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 Celebrity ②] 이병철 회장의 유별난 Montblanc 사랑
- [Luxury & Celebrity ②] 이병철 회장의 유별난 Montblanc 사랑

1990년 10월 3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리됐던 동독과 서독 총리가 만났다. 이 자리에서 서독의 헬무트 콜, 동독의 로타어 데메지에르 총리가 통일조약에 서명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순간이자 냉전체제 종식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이 역사적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한 것은 다름아닌 몽블랑의 ‘마이스터 스틱149’ 펜이었다. 두 총리가 나란히 이 펜으로 통일조약에 서명한 것이다. 이 펜은 같은 해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헬무트 콜 총리가 만나 소비에트·저머니 우호조약에 서명할 때도 사용됐다.
마이스터 스틱149가 첫선을 보인 것은 1924년. 당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피폐해진 살림살이에 사람들은 값싼 펜만 찾았다. 고급 만년필을 선보여온 몽블랑에는 위기였다. 하지만 몽블랑은 오히려 더 공들여 제작한 모델인 마이스터 스틱149를 선보였다.

명사들이 애용하는 덕분에 마이스터 스틱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중요한 문서에 서명하는 데 빠지지 않는 역사 속 주인공이 됐다. 그 가치를 인정해 뉴욕 현대미술관은 마이스터 스틱을 전시하고 있다. 이 만년필은 펜촉 하나를 만드는 데 35번의 수작업 공정과 15회의 테스트 단계를 거친다. 단순히 많은 공정이 소요되는 게 아니다. 최대한 느리게 일하기를 장려하는 생산 분위기 또한 독특하다. 몽블랑은 직원들이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주고, 점심 시간에는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다. 생산성이 떨어지더라도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명사들의 심미안이 이를 몰라볼 리 없다.
경영진은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한다누구보다 삼성의 고(故) 이병철 회장의 몽블랑 펜 사랑은 유명하다. 그는 몽블랑을 살 때면 어김없이 한꺼번에 여러 개를 구입해 손에서 절대 몽블랑 펜이 떠나지 않도록 했다. ‘경영진은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던 그는 새로운 임원을 선출한 뒤에 늘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하곤 했다. 이 몽블랑 사랑은 지금까지도 삼성가에 이어지고 있다.

이건희 회장 또한 몽블랑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단순히 펜을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몽블랑에서 출시하는 다양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수집하고 있다고 한다.
2006년 삼성 윤종용 부회장이 당시 신임 임원 100명에게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가 펜을 선물한 이유는? 몽블랑이 상징하는 성공과 신뢰의 이미지를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이병철 회장이 늘 강조한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금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1984년 영화 ‘007 옥토퍼시’에서 몽블랑의 마이스터 스틱의 활약은 대단했다. 바로 제임스 본드의 비밀무기로 등장했던 것. 1973년부터 85년까지 7개의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으며 영국 제국훈장까지 수상한 배우 로저 무어.

실제로 몽블랑 펜에 보내는 남자들의 신뢰는 그들이 몽블랑 펜을 007 제임스 본드의 비밀병기로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특히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가인 월스트리트에서도 몽블랑 만년필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곧 ‘성공’이라는 의미로 통한다. 하긴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한 장면처럼 명함 종이의 두께와 탄력을 가지고 은근히 우열을 가리는 이들이니 왜 아니겠나!
금융맨들이 몽블랑 펜을 사랑한 때문에 기분 좋은 회고는 아니나,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 조약에 서명한 펜도 몽블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금융맨들의 몽블랑 펜 사랑도 각별하다. 하나은행에서는 전임 행장이 신임 행장에게 몽블랑 만년필을 물려주는 전통이 있다. 윤병철 하나은행 초대행장은 중요한 서류에 서명할 때마다 몽블랑 만년필을 썼다. 그는 1997년 행장에서 물러나면서 김승유 당시 신임 행장에게 이 몽블랑 펜을 물려주었는데 이때부터 펜을 물려주는 하나은행의 전통이 시작됐다.
현재까지도 보관되고 있는 이 몽블랑 만년필에는 역대 행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와 비슷한 장면은 영화 ‘뷰티플 마인드’에도 등장한다. 영화 속 주인공인 존 내시가 교수식당에 앉아 있는데 그의 곁으로 프린스턴대 동료 교수들이 하나둘 다가와 ‘당신과 함께해 영광이었습니다’고 말하며 만년필을 헌정하는 것. 당시 화면에 잡힌 수 개의 펜 중 상당수가 몽블랑이었다.
실제로 프린스턴대에서는 큰 업적을 세운 교수가 은퇴할 때 동료 교수들이 사용하는 만년필을 헌정하는 전통이 있다.

인문학의 친구
문인에게도 몽블랑 만년필은 없어서는 안 될 아이템이다. 소설가 이문열, 조정래, 이병주, 박경리 등은 몽블랑 만년필로 작품을 써 내려갔다. 특히 이문열은 <오딧세이아 서울> 이라는 소설에서 아예 몽블랑 펜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내용을 전개하기도 했다.
몽블랑과 문인의 인연은 창립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문구점 상인과 은행가, 기술자 세 사람이 모여 만든 몽블랑은 원래 초창기 이름이 ‘심플로 펜 컴퍼니’였다. 이들이 처음으로 선보인 펜은 ‘Rouge&Noir(적과 흑)’이라는 이름의 제품이었는데, 이는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의 소설 제목과 같은 것이었다.
오딧세이아>

2010년에는 마크 트웨인 100주기를 맞아 스페셜 에디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로렌초 데메디치, 영국 문화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엘리자베스 1세,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명사들의 이름을 단 한정판을 선보이며 몽블랑과 명사의 돈독한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리미티드 에디션은 그 이름처럼 한정 수량을 제작한 후 제작 틀을 완전히 파기해 같은 제품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수익금은 인물과 관련된 단체에 기부하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명사들의 뜻을 기리고 있다.
몽블랑의 CEO 루츠 베이커는 명사들이 몽블랑 펜을 애용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해석한다. “e-메일이 보편화된 시대에 몽블랑 만년필이 여전히 사랑 받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한 기구를 넘어 사회적 성취감의 표현이자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는 소품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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