업이 됐을 수도 있다. 30대 여류화가와 데이트는 어떻게 끝나게 됐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적어도 ‘무교동 빗자루’의 여성 편력만큼은 끝이 났을 것 같다.
17년이라는 긴 시간, 변하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세상은 변했다. 이제 30대가 지나도 결혼을 안 한 여성은 얼마든지 있다. 두피에 바르는 약을 사용한 일종의 발기부전 치료법도 ‘비아그라’의 등장으로 잊혀졌다.
그러나 변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지금 세상에서 변하지 않은 것도 물론 있다. 매주 찾아왔던 곽대희 원장의 마감시간이 그랬다. 병원 한쪽에 마련된 3평 남짓의 원고 집필실도 그대로다. 무엇보다 그의 성칼럼을 향한 열정도 여전했다.
12월 22일 17년 동안의 긴 연재를 끝내는 곽대희(77) 원장을 그가 경영하고 있는 강남구 신사동 곽대희비뇨기과에서 만났다. 그의 병원에는 이제 지하철 7호선 학동역이 코앞에 들어와 있다.
장기간 연재되며 숱한 화제 뿌려그는 지금 투병 중이다. 말단 근육이 떨리고 신장도 안 좋다. 그래도 펜을 들기 힘들어지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연재를 이어나갔다.
“20년을 채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하네요. 독자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펜을 놓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네요.”
시원섭섭하다는 그의 말과는 달리 얼굴 가득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던 곽 원장은 ‘독자를 위해서’라는 말을 하면서는 표정이 단호해졌다. 곽대희 칼럼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것은 그의 유난한 독자 사랑과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곽 원장이 대중매체에서 성지식, 건강지식을 알리기 시작한 매체는 조선일보다. 이후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에 5년이 넘는 기간 매일 건강칼럼을 썼다. 그러다 보니 정작 본업을 할 수 없었다. 개업하면서부터는 대신 방송을 했다. MBC ‘건강백세’ 등 장수프로그램에서 입담 좋고 훤칠한 의사 MC로 유명세를 탔다. 한 캐나다 교포는 그에게 비행기 표를 부쳐주며 강의를 부탁했다. 하와이에 여행 갔을 땐 그곳 교포가 알아보고 숙박을 책임지겠다고 고집을 부린 일도 있었다.
17년 동안 매주 마감해야 했던 곽 원장은 마감시간을 리포트에 비유했다.
“매주 리포트를 써내라는 교수님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죠. 해외에 나가기라도 하면 미리 써놓고 가야 하니 고역이었지만 뿌듯한 마음도 듭니다.”
▎백우진 이코노미스트 편집장이 곽대희 원장에게 감사패를 증정하고 있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곽대희 칼럼을 연재하면서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와 1년 이상 편지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왜 많은 사람이 보는 잡지에 외설적인 내용을 쓰느냐는 말에 곽 원장은 일관적으로 건전한 성문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대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논쟁이 격화돼 마음고생이 많았다. 간혹 종교인에게서 종교 비하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소송으로 번질 뻔한 일도 많았다. 성칼럼을 연재해 병원 홍보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일부 후배 의사의 투덜거림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를 다잡아준 것은 독자의 목소리였다. 편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사람도 많았고 선물을 보내오기도 했다. 시간이 쌓이면서는 두터운 시간이 다시 그의 펜을 일으켜줬다.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40년 전이다. 의과대 시절 문집에 참여했고, 의협신문 편집인도 지냈다. 의사 동인지에도 해마다 참여했다. 그에게 좋은 칼럼은 어떤 것일까?
“성행위 그 자체의 묘사보다는 사회적인 모습을 많이 담으려고 한 것이 롱런한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요즘 성칼럼은 의학적인 내용이 너무 많아요. 성칼럼은 문인의 마음과 전문가의 머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곽 원장은 “미래의 성문화가 뒤바뀌는 것은 불과 10년”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우리 사회 성문화가 문란해지는 것은 결국 직장인이 많은 한국 남성이 스트레스와 위축감으로 성기능이 떨어지는 게 근본원인”이라며 “부부가 만족스러운 성을 즐긴다면 우리 사회의 성문화도 건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를 위해 펜을 놓습니다”
곽 원장은 17년 전 이코노미스트에 처음 연재한 칼럼에서 지나침이 실패를 부른다며 이는 약효가 없는 약을 복용시키는 위약효과를 통해 치료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약은 그것을 복용하는 사람이 우선 그 효능을 믿는 마음가짐을 갖고 먹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치료의 성패는 환자가 주치의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에 좌우된다”고 했다.
그는 가장 무서워하는 것도, 미안해하는 대상도 독자라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17년간 곽대희 칼럼을 봐왔던 독자를 향한 한마디를 부탁했다. “대단히 고마운 일입니다. 마지막 떠나면서 그런 인사를 하고 싶었죠. 몸이 안 좋아지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고 그건 독자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오랜 기간 칼럼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도, 좋은 평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도 모두 독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17년 동안 이코노미스트의 성(性)주치의 역할을 해왔던 곽 원장. 그의 주치의는 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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