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카드업계, 마케팅이 살길?
요동치는 카드업계, 마케팅이 살길?
지난 3월 2일 KB국민카드가 KB국민은행으로부터 독립해 전업 카드사로 출범했다. 국민카드가 누적된 부실을 껴안고 국민은행에 흡수된 지 8년 만이다.
카드대란 직전까지 업계 선두 기업이었던 만큼 KB국민카드는 은행에 통합된 이후에도 최근까지 시장점유율 2위(약 14%)를 차지했다. 새로운 라이벌이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업계에는 새삼 긴장감이 돈다. KB국민카드는 분사를 계기로 은행 안에서 보수적인 리스크 관리를 받던 데서 벗어나 시장 상황에 맞는 공격적이고 유연한 경영과 마케팅이 가능해졌다. 기존의 경쟁자가 더 강해져 돌아온 것이다.
신용카드사는 전업카드사와 은행계 카드사로 나눠 볼 수 있다. 전업카드사는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로 시장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으며 금융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은행계 카드사는 자금조달에 유리하며 전국적인 영업망을 갖췄다. ‘끼워팔기’는 물론 다른 금융상품과의 결합 효과도 노릴 수 있다.
포인트로 대출금 갚는 카드도 나와KB국민카드는 은행계와 전업 카드사의 장점을 두루 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장의 카드로 공개한 ‘금융세이브제도’는 카드 사용액과 대출금 상환을 연계했다. 카드 사용액에 대한 포인트로 대출금을 일부 갚는 방식이다. 이런 제도는 여러 개 카드를 보유한 고객이 자사 카드를 먼저 사용하게끔 유도한다.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진 2003년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카드사는 적자를 기록해 금융지주사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그러나 2006년부터 흑자로 돌아서며 영업이익을 급격히 늘려 나갔다. 2005년 258조원을 기록한 신용판매액은 지난해 약 412조원으로 늘어났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해 2조3839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는데, 이 중 절반가량인 1조1070억원을 신한카드가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소비지출 대비 신용카드 이용금액이 올해 56%를 차지할 정도로 신용카드는 더 많이, 더 자주 사용되고 있다.
애물단지에서 노다지가 된 카드 시장을 놓고 주요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2위권 다툼이 눈에 띈다. 2010년 3분기까지의 주요 카드사 시장점유율을 보면 신한카드가 20%대 초반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KB국민카드 15%, 현대카드와 삼성카드가 각각 약 11%로 시장을 나눠 갖고 있다. 체크카드를 제외한 점유율을 보면 치열한 양상이 더 드러난다. 현대카드 11.8%, KB국민카드 11.7%, 삼성카드가 11%다. 재계 1, 2위의 계열회사 그리고 전통적인 은행업 강자가 대립하는 구도다.
경쟁의 열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카드사업부문이 덩치를 키우게 된다. 지난해 2월 SK텔레콤과 하나금융지주가 함께 설립한 하나SK카드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산은금융지주와 우정사업본부가 카드사업 진출을 예고하고 나섰고,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카드 사업을 분사할 뜻을 내비쳤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졸자들의 높은 실업률 때문에 카드 시장에서 신규고객 창출이 어려워 카드사 간 점유율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객을 지키려는 2위권 업체들의 전략과 방법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가장 공격적,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삼성카드다. 지난해 말 삼성카드는 최치훈 신임 사장을 맞았다. 수장의 교체를 두고 업계 인사들은 “사실상 문책성 인사”라고 평가했다. 인력 규모나 자산에서 현대카드의 2배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경쟁에서 우위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카드는 360만원의 혜택을 미리 제공하고 차후 이용 금액과 상환기간을 정해 갚는 ‘슈퍼S카드’를 내놓았다. 사용금액의 8%를 돌려주는 캐시백 체크카드도 판매한다. 소비자들이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금액적인 혜택’을 제시한 것이다.
“제2의 카드 대란은 섣부른 해석”이에 비해 현대카드는 차분한 분위기다. 내부 관계자는 “환경이 어려워질 것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라며 “프리미엄 카드와 대중적인 카드로 나눠 고객의 혜택에 집중하던 기존 전략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해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내비쳤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2~3년 후를 내다보자”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의 시장점유율에 연연하기보다 장기적으로 고객을 붙잡고 더 많은 신용판매액을 올리자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는 카드사 간 마케팅 경쟁이 당장 피부로 와 닿는다. 회원가입을 권유하는 영업사원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늘었다. 무이자 할부와 각종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며 자사 카드 상품을 홍보하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카드사 간 경쟁이 심화되며 2005년 1조3000억원이던 마케팅 비용이 2009년 3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마케팅으로 지출한 비용은 4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금융당국은 “과당경쟁을 자제하고 대손충당금을 두 배로 늘리라”고 올해 초 카드사에 요구했다.
규제를 받는 업체 내부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관리당국과 언론에서 보도한 것 같은 과열경쟁은 아직 없다는 주장이다. 선두 업체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가맹점 수수료 인하 문제 등을 압박하기 위해 경쟁 구도를 더 부각한다는 느낌마저 든다”고 말했다.
저신용자에 대한 카드 발급이 늘고 카드론이 증가하는 지표를 놓고 “2003년 카드 대란 당시와 비슷한 상황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업계 건전성이 떨어지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는 이에 대해 “지나친 기우”라고 말한다. 대신증권 최정욱 연구원은 “전혀 근거 없는 걱정이라고 본다”며 “현금서비스 등 대출성 자산보다 신용판매금액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2003년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KB국민카드의 전업계 진출에 대해 지나친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외부에서 말하는 것만큼 업계 순위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지금 각 업체의 마케팅은 수익성에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다”며 지나친 해석을 자제하길 당부했다. 그러나 업체가 발급하는 카드의 대부분이 영업에 의존하고 있다. 회사가 장기적인 전략으로 접근한다 하더라도 경쟁사가 많아지면 모집인들의 영업활동은 과도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금융당국은 불법 모집 행위에 대해 엄중히 단속할 것을 공지했다.
박미소 기자 smile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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