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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영 어떻게] 고객은 ‘만족’ 넘어 ‘압도’를 원해

[창조경영 어떻게] 고객은 ‘만족’ 넘어 ‘압도’를 원해

김상근(오른쪽)·최선미 교수가 서울 중구 플라톤아카데미에서 포즈를 취했다. 플라톤아카데미는 인문학을 지원하는 재단법인이다.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고자 추진한 창조경영은 내부의 한계와 장벽만을 확인해야 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월 초 신년 메시지를 통해 한 말이다. 2006년 가을 창조경영을 화두로 던진 사람이 이 회장이라 의미심장했다. 창조경영이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가? 창조경영, 어떻게 할 것인가? 『르네상스 창조경영』을 공저한 김상근·최선미 교수에게서 해답을 들어봤다.



김상근 교수 : 『르네상스 창조경영』은 기업에 종사하는 종업원에 주목했습니다. 창조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어떻게 종업원의 창의성을 고양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죠. 이제 종업원으로부터 소비자에게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이 신학자 겸 자연과학자인 문영빈 교수와 공동 연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서울여대 기독교학과에 몸담고 있는 문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와 대학원 물리학과를 나와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선미 교수 : 인간은 생산자로서의 종업원과 소비자로 나눌 수 있는데 창조경영론 1편은 종업원으로부터 창조적인 에너지를 끌어내는 방법에 초점을 맞췄죠. 그래서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예술가의 경우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의 경험을 살펴봤어요. 그런 에너지가 나오려면 시대의 분위기와 문화가 중요한데, 이런 관점에서 기업 조직과 조직 문화를 강조했습니다. 2편은 창조경영이 성과를 거두려면 소비자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으려고 합니다. 창조적인 성과물을 만들어 내려면 하나의 인간인 소비자, 그 소비자에게 내재하는 어떤 욕구 나아가 존재 이유, 행복에 대한 열망 등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결국 기업이 앞으로 이런 형이상학적 세계를 건드리는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아야 합니다. 여전히 추상적이죠?



종업원에서 소비자에게로

김상근 : 그런 제품과 서비스는 소비자에게 압도 당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 시대의 소비자는 감동을 넘어서서 제품에 압도 당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소비자는 왜 압도 당하기를 원하는가, 왜 압도 당하는가가 앞으로 연구의 주요한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소비자는 고만고만한 제품 말고 매료되다 못해 압도 당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제품을 사고 싶어합니다. 이렇게 볼 때 앞으로 경영학자도 압도의 경험을 끌어내는 제품을 개발하는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소비자가 언제, 왜 압도 당하는지를 연구해야 한다는 거죠. 압도의 경험을 제공하는 사례로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와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성당 천장화를 꼽을 수 있죠.

알타미라 동굴에 그림을 그린 구석기 시대 사람은 절대적인 존재 같았던 들소 앞에서 압도 당했습니다. 이 그림의 생생한 묘사와 아름다운 색채는 지금도 보는 사람을 압도하죠. 시스티나성당 천장화도 당시 교황을 압도했듯이 지금 봐도 할 말을 잃습니다.

'앞으로 TV는 동굴의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고객에게 감동 넘어 압도의 경험 줘야

최선미
: 마케팅에서는 고객 만족을 중시하는데, 제품에 대한 만족, 제품으로부터 받는 감동의 다음 단계가 바로 제품으로부터 압도 당하는 경험입니다. 요즘 화두가 경험경영 아닙니까? 지금은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를 팔 게 아니라 경험을 팔아야 한다는 거죠. 경험을 왜 파느냐, 경험이 과연 팔릴까에 대한 해답은 종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의 조직으로 교회를 들여다보면 경영학 이론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런데 교회는 기업이 추구하는 이윤과는 정반대의 것을 추구하거든요. 저는 남들은 대부분 쉬는 주일 아침 교회에 나가 예배 드리고 헌금하고 나면 행복감을 느낍니다. 교회는 이렇게 조성된 헌금으로 재정을 확보하죠. 교인들에게 교회가 행복감을 안겨주는 것은 기업이 소비자를 압도하는 경험과 흡사합니다.



김상근 : 감동은 보통 남이 잘해 주면 느끼게 마련이지만 충격적인 압도의 경험은 누가 주기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겁니다. 저는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주도한 제품들이 그 비슷한 경험을 제공한다고 봅니다. 최근 애플의 제품들은 사람을 잡아당기는 마력이 있어요. 그런 마력을 뿜어내는 제품, 아니 그 마력을 어떻게 개발하느냐가 우리의 다음 프로젝트죠. 독자들로서는 여전히 실체가 잘 안 잡히실 텐데, 앞서 말한 동굴화와 천장화에서 유추해 보면 압도의 경험은 동굴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경험을 제공합니다. 극장에 가면 흔히 압도를 당하는데 동굴에 들어갔을 때의 경험과 아주 비슷하죠. 그래서 앞으로 TV는 이런 동굴의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평면 TV를 일방적으로 보거나 TV와 상호작용하는 단계를 지나 소비자가 동굴 내부에 둘러싸이는 경험을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연구를 하고 나서 먼저 학술지에 발표하고 내년쯤 출간할 생각입니다. 『르네상스 창조경영』 2편 격인 책이죠.



최선미 : 애플이 촉발한 측면이 있지만 애플의 제품에 시장이 반응하고 그런 소비자로 자생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현대인은 외롭습니다. 그래서 소속감과 사랑을 줄 대상을 갈구하죠. 소비자의 이런 잠재적 욕구를 애플이 건드린 거예요. 인터넷 속도가 빠르고, 제품이 가볍고 디자인이 좋은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요즘 소비자는 이렇듯 그룹을 이루고 아메바가 증식하듯이 그 그룹을 확장해 나갑니다. 이른바 네트워크 경제죠. 기업은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던져주기만 하면 됩니다. 현대자동차가 품질과 디자인이 좋아졌고 글로벌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습니다. 아직 부족한 것이 이런 요소예요. 현대자동차는 더 이상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 단일민족은 창조적인 인재를 만들어내는 데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자동차는 단지 고객이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로 하는 물건일 뿐이죠. 이제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것들을 패키지로 제공하는 제품을 만들어 팔아야 합니다. 레스토랑에 가는 목적은 더 이상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이런 패키지 경험의 한 요소예요. 가격도 앞으로는 제품을 통해 기업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기준으로 책정해야 합니다. 이런 제품을 만들어 내려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그 핵심에 인간이, 고객 스스로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인간의 욕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걸 알아내려면 인문학을 해야 돼요.



초월성, 예술적 감동, 과학성 갖춰야

김상근 :
압도의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종교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초월성입니다. 시공을 초월해 전 세계를 연결하는 커넥션이라면 이런 초월적 감동을 줄 수 있을 겁니다. 둘째는 동굴의 경험, 극장의 경험이 주는 것과 같은 예술적 감동이죠. 마이클 샌델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는 표지에 샌델이 강의하는 대형 강의실 사진을 썼습니다. 관람객을 에워싸는 시스티나성당을 연상시키는 이 사진은 동굴의 압도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마케팅에 상당한 효과가 있었죠. 셋째가 과학적 요소인데 정교함 같은 것입니다. 이 셋이 결합됐을 때 맛보는 압도의 경험은 마케팅의 결과가 아닙니다. 인간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기 때문이죠.



최선미 : 제품개발 부서처럼 창조경영이 활성화돼야 할 하부 조직도 있지만 1970년대식 패러다임을 따라야 할 하부 조직도 있어요. 단적으로 모든 기업이 구글처럼 할 수는 없어요. 성과가 검증된 몇 개의 패러다임이 공존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죠. 비유를 들어 설명하면 레스토랑은 서비스 업종이지만 주방은 제조업체처럼 운영해야 합니다. 고객 접점에 있는 카운터와 홀은 물론 서비스업에 충실해야죠. 이런 식으로 창조경영은 유연하게 해야 합니다.



김상근 : 요즘 화두가 지속가능성(sustaina- bility)입니다. 기업이 경제위기가 닥쳐도 망하지 않는 경영을 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 사회에서 망하지 않는 조직으로 대표적인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는 그런 대로 건강하고 오래도록 지속가능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 조직이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는 비결, 종교를 통해 신자들이 맛보는 압도의 경험을 잘 결합한다면 마케팅 효과가 아니라 고객들이 스스로 원해서 하는 구매를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압도의 경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그런 경험을 유도할 건지 연구하는 것은 경영학자의 몫이지만 이런 연구는 반드시 인문학과 결합돼야 합니다.



최선미 : 우리 민족은 자랑스러운 단일민족이지만 민족적 동질성은 창조적인 인재를 만들어내는 데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동질성이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하는 데 기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다양성이 있는 그룹이 창조성도 뛰어납니다. 그런 점에서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다민족화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김상근 : 창조성은 개방성과 연관돼 있습니다. 일본에 강진이 발생했는데 초기에 대부분의 언론 관심은 한국 사람이 몇 명 희생됐느냐에 머물렀습니다. 이집트 유혈 사태 당시 어느 나라도 자국민 희생자가 몇 명이라고 보도하는 걸 못 봤습니다. 인문학적 성찰의 연장선상에서 이제 우리도 세계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지구는 작은 별이에요. 세계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듯 전체 인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문화권과 사람들에게 인문학적 관심이 있을 때 세계 시장도 열립니다. 대한민국의 10대 기업이라면 그 수준은 돼야죠. 기업은 또 인재를 양성하고 기초 학문이 발전하도록 후원해야 합니다.



최선미 : 그게 바로 메디치 경영입니다. 『르네상스 창조경영』의 부제가 ‘미켈란젤로처럼 생각하고 메디치처럼 경영하라’인데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발견한 메디치가는 그에게 인문학 공부를 시켰습니다. 훌륭한 예술가가 되려면 자기 사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통치한 메디치 가문은 숱한 예술가와 인문학자를 후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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